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입을 열어 말하려고 했지만 소은정이 먼저 말했다.“그 사모님은 아주 센스가 좋았어요. 날 도와서 전화도 걸어 주셨고요. 근데 내가 동하 씨 연락처 이름을 확실하게 저장하지 않아서 조우태 선생님에게 연락을 했더라고요. 다행히도 선생님은 날 실망하게 하지 않았어요. 아니면 괜히 그 많은 술을 마시게 된 거잖아요!”소은정은 술을 마신 탓인지 마치 여린 장미꽃처럼 몸을 완전히 전동하에게 기대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말했다.소음은 고막을 울리고 뒤편 룸에서는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가끔 어렴풋이 들려왔다.두 사람은 이곳에서 한참 동안 조용히 서로를 껴안았다.그러다 전동하는 그녀를 빤히 보았다. 이내 그들의 코끝은 서로 닿았고 따뜻한 숨결이 서로의 얼굴을 감싸주었다.전동하의 얼굴은 마치 조각같이 부드럽고 빛났다.그윽한 눈동자는 반짝이는 빛을 가득 머금었다.전동하는 가볍게 그녀의 말랑한 입술에 입을 맞췄고 두 사람의 숨결은 이내 뒤섞이기 시작했다. 전동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제 새봄이가 나한테 소원을 얘기했어요.”소은정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어떤 소원요?”“새봄이 동생이 갖고 싶대요.”말을 끝낸 전동하는 바로 그녀에게 키스했다. 따뜻한 입술은 어느새 뜨거워졌고 그들은 온몸이 타오를 것 같았다.멀리서 이 장면을 발견한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다.소은정은 쑥스러운 듯 전동하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서,맨 안쪽 룸 앞에는 얼음 같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마나 오래 지켜보았을까, 남자는 여전히 강렬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동자에는 어둠이 가득했고 담배는 벌써 다 타버린 지 오래다.강서진이 룸에서 나와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수혁아, 너 담배 너무 오래 피는 거 아니야? 들어가자.”말을 끝낸 강서진은 박수혁의 팔을 당겨보았지만 박수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강서진의 시선은 박수혁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낯선 사람이라면 웃어넘겼겠지만
밖에서 만취한 이형욱이 병원이 제집 안방인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그는 원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성격이 아니었다.그가 살아온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고 돈 많은 사람이 갑이었다.남유주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누워서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밖에서는 이형욱의 고함이 들리고 고용인이 이한석에게 전화하는 소리도 들렸다.그가 매번 주먹으로 병실 문을 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병원 소동은 결국 경찰 신고까지 이어졌다.이형욱이 문을 거의 박살내다시피 했으나 남유주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이한석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그는 박수혁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기분이 안 좋아 술을 마신 박수혁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이한석은 무거운 표정으로 파손된 문을 바라보았다.고용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안에서 나왔다.“이 비서님, 남유주 씨는 이형욱 씨의 구속을 원치 않는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병원에 적당한 손해배상만 한다면 남편의 책임을 추궁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남편.이한석을 포함한 모두가 놀랐다.반면 형사의 태도는 차분했다.“그럼 정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셔야 할겁니다. 남유주 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을 아예 안 받는 건 아니거든요.”“남유주 씨는 태도가 확고합니다.”고용인이 말했다.사실 그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술 취해서 난동을 부리고 쩍하면 가정폭력에 밖에서 바람까지 피우는 남자를 이렇게 쉽게 용서하다니.이한석이 말했다.“남유주 씨 한번 만나볼 수 있을까요?”고용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한석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유주는 잠든 건지 눈을 감고 가냘픈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언제 숨이 멎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이한석은 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남유주 씨, 정신이 들었다면 우리 얘기 좀 할까요?”남유주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든 게 아니었다.“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겠네요.
