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그녀 집안의 운전기사가 자주 데리러 갔었다. 저녁이 되면 박수혁이 직접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집에서 외롭게 혼자 있는 것보다 소씨 저택에 가서 있는 걸 더 좋아했다.고용인들도 그를 아주 좋아했고 그가 좋아하는 디저트와 영화를 찾아주곤 했다.박수혁은 그와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나 일상적인 대화를 자주 나누긴 했다. 그리고 소씨 저택에 가서도 예의 있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사실 새봄이의 아빠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박시준은 소은정이 자기 엄마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아빠 없는 새봄이와 엄마 없는 박시준에게 엄마와 아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던 어느 날, 박수혁은 갑자기 운전기사를 학교로 보내기 시작했다.더 이상 소씨 저택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박수혁은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소은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소씨 저택이 좋았다. 소은정은 박시준의 몽글몽글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시준이 착하네요. 철이 다 들었어요."박시준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함께 소씨 저택에 가서 놀지 않겠냐고 물으려던 참에 뒤에서 남자가 느릿하게 걸어왔다.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던 박시준은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새봄이의 아빠, 소은정의 남편인 전동하가 나타나자 박시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알을 굴렸다.전동하는 박시준을 훑어보다 이내 소은정의 손을 잡아끌며 미소를 지었다."너무 안 나오니까 못찾은 줄 알고 따라왔어요.""고모부?"소지혁은 자기 눈 앞에 선 사람을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어... 어떻게...."전동하는 소지혁에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고모부 보니까 좋아? 자, 이리 와, 한번 안아보자."소지혁이 배시시 웃으며 전동하에게 달려갔다."고모부, 전 고모부가 이렇게 돌아올 줄 알았어요! 엄마가 고모 앞에서 고모부 얘기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전 고모부가 무사하실 줄 알았어요. 지진이 났던 산봉우리와 절벽까지의 높이를 계산하고 풍력과 지
소찬식은 얼른 전동하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고 전동하를 자세하게 훑어보았다. 소찬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소찬식은 고개를 돌려 소은정을힐끗 쳐다보았다."보아하니 넌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이렇게 꽁꽁 감추고 있었다니, 머리가 다 컸나 보구나."소은정은 죄송한 눈빛으로 소찬식을 바라보았다. 눈치를 보던 전동하가 나섰다."저도 이번 달에 귀국한 거예요. 은정 씨도 모르고 있었어요. 사실, 제 몸이 많이 불편해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소찬식은 지팡이를 짚고 있는 전동하의 처지를 눈치챘었다. 하지만 자기 입으로 인정하는 전동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그는 전동하의 어깨를 토닥이며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돌아왔으니 다 괜찮아. 살아 있는 거만으로 충분해, 다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소은해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전동하에게 달려왔다."살아있어서 다행이야!"소은해는 소은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기에게 제니퍼와 전동하가 동일 인물이라고 했을 때 믿지 않은 건 소은해였다.하지만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니 그녀가 한 말이 그제야 다 연결되었다.그는 그제야 소은정의 말을 믿었다.김하늘은 태연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정말 다행이에요. 은정이가 서프라이즈라고 하던데, 이렇게 큰 서프라이즈일 줄은 몰랐어요. 아버님, 아주버님 댁에도 알려야 할 것 같은데요? 들으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소찬식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알리거라. 우리 착한 사위가 돌아왔다고."소찬식은 전동하의 어깨를 토닥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살이 많이 빠졌구나. 오랫동안 안 돌아온 이유가 치료하려고 그런 거였니? 아니야, 아니야. 돌아왔으니 됐어!"그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었다.전동하에게 애정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었다.