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도 한수근을 발견했다. 전에 조사한 데 의하면 그는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였다.그래서 경계심을 느끼지 않았다. 박수혁은 그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툭 건드렸다.“금방 잠들었으니, 그녀의 휴식을 방해하지 말아요. 그리고 그녀가 깨면 식사를 잊지 말고 챙겨주세요.”“네. 그렇게 할게요”한수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술집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보아하니 한창 달콤한 연애에 빠져있는 모양이군!사장님도 연애하는군요?진심?한수근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무척 가벼워 보였다.휴식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이건 사장님의 지시다!그렇게 남유주는 점심이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심지어 스스로 깬 것이 아니고 한수근의 노크 소리에 부득이하게 깰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어리둥절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무슨 일이세요?”한수근이 허둥거리며 그녀를 바라봤다.“아래층이 물에 다 잠길 때까지 자고 있었던 거예요? 혹시 아침에 화장실을 쓰고 물을 잠구지 않은 거에요?”그는 급히 달려가 물을 잠갔다.넘쳐나던 물이 멈췄다.그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정신이 번쩍 든 남유주가 축축한 바닥상태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욕실에서 물이 넘쳐흘러 바닥까지 뒤덮었다. 비록 그것이 넓은 범위를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바닥으로 스며들어 아래층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하여 이상한 낌새를 느낀 한수근이 문을 두드렸다.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아래층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한수근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방 두 개는 이미 쓰지 못할 정도가 되었어요. 벽이 다 망가졌으니 아무래도 2일 정도 수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부주의한 그녀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였지만 면전에 대고 뭐라 할 수 없었다.그러나 남유주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침에 화장실을 쓴 사람은 박수혁뿐이었다.설마 고의로 그런 건 아니겠지?표정이 급격하게 어둬워진 그녀는 깊게 심호흡했다.“이참에 수리하죠. 뭐. 방수도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고치려던 참이었는데
눈살을 찌푸리던 박수혁이 한껏 여유로운 말투로 말했다.“됐어, 솔로들과 뭔 얘기를 해!”그는 귀찮다는 듯 한명 한명 흘기고는 몸을 돌려 유유히 사라졌다.그들은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그러다 모두의 시선이 강서진에게 집중되었다.“줄곧 너랑 함께 있었잖아. 도대체 언제부터였던 거야?”강서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나도 몰라. 요즘 아이 돌보느라 나 나름대로 바빠.”그도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그때 참지 못한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솔로 탈출했다고 바로 거만해지네? 그냥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도 여자친구가 있어. 감히 우리 앞에서 자랑질이네?”“맞아. 난 벌써 서너 번 바꿨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숨기지 않을 걸 그랬어.”“너무하네. 근데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야?”...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리저리 추측했다.그중에 강서진만 아무 말이 없다.그것은 어딘가에서 분명 들었던 목소리다. 굉장히 낯익다.만난 적 있었나?강서진은 요 근래 참석했던 자리들을 떠올렸다. 박수혁의 옆자리는 그 흔한 파트너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맞다.박시준의 생일파티.강서진의 표정이 바뀌었다.뭔가 떠오른 듯하다.소은정과 꼭 닮은 그 여자가 박수혁의 시선을 끈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강서진도 농담삼아 몇 번 찔러 보았었다.그녀라고?단지 소은정과 꼭 닮은 외모 때문에?”그는 이미 감을 잡았다. 강서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지만, 다른 이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그는 실토하지 않곤 못 배겼을 것이다.그리고 이 일이 알려지면 박수혁이 난처해질 것이다.잠시 생각에 잠기던 강서진은 비밀을 지키기로 했다.태한그룹.박수혁이 돌아오자, 이한석이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그는 박수혁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갔다.그리고 방문을 닫았다.“성안 그룹이 그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하는데 그건 언제 보낼까요?”박수혁이 그 프로젝트를 포기한 것이 성안 그룹을 동정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그를 해 한 이가