남자는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이한석을 바라보았다.정말 능구렁이가 따로 없었다. 알면서 일부러 시비를 걸어도 이한석은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박수혁이 왜 매번 그에게 패배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는 자신의 상사가 조금 안쓰러웠다.이한석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작별인사를 고했다.“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전동하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그래요. 다리가 불편해서 마중은 못 나갑니다. 다음에 저한테 선물할 거면 제 사무실로 직접 보내달라고 전해주세요.”이한석은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그래도 선물을 무사히 전달했으니 임무는 완성이었다.한편, 소은정은 소은호의 사무실에 있다가 이한석이 나간 뒤에야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왔다.그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말했다.“이제 가죠?”전동하가 웃으며 물었다.“휴가 신청은 통과된 거죠?”소은정은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은호는 힘들었던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기에 흔쾌히 휴가에 동의했다.전동하가 그녀에게 손짓하며 물었다.“이거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소은정은 인상을 쓰며 다가가서 물었다.“이게 뭐예요? 이렇게 큰 다이아가 어디서 났어요?”그녀는 보석을 집어들고 찬찬히 살피고는 다시 내려놓았다.“누가 선물했어요?”“이한석 씨가 다녀갔어요. 박 대표가 내가 돌아온 걸 축하한다면서 선물까지 보냈다네요?”소은정은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박수혁 이 자식은 또 무슨 생각으로 남자에게 보석을 선물했지?’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잘 보관해요. 나중에 그 집에 무슨 축하할 일이 생기면 다시 돌려보내죠.”전동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이 원한다면야.”두 사람은 간단히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우연준이 웃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두분 잘 놀다 오세요!”전동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그럼 수고하세요.”우연준은 요즘 안색이 많이 바뀐 소은정을 보고 못내 기뻤다.서
옆에 있던 젊은 레지던트가 웃음을 터뜨렸다.소은정은 아이를 안아들고 생긋 웃으며 말했다.“됐어. 이제 그만. 다음에 또 아픈 척하고 등교를 거부하면 지혁 오빠랑 같이 사교육 받게 할 거야.”새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는 한숨을 쉬며 의사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애가 철이 없어서… 이럴 줄은 저도 몰랐네요.”의사는 이해한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어쨌거나 아이가 아픈 게 아니라 다행이네요.”말을 마친 의사는 그들을 문앞까지 배웅했다.새봄이는 소은정의 품에 안겨서도 시선은 잘생긴 레지던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긴 복도를 지나 입구에 도착하자 뒤에서 걷던 전동하가 담담히 말했다.“혼자서 걷게 이제 내려줘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아이를 내려주었다.새봄이는 다가가서 아빠의 손을 잡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아빠, 나 저 오빠 너무 좋아.”“안 돼.”전동하는 싸늘하게 아이의 말을 끊었다가 너무 과했나 싶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빠는 허락 못해. 너무 늙었잖아.”비록 지금은 젊고 잘생긴 청년이었지만 새봄이에 비하면 늙었다는 표현도 과한 게 아니었다.그러니 이런 일은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그 짧은 시간에 전동하의 머리속에는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갑자기 마음이 아팠다.새봄이는 눈을 깜빡이며 그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아빠, 나 호빵 먹고 싶어.”아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문앞에 있는 노상 매점을 가리켰다.소은정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결국 새봄이는 자기 머리만한 호빵을 안고 차에 올랐다.전동하는 아이가 아무 일 없다는 걸 확인해서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그는 고개를 돌리고 소은정에게 물었다.“당신은 진작 알고 있었죠?”소은정이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죠. 내가 아까 사실을 말했어도 당신은 아마 안 믿었을 거예요.”전동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렇게 작정하고 아픈 척하는데 어떻게 안 믿냐고!그런데 그게 거짓말이었다니
전동하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 집사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장욱도 긴장을 풀고 화제를 돌렸다.“네. 지진이 난 후 재건에 들어가는 비용은 정부에서 일부 지원해 주기로 했고 생각보다 순조로워요. 매출도 꽤 괜찮은 편이고요.”식사는 그나마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식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취기가 오른 장욱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전동하는 그 모습이 꼴보기 싫어 베란다로 바람 쐬러 나갔다.소은정은 미소 띤 얼굴로 장욱을 바라보았다.장욱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여자들과 대화할 때도 화제가 끊이지 않았고 말은 많은데 짜증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는 술기운을 빌어 창문을 통해 몰래 전동하를 잠깐 훔쳐보고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소은정에게 물었다.“은정 씨, 얼마 전에 이상한 소문 하나 들었는데 궁금하지 않아요?”“안 궁금해요.”“있잖아요. 며칠 전에 제 친구가 병원에서 박수혁 씨를 만났는데 거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요? 글쎄 헌혈을 하고 있었대요!”살짝 취한듯한 장욱은 뭐 재미난 소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절주절 떠들었다.“제가 아는 박수혁 대표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요. 다른 사람 피를 빨아먹으면 모를까 세상에 헌혈이라니요? 그래서 제 친구가 알아봤는데 헌혈의 대상자가 글쎄 여자래요. 그것도 유부녀….”소은정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지나 했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고 그의 말을 끊었다.“장 대표님, 그렇게 안타까워하시는 걸 보니 혹시 박 대표한테 관심 있어요?”그 말에 장욱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그럴 리가요. 그 사람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이 요즘 상황이 별로 안 좋은 거 같아서 말씀 전해드린 거죠. 은정 씨가 듣기 거북하다면 됐어요.”“그 사람이 잘살 건 못살 건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쓸데없이 수다나 떨 거면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소은정이 싸늘한 어조로 대꾸했다.밖에서 돌아온 전동하가 웃으며 대
