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에 도착하자 김하늘은 먼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그녀는 약간 수상함을 느끼고 있었다.비슷한 규모의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 인테리어가 아주 화려했다.“어서 오세요. 몇 분이시죠?”“두 명이요.”“이쪽으로 오세요.”직원의 안내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한편 최나영은 멀리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는 전동하를 바라보았다.전동하는 사랑스럽게 생긴 여자아이가 원하는 건 거의 다 들어주고 있었고 아이한테 말할 때면 목소리조차 부드럽게 바뀌었다.부모의 예쁜 곳만 빼다 닮은 새봄이는 정말 미치게 사랑스러웠다.크고 맑은 눈동자와 긴 속눈썹, 그리고 웃을 때 생기는 보조개까지 어디 하나 안 예쁜 구석이 없었다.전동하의 재활 시간이 다가왔다. 그의 방에는 해외에서 가져온 재활 기구들이 있었는데 매일 40분에서 한 시간씩 재활 운동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오늘은 뜻하지 않게 새봄이와 준서가 찾아와서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가 점점 지쳐갈 때쯤, 참다못한 최나영이 다가가서 애들 봐줄 테니 다녀오라고 말했다.전동하는 한참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애들한테 뭘 해줄 필요는 없어요. 그냥 놀다가 다치지 않게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돼요.”최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는 새봄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빠 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놀고 있어.”새봄이는 분수대에 있는 관상어에 정신이 팔려 흔쾌히 수락했다.문준서도 옆에서 가슴을 치며 말했다.“양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전동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절뚝거리며 방으로 향했다.최나영은 다가가서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놀이에 빠진 아이들은 응대해 주지 않았다.최나영은 전동하의 딸과 가깝게 지내고 싶었다.그녀는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이 갔다.“아가, 나가서 놀래?”만약 오늘 애들한테서 좋은 평가를 듣는다면 전동하가 자신을 쫓아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문준서가 정색하며 말했다.“서빙 이모, 아빠는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말라고
그 순간 놀란 새봄이가 드디어 울음을 터뜨렸다.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에 아이는 겁에 질렸다.새봄이는 소은정의 목을 꽉 끌어안고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긴장감이 풀린 소은정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그녀는 아이의 등을 다독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새봄이 괜찮아. 엄마랑 병원 가자.”말을 마친 그녀는 아이를 안고 냅다 밖으로 뛰었다.남은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한편 재활 운동을 하고 피곤한 몸을 끌고 밖으로 나온 전동하는 아이를 안고 뛰어가는 소은정을 보고 다급히 다가왔다.남아 있는 문준서와 김하늘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그는 다가가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죠?”고개를 들고 전동하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김하늘은 아까부터 들었던 수상한 느낌의 근원을 알아챘다.최나영이 아이에게 사탕을 먹인 모습이 떠오르자 그녀는 분노가 치밀었다.김하늘은 굳은 표정으로 전동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아니 어떻게 아이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맡길 수 있죠? 이 여자가 새봄이한테 사탕 먹였다가 목에 걸려서 큰일 날 뻔한 거 알아요? 이제 만족해요? 일부러 그런 거예요? 정말 수치심도 모르고 양심도 없는 인간들은 다른 사람한테 피해주지 말고 나가서 죽어 버렸으면 좋겠네요! 새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가만히 안 넘어갈 줄 알아요!”그녀는 전동하를 확 쏘아보고는 밖으로 나갔다.전동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최나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하듯 말했다.“사장님, 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애랑 좀 친해지려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이런 사고가 날 줄 알았으면 사탕으로 아이를 유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전동하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서 지팡이를 가지고 나왔다.문준서도 많이 놀랐는지 울고 있었다.소은정은 이미 새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출발했다.준서는 자기가 새봄이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아래층으로 내려온 전동하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최나영을 무시하고 곧장 문준서에게 다가
문준서가 안으로 달려들어갔다.전동하는 밖에서 잠자코 기다렸다.소은정을 볼 때마다 숨막히는 아픔이 느껴졌다.다가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그녀의 눈빛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녀의 동정 어린 시선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주변 사람들은 잘 숨긴다고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무심결에 흘러 나오는 동정심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그는 소은정의 눈에서도 같은 감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의사가 새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아이는 많이 놀랐는지 아직도 눈물을 글썽이며 흐느끼고 있었다.소은정과 전동하를 본 아이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아빠, 안아줘.”새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전동하를 향해 손을 뻗었다.전동하는 안쓰러운 마음에 얼른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빠 품에 안긴 아이는 목을 꽉 끌어안고 훌쩍였다.의사가 말했다.“사탕이 목에 걸려서 목안에 상처를 좀 냈어요. 그래도 응급처치를 잘해서 다행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어요.