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에 기사는 아마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그러니까 하는 수 없이 대리기사를 불러야 한다.박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망설임 없이 걸어 나갔다.차 안의 피비린내에 박수혁은 속이 울렁거렸다. 사실 심하게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출혈도 많았고 갈비뼈도 부러졌다.어쨌든 모두 그의 잘못이니 인정해야 한다.대리기사는 15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박수혁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대리기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는 이런 고급 차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운전대도 처음 잡아본다.별장에 도착했다.거실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박수혁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아직도 방에 들어가지 않은 박시준을 무거운 경고의 눈길로 노려보았다.박시준은 입술을 오므리며 박수혁을 향해 다가와 조심스럽게 머리를 쳐들었다.“아빠, 소은정 아줌마 보셨어요? 지혁이가 그러는데 동생이 백일이래요. 저도 지혁이 동생한테 선물 주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박시준의 하얗고 보들보들한 얼굴에는 기대가 가득 차 있었다.혼날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꼭 이 말이 하고 싶었다.박시준은 드디어 메이드와 함께 그곳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박수혁과 함께 살게 되었다.비록 대부분 시간은 출장 중이거나 집에 없지만 가끔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박시준은 너무 즐거웠다. 박시준은 친한 친구가 소지혁뿐이다. 소지혁은 동생을 아주 예뻐하기에 박시준도 소지혁의 동생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하지만 박시준의 물음에 박수혁은 차가운 눈길로 한참을 침묵했다.박시준은 실망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오므렸다. 박시준에게 용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선물하고픈 인형을 사기에는 돈이 조금 부족했다. 보아하니, 포기해야 한다.그런데 이때, 박수혁은 옷깃을 당기며 담담한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 차에 준비해 뒀으니까 가져다줘.”말을 끝낸 박수혁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박시준은 놀랍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전동하는 소은정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으며 그녀가 아픈 건 더 싫었다.하여 조그마한 위험도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소은정은 전동하와 함께 있을 때 모든 게 정상이고 예전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하지만 전동하가 두려운 것은 소은정의 옆에 없을 때, 그녀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특히 매번 팔에 상처를 볼 때마다 전동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파졌다. 그는 늘 가슴을 졸이며 자기 자신에게 방심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전동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고 두 사람은 모두 우울증이 불러오는 위험성을 최대한 무시하는 척했다.전동하는 정말 무시하는 게 아니다.소은정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온수를 가져왔다. 전동하는 약을 찾아 소은정에게 주었고 그녀가 먹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되었다.마지막으로 전동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었다.“착해요.”전동하는 몸을 돌려 컵을 내갔다.전동하가 돌아왔을 때, 그는 소은정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윤이한이 알려준 사실을 말했다.소은정은 아주 놀라웠다.“인터뷰요? 어떤 인터뷰? 만약 엔터 쪽이면 됐어요.”전동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아마도 경제 뉴스 인터뷰일 거에요. 하지만 자극성을 위해 우리 사생활도 묻겠죠. 그래서 일단은 미뤘어요.”“그걸 왜 미뤄요? 컴백하고 아직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이번 기회에 인터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성강희가 촬영한 사진뿐이잖아요. 직접 나서지 않으면 사람들 마음속의 동하 씨는 이미 죽었을 거예요.”소은정은 인터뷰에 꽤 관심을 보였다. 전동하는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그래요, 그러면 같이할까요?”“그때 다시 얘기해요.”소은정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SC그룹의 이번 시즌 신상이 곧 출시하니 같이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다음 날 오후,병원.이한석은 병상에 누워있는 남유주를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그녀가 깨어났다.의사는 환자가 깨어나기만 하면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도리가 없는 이한석이 스스로 말을 걸었다.“남유주 씨, 오후부터는 메이드가 돌봐 드릴 거예요. 이건 제 연락처니까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남유주는 이한석의 명함을 빤히 쳐다보더니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비서님한테 얘기해도 소용없을 테니 박수혁 씨 연락처 주세요.”이한석은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죄송하지만 대표님의 연락처는 함부로 드릴 수 없어요.”“좋아요, 그렇다면 경찰서에 연락해서 어떻게 양형할지 여쭤볼게요.”남유주의 한 마디는 이한석의 정곡을 찔렀다.이한석은 소름이 돋았다.그는 이제야 남유주가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도대체 얼마를 원하려고 저러는 거지?’이한석은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대표님은 왜 하필이면 이 여자를…’다행히 남유주는 이미 가정을 이루었다. 아니면 혹시라도 박수혁에게 빠지면 큰일이다.이한석은 박수혁이 한동안 실패한 사랑의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어쩌면 이한석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이한석은 결국 박수혁의 명함을 건네주었다.“여기 우리 대표님 명함이에요. 평소에 많이 바쁘시다 보니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이한석은 그녀에게 예방주사를 놓았다.남유주는 피식 웃더니 두 사람의 명함을 함께 두었다.이한석은 점점 남유주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메이드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메이드가 도착하니 이한석은 더는 이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이 기회에 대표님한테서 크게 받아내려는 게 분명해. 그러니까 여러 번 생각해 봐야겠지.’이한석은 메이드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병실을 떠났다.태한그룹.병원에서 나온 이한석은 집에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바로 회사로 나왔다.이한석은 SC그룹의 우연준이 휴게실에 있을 줄 생각도 못 했다.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급히 우연준에게 다가갔다.“우 비서님?”우연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입니다, 이 사장님.”이한석은 쑥스러운
