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지유랑 만나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야. 다만 걱정이 돼서...”“걱정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희는 함께 버틸 거예요.”온지유는 법로의 말을 끊으며 그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여이현이 지금까지도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을 보고 속상했던 것이다.그녀는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 여이현은 그녀가 그를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진솔한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마음으로 미래를 계획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온지유는 여이현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꼭 잡았다. 법로는 당연히 온지유의 편에 서 있었다.“네가 결심했다면 난 전력을 다해 도울게. 앞으로는 둘 중 누구한테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아. 브람의 독을 풀 수 없는 건 여전하지만, 여이현 네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 봐.”법로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브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이현이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친자식이라고 해도 애초에 구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만했다.말을 마친 법로는 뒤돌아서 떠났다. 그는 여이현이 온지유에게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그가 떠난 후, 온지유는 여이현을 꼭 안으며 말했다.“이현 씨,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 같이 맞서자. 우리 세 식구, 행복하게 같이 있어야 해!”“내가 너랑 별이를 지킬게. 아버지 쪽 문제는 법로의 제안대로 할 거야.”여이현은 자신의 생각을 온지유에게 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처 말하기도 전에 온지유가 입을 열었다.“알고 있어. 하지만 난 이현 씨가 너무 걱정돼. 무슨 일을 할 때는 나랑 별이를 생각하면서 항상 안전에 주의해 줘.”온지유는 여이현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여이현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물론이지.”법로는 여이현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행동에 나섰다. 그는 먼저 브람에게 연락했다.“당신이 보낸 사람들 내가 확인했어요. 요즘 S국 상황이 많이 어려운 것 같던데, 우리 쪽에서 약재와 군수품을 무상으로 지원할
여이현은 브람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S국이 멸망하는 걸 눈 뜨고 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둘은 이렇게 대치하며 버틸 수 있는 한끝까지 버티기로 했다.여이현이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온지유는 매일 브람에게 삼시 세끼를 갖다주었다. 브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 온지유에게 차가운 태도로 빈정댔다.“네가 밥을 가져온다고 해서 내가 널 다르게 볼 것 같아?”온지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당신은 이현 씨의 친아버지잖아요. 저는 두 사람이 계속 이렇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최대한 대화로 해결하고 싶어요. 그게 안 되겠으면 식사나 하세요.”온지유는 죄를 지은 적도 없는 자신을 브람이 왜 적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브람은 온지유를 바라보았다. 온지유는 법로와 다르다. 법로는 실험에 몰두하며 온갖 나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온지유와 여이현이 겪었던 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이때 온지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지금 어떤 생각하는지 알아요. 당신이 선택한 약혼자가 이현 씨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브람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온지유에게 그 침묵이 곧 인정이었다.온지유는 미소 지었다.“저는 아직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저한테 잘해 주시고 많은 부분에서 변한 걸 아는 데도요. 저는 전쟁에서 너무 많은 걸 봤어요.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밀어내는 것도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브람은 여이현의 친아버지였다. 여이현이 죽기를 원했다면 애초에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온지유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브람을 완전히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말을 통해 이해하기를 바랐다. 결국 그는 한 나라의 수장이니까.브람은 온지유의 말에 크게 동요했다. 맞다, 그는 국가를 위해 여이현이 곁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이현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문득 브람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둘이 같이 있는 걸 허락할 수도 있어. 너도 이현이랑 같이 S국에 온다면.”여이현이 나서며 말했다.“저는
