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려는 오랫동안 쌓아온 이미지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 없다 생각했다. 박수혁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성미려가 입을 열었다."수혁씨, 우리가 사귄 사실을 이렇게 부정하는 이유가 설마, 마음속에 아직도 소은정이 있기 때문이에요?"박수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한석은 불안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성미려는 회사 일에서 기삿거리를 사적인 감정으로 전환했다. 기자들에게 새로운 먹잇감을 던져준 셈이다.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박수혁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한석은 박수혁이 한 말에 얼굴을 살짝 굳히더니 이내 그의 뒤를 따라갔다.박수혁이 한 말은 다름 아닌 ‘당연하다’는 말이었다.당연히 수혁의 마음속엔 소은정이 있지만, 다른 사람이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니었다. 이한석만 박수혁의 곁에 남유주가 있고, 박수혁이 그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박수혁은 아직도 자기의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만약 박수혁이 한 대답을 남유주가 듣게 되었더라면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생각을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성미려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두 사람은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박수혁의 눈빛은 차갑고 어두웠다. 이한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표님, 마지막 질문 굳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됐습니다."박수혁은 마음 한편이 계속 불안했다. 코를 문지르던 박수혁의 얼굴에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그도 자기가 왜 그 질문에 대답했는지 알 수 없었다.어쩌면 스스로 자기에게 말한 것일 수도 있었다. 스스로 소은정에게 마음을 굳히라고 일깨워주기 위함일 수도 있다.그는 소은정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흔들렸고, 이 사실은 그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남유주라는 이름은 그의 귓가에 자주 들렸다. 그의 마음속에 남유주가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커졌고 그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소은정을 대체할 사람이 생긴다는 게 스스로 믿기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변화를 모른척했다, 하지만 독이 든 성배처럼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이끌리듯 다
남유주는 서스럼없이 꽃다발을 받았다."고마워요, 오늘 밸런타인데이라 특별히 사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어서 다행이네요."박수혁은 몸을 돌려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이 어두웠다."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에요?"남유주는 눈을 깜빡이더니 당당하게 말했다."우린 사귀는 사이도 아니잖아요."밸런타인데이는 연인들끼리 보내는 기념일이었고 그들은 연인이 아니었기에 굳이 밸런타인데이를 축하한다는것은 무척이나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싸구려 장미꽃은 받아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박수혁의 심장이 조이는 기분이 들었다, 호흡이 어려워졌고 가슴이 아팠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입술을 움직였다.하지만 남유주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녀는 꽃과 박수혁을 와락 껴안았다."그래도 고마워요, 내가 가장 외로울 때 날 받아줘서, 우린 커플이 아니지만 커플보다 더 끈끈한 사이잖아요."그녀는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풀었다. 그러더니 박시준에게 꽃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시준아, 이리 와서 나랑 같이 꽃잎 좀 따자, 이따 샤워할 때 쓸 거야."박시준은 흥미를 느끼고 달려왔다.박수혁은 방금 그녀의 포옹 때문에 아직도 가슴이 떨렸다. 뛰어대는 심장은 마치 롤러코스를 탄 것처럼 빠르게 요동쳤다. 박수혁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살짝 지었다. 그의 얼굴에 따스함이 배여 있었다.어쩌면 그녀가 한 말 때문에 설레는 것 같았다. 커플보다 훨씬 나은 사이라는 말은 그에게 둘이 더 친밀한 사이라는 것이라고 들렸다. 박수혁은 미처 준비를 못 했던 탓에, 간단하게 꽃다발을 준비한 것이었다. 다음 발렌타이데이에는 더욱 잘 준비할 생각이다. 그는 미소를 짓더니 미간을 문지르며 샤워하기 위해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적어도 이 순간에 그는 둘 사이가 많이 가까워진 것 같다고 느꼈다. 남유주와 박시준은 꽃잎을 전부 떼어냈다. 그녀는 꽃잎의 절반을 박시준에게 건넸다. 반신욕을 할 때 추가하라고 하자 박시준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꽃잎을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남