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소은정은 그때 상황만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감사합니다.”“목안에 상처가 났으니 침에 피가 섞여 나올 수도 있어요. 최근 며칠간은 각별히 주의해 주세요. 너무 딱딱한 것도 먹이지 말고 죽이나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주세요.”의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이 나이대 애들 보기 참 힘들죠? 그래도 어른들이 신경을 좀 더 써야 해요. 이렇게 어린애한테 알사탕이라뇨. 애가 떼를 부려도 차라리 다른 간식을 주는 게 나아요.”소은정은 말없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전동하의 얼굴도 싸늘하게 식었다.옆에 있던 김하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평소에는 항상 조심하는데 이번에는 사고였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다른 약은 안 먹어도 되나요?”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소염제만 처방할게요. 저를 따라오세요.”“네.”김하늘은 의사를 따라 자리를 떴다.자리에 남은 문준서는 걱정
새봄이가 이렇게까지 애원하는데도 그는 집에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집에 그녀가 있어서 불편해서일까? 아니면 레스토랑에 있는 그녀가 신경 쓰여서 그러는 걸까?소은정은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리고 문준서의 손을 잡았다.그들 부녀에게 둘만 있을 시간을 주기 위한 그녀의 배려였다.김하늘도 말없이 소은정을 따라갔다.엘리베이터에 먼저 오른 그들은 바로 버튼을 누르지 않고 뒤에 오는 전동하와 새봄이를 기다렸다.전동하는 약간 비틀거리며 아이를 안고 다가오다가 자신을 기다리는 그들을 보자 괜히 초라해진 기분이 들었다.소은정은 그의 지팡이와 오른 다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전동하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얼굴이 화끈거리고 수치심에 땅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그는 초라한 모습으로 그녀의 앞에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한탄스러웠다.소은정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눈부시게 예뻤다.그래서 그는 장애인이 된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그녀의 곁에 돌아갈 수 있을까?그가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문준서가 그를 향해 손짓했다.“양아빠, 빨리 타요!”전동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경직된 자세로 안으로 들어갔다.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으로 새봄이를 안고 있어서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그는 허둥지둥 지팡이를 옆에 세우고 버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하지만 다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며 중심을 잃었다.오늘 재활 치료 시간을 채우지 못했기에 일어난 근육통이었다.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뒤에서 뻗어 나와 가볍게 버튼을 눌렀다.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엘리베이터가 하강했다.그는 경직된 자세로 어색하게 서서 지팡이를 다시 잡고 얕은 신음을 토해냈다.뒤에 있던 소은정이 무심코 물었다.“다리가 많이 아파요?”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겨우 한마디 대답했다.“견딜만해요.”애써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소은정은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그는 감정을 감
소은정은 인상을 쓰며 처방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하늘이도 참. 복용법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약만 받아왔네요. 그 의사 연락처도 모르는데 이건 몇 알을 먹여야 하지?”그녀는 이런 것에 무감한 편이었다.과거에는 전동하가 항상 약을 분할해서 약통에 넣어주었기 때문에 이런 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그녀는 글자가 빼곡히 적힌 처방전만 봐도 머리가 아팠다.전동하는 짧은 한숨을 쉬고는 다가갔다.“내가 한번 볼게요.”소은정은 처방전을 그에게 건네고 자기가 할 일을 했다.전동하는 처방전을 꼼꼼히 읽은 뒤, 약통에 용량을 적었다.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다시 약통에 있는 약을 꺼내서 한번 먹을 양을 따로 담아 분할했다.아직 집에 작은 약통이 남아 있을 텐데 소은정은 서재로 들어가고 가정부도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가 알아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의약품 상자는 그들의 침실에 있었다.다행히 입구에 있는 장롱 맨 아래칸에 있었기에 침실에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꺼낼 수 있었다.약병만 챙긴 그가 자리를 뜨려던 순간, 침대머리에 지저분하게 놓여 있는 약병이 보였다.약품 설명이 전부 영문으로 되어 있었다.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어본 그는 그게 수면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전동하는 흠칫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국내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강도 높은 수면제였다.하지만 그녀의 능력으로 이것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다른 약통도 비슷한 용도로 항우울증 치료제들이었다.그의 몸이 차갑게 얼어붙었고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면서 온몸이 떨려왔다.그는 고통스럽게 신음을 내뱉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것보다 가슴이 너무 괴로웠다.그녀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수면제와 항우울증제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걸 알았을 때도 그녀가 잘 이겨낼 거라 믿었다.요트에서 만났던 그녀는 겉보기에 나쁘지 않아 보엿다.하지만 그건 모두 그의 오해였고 현실은 잔인했다.그는 운명이 자신에게 너무
