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가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은정 씨만 좋다면 난 뭐든 다 좋아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의 얼굴이 화끈해졌다.사람들 다 보는데 부끄럽게...하지만 괜한 자존심에 전동하에게 쑥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사람을 죽여도요?”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그럼요. 은정 씨가 살인을 할 정도라면... 기꺼이 공범이 될게요!”은정 씨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거예요. 그게 감옥이라고 해도.소은정이 전동하를 향해 눈을 흘겼지만 마음속 깊숙히 자리잡고 있던 우울함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소은정이 와인잔을 내려놓았다.“같이 가줄까요?”전동하의 질문에 소은정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내가 뭐 세살배기 애인 줄 알아요?”“그럼... 내가 세살짜리 애라고 치죠 뭐.”단 한시도 은정 씨 옆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은 왠지 난처해졌다.평소에 가깝게 지내서 망정이지 파티내내 꼭 붙어있는 두 사람을 보면 분명 누군가 의심할 게 분명했다.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야.소은정은 따라오지 말라고 전동하에게 단단히 경고한 뒤에야 화장실로 향했다.화장실로 들어가기 위해 코너를 돌던 그때 소은정은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와 부딪히고 만다.고개를 드니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10대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치맛자락을 정리하던 여자가 욕설을 내뱉고 소은정이 먼저 다가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괜찮아요?”상대가 갑자기 나타난 상황이라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럴 때는 먼저 사과하는 게 상책이니까.소은정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여자는 그녀가 입은 드레스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아마 같은 톤의 드레스를 입었기 때문인거같다.게다가 여자의 드레스는 귀여운 공주풍에 타이트한 스타일이라 몸매의 단점을 제대로 부각시키는 반면 소은정의 롱드레스는 주인과 한몸처럼 어우러지고 있었다.소은정의 늘씬한 몸매를 훑어보던 여자가 소은정을
파티에서 같은 컬러 드레스를 입는 건 서로가 난처해질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이다.게다가 신한그룹 딸 신지연은 오늘 파티의 주인공, 자칫하면 소은정이 시선을 빼앗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소문이 돌 수도 있었다.하지만 우연히 신지연과 소은정이 먼저 마주쳤고 윤시라의 얄팍한 수단을 바로 눈치챈 신지연이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윤시라, 정말 멍청하다니까. 저런 머리로 어떻게 신한그룹 한국지사 지사장 후보였는지 이해가 안 될 지경이었다.소은정이 고개를 젓던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고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훌쩍이는 윤시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전 정말 좋은 마음에서...”윤시라 역시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소은정을 발견했다.하, 다 들은 거야?하지만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신지연이 던진 화병이 윤시라의 등을 명중했다. 그리고 곧 신지연이 달려들더니 윤시라의 머리채를 콱 낚아챘다.어우, 저쪽도 한 성격 하네.“하, 지금 아빠한테 고자질하러 가는 거야? 처음 만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감히 우리 아빠를 꼬셔?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멍투성이인 얼굴로도 우리 아빠 마음에 들 수 있을까?”신지연은 욕설을 내뱉으며 윤시라의 배를 걷어찼다.머리채를 잡힌 윤시라가 발버둥을 쳤지만 민첩성도 힘 세기도 신지연에게 확연히 밀리는 상황이라 아무 의미없는 반항일 뿐이었다.윤시라의 처참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일방적인 구타는 한동안 이어졌다. 잠시 후 그제야 분이 풀리는지 신지연은 윤시라의 머리채를 놓아주고 손을 툭툭 털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고개를 든 신지연 역시 소은정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으로 소은정을 스쳐지났다.나름 대형사고를 치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에 소은정도 혀를 내둘렀다.방안이 다시 조용해지고 소은정은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을 내뱉는 윤시라에게 다가갔다.“솔직히 일부러 보려고 그런 건 아닌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뭔데요?”“상간녀 노릇도 중독되나 봐요?”그녀가 아는 바에 따르면 신한그룹 회장
