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채린이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를 위해서 집안의 돈을 다 쓴 탓에 제 대학 등록금도 부모님이 여기저기서 빌린 돈으로 내고 있다고요.”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들의 거짓말은 점점 더 켜졌다. 더는 주위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배은망덕한 년!”“뻔뻔한 더러운 년!”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온지유를 향해 달걀을 던졌고 그녀의 앞에 툭 떨어졌다.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쪽에는 이미 몇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손에는 달걀과 밀가루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온지유를 향해 던졌다.온지유는 급히 손으로 막았다. 보안 요원도 얼른 그들에게 다가가 막아섰다.“뭘 막아요! 애초에 뻔뻔하고 사악한 사람인데! 남의 가정을 파탄 낸 것도 모자라 비서인 척 누군가의 내연녀 짓이나 하고 있고 말이에요!”그녀를 향해 달걀을 던진 사람이 말했다.그녀의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어딘가 준비된 사람 같기도 했다.장수희가 찾아오고 사람들이 달걀을 던진다는 건 꼭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꾸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장수희를 보았다. 기세등등한 것이 그녀가 굴복하는 모습이 보고 싶은 듯했고 여론의 힘을 이기지 못해 얌전히 자신들에게 돈을 주기를 바란 것 같았다.기자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물었다.“온지유 씨, 저분들의 말이 사실인가요? 계속 누군가의 내연녀로 살아오면서 남의 가정을 파탄을 냈나요?”온지유는 화가 치밀었다. 기자들이면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기삿거리를 위해 막무가내로 취채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녀는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만약 여기서 이성을 잃고 화를 냈다간 저들의 말이 사실로 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당장 저 사람들 잡으세요!”온지유가 차갑게 말했다.“카메라에 찍혔으니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할 겁니다.”“네, 온 비서님!”보안 요원들은 사람들을 둘러쌌다.온지유가 강경하게 나오자 그들은 더는 소란을 피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다시 마음을 다잡은 온지유는 기자를 보면서 네티즌들
멀지 않은 곳에서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미리가 온경준을 태운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 그녀도 역시나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온지유는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아빠,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장수희는 계속 자신의 말이 맞는다고 억지를 부리면 될 줄 알았지만 온경준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온경준을 본 순간 장수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아주버님.”온경준은 잔뜩 엄숙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감히 내 딸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제수씨, 예전에는 그냥 속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본성은 나쁘지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속이 썩은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기자들을 불러 내 딸을 모함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죠!”“아주버님... 그게 아니라... 전 별다른 말 하지 않았어요. 그냥 지유가 숙모인 저를 공경하지 않는다고만 말했을 뿐이에요!”온경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더는 그녀의 변명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그는 결판을 내리기로 했다.“우리 지유를 대체 뭐라고 생각한 거죠?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런 수단을 쓰다니요!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알리고 싶어 하니 그럼 밝혀도 되겠네요. 제수씨네 가족들이 그간 얼마나 부도덕한 짓을 했는지!”장수희는 그제야 두려움을 느끼며 울면서 말했다.“아주버님. 아주버님 안 돼요. 아주버님은 재준 씨 형이잖아요. 동생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러시면 안 되잖아요!”정미리는 불쌍한 척 연기하는 정수희를 더는 참아 줄 수가 없었다.“동서, 이건 동서가 응당 받아야 하는 대가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해야 우리 딸이 얼마나 억울한지 밝힐 수 있지 않겠어?”판이 뒤바뀌어졌다.장수희 가족은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형으로서 온경준은 최대한 온재준의 가족을 도와주었으나 그들은 도와준 은혜도 모르고 그의 딸을 모함하고 있었다.상황을 지켜보던 네티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씨X, 반전이 있었어. 뻔뻔한 건 저 모녀였다고! 모두 앞에
