“차라리 군대를 보내 Y국을 공격해서 도련님을 데려오지 않겠습니까?”“약혼식을 올리지 않았다고 해도 도련님과 서현이가 약혼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도련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 서현이의 체면은 어쩐다는 말입니까?”...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브람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굳이 다른 적을 만들 필요는 없어요.”“저희에게는 무기가 있습니다. 저희가 겁을 낼 이유는 전혀 없어요. 최악의 상황에는 세계대전을 일으키면 됩니다.”“맞아요!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다른 나라들이 S국을 만만하게 볼 겁니다! 요즘 Y국조차 대놓고 무시하지 않습니까!”“제 생각에 모든 문제의 근원은 Y국의 마녀 때문입니다. 그 마녀만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브람은 어두운 안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여이현이 돌아오지 않으면 강서현은 우스갯거리가 되고 만다. 그리고 여이현이 돌아오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온지유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금방 돌아와서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다.브람은 생각에 잠겼다. 온지유를 죽이는 것은 괜찮은 방법이었지만 세계대전은 안 된다. 지금은 여러 나라가 살상력 높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때가 되면 싸움이 아닌 멸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일단은 물러가요. 이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브람이 결정 내리기도 전에 여이현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와 신무열은 상의 끝에 온지유의 경호를 요한에게 맡기기로 했다.온지유의 주변에는 수많은 경호원이 배치되었다. 그러고 나서도 여이현은 온지유에게 주의를 당부했다.“아버지가 널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암살 시도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온지유가 살아 있는 한 브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온지유는 지난번 화국의 군대에 납치당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여이현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바다에 던져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저번처럼 사람을 보낸다면
신무열은 온지유를 Y 국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온지유가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가 온지유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별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건강해지면 더욱 활기차게 자라면서 친구도 사귀고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룰 것이다. 별이는 이곳에서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온지유는 경성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이었다. 신무열의 생각을 그녀도 알고 있었기에 미리 설명해야 한다고 느꼈다. “법... 아버지에 대한 부분은 무열 씨에게 맡길게요. 저는 아이를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지유야, 뭐라고?” 신무열은 갑자기 흥분하며 온지유의 어깨를 꽉 잡았다. 온지유는 법로가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동안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온지유가 입을 열었다는 것은 곧 그녀가 아버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신무열이 ‘아버지’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조차 이렇게나 감격스러웠으니 친아버지에게는 얼마나 큰 기쁨일지 상상할 수 있었다. 온지유는 고개를 떨궜고 얼굴이 뜨거워지고 어색해졌다. 그녀는 그동안 목격했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법로가 보여준 변화와 진심 어린 헌신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별이의 몸 상태가 차츰 나아지는 것도 골수 기증자를 그렇게 빨리 찾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법로는 별이를 위해 진심을 다하고 있었다. 여이현이 말했듯이 온지유는 본능적으로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 십여 년 동안 서로 왕래도 없이 아무런 감정도 쌓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법로가 자신의 혈육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온지유의 침묵은 묵인이나 다름없었다. 신무열은 너무나 기뻐하며 말했다. “바로 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릴게. 지유야, 우리 가족이 함께 제대로 식사해 본 적이 없지 않니? 지금 바로 요리사에게 부탁해서 화국 음식을 잔뜩 준비하게 할게!” 신무열은 바로 요한에게 지시했다. “요한, 요리사들에게 진수성찬으로 준
온지유가 손목에 그 팔찌를 끼지 않았다면 그는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노승아가 그녀의 자리를 영원히 대신하게 될 수도 있었고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을 것이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에요.” 온지유는 조용히 말했다. 여이현이 그녀에게 했던 조언 덕분이기도 했고 그녀는 또 별이를 떠올렸다. 남들은 외할아버지가 있는데 별이만 없게 할 수는 없었다. 부모로서 여이현과 자신이 별이 곁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으니 이제 가족이 모두 모이기로 한 지금 별이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그 일들은 결코 지나간 것이 아니야. 나와 아버지는 평생 너에게 빚을 졌어. 지유야, 나는 너를 위한 친자 인정 연회를 열고 싶어.” 비록 주변의 근신들이 온지유가 큰 아가씨임을 알고 있었고 신무열 역시 모두에게 온지유를 존중하라고 지시했으나 Y 국 내에서 온지유의 신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번 김혜연이 온지유를 무례하게 대했던 일이 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왜 이 기회를 통해 온지유의 신분을 명확히 하지 않겠는가? 이를 통해 Y 국 사람 모두가 온지유의 신분을 알게 되어 감히 그녀를 무시하거나 상처 주려는 일이 없게 하자는 것이었다. 온지유는 서둘러 거절했다. “그런 거 필요 없어요...” 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신무열은 단호히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안 돼. 내 여동생에게도 마땅히 이런 중요한 순간이 필요해.” 신무열은 이미 확고한 결심을 한 상태였고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말을 해도 바꿀 수 없는 단단한 결의가 보였다. 결국 온지유는 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번 친자 인정 연회는 별이의 골수 이식 수술이 끝난 후에 열리기로 했다. 신무열은 당연히 허락했다. 그리고 법로는 온지유가 그를 아버지로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친자 인정 연회까지 수락했다는 소식에 한없는 기쁨에 휩싸였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는 신무열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묻기까지 했다.
