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호는 병원에서 한시연을 돌보고 있었다.둘째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가족들은 전혀 마음을 놓지 않았다.소찬식은 가정부 몇 명을 병원에서 그녀를 돌보게 했지만 사실 그건 과한 처사였다.사실 한시연의 일거수일투족은 전부 소은호가 케어하고 있었다.며칠간 줄곧 병원에 출근하다 싶이 한 그는 퇴원 날이 다가오자 곧바로 한시연을 집으로 데려갔다.소찬식이 손자를 데리고 본가로 오라고 하자 소은호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어쩔 수없이 소찬식 혼자 집에 있었다.소은정이 갑자기 저녁에 집에서 가족 파티를 하자는 말을 들은 소찬식은 기쁜 마음에 껄껄 웃었다.그는 얼른 소은해와 김하늘에게 연락했다.소은정은 전동하에게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전동하는 고개를 저으며 예의를 차리려 했다.그는 윤이한에게 은행의 금고에 가 골동품 몇 점과 그림을 준비하게 했다.그녀의 집에 처음 인사하러 갔던 날보다 더 성대하게 준비했다.전동하는 눈썹을 찌푸리고 윤이한에게 분부했다. 전동하의 통화가 끝나자 옆에서 지켜보던 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그리고 이 많은 물건들 다 들고 가봤자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보지도 못해요. 며칠 동안 걸어두다가 이내 창고에 넣을 거예요."전화를 끊은 전동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괜찮아요. 가족이잖아요. 은행에 보관하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터라 아버님한테 맡기는 게 차라리 좋을 것 같아요.그리고 가족들을 오랫동안 마음고생시켰잖아요. 당신은 쉽게 용서해 줬지만 아버님은 당신 딸이 걱정되어 마음이 불편하실 거예요.만약에 내 딸이 그런 남자가 좋다고 하면 틀림없이 그놈 호되게 때려줬을 거예요."할 말이 없었던 소은정은 먼 산을 바라보았다.전동하를 만난 게 너무 기뻤던 나머지 다른 사람들 감정까지 생각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녀는 소찬식이 그 정도로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가족들 전부 한마음일 것이다.윤이한이 준비한 물
얼마 전까지 그녀 집안의 운전기사가 자주 데리러 갔었다. 저녁이 되면 박수혁이 직접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집에서 외롭게 혼자 있는 것보다 소씨 저택에 가서 있는 걸 더 좋아했다.고용인들도 그를 아주 좋아했고 그가 좋아하는 디저트와 영화를 찾아주곤 했다.박수혁은 그와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나 일상적인 대화를 자주 나누긴 했다. 그리고 소씨 저택에 가서도 예의 있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사실 새봄이의 아빠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박시준은 소은정이 자기 엄마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아빠 없는 새봄이와 엄마 없는 박시준에게 엄마와 아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던 어느 날, 박수혁은 갑자기 운전기사를 학교로 보내기 시작했다.더 이상 소씨 저택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박수혁은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소은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소씨 저택이 좋았다. 소은정은 박시준의 몽글몽글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시준이 착하네요. 철이 다 들었어요."박시준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함께 소씨 저택에 가서 놀지 않겠냐고 물으려던 참에 뒤에서 남자가 느릿하게 걸어왔다.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던 박시준은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새봄이의 아빠, 소은정의 남편인 전동하가 나타나자 박시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알을 굴렸다.전동하는 박시준을 훑어보다 이내 소은정의 손을 잡아끌며 미소를 지었다."너무 안 나오니까 못찾은 줄 알고 따라왔어요.""고모부?"소지혁은 자기 눈 앞에 선 사람을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어... 어떻게...."전동하는 소지혁에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고모부 보니까 좋아? 자, 이리 와, 한번 안아보자."소지혁이 배시시 웃으며 전동하에게 달려갔다."고모부, 전 고모부가 이렇게 돌아올 줄 알았어요! 엄마가 고모 앞에서 고모부 얘기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전 고모부가 무사하실 줄 알았어요. 지진이 났던 산봉우리와 절벽까지의 높이를 계산하고 풍력과 지
