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호는 생각보다 냉담한 소은정의 태도에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감정적으로 다가가기 힘들다면 새로운 미끼를 던질 수밖에. 게다가 국내에서 신포 인터네셔널과 협력하고 싶은 회사는 셀 수조차 없으니까.허지호의 말에 소은정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글쎄요. 저희가 함께 일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전동하는 두 사람은 그저 얼굴만 아는 사이라는 걸 눈치챘다. 게다가 소은정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까지 걸리자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슬쩍 올렸다.“같이 영화 보러 가기로 했잖아요. 시간 다 된 것 같은데...”이에 소은정도 장단을 맞춰주었다.“네, 가요.”그렇게 소은정, 전동하 두 사람은 허지호만 남겨둔 채 여유로운 모습으로 사라졌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허지호는 몰래 욕설을 내뱉은 뒤 들고 있던 와인을 전부 마셔버렸다.방금 전 상황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던 이한석이 한발 다가갔다.“허 대표님, 소은정 씨와 아는 사이십니까?”이한석은 박수혁의 측근이니 허지호는 별 의심 없이 대답했다.“알다 마다요. 아주 잘 아는 사이죠.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죠? 설마 태한그룹에서 일하는 겁니까?”허지호의 질문에 이한석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소은정 씨는 현재 SC그룹의 대표입니다. 그리고 박수혁 대표님의... 전 와이프시기도 하죠.”순간 허지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네?”앤과 나름 잘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한 기업의 대표이자 박수혁 대표와 결혼까지 했던 사이라니!충격 그 자체였다.허지호는 부랴부랴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내려놓고 박수혁에게 달려갔다...한편, 전동하를 따라 밖으로 나온 소은정은 몰아치는 찬바람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기가 모공 하나하나를 침투하는 듯한 기분이었다.너무 춥잖아!얼른 차로 들어가야지 발걸음을 재촉하려던 그때 따뜻한 향기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전동하가 소은정에게 코트를 버어준 것이었다.“잘 보일 수 있는 기회잖아요. 거절하진 말아줘요!”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전동하의
소은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전동하는 긴장한 듯 입술을 달싹였다.“미안해요. 제 마음을 받아달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나한테 기회는 주기로 했잖아요. 혹시... 후회하는 건 아니죠?”전동하의 질문에 소은정이 입술을 깨물었다. 왠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히터를 틀어 그런 것이라 소은정은 스스로를 설득했다.“아니에요.”빠르게 대답한 소은정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저랑 허지호 대표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궁금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질문에 전동하가 흠칫했다.“어떻게 아는 사이인데요?”하루빨리 이 애매한 분위기를 풀어버리고 싶어 소은정은 솔직하게 과거 있었던 일을 전부 말했다.“허지호도 몇 년 전에는 신포 그룹의 팀장에 불과했었죠. 유학시절 때 신포그룹에서 인턴으로 일했었고 그때 제 팀장이었어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의 눈이 커다래졌다.너무 많은 정보량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SC그룹을 등에 지고 있는 소은정이 다른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했었다니.그리고 허지호가 단 몇 년만에 팀장에서 부대표로 승진까지 하다니.전동하는 방금 전 파티장에서의 대화를 다시 돌이켜 보았다.분명 허지호 대표는 은정 씨가 SC그룹 대표라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하지만 두 사람 그렇게 친해 보이진 않던데요?”전동하의 질문에 소은정이 코웃음을 쳤다.“허지호 대표 능력은 출중한데 권력욕이 너무 강해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랄까요? 인턴 때 파티에 참석할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쪽 클라이언트가 억지로 저한테 술을 먹이려 했죠. 상사로서 자기 부하직원이 그런 꼴을 당하는데 허지호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말리긴커녕 오히려 그쪽에 붙어서 저에게 술을 따라주더라고요. 그런 사람과 친해질 수 있겠어요?”어쩐지... 그래서 허지호를 보는 눈빛이 차갑... 아니, 경멸에 가까웠던 거구나.입을 꾹 다물고 있던 전동하가 문득 물었다.“그래서요? 설마 그 술 다 마신 건 아니죠?”걱정스러운