누군가 흰 가운 뒤편에 프린팅된 “A시 정신병원”이라는 글자를 확인하고 소리쳤다.술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묘한 미소를 짓던 소은정은 덤덤한 표정으로 잔에 든 와인을 전부 마셔버렸다. 그 동안 묵혀뒀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윤시라, 내가 정말 그렇게 착한 사람인 줄 알았어? 날 공격하는 사람에게 구급차까지 불러줄만큼? 너에게 가장 어울리는 병원이니까 잘 지내.그리고 앞뒤 가리지 않고 윤시라를 때린 신지연이 부럽기도 했고 대단하게도 느껴졌다.똑똑하고... 바로 손부터 댈만큼 결단력도 있는 게... 마음에 든단 말이야.그녀의 옆에 서 있던 전동하가 주위의 눈치를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은정 씨가 한 거예요?”“아니요. 내가 때렸다면 안 보이는 곳으로 상처도 안 남게 때렸을 거예요.”소은정의 해명에 전동하가 흠칫하더니 곧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워낙 매를 부르는 스타일이잖아요. 아마 벼르고 있는 사람이 많았겠죠. 은정 씨 대신 복수해준 거네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나 그렇게 쪼잔한 사람 아니거든요? 윤시라한테 당한 거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다고요.”“그래요. 내가 쪼잔했네요.”한편, 파티장의 다른 한 구석, 한 남자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저 두 사람 같이 온 겁니까?”레이저라도 쏠 듯한 박수혁의 눈빛에 침을 꿀꺽 삼킨 신한그룹 회장은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아니요. 소은정 대표가 먼저 도착했고 전동하 대표는 한참 뒤에 도착했습니다. 아마 우연히 마주친 것 같은데요.”그제야 부시혁의 표정이 살짝 풀렸지만 기분은 여전히 우울했다.이한석의 정보가 틀린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지 일거수 일투족이 그를 향한 도발로 보일 정도였다.가슴이 답답해진 박수혁이 한숨을 내쉬고 옆에 서 있던 강서진이 미소를 지었다.“오고 가며 만나는 사람들이야 뭐 거기서 거기지 뭐. 우연히 만날 수도 있는 거잖아?”하지
덤덤한 말투였지만 괜히 두 사람이 친한 사이인 것처럼 표현하는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역시나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남자친구인 전동하.고개를 들어 힐끗 전동하의 얼굴을 보니 항상 미소를 짓고 있던 사람이 지금만큼은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한편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박수혁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역시...박수혁의 질문에 소은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선을 그었다.“아, 의사선생님이 입원하는 동안에는 되도록 휴대폰 보지 말라고 하셔서. 퇴원하고 나서는 워낙 바쁘다 보니까 답장하는 거 깜박했네. 미안해.”말도 안 되는 핑계라는 걸 알면서도 박수혁은 그녀의 말을 믿고 싶었다.“아니야. 오늘 보니까 거동에도 문제가 없어 보이고. 마음이 놓이네.”이때 마침 음악이 울리고 박수혁의 눈이 번뜩이더니 소은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같이 춤이라도 출래?”박수혁이 내민 손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저번에 같이 춤을 췄던 게 언제였더라... 아, 이혼하고나서 얼마 안 됐을 때 만난 파티에서여지. 그때 박수혁은 아직 내가 SC그룹 외동딸인 걸 몰랐을 때였고...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수많은 일이 일어났고 주위의 수많은 상황이 바뀌었다. 마치 혼자였던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그녀가 망설이던 그때, 또 다른 희고 긴 손이 소은정의 앞에 불쑥 나타났다.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나도 은정 씨랑 춤 추고 싶은데요.”이렇게 눈 앞에서 박수혁한테 은정 씨를 빼앗길 순 없어. 게다가 은정 씨 남자친구는 나라고.순간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고 바로 전동하를 노려보았다.“순서는 지키시죠?”“워낙 드문 기회라서 저도 놓치고 싶지 않은데요?”은정 씨가 물건도 아니고... 어차피 은정 씨 선택에 달린 일이야. 순서가 뭐가 중요해.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소은정은 단호하게 전동하를 선택했다. 그녀와 전동하의 손이 맞닿으려던 그때, 누군가 소은정의 손목을 잡았다.역시나 박수혁이었다.미간을 찌푸린 소은정이 박수혁의
