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전동하에게 많은 폐를 끼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상실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확실성이 더 컸다.소은정의 말에 조우태가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그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순간 목이 메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다행히도 소은정이 그에게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전동하는 그녀 곁에서 또다시 사라졌다.그녀는 회사에 가기 전에 잠깐 아파트로 돌아가 아이들을 볼 겸 옷도 갈아입으려고 했다.술의 힘을 빌려, 그녀는 오랜만에 정말 깊은 잠을 잤다.아파트에 도착하자, 방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아이들은 물론 고용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아마도 이모님이 애들 데리고 산책하러 나간 거겠지?'그녀는 곧 고용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모님이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집에 들어가셨어요?""네, 혹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셨나요?""네, 맞아요. 새봄이 아가씨가 새벽에 악몽을 꿨는데 아빠를 찾길래 준서까지 데리고 S 레스토랑에 오게 됐어요. 다행히 사장님께서 레스토랑에 계시더라고요."이모님은 소은정이 걱정하지 않게끔 자세하게 보고했다.하지만 소은정의 관심은 오직 전동하에게 집중되었다."그래요, 그럼 애들 잘 부탁해요.""네, 그래야죠."소은정이 몇 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한참을 멍하니 서서 어제의 일을 떠올리다 얼른 욕실로 가서 씻었다.어젯밤 씻지 못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옷을 갈아입지 않는 것은 참기 어려웠다.욕조에 몸을 담그고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이고 반신욕을 즐겼다. 그러다 문득 팔뚝에 튀어나온 흉터를 만져봤다. 새로 생긴 상처가 흉터 자국이 선명했다. 연한 붉은 자국이 그녀의 하얀 피부에 덧칠한 것처럼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그녀는 잘 아는 피부과에 전화를 걸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거기 흉터 제거 프로그램이 있나요? 효과가 가장 좋고 짧은 시간에 제거가 되어야 해요."전동하가 돌아왔을 때, 자신의 흉터가 눈에 띌지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다.하
소은정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그녀의 머리를 간지럽혔다. 그녀는 꽤 정신을 차렸고, 이까짓 일에 화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지학 씨의 꿈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나중에 첫 번째 가게가 오픈하면, 외국에서 더 많은 커피 원두를 가져올 수 있도록 도울게요." "좋아요, 좋아요!"두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았고, 소은정이 대화를 조금씩 이끌어나갔다. 식물에 달린 자스민 꽃이 바람에 흔들려 몇 송이가 떨어져 소은정의 어깨와 머리에 가볍게 떨어졌다.송지학은 이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어깨 위의 꽃잎을 털어주었다.이같이 친밀한 장면이 다른 사람 눈에 띄면 순식간에 다르게 보일 수 있었다.윤이한이 중요한 계약으로 그를 불러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보여야 했었다. 그는 전동하의 신분으로 이곳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했으므로,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 놓아야 했다.비즈니스를 계속하고 돈을 계속 벌어야 했다.그래서 전동하도 그린클럽에 오게 됐고, 정확한 순간에 이 장면을 목격했다. '눈에 거슬리게 왜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거지?' 그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그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은 정말 그에게 패배감을 주었다.특히 그가 다시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려고 결심한 순간에는 더욱 그랬다.전동하가 한발 물러나서 룸 입구의 그늘에 감춰진 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숨어 있었다.소은정이 정말로 그를 포기한다면 어떻게 할지 그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룸 안에서 사람들이 전동하가 오기를 한참이나 기다렸다. 다시 그를 만난 순간, 전동하와의 협력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 계약을 연장했다."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소문들은 진짜 아니었나 봅니다. 왜 한 번 나와서 해명하지 않으셨어요? 우리도 정말로 당신이 사고를 당한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상대방은 비즈니스 얘기를 마치고 나서야 이런 말을 덧붙였다.전동하가 입꼬리를 올리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모두 헛 소문이니, 마음에 담아
지금의 달콤함은 순식간에 전동하의 과거 기억을 한순간에 불태우는 듯했다.그들은 수없이 가졌던 친밀한 순간들처럼 서로의 몸을 조심스럽게 탐색하면서 위안과 만족을 찾는데 거리낌이 없었다.그는 그녀에게 항상 미혹되어 있었으며, 한 번 건드리면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못했고, 내면의 저속한 생각을 직시했다.그는 항상 이런 일에 대해 자제하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감정을 더욱 신경 썼었지만 그녀와 송지학이 클럽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그녀가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극복하게 되면 언젠가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왜 나의 행복을 쉽게 내줘야 하는 거지? 그렇게는 못해!'가슴의 가시가 살갗을 쥐어뜯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그는 그녀의 입술에서 입을 떼고 가느린 눈으로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는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며 숨을 살짝 가쁘게 쉬고 있었다.그녀의 눈빛은 조금 흐릿해지고, 뺨은 붉게 달아있었으며, 입술은 그의 키스로 인해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혐오나 저항이 없는 것을 보니 그의 마음속에는 마치 큰 바위가 갈아앉는 것 같았다.그는 부드럽게 머리를 숙였고, 눈빛과 표정이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그의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 그는 방금 전의 통제력 상실을 달래려는 듯 섬세한 키스를 했다.그는 그들의 깊은 관계에 빠져서 그녀를 그냥 놓아주기 싫었다.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주무르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유혹하는 것처럼 귓불에 키스를 했다."은정 씨, 말해봐요, 지금 가장 원하는 게 뭐예요?"그는 그녀도 원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에게서 직접 듣고 싶어 했다.소은정이 이성을 전혀 되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그녀는 전동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완전히 당황했다.몽롱한 상태에서 위아래로 탐하는 그의 혀 놀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1초 전까지만 해도 큰 파도를 사이에 두고
