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곳에서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미리가 온경준을 태운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 그녀도 역시나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온지유는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아빠,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장수희는 계속 자신의 말이 맞는다고 억지를 부리면 될 줄 알았지만 온경준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온경준을 본 순간 장수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아주버님.”온경준은 잔뜩 엄숙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감히 내 딸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제수씨, 예전에는 그냥 속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본성은 나쁘지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속이 썩은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기자들을 불러 내 딸을 모함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죠!”“아주버님... 그게 아니라... 전 별다른 말 하지 않았어요. 그냥 지유가 숙모인 저를 공경하지 않는다고만 말했을 뿐이에요!”온경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더는 그녀의 변명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그는 결판을 내리기로 했다.“우리 지유를 대체 뭐라고 생각한 거죠?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런 수단을 쓰다니요!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알리고 싶어 하니 그럼 밝혀도 되겠네요. 제수씨네 가족들이 그간 얼마나 부도덕한 짓을 했는지!”장수희는 그제야 두려움을 느끼며 울면서 말했다.“아주버님. 아주버님 안 돼요. 아주버님은 재준 씨 형이잖아요. 동생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러시면 안 되잖아요!”정미리는 불쌍한 척 연기하는 정수희를 더는 참아 줄 수가 없었다.“동서, 이건 동서가 응당 받아야 하는 대가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해야 우리 딸이 얼마나 억울한지 밝힐 수 있지 않겠어?”판이 뒤바뀌어졌다.장수희 가족은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형으로서 온경준은 최대한 온재준의 가족을 도와주었으나 그들은 도와준 은혜도 모르고 그의 딸을 모함하고 있었다.상황을 지켜보던 네티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씨X, 반전이 있었어. 뻔뻔한 건 저 모녀였다고! 모두 앞에
온지유도 예상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그게 누군데요?”장수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이름은 몰라. 이름을 물어볼 새가 없었거든. 그냥 아주 젊은 아가씨였어. 내가 정말 미쳤지, 낯선 사람의 말을 철썩 믿었다니!”낯선 사람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더 시끄럽게 곡소리를 내었다.그러나 온채린은 네티즌의 악플 공격을 견뎌낼 수가 없었는지 창백해진 안색으로 울면서 말했다.“어떻게 해요. 전 이제 끝났어요. 인턴은커녕 아무런 회사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언니, 제발 살려주세요. 여진에서 인턴으로 취직 안 해도 돼요. 그러니까 제발 아니라고만 말해주세요.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취직해요!”모녀는 온지유에게 다가가 빌었다.“지유야, 내가 이렇게 빌게. 네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한 번만 봐줘. 내가 이렇게 네 앞에 무릎을 꿇고 빌게!”장수희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딸을 위해 어떻게든 용서를 받으려고 했다.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수록 그녀에게 잔인하게 돌아왔다.정미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일으켰다.“무릎 꿇을 필요도 없어. 괜히 우리가 괴롭힌 거 같잖아. 잊지 마, 모든 악행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사람들 속에서 구경하던 주소영은 상황이 역전하고 온지유가 뭔가를 눈치채자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렸다.온지유가 이렇게나 운 좋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런 상황도 뒤집을 수 있다니 말이다.그녀는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왔다.기자도 자신이 했던 질문이 공격스러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장수희 모녀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자 그제야 온지유에게 말했다.“온지유 씨, 방금은 죄송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질문을 했네요. 하지만 이미 방송에 나갔고 저분들이 온지유 씨를 모함한 건 선을 넘은 행동이니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하기를 바랍니다.”그러면서 기자는 떠보듯 말을 보
