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소은정은 잠에서 깨었다.그녀를 안고 있는 전동하의 팔은 따뜻하면서도 단단했다.모든 순간들이 그녀의 뇌리에 각인되었다.혹시나 이 모든 게 꿈일까 봐 두려웠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전동하의 얼굴부터 확인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전동하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고 그녀는 강제로 그의 가슴팍에 엎드리게 되었다. 넘어지면서 그의 다리를 건드린 소은정이었다.순간 몸으로 전해진 고통에 전동하가 눈을 떴다.순간 잘못된 걸 감지한 그녀는 서둘러 일어나 이불 안을 들추어 보았다.하지만 전동하는 한 손으로 이불을 꽉 잡고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가 나긋하게 말했다."아침부터 뭐 하는 거예요?"소은정은 울상을 지었다."내가 다리 건드렸어요, 아프죠?""괜찮아요."그는 위로하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미안함에 입을 꾹 닫은 소은정이었다.전동하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일어나서 침대에 기대어 한숨을 쉬었다."조금 아팠어요. 발길질을 당한 것 같았어요. 금방 나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소은정은 두 눈을 깜빡이며 초조하게 물었다."그럼 어떻게 해요? 약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병원 갈까요?"전동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해외에서 재활 기기를 갖고 왔어요. 부엌쪽에 있는 방에 있어요. 매일 재활 운동하면 아프지 않아요. 걷는 게 조금 불편할 뿐이지."의사는 그에게 평소에 될수록 도보를 하지말라고 했다. 하지만 전동하는 자기를 아무것도 못 하는 폐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유리로 보지 말아요. 깨지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단지.. 재활치료는 아주 오랜 기간 해야 하는 거니까....당신이 날 싫어할까 봐 걱정이에요."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라고 그 의미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었다.그녀는 그제야 전동하가 신경 쓰는 게 어떤 건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귀국하고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은 이유를,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신분을 숨긴 이유는 전부
전동하는 레스토랑 직원에게 연락해 셰프에게 식사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소은정은 몇 차례 이곳에 왔었다. 모두 혼자 온 것이긴 하지만.전동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소은정은 여전히 어색했다.둘 사이의 진전이 너무 빨랐던 탓에 그녀는 전동하의 행동에 매번 깜짝 놀랐다.레스토랑 직원들이 자연스레 그들을 맞이했다."사장님, 예약하신 자리 준비되었습니다."고개를 끄덕인 전동하는 그들에게 소은정을 소개했다."여긴 제 아내예요.""사모님, 안녕하세요."직원들은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곧 레스토랑 전체에 그녀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유일한 VIP 회원님이 사장님의 부인이셨네요!""그 단골이죠? 예쁘신 분?""둘이 화해했나 봐요!""최나영이 중간에서 훼방을 놓은 줄 알았다니까요!"...이번 방문은 기존의 방문과 달랐다.소은정은 가족들과 함께 온 것이다.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최나영이 보이지 않아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역시 한 번 뱉은 말은 잘 지킨다니까.'그녀는 전동하를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전동하는 남녀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을 정확히 알고 잘 지켰다.서로의 마지노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고 마지노선을 지키지 않을 시 따르는 책임에 대해도 잘 알고 있었다.새봄이와 준서는 분수대 앞에 쪼그려 앉아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었다.소은정은 혹시나 미끄러질 아이들이 걱정되어 자리로 데려올 생각이었다.하지만 전동하가 그녀를 제지하며 따뜻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주위에 미끄럼 방지 카펫을 깔아둬서 넘어지지 않을 거예요."자세히 바라보니 분수대는 지난번과 달랐다. 소은정은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했다."조심해서 놀아."새봄이와 준서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물고기한테 시선을 돌렸다.전동하는 그녀를 데리고 레스토랑의 2층을 올라갔다.입맛이 별로 없었던 그녀는 전동하가 쉬었던 곳에 오히려 더 관심을 가졌다.전동하는 그녀를 데리고 자기가 지냈던 방으로 향했다