소은정은 점점 고조에 달했다.그녀는 전동하의 자극에 의해 눈물이 다 떨어져 부드럽게 흐느끼며 마침내 항복했다."네, 당신을 원해요..."그 남자의 깊은 눈빛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게 만들고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자기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그는 즉시 그녀를 만족시키고 싶었다. 소은정은 이를 악물고 신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버텼다."당신의 모든 것을 원해요!"전동하는 그녀의 귓가에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날 가져봐요."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얼마 뒤 소은정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전동하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다리가 불편해진 지금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더 강해졌다.'이 사람 언제부터 이렇게 힘이 셌지?'몰려오는 피로에 정신이 몽롱해지며 눈이 서서히 감기던 소은정은 끝내 깊은 잠에 빠졌다.전동하는 한쪽 팔을 받친 채 그녀의 옆에 누워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아싿.전동하는 그녀가 잠에 든 걸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전동하는 따듯한 물수건으로 소은정의 몸을 조심스레 닦아줬다.깊은 잠에 든 소은정은 자기에게 닿는 손길도 느끼지 못한 듯 곤히 잠들었다.그의 시선이 침대 머리맡에 놓인 몇 병의 약통으로 향했다. 전동하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그는 굳어진 얼굴로 옷을 갈아입었고 절뚝거리며 문밖에 있는 지팡이를 가지러 나갔다.몇 번 맺은 관계로 인해 체력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맑았고 취기 또한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지팡이를 주워들었다.고개를 돌려 집 안을 둘러보며 하나하나 눈 안에 담았다.그제야 그의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찾던 중 바닥에 깨진 유리 컵을 발견했다.전동하와 소은정의 커플 겁이었다. 그녀의 컵은 식탁 위에 멀쩡하게 놓여 있었지만, 그의 컵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놀란 듯 눈썹을 찌푸린 전동하는 혼란스러운 기
이모님이 손을 씻고, 부엌으로 가서 식사 준비를 했다.전동하가 무사히 돌아온 덕분에 다시 전과 같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새봄이와 준서는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새봄이와 준서는 샤워도 알아서 척척 잘했다.전동하는 이모님을 따라 부엌으로 향했다.전동하의 다리를 힐끗 쳐다보던 이모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헀다.“대표님,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저한테 맡기고 들어가세 쉬세요.”전동하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님과 아이들 음식만 준비해 줘요. 저랑 은정 씨 음식은 제가 하려고요.”잠시 망설이던 이모님은 뭔가 깨달은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이 안 계서서 그동안 집이 얼마나 삭막했는지 몰라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는데도 뭔가 마음이 허전하고 텅 빈 것 같았다니까요. 게다가 사모님 말수도 부쩍 줄어들고 생기도 없으셔서,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아이들 앞에서 내색을 안 하려고 사모님이 얼마나 애쓰셨던지, 아이들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사모님과 대표님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나 봐요. 아무튼 이렇게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이모님의 말에 전동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슴이 텁텁하게 막히는 것 같았다.소은정이 힘들어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고통을 모르는 척 넘겨버린 건 그였다. 두려움 뒤에 숨어버린 비겁한 자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건 소은정이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그러길 바래야죠.”아이들의 식사는 색과 풍미는 물론 맛까지 완벽하게 갖춘 요리였다.전동하와 소은정의 식사는 의외로 간단했다. 청경채와 생선이 들어간 국수는 소은정이 좋아하는 야식 메뉴였다.소은정이 음식 냄새를 맡고 눈을 떴다.온몸이 쑤시고 힘이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바람에 아침 식사도 거른 그녀는 송지학을 배웅해 줘야 했기에 점심도 건너뛰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전동하가 새봄이를 바닥에 앉히고 말했다."눈 감고 있으면 잠이 올 거야. 가서 오빠 책 읽어주는 거 듣고 있어봐, 아빠가 내일 학교에 데려다줄게.”순간 두 눈을 반짝이며 살포시 미소를 짓는 새봄이었다.아빠가 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을 듣고 아이는 마냥 행복해했다.화목하고 평화로운 이 광경이 어쩌면 환각 때문에 일어난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환각이 아니라는 걸 인지한 소은정이었다.너무나도 소중한 이 순간이 언제 다시 사라질지 몰라 여전히 불안했다.전동하는 음식을 그녀의 앞으로 밀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조금이라도 먹어요.”순간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약간 고였다. 