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석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다.“그럴 리가요. 도련님한테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곧장 연회장에서 병원으로 달려오셨어요. 사실 그분은 도련님을 아주 많이 걱정하고 계신답니다. 점차 좋아질 거예요. 우리 대표님한테 시간을 좀 더 주자고요!”박시준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아침 식사는 전문 영양사가 준비한 영양죽이었다.“천천히 먹어요.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요. 아직은 다 회복된 게 아니라서 소화가 잘 안 될 거예요.”아이가 수저를 들고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주삿바늘을 꽂아서 손등에 생긴 퍼런 멍자국이 더 안쓰럽게 보였다.아이는 줄곧 그 큐브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이한석이 웃으며 물었다.“큐브가 그렇게 좋아요?”박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그 이모가 선물로 주신 거예요.”박시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이유로 어제 연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었다.하지만 아무도 아이에게 꼭 맞는 선물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남유주만 제외하고.“그 이모가 도련님을 구했어요. 그 이모 참 좋은 사람이죠?”박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제가 아프다고 하니까 물도 가져다주시고 의사도 불러주셨어요.”남유주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상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지 않아서 좋았다.그리고 아이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이한석은 한숨을 쉬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밥 먹고 있어요. 저는 회사 나가봐야 해요. 오늘 새로운 고용인이 올 거예요.”“전에 일하시던 분은요?”“그 사람들이 일을 못해서 대표님이 해고하고 새로 구하셨어요.”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이한석은 아이가 혹시나 그 사람들 해고하지 말라고 말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하지만 걱정했던 반응은 아니었다.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복잡했다.옆에서 챙겨주던 고용인이 해고당했는데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건 평소에 정말 그들이 일을 못했다는 게 아닐까?그는 안쓰러운 마음에 다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만약
성미려는 약간 움찔하다가 다시 웃으며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시준이 너 정말 사랑스럽게 생겼구나. 박 대표님이랑 많이 닮았어. TV에 나오는 아역들보다 네가 더 예뻐!”성근석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이한석은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들은 그 뒤로도 십여 분 동안 아이를 칭찬했다. 박시준이 부담스러운 티를 안 내서 다행이었다.어린 아이지만 불편한 내색도 하지 않고 말도 예의 바르게 했다.성근석은 잠시 앉았다가 다시 일어섰다.나가기 전, 그는 성미려에게 말했다.“박 대표는 할 일이 많고 우린 최근에 태한이랑 같이 진행하는 사업도 많으니 네가 옆에서 잘 도와줘. 시준이한테도 더 신경 써주고. 남자가 집에 신경 쓰이는 일이 없어야 사업도 잘 되는 법이야.”성미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아빠. 안 그래도 시준이 보러 자주 오려고 했어요. 이 아이가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그래, 그럼 다행이고.”말을 마친 성근석은 박시준에게 인사를 건넨 뒤, 밖으로 나갔다.박시준도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으나 아쉬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이한석은 그 모습들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성근석이 자리를 뜨자 성미려는 이한석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비서님, 무슨 상황 생기면 저한테 바로 연락해요. 박 대표님은 다망하신 분이니까 제가 잘 도울게요.”이한석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저희야 감사하죠. 어제 도련님을 걱정해서 문안 오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놀랐어요. 도련님이 병원에 호송된 건 저희 빼고는 아무도 몰랐거든요!”성미려의 표정이 살짝 굳더니 이내 태연하게 대처했다.“호텔 지배인한테 들었어요. 그분이 저희 아빠의 매제거든요. 저한테는 이모부이기도 하죠.”이는 이한석이 예상하지 못했던 관계였다.그는 이내 화제를 돌렸다.성미려까지 배웅한 뒤, 그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점심이었다. 회사에 할 일이 많았기에 계속 여기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성근석이
