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소은정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싫어도 떠안고 갈 수밖에 없죠. 이런 일이 처음 발생한 것도 아니잖아요. 잊었어요? 그때 호텔에서 유사한 실수가 있었잖아요. 그쪽에서는 다 환불 처리를 했지만 호텔 이미지는 1년이 지나서야 겨우 복구할 수 있었죠. 우리한테는 시간이 없으니 실수를 인정해야죠. 홍보라고 생각해요. 공식 페이지에 상황을 사실대로 밝히고 이미 구매한 고객들에 한정해서는 환불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접대하도록 하세요. 이거로 회사 이미지 좀 올리죠 뭐.”소은정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표정은 가관이었다.누군가는 그 말이 맞다며 동의했고 누군가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적지 않은 금액이었다.“대표님, 하지만 손실 금액이 너무 커요.”소은정은 싸늘한 눈빛으로 담당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손실은 이미 발생했고 더 큰 손실을 피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요.”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새봄이었다.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엄마가 송 비서 오빠한테 우리를 데리러 오라고 했어?”새봄이는 송지학을 비서 오빠라고 친근하게 불렀다.소은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외할아버지네 집에 갈 거야. 오빠 말 잘 듣고 사고 치지 마. 알겠지?”“새봄이는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새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래. 너무 시간 끌지는 말고.”말을 마친 소은정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소은정은 얼굴에 먹구름이 낀 담당자들을 바라보았다.그녀도 안타깝지만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홍보팀 팀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희가 해명문을 발표하고 어떻게든 최대한 손실금액을 낮추는 쪽으로 검토해 볼게요.”“저도 동의합니다.”“그렇게 하시죠.”다른 사람들도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은 남은 뒤처리를 직원들에게 맡기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한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실수한 직원은 어떻게 처리할까요?”아직도 화가 덜 풀린 이 팀장이었다.해결 방안은 나왔
“너 언제 올 거야? 은정이랑 같이 오는 거 아니었어?”소찬식의 근엄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옆에 있던 전동하의 귀까지 전해졌다.송지학은 당황한 표정으로 전동하를 바라보고는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대표님은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늦게 도착하실 거예요. 저는 새봄이 준서 데리고 곧 갈 거예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그래, 빨리 와.”말을 마친 소찬식은 전화를 끊었다.송지학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전동하가 아이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새봄이는 토라진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더 이상 떼를 쓰지는 않았다.전동하는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어서 가.”새봄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송지학에게 다가갔다.자리에 남은 문준서는 만져달라고 목을 길게 빼들었다.전동하는 못 말린다는 듯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너도 빨리 가. 가서 재밌게 놀아.”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었다.“아빠, 또 봐요!”송지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하고 아이들과 함께 차로 향했다.그들 사이에는 어떤 대화도 없었다.서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차에 오르려던 문준서가 갑자기 전동하에게 되돌아와서 말했다.“저 뭔가 알 것 같아요. 양엄마가 양아빠한테 싫증난 거 아니에요? 그래서 집도 못 돌아오신 거죠?”전동하는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문준서가 눈을 깜빡이며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차라리 양엄마한테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빌어요. 더 지체하면 저한테 다른 양아빠가 생길 것 같으니까요!”전동하의 주변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아이에게 말했다.“가서 나 만났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준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양아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화나게 한 거예요? 이제 외할아버지랑 다른 가족들도 못 보는 거예요?”전동하가 인상을 확 쓰고 화를 내려 하자 문준서는 언제 그랬냐 싶게 도망갔다.교활한 녀석!차에 오른 뒤에 새봄이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송지학은 뒷좌석에서 자고 있는 새봄이를 힐끗 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애들은 부모가 왜 헤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한참이 지나도록 소은정은 답이 없었다.예쁜 눈동자에 슬픔이 사무쳤다.그녀는 한참 뒤에야 어렵게 입을 열었다.“우린 헤어지지 않았어요.”송지학은 놀라서 그녀를 빤히 보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회사로 돌아간 소은정은 인터넷 여론부터 확인했다. 회사의 실수에 관해 질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해한다는 입장이었다.홍보팀의 발 빠른 해명과 사고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앞뒤 상황을 해명하자 오히려 SC그룹을 응원한다는 입장이 대부분이었다.조금 손실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미지는 더 좋아졌다.“대기업다운 풍채를 보여줬어. 예전에 모 호텔에서 전부 강제 환불 처리했던 거 기억해? 그러면서 실수인 걸 알면서 구매한 네티즌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했잖아. 그런데 역시 SC는 남달라!”“여신님, 영원히 응원할게요! 저도 할인권 샀어요!”“못 사서 아쉽기는 한데 다음에 원가로 구매해서 놀러 갈 의향 있음!”소은정은 우호적으로 돌아선 여론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아직 기뻐하기는 일렀다.해결하지 못한 일이 그녀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핸드폰 화면이 깜빡였다.“여보세요. 네, 지금은 시간 괜찮아요.”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뿐, 조금 쉬니까 괜찮아졌다.그녀는 가방을 챙기고 근처에 있는 정신과로 향했다.소은해가 그녀에게 소개한 정신과 의사였다.가족들이 신원을 보장했기에 그녀는 현재 조우태라는 그 의사를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안내데스크 직원들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소은정을 발견한 직원이 웃으며 인사했다.“소은정 씨죠?”소은정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조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사무실로 가보니 조우태가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들어가자 그