낯선 번호이기에 그녀는 가차 없이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상대는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나예요, 우리 만난 적 있죠?"상대는 오만한 여자였다. 남유주는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렸지만 애써 모르는 척 대꾸했다."아, 누구세요? 난 지금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도대체 누군데 이렇게 아는 척을 하는 거예요?"상대는 10초 동안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저 성미려예요. 우리 한 번 만나죠? 부탁할 일이 있거든요."남유주는 침대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갔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창 밖으로 보이는 짙푸른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수혁씨한테 얘기 들었어요. 미려씨 집안이 지금 위험한 상황이라고, 어떻게 변할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그러니까 미려씨랑 거리를 두라고 했거든요."성미려의 목소리가 약간 거칠어졌다."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애초에.... 걱정하지 마요, 유주 씨한테 손댈 정도로 위태롭지 않으니까, 성안그룹의 일은 유주씨와 상관없는 일인 거 알아요.""지금은 이렇게 말하겠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 줄 알고 내가 당신을 만나요?"남유주가 가볍게 대꾸했다."좋아요, 그럼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만나주겠어요? 시간과 장소는 유주씨 말에 따를게요."성미려는 말을 마친 뒤, 남유주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자 이내 한 마디 덧붙였다."수혁씨가 유주씨를 진짜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 유주 씨가 그 집안에 며느리가 될 수 있는지 와도 연관되어 있어요."남유주의 눈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두 사람은 암암리에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만약 어제 성미려가 이렇게 짜증 섞인 도발을 했으면, 그녀는 당장 전화를 끊었겠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랐고 그녀의 마음도 달랐다.박수혁의 집안에 시집가는 것은 그녀의 관심 밖이었지만, 그녀는 따뜻한 아침이 이렇게 끝나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천천히 심호
심지어 박수혁과 결혼 얘기가 오갔던 파혼녀가 그녀의 앞에 앉아 둘의 관계를 자랑하고 있는 이 상황이 우스꽝스러웠다.그녀의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녀의 가슴은 무척이나 빠르게 뛰었다. 이형욱에게 폭력을 당했을 때보다 더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감정과 고통이 그녀의 온몸에 더해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성미려는 그녀에게 천국과 지옥을 맛보게 했다. 그녀의 격한 반응을 지켜보던 성미려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이건 어제 녹음했어요.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 전부 다 들었어요. 인터넷에 공개할까 하려다가 괜히 무고한 사람한테 피해줄까 봐, 이렇게 유주 씨한테만 알리는 거예요."남유주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성미려를 바라보았다. 남유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성미려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성미려는 친근하게 웃었다."유주씨가 수혁씨에 대한 감정이 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 남자를 안 좋아할 사람이 있겠어요? 처음에는 나도 수혁씨 집안 배경이 좋아 마음이 갔지만, 얼마 못 가 그 사람을 마음에 품게 되더라고요. 절대 놓칠 수 없었어요, 그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유주 씨도 알다시피 수혁 씨는 사람 마음 가지고 노는 사람이에요. 유주 씨가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요.""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남유주는 입을 살짝 벌려 정신을 되찾았다. 그녀는 성미려가 좋은 마음으로 이런 사실을 알려줄 리 없다고 확신했다. 성미려는 원하는 게 분명했다. 남유주의 말에 성미려의 입꼬리가 더 짙어졌다."똑똑한 사람이니 잘 알 거라고 믿어요. 이미 결혼을 한번 실패한 입장이라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사람 감정이라는 건 부속품에 불과해요, 남자의 감정은 믿을 게 못 돼요. 수혁씨를 유주씨가 10 만큼 좋아한다면, 수혁씨는 유주씨에게 1만큼의 보상만 해줄 거예요. 수혁씨 마음속에는 전 처 한 명 뿐이에요. 은정 씨를 죽도록 사랑하는
