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테스트 제품을 빼돌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개발팀 팀장뿐이라는 생각에 소은정의 표정이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했다.감히 내 눈꺼풀 아래에서 도둑질을 해?장건우...“제 말을 못 믿으시겠으면 확인해 보세요. 지금 그 기기 하나가 빌 걸요? 제가 아는 바에 따르면 지금 개발팀 팀장 집에 있을 거예요.”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든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설마... 그쪽에서 제품을 훔치길 기다렸다가 저에게 온 건 아니겠죠?”소은정의 말에 정곡을 찍힌 양예영이 흠칫하더니 고개를 숙였다.“네. 맞아요. 괜히 먼저 말했다면 대표님께서도 제 말을 믿지 않으셨겠죠...”기가 막혀 코웃음을 치던 소은정이 우연준을 호출했다.“회사 신제품이 도난당했어요. 범인은 개발팀 팀장이니까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팀장으로서의 모든 권한은 정지시키도록 해요.”양예영을 힐끗 바라보던 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그제야 소은정은 휴대폰을 양예영에게 돌려주었다.“양예영 씨가 한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을까요?”소은정의 태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양예영이 말했다.“아니에요. 대표님께서 먼저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은혜를 갚는다고 생각할게요.”“그래요? 그럼 그런 걸로 알게요.”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솔직하게 말 안 한다 이거지? 그러든가. 어차피 급한 건 그쪽일 테니까.예상과 다르게 나오는 소은정의 모습에 양예영은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우물쭈물 말을 이어갔다.“만약 대표님께서 제 아이를 해외로 보내신다면...”양예영의 말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글쎄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양예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대표님, 장건우는 이미 아이가 있어요. 그런데 왜 자신의 사생아한테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걸까요? 사생아라면 숨기는 게 맞지 않나요?”그러니까. 나도 그게 이상했어.드디어 소은정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지금 장건우의 아이는 급성 백혈병을 앓고 있어요. 살 수
그러니까 결국엔 자신의 커리어 때문에 아이를 해외로 버리겠다는 말이잖아.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어차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니 들어주는 게 좋겠다 싶었다.그제야 양예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감격에 겨운 얼굴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이때 전동하의 말을 떠올린 소은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런데 정말 그쪽은 아이를 학대한 적이 없는 건가요?”소은정의 질문에 양예영의 얼굴에 의아함이 실렸다.“당연히 없죠. 솔직히 일 때문에 바빠서 1년에 집에 몇 번 못 들어가요. 아이와 만나는 시간도 별로 없는데 학대라니요.”양예영의 대답에 소은정은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절차는 제가 알아서 밟을 테니까 제 연락 기다리세요.”그렇다면 아이를 학대한 건 장건우거나 아이를 케어하는 시터겠어...“네. 저도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을게요. 대표님, 대표님께서도 하루빨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귀여운 아이 낫길 바랄게요...”미소를 지으며 덕담 아닌 덕담을 하는 양예영의 말에 소은정의 눈동자에 경멸이 실렸다.하, 자기 딸 제대로 책임지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출산을 권해?목적을 이룬 양예영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SC그룹이라면 아이의 뒤를 봐준다면 제아무리 장건우라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양예영의 생각이었다.네 새끼 구하려고 내 딸을 희생시키려고? 꿈 깨시지, 장건우!잠시 후 우연준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대표님, 잃어버린 기기는 역시 연구팀 조기형 팀장 집에 있었습니다. 기기는 회수했고 회사 명의로 조기형 팀장을 고소할 예정입니다.”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뭔가 떠올린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아, 장건우 대표에게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이 있나요?”흠칫하던 우연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네. 전에 소은호 대표님 명령으로 장건우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알게 되었죠.”그럼 양예영이 적어도 거짓말은 안
