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소위 말하는 체면이나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그는 자기의 기분을 여지없이 드러냈다.남유주는 바짝 굳어있었다.박수혁은 무심하게 담배연기를 내뱉었다.차 안에 담배연기가 자욱했다.박수혁의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짧은 웃음소리는 커다란 돌덩이처럼 그녀의 가슴을 심하게 내리쳤다.쿵쿵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것 같았다.아랫입술을 꽉 깨문 그녀가 아연실색하며 말했다."미안해요."그녀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이 사과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별 볼일 없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오후에 진짜 궁지에 몰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혀서 어쩔 수 없었어요. 마침 이 비서님께서 연락을 해 오셔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대표님을 언급했어요.진짜 미안해요. 협박할 생각은 없었어요. 진심으로 미안해요."남유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에 가까운 듯 속삭임였다.그녀는 몸을 옆으로 돌려 박수혁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하려 했다.하지만 차 안이 협소하다는 걸 인지 못한 탓인지 벌떡 일어선 그녀는 머리를 쿵 하고 부딪쳤다.고통스러운 듯 한숨을 들이쉬며 얼굴을 구겼다.머리를 감싸 쥐기 위해 움직인 그녀는 얼떨결에 앞으로 고꾸라졌다.우디향이 그녀의 코로 흠칫 스며들었다. 바짝 긴장한 남유주는 그대로 굳어버렸다.박수혁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밀어냈다. 마치 혐오스러운 물건이 자기에게 닿은 것 마냥 그녀를 떼어냈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민망한 분위기에 그녀가 급히 말했다."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녀는 종일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박수혁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주 씨랑 친하지 않은 거로 아는데,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 만들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그리고 비밀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뭔지 알아요? 비밀은 죽은 사람이 가장 잘 지키는 거예요. 살아있는 상태로 비밀을 지키는 게 어렵다면 제가 도와
운전기사가 대답하기 전에 박수혁이 귀찮은 듯 재촉했다."여기 차 안 잡히니까 그냥 타요. 강도들이 있긴 한데, 살인범에서 피해자로 신분 전환하기 싫으면 그냥 타요."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남유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차 안으로 들어갔다.차 안의 담배 냄새는 진작에 사라졌다.박수혁에게서 풍기는 우디향만 느껴졌다.박수혁은 아이패드를 들어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차가운 표정과 담담한 눈빛은 그녀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더 이상 캐묻거나 따지지 않는 박수혁 덕분에 그녀는 아까보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아무 소리도 오가지 않는 고요한 적막감에 박수혁은 들고 있던 아이패드를 내려놓고 눈썹을 문지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오늘 이렇게 나온 건 일시적으로 보석해 준 거에요. 나중에 경찰이 협조를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게 좋을 거예요. 경찰서에 출두할 때면 변호사 동행하게 할 테니까 안심해요. 이따가 이 비서한테 변호사 연락처 넘기라고 할게요. 필요한 얘기는 변호사한테 해요." 마음이 답답해진 그녀가 답했다. "네, 고마워요.""고맙다, 미안하다 이 두 마디 말밖에 할 줄 몰라요?"박수혁이 덤덤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에 남유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운전기사도 이상함을 감지하고 그를 힐끗 바라보다 이내 말없이 운전에 집중했다.잠시 고민하던 남유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고마워하지 않는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박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영민한 것 같기도 하고, 어리석은 것 같기도 한 그녀 때문에 결국 박수혁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아이패드 스크린을 톡톡 건드렸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 사람을 친 거예요?"'그동안 잘만 참다가, 곧 벗어날 수 있는 지금 왜 이런 일을 저질렀냐고 묻는 건가?'남유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도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잠깐 정신이 나가 그런 짓을 한
