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 집사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장욱도 긴장을 풀고 화제를 돌렸다.“네. 지진이 난 후 재건에 들어가는 비용은 정부에서 일부 지원해 주기로 했고 생각보다 순조로워요. 매출도 꽤 괜찮은 편이고요.”식사는 그나마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식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취기가 오른 장욱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전동하는 그 모습이 꼴보기 싫어 베란다로 바람 쐬러 나갔다.소은정은 미소 띤 얼굴로 장욱을 바라보았다.장욱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여자들과 대화할 때도 화제가 끊이지 않았고 말은 많은데 짜증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는 술기운을 빌어 창문을 통해 몰래 전동하를 잠깐 훔쳐보고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소은정에게 물었다.“은정 씨, 얼마 전에 이상한 소문 하나 들었는데 궁금하지 않아요?”“안 궁금해요.”“있잖아요. 며칠 전에 제 친구가 병원에서 박수혁 씨를 만났는데 거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요? 글쎄 헌혈을 하고 있었대요!”살짝 취한듯한 장욱은 뭐 재미난 소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절주절 떠들었다.“제가 아는 박수혁 대표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요. 다른 사람 피를 빨아먹으면 모를까 세상에 헌혈이라니요? 그래서 제 친구가 알아봤는데 헌혈의 대상자가 글쎄 여자래요. 그것도 유부녀….”소은정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지나 했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고 그의 말을 끊었다.“장 대표님, 그렇게 안타까워하시는 걸 보니 혹시 박 대표한테 관심 있어요?”그 말에 장욱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그럴 리가요. 그 사람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이 요즘 상황이 별로 안 좋은 거 같아서 말씀 전해드린 거죠. 은정 씨가 듣기 거북하다면 됐어요.”“그 사람이 잘살 건 못살 건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쓸데없이 수다나 떨 거면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소은정이 싸늘한 어조로 대꾸했다.밖에서 돌아온 전동하가 웃으며 대
두 사람은 그렇게 천천히 40분 넘게 걸어서 겨우 오피스텔 입구에 도착했다.전동하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오는 내내 그녀에게 농을 걸었다.두 사람을 본 경비 직원이 마중을 나왔다.전동하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물었다.“목 안 말라요? 물 마실래요?”오면서 계속 말을 했더니 목이 말랐다.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동하는 생수를 가지러 경비실로 들어갔다.소은정은 휠체어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풍경이 아주 좋았다. 주변에 다 조용한 사람들 뿐이라 시끄럽지도 않았다.멀리서 키가 크고 약간 마른 남자가 사모예드를 끌고 이쪽으로 다가왔다.강아지는 소은정을 보자 반가워서 펄쩍펄쩍 뛰었다.남자는 강아지에게 끌려 휘청거렸다.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딘가 낯이 익은 거로 보아 이곳에 사는 주민 같았다.남자도 소은정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은정 씨, 어디 불편해요?”소은정은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부주의로 발을 좀 다쳤어요.”남자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누구랑 나왔어요? 돌봐줄 사람은 있어요?”그냥 걱정해서 물어본 것인데 소은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거짓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네. 사촌오빠랑 같이 나왔어요.”하지만 곧바로 후회했다.여기서 사촌오빠가 왜 나와?이 남자가 전동하의 얼굴을 모를 리 없었다.그 순간, 경비실에서 생수를 챙겨 밖으로 나오던 전동하가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한번 노려보고는 웃으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은정이 사촌오빠입니다.”남자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이 사람 소은정 남편이잖아? 왜 사촌오빠라고 한 거지?’며칠 전에 TV에 나와 인터뷰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사촌지간이라고?정말 재밌는 부부였다.전동하는 생수병을 그녀에게 건네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동생아, 이제 집에 갈까?”소은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그녀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소지혁은 가장 맏이로써 스스로 나서서 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해주었다.소찬식은 그 모습이 무척 흐뭇했다.한참 열심히 공부하던 새봄이는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렸다.한편, 병원.남유주는 며칠간의 요양을 거쳐 이제 침대를 내려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용인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안색도 생기가 돌아왔다.그녀는 박수혁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박수혁은 의도적으로 그녀의 연락을 피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유주는 실망하지 않았다.그녀는 이한석에게 연락했고 이한석은 오후에 시간을 내서 그녀를 찾아왔다.“결정하셨나요?”그들이 진료비가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남유주가 배상에 관한 얘기를 한마디도 안 꺼내고 있으니 혹시라도 나중에 뭔가 큰 거를 요구할까 봐 그게 더 걱정이었다.남유주는 고개를 깨물며 말했다.“내일 찾아갈게요. 박 대표님한테 고맙다고 전해줘요.”“아닙니다. 당연한 거죠. 그럼 배상 문제는….”이한석이 말끝을 흐렸다.남유주는 피식 웃고는 어깨를 으쓱했다.“알아서 하세요. 사실 내 몸에 난 상처 대부분이 남편한테 맞은 거고 당신들은 그저 운이 안 좋아서 나랑 마주친 것뿐이니까요.”이한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나중을 위해 여기 각서에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번 일로 나중에 우리 대표님을 귀찮게 안 한다는 각서요.”남유주는 잠시 고민하나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이한석은 미리 준비했던 서류를 꺼냈다.남유주는 주저 없이 사인한 뒤, 말했다.“박 대표님한테 꼭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헌혈해 주셔서 감사하다고.”이한석은 흠칫하더니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한 일을 한 거죠.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누구라도 그렇게 했었을 겁니다.”그는 각서를 챙겨 가방에 넣고 카드 한 장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이건 박 대표님 마음이니 받아두시죠.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마음이 편하거든요.”말을 마친 그는 바로
