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를 쥐고 있던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고 오한진을 한참 동안 노려보던 박수혁은 결국 주방을 나가버렸다.저런 중2병스러운 소설은 도대체 어디서 찾은 거야!그리고 남주는 기업 대표라면서? 저런 무례한...!박수혁의 뒤를 따라 달려나온 오한진이 설명을 시작했다.“대표님, 작가가 기업 대표의 삶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물론 굳이 비교하자면 대표님이 남주보다 훨씬 더 멋지시죠. 그런 디테일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하지만 박수혁은 더 이상 오한진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듯 서슬 퍼런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꺼져!”“네. 일단 꺼지겠습니다. 좀 더 정상적인 소설로 찾아올게요.”뒤뚱거리며 자리를 뜨는 오한진을 바라보던 박수혁은 속에서 천불이 이는 기분이었다.터벅터벅 방으로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쉬던 박수혁은 겨우 이성의 끈을 잡은 채 휴대폰을 켰다.소은정에게 문자를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친구 요청 메시지였다.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외로움이 그를 휘감았다.이렇게 은정이를 또다시 잃게 되는 건가?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그래, 좀만 참아보자... 은정이와 다시 화해할 수 있다면 역겨운 소설 따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읽어주겠어.큰 다짐을 한 듯한 박수혁은 다시 음성 파일을 클릭했다...소은정의 본가.집으로 돌아온 소은정과 김하늘은 오늘 있었던 일을 공유하기 시작했다.요즘 소은해는 김하늘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잠자는 시간 말고는 그녀를 밀착 경호하는 중이었다.뭐 그 덕분에 윤지훈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 모양이었지만.나란히 침대에 누워 마스크 팩을 하던 그때, 김하늘이 문득 말했다.“그나마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오빠한테 신세진 게 너무 많은데...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김하늘의 말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소은해 그 인간이 좋아서 하는 거야. 이 바보야...“마음에 담아두지 마. 소은해가 안 했으면 내가 했을 테니까. 그리고 은해 오빠 너 좋아하잖아. 오히려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연락을 받은 우연준이 바로 박수혁을 맞이했다. 박수혁은 얼굴에 철판이라도 붙인 건지 접객실도 아닌 대표 사무실 문 앞을 지키고 있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박수혁은 유리창 너머 회의실에 앉은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정교한 화장에 능숙한 일처리, 자신만만한 미소에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화려한 미모임에도 그녀의 미소는 부드러움보다는 왠지 모를 날카로움이 느껴져 직원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그 순간 박수혁은 새삼스레 다시 소은정에게 반하고 말았다.그녀의 부드러움과 강함이 그녀의 지혜와 용기가 박수혁을 걷잡을 수 없이 빠지게 만들었다.그와 함께했던 3년 동안 날카로움을 감추고 모든 반짝임을 감추고 살았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욱신거렸다. 아마 소은정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3년이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결혼 생활을 후회하고 있는 거고.옆에 서 있는 우연준은 박수혁을 쫓아버릴 수도 없고 안절부절 못할 따름이었다. 다른 직원들도 남다른 포스를 내뿜는 박수혁의 눈치만 바라보느라 업무 전체가 마비 상태였다.20분 뒤, 회의가 끝나고 각 부서 부장들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섰다.“대표님은 너무 직설적이셔. 은호 대표님보다 훨씬 더 무섭다니까...”“지금 우리 그룹 실세는 소은정 대표님이야. 줄 잘 서야 해.”모두가 나선 뒤에야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며 회의실을 나서던 소은정은 어느새 회의실 문앞까지 다가온 박수혁을 발견하고 흠칫했다.이 남자가 왜 여기에?“굿모닝.”뻔뻔하게 아침 인사까지 건네는 박수혁을 무시하고 소은정은 우연준을 노려보았다.하지만 우연준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도 전 박수혁이 먼저 선수를 쳤다.“일 얘기 하러 온 거야.”이 한 마디를 남겨둔 채 박수혁은 먼저 그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뭐 저딴 게 있나 싶어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은 들고 있던 자료를 우연준에게 넘겨주었다.“커피 두 잔 준비해 줘요.”“네.”소파에 앉은 채 사무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박수혁은 이 방의 주인인 듯 여유로웠다.