온지유도 예상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그게 누군데요?”장수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이름은 몰라. 이름을 물어볼 새가 없었거든. 그냥 아주 젊은 아가씨였어. 내가 정말 미쳤지, 낯선 사람의 말을 철썩 믿었다니!”낯선 사람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더 시끄럽게 곡소리를 내었다.그러나 온채린은 네티즌의 악플 공격을 견뎌낼 수가 없었는지 창백해진 안색으로 울면서 말했다.“어떻게 해요. 전 이제 끝났어요. 인턴은커녕 아무런 회사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언니, 제발 살려주세요. 여진에서 인턴으로 취직 안 해도 돼요. 그러니까 제발 아니라고만 말해주세요.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취직해요!”모녀는 온지유에게 다가가 빌었다.“지유야, 내가 이렇게 빌게. 네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한 번만 봐줘. 내가 이렇게 네 앞에 무릎을 꿇고 빌게!”장수희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딸을 위해 어떻게든 용서를 받으려고 했다.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수록 그녀에게 잔인하게 돌아왔다.정미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일으켰다.“무릎 꿇을 필요도 없어. 괜히 우리가 괴롭힌 거 같잖아. 잊지 마, 모든 악행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사람들 속에서 구경하던 주소영은 상황이 역전하고 온지유가 뭔가를 눈치채자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렸다.온지유가 이렇게나 운 좋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런 상황도 뒤집을 수 있다니 말이다.그녀는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왔다.기자도 자신이 했던 질문이 공격스러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장수희 모녀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자 그제야 온지유에게 말했다.“온지유 씨, 방금은 죄송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질문을 했네요. 하지만 이미 방송에 나갔고 저분들이 온지유 씨를 모함한 건 선을 넘은 행동이니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하기를 바랍니다.”그러면서 기자는 떠보듯 말을 보
그 뒷모습은 누군가와 아주 닮아있었다. 그래도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기에 온지유는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려고 했다.이때 한 사람이 그녀의 손목을 잡으면서 말했다.“지유야, 숙모가 잘못했어. 앞으로 다시는 너한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게.”장수희는 경찰서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자칫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온지유의 용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이거 놔요.”온지유는 마음이 급했다. 익숙한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있는 힘껏 벗어나려고 했다.하지만 장수희의 손아귀 힘은 아주 강했다. 그녀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내가 밉다고 해도 네 작은아버지한테 이러면 안 되지. 너도 온씨 성을 가졌잖니. 나랑 채린이 감옥에 가면 네 작은아버지가 어떻게 살겠어?”온채린은 급기야 무릎까지 털썩 꿇었다.“언니! 제발 용서해 줘요. 저 아직 졸업증도 받지 못했어요. 감옥에 다녀오면 누가 저를 직원으로 채용하겠어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언니, 우리 친척이잖아요.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요, 네?”“나도 이렇게 무릎을 꿇으마, 지유야.”두 사람은 온지유를 잡아당기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큰길 건너편에서 뒷모습은 점점 작아졌다. 차량이 지나가면서 일어난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닿아 찢길 듯이 아팠다.온지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놔요! 당장 놔요!”끼익!“지유야!”두 사람이 밀고 당기는 가운데,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던 온지유는 그대로 밀려났다. 지나가던 차량이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할 정도의 거리에서 말이다.빠르게 달려오는 차량을 보고 온지유는 죽음을 예감했다. 이때 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힘껏 옆으로 끌어당겼다.두 사람은 바닥에서 몇 바퀴를 굴렀는지 모른다. 다행히 온지유는 아픈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러나 남자의 신음을 듣고 정신을 화들짝 차렸다.그녀를 안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여이현이었다. 이곳에서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
온지유는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못이 하도 깊게 박혀서 수술해야만 뺄 수가 있었다.‘장기가 손상된 건 아니겠지?’이때 뒤늦게 도착한 정미리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이현이는 어떻게 됐니?”“아직 수술실에 있어요.”“내가 별꼴을 다 보는구나. 장수희 그년이 하다 하다 내 사위까지 건드리네.”온경준은 말없이 곁에 묵묵히 서 있었다.잠시 후 수술을 끝낸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선생님, 수술은 어떻게 됐어요?”“못은 안전하게 빼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기를 건드리지 않아서 그냥 며칠 쉬다 가시면 됩니다.”사람들은 이제야 시름을 놓았다.온지유도 마찬가지다. 여이현이 다친 데 그녀는 자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마취가 깨지 않은 여이현은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 온지유는 병실 밖에 앉아서 조금 전의 장면을 되새겼다.