놀다 지친 새봄이가 씻으러 들어간 뒤에야 전동하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소은정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거실은 텅 비어 있었다.가정부가 테이블에 놓인 와인잔을 치우며 전동하에게 말했다.“사모님은 술기운이 올라와서 쉬러 들어가셨어요.”전동하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조용히 침실로 올라가서 문을 열었다. 방 안은 무드등 한 개만 켜진 상태였고 소은정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는 침대머리로 시선을 돌렸다. 약병을 열은 흔적은 없었다.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기분이 착잡하고 가슴이 쓰렸다.그는 조용히 방 문을 나섰다.약의 힘을 빌려 잠을 자는 것과 술에 취해 잠드는 것, 어떤 게 더 나을까?전동하는 그게 무엇이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었다.가정부가 자고 가라고 그를 말렸지만 그는 중요한 일정이 있다며 집을 빠져나왔다.뒤따라온 가정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여기 택시 잡기 어려운데 운전기사한테 연락은 하셨어요?”전동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1층으로 내려온 그는 바로 윤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윤이한은 흔쾌히 동의했다.15분쯤 지나서 윤이한이 차를 끌고 아파트 입구에 나타났다.“빨리 왔네요?”전동하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하자 윤이한은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근처에서 고객사 임원들과 한잔하고 있었어요. 대표님도 가셔서 얼굴이나 비추실래요?”전동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근처에 있는 청하병원까지 부탁해요.”“이 시간에 병원에는 왜요?”전동하는 그를 힐끗 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출발해요.”“네. 그런데 시간도 늦었는데 왜 나왔어요? 사모님과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고 싶은 얘기도 많았을 텐데요. 아직 회사에는 대표님 돌아오셨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언제 편하실 때 회사에 얼굴 좀 비춰주세요. 직원들 사기가 올라갈 거예요.”윤이한은 신이 나서 주절주절 떠드느라 전동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발견하지
최나영은 그가 이번에는 어떻게 해도 마음을 돌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전동하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그는 더 이상 귀찮다는 이유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이번 사고에 대해서 그는 진심이었다.그리고 그의 본모습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착하지도, 무르지도 않았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살기와 서늘함은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앞세워 용서를 구하려던 그녀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이제 더 이상 약한 척, 불쌍한 척 그에게 들러붙을 수 없었다.그의 아내와 딸에 관한 일인데 그가 관용을 베풀 거라 생각했던 게 욕심이었다.최나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애원하듯 그를 바라봤다.“사장님,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안 될까요?”전동하는 계약해지 통보서를 그녀에게 건네며 싸늘하게 말했다.“내가 당신을 해고하는 거야. 우리나라 노동법에 의하면 당신은 정규직도 아니었고 3개월을 채우지도 않았으니 나한테 퇴직금을 지불할 의무는 없어. 하지만 처지를 생각해서 3개월 월급을 더 입금하지. 내가 원하는 건 당장 짐을 싸서 여기를 떠나는 거야.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그 말이 끝나자 최나영은 세상이 넘어지는 것 같았다.“사장님….”전동하는 단호하게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잘랐다.“지금 여기를 나가면 돼. 한 시간 지나서도 계속 버티고 있으면 짐 싸서 경찰서로 보내버릴 거야. 나를 악덕 사장이라고 신고해도 상관 없어.”말을 마친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돌렸다.더 이상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조각 같이 잘생긴 외모였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냉정하고 무서웠다.최나영은 눈물을 닦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네, 떠날게요. 사장님은 저를 구해주셨지만 보답해 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제 마음을 표현하게 해주세요.”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단추를 풀었다.직원 유니폼은 그녀의 우월한 몸매를 더욱 부각시켰다.동료들은 그녀가 키도 크고 몸매도 좋다며 부러워했다.그녀는 겉옷을 벗고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
소찬식은 간곡하게 부탁하는 말투로 말했다.“밥 한끼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내가 중간에서 입장이 난처해서 그래.”소은정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점심에 데리고 갈게요.”소찬식은 그제야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그래. 맛있는 거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게!”전화를 끊은 소은정은 바로 내선전화로 송지학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오늘도 추가근무 있나요?”“그건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집에 한번 데리고 오라시네요. 다른 약속 있으면 거절해도 괜찮아요.”“오늘 약속 없어요. 아저씨 초대인데 제가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지금 갈게요.”송지학은 아주 흔쾌히 요청에 응했다.소은정은 불만스럽게 인상을 썼다.요즘 애들은 전혀 눈치가 없나?어른이랑 밥 먹는 자리가 불편할 법도 한데 이렇게 흔쾌히 응하다니!김하늘은 가족모임이라는 연락을 받고 소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버님이 많이 심심하신가 봐. 큰 아주버님이랑 형님이 병원에 계시고 우리 은해 오빠는 만나면 짜증나게 하니까 네가 많이 보고 싶은가 봐. 참, 아직 전동하 씨 돌아온 얘기는 안 했어?”“아직.”“왜? 너희 아직도 대화도 안 하고 그 상태야? 이상하다? 전에는 그렇게 죽고 못살더니 돌아왔으면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낯설게 왜 그래?”김하늘은 걱정스럽게 말을 이었다.“나도 어제 상황이 급박해서 짜증 좀 부렸어. 동하 씨 직원이 새봄이한테 사탕 먹여서 그 난리가 났잖아. 그래서 욕 좀 했는데 설마 그것 때문에 기분 상한 건 아니지?”소은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 새봄이가 그 사람 가게에서 사고가 났는데 욕 먹는 게 당연한 거지. 나라도 욕했을 거야.”김하늘은 한숨을 내쉬었다.“난 너희가 지금 왜 서먹해 하는지 이해가 안 돼. 할 얘기 있으면 터놓고 하면 되잖아. 아직 이혼한 사이도 아니고.”소은정이 말이 없자 김하늘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그 어린 비서는 설마 진짜 너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지? 집에 같이 가자는 요청도 덥석 받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