남유주는 여자를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저희는 여 직원 구하지 않아요. 다른 곳 알아봐요."비위를 맞추려는 듯 여자가 황급히 말했다. "사장님, 저도 술 많이 팔 수 있어요. 그냥 인센티브 같은 거 조금 주면 등록비에 보탤 수 있어요. 게다가 이 정도면 얼굴도 나쁘지 않잖아요. 손님들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남유주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깨가 드러난 크롭 티는 그녀의 허리 라인과 어깨 라인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게다가 등 부분도 파여 있었다.남유주는 여자에 대한 평가를 진작에 끝냈다.그녀는 미안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여긴 그냥 평범한 와인 바예요. 전부 단골손님이라 특별한 서비스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아요."비록 평범한 와인바라 수입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모든 손님들이 끈적한 술집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기에 남유주는 굳이 이곳의 분위기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조용한 와인바에서 사업이나 학술 논의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부자 손님들도 많아 굳이 다른 영업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남유주의 말에 여자는 달갑지 않은 얼굴로 남유주를 한 번 째려보았다. 남유주가 단호하게 말한 덕분에 성질을 부려봤자 일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하, 평범한 와인바는 무슨, 오히려 그쪽이 여기에서 거물 하나 낚아보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그래서 같은 여자를 직원으로 안 쓰는 거 아니에요? 경쟁자 없이 자기 마음 대로 호구들을 낚을 수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여자는 남유주를 째려보더니 껌을 질근질근 씹으며 몸을 홱 돌려 나가버렸다.바텐더는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까 이렇게 예의 없이 굴지 않았는데..."남유주는 덤덤한 얼굴로 바텐더에게 말했다."괜찮아요, 여 직원 있으면 취객들이 문제 일으킬 거예요. 우린 그런 불상사를 미리 피하는 거고요."게다가 그녀를 굳이 술집 아가씨로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그녀도 사실 와인바를 하기 전부터 여 직원이 매출에 얼마나 큰 영향
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난 괜찮아요. 둘이 거기 살면서부터 말도 되게 잘 듣는 거 같아요. 심지어 무단결석도 안 하고, 숙제도 잘 하고, 지혁이가 오빠 형 노릇을 제대로 하나 봐요."전동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혁이는 원래 우수했잖아요, 애들이 따라배운 것 같아요."전동하는 그녀의 코트를 챙겨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양팔을 벌렸다.전동하는 부드러운 몸짓으로 그녀에게 코트를 걸쳐주고 머리를 묶어주었다. 느리고 따뜻한 손길이 극에 달했다.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귀 뒤쪽을 스치자 짜릿한 전율이 일어났다.그녀의 귀 끝은 예민하게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얼굴은 변함없었다.그러나 그녀의 작은 변화도 알아차린 전동하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그는 그녀의 붉은 귓볼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입을 열었다."무슨 생각을 하는데, 얼굴이 빨개졌어요?"그의 농담 섞인 말 한마디에 소은정의 얼굴이 순간 달아올랐다.그녀가 정말 이상한 생각을 한 것처럼.먼저 그녀를 애태우게 만든 건 전동하였다.하지만 쩔쩔매고 있는 건 또 소은정이었다.소은정은 몸을 홱 돌려 그의 얼굴을 손으로 매만지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당신 생각한 건 아니에요."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린 전동하를 바라보던 소은정은 몸을 홱 돌렸다. 그녀가 막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전동하가 그녀의 허리를 낚아챘다. 강제로 몸이 돌려진 그녀였고 두 사람은 숨결마저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닿아있었다. 똑같은 바디워시와 샴푸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서로의 숨결이 오갔고 칠흑 같은 어둠은 둘의 감정을 극대화했다. "다시 말해봐요, 누굴 생각한 건데요?"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으며 플로팅과 약간의 경고가 뒤섞여 있었다.그의 단단한 가슴에 닿은 소은정은 두 손을 그의 목덜미에 천천히 감았다. 마치 바람처럼 그의 세계에 스며들었다.맑고 청아한 그녀의 눈빛과 심연에 가까운 그의 눈빛은 서로를 탐닉했다.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소은정이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전동하를