때로 여이현은 정말 그녀에게 잘해줬다. 하지만 또 때로 없던 정도 사라질 만큼 매정했다.정미리는 그녀가 여이현을 걱정하는 줄 알고 위로했다.“지유야, 이현이는 무사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정미리와 온경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병원에는 제가 있을게요. 두 분 피곤할 텐데 먼저 돌아가요.”온경준은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여이현은 온지유를 구해주려다가 다친 것이기 때문이다.“이현이 깨어나는 건 보고 가야지.”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0분 후, 여진숙이 황급히 달려오면서 물었다.“이현이는 어떻게 됐니? 내 아들 어떻게 됐어?”여진숙은 병원 입구에서부터 길을 물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내 아들 어떻게 됐냐고!”그녀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그러다가 병실에 누워있는 여이현을 발견했다.이때 정미리가 나서서 말했다.“이현이는 아직 자고 있어요. 의사가 큰 문제 없다고 했으니까...”짝!여진숙은 이를 악물고 온지유의 뺨을 때렸다. 넋이 나간 온지유는 멍하니 여진숙을 바라봤다.“또 너니?”여진숙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온지유를
여진숙은 콧방귀를 뀌었다.“나도 아들이 걱정돼서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아들이 당신 딸년이랑 결혼해서 무슨 얻은 게 있는데요. 하루 종일 도와주다가 이렇게 손해만 보잖아요.”이렇게 말하던 여진숙은 또 피식 웃으며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지금 누구 앞에서 사이좋은 척 지X 떠는 거예요? 우리 집안에 20억 원을 받고 딸년을 팔 때는 아주 신나 보이더군요.”“됐어요!”온지유는 차가운 표정으로 외쳤다. 여진숙이 20억 원 때문에 그녀를 무시하는 건 똑똑히 알았다. 아니, 그 20억 원이 없더라도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여호산의 제안에 응한 이유 중 20억 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여이현을 좋아하는 마음이었다.여호산도 그것을 보아냈기 때문에 결혼 얘기를 꺼냈을 것이다. 만약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지난 시간 동안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여이현에게 준 가치는 20억 원을 진작 초과했다. 그러므로 여진숙의 모욕을 가만히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저를 욕보이는 건 상관없지만, 가족까지 건드리지는 마시죠.”“하! 그 대단한 가족은 왜 너 빚을 갚아주지 않았다니? 응?”정미리는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여진숙의 비웃음은 들어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우리가 돈을 보고 애들을 결혼시켰다는 거예요?”“지금 충분히 명확하게 말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집안에 돈이 많다 보니 다들 기어오르려고 하더군요.”여진숙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온지유 일가가 너무 혐오스러웠다.“저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돈이고 뭐고, 지유 행복이 가장 중요해요!”“행복이요? 그럼 댁 딸년이 행복한지 물어본 적 있어요? 내 아들은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댁 딸년만 아니었어도 진작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했을 거예요.”정미리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여진숙이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것이다.온경준은 오래도록 침묵했다. 이런 말
온경준은 오늘에야 여진숙의 입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물었다.“지유야, 너 정말 돈 때문에 결혼한 거니?”온지유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그게...”“사돈어른이 좋은 사람인 건 인정해. 하지만 실패한 결혼을 억지로 유지할 필요는 없어. 빚진 돈은 우리가 어떻게든 갚을게.”정미리도 할 말이 없었다. 좋은 사윗감을 찾아서 딸을 시집보낸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이런 꼴이 났으니 말이다.이제 이혼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결혼은 파국에 다다랐다. 더 이상 고집부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온지유도 억지로 버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알았어요.”여이현은 온지유를 바라봤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표정이었다.온지유는 솔직하게 말했다.“더 이상 숨길 것도 없겠네요. 저희는 3년의 기한을 두고 계약 결혼을 했어요. 20억 원에 3년을 저당 잡힌 셈이죠.”이 말을 하는 동안 온지유의 눈가에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애써 참으며 계속 말했다.“3년이 지나면 저희는 완전히 남남이 되는 거예요.”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미리도 지금껏 몰랐던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뭐? 둘이 3년만 결혼한다고?”“네, 딱 3년뿐이에요. 그러니까 더 이상 싸울 필요 없어요. 결국엔 이혼할 거니까요. 어떤 문제가 있던 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예요.”여진숙은 계약에 대해 알게 된 후 더 할 말이 없어졌다.여이현의 안색은 아주 차가웠다. 주먹을 꽉 움켜쥔 그는 온지유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것 같았다.“콜록콜록...”그는 기침을 참지 못했다. 여진숙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현아, 괜찮니? 빨리 들어가서 누워. 수술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여이현은 입술을 꽉 다물며 여진숙의 부축을 거부했다.어찌 됐든 여이현의 도움에 고마웠던 온경준은 불쑥 끼어들어서 말했다.“이현아, 오늘은 우리 지유를 구해줘서 고맙다.”아버지로서 그녀는 당연히 딸을 보호