그 뒷모습은 누군가와 아주 닮아있었다. 그래도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기에 온지유는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려고 했다.이때 한 사람이 그녀의 손목을 잡으면서 말했다.“지유야, 숙모가 잘못했어. 앞으로 다시는 너한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게.”장수희는 경찰서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자칫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온지유의 용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이거 놔요.”온지유는 마음이 급했다. 익숙한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있는 힘껏 벗어나려고 했다.하지만 장수희의 손아귀 힘은 아주 강했다. 그녀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내가 밉다고 해도 네 작은아버지한테 이러면 안 되지. 너도 온씨 성을 가졌잖니. 나랑 채린이 감옥에 가면 네 작은아버지가 어떻게 살겠어?”온채린은 급기야 무릎까지 털썩 꿇었다.“언니! 제발 용서해 줘요. 저 아직 졸업증도 받지 못했어요. 감옥에 다녀오면 누가 저를 직원으로 채용하겠어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언니, 우리 친척이잖아요.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요, 네?”“나도 이렇게 무릎을 꿇으마, 지유야.”두 사람은 온지유를 잡아당기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큰길 건너편에서 뒷모습은 점점 작아졌다. 차량이 지나가면서 일어난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닿아 찢길 듯이 아팠다.온지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놔요! 당장 놔요!”끼익!“지유야!”두 사람이 밀고 당기는 가운데,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던 온지유는 그대로 밀려났다. 지나가던 차량이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할 정도의 거리에서 말이다.빠르게 달려오는 차량을 보고 온지유는 죽음을 예감했다. 이때 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힘껏 옆으로 끌어당겼다.두 사람은 바닥에서 몇 바퀴를 굴렀는지 모른다. 다행히 온지유는 아픈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러나 남자의 신음을 듣고 정신을 화들짝 차렸다.그녀를 안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여이현이었다. 이곳에서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
온지유는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못이 하도 깊게 박혀서 수술해야만 뺄 수가 있었다.‘장기가 손상된 건 아니겠지?’이때 뒤늦게 도착한 정미리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이현이는 어떻게 됐니?”“아직 수술실에 있어요.”“내가 별꼴을 다 보는구나. 장수희 그년이 하다 하다 내 사위까지 건드리네.”온경준은 말없이 곁에 묵묵히 서 있었다.잠시 후 수술을 끝낸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선생님, 수술은 어떻게 됐어요?”“못은 안전하게 빼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기를 건드리지 않아서 그냥 며칠 쉬다 가시면 됩니다.”사람들은 이제야 시름을 놓았다.온지유도 마찬가지다. 여이현이 다친 데 그녀는 자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마취가 깨지 않은 여이현은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 온지유는 병실 밖에 앉아서 조금 전의 장면을 되새겼다.때로 여이현은 정말 그녀에게 잘해줬다. 하지만 또 때로 없던 정도 사라질 만큼 매정했다.정미리는 그녀가 여이현을 걱정하는 줄 알고 위로했다.“지유야, 이현이는 무사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정미리와 온경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병원에는 제가 있을게요. 두 분 피곤할 텐데 먼저 돌아가요.”온경준은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여이현은 온지유를 구해주려다가 다친 것이기 때문이다.“이현이 깨어나는 건 보고 가야지.”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0분 후, 여진숙이 황급히 달려오면서 물었다.“이현이는 어떻게 됐니? 내 아들 어떻게 됐어?”여진숙은 병원 입구에서부터 길을 물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내 아들 어떻게 됐냐고!”그녀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그러다가 병실에 누워있는 여이현을 발견했다.이때 정미리가 나서서 말했다.“이현이는 아직 자고 있어요. 의사가 큰 문제 없다고 했으니까...”짝!여진숙은 이를 악물고 온지유의 뺨을 때렸다. 넋이 나간 온지유는 멍하니 여진숙을 바라봤다.“또 너니?”여진숙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온지유를