세상에서 아빠를 가장 좋아하는 새봄이는 전동하의 단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새봄이는 전동하의 무한한 열등감을 보지 못했다.아이들은 우르르 전동하를 에워쌌다. 상당히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전동하는 입꼬리를 올리기 위해 애썼다.때마침 교실 안으로 선생님이 들어왔다.전동하는 새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담듬은뒤 교실을 나왔다.그는 교실 밖에서 십분 동안 새봄이를 지켜보았다.결국 소은정의 재촉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아쉬운 마음으로 밖으로 나왔다."금방 가요."소은정은 교문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걸어 나오는 전동하를 발견한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전동하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새봄이가 있는 교실 쪽을 바라보며 아쉬운 듯 말했다."조그마한 우리 딸이 벌써 학교를 다니니까 마음이 아프네요."그의 말에 소은정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마이크는 새봄이보다 더 어릴 때부터 학교 다녔잖아요."전동하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마이크는 남자애고 독립성을 키우기 가장 좋은 환경이 학교니까 일찍 학교를 다닌 거지만 새봄이는 다르잖아요. 내 딸은 평생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는데!"새봄이가 원한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하늘의 별과 달을 따줄 기세였다.어린 나이에 벌써 사람들의 유언비어에 노출되고 그걸 견뎌내야 할 아이를 생각하고 있으니 마음이 아팠다. 새봄이를 평생 자기 손 아귀에 두고 아무도 새봄이한테 상처를 주지 못하게 지키고 싶었다.소은정은 지나치게 새봄이를 사랑하는 그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무라지 않았다.그녀도 새봄이를 학교에 보낼 때면 마음이 아파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하지만 새봄이는 한 번도 울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았고 선생님도 새봄이가 학교생활을 매우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그래서 소은정은 새봄이의 학교생활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두 사람은 차에 올랐다.소은정은 고개를 돌려 전동하를 바라보았다."회사 일은 다 정리했어요. 어디 갈까요?"전동하는 그녀와 떨어질 생각
소은호는 병원에서 한시연을 돌보고 있었다.둘째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가족들은 전혀 마음을 놓지 않았다.소찬식은 가정부 몇 명을 병원에서 그녀를 돌보게 했지만 사실 그건 과한 처사였다.사실 한시연의 일거수일투족은 전부 소은호가 케어하고 있었다.며칠간 줄곧 병원에 출근하다 싶이 한 그는 퇴원 날이 다가오자 곧바로 한시연을 집으로 데려갔다.소찬식이 손자를 데리고 본가로 오라고 하자 소은호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어쩔 수없이 소찬식 혼자 집에 있었다.소은정이 갑자기 저녁에 집에서 가족 파티를 하자는 말을 들은 소찬식은 기쁜 마음에 껄껄 웃었다.그는 얼른 소은해와 김하늘에게 연락했다.소은정은 전동하에게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전동하는 고개를 저으며 예의를 차리려 했다.그는 윤이한에게 은행의 금고에 가 골동품 몇 점과 그림을 준비하게 했다.그녀의 집에 처음 인사하러 갔던 날보다 더 성대하게 준비했다.전동하는 눈썹을 찌푸리고 윤이한에게 분부했다. 전동하의 통화가 끝나자 옆에서 지켜보던 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그리고 이 많은 물건들 다 들고 가봤자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보지도 못해요. 며칠 동안 걸어두다가 이내 창고에 넣을 거예요."전화를 끊은 전동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괜찮아요. 가족이잖아요. 은행에 보관하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터라 아버님한테 맡기는 게 차라리 좋을 것 같아요.그리고 가족들을 오랫동안 마음고생시켰잖아요. 당신은 쉽게 용서해 줬지만 아버님은 당신 딸이 걱정되어 마음이 불편하실 거예요.만약에 내 딸이 그런 남자가 좋다고 하면 틀림없이 그놈 호되게 때려줬을 거예요."할 말이 없었던 소은정은 먼 산을 바라보았다.전동하를 만난 게 너무 기뻤던 나머지 다른 사람들 감정까지 생각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녀는 소찬식이 그 정도로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가족들 전부 한마음일 것이다.윤이한이 준비한 물