양쪽 집안 사람들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여진숙은 주소영을 바라보며 충격에 빠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 기다리다가 다시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 내 아들의 아이를 가졌다고?”주소영은 마음이 불안했다. 이런 말을 꺼낸 결과를 몰랐기 때문이다.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저... 대표님의 아이를 가졌어요.”이번에는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 처음 만난 여자가 여이현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말이다.온경준과 정미리는 잠시 넋이 나갔다가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엇보다도 여이현이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온지유가 그동안 여씨 가문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반대로 여진숙은 매우 기뻤다. 그녀의 입장에서 상대가 누구인지는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여씨 가문의 후손을 낳아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게 정말이니?”여진숙은 급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임신한 지는 몇 달 되었니?”여진숙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주소영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일이 생각보다 훨씬 쉽겠는데...?’“그게... 한 달 좀 넘었어요.”여진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아직 티가 안 나겠구나. 초기에는 무조건 조심해야 해. 이현이도 참...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해줬어야지.”여진숙은 주소영의 손을 잡으며 친절하게 대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이현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을 말해서 뭐 해요.”여진숙은 주소영이 온지유를 난처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아이까지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이현아, 자신의 명예를 걸고 이런 거짓말을 할 여자는 없단다. 이 아가씨가 누군지 소개해 봐.”여이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모든 증거가 주소영이 그의 방에 들어갔다고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직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는 여러 번 조사를 지시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CCTV 기록 탓에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더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이런 상황도 당연한 것 같았다. 사이코패스와 정상적인 사람이 어떻게 서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만약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둘 다 사이코패스인 것이다.연이은 며칠 동안 여울은 집에만 박혀 쉬고 있었다. 그간 최지후가 몇 번 다녀오면서 꽃과 먹을 것을 사다주기도 했고 그녀를 애지중지하듯 자꾸만 음식을 그녀의 앞까지 대령해 주었다.“여울아, 이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꿀 꽈배기야. 이제 막 나온 걸 사 왔으니까 따듯할 때 얼른 먹어 봐.”“배고프지 않아요.”여울은 그가 사 온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의 얼굴만 봐도 토가 나올 것 같았지만 약속한 일은 해야 했던지라 역겨운 마음을 꾹 참고 최지후의 곁에 있었다.“정말로 배가 고프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내가 사 온 것들을 먹기 싫은 거야.”최지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와 같은 사이코패스에게 있어 이미 한번 손찌검을 했으니 두 번째는 더 쉽게 손찌검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꽈배기를 테이블 위에 쾅 내려놓았다.“그래. 지난번에 확실히 너한테 손찌검을 했어. 하지만 그건 네가 날 오해하게 만들어서 그런 거잖아. 그 후에 바로 사과도 하고 직접 약도 발라주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설마 고작 그 한 번으로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라도 한 거야?”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떤 사이든 간에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에서도 사소한 일로 손찌검을 하는 일은 없었고 최지후처럼 심하게 폭행하는 일도 없었다.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었다. 분명 그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로 그녀를 폭행한 것이면서 그는 전부 그녀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난 화난 게 아니에요. 정말로 입맛이 없어서 그래요.”여울은 먼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직도 소화가 안 됐어요. 지금 꽈배기를 먹기엔 너무 느끼해요.”“하지만 내가 널 위해 사 왔다고. 조금이라도 먹어 봐. 맛만이라도 보라고. 착하지. 얼른 먹어.”