성미려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남유주!"남유주는 미간을 살짝 피고 희미하게 웃었다."녹음본을 공개하려고 했다고요? 내가 상처받는 게 걱정되는 게 아니라, 수혁씨랑 은정씨한테 보복을 당하는 게 두려워서는 아니고요?"성미려의 얼굴이 순간 차갑게 변했다. 성미려는 매서운 눈길로 남유주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남유주는 훨씬 똑똑했다."내가 그쪽을 왜 도와요? 그러면 수혁씨가 날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미려씨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도 아니고, 미려씨 말대로 난 실패한 결혼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이성적이어야 하는 건 맞지만, 수혁씨와 만나기로 약속한 이상, 돈보다는 감정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그가 나한테 준 카드를 안 쓸 이유가 없는데..."남유주는 한숨을 길게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성미려를 바라보며 말했다."미려씨, 나도 미려씨 생각해서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게요, 얼른 수혁씨한테 가서 용서를 빌어요."성미려는 눈을 치켜뜨고 울먹이는듯한 눈으로 남유주를 째려보았다. 그녀는 굴복하지 않았다."얼른 가서 자수해요, 그럼 가문은 무사할 거예요. 수혁씨도 분명 봐줄 거예요, 그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깐."성미려가 소리쳤다. "내가 왜!"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뭐가 떠올랐는지 유주를 바라보았다."당신...."그녀가 알고 있는 거로 보아 박수혁도 알고 있으리라고 결정을 내렸다. 교통사고는 성미려가 한 짓이다.성미려는 등 뒤에서 갑자기 싸늘한 한기를 느꼈다. 몸이 자신도 모르게 움츠려 들었다.남유주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입구에 서 있는 남유주에게 햇살이 비춰졌다. 따스하게 그녀를 품에 감싸 안았다.하지만 그녀는 얼음창고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뼛속까지 차가웠다. 아무리 뜨거운 햇살도 그녀의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순 없었다.맞은편에 태한그룹의 빌딩이 보였다. 고층 빌딩은 하늘을 찌를 기세로 높게 솟아 있었다. 그녀는 숨 막히는듯한 위화감이 들었다.와인바로 돌아가고
"내가 이따가 시간 맞춰서 사람 보낼 테니까 그거 타고 와요. 근데 차는 어쩌고, 혼자 갔어요?""네?" "차가 우리 회사 아래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데, 그래서 근처에 있는 줄 알았거든요. 차는 어쩌고, 거길 그냥 갔어요?"박수혁의 질문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남유주는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고요한 침묵이 몇초간 흘렀고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 누구 만나러 나갔다가 깜빡하고 그냥 돌아왔어요."박수혁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나른한 목소리로 온화하게 말했다."누굴 만났기에 차 끌고 간 것도 까먹고 그냥 가요?""성미려 씨요."순간, 조용해졌다. 박수혁은 웃음기를 감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는 왜 만났어요? 그 여자가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죠?""물론이죠. 그냥 나더러 스파이가 되어달라고 하더라고요. 프로젝트 원본 계약서를 훔쳐와 달라고, 그렇게 해주면 성안그룹의 주식을 나한테 넘기겠다고 하던데... 게다가 카드까지 주겠다고 하더라고요."남유주는 성미려가 한 말을 그에게 거짓 없이 다 말했다.박수혁은 일분 간 침묵을 유지했다. 그의 숨소리가 휴대폰을 타고 들려왔다. 그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대범하기도 해라, 당장 부도가 날 판에 주식을 준다고 했다고요?""그러니까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거절했어요.""당신 생각보다 그리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네요." 박수혁은 만족스러운 듯 그녀를 칭찬했다. "잘했어요."남유주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떻게 보상할 건데요?""아, 잘했으니까 선물을 달라고요?""네, 설마 안 줄 거예요?""저녁에 경매회가 있는데, 거기에 마음에 드는 물건 있으면 말해요, 선물할게요. 이러면 되겠죠?"박수혁의 목소리에 따뜻한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남유주가 밝게 말했다. "통장 탈탈 털릴 준비 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박수혁은 끊겨버린 휴대폰을 쳐다보며 짜릿한 성취감을 느꼈다. 오늘 밤에 있을 경매회가 기대되었다.전화를 끊은 남유주는 자리에