박수혁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돌았다.“죄송한데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얘기하죠.”그는 이한석에게 눈짓을 한 뒤, 먼저 식당을 빠져나갔다.이한석은 고객사 직원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다급히 밖으로 달려나갔다.박수혁은 이미 차에 타고 있었다.이한석이 차에 오르자 운전기사는 바로 출발했다.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애 상황은 지금 어떤데?”술기운이 올라온 박수혁이 차 창을 열며 물었다.“갑자기 열이 난다고 하는데 아마 수입제 약품에 부작용이 생긴 것 같다고 합니다. 그쪽으로는 먼저 사람을 보냈어요.”물론 누굴 보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박수혁이 사실을 알고 남유주에게 연락해서 또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을까 봐서였다.오늘 밤은 유독 공기가 찼다.박수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뒷좌석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이한석은 손에 땀이 났다.그들은 전속력으로 달려 두 시간 뒤에 병원에 도착했다.박수혁은 급급히 안으로 들어갔다.응급실에서 아이가 실려 나오고 있었다.의사들이 밖에서 무언가 의논하고 있다가 박수혁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어떻게 됐나요?”“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약을 먹고 열도 내리고 잠들었습니다. 30분에 한번씩 상태를 관찰할 거예요. 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다른 장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어요.”박수혁은 음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이한석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제가 보낸 사람은요? 사인하라고 사람 보냈었는데요.”“안에서 도련님 돌보고 있어요.”이한석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박수혁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안에 뜻밖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성미려 씨?”성미려가 병상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아이의 마른 입술을 면봉으로 닦아주고 있었다.고개를 든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빨리 오셨네요? 안 그래도 여기 상황은 안정됐으니 올 필요 없다고 연락하려고 했었거든요. 많이 피곤하시죠?”그녀는 시선을 박수혁에게 고정하고 있었다.성미려는
남유주는 앙칼진 목소리로 차갑게 비아냥거렸다.“제가 눈이 멀어서 그런 사람을 마음에 품겠어요? 걱정 붙들어 매라고 하세요. 아무나 만나도 그 사람은 안 만나니까!”이한석은 난감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평소에 유순하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거칠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이혼한 뒤로 그녀는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박수혁에게까지 화를 낼 정도라니.하지만 상사의 말이 듣기 거북한 게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그에게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였다.이한석은 그녀를 이해했다.“많이 속상하셨겠네요. 성미려 씨는 어떻게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죠? 그래도 제가 도움을 부탁드린 사람인데!”“괜찮아요, 이 비서님. 어차피 이 비서님 얼굴 봐서 간 거니까 상관없어요.”남유주의 통쾌한 답변에 이한석은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고마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가 식사 한번 살게요.”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그는 병실로 들어가며 전화를 끊었다.박수혁은 병상 옆에 앉아 큐브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이한석은 그가 홧김에 그것을 쓰레기통에 처박을까 봐 걱정했다.그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박시준의 상태를 확인했다. 얼굴이 붉은 것을 보니 아직도 미열이 있는 듯했다.박수혁은 큐브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이한석은 그를 따라가서 거실에 마주 앉았다.“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에요.”박수혁은 어두운 창밖을 지그시 내다보며 그에게 물었다.“집까지 모실 줄 알았는데 왜 벌써 돌아왔어?”이한석이 움찔했다.상사가 무언가 불만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성미려 씨로 선택하신 겁니까?”“이 비서가 준 서류만 보면 가장 어울리는 상대가 그쪽 아닌가?”냉기가 뚝뚝 흐르는 싸늘한 말투였다.그는 마치 사업 얘기를 하듯이 결혼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적당히 선을 지키고 박시준을 잘 챙기는 것 같고 성격도 좋아 보였다.그게 박수혁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였다.이한석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서류 한 장을