순간 공기의 흐름이 멎는 듯했다. 남자친구라는 네 글자가 비수가 되어 박수혁의 가슴에 꽂혔다.소은정의 인정에 자신감을 되찾은 전동하가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네. 영광스럽게도 제가 은정 씨 남자친구가 됐네요. 그러니까 앞으로 선 좀 지켜주실래요?”소은정의 남자친구로서 박수혁에게 경고를 날리다니. 짜릿한 기분에 전동하는 미소를 지었지만 박수혁은 피가 거꾸로 솓는 기분이었다.심장이 피투성이가 되는 기분이 들고 눈이 새빨개질 정도로 화가 치밀었지만 박수혁은 주먹을 꽉 쥔 채 화를 참고 또 참았다.모두의 앞에서 소은정이 난처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고 정말 그가 화내는 모습을 봤을 때 겁 먹고 도망칠까 봐 걱정돼서였다.깊은 한숨을 내쉰 박수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나 사고 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따라나오는 게 좋을 거야.”말을 마친 박수혁은 바로 돌아서서 파티장 뒤편의 작은 정원으로 향했다. 그늘 아래에 숨은 박수혁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가늠도 가지 않았다.하, 골치 아프게 생겼네. 여기서 더 고집을 부렸다간 이 파티장을 뒤집어 엎을지도 몰라... 저 성질머리에... 충분히 가능하지. 박수혁은 자신의 행동에 따르는 대가 따위 생각지 않는 사람이니까.박수혁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만 그 “대가”에 자신과 전동하까지 휘말리게 될까 봐 골치가 아팠다.“제가 갈게요. 제가 박수혁 대표한테 확실하게 말하고 올게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제가 직접 갈게요. 안 그럼 계속 귀찮게 굴 거예요.”왠지 오래 걸릴 것만 같은 느낌에 소은정은 야무지게 코트까지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시끌벅적한 파티장과 달리 조용한 정원은 마치 다른 세상의 공간처럼 느껴졌다.“이런 협박이 통하는 것도 마지막이야. 사고? 그래. 나도 내가 어떻게 사고를 치는지 보여줄게.”내가 당신한테 타협하는 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야. 박수혁, 네 주제를 알아.소은정의 말에 움찔하던 박수혁이 돌아서더니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
우연하게 소은정을 두 번 구한 것 말고는 자신이 전동하에게 뒤떨어지는 게 뭔지 박수혁은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지만 생명의 은인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이성간의 사랑은 분명 다른 것. 박수혁은 소은정이 감격스러움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박수혁의 억지에 소은정은 잠깐 침묵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동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당신보다 내가 잘 알아. 그리고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설명해 주고 싶지 않아.”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마이크의 존재는 전동하에게 오점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소은정은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오히려 진실을 알고 있기에 두 사람이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손끝이 저려오는 느낌에 박수혁은 주먹을 폈다 쥐었다를 반복했다.“나도 널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어. 그러니까 은정아...”애원에 가까운 말투에 소은정의 눈동자도 살짝 흔들렸지만 곧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3년이야. 우리가 같이 살았던 시간이. 우리가 서로 안 맞다는 걸 알기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러니까 서로 시간낭비 하지 말자. 앞으로 그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지내는 거야.”소은정이 말을 마치자 어느새 다가와 기다리고 있던 전동하가 한발 다가서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기사 도착했대요. 우린 이만 가죠?”박수혁의 매서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소은정은 애써 무시했다.“그럼 난 먼저 갈게.”“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박수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쓸쓸한 분위기속에 묘한 서늘함까지 느껴졌다.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발걸음을 옮겼지만 전동하는 이대로 물러나는 게 왠지 억울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당당하게 미소를 지었다.“아니요. 영원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목숨을 다해 은정 씨를 지킬 거야. 영원히 후회하지 않도록 평생 사랑해 줄 거야.말을 마친 전동하는 바로 소은정의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걸어갔다.소은정을 먼저 차로 에스코트한 뒤 다른 쪽 문으로 차에 탄 전동하가 왠지 모르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은정
