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지유는 가난해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줬고 음식과 생활용품을 전달했다. 온지유가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하는 것은 부대에 있는 모두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별이는 온지유의 손을 꼭 잡았고 긴장했는지 작은 손에 땀이 났다.“별이야, 옷이 마음에 들어? 이것도 한 번 봐봐.”온지유는 새로 산 옷을 두 벌 꺼내서 보여주었다. 전쟁 때문에 하얀 옷을 입으면 쉽게 더러워졌기에 여러 색깔이 섞인 옷을 사주었다. 시장이 멀어서 더 많은 것을 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며칠 후에 별이를 대사관에 데려다주고 별이의 신분이 밝혀지면 그때 별이에게 다른 것을 선물하겠다고 다짐했다.별이는 붉어진 두 눈으로 온지유를 바라보았고 옷에는 관심이 없었다. 온지유는 별이를 꼭 안아주면서 다독였다.“별이야, 이곳은 우리 화국 군인들이 지내는 곳이라 안전해. 다른 나라 군인처럼 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야. 내가 곁에 있어 줄 테니까 두려워하지 마. 자, 새 옷을 한 번 입어볼까?”온지유의 말에 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온지유는 별이를 안아 들어서 침대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앞으로는 천막 앞에서 날 기다리지 마. 천막을 나오면 위험하니까 무슨 소리가 나면 침대거나 책상 아래에 숨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오면 안 돼. 알겠지?”화국은 백 년 전처럼 나약하지 않았고 강해진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와 겨룰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나라들이 힘을 모아 화국을 상대한다면 형세가 기울게 될 것이다.욕심으로 가득 찬 다른 나라들은 언제든지 화국을 공격할 수 있었고 습격을 받으면 별이를 지킬 수 없었기에 어디에 숨어야 할지 알려주어야 했다. 별이는 온지유의 손을 꽉 붙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별이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보다 온지유를 못 보게 되는 것이 더 두려웠다. 별이는 말수가 적었고 다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기 싫어했지만 어쩐지 온지유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온지유의 품에 안겨서 온지유의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를 들으면
“온 기자님.”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온지유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군복을 입고 있는 부대의 군인이 천막 앞에 서 있었다. 온지유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무슨 일 있어요?”“Y 국에서 물자를 지원했는데 온 기자님이 직접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알겠어요.”5년 동안 온지유가 어디에 있든 Y 국에서는 물자를 지원했고 신무열과 법로 대신 다른 사람이 물자를 가져왔다. 그리고 매달 계좌에 거액의 돈이 들어왔다. Y 국에서 지원해 준 물자로 가난한 백성을 살릴 수 있었고 군인에게 더 좋은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기에 온지유는 거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무열과 법로를 만나지 않아도 되기에 큰 부담이 없었다. 온지유는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말했다.“아줌마가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줘.”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지유는 말하려고 하지 않는 별이를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만약 대사관에서 이 아이를 온지유에게 맡긴다면 인명진을 불러서 별이와 만나게 할 생각이었다. 어린아이가 말하지 않는 것은 자폐증 증상 중 하나일 수도 있었다. 자폐증이 맞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온지유는 군인과 함께 물자를 받으러 갔고 물자 리스트에 사인하려고 했다.“지유야.”갑자기 들려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온지유는 고개를 번뜩 들었다.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하얀 셔츠를 입고 미소를 지은 채 온지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5년 전처럼 여전히 우아하고 다정한 신무열이었다. 신무열이 Y 국을 통치하고 있었기에 내부의 전란을 다스리고 나라를 통일시켰다. 그러면서 화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오면서 물자를 지원했다. 온지유는 다 알고 있었지만 신무열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무열이 직접 물자를 가져온 것을 봐서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신무열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온지유가 먼저 물었다.“무슨 일로 오셨어요?”온지유는 물자 리스트에 사인하고는 같이 온 군인에게 전하면서 말했다.“먼저 가서 체크하세요.