어차피 시간 떼우기용이니 소은정도 딱히 개의치 않았다.시커먼 영화관으로 들어간 소은정이 주위를 더듬거리며 물었다.“몇 열이에요?”하지만 전동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때 광고 시작과 함께 영화관이 조금이나마 밝아지고 그제야 전동하는 두터운 티켓 뭉치를 꺼냈다.“아무거나 골라봐요.”뭐야? 전 좌석 티켓을 다 산 거야?소은정의 눈이 커다래지고 전동하가 해명을 이어갔다.“우리가 같이 영화를 보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다 사버렸어요.”소은정이 아무리 그의 마음을 거절해도 항상 그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주는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정은 가슴이 따뜻해졌다.소은정은 고개를 숙였다. 전에 그녀를 이용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던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이 느껴졌다. 저런 사람이 날 이용할 리가 없잖아.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가 나쁜 사람이라 다른 사람도 그렇다고 생각했나 봐...콧등이 시큰해지는 느낌에 소은정이 급히 고개를 들었다.“전 대표님, 이렇게 자상하신데 정말 모태솔로라고요?”소은정의 질문에 흠칫하던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왜요? 안 믿겨요? 자상이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들을 키우다 보면 자연스레 자상하게 변한답니다.”“글쎄요. 마이크는 핑계고 전 대표님은 원래 그런 분이신 것 같은데요?”“하하. 그래도 은정 씨가 제 과거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아 기쁘네요.”진지한 전동하의 눈빛에 소은정은 왠지 빨려들어갈 것만 같아 고개를 홱 돌렸다.그리고 영화를 가장 편하게 볼 수 있는 중간 자리로 향했다.영화가 시작되고 “한”이라는 글씨와 함께 핏빗 효과가 스크린을 꽉 채웠다.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전동하를 돌아보았다.“공포영화네요?”뭐야. 요즘 공포영화를 보는 게 대세인가? 이렇게 한정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의지력을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인 영화라고 생각하나? 박수혁은 그렇다 치고 전동하 대표도 그럴 줄은 몰랐네.하지만 전동하 역시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일본 영화라고 했는데..
허접한 특수효과와 개연성 없는 스토리에 헛웃음을 터트리던 소은정이 전동하에게 영화 내용을 불평하려던 그때,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는 눈을 꼭 막고 있는 전동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뭐야? 이게 무서워?소은정은 의아할 따름이었다.“전 대표님, 괜찮으시죠?”소은정의 목소리에 손을 내린 전동하는 짐짓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네, 괜찮아요.”하지만 그런 전동하의 모습은 소은정은 왠지 귀엽게 느껴지며 웃음이 새어나왔다.“저 문 당겨야 열리는 것 같은데... 죽어라고 밀기만 하니까 안 열리지. 안 그래요?”소은정이 스크린을 가리키고 전동하가 고개를 돌린 순간,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전동하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의자 손잡이를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떨림이 소은정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그... 그러네요.”전동하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렇게 무서우면 안 봐도 돼요...”“아니요.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억지로 해명을 하던 전동하가 의아한 눈길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그런데 은정 씨는 하나도 안 무서운가 봐요?”“아, 전에 은해 오빠 따라서 공포영화 촬영현장에도 가보고 그랬 거든요. 저런 장면들을 어떻게 찍는다는 걸 알고 나니까 별로 안 무섭더라고요.”고개를 끄덕이던 전동하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런데 소은해 씨가 저런 공포영화에도 출연했었나요?”“그럴 리가요. 오빠가 이미지에 얼마나 신경 쓰는데 B급 공포영화에 출연할 리가 있겠어요?”영화관에는 두 사람뿐인지라 소은정과 전동하는 가끔씩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소은정은 전동하가 비록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눈동자는 아래쪽을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안 무서운 척하기는, 큭.전동하에게는 영겁 같았던 2시간 흐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에야 전동하는 몸에 힘을 풀 수 있었다.음료를 사서 돌아온 소은정은 영화관 입구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있는 전동하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참,