만약 최지후가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최주하도 여울을 최지후에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런 말들은 여울은 그저 속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절대 입 밖으로 내서도 안 되었다. 오래 살고 싶으면 말이다.그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정말로 동창과 문자 보내고 있었어요. 믿지 못하겠으면 직접 확인해 봐도 돼요. 여기 제 핸드폰이 있으니까요.”여하간에 그녀와 최주하의 문자 기록은 제때 삭제했고 위장용 문자도 만들었기에 최지후가 정말로 그녀의 핸드폰을 본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그래? 근데 왜 난 아직도 네가 날 속이고 있는 것 같지? 여자들은 다 똑같아. 다들 내 앞에서 입만 열면 거짓말이지. 사기꾼들.”최지후는 계속 손을 움직였고 방안에는 여울의 비명만 울려 퍼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최지후는 드디어 손을 멈추었다. 여울의 안색은 창백했고 몸 곳곳에 살 까진 곳과 멍으로 가득했다.“내가 못 해준 게 뭐지? 분명 약속했었잖아. 너한테 손을 대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약속을 먼저 어긴 건 너야.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라고!”최지후는 천천히 몸을 굽혀 그녀를 보았다. 여울은 무의식적으로 그가 또 손찌검하려는 줄 알고 움찔거렸다. 이곳에서 얼른 도망치고 싶었지만 지금 그녀의 상태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아프지? 기다려. 내가 약 가져올 테니까. 내가 치료해주지.”말을 마친 최지후는 그대로 방에서 나가서 빠르게 약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약상자에는 약이 가득했고 연고는 물론 소독약도 있었다. 그리고 붕대와 거즈도 가득했다. 그는 여울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했지만 여울은 그런 그를 노려보며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절 죽일 뻔해 놓고 지금 약 발라주려는 거예요? 애초에 지후 씨를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최지후는 역시나 미친놈이었고 그녀는 그런 미친놈을 믿고 있었다. 지금은 다시 정상적인 인간처럼 보였지만 언제 또 돌변하여 그녀를 죽이려 들지 모른다.“여울, 왜 나를 믿지 않는 거지? 방금은 네가 내 화를 돋워서 그런
그 순간 발걸음 소리가 들려와 여울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최지후가 그녀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고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전에 그가 했던 행동이 떠오른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덜덜 떨고 말았고 최대한 태연한 척하려고 애를 썼다.“누구와 문자를 주고받는 거지?”최지후가 점점 더 그녀에게 다가가고 두 사람의 거리는 손바닥 한 뼘 정도만 남게 되었을 때 그는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올렸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있었던지라 느껴지는 통증에 여울은 미간을 구기고 말았다.“딱히 특별한 사람은 아니에요. 제 동창이 며칠 전에 저와 마주치고는 다음에 만나자고 문자 보내고 있었던 거예요.”“그래.”그러자 최지후의 목소리가 온화해졌다. 만약 두 사람 사이를 모르는 사람이 보았더라면 정말로 그의 성격이 좋은 줄 알았겠지만 그와 함께 지내고 있는 여울은 그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 순간 그는 손을 올려 그녀의 머리채를 확 잡아당겼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여울은 겨우 다시 중심을 잡았다. 머리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지금 날 속이고 있는 거지? 여울,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지? 내 말을 안 들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텐데.”최지후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안방까지 끌려들어 가게 되었고 문을 닫고 나서야 그는 손을 내려놓았다.여울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얼른 이곳을 도망치고 싶었지만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는 최지후가 눈앞에 있었다.“내가 널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 네가 좋아할지는 모르겠네?”최지후는 말을 하면서 옆에 있던 상자를 들고 왔다. 상자를 열자 안에 있는 물건이 보였고 여러 가지 도구가 담겨 있었다. 여울은 보자마자 몸이 심하게 떨려왔다. 누가 사람을 고문하는 도구를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물으며 대답을 들으려 했