소은정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어느새 그녀의 맞은 편 좌석에 앉은 윤시라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 대학교 때 친구들 만난 게 얼마만인지 몰라.”친한 척 다가오는 윤시라의 태도에도 소은정은 싱긋 미소를 지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이때 웨이터가 다가와 윤시라와 소은정의 컵에 레몬티를 따라주고 소은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밥 먹으러 온 거야?”이만 좀 가지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낯선 사람, 더군다나 향수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는 낯선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상상만 해도 소은정은 속이 울렁거렸다.“응. 해외에서 일하다 국내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어. 한국에 친구도 얼마 없고 어떻게 지내나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널 만났네. 요리 주문했어? 합석해도 돼? 내가 살게.”미간을 찌푸린 소은정이 거절하려던 그때 윤시라가 한발 빠르게 웨이터를 불렀다.하, 이게 무슨 붙임성이래...추천 메뉴를 주문한 윤시라가 소은정에게도 메뉴판을 건넸다.“먹고 싶은 거 마음껏 시켜. 내가 산다니까.”불쑥 나타나 온갖 친한 척은 다해대는 윤시라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먼저 사겠다고 말까지 했으니 소은정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소은정이 미소를 지으며 웨이터에게 말했다.“메뉴판에 있는 거 전부 다 주세요.”순간 윤시라의 표정이 움찔했다.“전부 다? 다 먹을 수 있겠어?”“아, 같이 온 사람도 있어서. 부담되면 내가 살게.”하지만 자존심 센 윤시라가 뱉은 말을 다시 거두어 들일 리가 없었다.하, 재벌 2세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 가격 한 번 안 보고 주문하네.“부담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그 정도는 쓸 수 있지.”순간 소은정의 눈동자가 묘한 빛을 내뿜었고 피식 미소를 지었다.유난히 정교한 화장과 의상... 윤시라라고 주장하는 이 여자는 뭔가 목적을 가지고 그녀에게 접근했음을 소은정은 직감했다.여자의 가장 큰 무기는 핸드백, 역시나 윤시라는 샤넬 신상백을 들고 있었다.물론 소은정이 든 한정판 에르메스와
레몬티를 한 모금 마신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그러게. 내 팔자가 그런 걸 어쩌겠어?”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소은정은 벌써 불쾌해지기 시작했다.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대표가 어떤 마음인지 알긴 해? 주가가 조금만 흔들려도 잠도 안 오고 밥도 안 들어간다고! 대표 자리가 얼마나 사람 피말리는 자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소은정의 시큰둥한 대다에 말문이 막힌 윤시라는 웃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연락처라도 교환할까? 앞으로 자주 연락하면서 지내자...”순간 소은정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잠깐 망설이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윤시라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너무나 궁금한 소은정이었다.소은정의 카톡을 추가한 윤시라는 전동하를 향해 매력적인 눈웃음을 지었다.“저희도 카톡 추가하는 게 어때요?”“아, 아닙니다. 전 카톡 잘 쓰지도 않는데요 뭘.”전동하의 거절에 윤시라는 턱을 괸 채 애교섞인 눈으로 소은정과 전동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에이. 요즘 카톡 안 쓰는 사람도 있나요? 설마 은정이가 다른 여자랑은 문자도 보내지 말래요? 우리 은정이가 그렇게 쪼잔한 사람일 리가 없는데...”“그래요. 추가해 둬요.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잖아요.”소은정까지 옆에서 부추기니 난처한 표정을 짓던 전동하 역시 휴대폰을 내밀었다.그리고 소은정은 자연스레 전동하의 채팅 화면을 힐끗 바라보았다.방금 전 카톡을 추가한 윤시라는 바로 전동하에게 하트를 날리는 이모티콘을 보낸 상태였다.하지만 먼저 추가한 그녀의 카톡은 감감무소식인 상태, 소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때 전동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주문은 했어요?”“아, 네. 시라가 사겠다고 해서요. 우리 회사 직원들 것까지 다 시켰죠 뭐.”“그럼요. 우리가 몇 년지기 친구인데요.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이 정도는 쓸 수 있죠. 정 마음 쓰이면 다음에 네가 사면 되잖아.”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을 잡는다?소은정이 어색하게 웃고 그 순간의 표정을
