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울던 강서진은 진작 통화가 종료된 걸 발견하고 휴대폰을 내팽개쳤다.한편, 통화를 마친 박수혁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오한진에게 말했다.“오늘 종방 파티에서 은정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 줘요.”박수혁의 분부에 오한진은 하던 일을 제쳐두고 바로 대답했다.“네, 대표님.”오한진이 사무실을 나서고 휴대폰을 바라보던 박수혁은 소은정의 SNS로 들어가봤지만 여전히 텅텅 비어있는 걸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왜 사진을 안 올리는 거야.”잠깐 망설이던 박수혁은 카톡창에 문자를 적기 시작했다.“네가 너무 보고 싶어. 뭘 보든 네 얼굴이 아른 거려.”크으... 그가 봐도 달콤함 한도를 초과한 멘트였다. 과거의 무정하고 차갑던 박수혁이 아니라고 다시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박수혁은 바로 문자를 전송했다.10초... 30초...여전히 묵묵부답인 휴대폰에 박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자는 건가?또다시 망설이던 박수혁은 대화창에 “잘자”라고 적은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하지만 뒤 따르는 글귀에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친구가 아닌 상대에게 문자를 보낼 수 없습니다.이때 눈치없이 이한석이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대표님, 저희 이제 그만 퇴근해도 될까요?”하지만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은 박수혁의 표정에 이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안 된다고요? 알겠습니다.”사무실 문을 꼭 닫고 나온 이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오후까지 직원들에게 커피에 디저트까지 쏘던 박수혁이 왜 또 기분이 나빠진 건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차라리 항상 굳은 표정으로 있던 예전이 그리워질 정도였다.얼마 후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알아낸 오한진이 사무실로 달려들어와 자초지종을 전부 얘기해 주었다.“도련님도 참 대단하시네요. 여자 마음을 아주 잘 아시는데요?”박우혁 반이라도 따라갔다면 소은정이 진작 넘어갔을 텐데라는 생각에 오한진이 한 마디 덧붙였다.그제야 박수혁도 왠지 강서진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이런 여우 같은 조카자식 같으니.
솔직히 박수혁은 소은정이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밀려들었지만 오한진의 근거없는 자신감에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저렇게까지 확신하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걸까?그리고 소은정과의 친구 추가를 다시 요구하는 카톡창을 바라보다 오한진이 건네는 아이패드를 받아들었지만 곧 바로 다시 던져버렸다.“아, 안돼. 이런 건 보고 싶지도 않다고.”소은정을 위해서라면 별도 달도 따다줄 수 있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아깝지 않았지만 저딴 대사를 하는 건 도저히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넌 내가 만났던 여자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야.”“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었는데 널 보는 순간, 남은 건 이것 한 마디뿐이야. 사랑해.”“화난 거 알아. 그런데 이렇게 늦게까지 나랑 얘기해도 괜찮아? 남자친구 화 안 내?”전부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들에게 보내는 애매한 멘트들이었다. 한편, 박수혁이 강하게 거부감을 보이자 오한진은 발까지 동동 구르며 설득을 시작했다.“대표님, 전동하 대표가 은정 대표님 본가와 가까운 SY 타운 구매하신 거 아시죠? 이건 장기전으로 넘어갈 계획인 거라고요!”하지만 오한진의 말에 박수혁의 입가에는 왠지 모르게 의기양양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은정이 오피스텔 위층, 아래층 옆집까지 다 내 명의인데?”“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요즘 은정 대표님은 본가에서 지내시잖아요!”오한진의 말에 박수혁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그럼 그 본가 땅을 사버릴까?”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 집에서 그 땅을 팔 리가 없지.한편 아직도 자존심을 채 내려놓지 못한 대표의 모습에 오한진은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졌다.“대표님, 지금 저희는 압도적으로 전동하 대표한테 밀리고 있어요. 적어도 은정 대표님은 전동하 대표를 더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다고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연민의 감정에서 사랑으로 번지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순간 박수혁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오한진을 노려보았다. 그 포스에 눌린 오한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대표님,