“전 지후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가요. 제가 요즘 얌전하게 잘 지내고 있었잖아요. 아니면 제가 손을 다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예요? 그런 거라면 괜찮으니까 저한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요. 어차피 지후 씨도 제가 반항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잖아요.”여울은 담담하게 손을 내밀고 있어 최지후는 더 화가 났다.“대체 뭐 하자는 거야? 난 그냥 무심코 한 말이었다고. 내가 너한테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나?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너한테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전에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넌 대체 누구 지시를 받고 여기로 온 거냐?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지금처럼 건방지게 굴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의 말을 들은 여울은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았는데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니 말이다.“전 확실히 지후 씨와 만날 수 없는 계층의 사람이었지만 고의는 없었어요. 그래도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요. 전 지후 씨와 함께 지내면서 전보다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네요. 지후 씨에게 전 그렇게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요?”예전의 여울이었다면 이런 말을 꺼내는 건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지만 이미 최지후의 경계심이 어느 정도 풀어졌던지라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최지후는 확실히 감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조금 전까지 화내고 있다가도 갑자기 즐거워하면서 성격도 이상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그녀는 아마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손을 다치고 난 후 여울은 최지후가 자신을 많이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예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행동도 보여주고 있었던지라 여울은 전보다 더 대범해지고 점점 비꼬는 어투로 그와 말을 했다.“제가 그렇게 거슬리면 지금 바로 나갈게요. 그래도 전 지후 씨한테 진심이었어요. 아무리 지후 씨가 저한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정말로 절 해치려고 했다고 해도 전 지후 씨 곁에 있고
“왜 강윤슬이 화가 나든 말든 신경 쓰는 거죠? 내가 전에 했던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건가요? 이 카드의 주인이 나예요, 그쪽이에요?”그의 말을 들은 비서는 황급히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전 혹시나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오지랖을 부렸습니다.”지석훈은 비서가 무슨 말을 하든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후 문지원의 오빠를 찾는 것에 다시 집중했다.문지원도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 예전에는 그나마 준비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고 더 복잡해졌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실히 알아낸 거예요. 직접 가기 싫은 거라면 제가 대신 가서 확인해 드릴 수는 있는데... 그게 가격이 조금 비쌀 거예요.”일전에 지석훈이 눈앞에 있는 탐정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들은 그녀는 탐정을 떠보기 시작했고 확실히 어딘가 수상했다.“왜 그렇게 제 오빠가 그쪽에 있다고 확신하시는 거예요? 그쪽으로 가본 신 적도 없잖아요. 그 사람들 말 믿을 수 있는 거 맞아요? 게다가 전 지금까지 오빠가 그곳에 있다는 증거 사진이나 영상도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몇 마디 말로 저더러 지금 믿으라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요?”만약 지석훈의 말을 듣기 전이였다면 그녀는 믿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미 수상함을 눈치채고 있었다. 여하간에 회사에 이렇게나 큰일이 일어났고 그녀는 더는 잃을 것도 없었다.탐정은 문지원이 이렇게나 빨리 눈치챌 줄은 몰랐는지 다소 망설이고 있었다. 문지원은 당연히 탐정의 말속에 거짓이 담겨 있음을 알고 있었다.“그동안 탐정님한테 의뢰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전 집안에 일이 생긴 후로 계속 탐정님한테 의뢰를 해왔어요. 그래서 탐정님 실력도 믿고 있고요. 그런데 탐정님이 제 뒤통수 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만약 사실대로 말해줄 생각이 없으시다면 전에 받았던 의뢰비를 전부 돌려주세요. 이쯤에서 그만둘 거거든요.”말을 마친 문지원은 상대가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음이 급해진 탐정