이한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대표님, 오래만..."남유주는 디저트 몇 조각을 먹은 뒤 샴페인 한잔을 손에 들고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 한 모금 마셨다. 마실수록 정신이 또렷해졌다.창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등불은 평범했지만 아름다웠다. 애석하게도 어느 하나, 그녀의 것은 없었다.그녀의 감정은 정식적으로 카운트다운 되기 시작했다. 그녀보다 더 빠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옆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여자였고 매우 아름다웠다. 한눈에 봐도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고, 우아함이 뿜어져 나왔다."안녕하세요, 박 대표님 여자친구세요?"남유주는 순간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었다."네, 무슨 일이세요?""전 CK 그룹의 천유희라고 합니다. 박 대표님께 프로젝트 협업에 대해 문의를 드리고 싶은데, 혹시 만나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여자의 말에는 어떤 조롱이나 비아냥도 없었다. 그녀는 남유주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남유주는 이 낯선 사람이 박수혁과 너무 닮은 느낌이 들었다.남유주는 여자와 박수혁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었다."저희가 아는 사이도 아닌데, 소개는 못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수혁씨는 돈이 되는 사업에 언제나 진심이니 수혁씨를 직접 찾아가 제안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결코 거절할 사람이 아니에요."여자는 남유주의 직설적인 말에 잠시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저도 대표님을 처음 보는지라, 어떤 것을 선호하실지 몰라 이렇게 찾아왔어요. 조언대로 제가 직접 찾아가볼게요."여자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몸을 돌려 박수혁에게 다가갔다. 남유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같이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생각보다 두 사람은 잘 어울렸다.여자는 다른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박수혁 같은 사람만이 그녀와 어울렸다.남유주는 손에 든 샴페인을 훌쩍 들
남유주에 대한 신비감이 더 증폭되었고, 사람들은 남유주의 존재에 대해 더욱 궁금해했다.경매가 끝났다.박수혁은 이한석에게 차에 낙찰받은 물품들을 옮기게 했다. 그리고 남유주와 함께 밖에서 대기했다.그는 남유주의 손을 잡고 깍지까지 낀 채 내내 놓지 않았다.이런 동작은 팔짱을 끼는 것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하지만 박수혁은 다른 사람의 시선은 조금도 의식하지 않은 채 완강했다."먼저 탈까?"그는 남유주가 혹시나 찬바람에 감기가 들까 걱정되어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또 누가 찾아올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기다리는 게 어때요?"박수혁이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연 그 순간, 그의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대표님..."남유주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던 박수혁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질투하는 거였네."그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몇 갈래로 갈라진 것처럼 심장이 쿵쿵 뛰었다.그저 기분이 좋았다.천유희가 그를 쫓아오든 말든, 박수혁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그는 단지 CK 그룹과 협력할 의사가 확실히 있었고, 그래서 굳이 매몰차게 굴지 않은 것이었다. 천유희는 박수혁과 그의 옆에 있는 남유주를 번갈아 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아직 안 가셨네요. 대표님, 연락처가 필요해서요, 앞으로 회사 협력 건에 대한 연락은 전부 제가 주관할 거예요."박수혁은 천유희를 덤덤하게 쳐다보았다."이 비서한테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그의 말에 천유희는 박수혁의 거절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녀는 남유주를 향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제 직급으로 대표님과 직접적으로 협력에 대해 상의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네요, 제가 나중에 저희 아버님께 말씀해서 직접 연락하게 할게요."박수혁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다시 천유희를 쳐다보았다.CK 그룹 같은 재벌가에서 직접 비즈니스를 위해 이렇게 나서는 것은 아주 의외였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회사의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