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한 말투였지만 괜히 두 사람이 친한 사이인 것처럼 표현하는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역시나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남자친구인 전동하.고개를 들어 힐끗 전동하의 얼굴을 보니 항상 미소를 짓고 있던 사람이 지금만큼은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한편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박수혁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역시...박수혁의 질문에 소은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선을 그었다.“아, 의사선생님이 입원하는 동안에는 되도록 휴대폰 보지 말라고 하셔서. 퇴원하고 나서는 워낙 바쁘다 보니까 답장하는 거 깜박했네. 미안해.”말도 안 되는 핑계라는 걸 알면서도 박수혁은 그녀의 말을 믿고 싶었다.“아니야. 오늘 보니까 거동에도 문제가 없어 보이고. 마음이 놓이네.”이때 마침 음악이 울리고 박수혁의 눈이 번뜩이더니 소은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같이 춤이라도 출래?”박수혁이 내민 손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저번에 같이 춤을 췄던 게 언제였더라... 아, 이혼하고나서 얼마 안 됐을 때 만난 파티에서여지. 그때 박수혁은 아직 내가 SC그룹 외동딸인 걸 몰랐을 때였고...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수많은 일이 일어났고 주위의 수많은 상황이 바뀌었다. 마치 혼자였던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그녀가 망설이던 그때, 또 다른 희고 긴 손이 소은정의 앞에 불쑥 나타났다.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나도 은정 씨랑 춤 추고 싶은데요.”이렇게 눈 앞에서 박수혁한테 은정 씨를 빼앗길 순 없어. 게다가 은정 씨 남자친구는 나라고.순간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고 바로 전동하를 노려보았다.“순서는 지키시죠?”“워낙 드문 기회라서 저도 놓치고 싶지 않은데요?”은정 씨가 물건도 아니고... 어차피 은정 씨 선택에 달린 일이야. 순서가 뭐가 중요해.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소은정은 단호하게 전동하를 선택했다. 그녀와 전동하의 손이 맞닿으려던 그때, 누군가 소은정의 손목을 잡았다.역시나 박수혁이었다.미간을 찌푸린 소은정이 박수혁의
순간 공기의 흐름이 멎는 듯했다. 남자친구라는 네 글자가 비수가 되어 박수혁의 가슴에 꽂혔다.소은정의 인정에 자신감을 되찾은 전동하가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네. 영광스럽게도 제가 은정 씨 남자친구가 됐네요. 그러니까 앞으로 선 좀 지켜주실래요?”소은정의 남자친구로서 박수혁에게 경고를 날리다니. 짜릿한 기분에 전동하는 미소를 지었지만 박수혁은 피가 거꾸로 솓는 기분이었다.심장이 피투성이가 되는 기분이 들고 눈이 새빨개질 정도로 화가 치밀었지만 박수혁은 주먹을 꽉 쥔 채 화를 참고 또 참았다.모두의 앞에서 소은정이 난처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고 정말 그가 화내는 모습을 봤을 때 겁 먹고 도망칠까 봐 걱정돼서였다.깊은 한숨을 내쉰 박수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나 사고 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따라나오는 게 좋을 거야.”말을 마친 박수혁은 바로 돌아서서 파티장 뒤편의 작은 정원으로 향했다. 그늘 아래에 숨은 박수혁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가늠도 가지 않았다.하, 골치 아프게 생겼네. 여기서 더 고집을 부렸다간 이 파티장을 뒤집어 엎을지도 몰라... 저 성질머리에... 충분히 가능하지. 박수혁은 자신의 행동에 따르는 대가 따위 생각지 않는 사람이니까.박수혁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만 그 “대가”에 자신과 전동하까지 휘말리게 될까 봐 골치가 아팠다.“제가 갈게요. 제가 박수혁 대표한테 확실하게 말하고 올게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제가 직접 갈게요. 안 그럼 계속 귀찮게 굴 거예요.”왠지 오래 걸릴 것만 같은 느낌에 소은정은 야무지게 코트까지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시끌벅적한 파티장과 달리 조용한 정원은 마치 다른 세상의 공간처럼 느껴졌다.“이런 협박이 통하는 것도 마지막이야. 사고? 그래. 나도 내가 어떻게 사고를 치는지 보여줄게.”내가 당신한테 타협하는 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야. 박수혁, 네 주제를 알아.소은정의 말에 움찔하던 박수혁이 돌아서더니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