별이는 법로의 실험실에서 치료받고 있어서 안전했다. 하지만 여이현은 다르다.온지유는 지난 5년 동안 생활 기술과 방어술을 연습하며 여이현의 발목을 잡지 않겠다고 각오했다. 함께 생사를 하려는 마음으로 말이다.여이현은 온지유의 머리를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으며 말했다.“좋아.”셋째 날, 브람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여이현과 온지유는 시간 신경 쓸 것 없이 여유로웠지만 브람은 달랐다. S국을 노리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나라를 비울 수는 없었다.브람은 여이현에게 해독제를 건네주며 말했다.“네 형들은 그렇게 원하는 대통령 자리를 넌 아무렇지 않게 포기하는구나. 네 어머니와 아주 똑같아.”‘어머니?’여이현에게 이 단어는 매우 낯설었다.그가 어머니로 알고 있던 사람은 여진숙이었다. 그는 항상 여진숙이 자신에게 냉정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진숙이 통화하는 것을 듣고 자신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브람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조차 그는 친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 어머니란 존재는 아예 없었다.“그렇다면 저는 어머니를 닮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당신처럼 무정하고 싶지는 않거든요.”브람은 처음 여이현을 찾았을 때부터 해독제를 들고 협박했다. 협박의 조건은 온지유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었다.온지유를 살리기 위해 여이현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결국 타협했다. 나중에 그는 브람이 아이를 데려가려고 했던 것이 장차 그를 협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람에게는 모든 것이 이익일 뿐이었다.그리고 브람이 지정한 약혼자는 S국 4대 가문 중 하나로, 그가 장차 대통령이 됐을 때 도움을 받아 번창할 것이라는 계산에 기반한 것이었다.“저를 협박하려고 하지 마요. 저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거니까요. 혼사도 알아서 취소해요. 그리고 다시는 제 인생에 끼어들지 마요.”“네가 막 산다고 네 자식까지 막 살게 할 생각이야? 원래 살던 곳에
“차라리 군대를 보내 Y국을 공격해서 도련님을 데려오지 않겠습니까?”“약혼식을 올리지 않았다고 해도 도련님과 서현이가 약혼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도련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 서현이의 체면은 어쩐다는 말입니까?”...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브람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굳이 다른 적을 만들 필요는 없어요.”“저희에게는 무기가 있습니다. 저희가 겁을 낼 이유는 전혀 없어요. 최악의 상황에는 세계대전을 일으키면 됩니다.”“맞아요!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다른 나라들이 S국을 만만하게 볼 겁니다! 요즘 Y국조차 대놓고 무시하지 않습니까!”“제 생각에 모든 문제의 근원은 Y국의 마녀 때문입니다. 그 마녀만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브람은 어두운 안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여이현이 돌아오지 않으면 강서현은 우스갯거리가 되고 만다. 그리고 여이현이 돌아오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온지유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금방 돌아와서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다.브람은 생각에 잠겼다. 온지유를 죽이는 것은 괜찮은 방법이었지만 세계대전은 안 된다. 지금은 여러 나라가 살상력 높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때가 되면 싸움이 아닌 멸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일단은 물러가요. 이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브람이 결정 내리기도 전에 여이현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와 신무열은 상의 끝에 온지유의 경호를 요한에게 맡기기로 했다.온지유의 주변에는 수많은 경호원이 배치되었다. 그러고 나서도 여이현은 온지유에게 주의를 당부했다.“아버지가 널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암살 시도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온지유가 살아 있는 한 브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온지유는 지난번 화국의 군대에 납치당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여이현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바다에 던져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저번처럼 사람을 보낸다면
