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꼬리가 귀에 걸렸던 송지학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자상 같은 소리하네!’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송지학은 차에서 내린 뒤, 새봄이만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뒤에 남은 준서는 짧은 다리로 다급히 그들을 쫓아갔다.소은정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문준서의 손을 잡아주었다.그리고 그 모습은 그들을 지켜보던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근처에 미팅이 있어 나왔던 박수혁은 화기애애한 그 모습을 보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 없었다.그는 신경질적으로 송지학을 노려보았다.아이들에게 접근을 허용하는 걸 보면 보통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멀리서 보면 마치 가족처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박 대표님, 들어가시죠.”옆에 있던 고객사 직원이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박수혁은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길게 심호흡한 뒤, 감정을 추슬렀다.“죄송하지만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다음에 다시 얘기하시죠.”그는 상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S레스토랑으로 다가갔다.한편, 새봄이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메뉴판을 바라보며 환호를 질렀다.“엄마, 정말 우리 이거 먹어? 정말이야?”소은정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옆에 있던 송지학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도 막 군침이 도네요. 대표님, 이따가 저녁에도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까요?”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좋죠!”어차피 혼자서 이 장난꾸러기들을 감당하기 버거웠다.그녀는 항상 앉던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아이들은 생각보다 얌전했다.최나영이 다가와서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어서오세요, 은정 씨.”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애들 데리고 와서 좀 떠들썩할 텐데 다른 손님들 방해는 하지 않도록 주의할게요.”최나영은 웃으며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새봄이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얼굴이 너무 닮아 있었다.그녀는 다시 시선을 거두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지금은 손님도 별로 없고….”그러는 사
송지학은 얄밉게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소은정에게 고개를 돌렸다.소은정이 그에게 말했다.“가서 새봄이랑 준서 좀 보고 있을래요?”송지학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그는 일부러 박수혁의 염장을 질렀다.송지학이 떠나고 자리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박수혁은 짜증스럽게 송지학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말했다.“싼 티가 너무 나는데 어디 업소에서 돈 주고 데려왔어?”소은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아무리 차분한 사람이라고 해도 억지로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에게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여긴 공공장소였고 그녀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 싫었다.그녀의 인내심이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박수혁, 그만 좀 해. 내가 누구랑 같이 밥을 먹든 그건 내 자유야!”박수혁은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자유?”그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다가 손을 뻗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소은정, 난 너한테 충분히 자유를 줬다고 생각해. 어차피 전동하는 안 돌아올 테니까 너도 이만 포기하고 운명을 받아들여.”박수혁의 눈가에 살기가 스쳤다.과거의 그는 전동하에게 완전히 패배하고 물러났다. 그는 자신이 포기하는 게 그녀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전동하가 사라진 지금 그녀가 다른 남자와 가족처럼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자 배알이 뒤틀렸다.그럼 매번 잘해보겠다고 다가갔다가 거절당한 나는 뭐지?서운함, 답답함, 질투, 온갖 감정이 모여 그의 이성을 집어삼켰다.그는 언젠가 그녀가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지?언제까지 그는 뒤에서 그녀가 다른 남자와 손 잡고 웃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하지?그럴 수는 없었다.소은정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힘에 부쳤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지금 뭐 하자는 거지?”그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더 이상 착한 사람 흉내는 사양이었다.전동하처럼 자상하고 부드러운 남자를 연기하고 싶었으나, 그는 결국 박수혁이었다.그는
레스토랑을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쓸었다.조금 전, 그는 웬 얼굴만 번지르르한 놈이 소은정 옆에 있는 꼴을 보고 이성을 잃었다.그런데 전동하를 본 순간, 모든 걸 내려놓았다.그가 아무리 그녀에게 집착하고 다가가려고 해도 전동하가 나타난 이상 그 누구에게도 기회가 안 돌아갈 것이다.레스토랑 내부에도 정적이 흘렀다.1분이 1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최나영은 직원들을 밖으로 물렸다.전동하는 뚫어지게 소은정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은데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녀 역시 무방비한 상태로 있다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그는 어떻게 장애인이 된 자신의 상황을 해명해야 할지 막막했다.앞으로 어쩌면 그녀를 안아줄 수도 없는데 그녀는 어떤 눈으로 그를 바라볼까?복잡한 감정에 목이 메었다.이때, 새봄이와 준서가 재잘거리며 밖으로 나왔다.멀리서 아빠를 알아본 새봄이가 준서의 손을 놓고 전동하에게 뛰어왔다.아이는 전처럼 아빠가 자신을 안아줄 줄 알았다.“아빠, 아빠….”새봄이는 눈을 반짝이며 아빠를 바라봤다.하지만 자신에게 달려온 아이를 전동하는 당황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그는 소은정에게 시선을 돌렸다.소은정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뒤따라온 송지학도 당황했다.“대표님!”“이제 그만 돌아가요.”“네….”송지학은 고개를 돌려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새봄이는 잔뜩 흥분해서 전동하에게 매달렸지만 전동하의 온 신경은 소은정에게 향해 있었다.그는 뒤따라가려다가 침통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었다.그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건 이런 그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발바닥이 땅에 붙은 것처럼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새봄이가 그의 바지가랑이를 잡아당겼다.“아빠, 왜 새봄이가 왔는데 안 안아줘? 새봄이는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 그런데 아빠 얼굴이 또 변했네?”
