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지유랑 만나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야. 다만 걱정이 돼서...”“걱정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희는 함께 버틸 거예요.”온지유는 법로의 말을 끊으며 그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여이현이 지금까지도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을 보고 속상했던 것이다.그녀는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 여이현은 그녀가 그를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진솔한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마음으로 미래를 계획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온지유는 여이현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꼭 잡았다. 법로는 당연히 온지유의 편에 서 있었다.“네가 결심했다면 난 전력을 다해 도울게. 앞으로는 둘 중 누구한테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아. 브람의 독을 풀 수 없는 건 여전하지만, 여이현 네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 봐.”법로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브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이현이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친자식이라고 해도 애초에 구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만했다.말을 마친 법로는 뒤돌아서 떠났다. 그는 여이현이 온지유에게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그가 떠난 후, 온지유는 여이현을 꼭 안으며 말했다.“이현 씨,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 같이 맞서자. 우리 세 식구, 행복하게 같이 있어야 해!”“내가 너랑 별이를 지킬게. 아버지 쪽 문제는 법로의 제안대로 할 거야.”여이현은 자신의 생각을 온지유에게 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처 말하기도 전에 온지유가 입을 열었다.“알고 있어. 하지만 난 이현 씨가 너무 걱정돼. 무슨 일을 할 때는 나랑 별이를 생각하면서 항상 안전에 주의해 줘.”온지유는 여이현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여이현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물론이지.”법로는 여이현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행동에 나섰다. 그는 먼저 브람에게 연락했다.“당신이 보낸 사람들 내가 확인했어요. 요즘 S국 상황이 많이 어려운 것 같던데, 우리 쪽에서 약재와 군수품을 무상으로 지원할
여이현은 브람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S국이 멸망하는 걸 눈 뜨고 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둘은 이렇게 대치하며 버틸 수 있는 한끝까지 버티기로 했다.여이현이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온지유는 매일 브람에게 삼시 세끼를 갖다주었다. 브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 온지유에게 차가운 태도로 빈정댔다.“네가 밥을 가져온다고 해서 내가 널 다르게 볼 것 같아?”온지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당신은 이현 씨의 친아버지잖아요. 저는 두 사람이 계속 이렇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최대한 대화로 해결하고 싶어요. 그게 안 되겠으면 식사나 하세요.”온지유는 죄를 지은 적도 없는 자신을 브람이 왜 적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브람은 온지유를 바라보았다. 온지유는 법로와 다르다. 법로는 실험에 몰두하며 온갖 나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온지유와 여이현이 겪었던 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이때 온지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지금 어떤 생각하는지 알아요. 당신이 선택한 약혼자가 이현 씨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브람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온지유에게 그 침묵이 곧 인정이었다.온지유는 미소 지었다.“저는 아직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저한테 잘해 주시고 많은 부분에서 변한 걸 아는 데도요. 저는 전쟁에서 너무 많은 걸 봤어요.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밀어내는 것도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브람은 여이현의 친아버지였다. 여이현이 죽기를 원했다면 애초에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온지유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브람을 완전히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말을 통해 이해하기를 바랐다. 결국 그는 한 나라의 수장이니까.브람은 온지유의 말에 크게 동요했다. 맞다, 그는 국가를 위해 여이현이 곁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이현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문득 브람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둘이 같이 있는 걸 허락할 수도 있어. 너도 이현이랑 같이 S국에 온다면.”여이현이 나서며 말했다.“저는