온지유는 어머니로서 아이의 몸에 칼이 닿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수술실 못 들어가. 나... 이현 씨, 나 진짜 무서워...”“알아. 이해해. 하지만 지유야, 별이는 이미 충분히 고통을 겪었어. 만분의 일 확률이 별이한테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아버지의 기술을 믿어보자, 응?”“그래, 율아. 나도 있잖아. 내가 곁에서 도울게.”인명진은 그들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온지유가 신경 쓰였다. 그는 별이의 수술이 무사히 진행되도록 지켜줄 것이다.온지유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중독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명진은 그녀 곁에 늘 있어 주었다. 그건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했다.온지유는 여이현의 품에서 벗어나며 말했다.“나 잠깐 명진 씨랑 얘기하고 싶어.”“그럼 난 별이를 보러 갈게.”여이현은 온지유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원래는 온지유에게 입맞춤을 하고 싶었지만, 인명진이 있기에 그러지 않았다.그와 온지유에게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얼마든지 가까이할 수 있었다.인명진이 그들의 친구라는 것을 고려해, 여이현은 친구 앞에서 굳이 그들이 연인임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여이현이 자리를 뜨자, 온지유는 인명진을 바라봤다. 인명진은 온지유를 따라 함께 걸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온지유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명진 씨,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제 곁에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명진 씨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명진 씨 마음 이해해요. 하지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자만하는 건 아니고, 명진 씨를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명진 씨는 아직 젊잖아요. 혜주 언니조차도 짝을 찾았는데, 명진 씨가 평생 혼자일 수는 없지 않겠어요?”인명진은 온지유가 자신을 붙잡은 이유가 설득하기 위해서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그의 생각은 이랬다. 만약 남은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나았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는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이현은 지유를 승
이에 지유가 화들짝 놀라며 하마터면 발을 삐끗할 뻔했다.중심을 잘 잡지 못한 지유는 그렇게 이현의 몸에 기댔다.이현은 지유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손으로 지유의 허리를 잡아줬다.뜨거운 체온이 전해지자 지유는 어젯밤 그가 저돌적으로 그녀를 덮치던 화면이 떠올랐다.지유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고개를 들어 이현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 봤다.이현의 눈동자는 매우 진지했고 그 속엔 질문과 의혹도 담겨 있었다. 눈빛은 지유를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지유는 심장이 벌렁거렸다.이현과 더는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아까 나간 그 여자라고 생각했을 때도 이현은 불같이 화를 냈는데 여기서 만약 지유가 자신이었음을 인정한다면 후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억울했다.만약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라는 걸 이현이 알게 된다면 결혼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그래도 지유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게 겁나 고개를 숙인 채로 물어봤다.“그건 왜 묻는 거예요?”지유는 사실 남몰래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이현이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너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지유는 멈칫하더니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어쩌면 이현은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가 아니길 더 바랄지도 모른다. 계약 결혼일뿐이니 말이다.게다가 며칠만 더 지나면 계약도 끝나간다순간 이현이 지유의 손을 힘껏 낚아챘다.지유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이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심사하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지유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발버둥 치며 손을 빼려 했지만 이현이 지유를 전신 거울 앞으로 바짝 몰아갔다.“뭐 하는 거예요?”지유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긴장과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너 정말 사무실에서 잠들었어?”지유는 칠흑같이 어두운 이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혹시나 들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3년 전, 결혼한 첫날 밤, 지유는