소은정이 들어가서 와인 한 잔을 부탁했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원형 무대에서 어떤 여자가 기타를 들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여자는 진한 화장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고 낮았으며, 진한 화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다.소은정이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바텐더가 웃으며 그녀를 소개했다."저분이 우리 사장님이십니다." 눈썹을 찡그린 소은정은 바텐더가 건넨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소은정이 눈썹을 찡그리며 술을 마셨다."노래 정말 좋네요."바텐더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심란해진 소은정은 연커푸 와인을 들이켰다. 바텐더는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았다.여자가 노래를 끝내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바텐더가 급히 말했다."사장님, 이 분이 많이 취하신 거 같은데 어떡하죠? 여기 처음이신 거 같은데..."남유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취해 앉아 있는 소은정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얼굴을 확인하던 남유주는 소은정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소은정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손님, 술을 너무 많이 마셨네요, 저희가 가족이나 지인분들에게 연락 도와드릴게요. 누구에게 연락드릴까요?"하지만 소은정은 묵묵부답이었다. 머리를 쓸어 넘긴 남유주는 결국 테이블 위에 놓인 소은정의 휴대폰을 들어 소은정의 손가락을 가져다 잠금을 해제했다.정신을 차린 소은정이 얼굴을 찌푸리고 남유주를 바라보았다."남편에게 전화해 주세요."'딱 봐도 젊은 사람인데, 일찍 결혼했네?'소은정을 훑던 남유주는 심상치 않은 스타일에서 소은정이 결코 평볌한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휴대폰을 열어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연락하려 했으나 연락처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결국 그녀는 통화목록에 있는 마지막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은정 씨?"당황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유주가 대답했다."저는 은정 씨가 아니고요, 여기 와인 바인데 손님분께서 술을 많이 마셨어요.
전동하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 정체를 인정했다.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중년 남자의 온화한 외모와 강인한 모습으로 보아 전동하는 그를 결코 속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소은정이 위급하다는 핑계를 대며 전동하를 여기까지 이끈 사람이 조우태였다.전동하의 몸이 불편하다는 걸 눈치챈 조우태는 마음 한편에서 묘한 동정심을 느꼈다.조우태는 동정의 시선으로 전동하를 바라보지 않았다. 자기 시선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자기가 걸었던 번호가 전동하였다는 사실에 그는 희열을 감추지 못했다."죄송합니다. 은정 씨가 실제로 알코올 중독으로 실려 왔어요. 은정 씨와 가장 최근에 통화한 사람이 저라 와인바 사장님께서 저한테 연락했더라고요. 친구라고 생각했나 봐요. 저보다는 보호자분이, 남편분이 직접 오시는 게 옳다고 판단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하게 됐어요."그는 '남편'이라는 두 글자를 중점적으로 강조했다.전동하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맙습니다.""천만에요, 제가 직업 특성상 정신과 의사이다 보니 은정 씨가 저랑 만나는 걸 꺼려 할 것 같아요." 꺼려 한다는 말을 들은 전동하가 반응이 미세하게 변했다. 정신과 의사라도 전동하 같은 사람의 내면을 헤아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리 방어 메커니즘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국 심리를 들킬 수밖에 없었다."동하 씨가 돌아오셨으니까 은정 씨도 곧 좋아질 것 같네요. 앞으로 동하 씨가 은정 씨 약 좀 챙겨주세요. 정기적으로 상담 받으러 오면 은정 씨 정신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부탁드릴게요."인상을 찌푸린 전동하를 아랑곳하지 않고 조우태는 말을 이었다.전동하는 심란한 눈빛으로 누워서 곤히 자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둘을 번갈아 보며 미소를 짓던 조우태가 말했다."다른 환자분 예약이 있어 오래 머물 수 없을 것 같네요. 오늘은 여기서 안정을
조우태는 천천히 차를 길가에 세우고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전동하 입니다.” "알고 있어요, 무슨 일입니까?”무덤덤한 척 전동하에게 사무적으로 묻는 조태우였다. 십몇초의 침묵이 흘렀고 침묵을 깬 건 전동하였다.거칠게 갈라진 목소리로 전동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던 탓인지 그는 목이 메어왔다."아까 은정 씨 팔목에서 자해 흉터를 봤어요... 은정 씨를 살려주세요."전동하는 자기가 겪는 고통인 양 얼굴을 찌푸렸다.'은정 씨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강한 여자가 아니었어.'그녀는 매일 밤낮으로 전동하의 뒤를 따라가려 했다. 결혼 전, 전동하는 소은정이 자기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전동하는 그녀와 결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기뻤고 고마웠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자기가 뜻밖의 죽임을 당하더라도 자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길 바랐다.