"무슨 얘기요?" 소은정은 전동하의 몸에 기대며 물었다. 전동하는 휘청거렸다.전동하는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기대도록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새봄이 소원에 대해 얘기하려고요."새봄이 얘기가 나오자 그녀는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새봄이 소원, 세상을 구하는 거 아니에요?"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전동하는 그녀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소은정이 신발을 갈아 신으려 고개를 숙이자 전동하는 그녀의 슬리퍼를 앞에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바꿨어요.""바뀌었다고요?""음, 새봄이가 동생들을 원했던 것 같은데?"전동하의 눈빛이 부드럽지만 끈적하게 변했다.소은정은 그와 함께 침대에서 굴렀다.전동하는 미처 그녀에게 약을 먹이는 걸 까먹었다.........다음날.나른하게 잠에서 깬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전동하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전동하는 정장 차림으로 부엌에서 에그프라이를 만들고 있었다.새봄이와 준서는 소씨 저택으로 갔다. 이모님도 아이들과 함께 간 탓에 이곳에는 둘밖에 없었다."일어났어요?"그녀가 부엌으로 들어오자 전동하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소은정은 헐렁한 잠옷을 입고 어깨를 반쯤 드러낸 채 식탁으로 걸어갔다.식탁에 앉아 따뜻한 물을 두 모금 마시며 숨을 고른 그녀가 말했다."오늘은 쉬는 날 아니에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주말이라 중요하지 않은 일은 뒤로 미뤄도 되었다.전동하는 웃으며 에그프라이를 그녀의 앞에 놓고 후추를 뿌렸다."오늘 조우태 선생님 만나러 가야 해요."소은정의 얼굴은 서서히 어두워졌다.그녀는 조우태의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다. 그는 전문적이었고 능력도 뛰어났다.다만 의사와 환자로 만나는 건 이상하리만큼 거부감이 들었다.전동하가 미소를 지으며 기분 좋게 말했다."당신 상태가 계속 이렇게 좋으면 이젠 약 끊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당신이랑 만나보고 결정 내리겠대요." 소은정은 눈을 크게 뜨고 기뻐서 웃었다."좋아요!"한 시간 뒤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소은정이 운전하려 하자 전동하가
소은정은 그녀와 눈을 마주쳤고 두 사람은 웃음을 동시에 터트렸다.전동하는 두 여자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남편을 차로 치어 죽이려 한 게 뭐가 재밌다고 이렇게 환하게 웃어?'이해되지 않았다.전동하는 그녀가 남유주에게 나쁜 물이 들까 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는 헛기침을 하며 주제를 전환했다."하늘 씨도 있지 않아요? 이따가 하늘 씨랑 촬영장에 가서 구경 할까요?"소은정은 잠자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재미없어요. 안 갈게요."촬영장 따위로 그녀를 유혹할 수 없었다.남유주가 내릴 층에 도착했고 그녀는 소은정과 작별 인사를 정중하게 했다.소은정은 손을 흔들었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줘요. 눈치 보지 말고, 알겠죠?""네, 고마워요."남유주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소은정은 눈을 게슴츠레 뜬 전동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마음이 불편했다.전동하는 단 한 번도 그녀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끼어들지 않았었다."오늘 갑자기 왜 이래요?""남유주라는 사람, 자기 남편 죽이려 한 사실을 왜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하는 거예요?"전동하는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물이 잘못 들까 봐 걱정되어요."소은정은 입을 삐쭉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전동하의 어깨에 기대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왜 이렇게 귀여워요, 설마 내가 동하 씨를 차로 치기라도 할까 봐요?"전동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녀를 한 번 흘겨보았다."허튼소리 하지 마요."소은정은 충분히 웃고 나서야 남유주의 진짜 속 사정을 알려줬다.전동하는 아까보다 안색이 훨씬 좋아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주 씨가 불쌍하지 않아요?""아니요."전동하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소은정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바람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김하늘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반가운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샤부샤부가 먼저 도착했어. 내