소찬식은 얼른 전동하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고 전동하를 자세하게 훑어보았다. 소찬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소찬식은 고개를 돌려 소은정을힐끗 쳐다보았다."보아하니 넌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이렇게 꽁꽁 감추고 있었다니, 머리가 다 컸나 보구나."소은정은 죄송한 눈빛으로 소찬식을 바라보았다. 눈치를 보던 전동하가 나섰다."저도 이번 달에 귀국한 거예요. 은정 씨도 모르고 있었어요. 사실, 제 몸이 많이 불편해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소찬식은 지팡이를 짚고 있는 전동하의 처지를 눈치챘었다. 하지만 자기 입으로 인정하는 전동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그는 전동하의 어깨를 토닥이며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돌아왔으니 다 괜찮아. 살아 있는 거만으로 충분해, 다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소은해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전동하에게 달려왔다."살아있어서 다행이야!"소은해는 소은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기에게 제니퍼와 전동하가 동일 인물이라고 했을 때 믿지 않은 건 소은해였다.하지만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니 그녀가 한 말이 그제야 다 연결되었다.그는 그제야 소은정의 말을 믿었다.김하늘은 태연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정말 다행이에요. 은정이가 서프라이즈라고 하던데, 이렇게 큰 서프라이즈일 줄은 몰랐어요. 아버님, 아주버님 댁에도 알려야 할 것 같은데요? 들으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소찬식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알리거라. 우리 착한 사위가 돌아왔다고."소찬식은 전동하의 어깨를 토닥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살이 많이 빠졌구나. 오랫동안 안 돌아온 이유가 치료하려고 그런 거였니? 아니야, 아니야. 돌아왔으니 됐어!"그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었다.전동하에게 애정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었다.전동하가 옆에 있는 줄 알았다면 그는 맞선 상대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도 전동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양심의 가책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전동하는 눈썹을 찌푸렸다.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고민에 잠긴 건지 알 수 없었다.소은정은 우연준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전동하는 윤이한과 통화하고 있었다"네, 판매하세요, 경험자 우선으로 하세요."그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뭘 팔아요?""레스토랑이요, 더 이상 운영 안 할 거예요."전동하는 레스토랑을 잠깐 동안 운영할 생각으로 차린 것이었다. 장기간동안 레스토랑 사업에 신경 쓸 생각조차 없었다.레스토랑은 아직 수입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윤이한은 레스토랑이 3년 정도는 적자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시장과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항상 최고의 재료와 서비스가 필요했다.그러나 이 두 가지는 하필이면 투자 비용이 가장 많이 들었다.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다른 산업을 살펴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전동하는 결국 레스토랑을 매각하기로 했다.윤이한은 전동하가 하루빨리 회사로 복귀하기를 고대했다.소은정이 장난스럽게 말했다."난 또 당신이 요리하는 데 맛 들려서 레스토랑 포기 못 할 줄 알았는데!"전동하는 얼굴을 만지며 웃었다. "당신 한 명을 위한 셰프가 될 거예요."두 사람은 웃으며 차를 멈추고 손잡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비록 더 이상 레스토랑 사업을 계속하지 않기로 했지만, 직원 배치와 일련의 후속 절차를 거칠 필요는 있었다.하루아침에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하지만 레스토랑 안에 최나영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최나영은 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명의 동료가 울고 있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넸다."슬퍼하지 마세요. 사장님이 쿨하신 분이라 퇴직금도 주셨잖아요. 며칠 동안 휴식하면서 일자리를 천천히 찾아보는 건 어때요?"가게안은 고요했다.손님이 한 명도 없어 아주 조용했다.안으로 들어선 전동하는 이 장면을 목격하고 얼굴을 굳혔다.소은정은 옆에 서서 조용히 지켜보았다.그녀는 전동하가 공적인 일에 관해서는 언제나 매우 정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설령 그가
