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은 호기롭게 상가로 들어섰고, 한유라는 물건을 사고 싶은 대로 짚으며 돈을 지불한 뒤사람을 시켜 집으로 배달시켰다.소은정이 옷을 입어보고 있자 마이크는 거울 옆 벤치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와, 너무 예쁘다……”“이 옷 너무 잘 어울려요, 그 누구도 누나 보다 예쁘진 않을 거예요!”“누나 선녀 같아요,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소은정은 칭찬을 듣자 입이 귀에 걸리며 기분이 매우 좋아져 다 사버렸다.뒤 편에 서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한 한유라는 아무 말이 없었다.이 사람은 말하는 것도 이렇게 달콤하다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하지만 소은정에게만 그렇다는 것!옆에 있던 직원은 자신이 할 말을 마이크가 다 해버려서 말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다.설마 급여가 깎이진 않겠지?아쿠아리움.쇼핑을 다 한 뒤, 마이크는 아쿠아리움에 가서 놀고 싶었다. 비록 그는 해외에 개인 아쿠아리움이 있었고, 각종 해양 생물들을 볼 수 있었지만 송화시에는 국내에서 제일 큰 아쿠아리움이 있었기에 해양 애호가라면 필수 코스였다!소은정과 한유라는 굳게 닫힌 출입문 앞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오늘은 휴관인 거 같은데, 잘 됐다. 그럼 우리 돌아갈까?”한유라는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하지만 마이크는 콧방귀를 뀌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그의 순수한 눈동자에는 집요함이 서려 있었다.“아빠한테 전화해서 연락 좀 해달라고 했어요!”그가 할 수 없는 일은 모두 전동하의 몫이었다.그러자 소은정은 그를 말리며 말했다.“잠시만, 내가 연락하면 돼.”아무래도 그녀가 주최자였기에 그녀가 나서서 하는 게 맞았다.그녀는 곧바로 우연준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히 설명했고, 5분이 채 되지도 않아 아쿠아리움 문이열렸다.소은정은 매우 놀라 고개를 내저었고, 역시 돈이면 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한 책임자가 와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가며 말했다.“소 회장님, 여기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오늘 휴관이라서 사람이 없으니 시끄러울 일
소은정과 한유라는 헤엄쳐 다니는 거대한 고래에게는 관심이 없어 조용한 곳을 찾아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곁에 있던 안내원은 이곳의 커피가 두 아가씨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이때 소은정이 눈동자를 한 번 굴리더니 말을 꺼냈다.“여기는 물고기가 없네?”정말 너무 마음에 들었다!“맞습니다, 아가씨. 이곳은 갯가재 관이라고, 별로 희귀한 종은 아니어서 참관하는 사람이 적지요, 한 번 보시겠어요?”갯가재?안내원의 기대 섞인 시선을 본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구경하기보다는 먹고 싶은 마음이 역력했다.곧 안내원이 주위의 불빛을 끄자 특수 재질로 되어 있던 바닥과 벽은 금세 푸른빛으로 물들여졌고, 매우 어둡고 깊어 보이는 것이 마치 바다의 환경과 같았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자, 안에서는 갯가재들이 헤엄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식탁 위의 갯가재들과는 달리 주변을 헤엄치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고, 품종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단순하고 소박하며 고귀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어떠한 종은 밝은 초록빛에 끝부분은 선명한 색을 띠어 사람을 매혹시켰고, 몸에는 각기 다른 무늬를 지니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깊고 끝없는 자갈투성이의 바다 밑에서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소은정과 한유라는 불이 꺼지는 그 순간, 마치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있는 듯했고, 앞에 있는 벽은 보이지 않았다.머리 위, 발아래와 벽 쪽 모두 바닷속과 똑같은 환경이었고, 그녀들이 방금 들어온 긴 복도는 해저 터널이 되었다.이렇게 입체적으로 둘러싸인 장면은 순간적으로 사람을 울린다.머리 위에서는 해초와 산호까지 떠다니고 있었고, 대해의 신비로움을 담고 있는 출렁이는 바닷소리도 들려왔다.과학기술이 더해지니 그녀들이 본 것은 마치 깊이가 만연한 바다 밑 바닥처럼 끝이 없었다.한유라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이게 갯가재 전시야?”안내원은 곧바로 전문적인 해설을 시작했다.“갯가재는 자하류로 중생대 쥐라기에 기원했는데……”한유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