얼마 전까지 그녀 집안의 운전기사가 자주 데리러 갔었다. 저녁이 되면 박수혁이 직접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집에서 외롭게 혼자 있는 것보다 소씨 저택에 가서 있는 걸 더 좋아했다.고용인들도 그를 아주 좋아했고 그가 좋아하는 디저트와 영화를 찾아주곤 했다.박수혁은 그와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나 일상적인 대화를 자주 나누긴 했다. 그리고 소씨 저택에 가서도 예의 있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사실 새봄이의 아빠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박시준은 소은정이 자기 엄마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아빠 없는 새봄이와 엄마 없는 박시준에게 엄마와 아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던 어느 날, 박수혁은 갑자기 운전기사를 학교로 보내기 시작했다.더 이상 소씨 저택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박수혁은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소은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소씨 저택이 좋았다. 소은정은 박시준의 몽글몽글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시준이 착하네요. 철이 다 들었어요."박시준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함께 소씨 저택에 가서 놀지 않겠냐고 물으려던 참에 뒤에서 남자가 느릿하게 걸어왔다.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던 박시준은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새봄이의 아빠, 소은정의 남편인 전동하가 나타나자 박시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알을 굴렸다.전동하는 박시준을 훑어보다 이내 소은정의 손을 잡아끌며 미소를 지었다."너무 안 나오니까 못찾은 줄 알고 따라왔어요.""고모부?"소지혁은 자기 눈 앞에 선 사람을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어... 어떻게...."전동하는 소지혁에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고모부 보니까 좋아? 자, 이리 와, 한번 안아보자."소지혁이 배시시 웃으며 전동하에게 달려갔다."고모부, 전 고모부가 이렇게 돌아올 줄 알았어요! 엄마가 고모 앞에서 고모부 얘기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전 고모부가 무사하실 줄 알았어요. 지진이 났던 산봉우리와 절벽까지의 높이를 계산하고 풍력과 지
소찬식은 얼른 전동하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고 전동하를 자세하게 훑어보았다. 소찬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소찬식은 고개를 돌려 소은정을힐끗 쳐다보았다."보아하니 넌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이렇게 꽁꽁 감추고 있었다니, 머리가 다 컸나 보구나."소은정은 죄송한 눈빛으로 소찬식을 바라보았다. 눈치를 보던 전동하가 나섰다."저도 이번 달에 귀국한 거예요. 은정 씨도 모르고 있었어요. 사실, 제 몸이 많이 불편해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소찬식은 지팡이를 짚고 있는 전동하의 처지를 눈치챘었다. 하지만 자기 입으로 인정하는 전동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그는 전동하의 어깨를 토닥이며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돌아왔으니 다 괜찮아. 살아 있는 거만으로 충분해, 다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소은해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전동하에게 달려왔다."살아있어서 다행이야!"소은해는 소은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기에게 제니퍼와 전동하가 동일 인물이라고 했을 때 믿지 않은 건 소은해였다.하지만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니 그녀가 한 말이 그제야 다 연결되었다.그는 그제야 소은정의 말을 믿었다.김하늘은 태연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정말 다행이에요. 은정이가 서프라이즈라고 하던데, 이렇게 큰 서프라이즈일 줄은 몰랐어요. 아버님, 아주버님 댁에도 알려야 할 것 같은데요? 들으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소찬식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알리거라. 우리 착한 사위가 돌아왔다고."소찬식은 전동하의 어깨를 토닥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살이 많이 빠졌구나. 오랫동안 안 돌아온 이유가 치료하려고 그런 거였니? 아니야, 아니야. 돌아왔으니 됐어!"그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었다.전동하에게 애정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었다.전동하가 옆에 있는 줄 알았다면 그는 맞선 상대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도 전동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양심의 가책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전동하는 눈썹을 찌푸렸다.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고민에 잠긴 건지 알 수 없었다.