왜 저러나 싶어 박수혁의 행동을 관찰하던 그때 박수혁이 보온병을 들고 다가왔다.제비집 수프를 컵에 따르는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의 긴 손가락 덕분에 왠지 아름다운 안무처럼 느껴졌다.“먹어 봐.”예전과 먼가 달라진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콕 집어 어디가 달라졌는지는 말하기 힘들어 더 답답했다.“오 집사님이 하신 거야?”긴 속눈썹을 늘여트린 채 제비집 수프를 바라보던 박수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응...”하지만 입맛이 없었던 소은정은 수프는 손도 대지 않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친구 삭제한 거 말고 다른 할 말 있어?”대놓고 이만 꺼지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소은정의 태도에 박수혁의 눈동자가 살짝 반짝였다.“거성 프로젝트 추진을 더 가속화할 생각이야. 독일 기술팀을 스카우트했거든. 다음 달 쯤에 도착할 거니까 일정표부터 다시 짜자.”그제야 소은정은 박수혁의 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그 콧대높은 독일 기술팀을? 웬만한 연봉으로는 꿈쩍도 안 하는 사람들인데.소은정이 몰래 감탄을 하던 그때 박수혁이 말을 이어갔다.“그러니까 전동하 그 자식더러 얼른 미국으로 꺼지라고 해.”온갖 인맥을 동원해 기술팀을 더 스카우트한 이유는 단 한 가지, 프로젝트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전동하와 인연을 끊어내기 위해서였다.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면 소은정도 다시 흔들리지 않겠지.“전동하 대표가 미국을 돌아가든 말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한숨을 푹 내쉰 소은정의 대답에 박수혁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녀를 바라보는 박수혁의 눈빛은 용암보다 더 뜨거웠다.“내 말 무슨 뜻인지 알잖아? 전동하 대표를 차버리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줄게.”순간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오호, 세게 나오는데?박수혁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소은정은 속으로 혀를 찼다.오직 박수혁만 할 수 있는 보장이겠지.어제 밤새 오한진이 준 소설을 읽으며 박수혁이 깨달은 건 한 가지!이딴 방법은 소은정에게
박수혁의 질문에 소은정은 침묵했다.박수혁 이 개자식, 설마 여기에 이상한 독 같은 거 넣은 건 아니겠지?이때 마침 우연준이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두 분 커피 좀...”소은정은 우연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커피잔을 낚아채 원샷을 해버렸다.강렬한 커피향이 제비집 수프의 짜고 쓴 맛을 덮어버린 뒤에야 소은정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우아하게 커피잔을 내려놓았다.한편 박수혁의 굳은 표정에 우연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커피 맛있네요. 한 잔 더 부탁해요.”소은정의 미소에 우연준의 시선은 자연스레 책상 위에 놓인 제비집 수프로 향했다. 워낙 눈치가 빠른 우연준인지라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린 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우연준이 사무실을 나서고 티슈로 입 주위를 닦아낸 소은정은 말없이 커피만 들이키는 박수혁을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맛있네. 고마워.”그제야 박수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요리에 성공했다는 착각에서일까? 그의 눈빛은 성공의 기쁨으로 반짝였다.“그럼 사과의 의미로 앞으로 매일 만들어줄게.”순간 소은정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아, 아니야. 번거롭게 뭘.”“하나도 안 번거로워. 날 다시 카톡 친구로 추가하기 전까진 계속 배달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그제야 소은정은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터치하더니 박수혁에게 보여주었다.“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우린 공적으로 엮인 사이인데 내 마음대로 당신을 삭제한 건 내 실수였어. 앞으로 절대 이런 일 없을 거야.”소은정의 화끈한 태도에 박수혁은 오히려 어리둥절해졌다.게다가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니? 이게 바로 제비집 수프의 힘인가?다시 소은정과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밝아진 박수혁의 표정은 곧 다시 실망감으로 잠겼다.아니지. 그럼 앞으로 아침밥을 배달할 명분이 사라진 거잖아? 아쉽다.이때 마침 이한석에게서 전화가 오고 박수혁은 진지한 얼굴로 소파에서 일어섰다.사무실을 나서려는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