우연하게 소은정을 두 번 구한 것 말고는 자신이 전동하에게 뒤떨어지는 게 뭔지 박수혁은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지만 생명의 은인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이성간의 사랑은 분명 다른 것. 박수혁은 소은정이 감격스러움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박수혁의 억지에 소은정은 잠깐 침묵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동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당신보다 내가 잘 알아. 그리고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설명해 주고 싶지 않아.”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마이크의 존재는 전동하에게 오점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소은정은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오히려 진실을 알고 있기에 두 사람이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손끝이 저려오는 느낌에 박수혁은 주먹을 폈다 쥐었다를 반복했다.“나도 널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어. 그러니까 은정아...”애원에 가까운 말투에 소은정의 눈동자도 살짝 흔들렸지만 곧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3년이야. 우리가 같이 살았던 시간이. 우리가 서로 안 맞다는 걸 알기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러니까 서로 시간낭비 하지 말자. 앞으로 그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지내는 거야.”소은정이 말을 마치자 어느새 다가와 기다리고 있던 전동하가 한발 다가서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기사 도착했대요. 우린 이만 가죠?”박수혁의 매서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소은정은 애써 무시했다.“그럼 난 먼저 갈게.”“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박수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쓸쓸한 분위기속에 묘한 서늘함까지 느껴졌다.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발걸음을 옮겼지만 전동하는 이대로 물러나는 게 왠지 억울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당당하게 미소를 지었다.“아니요. 영원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목숨을 다해 은정 씨를 지킬 거야. 영원히 후회하지 않도록 평생 사랑해 줄 거야.말을 마친 전동하는 바로 소은정의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걸어갔다.소은정을 먼저 차로 에스코트한 뒤 다른 쪽 문으로 차에 탄 전동하가 왠지 모르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은정
그제야 전동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비록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지만 드디어 그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기뻤다.그래.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박수혁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 박수혁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은정 씨 마음은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가는 내내 전동하는 소은정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이런 스킨십이 어색했지만 싫지 많은 기분에 소은정도 손을 빼지 않았다.소은정의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잘 자요.”어차피 위층에 살고 있으니 언제라도 내려올 수 있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네. 잘 자요.”하지만 인사를 마친 뒤에도 그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먼저 가요.”잠깐 동안의 침묵 끝에 소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은정 씨 먼저 들어가요.”......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소은정의 얼굴이 달아오를 무렵, 그녀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요!”안도의 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도망 치 듯 자리를 떴다.문이 닫힌 뒤에도 한참 뒤에야 전동하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한편, 휴대폰 액정을 확인한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유라네?“여보세요?”하지만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한유라의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소은정의 미소는 어색하게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은정아, 내... 내가 상간녀가 되어버렸어. 민하준 이 자식 유부남이었다고!”당황한 소은정이 자세히 묻기도 전에 곧 짜증 가득한 민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누구한테 전화하는 거야?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은정아, 얼른 나 좀 데리러 와줘. 나 지금...”하지만 한유라가 주소를 말하기도 전에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통화는 종료되었다.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들려오는 건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알림음뿐이었다.소은정은 망설이지 않고 다시 집을 나섰다.민하준 그 자식... 유라를 감금이라도 한 거야?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소은정은 김하