성미려는 마치 구원자를 만난 듯이 그에게 달려갔다.“수혁 씨...”이한석은 그녀를 막지 못했다. 다행히 박수혁은 화를 내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주름 진 그녀의 옷은 여기저기 구겨져 있었고 메이크업은 심하게 무너져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박수혁이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어쩐 일이세요?”성미려는 애써 침착하려 했다.“그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어요.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붓는 그 자체에요. 그 일 때문에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 갔고 지금 응급실에 계세요.”박수혁은 담담하게 그녀를 힐끔 보고는 이해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병원에서 간호하시지 않고 왜 여기로 오신 거예요?”고개를 든 성미려는 그의 차가운 반응에 어리둥절했다.“그건 태한그룹이 저희에게 판 거잖아요. 왜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미리 알려주지 않았나요? 아니면 일부러 숨기고 우리가 함정에 걸려들 길 바란 거예요?”그녀는 후자일까 봐 두려웠다.비바람이 세게 불며 허접하게 지은 성안 그룹은 순식간에 무너졌다.그녀의 물음에 박수혁은 아주 덤덤하게 반응했다. 귀찮아 보이기도 했고 굳이 솔직한 감정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썹사이에 주름이 잡혔다. 성미려는 애써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밖에서와는 완전 다르게 냉담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눈을 가늘게 뜬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지만 비아냥거리진 않았다.“제가 권한 건 아니잖아요? 한창 상승세를 달리고 있을 때 사과하는 의미로 그 프로젝트를 양보했어요. 이렇게 될거라곤 누구도 예상 못 했죠. 사업은 모험과 운이 따라야 한다는 걸 당신도 아시잖아요? 저도 그 험난한 길을 걸었었고요. 사장님이 몸져누운 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비서를 보내 한번 찾아뵐게요.”그는 이한석에게 눈짓하며 말했다.“돌아가는 길을 잘 모시도록 해.”이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길을 안내하려 하자 그녀는 참아왔던 울분을 토
문자를 보고 있던 박수혁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남유주가 보다 큰 숫자를 긁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문자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그렇게 지속되던 문자는 알림은 멈춰졌다.박수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무제한 블랙카드로 2만 원도 긁지 않았다고?정확히 말하면 만 사천오백 원이었다.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한석이 귀 기울여 들어보니 카카오톡 알림음은 아니었다. 그의 휴대폰 화면은 문자 메시지에 머물러 있었다. “사장님, 혹시 카드를 도용당했나요? 제가 은행에 연락해서 알아보게 할까요?”입술을 살짝 깨문 박수혁은 차라리 도용당했다고 믿고 싶었다.남유주가 몇억, 심지어 몇십억을 긁어도 이렇게 울적하진 않을 것이다.이 만 사천오백 원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데 몹시 성공했다.카드가 가짜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박수혁은 손을 들어 이한석을 이만 떠나보내고 남유주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방은 끊지 않고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빨리 말해요.”“뭐해요?”그는 억지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쇼핑하고 있죠.”박수혁은 한참 말이 없다가 그녀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뭘 사길래 몇천 원을 카드로 긁어요?”그 블랙카드도 3백 원짜리를 결제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남유주가 멈칫했다.“네일아트, 커피, 군고구마, 젤리요. 