“다른 테이블은 선결제가 아니던데요. 왜 우리한테만 이러시는 거예요? 우리가 돈도 안 낼까 봐 그래요?”사람들은 너 한마디, 나 한마디 하며 소란을 피웠다.분위기가 점점 팽팽하게 굳어가고 있었다.다행히 음악소리 덕분에 그리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않았다.남유주는 그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구역질이 올라왔다.그녀는 겉으로는 차분한 표정으로 이형욱에게 말했다.“당신 며칠째 연속 와서 돈도 안 내고 술 마셨잖아. 앞으로 공짜로 마실 거면 여기 오지 마.”그녀는 이형욱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그리고 어디 가게에서 술 마시든 술값을 지불하는 건 당연해요. 이혼까지 한 마당에 무슨 정이 있다고 그래요? 전처 가게에 와서 진상 부리는 게 더 추하지 않나요?”그러자 그의 친구들도 수치심을 느꼈는지 발끈하며 달려들었다.“이 대표, 이 사람이 그 온순해서 때려도 가만히 맞고만 있었다는 전처 맞아요? 이혼하고 아주 사람이 바뀌었네!”“그러니까요! 저거 우리 무시하는 거 맞죠?”이형욱은 사람들의 말을 듣자 자존심이 상해서 들고 있던 잔을 바닥에 던지고는 험악하게 그녀를 쏘아보았다.“네가 나한테 돈 얘기할 자격 있어? 지난 번에 너 때문에 내가 사고를 당하고 의료비랑 입원비 한푼도 못 받았는데 지금 그런 말이 나와? 주겠다던 위자료도 안 줬잖아. 그 술 좀 마셨다고 지금 나한테 일일이 따지는 거야?”“잘 들어. 계약서에 넌 이미 사인했고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 돈을 주면 나도 이런 거지 같은 곳 오고 싶지 않아!”이미 술에 취한 이형욱은 수치심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그가 곧 주먹을 날릴 거라는 걸 안 봐도 예측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그랬으니까.그의 주먹이 남유주를 향해 뻗은 순간, 그녀는 이성을 잃어버렸다.심장이 두근거리고 혈액이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다.너무 오래 참았다. 이 결혼은 그녀의 모든 인내심을 소멸시켜 버렸다.이혼한 뒤에도 초라하게 전남편에게 맞으며 절망 속에 살고 싶지 않았다.차라리
깊은 밤, 형사들은 사건기록을 통해 며칠 전 병원 앞 사고 당사자가 남유주라는 것을 알아냈다.그리고 그녀가 박수혁과 꽤 밀접한 관계라는 것도 눈치챘다.그들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연락을 받은 이한석도 무척 당황했다.“이 비서님, 이 사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솔직히 간섭하지 않는 게 좋긴 합니다만. 박 대표님 커리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이한석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사실 우리 대표님과 남유주 씨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닙니다. 몇 번 도움을 드린 적 있는데 그것뿐이죠. 일단 조사 진행해 주시고 제가 박 대표님께 의중을 여쭙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네. 진전이 있으면 저희도 바로 연락드릴게요.”이한석은 착잡한 마음으로 이 일을 박수혁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그는 오늘 저녁 성근석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아마 지금쯤 레스토랑에 있을 것이다.이한석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차를 끌고 레스토랑으로 갔다.그는 사실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남유주가 지난번처럼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박수혁에게 연락해서 그의 의사를 물어볼 생각이었다.하지만 남유주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마치 아무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는 듯이.30분 뒤, 그는 결국 레스토랑의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분위기가 아주 좋은 곳인데 손님은 별로 없었다.박수혁은 성미려와 같이 밥을 먹고 있었고 성근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성근석이 딸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박수혁은 여전이 서늘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데이트에나 적합한 장소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절대 맞은편의 여자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성미려는 애써 화제를 찾아 그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고는 했지만 박수혁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이한석은 한숨이 나왔다. 