소은정은 우연준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전동하는 윤이한과 통화하고 있었다"네, 판매하세요, 경험자 우선으로 하세요."그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뭘 팔아요?""레스토랑이요, 더 이상 운영 안 할 거예요."전동하는 레스토랑을 잠깐 동안 운영할 생각으로 차린 것이었다. 장기간동안 레스토랑 사업에 신경 쓸 생각조차 없었다.레스토랑은 아직 수입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윤이한은 레스토랑이 3년 정도는 적자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시장과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항상 최고의 재료와 서비스가 필요했다.그러나 이 두 가지는 하필이면 투자 비용이 가장 많이 들었다.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다른 산업을 살펴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전동하는 결국 레스토랑을 매각하기로 했다.윤이한은 전동하가 하루빨리 회사로 복귀하기를 고대했다.소은정이 장난스럽게 말했다."난 또 당신이 요리하는 데 맛 들려서 레스토랑 포기 못 할 줄 알았는데!"전동하는 얼굴을 만지며 웃었다. "당신 한 명을 위한 셰프가 될 거예요."두 사람은 웃으며 차를 멈추고 손잡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비록 더 이상 레스토랑 사업을 계속하지 않기로 했지만, 직원 배치와 일련의 후속 절차를 거칠 필요는 있었다.하루아침에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하지만 레스토랑 안에 최나영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최나영은 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명의 동료가 울고 있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넸다."슬퍼하지 마세요. 사장님이 쿨하신 분이라 퇴직금도 주셨잖아요. 며칠 동안 휴식하면서 일자리를 천천히 찾아보는 건 어때요?"가게안은 고요했다.손님이 한 명도 없어 아주 조용했다.안으로 들어선 전동하는 이 장면을 목격하고 얼굴을 굳혔다.소은정은 옆에 서서 조용히 지켜보았다.그녀는 전동하가 공적인 일에 관해서는 언제나 매우 정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설령 그가
전동하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소은정은 어느 순간 과거에 회의장 입구에 서서 그녀에게 백련화를 알아보라고 가르쳐 주던 옛 모습이 겹쳐 보였다.덕분에 최나영 때문에 불쾌했던 기분이 사라졌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젖혔다."알겠어요. 당신은 그걸 알면서도 최나영 씨를 여기로 데려온 거예요?"'최나영과 그렇게 가깝게 지냈고?'물론, 마지막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계략이 있는 여자와 실의에 빠진 남자, 설령 남자가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자의 속임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그때 미처 최나영에 대해 조사하지 못했어요. 주변 인력이 부족해서 귀국해서 조사했어요, 너무 늦었지만."어둡게 깔린 목소리로 전동하는 사람을 홀리 듯 말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귓불을 꼬집었다."내 말 알아들었어요?"순간 몸으로 전해지는 찌릿찌릿함에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침착한 척 말했다."알아들었어요,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그녀는 전동하가 최나영을 다시 고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녀도 원하지 않았다.설령 레스토랑을 오래 열지 못할지라도, 그녀는 최나영이 그들의 눈앞에서 휘젓고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전동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귀에 입을 맞추었다. 뜨거운 숨이 그녀의 뼈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일부러 날 도발하는 건가?'전동하는 뒤로 물러서서 그녀와 잠시 거리를 두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말아요, 굳이 나까지 나설 필요 없어요."전동하는 야릇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은 곧 이끌리는 듯 서로를 껴안았다.전동하는 이곳을 정리하는 것보다 그녀와 보내는 시간이 더 간절했다. 하지만 소은정은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 때문에 노심초사했다.두 사람이 밀치고 당기는 사이 누군가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소은정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손질했다.전동하는 미소를 지으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을 빼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