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가 그동안 겪었던 육체적 고통보다 그녀의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는 걸 전동하는 제대로 깨달았다. 그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녀를 계속해서 밀어내려고 했다.매번 그녀에게 칼을 꽂은 것도 전동하 자신이었다.자기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그녀를 본 전동하는 가슴이 막혔다.감히 그녀의 사랑을 얕본 자기 뺨을 정신 차릴 만큼만 때리고 싶었다.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오로지 전동하만 바라보고 전동하만 사랑했다. 소은정은 전동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전동하가 한 손을 무릎에 얹고 눈을 살짝 감았다. 신경이 곤두선 전동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눈가가 촉촉하게 젖은 전동하는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조우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동하 씨만 은정 씨를 구할 수 있어요. 은정 씨가 심한 환각으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래서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거예요. 갈수록 우울 증세가 심해져 항우울제를 처방했어요. 하지만 약을
전동하는 고급 주택가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레스토랑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사장님, 지금 레스토랑에 두 명의 아이가 찾아왔어요. 아마도 사장님 아이들 같은데." 전동하가 목을 가다듬고 서둘러 차를 돌렸다."알았어요, 지금 가고 있으니까 아이들 밖에 나가지 않게 해줘요. 레스토랑 안에만 있게 신경 좀 써줘요."전동하의 당부에 직원들은 이 아이들이 전동하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오픈 준비를 하는 대신 직원들은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전동하는 레스토랑에 급히 들어갔다. 혼자 온 줄 알았던 아이들은 이모님과 함께 왔다. 전동하를 발견한 이모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대표님?"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이었지만 밤새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얼굴을 비비며 잠을 깨려고 부단히 노력을 많이 했다.이모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새봄이 아가씨가 아빠가 왔다고 여기까지 달려오길래, 삐쳐서 심통 부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진짜였네요."전동하는 얼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새봄이와 준서가 생각보다 꽤 얌전했다. 말썽 안 부리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일찍 깬 아이들은 졸린 지 잠을 자고 있었다.한 사람이 소파 하나씩 자치하고 쿨쿨 자고 있었다.웨이터들이 그들이 떨어질까 봐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전동하의 아이라는 걸 안 직원들은 아이들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최나영 때문에 얻은 교훈이 생생했다.전동하를 발견한 새로운 매니저는 모두에게 조용히 물러나라고 했다.전동하가 다가가서 새봄이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새봄이의 눈가에 아직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안쓰러웠다.하지만 새봄이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흥분해서 달려온 건 맞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 없는 어린아이였다.문준서는 새봄이보다 훨씬 더 깊이 잠들었다. 전동하는 늘어지게 자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어쩔 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벌써 5시 30분이 다 되어 갔다.슬슬 소은정이 깰 시간이었다. 혼
소은정이 전동하에게 많은 폐를 끼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상실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확실성이 더 컸다.소은정의 말에 조우태가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그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순간 목이 메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다행히도 소은정이 그에게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전동하는 그녀 곁에서 또다시 사라졌다.그녀는 회사에 가기 전에 잠깐 아파트로 돌아가 아이들을 볼 겸 옷도 갈아입으려고 했다.술의 힘을 빌려, 그녀는 오랜만에 정말 깊은 잠을 잤다.아파트에 도착하자, 방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아이들은 물론 고용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아마도 이모님이 애들 데리고 산책하러 나간 거겠지?'그녀는 곧 고용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모님이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집에 들어가셨어요?""네, 혹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셨나요?""네, 맞아요. 새봄이 아가씨가 새벽에 악몽을 꿨는데 아빠를 찾길래 준서까지 데리고 S 레스토랑에 오게 됐어요. 다행히 사장님께서 레스토랑에 계시더라고요."이모님은 소은정이 걱정하지 않게끔 자세하게 보고했다.하지만 소은정의 관심은 오직 전동하에게 집중되었다."그래요, 그럼 애들 잘 부탁해요.""네, 그래야죠."소은정이 몇 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한참을 멍하니 서서 어제의 일을 떠올리다 얼른 욕실로 가서 씻었다.어젯밤 씻지 못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옷을 갈아입지 않는 것은 참기 어려웠다.욕조에 몸을 담그고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이고 반신욕을 즐겼다. 그러다 문득 팔뚝에 튀어나온 흉터를 만져봤다. 새로 생긴 상처가 흉터 자국이 선명했다. 연한 붉은 자국이 그녀의 하얀 피부에 덧칠한 것처럼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그녀는 잘 아는 피부과에 전화를 걸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거기 흉터 제거 프로그램이 있나요? 효과가 가장 좋고 짧은 시간에 제거가 되어야 해요."전동하가 돌아왔을 때, 자신의 흉터가 눈에 띌지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