신무열은 온지유를 Y 국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온지유가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가 온지유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별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건강해지면 더욱 활기차게 자라면서 친구도 사귀고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룰 것이다. 별이는 이곳에서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온지유는 경성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이었다. 신무열의 생각을 그녀도 알고 있었기에 미리 설명해야 한다고 느꼈다. “법... 아버지에 대한 부분은 무열 씨에게 맡길게요. 저는 아이를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지유야, 뭐라고?” 신무열은 갑자기 흥분하며 온지유의 어깨를 꽉 잡았다. 온지유는 법로가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동안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온지유가 입을 열었다는 것은 곧 그녀가 아버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신무열이 ‘아버지’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조차 이렇게나 감격스러웠으니 친아버지에게는 얼마나 큰 기쁨일지 상상할 수 있었다. 온지유는 고개를 떨궜고 얼굴이 뜨거워지고 어색해졌다. 그녀는 그동안 목격했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법로가 보여준 변화와 진심 어린 헌신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별이의 몸 상태가 차츰 나아지는 것도 골수 기증자를 그렇게 빨리 찾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법로는 별이를 위해 진심을 다하고 있었다. 여이현이 말했듯이 온지유는 본능적으로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 십여 년 동안 서로 왕래도 없이 아무런 감정도 쌓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법로가 자신의 혈육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온지유의 침묵은 묵인이나 다름없었다. 신무열은 너무나 기뻐하며 말했다. “바로 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릴게. 지유야, 우리 가족이 함께 제대로 식사해 본 적이 없지 않니? 지금 바로 요리사에게 부탁해서 화국 음식을 잔뜩 준비하게 할게!” 신무열은 바로 요한에게 지시했다. “요한, 요리사들에게 진수성찬으로 준
온지유가 손목에 그 팔찌를 끼지 않았다면 그는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노승아가 그녀의 자리를 영원히 대신하게 될 수도 있었고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을 것이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에요.” 온지유는 조용히 말했다. 여이현이 그녀에게 했던 조언 덕분이기도 했고 그녀는 또 별이를 떠올렸다. 남들은 외할아버지가 있는데 별이만 없게 할 수는 없었다. 부모로서 여이현과 자신이 별이 곁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으니 이제 가족이 모두 모이기로 한 지금 별이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그 일들은 결코 지나간 것이 아니야. 나와 아버지는 평생 너에게 빚을 졌어. 지유야, 나는 너를 위한 친자 인정 연회를 열고 싶어.” 비록 주변의 근신들이 온지유가 큰 아가씨임을 알고 있었고 신무열 역시 모두에게 온지유를 존중하라고 지시했으나 Y 국 내에서 온지유의 신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번 김혜연이 온지유를 무례하게 대했던 일이 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왜 이 기회를 통해 온지유의 신분을 명확히 하지 않겠는가? 이를 통해 Y 국 사람 모두가 온지유의 신분을 알게 되어 감히 그녀를 무시하거나 상처 주려는 일이 없게 하자는 것이었다. 온지유는 서둘러 거절했다. “그런 거 필요 없어요...” 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신무열은 단호히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안 돼. 내 여동생에게도 마땅히 이런 중요한 순간이 필요해.” 신무열은 이미 확고한 결심을 한 상태였고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말을 해도 바꿀 수 없는 단단한 결의가 보였다. 결국 온지유는 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번 친자 인정 연회는 별이의 골수 이식 수술이 끝난 후에 열리기로 했다. 신무열은 당연히 허락했다. 그리고 법로는 온지유가 그를 아버지로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친자 인정 연회까지 수락했다는 소식에 한없는 기쁨에 휩싸였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는 신무열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묻기까지 했다.
