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곳에서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미리가 온경준을 태운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 그녀도 역시나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온지유는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아빠,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장수희는 계속 자신의 말이 맞는다고 억지를 부리면 될 줄 알았지만 온경준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온경준을 본 순간 장수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아주버님.”온경준은 잔뜩 엄숙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감히 내 딸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제수씨, 예전에는 그냥 속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본성은 나쁘지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속이 썩은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기자들을 불러 내 딸을 모함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죠!”“아주버님... 그게 아니라... 전 별다른 말 하지 않았어요. 그냥 지유가 숙모인 저를 공경하지 않는다고만 말했을 뿐이에요!”온경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더는 그녀의 변명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그는 결판을 내리기로 했다.“우리 지유를 대체 뭐라고 생각한 거죠?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런 수단을 쓰다니요!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알리고 싶어 하니 그럼 밝혀도 되겠네요. 제수씨네 가족들이 그간 얼마나 부도덕한 짓을 했는지!”장수희는 그제야 두려움을 느끼며 울면서 말했다.“아주버님. 아주버님 안 돼요. 아주버님은 재준 씨 형이잖아요. 동생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러시면 안 되잖아요!”정미리는 불쌍한 척 연기하는 정수희를 더는 참아 줄 수가 없었다.“동서, 이건 동서가 응당 받아야 하는 대가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해야 우리 딸이 얼마나 억울한지 밝힐 수 있지 않겠어?”판이 뒤바뀌어졌다.장수희 가족은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형으로서 온경준은 최대한 온재준의 가족을 도와주었으나 그들은 도와준 은혜도 모르고 그의 딸을 모함하고 있었다.상황을 지켜보던 네티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씨X, 반전이 있었어. 뻔뻔한 건 저 모녀였다고! 모두 앞에
온지유도 예상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그게 누군데요?”장수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이름은 몰라. 이름을 물어볼 새가 없었거든. 그냥 아주 젊은 아가씨였어. 내가 정말 미쳤지, 낯선 사람의 말을 철썩 믿었다니!”낯선 사람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더 시끄럽게 곡소리를 내었다.그러나 온채린은 네티즌의 악플 공격을 견뎌낼 수가 없었는지 창백해진 안색으로 울면서 말했다.“어떻게 해요. 전 이제 끝났어요. 인턴은커녕 아무런 회사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언니, 제발 살려주세요. 여진에서 인턴으로 취직 안 해도 돼요. 그러니까 제발 아니라고만 말해주세요.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취직해요!”모녀는 온지유에게 다가가 빌었다.“지유야, 내가 이렇게 빌게. 네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한 번만 봐줘. 내가 이렇게 네 앞에 무릎을 꿇고 빌게!”장수희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딸을 위해 어떻게든 용서를 받으려고 했다.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수록 그녀에게 잔인하게 돌아왔다.정미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일으켰다.“무릎 꿇을 필요도 없어. 괜히 우리가 괴롭힌 거 같잖아. 잊지 마, 모든 악행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사람들 속에서 구경하던 주소영은 상황이 역전하고 온지유가 뭔가를 눈치채자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렸다.온지유가 이렇게나 운 좋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런 상황도 뒤집을 수 있다니 말이다.그녀는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왔다.기자도 자신이 했던 질문이 공격스러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장수희 모녀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자 그제야 온지유에게 말했다.“온지유 씨, 방금은 죄송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질문을 했네요. 하지만 이미 방송에 나갔고 저분들이 온지유 씨를 모함한 건 선을 넘은 행동이니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하기를 바랍니다.”그러면서 기자는 떠보듯 말을 보
그 뒷모습은 누군가와 아주 닮아있었다. 그래도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기에 온지유는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려고 했다.이때 한 사람이 그녀의 손목을 잡으면서 말했다.“지유야, 숙모가 잘못했어. 앞으로 다시는 너한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게.”장수희는 경찰서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자칫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온지유의 용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이거 놔요.”온지유는 마음이 급했다. 익숙한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있는 힘껏 벗어나려고 했다.하지만 장수희의 손아귀 힘은 아주 강했다. 그녀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내가 밉다고 해도 네 작은아버지한테 이러면 안 되지. 