전동하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소은정은 어느 순간 과거에 회의장 입구에 서서 그녀에게 백련화를 알아보라고 가르쳐 주던 옛 모습이 겹쳐 보였다.덕분에 최나영 때문에 불쾌했던 기분이 사라졌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젖혔다."알겠어요. 당신은 그걸 알면서도 최나영 씨를 여기로 데려온 거예요?"'최나영과 그렇게 가깝게 지냈고?'물론, 마지막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계략이 있는 여자와 실의에 빠진 남자, 설령 남자가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자의 속임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그때 미처 최나영에 대해 조사하지 못했어요. 주변 인력이 부족해서 귀국해서 조사했어요, 너무 늦었지만."어둡게 깔린 목소리로 전동하는 사람을 홀리 듯 말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귓불을 꼬집었다."내 말 알아들었어요?"순간 몸으로 전해지는 찌릿찌릿함에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침착한 척 말했다."알아들었어요,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그녀는 전동하가 최나영을 다시 고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녀도 원하지 않았다.설령 레스토랑을 오래 열지 못할지라도, 그녀는 최나영이 그들의 눈앞에서 휘젓고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전동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귀에 입을 맞추었다. 뜨거운 숨이 그녀의 뼈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일부러 날 도발하는 건가?'전동하는 뒤로 물러서서 그녀와 잠시 거리를 두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말아요, 굳이 나까지 나설 필요 없어요."전동하는 야릇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은 곧 이끌리는 듯 서로를 껴안았다.전동하는 이곳을 정리하는 것보다 그녀와 보내는 시간이 더 간절했다. 하지만 소은정은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 때문에 노심초사했다.두 사람이 밀치고 당기는 사이 누군가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소은정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손질했다.전동하는 미소를 지으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을 빼꼼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오직 해외에서 가져온 기기에 정신을 집중했으며 전동하가 기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날씨는 맑고 촉촉하며 공기는 유난히 청신했다.눈 깜짝할 사이에,한시연은 산후조리가 끝나고 소지율도 백일이 되었다.소찬식의 성격에 따르면 소지율의 백일을 아주 성대하게 진행할 것이다. 더군다나 전동하도 돌아왔으니 그야말로 겹경사이다.다들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장소는 힐튼호텔로 정했다.그들은 많은 사회 명사와 사업 파트너를 초대했다.심강열까지 참석했다.이날, 각종 업계 사람의 축하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소찬식은 입이 귀에 걸릴 뻔했다. 연회장의 사람들 사이에는 왠지 모를 자본의 냄새가 풍겨 오기도 했다.출산 뒤 한시연은 빠른 시기에 몸매를 회복했고 컨디션도 아주 좋았다.그녀는 소은호 옆에 꼭 붙어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었고 소지율은 소은호 품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전동하도 기꺼이 소찬식과 함께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예전의 그 착한 사위가 다시 돌아왔다.소은정과 김하늘은 소파에 앉았고 소은해는 사람들에게 잡혀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모처럼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김하늘은 슬그머니 소은정을 힐끗 보았다.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 다이아몬드 같은 불빛이 쏟아져 그녀의 흰 피부를 더 부각했다. 와인을 마셔서 그런지 찬찬히 보면 약간의 홍조가 보이기도 했다.소은정은 여전히 빛나고 아름답다. 전동하가 사라진 그 시간과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김하늘은 미소를 지으며 살며시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요즘 얼굴색이 아주 보송보송하네. 얼굴에 손댔어? 아니다, 동하 씨가 돌아와서 밤낮없이 바쁜 거 아니야?”담담하던 소은정은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술잔을 뒤엎을 뻔했다.그녀의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김하늘, 너 어쩜 말을 그렇게.”그녀는 취기를 머금은 눈빛으로 김하늘을 노려보더니 다급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둘러보았다.마치 비밀을 들킨 고양이처럼.김하늘은 아무렇지 않은