국자를 쥐고 있던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고 오한진을 한참 동안 노려보던 박수혁은 결국 주방을 나가버렸다.저런 중2병스러운 소설은 도대체 어디서 찾은 거야!그리고 남주는 기업 대표라면서? 저런 무례한...!박수혁의 뒤를 따라 달려나온 오한진이 설명을 시작했다.“대표님, 작가가 기업 대표의 삶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물론 굳이 비교하자면 대표님이 남주보다 훨씬 더 멋지시죠. 그런 디테일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하지만 박수혁은 더 이상 오한진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듯 서슬 퍼런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꺼져!”“네. 일단 꺼지겠습니다. 좀 더 정상적인 소설로 찾아올게요.”뒤뚱거리며 자리를 뜨는 오한진을 바라보던 박수혁은 속에서 천불이 이는 기분이었다.터벅터벅 방으로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쉬던 박수혁은 겨우 이성의 끈을 잡은 채 휴대폰을 켰다.소은정에게 문자를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친구 요청 메시지였다.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외로움이 그를 휘감았다.이렇게 은정이를 또다시 잃게 되는 건가?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그래, 좀만 참아보자... 은정이와 다시 화해할 수 있다면 역겨운 소설 따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읽어주겠어.큰 다짐을 한 듯한 박수혁은 다시 음성 파일을 클릭했다...소은정의 본가.집으로 돌아온 소은정과 김하늘은 오늘 있었던 일을 공유하기 시작했다.요즘 소은해는 김하늘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잠자는 시간 말고는 그녀를 밀착 경호하는 중이었다.뭐 그 덕분에 윤지훈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 모양이었지만.나란히 침대에 누워 마스크 팩을 하던 그때, 김하늘이 문득 말했다.“그나마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오빠한테 신세진 게 너무 많은데...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김하늘의 말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소은해 그 인간이 좋아서 하는 거야. 이 바보야...“마음에 담아두지 마. 소은해가 안 했으면 내가 했을 테니까. 그리고 은해 오빠 너 좋아하잖아. 오히려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연락을 받은 우연준이 바로 박수혁을 맞이했다. 박수혁은 얼굴에 철판이라도 붙인 건지 접객실도 아닌 대표 사무실 문 앞을 지키고 있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박수혁은 유리창 너머 회의실에 앉은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정교한 화장에 능숙한 일처리, 자신만만한 미소에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화려한 미모임에도 그녀의 미소는 부드러움보다는 왠지 모를 날카로움이 느껴져 직원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그 순간 박수혁은 새삼스레 다시 소은정에게 반하고 말았다.그녀의 부드러움과 강함이 그녀의 지혜와 용기가 박수혁을 걷잡을 수 없이 빠지게 만들었다.그와 함께했던 3년 동안 날카로움을 감추고 모든 반짝임을 감추고 살았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욱신거렸다. 아마 소은정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3년이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결혼 생활을 후회하고 있는 거고.옆에 서 있는 우연준은 박수혁을 쫓아버릴 수도 없고 안절부절 못할 따름이었다. 다른 직원들도 남다른 포스를 내뿜는 박수혁의 눈치만 바라보느라 업무 전체가 마비 상태였다.20분 뒤, 회의가 끝나고 각 부서 부장들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섰다.“대표님은 너무 직설적이셔. 은호 대표님보다 훨씬 더 무섭다니까...”“지금 우리 그룹 실세는 소은정 대표님이야. 줄 잘 서야 해.”모두가 나선 뒤에야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며 회의실을 나서던 소은정은 어느새 회의실 문앞까지 다가온 박수혁을 발견하고 흠칫했다.이 남자가 왜 여기에?“굿모닝.”뻔뻔하게 아침 인사까지 건네는 박수혁을 무시하고 소은정은 우연준을 노려보았다.하지만 우연준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도 전 박수혁이 먼저 선수를 쳤다.“일 얘기 하러 온 거야.”이 한 마디를 남겨둔 채 박수혁은 먼저 그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뭐 저딴 게 있나 싶어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은 들고 있던 자료를 우연준에게 넘겨주었다.“커피 두 잔 준비해 줘요.”“네.”소파에 앉은 채 사무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박수혁은 이 방의 주인인 듯 여유로웠다.