치사하게 이런 것까지 따져요? 몇천 원은 카드로 못 긁어요? 어쩜 그리 밴댕이 소갈딱지에요? 돈 돌려줄 테니 기다려요.”그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리고 10분도 안 되어 카카오톡에 만 오천 원이 입금되었다.[이자는 5백 원이면 되죠!]가시가 잔뜩 돋은 말투였다.박수혁은 어이없어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또 화났네?그는 또다시 대화창을 빌어 해명하기 시작했다.[따지려는 게 아니고 너무 적은 금액에 당황해서 그랬어요. 그 카드로 와인바를 리모델링해도 좋고 새로 와인바를 차려도 상관없어요.][됐고! 꺼지세요.]점점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박수혁, “...”가만히 아무 말이 없던 그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동하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좋아요, 내가 해 줄까요? 아니면 외식 할까요?”소은정이 잠깐 망설였다.“나가면 애들 때문에 힘들고.. 집에서는 당신이 힘들 것 같아요.”전동하의 입꼬리가 귀에 걸려 내려올 줄 몰랐다. 그는 아이들에게 차에 오르라고 손짓하고는 그녀에에 달콤한 위로를 했다.“괜찮아요. 그리고 우리에겐 새봄이와 준서가 있잖아요? 한 명이 술을 따르고 한 명이 음식을 나르면 금방 할 수 있어요.”새봄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문준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일꾼일뿐 밥 먹을 자격도 없나?소은정이 호탕하게 웃었다.“하긴 살길을 알아서 개척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그럼 얼른 와서 요리해 줘요. 나 배가 너무 고파요...”“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갈게요.”전동하는 웃으며 휴태폰을 내려놓았다.그는 기사더러 먼저 소지혁을 회사에 있는 소은호에게 데려다주라고 했다.그리고 나머지 두 “일꾼”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오늘 잘하면, 내가 엄마한테 아이스크림을 상으로 주라고 해볼게.”전동하는 능수능란하게 아이들을 달랬다.그러자 문준서가 급히 따져 물었다.“아빠 말이 힘이 있어요?”전동하가 그를 보며 발끈했다.“너희보단 내가 나아.”...박씨네 저택.집사가 남유주의 물건을 박수혁의 방으로 옮겼다.거실에서 박시준과 놀아주려던 남유주가 순간 자신이 가져온 캐리어를 떠올리고 방으로 올라갔다.손님방을 찾아 한참 헤맸지만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찾지 못했다.그러다 옷방에서 그녀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가정부를 발견했다.박수혁의 옷과 악세서리는 적지 않았지만, 그녀를 위해 절반의 텅 빈 공간을 내주었다.그리고 한켠에는 이한석이 그녀 대신 사 놓은 옷들이 있었다.순간 멈칫한 남유주가 헛기침하며 말했다.“손님방에 놓으면 제가 정리하면 돼요.”가정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천만에요. 사장님께서 안 쓰는 물건을 처분하고 절반의 공간을 내어 드리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사장님 방과도 이어져 있는
오 분 후.한껏 인상을 찌푸린 박수혁이 거실로 내려왔다.남유주는 소파와 몰아일체가 되어 시선을 TV에 고정하고 있었다.움직임을 멈춘 그가 그녀의 시선을 가리키며 물었다.“고작 TV보는 거면서 이것 하나 가져다주지 못해요?”그는 서류를 보려는 게 아니었다. 핑계를 만들어 그녀를 방으로 올라오게 하고 싶었다.거실에 함께 있어도 충분히 그녀를 볼 수 있었다.남유주는 그저 그를 흘기고는 입을 열었다.“회사 내부 기밀인데 내 손을 탔다가 뭐라도 잘못되면 화살이 나한테 날아올 게 뻔하잖아요?”박수혁은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유를 댈 수 있는지 신기했다.“올라가요. 보여 줄 게 있어요.”그는 말을 마치고 허리를 굽혀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먼저 계단을 올랐다.남유주는 품에 안은 쿠션을 마지못해 내려놓고 그의 뒤를 따랐다.박수혁은 침실 안에 있는 서재로 갔다.그녀도 말없이 걸음을 따라 옮겼다.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책상 위를 보았다.얼마 전에 있었던 사진들은 보이지 않았고 책상 위에는 그 어떤 사진도 없었다. 그가 무심결에 정리한 것 같았다. 그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녀가 여기에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버젓이 내놓지 않으니 그도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닌가 보다.의자에 앉은 박수혁은 서류를 꺼냈다. 서로 내용이 다른 서류들을 그가 남유주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최근에 찍은 것들이에요. 위치도 좋고 넓어서 와인바를 옮기려면 한번 고려해 봐요. 분명 전 가게보다 더 잘될 거예요. 이 중에서 한번 골라 봐요.”그의 씀씀이가 크기도 했고 특히 만 사천오백 원으로 그녀의 기억 속에 쪼잔한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남유주는 모두 괜찮은 곳들이긴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당 어마어마한 가격에 손이 떨렸다.그녀는 도로 건네주며 거절했다.“이사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저 인테리어를 하려는 거예요.”“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와인바는 너무 낡았어요. 내부 시설도 좋지 않아서 거기에 더 돈을 들일