그토록 바라던 상황이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에 그녀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전동하에게 자기 심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낮에 있었던 일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고, 술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녀는 의식의 흐름에 모든 걸 맡기고 싶었다.하지만 이렇게 그를 마주하고 있으니 자기가 섣부르게 행동을 한 것 같아 후회되었다.한입 먹은 소은정은 입맛이 없어 국물만 몇 숟가락 떠 마신 뒤 수저를 내려놓았다.반면, 전동하가 느긋하게 음식을 즐기며 식사를 이어갔다.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소은정은 전동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자기를 향한 그녀의 뜨거운 시선에 전동하는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뒷정리하기 시작했다.눈을 깜빡이며 그를 쳐다보던 소은정은 시선을 거두고 두 사람의 식기를 부엌으로 가져갔다.한참 뒤, 다시 자리에 앉은 소은정을 전동하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조명 아래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다소 창백하고 침울했다."오후에 있었던 일, 기억나요?"‘오늘 일어났던 일을 어떻게 잊겠어?’오후 내내 뒤척이다 보니 그녀는 몸이 뻐근했다. 소은정의 얼굴이 한껏 달아올라 입술을 깨물었다."술을 많이 마셨어요?"전동하가 낮은 목소리로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술은 마셨지만, 많이는 안 마셨어요."충동적으로 저지른
전동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절했다. 그래서 그들의 차량이 그녀를 쓰러트린 사실도 알지 못했다.그녀만 마음이 걸렸다.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요. 뭐든지 다 알려줄게요."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리며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묻고 싶지 않아요. 얘기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요."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짜증을 내며 방으로 향했다. 왜 이렇게 성질이 나는지 그녀도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전동하에게 사라지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전동하는 지팡이를 짚고 그녀가 들어간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소은정은 이미 욕실로 들어간 뒤였다.누적되었던 피로를 풀기 위해 그녀는 반신욕을 했다.그녀를 기다리기 위해 의자에 털썩 앉은 전동하는 책상 위에 놓인 잡지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던 그는 조용히 새봄이의 방으로 향했다.준서가 해준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던 탓인지, 아니면 너무 재미없었던 탓인지 두 아이는 깊은 잠이 들었다. 한 명은 가로로, 다른 한 명은 세로로 누워 쿨쿨 자고 있었다.전동하는 따듯한 눈빛으로 사랑스러운 새봄이를 바라보았다. 불편하게 자는 문준서가 신경 쓰였던 그는 아이를 방으로 옮기기 위해 다가갔다.다리가 아픈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준서를 등에 업고 그의 방으로 향했다.아이를 방으로 옮긴 전동하는 따듯한 물 한 잔을 따라 안방으로 향했다.마침 샤워를 끝내고 밖으로 나온 소은정은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피로가 쌓여 매우 지쳐있는 상태였지만 그녀는 내일 자신의 상태를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었다.긴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녀의 두 볼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샤워하면서 충분히 진정했다고 여긴 그녀는 전동하를 보자마자 자기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전동하는 그녀가 다가오자 손에 든 잡지를 내려놓고 천천히 그녀의 뒤에 가서 수건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닦아주었다.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결이었다.소은정은 그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비키자 전동하가 그녀의 어깨를
소은정은 실눈을 뜨며 전동하를 째려보았다. 그를 뒤로 가볍게 밀쳐지자 뒤로 힘없이 밀려났다.투닥거리고 있으니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전동하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물컵을 그녀에게 건넸다."약부터 먹어요."순간 당황한 소은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뜬 소은정은 전동하를 바라보았다. 전동하는 몸을 돌려 책상 위에 놓인 약병 몇 개를 들어서 보았다.소은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안 거예요?"전동하의 눈빛이 어둡게 변했다."처음 돌아왔을 때, 윤 비서한테 조사하라고 했거든요. 조우태 선생님이 당부하더라고요, 당신한테 약 잘 챙겨주라고."한숨을 뱉은 소은정이 덤덤하게 말했다."당신 때문에 약 먹는 거 아니에요. 당신, 나한테 그 정도로 중요한 사람 아니에요.""음."전동하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내가 미안해요. 너무 늦게 돌아와서 미안해요. 이젠 다 좋아질 거예요."자기를 안심시키는 전동하의 손길에 그녀는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오늘 그녀는 감정 기복이 너무 컸다.최후의 이성을 가까스로 움켜잡은 그녀는 전동하가 건네준 약을 받아들여 입 안에 넣고 물을 삼켰다.평소 그녀는 약이 보이면 먹고 까먹으면 안 먹었다.전동하가 돌아왔기에 그녀의 마음은 한결 안정감을 찾았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우울증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인구 중 절반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단지 우울증이 오게 된 계기와 증상이 다를 뿐이었다.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으니까.소은정의 시선을 느낀 전동하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씻고 올게요."깔끔한 성격이었던 그는 부엌에서 혹시라도 냄새가 배었을까 봐 씻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소은정은 실망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못한 채 잡지를 들고 침대로 터덜터덜 걸어갔다.전동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몸이 불편하게 된 전동하는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생을 이곳저곳 떠돌면서 살 줄 알았다.다행히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