전동하가 옆에 있는 줄 알았다면 그는 맞선 상대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도 전동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양심의 가책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전동하는 눈썹을 찌푸렸다.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고민에 잠긴 건지 알 수 없었다.소은정은 우연준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전동하는 윤이한과 통화하고 있었다"네, 판매하세요, 경험자 우선으로 하세요."그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뭘 팔아요?""레스토랑이요, 더 이상 운영 안 할 거예요."전동하는 레스토랑을 잠깐 동안 운영할 생각으로 차린 것이었다. 장기간동안 레스토랑 사업에 신경 쓸 생각조차 없었다.레스토랑은 아직 수입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윤이한은 레스토랑이 3년 정도는 적자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시장과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항상 최고의 재료와 서비스가 필요했다.그러나 이 두 가지는 하필이면 투자 비용이 가장 많이 들었다.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다른 산업을 살펴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전동하는 결국 레스토랑을 매각하기로 했다.윤이한은 전동하가 하루빨리 회사로 복귀하기를 고대했다.소은정이 장난스럽게 말했다."난 또 당신이 요리하는 데 맛 들려서 레스토랑 포기 못 할 줄 알았는데!"전동하는 얼굴을 만지며 웃었다. "당신 한 명을 위한 셰프가 될 거예요."두 사람은 웃으며 차를 멈추고 손잡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비록 더 이상 레스토랑 사업을 계속하지 않기로 했지만, 직원 배치와 일련의 후속 절차를 거칠 필요는 있었다.하루아침에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하지만 레스토랑 안에 최나영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최나영은 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명의 동료가 울고 있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넸다."슬퍼하지 마세요. 사장님이 쿨하신 분이라 퇴직금도 주셨잖아요. 며칠 동안 휴식하면서 일자리를 천천히 찾아보는 건 어때요?"가게안은 고요했다.손님이 한 명도 없어 아주 조용했다.안으로 들어선 전동하는 이 장면을 목격하고 얼굴을 굳혔다.소은정은 옆에 서서 조용히 지켜보았다.그녀는 전동하가 공적인 일에 관해서는 언제나 매우 정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설령 그가
전동하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소은정은 어느 순간 과거에 회의장 입구에 서서 그녀에게 백련화를 알아보라고 가르쳐 주던 옛 모습이 겹쳐 보였다.덕분에 최나영 때문에 불쾌했던 기분이 사라졌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젖혔다."알겠어요. 당신은 그걸 알면서도 최나영 씨를 여기로 데려온 거예요?"'최나영과 그렇게 가깝게 지냈고?'물론, 마지막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계략이 있는 여자와 실의에 빠진 남자, 설령 남자가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자의 속임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그때 미처 최나영에 대해 조사하지 못했어요. 주변 인력이 부족해서 귀국해서 조사했어요, 너무 늦었지만."어둡게 깔린 목소리로 전동하는 사람을 홀리 듯 말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귓불을 꼬집었다."내 말 알아들었어요?"순간 몸으로 전해지는 찌릿찌릿함에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침착한 척 말했다."알아들었어요,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그녀는 전동하가 최나영을 다시 고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녀도 원하지 않았다.설령 레스토랑을 오래 열지 못할지라도, 그녀는 최나영이 그들의 눈앞에서 휘젓고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전동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귀에 입을 맞추었다. 뜨거운 숨이 그녀의 뼈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일부러 날 도발하는 건가?'전동하는 뒤로 물러서서 그녀와 잠시 거리를 두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말아요, 굳이 나까지 나설 필요 없어요."전동하는 야릇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은 곧 이끌리는 듯 서로를 껴안았다.전동하는 이곳을 정리하는 것보다 그녀와 보내는 시간이 더 간절했다. 하지만 소은정은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 때문에 노심초사했다.두 사람이 밀치고 당기는 사이 누군가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소은정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손질했다.