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저 왔어요.”박수혁은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한석은 그 자리에서 멀뚱멀뚱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잠시 숨막히는 침묵이 흐르고 박수혁이 입을 열었다.“그 여자한테 연락 없었어?”이한석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누구 말씀이시죠?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핸드폰이 신경도 못 쓰고 있어요. 이러다가 저 차이게 생겼다고요.”그는 주절주절 떠들며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하지만 박수혁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남유주 말이야. 연락 없었어?”그는 혹시라도 자신이 너무 바빠 전화를 놓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이한석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는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아마 너무 피곤해서 쉬고 있었나 보죠. 사실 가게에 할 일도 많고요.”그제야 박수혁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다.“베르로 가자. 이제 퇴근해야지.”그는 그녀가 자신을 보면 분명 기뻐할 거라고 확신했다.이한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남유주 씨는 밤에 일을 하는데요.”박수혁의 표정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이한석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사실 밤일이라고 하지만 남유주 씨는 사장이니까 일은 아랫사람들 시키면 되긴 하죠. 두분은 연애 초기니까 대표님이 먼저 다가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자들은 다 떠받드는 거 좋아하잖아요.”박수혁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먼저 다가가라니?여태 여자들이 먼저 그에게 다가왔지 그가 먼저 다가간 적은 없었다.게다가 어젯밤 먼저 손을 내밀고 유혹한 것도 남유주였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는 남들과 특별한 점이 많았고 그가 다쳤을 때 신세도 졌으니 너무 거만하게 굴면 안 될 것 같았다.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한석에게 물었다.“어떻게 다가가면 되지?”이한석은 그의 이런 변화가 오히려 반가웠다. 혼자서 추측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차라리 옆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편이 더 나았다.그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예를 들자면 매일 꽃이나 작은 선물을 하거나, 불러내서 같이 식사를
박수혁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남유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표정이 어두워졌다.주변을 지키고 있던 한수근이 그를 발견하고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왔다.“박 대표님, 오랜만에 방문해 주셨네요!”박수혁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나 어제 왔었는데?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군!”한수근이 능청스럽게 말했다.“손님으로 오신 건 오랜만이라서요. 어제는 소비를 하지 않으셨잖아요. 혼자 오셨나요? 룸으로 안내할까요?”“됐네요. 아무데나 앉을게요.”한수근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그럼 카운터 쪽에 앉으실래요? 칵테일 만들어 드릴까요?”박수혁은 한수근의 안내를 받아 카운터랑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한수근이 술잔을 그에게 건네며 물었다.“뭐 드릴까요?”“아무거나요.”한수근이 웃으며 말했다.“가게에 새로운 규정이 생겼는데 대표님은 자주 오시지 않으셨으니 잘 모르시겠군요. 사장님이 직접 만든 칵테일을 주문하실 수 있지만 술 종류는 그건 우리 사장님 기분에 따라 나온답니다. 젊은 친구들은 오히려 새롭다며 좋아하더군요!”박수혁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남유주 씨가 칵테일 만들 줄도 알아요?”한수근이 정색하며 말했다.“물론이죠! 우리 사장님은 못 하는 게 없어요!”그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눈치를 줬는데도 못 알아듣다니!남유주가 직접 만든 칵테일이라는 게 요점인데!박수혁은 가격표를 훑어보고는 눈썹을 치켜올렸다.한 잔에 400만이라.적지 않은 가격이었다.남유주는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걸까?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한수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박수혁은 결국 메뉴판을 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럼 사장님 특제 칵테일로 하죠.”어차피 그에게 돈은 항상 넘쳐났다.한수근은 그제야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사장님 모셔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지금 어디 있는데요?”박수혁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위층에 있죠. 오후에 점심을 좀 많이 드셨는지 소화가 안
남유주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남자도 그 말을 들었는지 순진한 눈을 깜빡이며 남유주에게 말했다.“4백만 원이요? 누나가 한잔 사주신 거로 하면 안 돼요?”박수혁의 얼굴이 시퍼렇게 굳었다. 무슨 이런 뻔뻔한 놈이 다 있어?당당하게 공짜 술을 요구하네?그런데 남유주가 달콤한 미소를 짓더니 남자에게 말했다.“그래! 하지만 너무 많이 마시면 취한다?”말을 마친 그녀는 술잔을 남자에게 건네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박수혁은 불타오르는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하지만 남자는 눈치도 없는지 술을 한모금 맛 보더니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아저씨, 젊음이 좋죠? 누나들은 나 같이 귀여운 연하남이면 환장하거든요. 하긴, 늙고 병든 아저씨보다는 연하남이 훨씬 낫죠!”그 말은 박수혁의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그는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물었다.“지금 뭐라고 했어?”남자는 여전히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주제 파악이나 하라는 얘기였어요!”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박수혁은 손을 뻗어 남자의 숨통을 조였다. 당황한 남자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하지만 박수혁은 손을 놓기는커녕 더 우악스럽게 힘을 주었다.고작 한 주먹에 비명을 지를 거면서 사람을 자극하다니!가소롭기 그지없었다!주변 사람들이 소란을 듣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남유주가 다급히 다가와서 박수혁의 손목을 잡아당겼다.“놔요!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이 사람 손님이라고요!”박수혁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이 자식이 방금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부터 물어보지 그래요?”남유주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무슨 말을 했든 폭력은 안 돼요. 난 장사를 어떻게 하라고요? 이거 놔요!”그녀는 짜증이 치밀어서 박수혁을 힘껏 노려보았다.박수혁은 이를 갈며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남자는 남유주의 뒤에 달려가서 숨더니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울먹였다.“누나, 저 아저씨 너무 무서워요. 공공장소에서 폭력을 쓰다니….”남