그제야 전동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비록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지만 드디어 그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기뻤다.그래.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박수혁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 박수혁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은정 씨 마음은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가는 내내 전동하는 소은정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이런 스킨십이 어색했지만 싫지 많은 기분에 소은정도 손을 빼지 않았다.소은정의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잘 자요.”어차피 위층에 살고 있으니 언제라도 내려올 수 있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네. 잘 자요.”하지만 인사를 마친 뒤에도 그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먼저 가요.”잠깐 동안의 침묵 끝에 소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은정 씨 먼저 들어가요.”......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소은정의 얼굴이 달아오를 무렵, 그녀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요!”안도의 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도망 치 듯 자리를 떴다.문이 닫힌 뒤에도 한참 뒤에야 전동하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한편, 휴대폰 액정을 확인한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유라네?“여보세요?”하지만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한유라의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소은정의 미소는 어색하게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은정아, 내... 내가 상간녀가 되어버렸어. 민하준 이 자식 유부남이었다고!”당황한 소은정이 자세히 묻기도 전에 곧 짜증 가득한 민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누구한테 전화하는 거야?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은정아, 얼른 나 좀 데리러 와줘. 나 지금...”하지만 한유라가 주소를 말하기도 전에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통화는 종료되었다.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들려오는 건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알림음뿐이었다.소은정은 망설이지 않고 다시 집을 나섰다.민하준 그 자식... 유라를 감금이라도 한 거야?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소은정은 김하
소은정이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있다가 제 친구랑 경호원들이 도착할 거예요. 막지 말고 바로 들여보내세요.”말을 마친 소은정은 바로 빌라 단지를 향해 엑셀을 밟았다.차에서 내린 소은정의 시야에 허둥지둥 달려오는 김하늘의 모습이 보였다.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저 멀리서 검은색 차량 세 대가 다가왔다.곧이어 검은 정장차림에 굳은 표정의 장정 십 여명이 차에서 내렸다.전부 소씨 일가 소유의 경호원들이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린 소은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왔다.“가자...”우르르 몰려든 경호원들의 모습에 김하늘은 흠칫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여긴 민하준 집이야. 우리 두 사람만 움직이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당연한 거겠지.한편 소은정은 소은호가 직접 온 걸 보고 의아하긴 했지만 유라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별 의심없이 발걸음을 옮겼다.민하준의 집 앞.김하늘이 앞장서서 문을 두드렸다.잠시 후,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작게 문틈을 열었다.“누구세요...”“유라 안에 있어요?”역시나 민하준이 미리 단단히 주의를 주었는지 유라라는 이름에 흠칫하긴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요. 유라라니?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하, 거짓말을 하시겠다?집안일을 담당하는 아주머니 따위와 말싸움을 할 여유가 없었던 김하늘은 바로 문을 홱 잡아당겨 신발도 벗지 않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유라야, 안에 있어?”하지만 김하늘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흉악한 인상의 남자 두 명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젠장, 이쪽에도 경호원을 두고 있었잖아? 나름 준비 많이 했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소은호를 선두로 소씨 일가 쪽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집안으로 들어왔다.김하늘의 앞을 막아섰던 경호원들 역시 이런 상황은 생각지 못한 듯 흠칫 뒤로 물러섰다.마지막으로 집으로 들어온 소은정이 저택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