너도 온씨 성을 가졌잖니. 나랑 채린이 감옥에 가면 네 작은아버지가 어떻게 살겠어?”온채린은 급기야 무릎까지 털썩 꿇었다.“언니! 제발 용서해 줘요. 저 아직 졸업증도 받지 못했어요. 감옥에 다녀오면 누가 저를 직원으로 채용하겠어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언니, 우리 친척이잖아요.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요, 네?”“나도 이렇게 무릎을 꿇으마, 지유야.”두 사람은 온지유를 잡아당기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큰길 건너편에서 뒷모습은 점점 작아졌다. 차량이 지나가면서 일어난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닿아 찢길 듯이 아팠다.온지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놔요! 당장 놔요!”끼익!“지유야!”두 사람이 밀고 당기는 가운데,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던 온지유는 그대로 밀려났다. 지나가던 차량이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할 정도의 거리에서 말이다.빠르게 달려오는 차량을 보고 온지유는 죽음을 예감했다. 이때 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힘껏 옆으로 끌어당겼다.두 사람은 바닥에서 몇 바퀴를 굴렀는지 모른다. 다행히 온지유는 아픈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러나 남자의 신음을 듣고 정신을 화들짝 차렸다.그녀를 안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여이현이었다. 이곳에서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
온지유는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못이 하도 깊게 박혀서 수술해야만 뺄 수가 있었다.‘장기가 손상된 건 아니겠지?’이때 뒤늦게 도착한 정미리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이현이는 어떻게 됐니?”“아직 수술실에 있어요.”“내가 별꼴을 다 보는구나. 장수희 그년이 하다 하다 내 사위까지 건드리네.”온경준은 말없이 곁에 묵묵히 서 있었다.잠시 후 수술을 끝낸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선생님, 수술은 어떻게 됐어요?”“못은 안전하게 빼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기를 건드리지 않아서 그냥 며칠 쉬다 가시면 됩니다.”사람들은 이제야 시름을 놓았다.온지유도 마찬가지다. 여이현이 다친 데 그녀는 자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마취가 깨지 않은 여이현은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 온지유는 병실 밖에 앉아서 조금 전의 장면을 되새겼다.때로 여이현은 정말 그녀에게 잘해줬다. 하지만 또 때로 없던 정도 사라질 만큼 매정했다.정미리는 그녀가 여이현을 걱정하는 줄 알고 위로했다.“지유야, 이현이는 무사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정미리와 온경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병원에는 제가 있을게요. 두 분 피곤할 텐데 먼저 돌아가요.”온경준은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여이현은 온지유를 구해주려다가 다친 것이기 때문이다.“이현이 깨어나는 건 보고 가야지.”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0분 후, 여진숙이 황급히 달려오면서 물었다.“이현이는 어떻게 됐니? 내 아들 어떻게 됐어?”여진숙은 병원 입구에서부터 길을 물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내 아들 어떻게 됐냐고!”그녀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그러다가 병실에 누워있는 여이현을 발견했다.이때 정미리가 나서서 말했다.“이현이는 아직 자고 있어요. 의사가 큰 문제 없다고 했으니까...”짝!여진숙은 이를 악물고 온지유의 뺨을 때렸다. 넋이 나간 온지유는 멍하니 여진숙을 바라봤다.“또 너니?”여진숙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온지유를
여진숙은 콧방귀를 뀌었다.“나도 아들이 걱정돼서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아들이 당신 딸년이랑 결혼해서 무슨 얻은 게 있는데요. 하루 종일 도와주다가 이렇게 손해만 보잖아요.”이렇게 말하던 여진숙은 또 피식 웃으며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지금 누구 앞에서 사이좋은 척 지X 떠는 거예요? 우리 집안에 20억 원을 받고 딸년을 팔 때는 아주 신나 보이더군요.”“됐어요!”온지유는 차가운 표정으로 외쳤다. 여진숙이 20억 원 때문에 그녀를 무시하는 건 똑똑히 알았다. 아니, 그 20억 원이 없더라도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여호산의 제안에 응한 이유 중 20억 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여이현을 좋아하는 마음이었다.여호산도 그것을 보아냈기 때문에 결혼 얘기를 꺼냈을 것이다. 만약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지난 시간 동안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여이현에게 준 가치는 20억 원을 진작 초과했다. 그러므로 여진숙의 모욕을 가만히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저를 욕보이는 건 상관없지만, 가족까지 건드리지는 마시죠.”“하! 그 대단한 가족은 왜 너 빚을 갚아주지 않았다니? 응?”정미리는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여진숙의 비웃음은 들어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우리가 돈을 보고 애들을 결혼시켰다는 거예요?”“지금 충분히 명확하게 말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집안에 돈이 많다 보니 다들 기어오르려고 하더군요.”여진숙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온지유 일가가 너무 혐오스러웠다.“저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돈이고 뭐고, 지유 행복이 가장 중요해요!”“행복이요? 그럼 댁 딸년이 행복한지 물어본 적 있어요? 내 아들은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댁 딸년만 아니었어도 진작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했을 거예요.”정미리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여진숙이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것이다.온경준은 오래도록 침묵했다. 이런 말