박수혁은 가늘고 긴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냉담하고 쌀쌀한 기운은 왠지 우울하고 씁쓸한 느낌이었다.신호등을 하나만 더 건너면 힐튼 호텔에 도착한다.이한석은 초대장을 들고 우물쭈물하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대표님…”이한석의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박수혁은 쌀쌀한 눈길로 이한석을 노려보았다.이한석은 이를 깨물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전동하 씨가 돌아왔어요. 이번 파티의 목적은 소은호 씨의 둘째 아드님의 백일보다도 전동하 씨의 컴백을 알리기 위한 거예요. 근데 왜 굳이 참석하시려는 거죠? 이런 자리에는 기자들도 많은데 만약 잘못 얽히게 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테니 차라리 선물만 전해주고 나오는 건 어떨까요?”아무리 생각해도 박수혁이 참석할 자리는 아닌 것 같았다.물론,처음에 이한석은 박수혁과 소은정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 전이나 후나, 불타는 사랑을 하지 못했다.한 사람의 일방적인 헌신이거나 혹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만약 전동하가 정말 죽었다고 가정했을 때, 몇 년 혹은 십여 년을 버틴다면 박수혁에게도 동기와 희망이 생길 수 있다.하지만 전동하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컴백했다. 이한석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박수혁은 더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비록 소씨 가문에서 초대장을 보내왔지만, 이것은 그저 예의일 뿐, 진심이 아니다.하지만 박수혁은 바쁜 일을 마치고 결국 힐튼 호텔로 향했다.이한석은 박수혁의 차가운 눈빛에 괜히 말을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박수혁은 눈에서 뭔가 솟구치듯이 이한석을 노려보았다.바로 이때,이한석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더니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대표님, 조심하세요…”박수혁은 저도 모르게 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했다.그러나 그와 동시에 한 여자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펑”하는 소리와 함께,순간적으로 브레이크 소리가 울렸다.박수혁은 차로 사람을 쳤다.박수혁은 안색이 서서히 변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이한석도 얼굴이 하얗게 질
박수혁의 그런 극한의 차가움과 극한의 부드러움은 완벽하게 어우러져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주었다.정말 그의 말처럼 계속했더라면 박수혁은 죽을 수도 있다.간호사는 이런 남자가 왜 목숨을 걸고 수혈해 주려는 지 알 수 없었다.응급실의 불은 네다섯 시간 동안 켜져 있었다.이한석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그는 경찰서에서 당시 운전자가 본인이 아니었음을 CCTV를 통해 입증했다.비록 박수혁이 신호를 위반했지만 이한석은 본인이 박수혁의 주의를 분산시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CCTV를 확인한 결과, 비록 그들이 차로 여자를 치긴 했지만, 여자가 파란불이 켜지기도 전에 도로로 달려 나가면서 사고가 생기게 되었다.게다가 박수혁이 제때에 브레이크를 밟았기에 여자는 그저 쓰러졌을 뿐 날아가지 않았다.왜 여자가 그렇게 피를 흘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수혁을 깨끗하게 떼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남은 건 그들이 여자와 사적인 협상을 하는 것이다.드디어 이한석이 병원에 도착했고,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밖에서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어와 사람을 소름 돋게 했다.이한석의 술기운도 말끔히 사라졌다.응급실 앞에는 사람이 없었다.이한석은 박수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벨 소리는 옆 병실에서 들려왔다.이한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갔다.부스스한 머리로 의자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속눈썹을 가볍게 떨고 있는 박수혁의 모습은 왠지 아련해 보였다.박수혁의 창백한 얼굴에는 혈관이 선명하게 보였다.바늘구멍을 제때 막지 않은 탓에 팔에는 피가 배어 나와 굳은 피가 가득했다.이한석은 왠지 섬뜩해졌다.그는 동공이 흔들리며 감히 박수혁을 깨울 엄두도 나지 않았다.하지만 발걸음 소리와 벨 소리에 박수혁은 이미 깨어났다.박수혁은 눈을 비스듬히 뜨더니 쌀쌀한 눈빛을 보냈다.이한석은 심장이 철렁해서 바로 보고했다.“대표님, 다 처리했어요. 여성분이 깨어나고 합의를 보면 될 것 같아요. 피곤하시면 먼저 들어가 쉬세요. 제가 병원에 있을게요.”박수혁은 어두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