온지유는 어머니로서 아이의 몸에 칼이 닿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수술실 못 들어가. 나... 이현 씨, 나 진짜 무서워...”“알아. 이해해. 하지만 지유야, 별이는 이미 충분히 고통을 겪었어. 만분의 일 확률이 별이한테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아버지의 기술을 믿어보자, 응?”“그래, 율아. 나도 있잖아. 내가 곁에서 도울게.”인명진은 그들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온지유가 신경 쓰였다. 그는 별이의 수술이 무사히 진행되도록 지켜줄 것이다.온지유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중독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명진은 그녀 곁에 늘 있어 주었다. 그건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했다.온지유는 여이현의 품에서 벗어나며 말했다.“나 잠깐 명진 씨랑 얘기하고 싶어.”“그럼 난 별이를 보러 갈게.”여이현은 온지유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원래는 온지유에게 입맞춤을 하고 싶었지만, 인명진이 있기에 그러지 않았다.그와 온지유에게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얼마든지 가까이할 수 있었다.인명진이 그들의 친구라는 것을 고려해, 여이현은 친구 앞에서 굳이 그들이 연인임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여이현이 자리를 뜨자, 온지유는 인명진을 바라봤다. 인명진은 온지유를 따라 함께 걸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온지유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명진 씨,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제 곁에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명진 씨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명진 씨 마음 이해해요. 하지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자만하는 건 아니고, 명진 씨를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명진 씨는 아직 젊잖아요. 혜주 언니조차도 짝을 찾았는데, 명진 씨가 평생 혼자일 수는 없지 않겠어요?”인명진은 온지유가 자신을 붙잡은 이유가 설득하기 위해서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그의 생각은 이랬다. 만약 남은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나았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이 해준 소개팅이라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이것처럼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미안해요. 저는 명진 씨가 잘 살길 바라는 마음에...”“알아.”인명진은 부드럽게 웃으며 온지유의 말을 끊었다. 그의 부드러운 눈빛은 조용히 온지유에게 향해 있었다.“율아, 내가 한 번 안아봐도 될까?”이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별이의 골수 이식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회복하면, 신무열과 법로는 온지유를 위해 가족 상봉 파티를 준비할 예정이다. 온지유는 Y국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여이현과 함께 경성에 돌아갈 계획이었다.인명진은 이미 S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만약 의원을 닫고 경성에 돌아간다면 그가 온지유에 대한 마음이 모두에게 드러날 게 뻔했다.온지유와 여이현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리 생각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평판이 나빠지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온지유가 그런 오해를 받는 건 원치 않았다.온지유는 말없이 인명진을 껴안았다. 인명진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주며 말했다.“너랑 여이현 씨가 결혼식을 올리면 내가 축의금 많이 줄게. 여이현 씨는 친구가 많아서 내가 굳이 필요 없고, 너도 혜주랑 친구들이 있으니...”“명진 씨는 제 가족이에요.”온지유의 이 한마디는 인명진의 위치를 인정해 주는 말이었다.인명진은 온지유의 행복한 결말을 기쁘게 여겼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는 쓸쓸함이 자리 잡았다. 온지유와의 관계는 이제 여기까지였다....별이의 수술은 오전 9시로 예정되었다.그날은 날씨가 좋았다. 법로와 인명진은 함께 수술실로 들어갔다. 온지유, 여이현, 신무열, 강서현, 그리고 요한까지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심지어 하 장로까지 찾아왔다.하 장로는 온지유가 잘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예전에 노승아가 온지유를 해치려 했을 때 그녀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하 장로였다. 온지유와 여이현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하 장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하 장