전동하는 미소를 지으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을 빼꼼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오직 해외에서 가져온 기기에 정신을 집중했으며 전동하가 기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날씨는 맑고 촉촉하며 공기는 유난히 청신했다.눈 깜짝할 사이에,한시연은 산후조리가 끝나고 소지율도 백일이 되었다.소찬식의 성격에 따르면 소지율의 백일을 아주 성대하게 진행할 것이다. 더군다나 전동하도 돌아왔으니 그야말로 겹경사이다.다들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장소는 힐튼호텔로 정했다.그들은 많은 사회 명사와 사업 파트너를 초대했다.심강열까지 참석했다.이날, 각종 업계 사람의 축하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소찬식은 입이 귀에 걸릴 뻔했다. 연회장의 사람들 사이에는 왠지 모를 자본의 냄새가 풍겨 오기도 했다.출산 뒤 한시연은 빠른 시기에 몸매를 회복했고 컨디션도 아주 좋았다.그녀는 소은호 옆에 꼭 붙어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었고 소지율은 소은호 품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전동하도 기꺼이 소찬식과 함께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예전의 그 착한 사위가 다시 돌아왔다.소은정과 김하늘은 소파에 앉았고 소은해는 사람들에게 잡혀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모처럼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김하늘은 슬그머니 소은정을 힐끗 보았다.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 다이아몬드 같은 불빛이 쏟아져 그녀의 흰 피부를 더 부각했다. 와인을 마셔서 그런지 찬찬히 보면 약간의 홍조가 보이기도 했다.소은정은 여전히 빛나고 아름답다. 전동하가 사라진 그 시간과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김하늘은 미소를 지으며 살며시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요즘 얼굴색이 아주 보송보송하네. 얼굴에 손댔어? 아니다, 동하 씨가 돌아와서 밤낮없이 바쁜 거 아니야?”담담하던 소은정은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술잔을 뒤엎을 뻔했다.그녀의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김하늘, 너 어쩜 말을 그렇게.”그녀는 취기를 머금은 눈빛으로 김하늘을 노려보더니 다급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둘러보았다.마치 비밀을 들킨 고양이처럼.김하늘은 아무렇지 않은
박수혁은 가늘고 긴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냉담하고 쌀쌀한 기운은 왠지 우울하고 씁쓸한 느낌이었다.신호등을 하나만 더 건너면 힐튼 호텔에 도착한다.이한석은 초대장을 들고 우물쭈물하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대표님…”이한석의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박수혁은 쌀쌀한 눈길로 이한석을 노려보았다.이한석은 이를 깨물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전동하 씨가 돌아왔어요. 이번 파티의 목적은 소은호 씨의 둘째 아드님의 백일보다도 전동하 씨의 컴백을 알리기 위한 거예요. 근데 왜 굳이 참석하시려는 거죠? 이런 자리에는 기자들도 많은데 만약 잘못 얽히게 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테니 차라리 선물만 전해주고 나오는 건 어떨까요?”아무리 생각해도 박수혁이 참석할 자리는 아닌 것 같았다.물론,처음에 이한석은 박수혁과 소은정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 전이나 후나, 불타는 사랑을 하지 못했다.한 사람의 일방적인 헌신이거나 혹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만약 전동하가 정말 죽었다고 가정했을 때, 몇 년 혹은 십여 년을 버틴다면 박수혁에게도 동기와 희망이 생길 수 있다.하지만 전동하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컴백했다. 이한석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박수혁은 더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비록 소씨 가문에서 초대장을 보내왔지만, 이것은 그저 예의일 뿐, 진심이 아니다.하지만 박수혁은 바쁜 일을 마치고 결국 힐튼 호텔로 향했다.이한석은 박수혁의 차가운 눈빛에 괜히 말을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박수혁은 눈에서 뭔가 솟구치듯이 이한석을 노려보았다.바로 이때,이한석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더니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대표님, 조심하세요…”박수혁은 저도 모르게 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했다.그러나 그와 동시에 한 여자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펑”하는 소리와 함께,순간적으로 브레이크 소리가 울렸다.박수혁은 차로 사람을 쳤다.박수혁은 안색이 서서히 변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이한석도 얼굴이 하얗게 질