여진숙은 콧방귀를 뀌었다.“나도 아들이 걱정돼서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아들이 당신 딸년이랑 결혼해서 무슨 얻은 게 있는데요. 하루 종일 도와주다가 이렇게 손해만 보잖아요.”이렇게 말하던 여진숙은 또 피식 웃으며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지금 누구 앞에서 사이좋은 척 지X 떠는 거예요? 우리 집안에 20억 원을 받고 딸년을 팔 때는 아주 신나 보이더군요.”“됐어요!”온지유는 차가운 표정으로 외쳤다. 여진숙이 20억 원 때문에 그녀를 무시하는 건 똑똑히 알았다. 아니, 그 20억 원이 없더라도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여호산의 제안에 응한 이유 중 20억 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여이현을 좋아하는 마음이었다.여호산도 그것을 보아냈기 때문에 결혼 얘기를 꺼냈을 것이다. 만약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지난 시간 동안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여이현에게 준 가치는 20억 원을 진작 초과했다. 그러므로 여진숙의 모욕을 가만히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저를 욕보이는 건 상관없지만, 가족까지 건드리지는 마시죠.”“하! 그 대단한 가족은 왜 너 빚을 갚아주지 않았다니? 응?”정미리는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여진숙의 비웃음은 들어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우리가 돈을 보고 애들을 결혼시켰다는 거예요?”“지금 충분히 명확하게 말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집안에 돈이 많다 보니 다들 기어오르려고 하더군요.”여진숙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온지유 일가가 너무 혐오스러웠다.“저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돈이고 뭐고, 지유 행복이 가장 중요해요!”“행복이요? 그럼 댁 딸년이 행복한지 물어본 적 있어요? 내 아들은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댁 딸년만 아니었어도 진작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했을 거예요.”정미리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여진숙이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것이다.온경준은 오래도록 침묵했다. 이런 말
온경준은 오늘에야 여진숙의 입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물었다.“지유야, 너 정말 돈 때문에 결혼한 거니?”온지유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그게...”“사돈어른이 좋은 사람인 건 인정해. 하지만 실패한 결혼을 억지로 유지할 필요는 없어. 빚진 돈은 우리가 어떻게든 갚을게.”정미리도 할 말이 없었다. 좋은 사윗감을 찾아서 딸을 시집보낸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이런 꼴이 났으니 말이다.이제 이혼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결혼은 파국에 다다랐다. 더 이상 고집부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온지유도 억지로 버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알았어요.”여이현은 온지유를 바라봤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표정이었다.온지유는 솔직하게 말했다.“더 이상 숨길 것도 없겠네요. 저희는 3년의 기한을 두고 계약 결혼을 했어요. 20억 원에 3년을 저당 잡힌 셈이죠.”이 말을 하는 동안 온지유의 눈가에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애써 참으며 계속 말했다.“3년이 지나면 저희는 완전히 남남이 되는 거예요.”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미리도 지금껏 몰랐던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뭐? 둘이 3년만 결혼한다고?”“네, 딱 3년뿐이에요. 그러니까 더 이상 싸울 필요 없어요. 결국엔 이혼할 거니까요. 어떤 문제가 있던 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예요.”여진숙은 계약에 대해 알게 된 후 더 할 말이 없어졌다.여이현의 안색은 아주 차가웠다. 주먹을 꽉 움켜쥔 그는 온지유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것 같았다.“콜록콜록...”그는 기침을 참지 못했다. 여진숙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현아, 괜찮니? 빨리 들어가서 누워. 수술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여이현은 입술을 꽉 다물며 여진숙의 부축을 거부했다.어찌 됐든 여이현의 도움에 고마웠던 온경준은 불쑥 끼어들어서 말했다.“이현아, 오늘은 우리 지유를 구해줘서 고맙다.”아버지로서 그녀는 당연히 딸을 보호