“다른 사람들은 다 가까이 다가가도 되는데 왜 나만 안 돼? 지금 날 따돌리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가족처럼 지내? 애초에 날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던 거잖아!”소미는 말을 하면 할수록 괴로웠다.만약 온하윤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진다면 별이에게 남은 동생은 자신 한 명뿐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녀에게만 잘해줄 것이고 모든 사람들의 관심도 그녀에게만 쏟아질 것이니 온하윤 때문에 누군가 자신에게 짜증을 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약을 더 먹이는 거였는데.'‘그래, 어차피 약병은 내 가방에 있어. 그 나쁜 사람들이 그 약의 효과가 엄청나다고 했었어. 반병만 먹어도 어른 한 명은 거뜬히 죽일 수 있다고 했으니까 아기한테는 그 절반을 먹이면 되겠지.'‘기회를 봐서 조금만 더 먹이면 돼. 그러면 온하윤은 이 세상에서 완벽히 사라질 수 있어.'‘그렇게 되면 엄마도 볼 수 있고 별이 오빠도 온전히 내게만 잘해줄 거야.'“이상한 생각하지 마. 우린 가족이 맞아. 우리가 가족이니까 동생을 챙겨야 하는 거고 엄마도 배려해 줘야 하는 거야.”별이는 계속 설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설명해도 소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가족은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였다.그들은 한 가족이 되었다곤 하지만 온하윤은 유독 그녀만을 보면 울기 시작했다.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온하윤에게 다가가는 것은 괜찮았지만 유독 그녀만 다가갈 수 없었다. 가족이라면 차별하지 않는가.“어쨌든 지금은 혼자 놀고 있어. 난 엄마를 도와서 하윤이를 돌봐야 하니까. 하윤이가 나아지면 그때 같이 놀아줄게. 그때 가서 우리 같이 아쿠아리움도 가자.”“그럼 그때 가서 하윤이도 데리고 갈 거야?”소미가 물었다.별이는 곰곰이 생각했다.“아마 당연히 데리고 갈 것 같아.”“그럼 그때 오빠 동생이 방금처럼 울면서 칭얼대면?”“그럼 다음에 가면 되지.”그녀가 한 질문에 별이는 빠르게 대답했다.어쨌든 그들에겐 시간이 많았으니 급할 건 없었다.오늘 갈 수 없다면 내일,
“이미 열이 내렸다고 하지 않았어?”소미는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온하윤을 보며 순간 또 나쁜 마음을 먹게 되었다.‘온하윤은 이미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서 별이 오빠를 빼앗아 가는 거야?'분명 별이와 함께 놀고 싶었으나 별이는 그녀의 작은 요구도 들어주지 않았다.“응, 열은 내렸는데 그래도 좀 걱정돼서.”별이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보이었다. 어느새 소미를 보는 시선엔 짜증이 조금 섞여 있었다.“일단 혼자 놀고 있으라니까. 나 좀 그만 찾아와. 하윤이는 내 동생이니까 내가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별이는 전처럼 소미가 귀엽게 느껴지지 않았다.그의 친동생은 온하윤이지 소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미를 가족처럼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려고 했다.그런데 지금 온하윤은 아팠다. 언니로서 소미도 자신처럼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소미는 계속 자신을 찾아오며 놀아달라고 칭얼대고 있었다.“오빠?”소미는 당황하고 말았다.방금 별이는 있는 힘껏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처음이었다. 별이가 이렇게까지 짜증을 낸 적은.순식간에 눈에 눈물이 맺혔다.“미안해. 내가 오빠를 방해하고 있었어. 오빠한테 자꾸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면 안 되는 건데. 그럼 오빠랑 같이 하윤이를 돌봐도 돼?”“그래. 나도 미안해. 일부러 짜증을 내려던 건 아니었어. 그냥 난 지금 놀 기분이 아니었을 뿐이야.”별이는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온하윤은 아기였기에 아무것도 몰랐다. 그랬기에 소미의 행동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행동임을 몰랐다.하지만 아기들의 감은 정확했다.소미가 다가온 순산 조용하던 온하윤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소미가 다가갈수록 더 크게 울어댔다.“하윤아, 뚝. 괜찮아. 오빠가 옆에 있잖아.”별이가 얼른 온하윤을 토닥여주며 달랬다.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미가 이 자리에 있는 한 온하윤은 울음을 그칠 생각이 없었다.빠르게 집 안의 사람들도 아기의 울음소리에 모여들었다. 소미는 덩그러니 서서 어찌
심지어 밤에도 편히 눈을 감지 못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잠자리에서 일어나 온하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그녀는 아주 열심히 아기를 돌봤다. 온하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아기에게 분유를 제외한 다른 음식을 먹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일단 들어가 보세요.”여이현은 증거가 없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김명자를 붙들고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었다.만약 전부터 집 안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두었다면 아마 누가 온하윤을 해친 것인지 바로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김명자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비서가 그에게 연락했다.“대표님, 이미 찾아낸 자료를 전부 전송해 드리겠습니다.”비서가 찾은 자료엔 김명자의 가족 관계는 아주 단일했다.김명자에겐 딸이 한 명 있었다. 몇 년 전에 결혼해 남편과 함께 작은 마트를 운영하고 있었고 아이도 낳았다. 