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감정을 억누르며 USB를 집어들었다.남유주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하지만 만약에 진짜라면?그는 주저하다가 그것을 컴퓨터에 연결했다.그리고 어제 일자로 영상을 검색했다.소은정과 전동하가 보이고 이민혜와 얼굴에 칼집 난 남자도 보였다.그리고 내부 영상으로 넘어갔다.그는 저도 모르게 그것을 클릭했다.이민혜가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소은정과 박수혁을 욕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그리고 그 남자가 이민혜의 몸을 만지작거리는 모습도 보였다.“그냥 하나 더 낳으면 되지 않겠어요?”남자의 말에도 이민혜는 충격을 받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했다.아이를 더 낳는다라.하….박수혁은 USB를 뽑아 옆에 있던 재떨이를 들고 힘껏 내리쳤다.성인이 된 이후로 어머니라는 사람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그래도 어머니라고 처우해 준 이유는 그녀가 자신을 낳은 생모이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것 이외에 그녀에게서 받은 게 없었기에 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이번에 박수혁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그는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실망스럽기도 하고 하찮아서 웃음이 나왔다.애를 더 낳는다고?낯선 남자와 낳은 더러운 핏줄로 감히 태한그룹을 손에 넣겠다고?평생 이렇게 치욕적인 감정이 들기는 처음이었다.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허무하고 황당했다.그리고 역겨웠다.한편, 낯선 남자가 전동하의 차에 타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전동하는 감정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물었다.“박 대표가 보내서 왔어요?”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일단 알겠습니다. 박 대표님께 감사인사를 전해주세요.”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차에서 내려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전동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박수혁이 직접 소은정을 찾아가지 않고 그에게로 사람을 보낸 건 조금 의외였다.생각에 잠긴 사이, 하이힐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인
남유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으니까 나가 봐.”남우신 어르신에게는 아들이 한명 있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났다.큰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르신이 방계에서 입적시킨 양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핏줄이라고 남우신은 모든 것을 그에게 물려주었다.결국 남유주의 희생으로 재기에 성공했으나 이 모든 건 큰아버지란 사람을 위해 차린 밥상이었다.그 일로 예전에 그녀는 억울하고 분노했다.친손녀인데 어떻게 방계에서 데려온 양아들보다 대우가 못할까?그녀는 처음에 할아버지가 남존여비 사상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언젠가는 잘못을 깨닫고 자신에게 사과하기를 바랐다.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뒤로 자신이 바라는 결과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생모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인 그녀는 남씨 가문에게는 수치스러운 존재일 테니 남우신이 가문을 그녀의 손에 맡길 리 만무했다.그녀는 이 큰아버지라는 사람보다도 못한 존재였다.며칠 밤잠을 설친 남유주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가서 차갑게 큰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시죠?”“너 귀국한지가 언제인데 어떻게 집에 한 번을 안 올 수가 있어? 너 우릴 가족이라고 생각하긴 하니?”큰아버지는 그녀를 보자마자 비난을 퍼부었다.남유주는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큰아버지는 그녀가 찔려서 아무 말도 못하는 줄 알고 더 신나서 떠들었다.“지금 네 모습을 좀 봐. 집이 있는데 돌아가지도 않고 남편은 밖에서 술만 퍼마시고. 너 남편 생각은 안 해? 이형욱 사생아가 곧 태어난다더라. 너는 수치심도 없어?”“내가 너라면 차라리 해외에서 죽고 안 돌아왔어. 무슨 낯짝으로 여길 돌아와? 너라는 존재 자체가 남씨 가문의 수치야. 이제 어떡해? 이형욱 불륜녀가 아들이라도 낳으면 우리 가문을 거들떠보기라도 할까?”큰아버지는 씩씩거리며 남유주를 향해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남유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환각이 생긴 것처럼 그가 입모양을 벙긋거리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유주는 아까 그들이 복도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갑자기 표정을 바꾼 큰어머니가 가증스럽게 보였다.역시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남유주는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뵈러 왔어요.”“할아버지는 안에 계셔. 조금 전에 의식을 찾았는데 널 많이 그리워하셨어. 넌 집 나가서 3년 동안 어떻게 연락 한번을 안 해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큰어머니가 주절주절 떠들자 남유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바로 병실로 향했다.“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차갑지도 그렇다고 친근하지도 않은 태도에 큰어머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영감님도 돌아가실 마당에 쟤가 뭘 할 수 있다고. 당장 이형욱한테 연락해서 쟤 데려가라고 해요. 마침 다음 프로젝트에 관해 의논도 할겸.”다른 친척들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병실에는 세 사람이 지키고 있었는데 두 명은 남유주도 모르는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은 큰아버지였다.진한 소독약냄새가 코를 찔러서 숨이 막혀왔다.그녀를 본 세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큰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남우신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남유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창백한 얼굴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노인을 바라보았다.바이탈 기계가 불규칙한 그래프를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병실 온도가 차가웠다.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큰아버지는 욕설을 퍼부으려다가 꾹 참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어떻게 이제야 나타나니? 양심도 없는 년. 할아버지가 널 얼마나 예뻐하셨는데.”남유주는 무표정하게 서서 다가가지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눈동자가 차가우리만치 고요했다.잠시 후, 병상의 노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큰아버지가 다급히 허리를 숙이며 노인을 불렀다.“아버지, 정신이 좀 드세요? 지금 의사 부를게요.”남우신 노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노인은 떨리는 손을 남유주를 향해 뻗었다.다가오라는 뜻이었다.남은 두 사람도 약간 착잡한 표정으로 남유주를 바라보았다.큰아버지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를 비켜