양쪽 집안 사람들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여진숙은 주소영을 바라보며 충격에 빠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 기다리다가 다시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 내 아들의 아이를 가졌다고?”주소영은 마음이 불안했다. 이런 말을 꺼낸 결과를 몰랐기 때문이다.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저... 대표님의 아이를 가졌어요.”이번에는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 처음 만난 여자가 여이현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말이다.온경준과 정미리는 잠시 넋이 나갔다가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엇보다도 여이현이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온지유가 그동안 여씨 가문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반대로 여진숙은 매우 기뻤다. 그녀의 입장에서 상대가 누구인지는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여씨 가문의 후손을 낳아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게 정말이니?”여진숙은 급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임신한 지는 몇 달 되었니?”여진숙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주소영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일이 생각보다 훨씬 쉽겠는데...?’“그게... 한 달 좀 넘었어요.”여진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아직 티가 안 나겠구나. 초기에는 무조건 조심해야 해. 이현이도 참...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해줬어야지.”여진숙은 주소영의 손을 잡으며 친절하게 대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이현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을 말해서 뭐 해요.”여진숙은 주소영이 온지유를 난처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아이까지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이현아, 자신의 명예를 걸고 이런 거짓말을 할 여자는 없단다. 이 아가씨가 누군지 소개해 봐.”여이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모든 증거가 주소영이 그의 방에 들어갔다고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직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는 여러 번 조사를 지시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CCTV 기록 탓에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더군다
온지유는 여진숙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다.정미리는 원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진숙의 발언에 화가 치밀어 올라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이런 일이 있는데도 참 당당하네요. 착각하지 마요, 이 관계에서 잘못된 건 결혼 중에 다른 여자를 만나 임신까지 시킨 당신 아들이니까요!”여진숙이 반박했다.“당신 딸년이 애를 낳지 못하니까 내 아들이 겉도는 거 아니에요!”여이현이 차갑게 말했다.“그만해요!”여진숙은 점점 창백해지는 그의 얼굴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알았어, 그만할게. 얼른 침대에 가서 누워 있자.”이때 온경준이 말했다.“지유야,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자.”온지유도 이곳에서 백번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요, 아빠.”그녀는 묵묵히 온경준의 곁으로 걸어갔다.그녀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그녀를 끝까지 바라보았지만, 끝내 붙잡는 말을 하지 못했다.“이현아.”여진숙이 그를 부축하면서 불렀다. 주소영도 달려와서 함께 부축했다.“들어가자. 뭐 볼 게 있다고.”여이현은 두 사람을 밀어내며 냉정하게 말했다.“배 비서!”그동안 투명 인간처럼 가만히 있던 배진호가 급히 다가와서 말했다.“제가 부축할게요!”여이현은 배진호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로 돌아갔다.여진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여이현은 자꾸만 그녀에게 거리를 두었다. 아무래도 전에 그녀가 너무 매정하게 군 탓일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이제 성깔을 죽이고 여이현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그런데도 여이현은 낯선 사람보다도 못한 대우를 해줬다.딱히 할 말이 없었던 여진숙은 주소영에게 물었다.“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주소영은 여진숙이 온지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어른이 좋아할 만한 태도로 얌전하게 대했다.“주소영입니다.”여진숙이 다시 물었다.“소영아