그녀에겐 빚도 없었을 뿐 아니라 통장에 거액의 돈이 오간 흔적도 없었다.업계에서 김명자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았다. 그녀를 베이비 시터로 고용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기에게 정성을 다한다고 말했고 친할머니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자료만 봐도 여이현은 김명자가 아주 좋은 베이비 시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온하윤은 대체 왜 갑자기 중독된 것일까?여이현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러다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온지유가 그에게 전화한 것이다. 그가 병원을 나서기 전보다 온지유의 목소리는 많이 평온해졌다.“이현 씨, 하윤이는 제때 치료받아서 지금 열도 내리고 있어. 많이 괜찮아졌어.”“응, 괜찮아졌다면 다행이야. 내가 지금 갈게.”여이현은 원래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별이의 모습이 떠올라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별이를 데리고 가기로.“소미야, 나랑 같이 하윤이 보러 가지 않을래?”집을 나서기 전 별이는 고개를 돌려 소미에게 물었다.소미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지금 여이현의 두 눈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다만 같은 공간에 있던 모든
온하윤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온지유는 피를 너무 많이 뽑은 탓에 안색이 창백했고 입술에는 혈색이 없었다.그녀는 힘겹게 의자의 손잡이에 의지하며 일어났다. 몸이 잠깐 휘청였지만 그래도 힘을 내서 병실 쪽으로 비틀대며 걸어가려 했다.“앉아서 쉬고 있어요. 저희가 다시 수혈해드릴게요. 지금 이 모습으로는 병실을 돌아가기는커녕 몇 발자국도 못가서 쓰러지게 되실 거예요.”간호사가 얼른 온지유의 팔을 잡으며 부축했다.온지유는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무리하지 않았다. 다시 의자에 앉아 쉬면서 따듯한 차를 마셨다. 어리럼증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는 딸의 병실로 갈 수 있었다.온하윤의 상태는 처음 병원으로 찾아왔을 때보다 마노이 나아져 있었다. 더는 고열에 시달리지 않았지만 열은 있었다.“아마 세 시간쯤 지나야 정상 체온으로 돌아올 거예요. 만약 그동안 체온이 다시 올라간다면 바로 절 불러주세요.”의사가 세심하게 말해주었다.온지유는 주현도의 말을 전부 머릿속에 새겨듣고 있었다.의사가 나간 후 그녀는 딸 옆에 앉아 손을 뻗어 이마를 쓸어주었다.“아가야, 얼른 나아야 해.”한편 여이현 쪽.시동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당장 김명자 씨 가정 상황까지 전부 조사해서 나한테 보내요.”집안에 사람이라곤 몇 없었다. 별이는 친동생을 해칠 리가 없었기에 남은 가능성은 김명자였다.소미는 아직 어렸고 별이와 비슷한 또래였기에 절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여이현이든 온지유든 누구든 소미가 그랬을 거라곤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빠르게 차는 집 앞에 세워졌다. 여이현은 문을 열고 내렸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별이가 초조한 얼굴로 맞이했다.“아빠, 하윤이는 어때요?”“괜찮아. 열이 내렸으니까 곧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별이 먼저 들어가서 자. 아빠는 이모님이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여이현은 별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그리고 그는 김명자를 뒷마당으로
“둘 다 아니에요. 최근에 구한 베이비 시터 이모님이 대신 돌봐주고 있었어요.”이렇게 말하니 온지유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의사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다음으로 의사는 들고 있던 검사 결과를 그녀에게 건넸다.“하윤이는 중독으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거예요. 다행히 제때 병원으로 데려와 치료할 수 있게 된 거고요. 만약 한 시간이라도 더 늦게 찾아왔다면 아마 정말로 다시는 못 보게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그 순간 온지유는 자신이 잘못 듣기를 바랐다.옆에 있던 여이현이 대신 검사 결과를 받았다. 하얀 종이엔 까만 글씨로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온하윤의 혈액에서 대량의 독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말이다.“전에 우리 병원에서 베이비 시터가 아기한테 약을 먹이고 찾아온 사례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이모님은 수면제를 먹인 거죠. 아기가 자꾸 우니까 수면제를 먹여서 온 하루 자게 만든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아기한테 독을 먹이다니. 이건 두 분 아기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계획한 거나 마찬가지예요.”의사는 너무도 황당했다.이렇게나 어린 아기를 죽여서 무슨 이득을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복수.“선생님, 얼른 제 딸 좀 치료해 주세요. 전 어떻게 된 일인지 가서 알아봐야겠어요.”온지유는 여이현을 보았다.