왜 저러나 싶어 박수혁의 행동을 관찰하던 그때 박수혁이 보온병을 들고 다가왔다.제비집 수프를 컵에 따르는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의 긴 손가락 덕분에 왠지 아름다운 안무처럼 느껴졌다.“먹어 봐.”예전과 먼가 달라진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콕 집어 어디가 달라졌는지는 말하기 힘들어 더 답답했다.“오 집사님이 하신 거야?”긴 속눈썹을 늘여트린 채 제비집 수프를 바라보던 박수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응...”하지만 입맛이 없었던 소은정은 수프는 손도 대지 않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친구 삭제한 거 말고 다른 할 말 있어?”대놓고 이만 꺼지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소은정의 태도에 박수혁의 눈동자가 살짝 반짝였다.“거성 프로젝트 추진을 더 가속화할 생각이야. 독일 기술팀을 스카우트했거든. 다음 달 쯤에 도착할 거니까 일정표부터 다시 짜자.”그제야 소은정은 박수혁의 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그 콧대높은 독일 기술팀을? 웬만한 연봉으로는 꿈쩍도 안 하는 사람들인데.소은정이 몰래 감탄을 하던 그때 박수혁이 말을 이어갔다.“그러니까 전동하 그 자식더러 얼른 미국으로 꺼지라고 해.”온갖 인맥을 동원해 기술팀을 더 스카우트한 이유는 단 한 가지, 프로젝트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전동하와 인연을 끊어내기 위해서였다.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면 소은정도 다시 흔들리지 않겠지.“전동하 대표가 미국을 돌아가든 말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한숨을 푹 내쉰 소은정의 대답에 박수혁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녀를 바라보는 박수혁의 눈빛은 용암보다 더 뜨거웠다.“내 말 무슨 뜻인지 알잖아? 전동하 대표를 차버리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줄게.”순간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오호, 세게 나오는데?박수혁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소은정은 속으로 혀를 찼다.오직 박수혁만 할 수 있는 보장이겠지.어제 밤새 오한진이 준 소설을 읽으며 박수혁이 깨달은 건 한 가지!이딴 방법은 소은정에게
박수혁의 질문에 소은정은 침묵했다.박수혁 이 개자식, 설마 여기에 이상한 독 같은 거 넣은 건 아니겠지?이때 마침 우연준이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두 분 커피 좀...”소은정은 우연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커피잔을 낚아채 원샷을 해버렸다.강렬한 커피향이 제비집 수프의 짜고 쓴 맛을 덮어버린 뒤에야 소은정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우아하게 커피잔을 내려놓았다.한편 박수혁의 굳은 표정에 우연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커피 맛있네요. 한 잔 더 부탁해요.”소은정의 미소에 우연준의 시선은 자연스레 책상 위에 놓인 제비집 수프로 향했다. 워낙 눈치가 빠른 우연준인지라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린 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우연준이 사무실을 나서고 티슈로 입 주위를 닦아낸 소은정은 말없이 커피만 들이키는 박수혁을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맛있네. 고마워.”그제야 박수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요리에 성공했다는 착각에서일까? 그의 눈빛은 성공의 기쁨으로 반짝였다.“그럼 사과의 의미로 앞으로 매일 만들어줄게.”순간 소은정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아, 아니야. 번거롭게 뭘.”“하나도 안 번거로워. 날 다시 카톡 친구로 추가하기 전까진 계속 배달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그제야 소은정은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터치하더니 박수혁에게 보여주었다.“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우린 공적으로 엮인 사이인데 내 마음대로 당신을 삭제한 건 내 실수였어. 앞으로 절대 이런 일 없을 거야.”소은정의 화끈한 태도에 박수혁은 오히려 어리둥절해졌다.게다가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니? 이게 바로 제비집 수프의 힘인가?다시 소은정과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밝아진 박수혁의 표정은 곧 다시 실망감으로 잠겼다.아니지. 그럼 앞으로 아침밥을 배달할 명분이 사라진 거잖아? 아쉽다.이때 마침 이한석에게서 전화가 오고 박수혁은 진지한 얼굴로 소파에서 일어섰다.사무실을 나서려는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