양시은은 고통 속에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전에 나도현을 위해 칼을 대신 막아준 상처는 아직 다 낫지 않았고 그 상처 위에 임다혜가 보낸 약까지 보내져 그녀의 몸은 점점 뜨거워졌다. 지금 양시은의 체온은 39도를 넘어서 거의 40도에 가까운 상태였다. 의식은 흐릿하고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져 내린다. 그때 음식을 가지고 온 가사도우미가 양시은이 침대에 누워서 꼼짝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입을 벌려 놀랐다. 마치 그녀가 이미 숨을 거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급히 나도현에게 전했다. “도련님, 양시은 씨가 죽은 것 같아요...” “뭐라고?” 나도현은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빛은 찰나에 이른 속도로 깊어진 흑단처럼 좁아지며 가사도우미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봤다.도우미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움찔거렸다. 도우닌 나도현이 이렇게 급해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나도현의 얼굴은 흰 종이처럼 창백하고 그의 눈에서는 한치의 흔들림도 볼 수 없었다. 그의 몸은 긴장으로 굳어있었고 그는 바로 서재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몇 걸음에 방에 도달하고, 그는 문을 급하게 열었다.침대에 누운 양시은을 확인한 그는 잠깐 멈칫했다. 양시은은 살고 있는 듯 숨을 헐떡이며 자고 있었다. 그러나 땀에 젖은 얼굴과 급한 숨소리가 그에게 명확히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주었다.그는 양시은의 붉어진 뺨을 보며 이마를 만지자 그녀의 열기가 손끝을 뜨겁게 만들었다. 나도현은 급히 핸드폰을 꺼내 지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석훈, 지금 내 별장에 바로 와. 열 나는 사람이 있어.”지석훈은 피곤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너희 개인 의사야 뭐야. 열 정도로 괜찮은 거면 약 있잖아.”온지유가 아프면 여이현이 그를 찾았고 권다솔이 아프면 배진호가 그를 찾았다. “나도현의 여자가 아프다니... 아니. 잠깐만. 여자?”지석훈의 눈이 반짝였다. “나도현, 거기 아픈 사람이 여자라고? 어디서 생긴 여자야? 설마 그 전 여친이냐?”“그냥 빨리 와. 약도
여자는 일부러 말을 모호하게 꺼냈다. 그녀를 보낸 사람은 임다혜였고 여기에 더해 박은희가 몰래 도와주면서 이 두 사람이 협력하여 별장에 하녀 한 명을 배치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양시은에게는 그 의도가 확실히 잘못 전달됐다. 여기가 바로 나도현의 집이므로 이 여자는 분명히 나도현이 불러낸 사람일 것이다. 이 보약을 마시지 않으면 나도현이 분명히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약은 여기 두세요. 목마를 때 마실게여.”“양시은 씨, 저는 꼭 당신이 이 약을 마시는 걸 봐야만 갈수 있습니다. 지금 마시지 않으면 저는 여기서 기다리면 됩니다.” 여자는 그 말을 하고 나서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놓고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바로 양시은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양시은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마치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만약 그녀 앞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대담하게 나올 수 없었겠지만 이 상대는 양시은이었다. 그리고 박은희는 반드시 양시은을 집에서 쫓아내라고 말한 바 있었다. 따라서 양시은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 “약을 언제 마시면 난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같이 기다려 보시든지.”양시은은 지금 아이를 찾는 일이 급해서 이 여자와 시간을 보내며 신경 쓰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마셨으니 이제 가세요.” 그러자 양시은은 그 말과 함께 보약을 한 모금 두 모금, 금방 다 마셨고 그릇을 여자의 쪽으로 돌려보냈다. “다 마셨어요. 이제 가셔도 됩니다.”“물론이죠. 양시은 씨, 푹 쉬세요.” 여자는 목적을 달성하고는 그릇을 들고 떠났다. 여자가 별장을 나서며 길가에 서 있던 차로 올라타 이내 임다혜와 만날 예정이었다.양시은은 보약을 다 마신 뒤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리 신경을 쓰진 않았다. 나도현이 아무리 말을 까칠하게 해도 그녀를 정신적으로 괴롭히
“부탁하지 마. 부탁이 효과가 있었다면 나는 이미 나도현 씨에게 그만 두라고 애원했을 거야. 언니, 제발 부탁한다고 해서 그게 진짜 유용할까?” 양채은은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오늘 내가 전화를 한 이유는 한 가지 말할 게 있어서야. 네가 나한테 빚진 것 나는 하나하나씩 네 아들 하민에게서 얻어 올 거야. 부모의 빚은 자식이 갚는 게 맞잖아.”이 무시무시한 말을 하고 양채은은 전화를 바로 끊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마음속이 점점 아려왔다.마스크남이 그 옆으로 다가와 그녀에게 물었다. “채은 씨, 지금 이걸 하는 게 무슨 의미에요? 양시은을 미워하면서도 왜 그 여자의 아들을 돌보고 있어요? 난 가끔은 당신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마스크남은 자기가 양채은이라면 이 기회를 확실히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채은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하민은 날 이모라 불렀고 어른들의 잘못을 왜 아이를 탓하겠어요.”양채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양시은은 무정할 수 있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어느 정도는 선이 있었다. “당신 말도 일리는 있어요. 안에 있는 아이는 정말로 아무 죄가 없죠. 그나저나 당신 배 속의 아이는요?” 마스크남이 점점 더 압박을 걸면서 말을 이었다. “다른 아이를 생각하려면 먼저 네 애부터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만해요. 이건 내 일이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양채은은 등을 돌리며 걸어갔다.마스크남은 유유한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알겠습니다! 이름을 변경하여 번역을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양시은은 마음속으로 하민에 대한 걱정이 극에 달해 당장이라도 아이를 찾으러 나가고 싶었다.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그 순간 방 문이 열리며 낯선 여자가 트레이를 들고 그녀 앞에 섰다.“양시은 씨, 이건 제가 끓인 보약이에요. 기력 보충에 좋으니 따끈할 때 빨리 드세요.”“저 안 마셔요. 그냥 가져가세요.” 양시은은 보약에 전혀
