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철이 고개를 떨어뜨렸다.“미안해.”남유주는 그의 사과가 듣고 싶지 않았다.용서는 해줄 수 있지만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고 이 화제를 계속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다.주희철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나 정말 오래전부터 선배를 좋아했어.”“그 마음 고마워. 나도 그 마음 알고 누군가가 날 그렇게 생각해 줘서 기뻤어. 그때는 매일 전남편을 죽이고 나도 같이 죽을 생각만 하며 살았거든. 누군가가 날 좋아한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어.”“그래서 너랑 진심으로 잘해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어. 난 이제 더 이상 타협하고 싶지 않아. 미안해.”그녀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주희철은 그에게 항상 존중할만한 후배였다.그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표정을 풀었다.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간 일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매달릴 수도 없었다.만약 정말 둘이 함께하게 된다면 이런 일은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그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으로 한번, 또 한번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하지만 남유주는 충분히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물질적인 풍요도 아니었고 온전히 자신의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주희철은 입안이 쓰고 쓸쓸함이 몰려왔다.드디어 희망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꺼져버렸다.그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선배. 앞으로는 귀찮게 하지 않을게.”그는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박수혁 때문이야?”남유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주희철은 긴 한숨을 토해내고는 말없이 가게를 나갔다.차라리 박수혁이라서 안심이었다.어제 그가 보인 모습은 남유주를 진심으로 좋아해서 나온 행동이었다.남유주는 주희철을 배웅하고 그 자리에 잠시 앉아 생각에 잠겼다.한수근이 그녀에게 다가오며 물었다.“얘기 잘 끝났어요? 이제 그 후배랑은 끝이에요?”남유주가 자리에서 일어
“대표님, 저 왔어요.”박수혁은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한석은 그 자리에서 멀뚱멀뚱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잠시 숨막히는 침묵이 흐르고 박수혁이 입을 열었다.“그 여자한테 연락 없었어?”이한석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누구 말씀이시죠?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핸드폰이 신경도 못 쓰고 있어요. 이러다가 저 차이게 생겼다고요.”그는 주절주절 떠들며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하지만 박수혁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남유주 말이야. 연락 없었어?”그는 혹시라도 자신이 너무 바빠 전화를 놓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이한석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는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아마 너무 피곤해서 쉬고 있었나 보죠. 사실 가게에 할 일도 많고요.”그제야 박수혁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다.“베르로 가자. 이제 퇴근해야지.”그는 그녀가 자신을 보면 분명 기뻐할 거라고 확신했다.이한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남유주 씨는 밤에 일을 하는데요.”박수혁의 표정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이한석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사실 밤일이라고 하지만 남유주 씨는 사장이니까 일은 아랫사람들 시키면 되긴 하죠. 두분은 연애 초기니까 대표님이 먼저 다가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자들은 다 떠받드는 거 좋아하잖아요.”박수혁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먼저 다가가라니?여태 여자들이 먼저 그에게 다가왔지 그가 먼저 다가간 적은 없었다.게다가 어젯밤 먼저 손을 내밀고 유혹한 것도 남유주였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는 남들과 특별한 점이 많았고 그가 다쳤을 때 신세도 졌으니 너무 거만하게 굴면 안 될 것 같았다.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한석에게 물었다.“어떻게 다가가면 되지?”이한석은 그의 이런 변화가 오히려 반가웠다. 혼자서 추측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차라리 옆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편이 더 나았다.그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예를 들자면 매일 꽃이나 작은 선물을 하거나, 불러내서 같이 식사를
박수혁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남유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표정이 어두워졌다.주변을 지키고 있던 한수근이 그를 발견하고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왔다.“박 대표님, 오랜만에 방문해 주셨네요!”박수혁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나 어제 왔었는데?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군!”한수근이 능청스럽게 말했다.“손님으로 오신 건 오랜만이라서요. 어제는 소비를 하지 않으셨잖아요. 혼자 오셨나요? 룸으로 안내할까요?”“됐네요. 아무데나 앉을게요.”한수근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그럼 카운터 쪽에 앉으실래요? 칵테일 만들어 드릴까요?”박수혁은 한수근의 안내를 받아 카운터랑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한수근이 술잔을 그에게 건네며 물었다.“뭐 드릴까요?”“아무거나요.”한수근이 웃으며 말했다.“가게에 새로운 규정이 생겼는데 대표님은 자주 오시지 않으셨으니 잘 모르시겠군요. 사장님이 직접 만든 칵테일을 주문하실 수 있지만 술 종류는 그건 우리 사장님 기분에 따라 나온답니다. 젊은 친구들은 오히려 새롭다며 좋아하더군요!”박수혁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남유주 씨가 칵테일 만들 줄도 알아요?”한수근이 정색하며 말했다.“물론이죠! 우리 사장님은 못 하는 게 없어요!”그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눈치를 줬는데도 못 알아듣다니!남유주가 직접 만든 칵테일이라는 게 요점인데!박수혁은 가격표를 훑어보고는 눈썹을 치켜올렸다.한 잔에 400만이라.적지 않은 가격이었다.남유주는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걸까?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한수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박수혁은 결국 메뉴판을 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럼 사장님 특제 칵테일로 하죠.”어차피 그에게 돈은 항상 넘쳐났다.한수근은 그제야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사장님 모셔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지금 어디 있는데요?”박수혁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위층에 있죠. 오후에 점심을 좀 많이 드셨는지 소화가 안