박수혁의 그런 극한의 차가움과 극한의 부드러움은 완벽하게 어우러져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주었다.정말 그의 말처럼 계속했더라면 박수혁은 죽을 수도 있다.간호사는 이런 남자가 왜 목숨을 걸고 수혈해 주려는 지 알 수 없었다.응급실의 불은 네다섯 시간 동안 켜져 있었다.이한석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그는 경찰서에서 당시 운전자가 본인이 아니었음을 CCTV를 통해 입증했다.비록 박수혁이 신호를 위반했지만 이한석은 본인이 박수혁의 주의를 분산시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CCTV를 확인한 결과, 비록 그들이 차로 여자를 치긴 했지만, 여자가 파란불이 켜지기도 전에 도로로 달려 나가면서 사고가 생기게 되었다.게다가 박수혁이 제때에 브레이크를 밟았기에 여자는 그저 쓰러졌을 뿐 날아가지 않았다.왜 여자가 그렇게 피를 흘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수혁을 깨끗하게 떼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남은 건 그들이 여자와 사적인 협상을 하는 것이다.드디어 이한석이 병원에 도착했고,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밖에서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어와 사람을 소름 돋게 했다.이한석의 술기운도 말끔히 사라졌다.응급실 앞에는 사람이 없었다.이한석은 박수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벨 소리는 옆 병실에서 들려왔다.이한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갔다.부스스한 머리로 의자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속눈썹을 가볍게 떨고 있는 박수혁의 모습은 왠지 아련해 보였다.박수혁의 창백한 얼굴에는 혈관이 선명하게 보였다.바늘구멍을 제때 막지 않은 탓에 팔에는 피가 배어 나와 굳은 피가 가득했다.이한석은 왠지 섬뜩해졌다.그는 동공이 흔들리며 감히 박수혁을 깨울 엄두도 나지 않았다.하지만 발걸음 소리와 벨 소리에 박수혁은 이미 깨어났다.박수혁은 눈을 비스듬히 뜨더니 쌀쌀한 눈빛을 보냈다.이한석은 심장이 철렁해서 바로 보고했다.“대표님, 다 처리했어요. 여성분이 깨어나고 합의를 보면 될 것 같아요. 피곤하시면 먼저 들어가 쉬세요. 제가 병원에 있을게요.”박수혁은 어두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
이 시간에 기사는 아마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그러니까 하는 수 없이 대리기사를 불러야 한다.박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망설임 없이 걸어 나갔다.차 안의 피비린내에 박수혁은 속이 울렁거렸다. 사실 심하게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출혈도 많았고 갈비뼈도 부러졌다.어쨌든 모두 그의 잘못이니 인정해야 한다.대리기사는 15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박수혁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대리기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는 이런 고급 차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운전대도 처음 잡아본다.별장에 도착했다.거실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박수혁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아직도 방에 들어가지 않은 박시준을 무거운 경고의 눈길로 노려보았다.박시준은 입술을 오므리며 박수혁을 향해 다가와 조심스럽게 머리를 쳐들었다.“아빠, 소은정 아줌마 보셨어요? 지혁이가 그러는데 동생이 백일이래요. 저도 지혁이 동생한테 선물 주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박시준의 하얗고 보들보들한 얼굴에는 기대가 가득 차 있었다.혼날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꼭 이 말이 하고 싶었다.박시준은 드디어 메이드와 함께 그곳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박수혁과 함께 살게 되었다.비록 대부분 시간은 출장 중이거나 집에 없지만 가끔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박시준은 너무 즐거웠다. 박시준은 친한 친구가 소지혁뿐이다. 소지혁은 동생을 아주 예뻐하기에 박시준도 소지혁의 동생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하지만 박시준의 물음에 박수혁은 차가운 눈길로 한참을 침묵했다.박시준은 실망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오므렸다. 박시준에게 용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선물하고픈 인형을 사기에는 돈이 조금 부족했다. 보아하니, 포기해야 한다.그런데 이때, 박수혁은 옷깃을 당기며 담담한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 차에 준비해 뒀으니까 가져다줘.”말을 끝낸 박수혁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박시준은 놀랍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