남유주의 큰엄마는 입꼬리를 올리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누가 아니래요? 그 계집애 어릴 때부터 어찌나 계산이 빠르던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간 것 좀 봐요. 할아버지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간 것 좀 봐요. 이렇게 효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애, 저희도 없는 게 나아요! 생각할수록 열받네요. 우리 남편이랑 내 자식도 아닌데, 때려서 교육하지도 못해, 그렇다고 욕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애를 며느리로 맞이했으니 정말 고생이 많으세요!"조혜미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애초부터 얼굴이 예쁘장해서 동의한 건데, 사생활이 이렇게 방탕할 줄이야, 집안 망신은 그 애 혼자 다 시키네요!" 둘은 함께 남유주의 험담을 했다."예, 예. 다행히 형욱이가 아무 일이 없어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유주를 찾아가 직접 사과하게 하겠습니다. 저희 가문들끼리 사이가 얼마나 좋았습니까, 남유주 하나 때문에 관계가 틀어질 수 있겠습니까?"조혜미는 남유주와 변호사가 함께 걸오는 걸 발견했다.남유주의 큰어마는 그녀가 조상에게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남유주를 노려보았다."여기 올 낯짝이 있어? 네가 저지른 일을 좀 봐라. 우리가 네가 저지른 일을 수습해야겠어?"남유주는 힐끗 그녀를 쳐다본 뒤 텅 빈 목소리로 무심하게 말했다."누굴 위해 그런 건지 큰엄마가 가장 제일 알고 있겠죠. 전 부탁하지 않았어요."큰엄마는 숨을 헙 들이쉬었다. 착하기만 하던 남유주가 감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기 체면을 깎을 줄 몰랐다.조혜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네가 감히 내 아들을 저주해?"조혜미는 남유주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얼굴이 예쁘고 출신도 좋은 며느리를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없어서 줄곧 못마땅하게 여겼다. 남유주는 결혼 후 시어머니에게 비위를 맞추러 간 적도 없었다. 이형욱의 말도 잘 듣지 않았다. 나중에 경호원과 몰래 도피했다는 소문까지 퍼져 그들의 체면만 더욱 구겼다.남유주는 담담하게 조혜
담담하게 서 있는 남유주의 두 눈은 무정함으로 거리감이 가득했다."과거에 나랑 싸워서 경찰서까지 갔을 때도, 부부라는 명의로 나랑 화해했잖아? 왜 이번엔 입장이 바뀌었다고 억울해?"참지 못하고 입을 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냉담과 비꼬임이 가득했다.과거의 폭력들이 눈에 선하다.그녀가 경찰한테 달려가 도움을 청하고, 변호사를 찾아갔을 때, 모두가 그녀한테 준 답변은 가정 내 갈등이라 잘 의논하여 해결하라는 것이었고 결국 이형욱의 집안일이라는 몇 마디로 모든 사람들이 손을 털고 가버렸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자신이 피해자가 되니, 억울하다며 터무니없이 굴다니?이형욱은 눈썹을 곤두세우고 이목구비를 일그러뜨리며 그녀를 꾸짖었다."너 맞을 짓 했잖아? 넌 맞아도 싸, 그러고 숨은 쉴 수 있게끔 했잖아? 죽지 않은 걸 나한테 감사해야지."옆에서 형세가 곧 걷잡을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짐작한 임호중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하지만 법적 규정상 두 분은 부부이기 때문에, 확실히 이렇게 많은 돈을 배상할 필요는 없거든요. 설령 크게 모순이 생긴다고 해도 100만 원 정도 위자료만 내고 조율을 우선으로 하죠. 어쨌든 부부니까 앞으로도 잘 살아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개소리하고 있네!"화가 난 이형욱이 컵을 던졌다."조율은 무슨, 이혼할 거라고. 이년, 누가 원하는 사람 가져가라고 해, 아무튼 난 싫어. 이년이랑 결혼하고부터 재수 없어 죽겠어. 그러니까 이혼할 거고 돈 배상하라고 해!"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이형욱이 히스테리적으로 욕설을 퍼부었다.임호중은 눈빛을 번뜩이며 남유주를 힐끗 보았다."남유주 씨, 이혼에 동의하세요? 만약 이혼한다면 아무런 것도 챙기지 못할 건데요."남유주는 이형욱을 힐끗 쳐다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아니요"그녀는 턱을 약간 치켜들었는데 약간의 도도함과 오만함이 내비쳤다."이혼 안 할 거고요, 결혼 후 공동 재산, 나 꼭 챙길 거라고요."그렇게 말하면서 걸어서 입구 쪽으로 갔다.이형욱이 바락바락 악을 쓰며 소리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