온경준은 오늘에야 여진숙의 입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물었다.“지유야, 너 정말 돈 때문에 결혼한 거니?”온지유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그게...”“사돈어른이 좋은 사람인 건 인정해. 하지만 실패한 결혼을 억지로 유지할 필요는 없어. 빚진 돈은 우리가 어떻게든 갚을게.”정미리도 할 말이 없었다. 좋은 사윗감을 찾아서 딸을 시집보낸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이런 꼴이 났으니 말이다.이제 이혼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결혼은 파국에 다다랐다. 더 이상 고집부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온지유도 억지로 버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알았어요.”여이현은 온지유를 바라봤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표정이었다.온지유는 솔직하게 말했다.“더 이상 숨길 것도 없겠네요. 저희는 3년의 기한을 두고 계약 결혼을 했어요. 20억 원에 3년을 저당 잡힌 셈이죠.”이 말을 하는 동안 온지유의 눈가에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애써 참으며 계속 말했다.“3년이 지나면 저희는 완전히 남남이 되는 거예요.”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미리도 지금껏 몰랐던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뭐? 둘이 3년만 결혼한다고?”“네, 딱 3년뿐이에요. 그러니까 더 이상 싸울 필요 없어요. 결국엔 이혼할 거니까요. 어떤 문제가 있던 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예요.”여진숙은 계약에 대해 알게 된 후 더 할 말이 없어졌다.여이현의 안색은 아주 차가웠다. 주먹을 꽉 움켜쥔 그는 온지유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것 같았다.“콜록콜록...”그는 기침을 참지 못했다. 여진숙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현아, 괜찮니? 빨리 들어가서 누워. 수술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여이현은 입술을 꽉 다물며 여진숙의 부축을 거부했다.어찌 됐든 여이현의 도움에 고마웠던 온경준은 불쑥 끼어들어서 말했다.“이현아, 오늘은 우리 지유를 구해줘서 고맙다.”아버지로서 그녀는 당연히 딸을 보호
양쪽 집안 사람들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여진숙은 주소영을 바라보며 충격에 빠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 기다리다가 다시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 내 아들의 아이를 가졌다고?”주소영은 마음이 불안했다. 이런 말을 꺼낸 결과를 몰랐기 때문이다.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저... 대표님의 아이를 가졌어요.”이번에는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 처음 만난 여자가 여이현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말이다.온경준과 정미리는 잠시 넋이 나갔다가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엇보다도 여이현이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온지유가 그동안 여씨 가문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반대로 여진숙은 매우 기뻤다. 그녀의 입장에서 상대가 누구인지는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여씨 가문의 후손을 낳아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게 정말이니?”여진숙은 급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임신한 지는 몇 달 되었니?”여진숙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주소영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일이 생각보다 훨씬 쉽겠는데...?’“그게... 한 달 좀 넘었어요.”여진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아직 티가 안 나겠구나. 초기에는 무조건 조심해야 해. 이현이도 참...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해줬어야지.”여진숙은 주소영의 손을 잡으며 친절하게 대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이현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을 말해서 뭐 해요.”여진숙은 주소영이 온지유를 난처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아이까지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이현아, 자신의 명예를 걸고 이런 거짓말을 할 여자는 없단다. 이 아가씨가 누군지 소개해 봐.”여이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모든 증거가 주소영이 그의 방에 들어갔다고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직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는 여러 번 조사를 지시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CCTV 기록 탓에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더군다