그제야 소은정은 고개를 들어 바텐더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뭐야? 대시인가?단정한 이목구비에 눈웃음이 매력적인 남자였다. 게다가 이 적극적인 성격까지... 아마 여성 고객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내세운 얼굴 마담 같은 존재겠지.평범한 여자라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갈지도 모르겠지만 소은정 주위에는 가장 넘쳐나는 게 미남이라 딱히 감흥이 없었다.“이 술은 제 취향 아닌데요.”“취향이 까다로우시네요?”소은정의 거듭되는 거절에도 바텐더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웃어보였다. 역시나 소은정의 예상대로 바텐더는 수려한 외모와 말빨로 여성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목표는 바로 소은정, 심플한 스타일이긴 하지만 몸에 걸친 옷과 핸드백만 더해도 수천만 원은 넘는다는 걸 눈치챈 바텐더가 이런 대어를 놓칠 리가 없었다.“이런 싸구려 술로 여자를 꼬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슨 자신감이죠?”소은정의 차가운 목소리에 흠칫한 바텐더는 어두운 불빛속에 가려진 소은정의 얼굴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눈에 익은 얼굴, 하지만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안 났다.바텐더가 더 뻔뻔하게 들이대려던 그때, 2층에서 섹시한 스타일의 여자 한 명이 내려와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소은정, 거기서 뭐해? 올라가자.”한유라의 등장에 소은정은 바텐더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2층으로 올라갔다.방금 전 섹시한 스타일의 여자는 오늘 사장이 특별히 분부한 VVIP, 게다가 방금 전 여자의 이름 분명 소은정이라고 했었지?바텐더가 생각에 잠겼을 무렵, 커다란 손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사... 사장님?”사장은 사라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방금 전, 저분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저번에도 저분 때문에 하마터면 영업 정지까지 먹을 뻔했다고.”소은정, 소은정... 설마...?순간 바텐더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설마 저 여자... SC그룹의 소은정이에요?”“그래.”한편, 한유라를 따라 2층으로 올라온 소은정은 낯
민하준의 아이디어에 다른 대표들도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한 대표님, 세 계약건에 프렌치 키스 한번이면 훌륭한 거래인 것 같은데요?”“그러니까요. 우리 민 대표님 딱 봐도 한 대표님께 반하신 것 같은데 이번 일을 계기로 특별한 관계로 발전할지도 모르잖아요.”“정 불편하시면 친구분더러 대신 참여하시라 해도 전 상관없는데...”대표들 중 누군가 소은정을 언급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소은정에게 집중되자 마음이 조급해진 한유라가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그래요.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역시 다혈질인 한유라의 모습에 소은정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유라의 옷깃을 잡은 소은정이 속삭였다.“야, 저 민하준이라는 남자 딱 봐도 노는 앤데... 괜찮겠어? 오늘만 꼭 날인 건 아니잖아.”이런 자리를 만들었다는 건 저쪽에서도 어느 정도 협력 의향이 있다는 뜻 굳이 이런 게임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게다가 민하준의 미소를 보아하니 무슨 게임을 하든 자기가 이길 거라 확신하는 모습이라 걱정이 앞섰다.하지만 워낙 고집이 센데다 알코올 버프까지 들어간 한유라가 가슴을 두드렸다.“걱정하지 마. 내가 질 리가 없잖아?”소은정을 안심시킨 한유라가 일어섰다.“그럼 간단하게 텍사스 홀덤으로 하죠? 어때요?”“좋죠.”민하준도 고개를 끄덕였다.곧 테이블에 카드가 깔리고 한유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카드를 오픈했다.포카드 7, 꽤 높은 카드에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유라가 한때 카드게임에 푹 빠지긴 했었지. 아버지한테 몇 번이나 맞고 겨우 그만둔 포커야. 민하준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길 리가 없어...하지만 민하준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로 가득했다.카드를 오픈하기 전, 여유로운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앉은 민하준이 물었다.“유라 씨, 제가 이기면 약속 지키시는 겁니다. 딴말 하는 거 아니죠?”“이건 승부니까 당연히 룰은 지켜야죠. 민 대표님이야말로 지시면 계약서에 사인 하시기 전까지 여기서 한발도 못 나가십니다.”미간을 찌푸리는 한유라의 모습에 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