박수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아직도 주희철이랑 연락하고 지내요?”남유주는 움찔하며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얘기 잘 끝냈어요.”박수혁은 그제야 인상을 폈다.그렇다면 더 이상 그의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그럼 뭐 신경 쓰이는 거 있어요?”남유주는 갑자기 지난 번에 불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그가 처음 그녀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했을 때였다.그와 함께한다는 건 달콤한 연애나 앞으로 결혼까지 염두에 둔다는 얘기가 아니었다.명분도 신분도 없이 그냥 그의 곁을 지키는 것뿐이었다.어젯밤의 달콤하고 뜨거웠던 경험은 좋았지만 아마 그는 어젯밤을 기점으로 그녀가 제안을 수락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그러니 이렇듯 당당하게 동거하자는 얘기를 꺼냈겠지.어차피 돈이 넘쳐나는 사람이니 나중에 헤어졌을 때 재산분할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남유주는 살짝 눈을 치켜뜨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그에게서 차가운 계열의 우드향과 조금 전 마셨던 레몬향이 났다.은은하면서도 취할 것 같은 향기였다.박수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남유주가 고개만 들면 그의 날카로운 턱선에 입을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그녀는 고개를 드는 대신 그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동거는 재미없어요. 필요하면 나를 찾아와요. 나도 필요하면 찾아갈게요. 하지만 너무 시선을 끄는 건 싫어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그녀는 이게 두 사람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그와의 경험은 나쁘지 않았고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할 거라 믿었다.하지만 마음으로의 소통은 달갑지 않았다.어차피 둘 다 성인이고 사랑 따위에 정력을 쏟고 싶지도 않았다.박수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필요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거죠?”“지금 머리로 생각하는 그게 맞을 거예요.”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고 촉촉한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에 약해진 박수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아름답고 청순한 얼굴이었지만 하는 행동은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
박수혁은 그녀가 카드를 받아 들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른 건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이런 식으로 보상해 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다행히 그녀는 돈을 무척 사랑했다.남유주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정말 내 스폰서가 되어줄 생각인가 봐요. 왜 이렇게 통이 커요?”박수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스폰서 아니거든요. 이상한 프레임 씌우지 말아요. 나랑 함께하면 고생할 일은 없을 거예요.”그는 그녀가 이런 식으로 자신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게 싫었다.몰래 비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들키면 솔직히 인정할 의향도 있었다. 다만 먼저 공개해서 혼란을 일으킬 필요를 못 느낄 뿐이었다.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 말했다.“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난 우리 관계를 아는 사람이 적었으면 좋겠어요.”박수혁은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사실 그도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남유주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당신 옆에 새로운 여자가 생기면 우리 관계는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의논할 여지도 없어요.”박수혁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나만 그런 거예요? 그럼 유주 씨는요?”“나도 똑같죠, 뭐!”남유주가 웃으며 말했다.“난 양다리는 안 걸쳐요.”박수혁은 갑자기 아까 어린 남자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줄곧 자신감 넘쳤지만 어쩐지 기가 죽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남유주도 예전에 자기가 아깝다는 얘기를 한 적 있었다.그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나도 양다리 걸치는 사람 아닙니다.”남유주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다른 조건은요?”그가 물었다.“만날 때 사전에 약속을 잡았으면 좋겠어요.”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람들에게 들키는 곤란한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주변에 박수혁을 주시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그녀는 화제의 중심에 휘말리기 싫었다.박수혁은 인상을 확 찌푸렸지만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니까 미리 얘기만 하면 된다는 거잖아?’그는 고개를