온지유는 여진숙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다.정미리는 원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진숙의 발언에 화가 치밀어 올라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이런 일이 있는데도 참 당당하네요. 착각하지 마요, 이 관계에서 잘못된 건 결혼 중에 다른 여자를 만나 임신까지 시킨 당신 아들이니까요!”여진숙이 반박했다.“당신 딸년이 애를 낳지 못하니까 내 아들이 겉도는 거 아니에요!”여이현이 차갑게 말했다.“그만해요!”여진숙은 점점 창백해지는 그의 얼굴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알았어, 그만할게. 얼른 침대에 가서 누워 있자.”이때 온경준이 말했다.“지유야,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자.”온지유도 이곳에서 백번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요, 아빠.”그녀는 묵묵히 온경준의 곁으로 걸어갔다.그녀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그녀를 끝까지 바라보았지만, 끝내 붙잡는 말을 하지 못했다.“이현아.”여진숙이 그를 부축하면서 불렀다. 주소영도 달려와서 함께 부축했다.“들어가자. 뭐 볼 게 있다고.”여이현은 두 사람을 밀어내며 냉정하게 말했다.“배 비서!”그동안 투명 인간처럼 가만히 있던 배진호가 급히 다가와서 말했다.“제가 부축할게요!”여이현은 배진호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로 돌아갔다.여진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여이현은 자꾸만 그녀에게 거리를 두었다. 아무래도 전에 그녀가 너무 매정하게 군 탓일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이제 성깔을 죽이고 여이현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그런데도 여이현은 낯선 사람보다도 못한 대우를 해줬다.딱히 할 말이 없었던 여진숙은 주소영에게 물었다.“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주소영은 여진숙이 온지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어른이 좋아할 만한 태도로 얌전하게 대했다.“주소영입니다.”여진숙이 다시 물었다.“소영아
강윤슬의 이런 모습은 여자인 문지원이 봐도 마음이 아팠다. 하물며 오랫동안 강윤슬을 사랑한 지석훈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것이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문지원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강윤슬의 말에 마음이 약해지지도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강윤슬을 향해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여자들은 늘 그러잖아. 늦게 온 사랑은 싸구려라고. 우리 남자들도 그래. 나 이제 예전처럼 선배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까 선배는 임혁수한테 가.”“임혁수가 선배를 많이 사랑하고 있을 거야.”강윤슬이 임혁수의 사랑을 원했다면 아마 벌써 그와 함께 살았을 것이다. 이렇게 지석훈을 찾아올 리가 있겠는가? 사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사랑할 때는 상대를 보물처럼 여기다가도 사랑하지 않으면 헌신짝 취급을 한다. 한번 마음먹었으면 되돌아보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사랑해도 다시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제 장난 그만 쳐.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아. 네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 돌아와 줘.”강윤슬은 목이 멘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눈물이 마치 끈 떨어진 진주처럼 흘러내렸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기 싫었던 그는 아예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 순간,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얼른 가. 나도 할 일이 있어. 선배가 이러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볼일을 봐?”지석훈은 그게 어떤 일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강윤슬은 깨달았다.지금 두 사람의 옷차림을 보면 두 남녀 사이에 할 일이라는 게 또 뭐가 있겠는가?울면서 애원했지만 지석훈은 요지부동이었고 그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그래. 지석훈, 잘 들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다시는 나 찾아오지 마.”눈물을 닦으며 말하던 강윤슬은 이내 뒤도 안 돌아보고 별장을 뛰쳐나갔다.강윤슬이 떠난 후, 지석훈은 바로 문지원을 밀어냈다.그의 마음속에 강윤슬이 1 순위라는 걸 문지원은 잘 알고 있었다. “쫓아가 보는
더 이상 강윤슬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그는 문지원에게 눈빛을 보냈다.곁으로 다가가자 그가 문지원의 허리를 껴안았다. “선배, 문지원이랑 있으면 나 편해. 사랑은 일방적인 게 아니야. 선배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아니. 이 여자가 너한테 순종하는 거 네가 많이 도와줬기 때문이야. 네가 지석훈이 아니었다면 네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문지원이라는 여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겠지.”강윤슬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문지원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문지원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석훈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찌 그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석훈 씨한테 순종하는 거 맞아요. 나한테 잘해주니까요. 결혼도 안 한 남녀가 만나겠다는데 뭐가 문제예요?”문지원은 강윤슬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강윤슬 씨, 나랑 석훈 씨가 만나는 게 불만인 거죠? 우리 두 사람은 당신한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어요. 석훈 씨가 프러포즈를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임혁수 씨를 찾아간 건 바로 당신이에요.” 프러포즈하던 날, 그곳에는 강윤슬과 지석훈 두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지석훈이 이 일을 문지원에게 알려준 것일까?문지원의 차가운 눈빛을 보니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에요.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란 말이에요. 지석훈, 너 꼭 이 여자 앞에서 나한테 망신을 줘야겠어?”강윤슬은 흥분된 표정을 지으며 문지원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녀가 지석훈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확실히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다.다만 문지원이 이 얘기를 꺼낸 건 강윤슬이 더 이상 이렇게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게다가... 지석훈은 문지원에게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다. 어떤 일들은 그녀도 단지 두 사람의 대화에서 눈치를 챈 것뿐이었다. 먼저 포기를 한 사람은 강윤슬이었기 때문에 지석훈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슨 할 말이 있겠는