약혼 연회 당일 나도현의 휴대폰이 양시은 옆에 나타났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였지만 그녀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 후 양채은은 친절히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더 잘 챙겼고 심지어 나도현이 양시은을 싫어할까 봐 걱정했다. 결국은? 챙겨준 끝에 그들은 결국 한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이제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아이는? 양채은은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하민을 보았을 때 갑자기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녀의 아이가 양시은 덕분에 행복하지 않다면 그녀는 양시은의 아이에게 복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갚는 복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하민은 계속해서 이모라고 부렀고 그들 사이에는 감정이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무정할 수 없었다. “난 나도현의 별장에 있어. 그 사람이 나를 안 보내줘.” 양시은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녀는 자기 잘못이라면 반드시 인정한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해서 끝나는 거야? 미안하다는 말이 효과가 있으면 세상에 경찰과 법이 왜 필요해.” 양채은의 감정은 점점 격해졌다. “너희는 계속해서 하민이만 찾았고 나에겐 관심을 둔 사람이 있었어?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해서 이런 결과를 맞아야 하는 거야.” 그녀가 남의 감정을 고의로 끼어들어 이 상황에 빠졌다면 지금 배신을 당한 것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와 나도현은 자유 연애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결국 약혼에 이르게 됐다.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 이 두 사람은 함께 힘을 합쳐 그녀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이렇게 큰 차이를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견뎠는지 자신도 몰랐다. 게다가 요즘은 마스크를 쓴 남자가 그녀 곁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말하고 그로 인해 그녀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다. “채은아, 우리 한 번 만나자. 하민이만 병원에 데려다주면 네가 나에게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
나도현은 양시은의 턱을 꽉 움켜잡으며 목소리를 낮게 내뱉었다. 그 당시 양시은이 그의 삶에서 사라졌을 때 나도현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빌려 그녀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가 거의 포기하려던 찰나 뜻밖에도 양시은을 만나게 되었고 이는 어쩌면 하늘이 정해준 인연일지도 모른다. 이 한 평생 그는 양시은과 사랑하고 또 싸워야 하는 운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당연히 그 상황에 흘러가는 대로 행동해야 했다. “내 곁에서 도망칠 방법을 찾기보다는 차라리 어떻게 내게 사과할지 너의 사과를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해봐. 그러면 너의 날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질지도 몰라.” 양시은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나도현은 원하는 건 그녀의 사과와 태도라는 걸 그녀는 분명히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옆에 있을 자격이 없었다. 지금 그를 달래서 그를 기쁘게 할 수는 있어도 결국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박은희의 편견은 산처럼 높아서 그녀는 도저히 넘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결국 함께할 수 없었다. 그녀의 침묵은 이미 그녀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나도현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내가 너를 용서할 거라고 기대하지 마. 양시은, 이제 너는 여기서 안전하게 지내. 하민이가 걱정 되면 내 마음에 들게 나한테 잘해. 그럼 하민이를 찾아줄게. 안 그러면 소식을 알아도 너한테는 절대 말 안 해.” 양채은이 지금 통화를 거부하고 있어 양시은은 도대체 하민이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녀는 여기 갇혀 있고 아는 사람도 없었고 사설탐정을 고용해 조사할 돈도 없다. 그런데 나도현은 그 능력이 있었다. 지금 그는 아이를 이용해 그녀를 협박하며 그녀가 굴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도현, 나한테 아무렇게나 대해도 아이는 건드리지 말아줘.” 양시은의 마음은 정말로 아팠다. 그녀의 마음이 아플수록 나도현은 그 점을 더욱 이용해서 계속해서 자극했다. “아이는 건드리지 말라고? 너는 전혀 신경