이민혜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네가 고용한 가정부들, 너무 별로야. 매일 시준이만 감싸고 도는데 그러다가 애 버릇 나빠져.”박수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래서 그 어린애를 보살필 사람도 없이 방치하라고요?”그는 어린 나이에 해외로 보내졌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라서 화가 치밀었다.이민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집에 고용인들 물갈이 좀 하고 내가 직접 애를 보살피겠다고.”박수혁은 매서운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애 보는 거 쉬운 일 아니에요. 그런 일은 가정부들한테 맡기고 그냥 편히 쉬세요.”이민혜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내 손자 내가 돌보는데 뭐가 힘들어? 나한테 애를 맡기는 게 못미더워서 그래?”박수혁은 싸늘하게 그녀를 쳐다보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니, 가정부들 잘하고 있어요. 시준이도 그 사람들이랑 많이 편해졌고요. 전문적인 베이비시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전 전문가들을 믿어요.”말을 마친 그는 차갑게 등을 돌렸다.기분이 확 나빠진 이민혜가 싸늘하게 말했다.“그냥 내가 못미더운 거지 전문가는 무슨. 너 아직도 소은정 그년 때문에 내가 미운 거지?”“네가 아무리 그래도 나, 그리고 예리가 네 가족이야. 집안을 좀 봐봐. 이제 누가 남았어? 사람들이 우리 가문을 다 비웃어. 넌 가문 이미지가 바닥에 처박히는 건 신경도 안 쓰이니?”박수혁은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풀며 뒤돌아섰다.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에서 은은한 분노가 흘러나왔다.“가문 이미지요? 그거 다 당신들 때문에 추락한 거잖아요. 어머니가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실 처지는 아니죠.”이민혜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이게… 네 진심이니?”“전 거짓말 같은 거 잘 못해요. 어머니랑 예리가 남을 음해하려 하지 않았으면 우리 가문 아무 문제 없었어요. 그 사람이 저를 떠나지도 않았을 거고요.”박수혁의 목소리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이민혜도 지지 않고 분노를 터뜨렸다.“그래서
남유주도 소은정을 기억하고 있었다.일부러 술 취한 척 비틀거리던 여자.소은정이 그녀를 알아보고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남유주의 뒤에서 술 취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그녀의 어깨를 잡고 귀뺨을 날렸다.소은정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조심해요!”남유주는 종이인형처럼 힘없이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화들짝 놀란 소은정은 떨어지는 남유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남유주의 어깨가 소은정과 부딪치면서 거대한 충격에 의해 둘은 같이 뒤로 쓰러졌다.돌발 상황이라 아무런 대비도 없었기에 소은정은 두 사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불길한 예감이 스치던 찰나,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하지만 보호를 받지 못한 남유주는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소은정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허리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그곳에는 싸늘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박수혁이 보였다.그는 바로 손을 치웠다. 손끝에 아직 그녀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하지만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이 발단을 만들어낸 당사자를 노려보았다.클럽에서 놀던 사람들도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신나는 음악은 계속 흘러나왔지만 아무도 웃지 못했다.상황을 목격한 클럽 직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왔다.“사장님!”그들은 남유주를 에워싸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소은정이 잠깐 정신을 놓은 사이 박수혁이 다가가서 직원들에게 말했다.“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요.”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구급차를 호출했다.박수혁은 소은정을 돌아보았다. 아까 넘어지기 전에 하이힐 굽이 계단에 걸리는 바람에 한쪽은 맨발로 서 있었다.그가 한숨을 쉬며 신발을 챙기러 다가가는데 더 가까운 곳에 있던 직원이 하이힐을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저희 사장님 잡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소은정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별말씀을요.”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해서 그녀는 못내 미안했다.사람들이 상황을 눈치채고 빨리 달려와줘서 다행이었다.박수혁이 다가와서 물었다.“