그제야 소은정은 고개를 들어 바텐더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뭐야? 대시인가?단정한 이목구비에 눈웃음이 매력적인 남자였다. 게다가 이 적극적인 성격까지... 아마 여성 고객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내세운 얼굴 마담 같은 존재겠지.평범한 여자라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갈지도 모르겠지만 소은정 주위에는 가장 넘쳐나는 게 미남이라 딱히 감흥이 없었다.“이 술은 제 취향 아닌데요.”“취향이 까다로우시네요?”소은정의 거듭되는 거절에도 바텐더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웃어보였다. 역시나 소은정의 예상대로 바텐더는 수려한 외모와 말빨로 여성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목표는 바로 소은정, 심플한 스타일이긴 하지만 몸에 걸친 옷과 핸드백만 더해도 수천만 원은 넘는다는 걸 눈치챈 바텐더가 이런 대어를 놓칠 리가 없었다.“이런 싸구려 술로 여자를 꼬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슨 자신감이죠?”소은정의 차가운 목소리에 흠칫한 바텐더는 어두운 불빛속에 가려진 소은정의 얼굴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눈에 익은 얼굴, 하지만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안 났다.바텐더가 더 뻔뻔하게 들이대려던 그때, 2층에서 섹시한 스타일의 여자 한 명이 내려와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소은정, 거기서 뭐해? 올라가자.”한유라의 등장에 소은정은 바텐더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2층으로 올라갔다.방금 전 섹시한 스타일의 여자는 오늘 사장이 특별히 분부한 VVIP, 게다가 방금 전 여자의 이름 분명 소은정이라고 했었지?바텐더가 생각에 잠겼을 무렵, 커다란 손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사... 사장님?”사장은 사라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방금 전, 저분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저번에도 저분 때문에 하마터면 영업 정지까지 먹을 뻔했다고.”소은정, 소은정... 설마...?순간 바텐더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설마 저 여자... SC그룹의 소은정이에요?”“그래.”한편, 한유라를 따라 2층으로 올라온 소은정은 낯
민하준의 아이디어에 다른 대표들도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한 대표님, 세 계약건에 프렌치 키스 한번이면 훌륭한 거래인 것 같은데요?”“그러니까요. 우리 민 대표님 딱 봐도 한 대표님께 반하신 것 같은데 이번 일을 계기로 특별한 관계로 발전할지도 모르잖아요.”“정 불편하시면 친구분더러 대신 참여하시라 해도 전 상관없는데...”대표들 중 누군가 소은정을 언급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소은정에게 집중되자 마음이 조급해진 한유라가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그래요.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역시 다혈질인 한유라의 모습에 소은정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유라의 옷깃을 잡은 소은정이 속삭였다.“야, 저 민하준이라는 남자 딱 봐도 노는 앤데... 괜찮겠어? 오늘만 꼭 날인 건 아니잖아.”이런 자리를 만들었다는 건 저쪽에서도 어느 정도 협력 의향이 있다는 뜻 굳이 이런 게임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게다가 민하준의 미소를 보아하니 무슨 게임을 하든 자기가 이길 거라 확신하는 모습이라 걱정이 앞섰다.하지만 워낙 고집이 센데다 알코올 버프까지 들어간 한유라가 가슴을 두드렸다.“걱정하지 마. 내가 질 리가 없잖아?”소은정을 안심시킨 한유라가 일어섰다.“그럼 간단하게 텍사스 홀덤으로 하죠? 어때요?”“좋죠.”민하준도 고개를 끄덕였다.곧 테이블에 카드가 깔리고 한유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카드를 오픈했다.포카드 7, 꽤 높은 카드에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유라가 한때 카드게임에 푹 빠지긴 했었지. 아버지한테 몇 번이나 맞고 겨우 그만둔 포커야. 민하준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길 리가 없어...하지만 민하준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로 가득했다.카드를 오픈하기 전, 여유로운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앉은 민하준이 물었다.“유라 씨, 제가 이기면 약속 지키시는 겁니다. 딴말 하는 거 아니죠?”“이건 승부니까 당연히 룰은 지켜야죠. 민 대표님이야말로 지시면 계약서에 사인 하시기 전까지 여기서 한발도 못 나가십니다.”미간을 찌푸리는 한유라의 모습에 민하