별이는 법로의 실험실에서 치료받고 있어서 안전했다. 하지만 여이현은 다르다.온지유는 지난 5년 동안 생활 기술과 방어술을 연습하며 여이현의 발목을 잡지 않겠다고 각오했다. 함께 생사를 하려는 마음으로 말이다.여이현은 온지유의 머리를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으며 말했다.“좋아.”셋째 날, 브람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여이현과 온지유는 시간 신경 쓸 것 없이 여유로웠지만 브람은 달랐다. S국을 노리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나라를 비울 수는 없었다.브람은 여이현에게 해독제를 건네주며 말했다.“네 형들은 그렇게 원하는 대통령 자리를 넌 아무렇지 않게 포기하는구나. 네 어머니와 아주 똑같아.”‘어머니?’여이현에게 이 단어는 매우 낯설었다.그가 어머니로 알고 있던 사람은 여진숙이었다. 그는 항상 여진숙이 자신에게 냉정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진숙이 통화하는 것을 듣고 자신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브람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조차 그는 친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 어머니란 존재는 아예 없었다.“그렇다면 저는 어머니를 닮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당신처럼 무정하고 싶지는 않거든요.”브람은 처음 여이현을 찾았을 때부터 해독제를 들고 협박했다. 협박의 조건은 온지유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었다.온지유를 살리기 위해 여이현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결국 타협했다. 나중에 그는 브람이 아이를 데려가려고 했던 것이 장차 그를 협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람에게는 모든 것이 이익일 뿐이었다.그리고 브람이 지정한 약혼자는 S국 4대 가문 중 하나로, 그가 장차 대통령이 됐을 때 도움을 받아 번창할 것이라는 계산에 기반한 것이었다.“저를 협박하려고 하지 마요. 저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거니까요. 혼사도 알아서 취소해요. 그리고 다시는 제 인생에 끼어들지 마요.”“네가 막 산다고 네 자식까지 막 살게 할 생각이야? 원래 살던 곳에
“차라리 군대를 보내 Y국을 공격해서 도련님을 데려오지 않겠습니까?”“약혼식을 올리지 않았다고 해도 도련님과 서현이가 약혼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도련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 서현이의 체면은 어쩐다는 말입니까?”...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브람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굳이 다른 적을 만들 필요는 없어요.”“저희에게는 무기가 있습니다. 저희가 겁을 낼 이유는 전혀 없어요. 최악의 상황에는 세계대전을 일으키면 됩니다.”“맞아요!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다른 나라들이 S국을 만만하게 볼 겁니다! 요즘 Y국조차 대놓고 무시하지 않습니까!”“제 생각에 모든 문제의 근원은 Y국의 마녀 때문입니다. 그 마녀만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브람은 어두운 안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여이현이 돌아오지 않으면 강서현은 우스갯거리가 되고 만다. 그리고 여이현이 돌아오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온지유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금방 돌아와서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다.브람은 생각에 잠겼다. 온지유를 죽이는 것은 괜찮은 방법이었지만 세계대전은 안 된다. 지금은 여러 나라가 살상력 높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때가 되면 싸움이 아닌 멸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일단은 물러가요. 이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브람이 결정 내리기도 전에 여이현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와 신무열은 상의 끝에 온지유의 경호를 요한에게 맡기기로 했다.온지유의 주변에는 수많은 경호원이 배치되었다. 그러고 나서도 여이현은 온지유에게 주의를 당부했다.“아버지가 널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암살 시도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온지유가 살아 있는 한 브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온지유는 지난번 화국의 군대에 납치당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여이현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바다에 던져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저번처럼 사람을 보낸다면
신무열은 온지유를 Y 국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온지유가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가 온지유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별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건강해지면 더욱 활기차게 자라면서 친구도 사귀고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룰 것이다. 별이는 이곳에서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온지유는 경성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이었다. 신무열의 생각을 그녀도 알고 있었기에 미리 설명해야 한다고 느꼈다. “법... 아버지에 대한 부분은 무열 씨에게 맡길게요. 저는 아이를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지유야, 뭐라고?” 신무열은 갑자기 흥분하며 온지유의 어깨를 꽉 잡았다. 온지유는 법로가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동안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온지유가 입을 열었다는 것은 곧 그녀가 아버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신무열이 ‘아버지’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조차 이렇게나 감격스러웠으니 친아버지에게는 얼마나 큰 기쁨일지 상상할 수 있었다. 온지유는 고개를 떨궜고 얼굴이 뜨거워지고 어색해졌다. 