직원들이 그들을 룸으로 안내했다.룸으로 들어가기 전, 소은정은 직원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그 사람 정말 사장님 남편인가요?”직원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러시는 거 한두 번이 아니에요. 시도 때도 없이 가게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고 가세요. 친구들이랑 가게에 와서 술을 마시고 계산을 안 하는 건 기본이고 폭력도 자주 휘둘러서 저희 사장님이 병원에 실려간 것도 한두 번이 아니죠.”“가정폭력은 범죄잖아요. 왜 신고를 안 했죠?”직원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김하늘이 그녀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그만해. 네가 궁금한 거 내가 답을 해줄 수 있어.”그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따가 설명해 줄게. 그래도 오늘 박수혁 덕분에 위험한 상황을 면할 수 있었어. 그 사람도 여기로 부를까?”소은정이 말했다.“네 생일파티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결국 김하늘은 괜한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 생각은 바로 포기했다.전동하가 겉보기에 매너 있고 부드러워 보여도 속은 쪼잔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굳이 그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그녀는 웃으며 소은정에게 자리를 권했다.“됐어. 어차피 친한 사람들끼리만 모였는데 여기 데려와도 본인이 불편할 거야.”소은해는 마이크를 잡고 무아지경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노래를 다 부른 그는 준비한 꽃과 선물을 김하늘에게 건넸다.김하늘도 기분이 좋아서 평소보다 술을 좀 많이 마셨다.소은정이 한정판 티파니 팔찌를 선물하자 김하늘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취기가 오른 일행은 진실게임을 하기로 했다.회전판이 돌아가자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그곳을 주시했다.김하늘이 걸리자 소은해가 큰소리로 말했다.“오른쪽 옆에 있는 사람한테 10초 키스하기!”김하늘의 오른쪽에는 소은해가 앉아 있었다.친구들이 불만을 토해냈다.“그건 아니지!”“노잼이야!”하지만 소은해는 그들의 발언을 깡그리 무시하고 김하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입술이 가까이 다가오자 김하늘이 얼굴을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전동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여기 사장님이랑 아는 사이예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조금 전 있었던 일을 그에게 말해주었다.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같이 올걸 그랬어요.”“누가 거기서 사고 날 줄 알았겠어요? 그리고 별일 없었잖아요.”소은정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으나 전동하는 죄책감을 얼굴에서 지우지 못했다.“그래도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괜찮아요. 항상 붙어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난 놀러 나왔고 당신은 회사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일하는 사람을 부를 수는 없죠.”전동하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소은정은 환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당신은 나를 너무 좋아해서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나 봐요!”그녀에게서 알싸한 알코올향이 났고 혀도 짧아져 있었다.간드러진 목소리가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전동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익숙한 차량을 힐끗 보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따뜻한 톤의 가로등 불빛이 그들을 비추었다.차 안에서 누군가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들이 길목에서 사라진 뒤에야 차는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이제 그녀를 바라보는 것마저 사치가 되었다.한 사람을 잊는 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더 겪어야 할까?박수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끌어안았다. 며칠 사이 회식을 전전하느라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위염이 재발한 것 같았다.오늘 밤은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끼니도 챙겨 먹지 못했다.위가 텅 비어서 속이 쓰리고 헛구역질이 올라왔다.하지만 참는 게 몸에 배어버린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갑작스럽게 발병한 위경련에 그는 정신이 아찔해졌다.통증이 천천히 가라앉자 그는 이미 땀범벅이 되었다.자정이 넘어 도시 전체가 조용해졌다.창밖을 바라보니 쓸쓸한 그의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비가 내리고 있었다.그는 힘겹게 핸드폰을 찾아 이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20분 뒤, 이한석이 현장에
이한석은 박수혁의 가족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다.이민혜가 와봐야 짜증만 유발할 테니 차라리 안 부르는 게 나았다.박시준은 착하고 눈치가 빠르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서 도움도 안 되고 박수혁에게는 투명인간과도 같은 존재였다.그래서 가족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이한석은 일단 잠을 자기로 하고 소파에 누웠다.그는 남유주가 병실에 있다는 걸 잠시 망각했다.다음날, 박수혁은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낯선 환경을 둘러보던 그는 어젯밤 차 안에서 봤던 광경과 병원에 실려오던 장면이 떠올랐다.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돌리다가 옆 침대에 누운 낯익은 여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그는 음침한 표정으로 침대를 내려왔다. 하룻밤 푹 잤더니 통증은 많이 완화된 상태였다. 그는 바깥 소파에 잠든 이한석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가서 맞은편에 앉았다.이한석은 여전히 달게 자고 있었다.박수혁은 다가가서 커튼을 열었다. 환한 햇살이 방 안을 비추자 이한석이 드디어 눈을 번쩍 떴다.“대표님?”박수혁이 음침한 눈빛으로 안쪽을 가리키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지?”이한석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그게… 어제 입원 절차 마무리하고 계산하고 나오다가 만났어요. 그런데 그 남편이 밖에서 욕설을 퍼부으며 남유주 씨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이대로 보냈다가 인명사고라도 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대표님 병실로 데리고 들어왔죠.”박수혁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퇴원절차 마무리해. 지금 퇴원할 거야.”“대표님, 의사는 며칠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규칙적인 식사가 중요하고 술도 마시지 말라고 했어요.”이한석은 주절주절 의사의 당부를 전했지만 박수혁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고 입을 다물었다.술을 안 마실 수는 없었다.태한그룹을 이끄는 박수혁 대표도 회식이나 미팅은 피해갈 수 없었다.나이든 꼰대들을 만날 때면 술은 필수였다.박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짐을 싸서 회사로 돌아갔다.회사에 갈아입을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