아쉽게도 나도현은 이런 걸 이해하지 못했다. 임다혜는 전혀 두렵지 않았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 사람한테 아무 짓도 안 했잖아요. 그냥 평소에 말 좀 섞고 싶은 건데. 설마 이걸로 저를 쫓아 내겠어요? 저는 안 믿어요.” 박은희는 입술을 열어 말하려 했지만 임다혜가 자신감 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나도현이 그녀를 거절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뒤에서 조용히 손까지 써본다면...’ 박은희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임다혜는 그 생각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어머니, 말씀하신 방법 너무 좋아요. 도현 씨가 더 이상 이상한 짓 안 하게 우리 빨리 실행해요.” “좋아.” 박은희의 계획은 좋았지만 그들은 계획을 삼일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한편 나도현은 법률 사무소에 가진 않았지만 사무소의 사건들을 계속 관리했고 양채은과도 연락을 시도하고 있었다. 전화를 통했지만 영채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양시은은 그와 대화할 때마다 불편해졌지만 양시은은 밥은 잘 먹었다. 그녀에게 있어 사람은 밥심이고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나도현이 정신 없이 있을 때 그녀는 탈출할 수 있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도현은 그걸 참지 못했다. 그는 양시은 앞에 나타나 비꼬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걱정하는 네 아들 결국 네가 이런 식으로 걱정하는 거냐? 양시은, 네 입에는 한 마디 진심이라도 있어?” 양시은은 나도현이 이렇게 작은 일로도 이렇게 화를 낼 줄 몰랐다. 그러나 나도현은 그녀를 싫어하니까 당연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였다. 그의 눈에 양시은의 단점은 끝없이 확대되어 보였다. 양시은은 더 이상 나도현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와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나도현, 만약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어 죽으면 하민이는 돌아와도 못 보잖아.” “그건 네 변명이야. 지금 네 얼굴에는 아무런 슬픔도 없어.”나도현의 얼굴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양시은은 잠시 말이 막혔다. 그런데
양시은이 말을 뱉을 때 나도현은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은 만큼 화가 났다. “네가 날 교육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인간성? 그는 인간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사건을 처리했고 그 가운데 양시은도 포함되어 있다. 처음 양시은과 함께할 땐 결혼까지 진지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양시은은 그에게 깊은 배신을 했다. 나도현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뭐라고 하는가?’ 그가 복수를 결심하고 양시은을 죽이려고 해도 마음이 약해져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양시은, 여기서 깊이 반성해.” 만약 양시은이 그에게 울면서 용서를 구하면 그는 분명 마음이 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양시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 애만 신경 썼다. 그는 그 아이가 얼마나 더 버티며 살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고 생각했다. 박은희는 나도현을 설득할 수 없었고 임다혜에게도 어떻게 말할지 몰랐다. 임다혜는 박은희가 직접 고른 며느릿감이었다. 하지만 나도현은 그녀의 얼굴조차 보기 싫어했고 아예 연락도 하지 않았다. 임다혜는 나도현에게 진심이었고 종종 박은희에게 안부를 묻고 늘 영양제와 화장품을 선물하며 찾아왔다. 지금은 그녀를 볼 면목이 별로 없었다. 임다혜가 다시 물어왔다. “도현 씨는 요즘 많이 바쁜가요? 로펌에도 없고...” 임다혜는 나도현이 양시은에게 갔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양시은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사람이고 그의 마음속에 깊은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었다. 나도현은 그녀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임다혜는 포기하기 싫었다. 부모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결혼은 행복하지 않다고 믿고 있었다. 게다가 박은희는 그녀 편이었다. 그녀는 박은희를 통해 나도현의 마음을 얻은 후 나 부인이 되려 했다. 박은희는 이것도 방법이 아닌지라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다혜야, 넌 정말 좋은 아이야. 하지만 이건 말해 줘야 할 거 같아. 난 네가 정말 좋은데 도현이는... 양시은이라는