지금까지 강윤슬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아무리 강윤슬이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그의 앞에서 당당했고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았다.지석훈은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선배 곁에는 이미 임혁수가 있잖아.”“임혁수만으로는 만족 못 하는 거야?”그의 말에 강윤슬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와 지석훈 사이의 가장 큰 문제는 임혁수였다. 비록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임혁수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그저 단지 과거의 아쉬운 감정만 남아있는 것이었지만 지석훈은 그리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혁수 씨 얘기가 왜 또 나와? 설마 나더러 혁수 씨를 쫓아내라는 거야? 어떻게 쫓아내니?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인데.”“어찌 됐든 알고 지난 사이인데. 임혁수도 임혁수지만 만약 네가 그렇게 된다면 나도 널 도와줬을 거야.”그녀는 지석훈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고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그도 더 이상 그녀를 바로잡고 싶지 않았다.“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선배 자유야. 하지만 나랑 선배 사이는 이제 완전히 끝났어.”“아니지. 시작한 적이 없으니까 끝낼 것도 없지 뭐.”오랜 시간 강윤슬의 옆에 있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의 마음을 받아준 적이 없었다. 강윤슬은 아예 그를 남자 친구의 후보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 정도의 위치만 했어도 오랫동안 함께 있다 보면 남자 친구로 변할 법도 한데, 그녀는 아니었다. 지금 그의 옆에 문지원이 나타난 걸 보고 강윤슬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가. 혼자 돌아가지 말고 임혁수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그녀의 안전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강윤슬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한없이 다정하고 그녀에게 고분고분하던 남자가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있다. “정말 내가 너한테 사정까지 해야 하는 거니? 아니면 혁수 씨를 쫓아내야 네 화가 풀릴 거니?”그래야
심호흡을 하던 강윤슬은 그 순간, 지석훈을 되찾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임혁수의 손을 뿌리쳤다.“석훈이한테 볼일이 있어. 먼저 갈게. 혁수 씨는 딸이랑 당분간 이 별장에서 지내. 나중에 돈이 생기면 헐값에 넘겨줄게.”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자리를 떴다. 워커홀릭이었던 지석훈은 병원에서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곳에 가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그는 병원에 있지 않았고 병원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그가 휴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석훈의 별장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녀는 그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바로 그의 별장으로 향했다.문을 두드리는데 뜻밖에도 문을 연 사람은 문지원이었다. 문지원도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잠깐만요. 석훈 씨 불러줄게요.”사실 문지원은 별장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옷이 마르지 않았고 지석훈을 생각해 비서한테 옷을 가져다 달라고도 하지 못했다.어찌 됐든 지석훈은 그녀를 도와준 사람이었고 누군가한테 연락해서 별장으로 오라고 한다면 두 사람 사이를 오해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윤슬이 이렇게 찾아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 강윤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은 문지원에게 떨어졌다.문지원은 지석훈의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그녀의 목덜미에 붉은 자국이 몇 군데 있었다. 성인인 강윤슬이 어찌 그걸 보고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수가 있겠는가?이젠 정말 늦은 것 같다. 만약 일찍 깨달았더라면 지석훈은 여전히 그녀의 곁에 있었을까?강윤슬은 문지원을 가로지나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지석훈을 찾았다.마침 그가 샤워 가운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계단에서 마주쳤다. 180cm가 훨씬 넘는 큰 키, 어두운 눈빛이 그녀에게 떨어졌다. 입술을 오므리고 있던 그녀는 먼저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석훈아, 나 결심했어.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네 마음도 몰라주고. 하지만 이제는 알 것