남유주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남자도 그 말을 들었는지 순진한 눈을 깜빡이며 남유주에게 말했다.“4백만 원이요? 누나가 한잔 사주신 거로 하면 안 돼요?”박수혁의 얼굴이 시퍼렇게 굳었다. 무슨 이런 뻔뻔한 놈이 다 있어?당당하게 공짜 술을 요구하네?그런데 남유주가 달콤한 미소를 짓더니 남자에게 말했다.“그래! 하지만 너무 많이 마시면 취한다?”말을 마친 그녀는 술잔을 남자에게 건네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박수혁은 불타오르는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하지만 남자는 눈치도 없는지 술을 한모금 맛 보더니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아저씨, 젊음이 좋죠? 누나들은 나 같이 귀여운 연하남이면 환장하거든요. 하긴, 늙고 병든 아저씨보다는 연하남이 훨씬 낫죠!”그 말은 박수혁의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그는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물었다.“지금 뭐라고 했어?”남자는 여전히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주제 파악이나 하라는 얘기였어요!”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박수혁은 손을 뻗어 남자의 숨통을 조였다. 당황한 남자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하지만 박수혁은 손을 놓기는커녕 더 우악스럽게 힘을 주었다.고작 한 주먹에 비명을 지를 거면서 사람을 자극하다니!가소롭기 그지없었다!주변 사람들이 소란을 듣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남유주가 다급히 다가와서 박수혁의 손목을 잡아당겼다.“놔요!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이 사람 손님이라고요!”박수혁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이 자식이 방금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부터 물어보지 그래요?”남유주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무슨 말을 했든 폭력은 안 돼요. 난 장사를 어떻게 하라고요? 이거 놔요!”그녀는 짜증이 치밀어서 박수혁을 힘껏 노려보았다.박수혁은 이를 갈며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남자는 남유주의 뒤에 달려가서 숨더니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울먹였다.“누나, 저 아저씨 너무 무서워요. 공공장소에서 폭력을 쓰다니….”남
박수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아직도 주희철이랑 연락하고 지내요?”남유주는 움찔하며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얘기 잘 끝냈어요.”박수혁은 그제야 인상을 폈다.그렇다면 더 이상 그의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그럼 뭐 신경 쓰이는 거 있어요?”남유주는 갑자기 지난 번에 불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그가 처음 그녀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했을 때였다.그와 함께한다는 건 달콤한 연애나 앞으로 결혼까지 염두에 둔다는 얘기가 아니었다.명분도 신분도 없이 그냥 그의 곁을 지키는 것뿐이었다.어젯밤의 달콤하고 뜨거웠던 경험은 좋았지만 아마 그는 어젯밤을 기점으로 그녀가 제안을 수락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그러니 이렇듯 당당하게 동거하자는 얘기를 꺼냈겠지.어차피 돈이 넘쳐나는 사람이니 나중에 헤어졌을 때 재산분할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남유주는 살짝 눈을 치켜뜨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그에게서 차가운 계열의 우드향과 조금 전 마셨던 레몬향이 났다.은은하면서도 취할 것 같은 향기였다.박수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남유주가 고개만 들면 그의 날카로운 턱선에 입을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그녀는 고개를 드는 대신 그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동거는 재미없어요. 필요하면 나를 찾아와요. 나도 필요하면 찾아갈게요. 하지만 너무 시선을 끄는 건 싫어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그녀는 이게 두 사람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그와의 경험은 나쁘지 않았고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할 거라 믿었다.하지만 마음으로의 소통은 달갑지 않았다.어차피 둘 다 성인이고 사랑 따위에 정력을 쏟고 싶지도 않았다.박수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필요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거죠?”“지금 머리로 생각하는 그게 맞을 거예요.”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고 촉촉한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에 약해진 박수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아름답고 청순한 얼굴이었지만 하는 행동은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
박수혁은 그녀가 카드를 받아 들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른 건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이런 식으로 보상해 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다행히 그녀는 돈을 무척 사랑했다.남유주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정말 내 스폰서가 되어줄 생각인가 봐요. 왜 이렇게 통이 커요?”박수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스폰서 아니거든요. 이상한 프레임 씌우지 말아요. 나랑 함께하면 고생할 일은 없을 거예요.”그는 그녀가 이런 식으로 자신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게 싫었다.몰래 비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들키면 솔직히 인정할 의향도 있었다. 다만 먼저 공개해서 혼란을 일으킬 필요를 못 느낄 뿐이었다.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 말했다.“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난 우리 관계를 아는 사람이 적었으면 좋겠어요.”