두 사람은 함께 보낸 시간이 아주 길었기에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넌 하윤이 곁에 있어 줘. 내가 가서 알아보고 올게.”여이현은 그렇게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온지유는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작고 작은 몸에 가득 연결된 주삿바늘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그녀에게 대신 아파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정말이지 지금 당장 목숨이라도 바꿔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누군가 이 독을 어린 딸에게 아닌 자신에게 먹인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자신이 고통을 받는 건 얼마든지 괜찮았지만 어린 딸이 고통을 받으며 병원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엄마, 저도 갈래요.”별이는 온지유를 쫓아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소미는 무의식적으로 별이를 붙잡으려 했으나 너무도 빨리 달려가는 별이에 공기만 잡았다.현관까지 걸어온 온지유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별아, 엄마랑 아빠는 지금 정말로 정신이 없어서 별이까지 챙겨줄 수가 없어. 그러니까 별이는 집에 있어 줘. 집에는 이모님이 있으니까. 그래야 엄마랑 아빠도 마음 놓고 하윤이랑 병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비록 별이가 얌전하고 병원에 데리고 간다고 해도 칭얼대지 않으며 온하윤까지 돌봐줄 것이지만 병원엔 사람도 많고 그녀와 여이현은 별이에게 신경 써줄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만약 유괴범이라도 섞여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만약의 상황을 위해 아이를 집에 두고 나가는 것이 나았다.“네. 그럼 엄마, 하윤이가 나아지면 바로 별이한테도 말해줘야 해요.”별이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곤 걸음을 멈추었다. 집을 나서는 온지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속으로는 온하윤이 얼른 나아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오빠.”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소미는 인형을 들고 다가왔다.“우리 같이 소꿉놀이하자. 나는 얘 언니 할게, 오빠는 오빠 해.”“미안해, 소미야. 난 지금 소꿉놀이할 기분이 아니야.”별이는 고개를 저었다.지금 아픈 사람은 인형이 아니라 별이의 친동생이었다.그러니 소미와 함께 소꿉놀이할 마음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소미는 입술을 틀어 물며 손을 뻗어 별이의 팔을 잡고는 작게 물었다.“오빠, 오빠는 하윤이가 아주 아주 좋아?”“당연하지. 난 하윤이가 너무너무 좋아. 나한테 하윤이는 우리 엄마랑 아빠 다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고.”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별이가 동생을 잘 돌보게 된 것은 여이현과 온지유가 바쁜 이유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정말로 동생을 좋아했기 때문이다.소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한편 병원.온하윤이 너무도 어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들
소미는 얼른 약병을 숨기며 가방에 넣고는 태연하게 다시 바닥에 앉았다.“소미야, 나 왔어. 방금 뭐 하고 있었어?”별이는 소미의 곁으로 다가갔다. 소미와 함께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여하간에 소미는 6살 즈음 되는 어린아이였기에 표정 숨기는 것에 능하지 않았고 별이의 맑은 두 눈을 똑바로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조금 졸려. 자고 싶어.”“그럼 좀 자. 이모님은?”“내가 배고파서 타르트 만들어 달라고 했어. 근데 지금은 너무 졸리니까 일단 좀 잘게. 이따가 말해.”소미는 소파에서 담요를 끌어당기며 얼굴까지 푹 뒤집어썼다.별이가 온하윤을 엄청나게 좋아했으니 만약 자신이 약을 먹였다는 사실을 별이가 알게 된다면 별이는 더는 자신과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여하간에 별이의 부모님을 해치지 않았고 별이한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별이 동생은...아직 어리고 말도 못 하니 여이현과 온지유가 또 한 명 낳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빠르게 김명자가 갓 구운 타르트를 들고 돌아왔다.“소미가 방금 막 잠들었어요. 타르트는 여기에 놔주세요. 이따가 소미가 깨면 먹을 거예요.”별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행여나 소미가 깰까 봐 말이다.김명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별이는 혼자 책을 읽었다. 소미는 처음에 자는 척했지만, 나중엔 정말 자게 되었다.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져버렸다. 김명자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온하윤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본 순간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세상에! 하윤이가 열이 나고 있잖아?”“네? 제 동생이 아파요?!”별이는 고개를 확 들었다.