또한 회사에 임혁수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임혁수도 자신이 입만 열면 그녀가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건 강윤슬이 완전히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었다. “나도 이젠 귀국한 지 꽤 되었고. 너... 내가 한 번 결혼한 적은 있지만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는 거잖아. 내 과거에 대해 감출 생각은 없어. 우리 딸도 너 많이 좋아하고. 우리한테 기회가 있을까?”임혁수는 강윤슬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다시 돌아왔지만 그녀는 사귀자는 말도 없었고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을 때가 많았다. 아마도 지석훈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 혁수 씨가 돌아온 건 기뻐. 당신을 도와준 건 그저 친구로서 도와준 것뿐이야. 그리고 나 계모가 될 자신 없어.”임혁수의 딸이 예쁜 건 맞지만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임혁수 때문에 지석훈의 프러포즈까지 거절한 강윤슬인데...게다가 그를 회사로 끌어들였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사람들은 알만큼 다 알고 있었다.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예전에 널 두고 떠난 건 내 잘못이야. 하지만 이제는 내가 돌아왔잖아. 하루라도 젊을 때 같이 있자. 아이가 싫다면 아이는 우리 엄마한테 맡길게.”“강윤슬, 나 더 이상 널 잃을 수가 없어.”그의 목소리는 울컥했고 말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윤슬은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어찌 됐든 한때는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고 사랑했지만 얻지 못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임혁수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아쉬움을 달래준 셈이었다.지석훈이 그날 프러포즈를 할 때, 임혁수의 전화 한 통에 그녀는 바로 그를 향해 달려갔다.공항에서 임혁수와 그의 딸을 마주한 순간, 임혁수는 여전히 멋진 남자의 모습이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젊은 날의 아쉬움도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게다가 그동안 지석훈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많이 아물게 되었다.지석훈...
한편,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문지원은 지석훈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어디 있어? 우리 집으로 와.”“알았어요.”지석훈의 말이라면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지석훈은 그녀한테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니까.만약 지석훈이 없었더라면 그녀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할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잠시 후, 퇴근하고 나서 그녀는 바로 지석훈의 집으로 향했다. 뜻밖에도 그는 나른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녀를 본 순간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그녀의 손목을 확 낚아챘고 그녀는 그의 다리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문지원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석훈 씨, 날 여기로 부른 건...”차마 입 밖으로 다 꺼내지 못할 말이었다.지석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향기가 꽤 좋더라고맛있더라고. 내가 오라고 하니까 이렇게 왔잖아. 그럼 충분한 거 아니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저돌적으로 입을 맞춰왔다. 하룻밤의 섹스로는 끝나기가 아쉬웠던 관계, 두 사람은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한편, 임혁수는 강윤슬을 위해 정성껏 장미 꽃다발을 준비했다. 장미꽃은 강윤슬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고 평소에도 장미꽃을 보면 그렇게 오랫동안 기뻐했었다.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장미꽃을 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지석훈이 떠올랐다. 지석훈은 사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오로지 의학에만 몰두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의학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예전에 지석훈은 그녀에게 각양각색의 장미꽃을 선물해 주었다. “왜 그래?”임혁수도 그녀가 딴생각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요즘 들어 강윤슬은 툭 하면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멍해 있었다.그런 모습을 보고 그는 강윤슬이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아니야.”정신이 돌아온 강윤슬의 말투는 차갑기만 했다.차가운 강윤슬의 태도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예전의 강윤슬이라면 그를 중심으로 맴돌고 있던 사람이었는데...지금 이러는 걸 보면 아마도 지석훈 때문인 것 같았다.“
“왜? 마음이라도 아픈 거야?”“알았어요.”그녀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던 그녀는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최지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왜 불도 안 켜고 있어요?”여울은 놀란 가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어두컴컴한 게 좋아서.”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이리 와봐.”여울은 얌전히 다가가 살짝 몸을 숙여 그의 관자놀이를 주물렀다.“왜요? 기분 안 좋아요?”“응.”무심하게 대답하던 그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당신은 나 배신하지 않을 거지?”그 말에 여울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설마 최지후가 뭔가 눈치라도 챈 걸까?’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냥 궁금해서.”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당연히 그럴 일 없죠. 난 지후 씨 곁에 평생 있을 거예요.”그녀는 예쁜 말로 골라서 했고 원하는 답을 들은 최지후는 이내 환하게 웃었다.“그래. 당신이 날 배신한다면 내가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갈 거야.”농담처럼 들리지만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윤슬 씨, 나 어떡하죠? 최근에 회사의 프로젝트들이 지석훈 때문에 다 엉망이 되어버렸어요.”엄우정이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문지원을 건드린 것이 엄청 후회되었다.강윤슬은 그녀를 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바보같이 왜 일을 만들어서는... 일이 틀어지니까 날 찾아와?’“윤슬 씨, 말 좀 해봐요. 내가 누구 때문에 그런 건데요?”강윤슬이 말이 없자 엄우정은 더 초조해졌다.이번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집에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강윤슬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정 씨, 석훈이는 이제 우정 씨가 알던 사람이 아니에요. 나도 우정 씨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문지원 씨를 찾아간다면 어쩌면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문지원 씨는 줄곧 우정 씨와 협력하고 싶어