그녀는 그동안 목격했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법로가 보여준 변화와 진심 어린 헌신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별이의 몸 상태가 차츰 나아지는 것도 골수 기증자를 그렇게 빨리 찾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법로는 별이를 위해 진심을 다하고 있었다. 여이현이 말했듯이 온지유는 본능적으로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 십여 년 동안 서로 왕래도 없이 아무런 감정도 쌓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법로가 자신의 혈육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온지유의 침묵은 묵인이나 다름없었다. 신무열은 너무나 기뻐하며 말했다. “바로 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릴게. 지유야, 우리 가족이 함께 제대로 식사해 본 적이 없지 않니? 지금 바로 요리사에게 부탁해서 화국 음식을 잔뜩 준비하게 할게!” 신무열은 바로 요한에게 지시했다. “요한, 요리사들에게 진수성찬으로 준
온지유가 손목에 그 팔찌를 끼지 않았다면 그는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노승아가 그녀의 자리를 영원히 대신하게 될 수도 있었고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을 것이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에요.” 온지유는 조용히 말했다. 여이현이 그녀에게 했던 조언 덕분이기도 했고 그녀는 또 별이를 떠올렸다. 남들은 외할아버지가 있는데 별이만 없게 할 수는 없었다. 부모로서 여이현과 자신이 별이 곁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으니 이제 가족이 모두 모이기로 한 지금 별이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그 일들은 결코 지나간 것이 아니야. 나와 아버지는 평생 너에게 빚을 졌어. 지유야, 나는 너를 위한 친자 인정 연회를 열고 싶어.” 비록 주변의 근신들이 온지유가 큰 아가씨임을 알고 있었고 신무열 역시 모두에게 온지유를 존중하라고 지시했으나 Y 국 내에서 온지유의 신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번 김혜연이 온지유를 무례하게 대했던 일이 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왜 이 기회를 통해 온지유의 신분을 명확히 하지 않겠는가? 이를 통해 Y 국 사람 모두가 온지유의 신분을 알게 되어 감히 그녀를 무시하거나 상처 주려는 일이 없게 하자는 것이었다. 온지유는 서둘러 거절했다. “그런 거 필요 없어요...” 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신무열은 단호히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안 돼. 내 여동생에게도 마땅히 이런 중요한 순간이 필요해.” 신무열은 이미 확고한 결심을 한 상태였고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말을 해도 바꿀 수 없는 단단한 결의가 보였다. 결국 온지유는 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번 친자 인정 연회는 별이의 골수 이식 수술이 끝난 후에 열리기로 했다. 신무열은 당연히 허락했다. 그리고 법로는 온지유가 그를 아버지로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친자 인정 연회까지 수락했다는 소식에 한없는 기쁨에 휩싸였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는 신무열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묻기까지 했다.
온지유는 어머니로서 아이의 몸에 칼이 닿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수술실 못 들어가. 나... 이현 씨, 나 진짜 무서워...”“알아. 이해해. 하지만 지유야, 별이는 이미 충분히 고통을 겪었어. 만분의 일 확률이 별이한테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아버지의 기술을 믿어보자, 응?”“그래, 율아. 나도 있잖아. 내가 곁에서 도울게.”인명진은 그들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온지유가 신경 쓰였다. 그는 별이의 수술이 무사히 진행되도록 지켜줄 것이다.온지유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중독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명진은 그녀 곁에 늘 있어 주었다. 그건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했다.온지유는 여이현의 품에서 벗어나며 말했다.“나 잠깐 명진 씨랑 얘기하고 싶어.”“그럼 난 별이를 보러 갈게.”여이현은 온지유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원래는 온지유에게 입맞춤을 하고 싶었지만, 인명진이 있기에 그러지 않았다.그와 온지유에게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얼마든지 가까이할 수 있었다.인명진이 그들의 친구라는 것을 고려해, 여이현은 친구 앞에서 굳이 그들이 연인임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여이현이 자리를 뜨자, 온지유는 인명진을 바라봤다. 인명진은 온지유를 따라 함께 걸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온지유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명진 씨,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제 곁에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명진 씨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명진 씨 마음 이해해요. 하지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자만하는 건 아니고, 명진 씨를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명진 씨는 아직 젊잖아요. 혜주 언니조차도 짝을 찾았는데, 명진 씨가 평생 혼자일 수는 없지 않겠어요?”인명진은 온지유가 자신을 붙잡은 이유가 설득하기 위해서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그의 생각은 이랬다. 만약 남은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나았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는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이현은 지유를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