박수혁은 이미 느릿느릿 걸어 들어와 조용히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안내원은 한쪽으로 물러섰으며, 처음으로 회장님이 업무를 시찰하러 온 것이었다!소은정은 뒤에 그가 온 줄 전혀 몰라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쪄서 먹을까, 볶아 먹을까?”한유라가 입을 채 열기도 전에 박수혁이 온화한 목소리로 그녀 뒤에서 말했다.“그렇게 날 먹고 싶어?”순간, 소은정의 몸이 굳어졌다.그녀는 곧장 얼굴을 돌렸고, 앞에는 또다시 보기 성가신 얼굴이 있었다.“또 너야?”“날 보니까 그렇게 좋아?”박수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어느 눈으로 날 보니까 반가워?”그는 소은정이 고른 갯가재를 생각에 잠긴 듯 바라보았다.“너 방금 날 아기라고 불렀지!”비록 갯가재에게 한 말이었지만, 그 갯가재의 이름도 박수혁이지 않나!그러니, 박수혁을 아기로 부른 것은 맞다!하하……소은정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난 갯가재를 부른 거야!”박수혁은 그녀가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걸 알았기에 더 이상 논쟁하지 않았다.마이크는 혼자서 아쿠아리움을 빼놓지 않고 다 감상했고, 미친 듯이 기뻐했다.그는 들뜬 마음으로 예쁜 누나를 찾아갔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삼촌을 보게 됐다.마이크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박수혁에게 다가가 말했다.“넌 왜 또 여기 있어?”박수혁은 이 성가신 꼬맹이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마이크는 소은정은 손을 잡고 눈웃음을 지으며 애교를 부렸다.“예쁜 누나, 옆 수족관에 있는 30m짜리 대왕 고래를 사서 이탈리아로 가져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소은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큰 고래를 비행기나 기선에 싣지도 못할 텐데, 설마 혼자 헤엄쳐 가게 하려고 하는 걸까?그녀가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박수혁이 싸늘한 말투로 대답했다.“좋지 않아.”소은정을 제외하고, 그는 누구에게나 이렇게 싸늘한 태도를 보인다.마이크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네가 뭔데 좋지 않다고 그래?”그의 아버지가 사주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소은정과 한유라는 마이크를 데리고 아쿠아리움에서 나왔다.박수혁은 그들의 뒤를 따르며 말을 꺼냈다.“왜, 갯가재 먹고 가지 않고?”소은정, 한유라와 마이크는 동시에 뒤를 돌아 대답했다.“필요 없어!”박수혁은 웃었고, 소은정은 앞으로 가서 차를 몰려고 두 걸음 더 빨리 걸으며 뒤에 있던 박수혁이 따라올까 봐 겁이 났다.그러나 몇 십 미터 떨어진 거리에 반쯤 낡은 차 한 대가 멈춰 서서 때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소은정이 눈에 보이자, 차는 순간 굉음을 내며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은정아—”뒤에서 한유라가 놀라 다급히 소리쳤다.그때, 검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소은정을 밀어냈다!1초라는 찰나의 순간에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은 땅바닥에 굴러떨어졌다.그리고 차는 한쪽 옆에 있는 나무를 들이받았고, 차 앞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주위는 적막이 가득했고, 곧바로 마이크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예쁜 누나, 다 아저씨 탓이야……”소은정은 맞은편 잔디밭으로 밀려나 팔뚝에 심한 통증이 밀려왔고, 심장이 미치도록 뛰었다.그녀는 아직 반응이 오지 않았고, 단지 거대한 힘이 그녀를 온몸으로 밀쳐낸 뒤 차량에 부딪히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길 한복판에 누워 피투성이가 된 그 남자는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했는데, 지금은……왜인지 모르게 그 순간 그녀의 가슴은 칼로 찌르는 듯 아파졌다.한유라가 재빨리 다가와 당황한 말투로 소리쳤다.“빨리 구급차 좀 불러줘요!!!”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며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너는 안 다쳤어?”주위가 마치 원을 이룬 듯 그녀는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마이크는 즉시 휴대폰을 들고 차분한 척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당황과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소은정은 비틀거리며 박수혁 곁에 꿇어앉아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옷에는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머