이런 압박감은 박수혁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달랐다.박수혁의 분노는 자신에 대한 우월감, 그리고 타인을 무시하는 그런 성격 때문에 생긴 분노였다.하지만 전동하는 달랐다.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에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느끼게 했다.태생이 귀티 나는 사람. 그게 전동하였다.송지학은 그의 앞에 서면 저도 모르게 위축되는 자신을 발견했다.박수혁처럼 감정만 앞세워서 일단 저지르고 보는 사람이랑은 완전히 달랐다.송지학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다가가서 새봄이와 준서의 손을 잡았다.“저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다음에 봐요.”말을 마친 그는 뒤돌아서려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전동하를 바라봤다.“저기… 저와 소 대표님 사이는 오해하실 필요 없어요. 저는 형 인맥으로 SC에 인턴으로 입사했어요. 저는 절대 대표님 애인이 아닙니다!”그는 전동하에게 오해 받기 싫었다.그 말을 들은 전동하는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그럼 수고하세요.”말을 마친 그는 새봄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안녕, 새봄아.”새봄이는 아쉬움이 그득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잘 있어, 아빠.”“잘 있어요, 양아빠.”준서도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전동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점차 웃음을 거두었다.행복은 분명 앞에 있는데 그는 손을 뻗어 잡을 수 없었다.이런 느낌에 그는 다시 한번 좌절감을 맛봤다.그는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휘청거리듯 걸음을 뗐다.최나영은 달려와서 지팡이를 그에게 건넸다.“사장님….”전동하는 지팡이를 잡고 길게 심호흡한 뒤, 조용이 뒤돌아서서 계단으로 향했다.최나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분명 모든 걸 가졌는데 눈앞의 아내에게 다가가서 말조차 건넬 수 없는 그의 처지가 안타까웠다.그 여자가 말없이 떠난 뒤로 전동하는 괴로움에 몸서리치고 있었다.한편, 차로 돌아온 소은정은 멍한 차창을 통해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충전기를 연결한 뒤, 그녀는 도망치듯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일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그녀는 간단히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소은정은 정신과에서 처방 받은 약을 먹은 뒤, 다시 자리에 누웠다.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인데 둘 사이에 무언가 커다란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송지학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전혀 부부 같지 않았다.그들 사이에는 분명 문제가 생겼다.이게 이상했다.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의 팔뚝을 바라보았다. 자해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팔뚝에는 칼로 그었던 자국이 남아 있었다.그래서 최근에는 긴팔만 입고 다녔다.여름이 아니라 다행이었다.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다음날.전날 아빠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던 새봄이는 늦잠을 자지 않고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다. 아이는 눈 뜨자마자 전동하에게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소은정은 그런 딸을 어르고 달래서 겨우 학교에 보냈다.“내일 토요일이잖아. 내일은 네가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 하지만 오늘은 학교에 가야 해. 새봄이 억지 안 부리기로 엄마랑 약속했잖아.”새봄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아빠를 보러 가겠다는 아이의 결심은 확고했다.소은정마저 아이에게 속았다.그녀는 직접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회사로 돌아갔다.하지만 엄마가 떠나자마자 아이들은 학교에서 빠져 나왔다.학교 담벼락에 구멍이라도 있는 건가?한편 회의를 마치고 나온 소은정은 구석에서 무언가 의논하고 있는 우연준과 윤이한을 보았다.윤이한을 보자마자 소은정은 그 사람이 떠올랐다.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갔다.우연준과 윤이한도 뒤를 따랐다.“대표님, 윤 비서님께서 전인그룹에 대해 보고할 게 있다고 하네요. 대표님이 결정을 해주셔야 할 일이 좀 있어서요.”윤이한은 서류를 공손히 소은정에게 건넸다.소은정은 서류를 받으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
윤이한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전동하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그는 지팡이를 짚고 불편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전동하를 보고 웃음을 거두었다.다리가 왜 저러지?전동하는 여전히 무감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직원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고 급히 그에게 다가갔다.“사장님.”전동하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직원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한번 바라보고 뒤로 물러섰다.윤이한은 그제야 왜 소은정이 전동하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무거운 정적이 흘렀다.아래층으로 내려온 전동하는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고는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따라와요.”윤이한은 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그는 불편해 보이는 전동하의 뒷모습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에게서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침울하고 무기력한 모습이 보였다.윤이한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전동하는 정원을 내다볼 수 있는 창가에 위치한 자리에 앉았다. 