두 사람은 그렇게 천천히 40분 넘게 걸어서 겨우 오피스텔 입구에 도착했다.전동하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오는 내내 그녀에게 농을 걸었다.두 사람을 본 경비 직원이 마중을 나왔다.전동하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물었다.“목 안 말라요? 물 마실래요?”오면서 계속 말을 했더니 목이 말랐다.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동하는 생수를 가지러 경비실로 들어갔다.소은정은 휠체어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풍경이 아주 좋았다. 주변에 다 조용한 사람들 뿐이라 시끄럽지도 않았다.멀리서 키가 크고 약간 마른 남자가 사모예드를 끌고 이쪽으로 다가왔다.강아지는 소은정을 보자 반가워서 펄쩍펄쩍 뛰었다.남자는 강아지에게 끌려 휘청거렸다.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딘가 낯이 익은 거로 보아 이곳에 사는 주민 같았다.남자도 소은정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은정 씨, 어디 불편해요?”소은정은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부주의로 발을 좀 다쳤어요.”남자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누구랑 나왔어요? 돌봐줄 사람은 있어요?”그냥 걱정해서 물어본 것인데 소은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거짓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네. 사촌오빠랑 같이 나왔어요.”하지만 곧바로 후회했다.여기서 사촌오빠가 왜 나와?이 남자가 전동하의 얼굴을 모를 리 없었다.그 순간, 경비실에서 생수를 챙겨 밖으로 나오던 전동하가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한번 노려보고는 웃으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은정이 사촌오빠입니다.”남자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이 사람 소은정 남편이잖아? 왜 사촌오빠라고 한 거지?’며칠 전에 TV에 나와 인터뷰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사촌지간이라고?정말 재밌는 부부였다.전동하는 생수병을 그녀에게 건네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동생아, 이제 집에 갈까?”소은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그녀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소지혁은 가장 맏이로써 스스로 나서서 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해주었다.소찬식은 그 모습이 무척 흐뭇했다.한참 열심히 공부하던 새봄이는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렸다.한편, 병원.남유주는 며칠간의 요양을 거쳐 이제 침대를 내려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용인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안색도 생기가 돌아왔다.그녀는 박수혁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박수혁은 의도적으로 그녀의 연락을 피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유주는 실망하지 않았다.그녀는 이한석에게 연락했고 이한석은 오후에 시간을 내서 그녀를 찾아왔다.“결정하셨나요?”그들이 진료비가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남유주가 배상에 관한 얘기를 한마디도 안 꺼내고 있으니 혹시라도 나중에 뭔가 큰 거를 요구할까 봐 그게 더 걱정이었다.남유주는 고개를 깨물며 말했다.“내일 찾아갈게요. 박 대표님한테 고맙다고 전해줘요.”“아닙니다. 당연한 거죠. 그럼 배상 문제는….”이한석이 말끝을 흐렸다.남유주는 피식 웃고는 어깨를 으쓱했다.“알아서 하세요. 사실 내 몸에 난 상처 대부분이 남편한테 맞은 거고 당신들은 그저 운이 안 좋아서 나랑 마주친 것뿐이니까요.”이한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나중을 위해 여기 각서에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번 일로 나중에 우리 대표님을 귀찮게 안 한다는 각서요.”남유주는 잠시 고민하나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이한석은 미리 준비했던 서류를 꺼냈다.남유주는 주저 없이 사인한 뒤, 말했다.“박 대표님한테 꼭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헌혈해 주셔서 감사하다고.”이한석은 흠칫하더니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한 일을 한 거죠.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누구라도 그렇게 했었을 겁니다.”그는 각서를 챙겨 가방에 넣고 카드 한 장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이건 박 대표님 마음이니 받아두시죠.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마음이 편하거든요.”말을 마친 그는 바로
이민혜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네가 고용한 가정부들, 너무 별로야. 매일 시준이만 감싸고 도는데 그러다가 애 버릇 나빠져.”박수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래서 그 어린애를 보살필 사람도 없이 방치하라고요?”그는 어린 나이에 해외로 보내졌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라서 화가 치밀었다.이민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집에 고용인들 물갈이 좀 하고 내가 직접 애를 보살피겠다고.”박수혁은 매서운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애 보는 거 쉬운 일 아니에요. 그런 일은 가정부들한테 맡기고 그냥 편히 쉬세요.”이민혜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내 손자 내가 돌보는데 뭐가 힘들어? 나한테 애를 맡기는 게 못미더워서 그래?”박수혁은 싸늘하게 그녀를 쳐다보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니, 가정부들 잘하고 있어요. 시준이도 그 사람들이랑 많이 편해졌고요. 전문적인 베이비시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전 전문가들을 믿어요.”말을 마친 그는 차갑게 등을 돌렸다.기분이 확 나빠진 이민혜가 싸늘하게 말했다.“그냥 내가 못미더운 거지 전문가는 무슨. 너 아직도 소은정 그년 때문에 내가 미운 거지?”“네가 아무리 그래도 나, 그리고 예리가 네 가족이야. 집안을 좀 봐봐. 이제 누가 남았어? 사람들이 우리 가문을 다 비웃어. 넌 가문 이미지가 바닥에 처박히는 건 신경도 안 쓰이니?”박수혁은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풀며 뒤돌아섰다.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에서 은은한 분노가 흘러나왔다.“가문 이미지요? 그거 다 당신들 때문에 추락한 거잖아요. 어머니가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실 처지는 아니죠.”이민혜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이게… 네 진심이니?”“전 거짓말 같은 거 잘 못해요. 어머니랑 예리가 남을 음해하려 하지 않았으면 우리 가문 아무 문제 없었어요. 그 사람이 저를 떠나지도 않았을 거고요.”박수혁의 목소리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이민혜도 지지 않고 분노를 터뜨렸다.“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