말을 마친 소은정은 소호랑을 안은 채 2층으로 올라갔다.마침 2층에서 내려오던 소은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늦었네. 파티는 진작 끝나지 않았어?”“볼일이 있어서. 아, 오빠. 오늘 파티에서 있었던 일 있었지?”도처에 인맥들을 두고 있는 소은호는 파티가 끝나기 전에 이미 신포그룹이 박수혁 소유라는 걸 이미 안 상태였다.물론 놀라운 일이었지만 별로 충격받지 않은 표정이었다.소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너 전에 거기서 인턴으로 일한 적도 있지 않아? 그 사람들은 모르지?”“박수혁은 모를 거야. 허지호 대표는 알아. 인턴할 때 내 팀장이었거든.”“알아도 상관없어. 뭐 트집잡힐 일은 아니니까.”잠간 고민하던 소은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태한그룹은 지금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야. 아마 단기간 안에 평온함을 되찾기는 힘들 거야. 박씨 가문 방계 친척들도 하루 사이에 지분을 모두 잃었으니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우리는 괜히 참견하지 말고 지켜보자.”소은정 역시 소은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 소은호는 이 모든 게 박수혁의 계획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박씨 가문 방계 친척들은 박대한과 박수혁이 손을 잡고 방계 친척들이 가지고 있던 지분을 전부 빼앗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아마 큰 내분이 일지도 모르겠어...미간 사이를 꾹꾹 누르던 소은호가 또 한 마디 덧붙였다.“참, 장건우 대표한테서 몇 번이나 연락이 왔었어. 물론 아직 계약은 체결하지 않은 상태고. 사생활 문제도 있지만 제품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소은호의 말에 소은정의 눈이 커다래졌다.장건우의 인성은 차치하더라도 공장이 생산하는 퀄리티는 업계 최고 수준이었으므로 그 동안 SC그룹과 장기간 협력할 수 있었다.가뜩이나 장건우의 사생활 문제로 협력이 꺼려지는 상황에서 퀄리티까지 떨어졌다면 더더욱 함께 일할 필요성이 없어졌다. 이 바닥은 말 그대로 적자생존, 매일 수많은 기업들이 우후죽순 치고 올라오는데 굳이 별로인 그룹
비록 현재 직장에서는 남녀평동을 추구하고 있지만 정작 승진 문제에서는 대부분 먼저 남성을 먼저 고려하는 게 관례나 마찬가지였다.박수혁이 침묵하자 허지호는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전 윤시라 씨를 더 추천합니다. 일처리도 매끄럽고 20대에 그 정도 커리어를 쌓는 것도 힘들어요. 그리고 20대 여성 지사장, 대외적으로 홍보하기도 좋고 기사들이 한국 지사에 관해 기사를 쓰기도 좋을 겁니다.박수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윤시라가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왔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 생각합니까? 그 정도 잔머리와 강성호의 능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군요.”순간 허지호의 표정이 살짝 굳고 몇 초간의 침묵이 어졌지만 잠깐 뒤 바로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이 바닥에서 성접대는 흔히 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 그러니까 앤이 생각나네요... 대표님 전 와이프라고 했던 거요?”허지호의 말에 박수혁이 홱 고개를 들더니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 보았다.“누구요?”“앤이요. 지금은 SC그룹 대표라던데. 전에 신포그룹 유럽지사에서 인턴으로 일했었거든요. 그때 제가 바로 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벌 2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요. 재벌 2세와 인턴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안 어울리잖아요?”허지호가 혀를 내둘렀다.“소은정이? 신포그룹에서 일했었다고?”박수혁의 차가운 목소리에 허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두 분 예전에 부부셨다면서요. 모르셨습니까?”고개를 젓던 허지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예전 일을 술술 읊어댔다.“그해 수많은 인턴들 중에서도 앤은 가장 출중했습니다. 예쁘고 능력도 출중하고 순발력도 좋고 일에 대한 욕심도 있고요. 그래서 집중 타깃으로 육성할 생각이었고 어딜 가든 앤과 함께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한 클라이언트와의 저녁 약속에서 술에 취한 클라이언트가 술을 강요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계약도 곧 체결을 앞두고 있고 그냥 한 모금만 마시라고 눈치를 줬었죠. 그리고 혹시 술에 약이라도 들었을까 봐 제가 직접 술을 따라주기까지