"다이 그룹의 재정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 봐요. 저한테 주식까지 주시고, 전부 빚더미가 될 재산들을... 할아버지는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제 행복까지 팔아야겠어요? 제 평생을 팔아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이형욱의 환심을 사고 이형욱의 돈을 받아먹어 다이 그룹을 먹여 살리라는 거예요?"남유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렸다. 침대에 누워있던 어르신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어둡게 깔린 눈동자가 차갑게 변했다.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너..."남유주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노인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랑 화해라고 하려고 찾은 줄 알았는데 제가 착각했네요. 존경하는 할아버지, 왜 마지막까지 절 이용만 하려는 거예요? 제가 아빠의 친딸이 아니라서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거예요?"그녀의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어르신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그는 힘겹게 팔을 들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팔을 들어 그녀를 가리켰다. 남유주는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차갑게 몸을 돌려버렸다."널 찾아간 거냐? 내가 돈을 주며 절대 너에게 비밀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받았거만..."어르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남유주는 병실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눈가에 가득 고였던 눈물을 손으로 쓰윽 닦은 남유주의 앞에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서성거렸다.안에서 일어난 상황을 엿보기 위해 틈을 노리는 맹수 같았다.남유주에게 재산 전부를 물려줬을까 봐 노심초사하게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선 큰아버지는 놀란 목소리로 급히 안으로 뛰어들어갔다."어르신, 어르신! 의사! 의사 선생님! 어르신이 숨을... 숨을 안 쉰다고요!"그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남유주를 지나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남유주는 넋이 나간 얼굴로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병원을 막 나서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이형욱은 전형적인 약강강약인 사람이다. 그는 자기보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굽실거렸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는 횡포를 부리는 성격이다. 그는 남유주에게 착하게 대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면모를 드러냈다. 때리거나 욕설을 퍼붓기 일쑤였다.이형욱은 이중인격이다.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녀가 차 문을 잠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형욱은 분노에 못 이겨 차 문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울그락 푸르락한 얼굴로 사납게 남유주를 노려보았다.이형욱의 눈길에 그녀는 오한을 느끼며 머리털까지 삐쭉 섰다.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통증이 그녀의 머리로 전해왔다. 당황스러움과 굴욕감이 동시에 밀려와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그녀는 이형욱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손을 덜덜 떨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이형욱은 물불 가리지 않고 앞을 가로막으며 보닛을 내리쳤다."차에서 내려, 당장 내려! 내 말 안 들려? 이 여편네야, 지금 당장 안 내리면 너 죽여버린다!"차는 시동이 걸렸다. 남유주의 창백한 얼굴로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그녀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줄줄 흘렀다. 남유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꺼져, 꺼져..."할아버지가 죽은 지금 그녀는 이형욱의 폭력과 욕설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다.그동안 폭력을 당해도 감히 경찰에게 신고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직 이형욱과 시시비비를 따질 준비를 하지 못했다. 아무런 준비도 못 한 상태로 갑작스레 이형욱을 만나게 되자 그녀는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다.두려움, 음산함, 섬뜩함이 그녀를 뒤덮었다. 그녀를 당장이라도 나락으로 밀어버릴 것 같았다.그녀가 망설이는 사이, 이형욱은 그녀의 두려움과 소심함을 눈치 챘다.다시 차 문으로 향하는 이형욱을 바라보며 남유주는 발을 엑셀 위에 올려놓았다."죽어... 죽여버릴 거야...."이형욱을 저주하는 듯 중얼거리는 그녀였다. 어쩌면 용기를 내기 위해 주문을 거는 것일 수도 있었다.'밟아, 밟으면 넌 해방이야.'그녀는 결심했