박수혁의 소식은 아주 빨리 다른 사람의 귀에 전해졌다.박대한은 몹시 슬퍼하며 이민혜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박수혁이 소은정을 구하기 위해 이 사달이 났다는 것을 안 두 사람은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박대한은 산 세월이 길어 얼굴에는 그 슬픔이 다 비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박수혁의 곁에 앉아 있었지만 이내 몸을 가누기 어려워 다른 사람에게 그를 부축해 나갔다.이민혜는 박수혁의 곁에서 두 시간이나 울었다.소은정은 VIP 병동의 거실에 앉아 있었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이민혜의 통곡소리를 듣고 있었다.“내가 분명 그 여자 멀리하라고 했잖아, 걔 완전 여우 같은 년이라고! 지난번 바다에 갔을 때도 큰일 날 뻔했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나니, 네 친여동생마저도 보내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흑흑, 수혁아, 빨리 깨어나렴……”이한석과 우연준은 표정 변화조차 없는 소은정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이민혜의 탓하는 소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소찬식과 소은호도 병실에 도착해 이민혜의 곡소리를 듣자 두 사람 모두 안색이 안 좋아졌다.소찬식은 자신의 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꺼냈다.“무서워하지 마, 넷째야. 일단 네 물건을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서 좀 쉬어.”그녀는 안색이 극도로 나빠 보였고, 병원에 입원한 후 지금까지 이미 이틀을 전혀 쉬지 못했다.소은정이 고개를 들자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슴이 먹먹해졌다.이한석도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맞아요, 아가씨. 의사도 박 회장님의 몸이 워낙 건강해서 뇌진탕과 다리 골절일 뿐이라서 곧 있으면 괜찮아 질거라고 했잖아요. 아가씨 몸도 챙기셔야죠.”만약 그녀의 상태를 박수혁이 보았다면 마음이 더 아팠을 것이다.이민혜는 인기척을 듣고는 화가 나서 뛰쳐나왔다.“너희들이 쉴 자격이 있기나 해? 지금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내 아들인데, 소은정이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어디서 쉰다는 말이 나와?”모처럼 구실을 얻어낸 그녀는 소은정에게 마구 쏘아붙였다.소찬식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
차 안에서소찬식은 옆에서 사진들을 꺼냈다.“경찰에서 받은 사진들이야. 경찰들도 조사하고 우리도 뒤에서 몰래 조사해야 해.”소은정은 사진을 받았다. 사진 속의 차를 본 순간 박수혁이 그녀를 밀친 장면이 흐릿하게 보였다. 차의 시속이 110까지 올랐다. 그는 어떤 용기를 가지고 여기까지 달려왔지?소은정의 손이 창백해지고 떨고 있었다.소은호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박수혁에게 두 번이나 빚을 졌어. 넷째야, 너를 쉽게 놔주지 않을 거야.”쉬우면 이렇게 두 번, 세 번이나 목숨을 걸지 않을 거다. 한 번은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소찬식은 눈을 감았다. “그래도 강압적으로 넷째의 몸을 허락할 수는 없어. 나도 이 애가 대견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건 넷째의 뜻을 따라야 해.”소은정은 입술을 만지고 심장의 박동이 한 박자씩 밀리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그들이 찍은 폐차시킨 사람이다. 소은정을 죽음의 끝까지 몰아간 사람이다. 낯선 얼굴이다. 인파 속에 있어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의 머리는 피범벅이 되었고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채 운전전에 엎드려 있었다. 마치 죽은 것처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고 소은호가 입을 열었다. “살 희망이 없다고 했어. 술을 마셔 경찰의 말로는 음주 운전이라고 하는데 계좌에 이상하게 돈이 2억이 늘었다. 해외 계좌에서 송금이 되어 출처를 몰라 사건을 종료할 수 없어.”“2억…2억으로 저의 목숨을 사려고 한 거예요??”소은정은 중얼거렸다. 2억. 2억으로 박수혁을 죽음으로 몰았다고?생각해 보면 너무 황당해 웃음이 나온다. 소은호도 입술을 만지고 말했다. “직업이 없는 술꾼에게 이번이 살면서 유일하게 2억을 만질 수 있는 기회였겠지.”“걱정하지 마. 오빠가 다 알아볼 거야. 요 며칠은 너의 안전을 생각해서 외출은 자제해. 나가면 경호원을 꼭 데리고 나가. 운이 매번 좋을 수 없으니까.”소찬식은 피곤하고 걱정스러운 눈빛으