윤시라의 손길에 전동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얼굴은 불쾌함으로 가득했지만 소은정의 지인이라는 생각에 억지로 화를 억눌렀다.“괜찮습니다. 잠깐 실례할게요.”전동하가 소은정을 향해 말하고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가 성큼성큼 화장실로 향해 걸어가고 윤시라는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일어섰다.“난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나 몰라. 은정아, 남자친구 화 많이 난 건 아니지?”여유롭게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그럴 리가.”아마 화낼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다시 자리에 앉은 윤시라는 한참을 안절부절 못하다 벌떡 일어섰다.“안 되겠어.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내가 가볼게. 은정아, 잠깐만 혼자 있어.”윤시라의 말에 눈썹을 치켜세운 소은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윤시라의 진짜 타깃이 누군지 이제야 깨달은 소은정이었다.잠시 후, 웨이터가 난처한 표정으로 다시 다가왔다.“고객님, 친구분께서 이쪽에 앉은 여성분 때문에 난처한 상황이신 것 같은데 안 가보셔도 괜찮겠어요?”웨이터의 말에 흠칫하던 소은정이 와인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아, 알려줘서 고마워요. 지금 바로 가볼게요.”웨이터까지 못 봐줄 정도면 도대체 어느 정도로 뻔뻔하게 들이대고 있는 거야?정교한 골동품과 그림들로 장식된 긴 복도를 지나 화장실로 향하던 소은정의 귓가에 차갑게 굳은 전동하의 목소리가 들렸다.“은정 씨 친구라고 하지 않았나요? 진정 하세요.”“저 때문에 옷이 더러워졌잖아요. 그냥 옷 씻겨드리려는 건데... 오해하신 건 아니죠? 그리고... 은정이 주위에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오늘은 동하 씨가 남자친구지만 내일이면 동하 씨 얼굴도 기억 못할 걸요? 우리 대학교 동기들도 다 은정이 싫어했어요. 전 남편 앞에서는 청순한 척하는 것 같던데 사실은 여우...”전동하가 못 들어주겠다는 듯 윤시라의 말을 잘라버렸다.“윤시라 씨, 은정 씨 친구라니까 저한테 와인을 쏟은 건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은정 씨를 모욕하는 말은
소은정의 알쏭달쏭한 말에 윤시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소은정은 들고 있던 와인을 정교하게 세팅된 윤시라의 머리 위로 전부 쏟아버렸다.와인이 윤시라의 아름다운 원피스를 적시고 기분 나쁜 찜찜함이 온몸을 휘감았다.창백해진 얼굴로 비명을 지른 윤시라가 비틀거리며 뒤로 한발 물러서더니 충격 받은 듯한 얼굴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친구 남자친구인 줄 알면서 어디서 여우짓이야? 내가 그런 꼴을 보고도 가만히 넘어갈 줄 알았어?”소은정의 차가운 목소리에 윤시라의 표정도 어색하게 굳었다.“은정아, 오해야. 내... 내가 어떻게 네 남자친구한테 그런 마음을 가지겠어. 우린 친구잖아. 그리고...”하지만 소은정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앞으로 사기 치려면 상대에 대해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대학교 때 우리 전공에 여자는 나 한 명뿐이었어. 도대체 누구 사주를 받고 이런 짓을 하는 거지?”순간 분위기가 어색하게 가라앉았다.대학교 같은 과 동기라면 많고도 많을 테니 일일이 이름을 기억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다가간 건데... 여자가 한 명뿐이었다니.윤시라가 입을 벙긋거렸다.“같은 전공은 아니었는데 같은 학번은 맞아...”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윤시라의 모습에 소은정은 기가 막혔다.레이저 같은 눈빛으로 윤시라를 훑어보던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눈가 주름을 보아하니 올해 적어도 30은 되어 보이는데... 적어도 5년 정도는 선배일 것 같은데 동기라... 웃기네?”그제야 윤시라는 입을 다물었다.뭐야?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여자애인 줄 알았는데... 박수혁 대표가 빠진 데는 이유가 다 있었어!눈꺼풀에 떨어진 와인을 닦아낸 윤시라가 오히려 침착한 표정으로 대응했다.“대학교 동기가 아니라고 해도 친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나올 일이에요?”매정하다라...맑은 소은정의 눈동자에 혐오감이 스쳐지났다.“친구? 그쪽은 못 생기고 돈도 없고 멍청해 보이는데... 나 같은