박수혁의 얼굴이 구겨지자 이한석은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대표님, 도대체 어떤 비밀인데 남유주 씨 손에 휘둘리는 겁니까? 그 정도로 중요한 비밀입니까?"박수혁의 얼굴이 침울해졌다.이한석은 박수혁이 직접 처리하기 불편하거나 애매한 일을 대신 처리했다. 비밀의 중요성에 따라 해결 방법도 달라졌다.박수혁은 이한석을 노려보며 아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의 입은 굳게 닫혔다.시선을 책상으로 돌린 박수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주 씨가 어떤 상황인지 가서 살펴봐."박수혁은 이한석에게 지시했다.그는 결국 남유주를 도와주기로 했다.이한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수혁은 멍한 시선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둡게 깔린 박수혁의 눈빛이 분노로 일렁거렸다.'협박하다니? 내가 그 여자를 너무 얕봤어!"경찰은 이미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경찰들이 차에서 내렸고 다이 그룹의 사람들이 병원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왔다.어르신 장례식 준비로 한창 정신이 없던 집안에서, 이젠 손녀까지 사고를 쳤다.큰아버지는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남유주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미쳤구나, 네 남편을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큰어머니도 분한 듯 그녀에게 화냈다."네가 두 회사의 협업을 망쳤어! 하필이면 서명을 해야 할 때 이런 사고를 치다니! 가뜩이나 재정상황도 안 좋은데, 이젠 어떡할 거니?" "너 정말 미쳤구나. 왜 외국에서 죽지 않고 돌아왔니? ""우리 집안에 어떻게 이런 살인범이...""이 대표 어떤 상태인지 얼른 알아봐.""같이 살면서 안 싸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까짓 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말이 되니? 미친 게 아니고서야..."수많은 욕설과 비난이 그녀의 귀에 꽂혔다.충격과 당황에 휩싸인 그녀는 어느 순간 평온함과 황홀함을 느꼈다.마치 차 밖과 차 안이 두 개의 시공간으로 나뉜 것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이형욱은 죽어도 싼 인간이야.'이형욱이 다가오는 그 순간, 그녀는 참을
박수혁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소위 말하는 체면이나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그는 자기의 기분을 여지없이 드러냈다.남유주는 바짝 굳어있었다.박수혁은 무심하게 담배연기를 내뱉었다.차 안에 담배연기가 자욱했다.박수혁의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짧은 웃음소리는 커다란 돌덩이처럼 그녀의 가슴을 심하게 내리쳤다.쿵쿵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것 같았다.아랫입술을 꽉 깨문 그녀가 아연실색하며 말했다."미안해요."그녀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이 사과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별 볼일 없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오후에 진짜 궁지에 몰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혀서 어쩔 수 없었어요. 마침 이 비서님께서 연락을 해 오셔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대표님을 언급했어요.진짜 미안해요. 협박할 생각은 없었어요. 진심으로 미안해요."남유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에 가까운 듯 속삭임였다.그녀는 몸을 옆으로 돌려 박수혁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하려 했다.하지만 차 안이 협소하다는 걸 인지 못한 탓인지 벌떡 일어선 그녀는 머리를 쿵 하고 부딪쳤다.고통스러운 듯 한숨을 들이쉬며 얼굴을 구겼다.머리를 감싸 쥐기 위해 움직인 그녀는 얼떨결에 앞으로 고꾸라졌다.우디향이 그녀의 코로 흠칫 스며들었다. 바짝 긴장한 남유주는 그대로 굳어버렸다.박수혁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밀어냈다. 마치 혐오스러운 물건이 자기에게 닿은 것 마냥 그녀를 떼어냈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민망한 분위기에 그녀가 급히 말했다."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녀는 종일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박수혁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주 씨랑 친하지 않은 거로 아는데,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 만들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그리고 비밀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뭔지 알아요? 비밀은 죽은 사람이 가장 잘 지키는 거예요. 살아있는 상태로 비밀을 지키는 게 어렵다면 제가 도와
운전기사가 대답하기 전에 박수혁이 귀찮은 듯 재촉했다."여기 차 안 잡히니까 그냥 타요. 강도들이 있긴 한데, 살인범에서 피해자로 신분 전환하기 싫으면 그냥 타요."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남유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차 안으로 들어갔다.차 안의 담배 냄새는 진작에 사라졌다.박수혁에게서 풍기는 우디향만 느껴졌다.박수혁은 아이패드를 들어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차가운 표정과 담담한 눈빛은 그녀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더 이상 캐묻거나 따지지 않는 박수혁 덕분에 그녀는 아까보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아무 소리도 오가지 않는 고요한 적막감에 박수혁은 들고 있던 아이패드를 내려놓고 눈썹을 문지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오늘 이렇게 나온 건 일시적으로 보석해 준 거에요. 나중에 경찰이 협조를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게 좋을 거예요. 경찰서에 출두할 때면 변호사 동행하게 할 테니까 안심해요. 이따가 이 비서한테 변호사 연락처 넘기라고 할게요. 필요한 얘기는 변호사한테 해요." 마음이 답답해진 그녀가 답했다. "네, 고마워요.""고맙다, 미안하다 이 두 마디 말밖에 할 줄 몰라요?"박수혁이 덤덤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에 남유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운전기사도 이상함을 감지하고 그를 힐끗 바라보다 이내 말없이 운전에 집중했다.잠시 고민하던 남유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고마워하지 않는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박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영민한 것 같기도 하고, 어리석은 것 같기도 한 그녀 때문에 결국 박수혁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아이패드 스크린을 톡톡 건드렸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 사람을 친 거예요?"'그동안 잘만 참다가, 곧 벗어날 수 있는 지금 왜 이런 일을 저질렀냐고 묻는 건가?'남유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도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잠깐 정신이 나가 그런 짓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