다급했던 별이는 옆에 누가 잠들어있다는 사실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일어나 온하윤의 상황을 살펴보려 했다.“도련님, 일단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요. 내가 얼른 사장님이랑 사모님한테 가서 말하고 올게요.”김명자는 별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온지유는 소미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몰랐다. 그랬기에 종류별로 접시에 담아주었다.“먹어 봐, 입에 맞는 거 있으면 더 가지러 오면 되니까. 하지만 낭비하면 안 돼. 먹을 만큼 가져가야 해. 알았지?”“아주머니가 골라준 거라면 소미는 전부 좋아요.”소미는 정말로 음식을 낭비하지 않았다.온지유가 담아준 음식은 전부 먹어치웠고 수프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마셨다.배를 채운 후 여이현은 그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소미는 처음에 어색해하면서 편히 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몇 개의 놀이기구를 타고 난 뒤 신나게 놀았다.“오빠, 난 회전목마가 좋아. 우리 한 번 더 타면 안 돼?”“아까 내가 큰 말에 탔으니까 이번엔 네가 큰 말에 타. 내가 작은 말에 탈게.”별이는 소미의 손을 잡았다.두 아이는 아직 어렸기에 위험한 놀이기구는 탈 수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타도 위험하지 않은 놀이기구를 전부 타본 뒤 마지막엔 온지유와 여이현과 함께 관람차를 탔다.관람차가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 때 소미는 두 손을 꼭 모아 말았다.“관람차가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들었어요. 전 오빠랑 오빠 가족이랑 평생 같이 살고 싶어요.”“그럴 거야.”온지유는 아이를 보며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가족 구성원이 넷이면 아주 좋았다. 다섯이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놀이공원에서 나온 뒤 여이현은 호텔로 운전했다. 돌아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지나서 온하윤을 태우려고 했다.온하윤은 이틀 동안 아빠와 엄마, 오빠를 보지 못해 반가웠는지 작은 손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아주 좋아했다.“소미야, 봐봐. 하윤이는 내 여동생이야. 귀엽지?”별이는 소미를 데리고 온지유 옆에 서 있었다. 두 아이는 온지유가 안고 있는 온하윤을 보았다.소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온하윤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온하윤은 먹을 것인 줄 알고 혀를 내밀며 소미의 손을 깨물려고 했다.여이현은 얼른 소미를 안아 올렸다.“안 돼. 하윤이한테 손가락 물리면 안
“그래, 별이한테도 친구가 생겼으니 우리도 둘만 있을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여이현은 손가락으로 온지유의 손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따듯하면서도 간지러웠다.온지유는 붉어진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그러지 마. 아이들이 밖에 있다고. 만약 소리를 듣기라도 한다면 안 좋아.”별이는 아주 똑똑한 아이였다. 만약 별이가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온지유는 정말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도 민망했다.“이 호텔은 방음이 아주 잘 되어 있어. 더구나 꼬맹이들은 지금 티브이에 정신이 팔렸잖아. 그래도 걱정된다면 티브이 음량을 더 높이면 되지.”온지유가 반박의 말을 하기도 전에 여이현은 이미 손을 뻗어 리모컨을 들고 오더니 음량을 두 개 정도 높였다.그리고 몸을 돌려 그녀에게 키스했다.그의 리드에 온지유는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하늘에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두 사람의 몸은 떨어지게 되었다. 온지유는 티브이를 끈 뒤 녹초처럼 침대에 흐느적 누웠다.땀에 몸은 끈적거렸기에 너무도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움직이는 것이 귀찮았다.여이현은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따듯한 물 받아놓았다. 그리고 다시 나와 온지유를 안은 후 천천히 그 욕조 안으로 내려놓았다.온지유는 몸을 감싸는 따듯한 온기에 온몸이 나른해졌다.“지유야.”여이현이 나직하게 그녀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매혹적이었다.“나 오늘 너랑 같이 자면 안 될까?'온지유는 하마터면 그의 목소리에 홀려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다행히도 정신이 번쩍 들어 그의 요구를 거부했다.“안 돼. 꿈도 꾸지 마. 내일 아이들이랑 놀이공원도 가기로 했단 말이야.”이미 조금 전의 일로 힘이 전부 빠진 그녀였다. 만약 또 반복하게 된다면 내일은 아마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모른다.여이현은 점점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얼른 씻어. 밖에서 기다릴게.”그도 온지유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목욕을 마친 온지유는 샤워 가운을 입고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여이현은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