지석훈은 말하면서 다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문지원을 보았다. 여하간에 문지원의 손은 강윤슬 때문에 다쳤으니까.“이 일로 나한테 죄책감 같은 거 느낄 필요 없어요. 나한테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도 다른 일로 부담을 느낀 적 없어요. 시간도 이미 많이 지난 일이고 만약 예전이었다면 신경 썼을 텐데 지금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요. 이제 저에겐 아무 의미도 없거든요.”문지원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지만 지석훈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왜 의미가 없는 건데? 설마 너한테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은 존재인 거야?”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석훈은 저도 모르게 진지해지게 되었다. 그의 말을 듣던 문지원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아니요. 석훈 씨는 다른 사람과 다르죠. 다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동안 나한테 도움도 많이 줬는데 계속 석훈 씨한테 찰싹 붙어서 의지만 하고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석훈 씨와 강윤슬 씨 사이 일도 내가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더 말해서 뭐하겠어요?”지석훈은 순간 침묵하고 말았다. 그는 문지원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단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장도 없어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더 편협하게 느껴졌다.“그래. 알았어. 얼른 쉬어.”일전에 이미 함께 잔 적이 있었던지라 둘 사이는 전보다 더 가까워졌고 이상하게도 뭐든 더는 서로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만나 함께 생활했던 것처럼 말이다.지석훈은 사실 그녀에게 모든 사람에게도 이렇게 대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도 지쳐 보였기에 결국 침묵하기로 했다. 여하간에 어떤 일은 직접 말로 하기 어려웠고 자칫하면 상처 주기도 했으니까. 문지원도 그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같은 시각 강윤슬은 알게 된 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저도 모
“나도 방금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네가 자꾸 이 시간에 수상하게 이런 모습으로 있는데 누굴 탓하겠어?”여울이 울먹거리자 최지후의 분노는 사그라들고 어느새 미안한 감정만 남았다. 그는 감정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여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도 어색했다.“일단 손부터 치료해. 괜히 나중에 다른 사람이 보고 내가 널 학대했다고 오해하기 전에.”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떠나가는 최지후의 뒷모습을 보던 여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은 그녀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몰래 CCTV까지 설치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최지후는 원래부터 의심병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만약 무언가를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그 후과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주하가 시킨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일단 가까운 병원으로 찾아가 손부터 치료하기로 했다.“이번에는 또 왜 이렇게 된 거예요? 지난번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왜 이렇게 다친 거예요?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앞으로 두 달간은 무거운 물건은 들지 말고 집에서 푹 쉬어요. 알겠어요?”의사의 당부에 여울은 씁쓸한 미소만 지었다. 그녀도 조심하고 싶지만 그녀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지후는 원래부터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었던지라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절대 의사의 당부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돈을 받고 남의 일을 대신 해주고 있었다. 최주하의 돈을 받았으니 집에서 가만히 푹 쉬는 것은 물 건너갔고 어떻게든 시킨 일을 완수해야 했다. 시킨 일만 빠르게 해내고 떠나버린다면 더는 이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선생님. 고마워요.”그러나 별장으로 돌아갔을 때 최지후는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별장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그가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하간에 최지후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고 있었고 지금쯤이면 다른 곳에서 볼일을 보고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 최주하는 여울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네?”