소은정이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있다가 제 친구랑 경호원들이 도착할 거예요. 막지 말고 바로 들여보내세요.”말을 마친 소은정은 바로 빌라 단지를 향해 엑셀을 밟았다.차에서 내린 소은정의 시야에 허둥지둥 달려오는 김하늘의 모습이 보였다.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저 멀리서 검은색 차량 세 대가 다가왔다.곧이어 검은 정장차림에 굳은 표정의 장정 십 여명이 차에서 내렸다.전부 소씨 일가 소유의 경호원들이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린 소은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왔다.“가자...”우르르 몰려든 경호원들의 모습에 김하늘은 흠칫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여긴 민하준 집이야. 우리 두 사람만 움직이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당연한 거겠지.한편 소은정은 소은호가 직접 온 걸 보고 의아하긴 했지만 유라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별 의심없이 발걸음을 옮겼다.민하준의 집 앞.김하늘이 앞장서서 문을 두드렸다.잠시 후,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작게 문틈을 열었다.“누구세요...”“유라 안에 있어요?”역시나 민하준이 미리 단단히 주의를 주었는지 유라라는 이름에 흠칫하긴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요. 유라라니?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하, 거짓말을 하시겠다?집안일을 담당하는 아주머니 따위와 말싸움을 할 여유가 없었던 김하늘은 바로 문을 홱 잡아당겨 신발도 벗지 않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유라야, 안에 있어?”하지만 김하늘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흉악한 인상의 남자 두 명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젠장, 이쪽에도 경호원을 두고 있었잖아? 나름 준비 많이 했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소은호를 선두로 소씨 일가 쪽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집안으로 들어왔다.김하늘의 앞을 막아섰던 경호원들 역시 이런 상황은 생각지 못한 듯 흠칫 뒤로 물러섰다.마지막으로 집으로 들어온 소은정이 저택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쏘아보았다.
민하준 저택에서 청소와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 장정자가 창백해진 얼굴로 대답했다.“대표님, 집에 손님이 오셨어요...”소은정은 곧바로 아주머니의 떨리는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민하준, 지금 당장 집으로 와...”이 순간만큼은 예의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는 소은정이었다.재벌 2세로서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안면을 텄지만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볼 꼴 못 볼 꼴 다보며 자란 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발벗고 나서준 친구들이니 소은정에게는 더 각별할 수 밖에 없었다.말을 마친 소은정이 휴대폰을 거칠게 내팽개쳤다.방안에서 한유라의 힘없는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마음이 급해진 소은정이 몸으로 문을 부숴버리려고 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했다.소은호의 손짓에 따라 경호원들도 달라붙었지만 여전히 문은 굳게 닫힌 상태였다.“대표님, 특수제작된 문인 것 같습니다. 억지로 열려고 하면 아예 잠겨버릴 겁니다.”경호원의 말에 소은정의 차가운 눈초리가 장정자에게로 향했다.“열쇠 당장 내놔요...”“열... 열쇠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소은정의 질문에 장정자는 고개를 저었지만 손은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움켜쥐기 시작했다.항상 차분하던 김하늘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요! 당장 내놓으라고요. 안 그럼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무...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세요.”장정자의 얼굴이 공포로 질리고 차가운 미소를 짓던 소은정이 한발 한발 다가섰다.뒷걸음질 치던 장정자가 곧 벽에 부딪히고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불법 감금은 범죄인 거 알죠? 남은 여생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해줄까요?”소은호의 눈짓과 함께 경호원이 장정자의 팔을 뒤로 제압했다.으아악!!!두 경호원 역시 움직임이 완벽하게 제압당한 채 멍든 눈으로 그들을 노려볼 뿐이었다.경호원은 거친 손길로 장정자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소은정에게 건넸다.열쇠를 손에 넣은 소