한유라가 민하준의 뒤를 따라나가고 문이 닫히기도 전에 민하준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유라 씨, 이제 여긴 구경꾼들도 없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와볼래요?”민하준의 품에 안긴 한유라는 낯선 민트향에 미간을 찌푸렸다.사실 민하준은 성격을 비롯해 어딜 봐도 한유라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웬만한 신인 아이돌들은 얼굴도 못 내밀 정도로 잘생긴 외모에 눈을 질끈 감았다.그래, 이건 일이야, 일. 눈 딱 감고 넘어가자.“민 대표님께서 먼저 적극적으로 나오셔야죠. 혹시 모솔은 아니죠?”한유라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게임에서는 졌지만 기세가 밀릴 수는 없는 법! 자존심 좀 긁어볼까?한유라의 말에 민하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다음 순간, 한유라가 그의 얼굴로 돌진했다.하지만 한유라가 “스킬”을 발휘하기도 전에 민하준의 혀가 그녀의 입속을 헤집기 시작했다.화려한 스킬에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점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젠장, 뭐야. 이 남자 키스 왜 이렇게 잘해?한편 룸 안에 있던 소은정은 술에 취한 한유라가 무슨 짓을 당할지 걱정돼 그녀를 막는 손들을 전부 뿌리치고 문을 벌컥 열었다.그리고 문을 연 순간 소은정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는 두 남녀 때문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은호 오빠?”소은정의 목소리에 한유라는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민하준을 밀쳐버리고 입을 벅벅 닦아냈다.그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던 민하준도 고개를 돌려 소은호와 시선을 마주했다. 잘생긴 외모였지만 고고하고 차가운 분위기에 차마 다가갈 수조차 없는 그런 남자였다.소은호는 방금 전까지 입술을 나누던 두 사람을 지나쳐 소은정에게 물었다.“다리 다 나았다고 막 나가네? 술 마시러 나왔으면서 왜 오빠한테 말 안 했어?”소은정이 해명하려던 그때 한유라가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오빠, 죄송해요. 제가 은정이를 부른 거예요. 그게...”평소라면 괜찮다고 머리라도 헝클었을 소은호
민하준의 출현에 소은정의 경계심은 극에 달했다.뭐야? 이 남자, 우리 유라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한편 한유라 또한 점점 인내심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계약건은 이제 물 건너 간 것 같고... 그렇다면 더 이상 민하준의 비위를 맞춰줄 이유도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였다.“아니에요. 오늘은 다들 많이 마셨으니까 각자 집으로 돌아가죠.”말을 마친 한유라는 소은정의 팔짱을 끼고 다시 룸으로 들어가 비서에게 뒤처리를 맡긴 뒤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물건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하지만 펍 밖으로 나온 뒤에도 한유라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하기만 했다. 도대체 어디가 안 좋은 거냐고 소은정이 물으려던 그때, 소은호가 나타났다.미소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던 한유라의 발걸음이 멈칫했다.소은호의 뒤에 또 다른 여자 한 명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아름다운 얼굴, 여리여리한 몸매, 부드러운 분위기, 누가 봐도 미인인 여자였다.“선배님...?”한유라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무표정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오던 소은호가 고개를 돌려 낯선 여자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를 부축해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봐도 선남선녀 그 자체, 차마 방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방금 전까지 창백하던 한유라의 표정이 더 일그러지기 시작했다.한편,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여자의 얼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저 여자... 어디서 봤더라?소은호 역시 한유라를 발견하고 흠칫하다 고개를 돌려 소은정에게 물었다.“은정아, 얘 기억해?”소은정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고 침묵하던 한유라가 대신 대답했다.“우리 고등학교 최고의 여신님이잖아. 우리보다 2년 선배인 한시연 언니, 몰라?”한시연...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얼굴이 기억이 안 나네...그 모습에 소은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동생을 흘겨보았다.“기억력은 너보다 유라가 훨씬 더 낫네.”수수한 들꽃 같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묘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