박수혁도 한수근을 발견했다. 전에 조사한 데 의하면 그는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였다.그래서 경계심을 느끼지 않았다. 박수혁은 그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툭 건드렸다.“금방 잠들었으니, 그녀의 휴식을 방해하지 말아요. 그리고 그녀가 깨면 식사를 잊지 말고 챙겨주세요.”“네. 그렇게 할게요”한수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술집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보아하니 한창 달콤한 연애에 빠져있는 모양이군!사장님도 연애하는군요?진심?한수근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무척 가벼워 보였다.휴식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이건 사장님의 지시다!그렇게 남유주는 점심이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심지어 스스로 깬 것이 아니고 한수근의 노크 소리에 부득이하게 깰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어리둥절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무슨 일이세요?”한수근이 허둥거리며 그녀를 바라봤다.“아래층이 물에 다 잠길 때까지 자고 있었던 거예요? 혹시 아침에 화장실을 쓰고 물을 잠구지 않은 거에요?”그는 급히 달려가 물을 잠갔다.넘쳐나던 물이 멈췄다.그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정신이 번쩍 든 남유주가 축축한 바닥상태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욕실에서 물이 넘쳐흘러 바닥까지 뒤덮었다. 비록 그것이 넓은 범위를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바닥으로 스며들어 아래층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하여 이상한 낌새를 느낀 한수근이 문을 두드렸다.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아래층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한수근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방 두 개는 이미 쓰지 못할 정도가 되었어요. 벽이 다 망가졌으니 아무래도 2일 정도 수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부주의한 그녀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였지만 면전에 대고 뭐라 할 수 없었다.그러나 남유주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침에 화장실을 쓴 사람은 박수혁뿐이었다.설마 고의로 그런 건 아니겠지?표정이 급격하게 어둬워진 그녀는 깊게 심호흡했다.“이참에 수리하죠. 뭐. 방수도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고치려던 참이었는데
눈살을 찌푸리던 박수혁이 한껏 여유로운 말투로 말했다.“됐어, 솔로들과 뭔 얘기를 해!”그는 귀찮다는 듯 한명 한명 흘기고는 몸을 돌려 유유히 사라졌다.그들은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그러다 모두의 시선이 강서진에게 집중되었다.“줄곧 너랑 함께 있었잖아. 도대체 언제부터였던 거야?”강서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나도 몰라. 요즘 아이 돌보느라 나 나름대로 바빠.”그도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그때 참지 못한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솔로 탈출했다고 바로 거만해지네? 그냥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도 여자친구가 있어. 감히 우리 앞에서 자랑질이네?”“맞아. 난 벌써 서너 번 바꿨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숨기지 않을 걸 그랬어.”“너무하네. 근데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야?”...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리저리 추측했다.그중에 강서진만 아무 말이 없다.그것은 어딘가에서 분명 들었던 목소리다. 굉장히 낯익다.만난 적 있었나?강서진은 요 근래 참석했던 자리들을 떠올렸다. 박수혁의 옆자리는 그 흔한 파트너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맞다.박시준의 생일파티.강서진의 표정이 바뀌었다.뭔가 떠오른 듯하다.소은정과 꼭 닮은 그 여자가 박수혁의 시선을 끈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강서진도 농담삼아 몇 번 찔러 보았었다.그녀라고?단지 소은정과 꼭 닮은 외모 때문에?”그는 이미 감을 잡았다. 강서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지만, 다른 이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그는 실토하지 않곤 못 배겼을 것이다.그리고 이 일이 알려지면 박수혁이 난처해질 것이다.잠시 생각에 잠기던 강서진은 비밀을 지키기로 했다.태한그룹.박수혁이 돌아오자, 이한석이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그는 박수혁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갔다.그리고 방문을 닫았다.“성안 그룹이 그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하는데 그건 언제 보낼까요?”박수혁이 그 프로젝트를 포기한 것이 성안 그룹을 동정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그를 해 한 이가
성미려는 마치 구원자를 만난 듯이 그에게 달려갔다.“수혁 씨...”이한석은 그녀를 막지 못했다. 다행히 박수혁은 화를 내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주름 진 그녀의 옷은 여기저기 구겨져 있었고 메이크업은 심하게 무너져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박수혁이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어쩐 일이세요?”성미려는 애써 침착하려 했다.“그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어요.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붓는 그 자체에요. 그 일 때문에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 갔고 지금 응급실에 계세요.”박수혁은 담담하게 그녀를 힐끔 보고는 이해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병원에서 간호하시지 않고 왜 여기로 오신 거예요?”고개를 든 성미려는 그의 차가운 반응에 어리둥절했다.“그건 태한그룹이 저희에게 판 거잖아요. 왜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미리 알려주지 않았나요? 아니면 일부러 숨기고 우리가 함정에 걸려들 길 바란 거예요?”그녀는 후자일까 봐 두려웠다.비바람이 세게 불며 허접하게 지은 성안 그룹은 순식간에 무너졌다.그녀의 물음에 박수혁은 아주 덤덤하게 반응했다. 귀찮아 보이기도 했고 굳이 솔직한 감정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썹사이에 주름이 잡혔다. 성미려는 애써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밖에서와는 완전 다르게 냉담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눈을 가늘게 뜬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지만 비아냥거리진 않았다.“제가 권한 건 아니잖아요? 한창 상승세를 달리고 있을 때 사과하는 의미로 그 프로젝트를 양보했어요. 이렇게 될거라곤 누구도 예상 못 했죠. 사업은 모험과 운이 따라야 한다는 걸 당신도 아시잖아요? 저도 그 험난한 길을 걸었었고요. 사장님이 몸져누운 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비서를 보내 한번 찾아뵐게요.”그는 이한석에게 눈짓하며 말했다.“돌아가는 길을 잘 모시도록 해.”이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길을 안내하려 하자 그녀는 참아왔던 울분을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