“너도 종군 기자를 해서 알고 있겠지만 노석명은 죽지 않았어. 그 욕심 가득한 놈이 아직 살아있단 말이야. 그래서 너의 도움이 필요해.”신무열은 심호흡하고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온지유는 멈칫하더니 물었다.“내가 뭘 도와주면 되나요?”신무열이 직접 물자를 가지고 찾아왔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주어야 했다.“노승아가 신분을 위장해서 나를 찾아왔잖아. 그것 때문에 노석명이 하마터면 Y 국의 통치권을 손에 넣을 뻔했어. 네가 Y 국에 오면 노석명도 소식을 듣고 다시 찾아올 거야.”신무열은 말하면서 온지유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온지유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듣고 있다가 생각에 잠겼다. 신무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온지유를 보면서 거절당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온지유는 흔쾌히 동의했다.“그래요. 무열 씨랑 같이 갈게요.”온지유와 여이현이 Y 국에 있을 때, 온지유가 노승아한테 잡혀갔을 때 신무열이 나서서 온지유를 보호해 주었다. 그래서 신무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오늘 같이 가자.”신무열이 다급히 말했다.“며칠 기다려주면 안 돼요?”온지유는 곧바로 같이 떠날 수 있었지만 별이를 곁에 두고 갑자기 떠날 수 없었다. 신무열은 육감적으로 온지유한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신무열이 입술을 깨물더니 한참 후에야 물었다.“무슨 일 있어?”신무열은 온지유의 발목을 잡는 사람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때 온지유가 입을 열었다.“대사관에서 맡긴 아이가 있는데, 세 날 정도 돌봐줘야 해요.”온지유가 솔직하게 말하자 신무열은 깜짝 놀랐다. 온지유는 5년 동안 종군 기자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노인을 도와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래서 사람들이 온지유를 보살이라고 불렀다.“그럼 세 날 뒤에 데리러 올게.”“알겠어요.”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날 동안 온지유는 기사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별이는 곁에서 울지도 않고 징징대지도 않았다. 별이가 너무 조용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이현은 지유를 승
이에 지유가 화들짝 놀라며 하마터면 발을 삐끗할 뻔했다.중심을 잘 잡지 못한 지유는 그렇게 이현의 몸에 기댔다.이현은 지유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손으로 지유의 허리를 잡아줬다.뜨거운 체온이 전해지자 지유는 어젯밤 그가 저돌적으로 그녀를 덮치던 화면이 떠올랐다.지유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고개를 들어 이현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 봤다.이현의 눈동자는 매우 진지했고 그 속엔 질문과 의혹도 담겨 있었다. 눈빛은 지유를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지유는 심장이 벌렁거렸다.이현과 더는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아까 나간 그 여자라고 생각했을 때도 이현은 불같이 화를 냈는데 여기서 만약 지유가 자신이었음을 인정한다면 후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억울했다.만약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라는 걸 이현이 알게 된다면 결혼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그래도 지유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게 겁나 고개를 숙인 채로 물어봤다.“그건 왜 묻는 거예요?”지유는 사실 남몰래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이현이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너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지유는 멈칫하더니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어쩌면 이현은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가 아니길 더 바랄지도 모른다. 계약 결혼일뿐이니 말이다.게다가 며칠만 더 지나면 계약도 끝나간다순간 이현이 지유의 손을 힘껏 낚아챘다.지유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이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심사하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지유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발버둥 치며 손을 빼려 했지만 이현이 지유를 전신 거울 앞으로 바짝 몰아갔다.“뭐 하는 거예요?”지유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긴장과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너 정말 사무실에서 잠들었어?”지유는 칠흑같이 어두운 이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혹시나 들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3년 전, 결혼한 첫날 밤, 지유는
고개를 들어보니 승아가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국자를 들고 있었다.지유를 본 승아는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인사했다.“아주머니 손님이에요? 마침 삼계탕을 조금 더 끓였는데 같이 와서 먹어볼래요?”승아의 느긋한 태도는 마치 그녀가 이곳의 안주인인 것 같았다.오히려 지유가 멀리서 찾아온 손님처럼 보였다.하긴 얼마 지나지 않아 지유는 곧 이 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다.지유는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 미간이 찌푸려졌다.이현과 결혼할 때 모든 사람에게 알렸고 승아도 축복을 보내왔기에 지유가 이현의 와이프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승아는 지유가 문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자 얼른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왔으면 손님이죠. 얼른 들어와요.”승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옅은 재스민 향이 풍겨왔다. 이현은 작년 생일에 지유에게 똑같은 향수를 선물했다.지유는 목구멍이 점점 메어와 숨쉬기가 힘들었고 다리가 천근만근인 듯 움직이기 힘들었다.