SC그룹.소은호가 다시 회사로 돌아오니 소은정도 부담이 많이 사라진 기분이었다.소은정은 사무실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파일을 확안히고 있었다.점심 때도 되었겠다 밥이나 먹으려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우연준이 들어왔다.“대표님, 양예영 씨가 오셨습니다.”양예영? 미간을 찌푸리던 소은정은 골프 클럽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안 만날 거예요.”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을 나서려던 그때 양예영이 문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선글라스에 마스크, 목도리... 얼굴에 틈 하나 드러내지 않은 모습이 왠지 웃겼다.나 연예인이오 광고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그 모습에 소은정의 얼굴에 불쾌함이 피어올랐다.“경비원 불러요...”소은정이 이렇게 매정하게 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전에 좋은 마음에서 도와주려 했는데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나몰라라 도망간 걸 생각하면 아직도 괘씸했다.그리고 서로 아이를 학대한다는 양예영, 장건우 두 사람의 주장 중 어느 쪽이 맞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어차피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허둥지둥 사무실로 들어온 양예영이 다급하게 선글라스를 벗으며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대표님, 5분만요. 제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대표님 도움이 필요해요.”“아니요. 전 도움을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도와주지 않는다는 주의라서요.”소은정의 말에 양예영이 우물쭈물 대답했다.“그건... 장건우 쪽 사람들이 쫓아올까 봐 도망쳤던 거예요. 그리고 그 뒤로 바로 촬영에 들어갔고요. 정말 죄송합니다.”양예영의 변명에도 소은정은 피식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알았으니까 이만 나가주세요.”하지만 양예영은 초조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SC그룹은 지금 장건우의 공장과 계약을 맺은 상태죠. 그 계약 계속 진행하면 안 돼요.”그제야 소은정은 고개를 들더니 손을 저어 우연준을 내보냈다.사무실에 소은정, 양예영 두 사람만 남게 되고 소은정은 여유롭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내가 장건우와의
게다가 테스트 제품을 빼돌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개발팀 팀장뿐이라는 생각에 소은정의 표정이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했다.감히 내 눈꺼풀 아래에서 도둑질을 해?장건우...“제 말을 못 믿으시겠으면 확인해 보세요. 지금 그 기기 하나가 빌 걸요? 제가 아는 바에 따르면 지금 개발팀 팀장 집에 있을 거예요.”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든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설마... 그쪽에서 제품을 훔치길 기다렸다가 저에게 온 건 아니겠죠?”소은정의 말에 정곡을 찍힌 양예영이 흠칫하더니 고개를 숙였다.“네. 맞아요. 괜히 먼저 말했다면 대표님께서도 제 말을 믿지 않으셨겠죠...”기가 막혀 코웃음을 치던 소은정이 우연준을 호출했다.“회사 신제품이 도난당했어요. 범인은 개발팀 팀장이니까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팀장으로서의 모든 권한은 정지시키도록 해요.”양예영을 힐끗 바라보던 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그제야 소은정은 휴대폰을 양예영에게 돌려주었다.“양예영 씨가 한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을까요?”소은정의 태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양예영이 말했다.“아니에요. 대표님께서 먼저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은혜를 갚는다고 생각할게요.”“그래요? 그럼 그런 걸로 알게요.”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솔직하게 말 안 한다 이거지? 그러든가. 어차피 급한 건 그쪽일 테니까.예상과 다르게 나오는 소은정의 모습에 양예영은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우물쭈물 말을 이어갔다.“만약 대표님께서 제 아이를 해외로 보내신다면...”양예영의 말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글쎄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양예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대표님, 장건우는 이미 아이가 있어요. 그런데 왜 자신의 사생아한테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걸까요? 사생아라면 숨기는 게 맞지 않나요?”그러니까. 나도 그게 이상했어.드디어 소은정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지금 장건우의 아이는 급성 백혈병을 앓고 있어요. 살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