소은정은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다시 세안을 하고 팩을 해 안색이 밝아졌다.소찬식은 아래에서 같이 밥 먹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국까지 다 마신 걸 보고 안심했다.“넷째야, 이 일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그는 말을 삼켰다.소은정은 웃었다. 표정도 자연스러웠다.“알아요, 저 아무 일 없을 거예요. 박수혁도 생명의 위험에서 빠져나왔다고 들었어요. 그에게 빚진 건 천천히 갚을 거예요. 다른 건 지금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하지만 어쨌든 이제 그를 전처럼 싫어하지는 않는다. 사귀는 건…이 생각이 그녀의 머리에서 잠깐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그저 박수혁이 무사했으면 좋겠다.말하자면 두 사람의 인연은 너무 얽혀있다. 누가 누구에서 얼마 빚졌는데 잘 모른다. 소찬식은 뿌듯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생각을 정리한 거 같다. 그는 손짓을 하자 키 크고 건장한 남성이 들어왔다. “경호원?” 소은정은 그의 옷차림을 보자 신분을 알았다.소찬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성문이라고 해. 고수야. 세계에서 일등이야. 전에 나를 따랐는데 내기 은퇴하고 낚시만 하니까 경호 받을 필요가 없어져 쉬고 있었어. 앞으로 너를 따라다닐 거야.”소은정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빠의 좋은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 “아가씨, 안녕하세요.”소은정은 웃으며 답했다. “잘 부탁드려요. 성문 씨”최상문의 험악한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인사를 했다.소은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한석이다.그녀는 전화를 받았다.“소 아가씨, 큰일이에요. 박 대표님이…”이한석은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소은정의 안색이 어두워져 전화를 끊고 바람처럼 사라졌다.그녀는 너무 두렵다. 최상문도 빠르게 차를 대기시켰다.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타세요.”소은정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차에 탔다. 최상문이 빠르게 운전하여 20분의 거리를 10분 만에 도착했다. 그녀는 박수혁의 병실 앞에 도착해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이민혜도 없고
소은정의 말에 이한석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이때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있던 박수혁이 입을 열었다.“뭐야? 지금 당장 화장이라도 해주려는 건가?”화가 난 건지 숨이 막히는 건지 박수혁의 가슴이 급박하게 움직였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살아날 뻔했지만 눈을 뜬 순간 소은정이 그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생동하게 말해주는 이한석의 모습에 욱신거리는 몸뚱어리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기뻤다.실망감으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가슴에 희망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소은정이 병실로 들어왔을 때 일부러 죽은 척 가만히 누워있었던 그였다.소은정이 그를 걱정해 주는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서...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그런데? 납골당이나 알아보라고?기가 막혀 눈을 번쩍 뜬 박수혁의 시야에 담담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소은정의 모습이 들어왔다.“어? 아직 안 죽었네?”상실감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저 아쉽다는 표정은 뭐지?도대체 뭘 바라고 몸을 던졌나 싶어 억울하고 속상했다. 입술을 꾹 깨문 채 말없이 소은정을 바라보는 박수혁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그 모습에 역시 마음이 약해진 소은정이 고개를 돌린 채 중얼거렸다.“당신이 살아서... 기뻐. 진심이야.”소은정의 말에 방금 전까지 박수혁의 얼굴에 깊게 드리웠던 우울감이 눈 녹 듯 사라졌다. 그래, 바로 이런 기분이야.박수혁은 손을 뻗어 소은정의 손목을 잡았다. 다친 사람이 힘은 어찌나 센지... 소은정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박수혁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박수혁의 몸에서 풍기는 박하향이 소은정의 코끝을 자극했다. 힘 있게 뛰는 박수혁의 심장소리는 지금 그녀가 안긴 남자가... 허상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사람임을 실감 나게 해주었다.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원망하고 저주했던 남자인데...정작 멀쩡하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안도감에 코끝이 시큰해졌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박수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