아마 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준비를 마치고 거실로 내려갔을 때 가정부가 벌써 아침 식사를 차려놓았었다.“식사하셔도 돼요.”남유주는 쓱 보더니, 모두 가벼운 것들이어서 그녀의 입맛에 맞을 것 같다 생각했다.“사장님께서 밖은 위험하다면서 집에서 쉬고 있으라고 하셨어요. 너무 지루하면 붙여 준 사람과 함께 이동하라고 하셨어요...”가정부가 웃으며 말했다.남유주는 성안 그룹이 떠올랐다.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필요 없어요. 아무 데도 안 나갈 거예요. 내가 그 사람보다 목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빵 한 조각으로 이미 배가 불렀다.이렇게 온종일 집에만 있자니 지루할 것 같기도 했다.그녀가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보려는데 한수근에게서 전화가 왔다.“사장님이 검색어에 올랐어요. 사장님은 끝났어요...”남유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수근 씨야말로 끝났어요!”횡설수설하고 있는 한수근은 많이 급해 보였다.“사장님과 박수혁이 기사 일 면에 올라왔어요. 모두 왈가왈부하며 두 분을 평가하고 있어요, 듣기에 거북한 말들까지...”표정이 일그러진 남유주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그녀의 심장이 빨리 뛰고 있었다.인터넷엔 온통 둘의 이야기였다.그날 저녁, 박수혁이 그녀를 찾으러 왔을 때 그녀가 가려는 걸 그가 잡고 있는 것 같은 사진도 있었다. 파파라치 컷이어서 배경이 흐릿했다.하지만 인물들은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담은 그 사진.쩍 벌어진 어깨에 긴 다리를 늘어뜨리고 자리에 앉아있는 그는 차가운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큰 손이 남유주의 가녀린 팔목을 꽉 잡고 있어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살짝 고개 돌린 남유주의 옆모습은 정교하게 찍혀있었다. 백옥같이 흰 피부에 오똑한 코, 새빨간 입술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사진 속 그녀는 한창 잘나갔을 때의 그녀보다 더 매혹적인 모습이었다.아래에 달린 댓글들도 각양각색이었다.[세상에, 순수한 관계 같아 보이지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시간 되면 식사 한번 해요. 아, 그리고 휴업은 너무 길게 하면 안 돼요!”남유주가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바닥이 망가져서 리모델링 중이에요. 한 달 안으로 다시 열 수 있을 거예요.”“다행이네요!”통화를 마치고 남유주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몸을 짓누르고 있던 커다란 돌덩이를 드디어 옮긴것만 같았다. 이제야 숨이 잘 쉬어진다.몇분도 지나지 않아 기사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짧은 시간에 기사들은 몽땅 자취를 감췄다.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여자인 것 같다.Girls help girls남유주는 김하늘이 영화의 계정으로 업로드한 영상을 보았다. 거기에는 작은 공고문도 붙어있었다.[우리 영화에 특별출현해 주신 남유주 씨에게 고마움을 전해요. 공인이 아니니 그녀에게 지나친 관심은 멈춰주셨음 합니다.]기사가 내려지는 속도에 어안이 벙벙하던 네티즌들은 김하늘이 올린 영상을 끝으로 잠잠해졌다.그것은 남유주를 물어뜯어 인기를 얻으려던 못 된 주둥이를 막았다.남유주가 입장을 추가했다.[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안 본다.]네티즌들의 화제가 방향을 바꿨다.[김하늘과 소은정이 친구 사이고, 모두 남유주를 도와주는 걸 보니 그리 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이 언니도 떳떳해 보여요. 분명 억울할 거예요.][감정을 중요시한다던 박수혁이 변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왜 한마디도 하지 않을까요?][사진이 왜곡되었어. 그리고 그 언니는 와인바 사장이니 중요한 고객과 인사하는 건 아주 정상적인 거잖아요.][이제는 퇴근하고 와인바에 가서 여유를 가지는 것 갖고도 뭐라고 하네? 전에 저 부근에서 출근했었는데 사장 언니가 성격도 좋고 시원시원해서 손님들이 모두 즐겨 찾았어.][이 말 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그 와인바는 엄청 깔끔하고 흔한 광고도 하나 없어. 아니면 애초에 단속을 받아 문을 닫았겠지.][그 언니는 사진을 부탁하면 항상 거절한 적이 없어. 그리고 실물이 화면보다 더 예뻐.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