고개를 들어보니 승아가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국자를 들고 있었다.지유를 본 승아는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인사했다.“아주머니 손님이에요? 마침 삼계탕을 조금 더 끓였는데 같이 와서 먹어볼래요?”승아의 느긋한 태도는 마치 그녀가 이곳의 안주인인 것 같았다.오히려 지유가 멀리서 찾아온 손님처럼 보였다.하긴 얼마 지나지 않아 지유는 곧 이 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다.지유는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 미간이 찌푸려졌다.이현과 결혼할 때 모든 사람에게 알렸고 승아도 축복을 보내왔기에 지유가 이현의 와이프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승아는 지유가 문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자 얼른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왔으면 손님이죠. 얼른 들어와요.”승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옅은 재스민 향이 풍겨왔다. 이현은 작년 생일에 지유에게 똑같은 향수를 선물했다.지유는 목구멍이 점점 메어와 숨쉬기가 힘들었고 다리가 천근만근인 듯 움직이기 힘들었다.여진숙은 지유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자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유야, 여기 서서 뭐 하는 거야? 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내와야지.”지유는 승아와 겨뤄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물었다.“어머님, 승아 씨가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예요?”여진숙이 답했다.“승아도 오랜만에 귀국했으니 한 번쯤은 나 보러 와야 할 거 아니니? 왜? 승아가 우리 집에 오면 안 돼? 현이도 뭐라 안 하는데 네가 뭐라고 시비야?”“그런 뜻 아니에요.”지유가 고개를 푹 숙였다.“아, 지유 언니였구나. 이현 오빠가 결혼사진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못 알아봤네요. 기분 상했다면 죄송해요.”지유는 환하게 웃는 승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허.’하긴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른 여자와 결혼한 사진을 보여줄 리가 없지.이때 여진숙이 호통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얼른 승아한테 차를 내주지 않고 뭐 해?”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놓은 주전자를 들었다.승아는 여진숙과 웃고 떠들며
“지유 언니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다면서 오기 싫다고 해서 내가 올 수밖에 없었어요.”승아는 얼른 손에 난 덴 자국을 일부러 보여주며 말했다.“오빠도 지유 언니 너무 미워하지 마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일을 그르친 건 아니죠?”지유가 회사의 서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이현은 안색이 너무 어두웠지만 승아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넥타이를 살짝 풀며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야.”이현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왔으니 앉아.”이현의 말에 승아는 내심 기뻤다. 그녀를 받아준다는 건 그래도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회의하러 간다면서요? 내가 방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이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말했다.“회의 시간 뒤로 30분 미루세요.”승아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에 인사도 없이 떠나서 혹시나 이현이 원망하면 어쩌지 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메꾸면 된다.소파에 앉은 승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해명하려 했다.“오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그때 내가 인사도 없이 떠난 거 잘못한 거 알아요. 근데 지금은 다시 돌아왔으니까...”“먼저 일 처리 좀 할게.”이현이 승아의 말을 잘라버렸다.승아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바빠 보이는 이현의 모습에 승아는 별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오빠 일 끝나는 거 기다릴게.”승아는 방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은 반 시간 중 얼마나 더 앉아 있어야 마주 보고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약간 이현의 속내를 맞히기 어려웠다.진호가 안으로 들어와서야 이현은 하던 일을 멈췄다.이현이 걸어오자 승아가 웃으며 말했다.“오빠, 나...”“손은 아직도 아파?”그녀의 상처를 발견했다는 건 그녀를 걱정한다는 걸까?승아가 잽싸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이제 안 아파요.”“응.”이현이 가볍게 대답하더니 진호의 손에서 한약을 받아왔다.“귀국해서 계속 속이 안 좋다며,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