어차피 소은정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정말 그런 짓을 저지른다 해도 돈으로 모든 걸 무마해 버릴 것이다.윤시라는 애원의 눈길로 전동하를 바라보았지만 전동하 역시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볼 뿐이었다.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라는 그의 신조가 아니었다면 방금 전 소은정의 뒷담화를 할 때 이미 그녀의 뺨을 날리고 싶었다.지금 소은정이 윤시라를 밀어붙이니 오히려 기분이 통쾌해졌다.전혀 그녀를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전동하의 모습에 윤시라가 이를 꽉 깨물었다.일단 내가 사는 게 먼저야.“신포그룹이에요...”극강의 공포에 눈물이 찔끔 나올 것만 같았다.순간 소은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박수혁이 보낸 거라고?”“아... 아니요. 박수혁 대표님이 보내신 건 아니에요. 그냥 제가 신포그룹 직원이라고...”윤시라는 해명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소은정은 더 이상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윤시라의 멱살을 잡고 안쪽으로 걸어갔다.윤시라는 잔뜩 겁 먹은 얼굴로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소은정의 손에 끌려 움직였다.소은정은 우연준을 비롯한 비서팀 직원들이 식사를 하고 잇는 테이블로 향했다.와인을 뒤집어 쓴 여자의 멱살을 잡고 나오는 대표님의 모습에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하지만 소은정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들고 있던 와인잔 잔해를 바닥에 던져버렸다.“다들 많이 먹어요. 모자라면 더 시키고요.”“네, 대표님.”우연준의 대답과 함께 다들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눈치껏 술잔을 들었다.“이 레스토랑 진짜 와보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여길 어떻게 빌리실 생각을 다 하셨어요. 역시 대표님!”“이것도 먹어봐요!”윤시라의 애처로운 눈빛에도 투명인간 취급하는 직원들과 웨이터의 태도에 윤시라는 절망에 잠겼다.소은정은 그렇게 윤시라의 멱살을 끌고 옆에 있는 룸으로 향했다.보따리 버리 듯 윤시라를 의자에 던져버린 소은정은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 듯 물티슈로 손을 벅벅 닦았다.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온 전동하가 자연스레 문을 닫았다.“은정 씨, 적당히 해요. 혹
박수혁의 얼굴에 실렸던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쪽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박수혁의 질문에 전동하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글쎄요. 제가 왜 여기 있을까요?”하지만 박수혁은 전동하의 질문은 깔끔하게 무시한 채 소은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무슨 일로 부른 거야?”박수혁을 빤히 바라보던 소은정이 손가락으로 룸을 가리켰다.“당신 직원이 저쪽에 있어. 그리고 당신, 좀 정정당당하게 살면 안 돼? 꼭 이렇게 역겨운 술수를 써야겠어?”소은정의 가시돋친 말에 박수혁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말이야?”요즘 신포그룹과 태한그룹의 협력건으로 인해 눈 코 뜰새없이 바쁘게 보냈는데 수작이라니. “신포그룹, 당신 그룹 맞지? 그리고 윤시라는 신포그룹 직원이고.”소은정의 질문에 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생각했다.윤시라? 누구더라? 아, 허지호가 말했었지... 한국 지사 지사장 후보 중 한 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맞아.”“그럼 됐지 뭐. 직원을 시켜서 전동하 대표를 꼬시라고 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뇌구조면 그런 추잡한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거지?”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은 성큼성큼 걸어가 룸 문을 퍽 차버렸다. 문이 열리고 처참한 모습의 윤시라를 발견한 박수혁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대표님...”윤시라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전 대표님을 도와드리려고... 전동하 대표를 유혹하면 소은정 대표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거니...”하지만 윤시라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박수혁의 호통소리가 울려 퍼졌다.“미쳤습니까?”단호하게 돌아선 박수혁은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소은정에게 설명했다.“저 여자가 독단적으로 저지른 짓이야. 난 그런 명령 내린 적 없어. 어떻게 처리하든 네 마음대로 해.”뭐야? 이 일 때문에 날 부른 거야? 전동하에 관한 루머를 퍼트리긴 했지만 내가 정말 이런 일까지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이때 윤시라가 눈물바람으로 룸에서 걸어나왔다.“대표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