최주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 문지원 씨 때문이 아니라면 네가 나한테 보자고 할 일도 없겠지.”“말해 봐.”한참을 망설이던 지석훈은 끝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됐다. 술이나 먹으러 가자.”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최주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술잔을 들자마자 최주하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여울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잠깐 전화 좀 받게 올게.”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였고 최주하는 밖으로 나오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볼 일이 있어서요...”전화를 끊고 최주하는 다시 지석훈에게로 다가갔다. “미안하다.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나중에 시간 되면 내가 술 살게.”“됐어. 일 있으면 가.”최주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혼자 술을 마시던 지석훈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한 그룹의 그 프로젝트, 나한테 넘겨.”전화를 끊은 후, 그는 눈앞의 술잔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버렸다. 자신이 왜 신한 그룹을 겨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본능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한편, 프라이빗한 호텔에 도착한 최주하는 흰 원피스를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꽃 같은 여인, 여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눈빛은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말해.”여울은 그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하 씨, 최지후 씨가 저한테 마음을 완전히 연 것 같아요.”그녀의 말대로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현재 최지후는 여울을 완전히 신임하고 있었고 무방비 상태라 그녀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알아. 하지만 난 더 가치가 있는 것이 필요해.”최주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부담감이 확 밀려왔고 최주하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저... 최지후 씨가 최근에 입찰을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입찰 문서를 손에 넣었어요.”그녀는 급히 입을 열
문지원은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고통스러웠다. 지석훈에게 붙어있으면 조금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고는 필사적으로 그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부드러운 입술이 닿자 흠칫 놀라던 그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가 앞에 앉아 있는 운전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출발해요. 가장 가까운 호텔로 갑시다.”이내 가림막이 내려졌고 문지원은 여전히 끙끙거리며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에 그의 몸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얼마 후,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고 그가 그녀를 안아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프런트 데스크에 다가가 블랙 카드를 꺼내며 한마디 했다.“스위트룸으로 잡아줘요.”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은 훤히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룸에 들어온 후, 그는 문지원을 침대에 눕혔다. 막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그녀가 그의 목을 감싸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가지 마요.”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문지원, 이건 당신이 선택한 거야.”더 이상 그도 참지 않았고 들끓어 오른 욕정을 드러냈다. ...뜨거웠던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잠에서 깨어난 문지원이 몸을 움직이는데 갑자기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자마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그가 천천히 눈을 뜨는데 눈빛은 평온하기만 했다.“깼어?”“저기... 우리...”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지석훈은 아주 자연스러웠다.“걱정하지 마. 책임질게.”“책임... 책임질 필요 없어요. 어젯밤 일은 사고였어요.”어젯밤의 일에 대해 기억이 남아있었고 자신이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 일로 지석훈한테 뭔가를 요구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한테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니까.“왜? 그렇게 나랑 선 긋고 싶은 거야?”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차갑게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