직접 코디한 주얼리 세트도 그녀가 신중하게 고른 것이다.전동하도 같은 시리즈의 손목시계로 포인트를 강조했다. 두 사람은 언뜻 보기에도 티키타카가 잘 맞아 보였다.전동하의 정장은 한 치의 구김도 없었지만 상태는 아주 평온했다. 그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전동하의 고급스러운 외모에서는 차가움이 풍겼지만 눈빛은 온화했다.옆에 놓인 지팡이가 아니었다면 그는 예전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전동하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며 만지작거리더니 소은정의 귓가에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귓속말했다.“왜 인터뷰하겠다고 했는지 알겠어요. 그 투철한 직업정신은 아무도 못 따라올걸요!”소은정은 입꼬리를 올리고 살며시 웃었다. 그녀의 모습은 아주 생기발랄해 보였다. 검은색의 긴 생머리를 찰랑이며 환하게 웃는 그녀는 너무나도 눈부셨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알면 됐어요. 이번 시즌 주얼리는 반드시 대박 날 거라 모델도 따로 필요 없어요. 집에 가면 맛있는 거 해 줄게요.”전동하는 눈썹을 치켜뜨더니 눈빛이 사악하게 변하며 손가락을 비볐다. 그는 이 순간 마이크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미소를 지으며 봄비같이 촉촉한 목소리로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내가 생각하는 맛있는 거?”전동하의 말은 백스테이지의 모든 사람에게 이어폰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다들 순식간에 어리둥절해졌다.어디 그것뿐일까? 모두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시선을 소은정에게 돌렸다.소은정은 손을 뻗어 가만히 전동하의 허리를 꼬집었다. 전동하는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한 듯 옆구리에 힘을 가득 주었다.소은정과 전동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두 사람의 꽁냥거리는 모습에 사람들은 갑자기 부러움을 느꼈다.그것은 가식이 아니고 연기가 아닌 정말로 아무도 끼어들 자리가 없는 진짜 사랑이다.전동하는 문뜩 마이크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소은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소은정은 이내 안색이 변하며 미소를 거두었다.진행자도 뻘쭘한 표
이한석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폭행이요?”‘예리하고 날카로운 말투로 봐서는 전혀 맞으면서 살 것 같지 않았는데!’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몸도 성치 않은 그녀가 맞서 싸울 힘이 어디 있겠는가?이한석은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했다.“그래요, 알겠어요.”이한석은 바로 차를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박수혁에게 전화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중에 마침 박수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우리 엄마가 아프시대. 나 가봐야 하니까 큰일 없으면 전화하지 마.”사실 박수혁은 핑계를 대고 도망가고 싶었다.하지만 이민혜가 아프다는 말도 사실이다.박수혁은 사람을 보내 이민혜를 단속했다. 처음에는 소란을 피웠지만 박수혁이 전혀 물러서지 않으니 이민혜는 소란을 피울 힘도 사라졌다.박대한은 사망하고 박예리도 어디에 던져졌는지 알 수 없다.그녀는 박봉원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고, 게다가 지금은 박봉원이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도 없으니 굳이 보모가 되어 시중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민혜는 너무 외롭다. 또 전처럼 멋대로인 삶을 살지 못하니 괴롭기도 했다.메이드들은 박수혁이 직접 갈 줄 몰랐다.이한석은 가볍게 대답하고 남유주에 관해 말하려고 했다.“대표님, 병원에 계시는 남유주 씨……”하지만 이한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수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남유주는 박수혁에게 아무것도 아니다.하여 굳이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이한석은 다시 전화하지 않았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만약 남유주에게 큰일이 생기면 박수혁도 연루될 수밖에 없기에 이한석은 진심으로 남유주가 빨리 회복하길 바랐다.그런데 남편에게 폭행을?‘이형욱, 쯧……’이한석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남유주는 이미 응급실에서 나왔다.VIP 관찰 병실 입구, 메이드는 손에 땀을 쥐고 병실 안을 힐끔힐끔 들여다보았다.이한석을 발견하자 그제야 메이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급히 말했다.“비서님, 오셨어요.”이한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어떻게 된 일이죠?”메이드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전동하는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당신만 좋다면 나도 좋아요.”두 사람은 서로를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마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통화 중이던 성강희는 두 사람의 꽁냥거리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성강희는 기침을 한 번 하고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안 나와요?”두 사람은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전동하는 손을 내밀었지만 성강희는 전동하를 덥석 끌어안고 어깨를 두드렸다.“살아서 돌아온 걸 환영해요, 동하 씨!”전동하도 성강희의 어깨를 두드렸다.“고마워요.”성강희는 소은정을 힐끗 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하늘이 이미 도착했어. 