박수혁은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사실 그도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남유주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당신 옆에 새로운 여자가 생기면 우리 관계는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의논할 여지도 없어요.”박수혁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나만 그런 거예요? 그럼 유주 씨는요?”“나도 똑같죠, 뭐!”남유주가 웃으며 말했다.“난 양다리는 안 걸쳐요.”박수혁은 갑자기 아까 어린 남자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줄곧 자신감 넘쳤지만 어쩐지 기가 죽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남유주도 예전에 자기가 아깝다는 얘기를 한 적 있었다.그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나도 양다리 걸치는 사람 아닙니다.”남유주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다른 조건은요?”그가 물었다.“만날 때 사전에 약속을 잡았으면 좋겠어요.”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람들에게 들키는 곤란한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주변에 박수혁을 주시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그녀는 화제의 중심에 휘말리기 싫었다.박수혁은 인상을 확 찌푸렸지만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니까 미리 얘기만 하면 된다는 거잖아?’그는 고개를
박수혁도 한수근을 발견했다. 전에 조사한 데 의하면 그는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였다.그래서 경계심을 느끼지 않았다. 박수혁은 그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툭 건드렸다.“금방 잠들었으니, 그녀의 휴식을 방해하지 말아요. 그리고 그녀가 깨면 식사를 잊지 말고 챙겨주세요.”“네. 그렇게 할게요”한수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술집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보아하니 한창 달콤한 연애에 빠져있는 모양이군!사장님도 연애하는군요?진심?한수근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무척 가벼워 보였다.휴식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이건 사장님의 지시다!그렇게 남유주는 점심이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심지어 스스로 깬 것이 아니고 한수근의 노크 소리에 부득이하게 깰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어리둥절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무슨 일이세요?”한수근이 허둥거리며 그녀를 바라봤다.“아래층이 물에 다 잠길 때까지 자고 있었던 거예요? 혹시 아침에 화장실을 쓰고 물을 잠구지 않은 거에요?”그는 급히 달려가 물을 잠갔다.넘쳐나던 물이 멈췄다.그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정신이 번쩍 든 남유주가 축축한 바닥상태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욕실에서 물이 넘쳐흘러 바닥까지 뒤덮었다. 비록 그것이 넓은 범위를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바닥으로 스며들어 아래층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하여 이상한 낌새를 느낀 한수근이 문을 두드렸다.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아래층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한수근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방 두 개는 이미 쓰지 못할 정도가 되었어요. 벽이 다 망가졌으니 아무래도 2일 정도 수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부주의한 그녀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였지만 면전에 대고 뭐라 할 수 없었다.그러나 남유주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침에 화장실을 쓴 사람은 박수혁뿐이었다.설마 고의로 그런 건 아니겠지?표정이 급격하게 어둬워진 그녀는 깊게 심호흡했다.“이참에 수리하죠. 뭐. 방수도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고치려던 참이었는데
눈살을 찌푸리던 박수혁이 한껏 여유로운 말투로 말했다.“됐어, 솔로들과 뭔 얘기를 해!”그는 귀찮다는 듯 한명 한명 흘기고는 몸을 돌려 유유히 사라졌다.그들은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그러다 모두의 시선이 강서진에게 집중되었다.“줄곧 너랑 함께 있었잖아. 도대체 언제부터였던 거야?”강서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나도 몰라. 요즘 아이 돌보느라 나 나름대로 바빠.”그도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그때 참지 못한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솔로 탈출했다고 바로 거만해지네? 그냥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도 여자친구가 있어. 감히 우리 앞에서 자랑질이네?”“맞아. 난 벌써 서너 번 바꿨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숨기지 않을 걸 그랬어.”“너무하네. 근데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야?”...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리저리 추측했다.그중에 강서진만 아무 말이 없다.그것은 어딘가에서 분명 들었던 목소리다. 굉장히 낯익다.만난 적 있었나?강서진은 요 근래 참석했던 자리들을 떠올렸다. 박수혁의 옆자리는 그 흔한 파트너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맞다.박시준의 생일파티.강서진의 표정이 바뀌었다.뭔가 떠오른 듯하다.소은정과 꼭 닮은 그 여자가 박수혁의 시선을 끈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강서진도 농담삼아 몇 번 찔러 보았었다.그녀라고?단지 소은정과 꼭 닮은 외모 때문에?”그는 이미 감을 잡았다. 강서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지만, 다른 이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그는 실토하지 않곤 못 배겼을 것이다.그리고 이 일이 알려지면 박수혁이 난처해질 것이다.잠시 생각에 잠기던 강서진은 비밀을 지키기로 했다.태한그룹.박수혁이 돌아오자, 이한석이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그는 박수혁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갔다.그리고 방문을 닫았다.“성안 그룹이 그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하는데 그건 언제 보낼까요?”박수혁이 그 프로젝트를 포기한 것이 성안 그룹을 동정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그를 해 한 이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