여진숙은 지유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자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유야, 여기 서서 뭐 하는 거야? 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내와야지.”지유는 승아와 겨뤄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물었다.“어머님, 승아 씨가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예요?”여진숙이 답했다.“승아도 오랜만에 귀국했으니 한 번쯤은 나 보러 와야 할 거 아니니? 왜? 승아가 우리 집에 오면 안 돼? 현이도 뭐라 안 하는데 네가 뭐라고 시비야?”“그런 뜻 아니에요.”지유가 고개를 푹 숙였다.“아, 지유 언니였구나. 이현 오빠가 결혼사진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못 알아봤네요. 기분 상했다면 죄송해요.”지유는 환하게 웃는 승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허.’하긴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른 여자와 결혼한 사진을 보여줄 리가 없지.이때 여진숙이 호통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얼른 승아한테 차를 내주지 않고 뭐 해?”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놓은 주전자를 들었다.승아는 여진숙과 웃고 떠들며
“지유 언니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다면서 오기 싫다고 해서 내가 올 수밖에 없었어요.”승아는 얼른 손에 난 덴 자국을 일부러 보여주며 말했다.“오빠도 지유 언니 너무 미워하지 마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일을 그르친 건 아니죠?”지유가 회사의 서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이현은 안색이 너무 어두웠지만 승아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넥타이를 살짝 풀며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야.”이현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왔으니 앉아.”이현의 말에 승아는 내심 기뻤다. 그녀를 받아준다는 건 그래도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회의하러 간다면서요? 내가 방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이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말했다.“회의 시간 뒤로 30분 미루세요.”승아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에 인사도 없이 떠나서 혹시나 이현이 원망하면 어쩌지 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메꾸면 된다.소파에 앉은 승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해명하려 했다.“오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그때 내가 인사도 없이 떠난 거 잘못한 거 알아요. 근데 지금은 다시 돌아왔으니까...”“먼저 일 처리 좀 할게.”이현이 승아의 말을 잘라버렸다.승아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바빠 보이는 이현의 모습에 승아는 별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오빠 일 끝나는 거 기다릴게.”승아는 방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은 반 시간 중 얼마나 더 앉아 있어야 마주 보고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약간 이현의 속내를 맞히기 어려웠다.진호가 안으로 들어와서야 이현은 하던 일을 멈췄다.이현이 걸어오자 승아가 웃으며 말했다.“오빠, 나...”“손은 아직도 아파?”그녀의 상처를 발견했다는 건 그녀를 걱정한다는 걸까?승아가 잽싸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이제 안 아파요.”“응.”이현이 가볍게 대답하더니 진호의 손에서 한약을 받아왔다.“귀국해서 계속 속이 안 좋다며, 목
지유는 걸음을 멈췄다. 이현과는 부부 관계에서 오는 조화로움보다는 위계질서에서 오는 거리감이 더 컸다.“대표님, 지시 사항 있으신가요?”이현이 고개를 돌리더니 거리감이 느껴지는 지유의 얼굴을 보며 명령조로 말했다.“앉아.”지유는 이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이현이 지유 쪽으로 걸어갔다.지유는 자신과 가까워지는 이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순간 이현이 어딘가 달라 보였고 이에 지유는 숨이 가빠졌다.긴장하기도 하면서 어딘가 이상했다.그녀가 딱히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이현이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현의 따듯한 손이 지유의 몸에 닿자 그녀는 마치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이현이 너무 꽉 잡고 있어 빼려고 해도 뺄 수가 없었다. 이현은 지유를 확 끌어당기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손 다쳤잖아, 몰랐어?”이현의 관심이 지유는 퍽 의외였다.“난... 괜찮아요.”“수포까지 났어.”이현이 물었다.“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거야?”이현이 큰 손으로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지유는 그런 이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유는 이현의 손을 잡고 그가 따듯함으로 그녀를 이끌어주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지유가 포기하려 할 때마다 이현은 다시 희망을 주었다.“큰일 아니에요. 며칠이면 나아요.”지유가 대답했다.“연고 좀 가져오라고 할게.”지유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이제 좀 보상받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유는 이성적이었다. 이현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이현은 연고를 가져와 그녀의 상처에 발라줬다. 지유는 그녀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이는 이현에 혹시 자신도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상처가 나니 그래도 눈길을 주는 이현이었다.7년이나 옆을 지키면서 극진하게 챙겨주기보다 차라리 조그마한 상처를 내는 게 그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더 낫겠다는 우스운 생각까지 들었다.다친 게 아깝지 않았다.하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