그리고 한 사람 더, 강열 씨도 왔어.”소은정은 잠시 멈칫했다.“아직 안 갔어?”성강희의 눈빛은 갑자기 슬퍼졌다.“곧 유라 기일이야.”소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전동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일단 들어가요.”룸 내부의 조명은 아주 어두컴컴했다.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침 문설아가 시원하게 삑사리를 냈고 김하늘은 영혼을 담아 박수를 치고 있었다.그들이 들어오자 룸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성강희가 먼저 축사를 들었다.“자, 다들 잔부터 드세요. 전동하 씨의 컴백을 위하여!”전동하는 다들 이렇게 열정적으로 자기를 반겨줄 줄 생각도 못 했다. 그는 그저 그들이 자기의 명분으로 모임을 조직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하여 전동하는 저도 모르게 뻘쭘해졌다.소은정은 전동하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소은정과 전동하는 와인을 들고 모두에게 잔을 부딪쳤다. 전동하는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기울여 소은정에게 귓속말을 했고, 소은정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도 환하게 웃었다.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그들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술도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어느새 소은정은 취기가 오른 눈으로 성강희
전동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입을 열어 말하려고 했지만 소은정이 먼저 말했다.“그 사모님은 아주 센스가 좋았어요. 날 도와서 전화도 걸어 주셨고요. 근데 내가 동하 씨 연락처 이름을 확실하게 저장하지 않아서 조우태 선생님에게 연락을 했더라고요. 다행히도 선생님은 날 실망하게 하지 않았어요. 아니면 괜히 그 많은 술을 마시게 된 거잖아요!”소은정은 술을 마신 탓인지 마치 여린 장미꽃처럼 몸을 완전히 전동하에게 기대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말했다.소음은 고막을 울리고 뒤편 룸에서는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가끔 어렴풋이 들려왔다.두 사람은 이곳에서 한참 동안 조용히 서로를 껴안았다.그러다 전동하는 그녀를 빤히 보았다. 이내 그들의 코끝은 서로 닿았고 따뜻한 숨결이 서로의 얼굴을 감싸주었다.전동하의 얼굴은 마치 조각같이 부드럽고 빛났다.그윽한 눈동자는 반짝이는 빛을 가득 머금었다.전동하는 가볍게 그녀의 말랑한 입술에 입을 맞췄고 두 사람의 숨결은 이내 뒤섞이기 시작했다. 전동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제 새봄이가 나한테 소원을 얘기했어요.”소은정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어떤 소원요?”“새봄이 동생이 갖고 싶대요.”말을 끝낸 전동하는 바로 그녀에게 키스했다. 따뜻한 입술은 어느새 뜨거워졌고 그들은 온몸이 타오를 것 같았다.멀리서 이 장면을 발견한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다.소은정은 쑥스러운 듯 전동하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서,맨 안쪽 룸 앞에는 얼음 같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마나 오래 지켜보았을까, 남자는 여전히 강렬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동자에는 어둠이 가득했고 담배는 벌써 다 타버린 지 오래다.강서진이 룸에서 나와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수혁아, 너 담배 너무 오래 피는 거 아니야? 들어가자.”말을 끝낸 강서진은 박수혁의 팔을 당겨보았지만 박수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강서진의 시선은 박수혁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낯선 사람이라면 웃어넘겼겠지만
밖에서 만취한 이형욱이 병원이 제집 안방인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그는 원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성격이 아니었다.그가 살아온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고 돈 많은 사람이 갑이었다.남유주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누워서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밖에서는 이형욱의 고함이 들리고 고용인이 이한석에게 전화하는 소리도 들렸다.그가 매번 주먹으로 병실 문을 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병원 소동은 결국 경찰 신고까지 이어졌다.이형욱이 문을 거의 박살내다시피 했으나 남유주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이한석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그는 박수혁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기분이 안 좋아 술을 마신 박수혁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이한석은 무거운 표정으로 파손된 문을 바라보았다.고용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안에서 나왔다.“이 비서님, 남유주 씨는 이형욱 씨의 구속을 원치 않는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병원에 적당한 손해배상만 한다면 남편의 책임을 추궁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남편.이한석을 포함한 모두가 놀랐다.반면 형사의 태도는 차분했다.“그럼 정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셔야 할겁니다. 남유주 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을 아예 안 받는 건 아니거든요.”“남유주 씨는 태도가 확고합니다.”고용인이 말했다.사실 그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술 취해서 난동을 부리고 쩍하면 가정폭력에 밖에서 바람까지 피우는 남자를 이렇게 쉽게 용서하다니.이한석이 말했다.“남유주 씨 한번 만나볼 수 있을까요?”고용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한석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유주는 잠든 건지 눈을 감고 가냘픈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언제 숨이 멎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이한석은 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남유주 씨, 정신이 들었다면 우리 얘기 좀 할까요?”남유주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든 게 아니었다.“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겠네요.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