박수혁이 성미려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보였다.하지만 그가 남유주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녀는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그는 용기를 내서 그에게 다가갔다.“두분 식사하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이 나쁜 년아, 형욱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애를 거의 산 송장을 만들었어? 여자 한 명 잘못 들여서 이 꼴이 날 줄 알았으면 애초에 널 며느리로 받아주는 게 아니었는데! 이 재수없는 년, 먹여주고 입혀주고 흡혈귀 같은 너희 집 식구들 원하는 거 다 들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한 중년 여자가 악다구니를 쓰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이형욱 어머니네요.”이한석이 말했다.박수혁은 인상을 쓰며 걸음을 멈추었다.그런데 조혜미보다 더 앙칼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썩 꺼지세요. 이형욱 같은 놈이 어디 가서 나 같은 여자랑 결혼하겠어요? 운 좋은 줄 모르고 난리네. 난 당신들 돈 쓴 적 없고 당신들이 나 먹여주고 입혀준 거 아니거든요? 어떻게 하나같이 입이 하수구보다 더 역겹냐! 지금 그쪽이 날 욕할 처지예요?”“남 씨 가문에서 그쪽들한테 돈 달라고 해서 그냥 줬어요? 내가 달라고 했어요? 내가 쓴 돈은 한푼도 없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형욱 그 놈은 죽어도 싸거든요? 당장 오늘 밤에 죽어버렸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아들이 안쓰러우면 황천길까지 따라가지 그래요?”술을 마신 건지, 아니면 놀라서 이성을 잃은 건지 남유주는 거침없이 상대에게 폭언을 퍼붓고 있었다.이제 거리낄 것도 없었다.이형욱도 짜증나는데 그 엄마까지 찾아올 줄이야!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형사들도 말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주저하고 있었다.잘잘못을 따지기엔 너무 오래된 원한이고 피해자 가족이지만 굳이 편들어 주고 싶지도 않았다.한 형사가 박수혁을 발견하고 다급히 다가왔다.“박 대표님, 오셨습니까?”박수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변호사 곧 도착합니다. 일단은 변호사 얘기부터 들어보죠. 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그는 며칠 전에 자신을 욕하던 남유주가 떠올랐다.지금 그녀를 보러 갔다가 자신도 같이 욕을 먹을까 봐 가기가 꺼려졌다.형사들 보는 앞에서 그녀와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그는 이한석을 바라보며 말했다.“전화 좀 하고 올 테니 여기서 대기하
조혜미는 큰소리로 떠들며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으려 했다.운전기사가 굳은 얼굴을 하고 다급히 핸드폰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조혜미는 어디서 나온 힘인지 운전기사의 멱살을 잡고 차로 밀쳤다.여자와 몸싸움을 벌이기 싫었던 운전기사는 넋을 놓고 있다가 조혜미한테 끌려갔다.“감히 나를 협박해? 당장 차에서 내려! 너도 그년이랑 같이 감방에서 썩어야 해! 절대 용서 못해!”이대로 소란을 피우다가는 정말 내일 아침뉴스에 보도될 판이었다.박수혁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운전기사는 조혜미를 혼자 상대하기 버거워 보였다.소리를 들은 이한석과 형사들이 밖으로 나왔다.“뭐 하는 겁니까!”조혜미는 형사를 보자 자신감이 차올랐다.그녀는 피해자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이 자식 저 안에 있는 그년이랑 한패예요. 둘이 짜고 벌인 일이니 이 인간 당장 잡아들여요! 경찰에서 안 하면 언론에 까발리겠어요! 당신들 내 아들한테 이렇게 하면 안 돼요! 내 아들은 지금 생사도 불분명하다고요! 저 인간들은 감방에서 벌을 받아야 해요!”형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 눈치만 보았다.한 형사가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저 사람 데리고 들어와.”그러자 형사가 다가가서 조혜미의 팔을 잡았다.조헤미는 악을 쓰며 저항했다.“이거 놔! 저 인간 잡아가라니까 나는 왜 잡아?”형사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벌인 건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합니다. 가시죠! 안으로 들어가서 소리 치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치세요!”조혜미는 미친 사람처럼 저항했다.“당신들 이래도 되는 거야?”“저분과 남유주 씨가 결혼 기간 내에 불륜을 저질렀다는 증거 있어요? 증거가 없으면 명예훼손죄에 해당합니다. 저쪽에서 당신을 역고소할 수도 있어요.”“나한테 그런 협박은 안 통해!”조혜미는 질질 끌려서 취조실로 들어갔다.이한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차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박수혁은 굉장히 화가 난 상태일 것이다.이한석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