하지만 나도현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박은희도 하민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천지개벽하고 피와 살이 뒤섞이는 상황에까지 끌고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녀가 숨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나도현이 화가 가라앉으면 자연스럽게 그녀를 놓아줄 것이라 믿었다. “그 아이가 누구의 애인지 물어봐서 뭐 해? 나도현, 우리는 말할 건 다 했잖아. 더 이상 서로 힘들게 하지 말자.” “네 엄마가 그렇게 많은 돈을 주는데 내가 바보냐? 그걸 왜 거절해야 해? 예전에 20억에 너를 포기했던 것처럼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이미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어. 넌 내가 울며 매달려서 싫다고 말할 걸 기대했어?” 양시은은 담담하게 나도현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무섭기도 했지만 점점 그녀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도현이 그녀에게 죽으라고 할 리는 없으니까. 죽지 않으면 언젠가는 나도현에 의해 풀려날 날이 있을 것이다. 지금 나도현의 마음속엔 그저 그때 분노로 가득 찼을 뿐이다. “그게 가능할 리가 있냐?” 나도현은 비꼬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양시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잖아. 그러니 내가 책임질 순 없어. 지금 나를 여기에 가두고 있을 바엔 차라리 양채은을 찾아가. 양채은은 진짜로 널 사랑해. 뱃속의 아이도...” “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 그 여자가 날 사랑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 난 널 사랑하지만 너는 나한테 어떻게 했지?” 양시은이 말을 계속하려는 순간 나도현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더욱 어두워진 채 양시은의 몸에 머물렀다.나도현의 깊은 사랑을 양시은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현이 예전에 사랑했던 만큼 지금은 증오도 그만큼 깊어졌다. 나도현은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너 같은 사람한테 사랑을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지금까지 아이 아빠는 보지도 못한 걸 보니 네가 죽인 거 아니냐?” 양시은의 마음이 처참하게 찔렸다. 아이의 아버지는 바로 눈앞에
바로 핸드폰 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도현은 그 번호를 비서에게 보내며 지시했다. “철저히 조사해.”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갑작스러운 결심이 떠올랐다. ‘더 이상 양시은이 밖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놔둘 순 없어.’ 그리고 나흘 뒤 박은희가 찾아왔다. “네가 가업을 물려받는 걸 싫다고 한 건 이해한다. 근데 지금 또 나랑 대항해서 그 아이를 다시 데리고 오겠다는 거야?” 나도현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은희는 더욱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나도현, 양시은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 그런데 왜 아직도 그 여자에게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소개해 준 약혼녀는 네가 고른 여자보다 어디가 못 해?” 임씨 가문도 경성의 명문가다. 나씨 가문과 임씨 가문은 비록 여씨 가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성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는 대가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나민우 집안과 친척 관계다. ‘나민우 역시 처음에는 결혼은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부모의 뜻을 따랐고 가문의 이익을 위해 결혼하게 되지 않았나?’이런 생각이 들자 박은희는 더욱 불쾌한 마음에 불만을 터뜨렸다. “나도현, 네가 내 말을 듣기 싫으면 나민우를 좀 본받으면 안 되겠니? 나민우가 어떻게 했는지 알잖아. 넌 도대체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야? 내가 진짜로 나민우를 내 아들로 삼아야 속이 시원하겠어?” 부모들이 자녀를 나무랄 때 자녀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남이 그렇게 좋으면 그 쪽한테 가서 아들이나 돼달라고 하세요.’와 같은 뉘앙스였다. 하지만 박은희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나도현에게 상황을 잘 파악하고 나인우를 따라 배우라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가문의 발전과 명성을 위해 양시은과는 반드시 거리를 두어여 한다. “왜 그렇게 남들과 비교하기를 좋아해요? 나민우는 나민우의 선택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양시은에 대한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요.” 나도현은 등을 돌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