소은정의 말에 미간을 찌푸린 채 다가온 소은호는 한유라의 팔에 생긴 주사자국을 발견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그 남자가... 너한테 약이라도 쓴 거야?”클럽 같은 곳에서 반항하는 여성을 마약류 약품으로 제압하는 건 변태 같은 자식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했다.정신은 멀쩡하지만 몸에 힘이 풀려 아무런 반항도 못하게 되는 그런 약이었다.소은호의 질문에 한유라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차가운 눈물이 한유라의 눈가에서 흘러내렸다.충격적인 소식에 모두가 얼어붙고 한유라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그딴 자식을 남자친구라고 생각했던 내가 등신이지...소은호가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유라는 내가 안을 테니까 은정아, 넌 먼저 나가있어.”민하준이 약까지 썼다는 말에 분노로 부들거리던 소은정 역시 심호흡을 하며 이성을 되찾으려 애섰다.소은정이 한유라의 어깨를 쓰다듬었다.“유라야, 걱정하지 마. 이제 괜찮아. 어서 여기서 나가자.”그들이 집까지 쳐들어온 걸 알았으니 민하준도 곧 집으로 돌아올 터, 그쪽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면 김하늘, 소은호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마약류 약품까지 쓸 정도로 미친 자식이라면 더 미친 짓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을 테니까.소은정은 민하준의 서늘한 인상을 다시 떠올렸다.누가 봐도 섬뜩한 얼굴이었는데... 유라가 너무 순진했어. 그런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다니.하지만 한유라가 아무리 경솔했다 해도 민하준이 저지른 일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다.한유라가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깜박였다.“얼른 가...”소은호가 한유라를 번쩍 안아들고 거실로 나선 그때 현관에서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민하준이 도착한 것이었다.하, 빨리도 왔네.민하준의 등장에 장정자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그의 발치로 기어갔다.“대표님, 저 사람들이 유라 아가씨를 데려가려고 해요. 제 팔도 이렇게 만들고...”엉망이 된 집안과 바닥에 제압당한 두 보디가드를 차가운 얼굴로 훑어보던 민하준의 시선
순간 민하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행동이 멈칫하자 주위에 있던 보디가드들은 그 허점을 놓치지 않고 바로 달려들었다.4, 5명의 보디가드들이 민하준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민하준은 분노로 붉게 물든 눈동자로 한유라를 노려 보았다.“내가 와이프랑은 이혼할 거라고 했잖아. 그 새를 못 기다리고 이 사달을 일으켜?!”한유라 역시 쉬어버린 목소리로 외쳤다.“이혼은 개뿔! 내가 바보였어! 너 같은 자식한테 다 속고!! 가서 네 와이프랑 평생 오손도손 같이 살아! 너 따위가 감히 날 넘봐?”민하준의 진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스스로가 한심하고 원망스러웠다.지금이라도 달려들어 민하준의 뻔뻔한 낯가죽을 벗겨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소은호는 증오로 가득한 눈빛의 민하준을 힐끗 바라본 뒤 성큼성큼 집을 나섰다.우르르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우르르 사라지고 커다란 저택이 왠지 더 휑하게 느껴졌다.장정자가 덜렁거리는 팔을 다른 팔로 붙들고 눈물바람으로 다가왔다.“대표님...”“누구 마음대로 문을 열어줘! 누구도 들여보지 말라고 했잖아요.”굳은 표정과 달리 민하준의 목소리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깊은 심연같은 민하준의 눈동자를 마주한 장정자는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자연스럽게 눈을 피한 장정자를 향해 민하준이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거짓말 할 생각은 하지 말아요. 남은 팔 한쪽도 잃고 싶지 않으면...”지금까지 수많은 부잣집에서 가사 아주머니로 일했지만 부자들의 잔인함을 이렇게 피부로 느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남은 팔까지 부러트리겠다고? 그건 안 돼...잠깐 망설이던 장정자의 눈에서 눈물이 와르륵 쏟아졌다.“사모님께서 시키신 거예요. 유라 아가씨와 결혼하시면 전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될 거라고... 제가 사모님을 도와드리면 계속 이 집에서 일하게 해주시고 월급도 두 배로 올려주시고 제 아들한테도 직장을 소캐해 주시겠다고 해서... 사모님이 부른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어요...”“사모님이 부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