여울은 자신이 손을 다쳤다는 사실과 최지후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그에게 연락했다고 말했다.“네가 어떻게 되든 신경은 안 쓰지만 그래도 몸 정도는 챙겨.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귀찮게 내가 직접 나서야 하잖아. 안 그래?”그 말을 들은 여울은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제가 일부러 제 몸에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에요. 최지후 씨가 그러는 게 조금 무서워요.”여울은 비록 2억을 손에 넣긴 했지만 끝까지 살아 있어야 그 돈을 쓸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이대로라면 그녀는 언제 죽게 될지도 모른다.“내가 말했잖아. 몸 하나는 알아서 잘 지키라고. 필요한 게 있으면 내가 최대한 맞춰줄 테니까 나 대신 일 좀 하나 해줘야겠어.”최주하는 원래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기회가 제 발로 들어왔으니 당연히 놓치지 않고 이용해줄 생각이다.“또 뭘 해야 하죠?”예전이었다면 여울은 걱정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최주하가 이러는 것은 순수하게 최지후에게 보복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하지만 다른 것에는 알 리가 없었다.“나도 알아. 지금 네 상황이 확실히 불리하고 힘들다는 거. 그래도 내가 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네가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난 네가 해낼 거라고 믿어.”이 말을 한 최주하는 이내 잠깐 망설이다가 지석훈이 했던 말을 해주었다.“내가 이곳에 있는데 CCTV를 설치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CCTV 기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도 모르는 것도 아니고.”여울이 몰래 그에게 연락할 때부터 이미 긴장한 상태였다. 만약 정말로 최주하가 말한 대로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나중에 최지후가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러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지 않겠는가.“내가 지금 선택의 기회를 줄게.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몰
“네, 이 산속이 맞습니다. 정 그렇게 믿기 어려우시다면 직접 가보시죠. 하지만 다른 정보는 저희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다른 상황에 비해 지금 이 상황이 제일 이해가 가지 않았다.“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이 정보로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되네요.”문지원은 탐정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사실 여전히 걱정되었다.“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에 있었던 일을 제외하곤 이번 조사에서는 충분히 알아보고 말씀드리는 것이니까요.”탐정이 말을 마쳤을 때도 그녀의 표정은 전보다 더 심각하게 일그러졌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문지원은 다소 조급한 얼굴로 앞을 보았다. 전에는 준비가 된 상태라 긴장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조금 불안했다.“무슨 일이야?”“아, 우리 오빠예요. 우리 집안의 상황을 석훈 씨도 잘 알잖아요. 그동안 오빠와 연락이 안 되기에 탐정사무소로 찾아가 의뢰했는데 방금 그쪽에서 연락 온 거예요. 어느 산 쪽에서 오빠 소식을 알아냈다고 하는데 가야 할까 고민 중이었어요.”만약 다른 때였다면 문지원은 이렇듯 고민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도 예상 밖이었다.“만약 그럴싸한 정보라면 바로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거나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볼 텐데 지금 상황이 조금 이상해서요.”지석훈은 조금 의아한 눈빛으로 문지원을 보았다.“정말로 산속에서 찾았다면 더 많은 소식이 들려왔어야 했을 텐데 왜 탐정이 고작 연락 한 통으로 위치만 알려준 거지? 그 탐정 믿을 만한 사람은 맞아?”지석훈이 이렇게 물으니 문지원은 다소 확신할 수 없었다.“네가 네 오빠를 걱정하고 있다는 거 알아. 다른 사람이었어도 너처럼 가족을 걱정했을 거야. 그런데 만약 이 모든 게 누군가 파 놓은 함정이라면? 내가 보기엔 분명 뭔가가 있어.”같은 시각 강윤슬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석훈이가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분명 나한테 푹 빠졌을 때는 그딴 일에 관심이 없었잖아. 그런데 왜 지금은 다른 사람 편을 들어주면서 일부러 이런 말로 나를 화나게 하는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