윤이한은 여전히 자리에 서서 착잡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전동하가 손짓하며 말했다.“앉아요.”자리에 앉은 윤이한이 물었다.“대표님, 언제 돌아오셨어요? 저는 대표님이….”전동하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끊었다.“내가 죽은 줄 알았어요?”윤이한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사모님은 대표님이 돌아가셨을 리 없다고 항상 말씀하셨거든요.”전동하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윤이한은 아까 봤던 그 직원이 떠올랐다.전동하와 주고받던 그 눈빛을 보면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그는 소은정이 안쓰럽고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대표님이 이러시면 안 되죠.’가장의 책임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소은정은 그를 위해 많은 희생을 했다. 그걸 안다면 당연히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아까 본 직원은 몸매는 꽤 봐줄만 했지만 그냥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여자에게 전동하를 빼앗긴 소은정은 어떤 심정일까?윤이한은
전동하는 우울증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심장이 짓이기는 것처럼 아팠다.윤이한이 말했다.“저도 우 비서한테 들은 거라 자세한 상황은 몰라요. 사모님 혼자 정기적으로 정신과 방문한다고 하더라고요.”“담당 의사가 누군지 알아보세요.”전동하가 담담히 말했다.“네.”윤이한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그가 소은정에게 신경 쓰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윤이한을 보낸 뒤, 전동하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최나영은 그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장님, 들어가서 쉬세요. 여기서 잠들면 감기 걸려요.”전동하는 인상을 쓰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최나영 씨, 이제 떠나도 좋다고 말한 것 같은데요.”최나영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그에게 말했다.“제가 뭘 또 잘못했나요? 사장님, 저 오갈데 없어요. 귀국해도 마땅히 일할데도 없고요. 이 다리로 어딜 가서 일자리를 구하겠어요.”그녀는 울먹이며 매달렸지만 전동하의 표정은 단호했다.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국내는 장애인 복지가 좋다고 들었어요. 필요하면 내가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도 있어요.”최나영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입술을 덜덜 떨었다.“저는… 제가 장애인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이 저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도 싫어요.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사장님.”그녀는 같은 장애인으로써 전동하도 자신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전동하는 피곤한 듯, 이마를 짚더니 짜증스럽게 말했다.“이 가게 처음부터 오래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니까 나영 씨도 더 늦기 전에 일자리를 구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사장님이 어딜 가든 저는 따라갈게요. 사장님은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이세요. 평생 사장님 말만 따를 거에요!”최나영은 당황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했다.전동하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최나영 씨, 난 고용인도 필요하지 않고 나영
“아닙니다. 주소를 제대로 찾아와서 다행이네요. 애들이 거리에서 위험하게 택시를 잡고 있길래 경찰서에 데려가려다가 아이들이 아버님이랑 연락하고 가는 거라고 해서 데려왔어요.”택시기사는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전동하는 표정을 풀고 지갑에서 오만 원권 지폐를 몇 장 꺼내 그에게 건넸다.“어쨌든 감사합니다.”택시기사는 지폐 한 장만 주머니에 넣고 나머지를 그에게 도로 건넸다.“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요. 5만원이면 충분합니다.”말을 마친 그는 바로 걸음을 돌렸다.택시기사를 보낸 뒤, 전동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새봄이와 문준서를 바라봤다.문준서는 잘못을 알고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하지만 새봄이는 잘못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아빠 만나서 좋다고 그에게 매달렸다.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아빠, 우리 정말 똑똑하지 않아?”전동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자세를 숙이고 새봄이를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그러지 마.”그는 문준서를 바라보며 정색해서 말했다.“만약 너희들이 만난 택시기사가 나쁜 사람이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문준서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사실 아침에 양엄마도 절대 땡땡이 치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새봄이가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해서….”전동하는 움찔하며 착잡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았다.“앞으로는 그러지 마. 준서 너도 동생이 억지 부릴 때 다 들어줄 필요는 없어. 계속 애 오냐오냐 하면 지혁이한테 맡길 거야.”문준서는 새봄이의 무리한 요구에도 절대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되면 새봄이에게도 좋을 거 하나 없었다.문준서는 고개를 들고 정색하며 말했다.“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요.”새봄이는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단 말이야.”전동하는 화가 사르르 풀렸지만 정색하며 말했다.“학교 끝나고 와도 되잖아. 주말에 아빠한테 전화하면 바로 데리러 갔을 거야. 엄마는 너 여기 온 것도 모르시는데 너 사라졌다고 걱정할 사람들이 수두룩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