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이 눈을 돌려 소은호를 바라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님, 협력 건은 급하지 않으니까 잘 생각해 봐요. 나쁠 거 하나 없을 거예요. 실험실 설립은 프로젝트의 성패뿐만 아니라 기술이 최종적으로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에도 직결된 문제예요. 언젠가 특정 기업이나 제품의 부분적인 핵심 부분을 제재하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고개를 들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박수혁은 말을 마친 뒤에야 이한석을 따라 그곳을 떠났다.소은정과 소은호는 서로 눈을 맞췄다.소은호는 그들이 떠난 방향을 힐끗 쳐다보더니 얼굴을 찡그렸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그런 소은호를 보며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오빠, 이번 계약이 꽤 괜찮은 조건이라면 거부할 필요 없어. 그냥 비즈니스잖아. 태한그룹 사업에도 완전히 손을 뗀 게 아니잖아. 계속 진행해도 돼.”어차피 소은정이 직접 나서야 할 사업도 아니고 그녀가 박수혁을 만날 일도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국내 업무가 이한석 손에 넘어간 이상 박수혁이 크게 상관은 안 할 것 같았고 국내에서 그를 마주칠 일이 없을 테니 별 영향도 없을 것 같았다.소은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아무튼 고민해 보자. 자꾸만 박수혁이 이번에 귀국한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소은정도 눈썹을 꿈틀거릴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돌아가는 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까 깨발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운전기사도 그 둘을 따라 묵언수행에 돌입했다.박수혁의 차 안.이한석은 뒷좌석에 앉았고 그 옆에는 참 오랜만에 만나는 박수혁이 앉아 있었다.차안은 그의 전보다 더 차갑고 어두웠으며 알 수 없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한석은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봐 왔지만, 그가 소은정을 끝까지 쫓던 그 몇 년을 제외하고는 그의 속내를 전혀 알 수 없었다.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이한석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오늘도 주무시던 곳에서 묵으실 건가요?”
소은정은 너무 놀라 멍 해있었다.소찬식이 한마디 더 보탰다.“총살이래.”소은정은 너무 놀라 손에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소찬식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박수혁의 원수가 한 짓인지 구체적으로 장담할 순 없어. 이 일은 묻혔어. 박수혁이 귀국한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 오빠한테 만날 일이 있으면 조심하라고 전해.”소찬식의 말을 듣고 소은정은 이 일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아버지가 이 사실을 먼저 알려준 이유가 자기 딸이 손해를 볼가 두려워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소찬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M국에 물어봤는데 확실히 SF그룹에 문제가 생긴 거 같아. 위험이 생길 가능성은 적지만 미리 동하한테도 말해서 조심시켜.”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요, 아빠.”소찬식은 일어나더니 말했다.“그래. 밥은 없다. 빨리 한숨 자고 새봄이 깨면 같이 공부해야 해!”소은정은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얼른 주무세요. 일어나시면 새봄이한테 낚시나 가르쳐주세요!”“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한데 새봄이가 내 고기 다 쫓아내면 어떡해!”소찬식은 가볍게 웃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소은정은 웃더니 가방을 들고 나갔다.소은호한테 전화를 걸어 방금 소찬식한테 들은 말을 전달했더니 소은호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고 알겠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소은정은 또 전동하한테 전화를 걸었다.M국은 저녁이었고 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호텔에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전동하는 피곤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회사에 들렀어요. 일이 까다롭게 돼서 며칠 더 걸릴 거 같아요.”그의 피곤함을 눈치챈 소은정이 대답했다.“그래요. 괜찮아요.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전화해요.”그가 일에 집중하길 바랐던 그녀는 박수혁이 귀국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자칫 방심했다간 일을 그르칠까 두려웠다.전동하는 소은정한테 다정히 안부를 물었고 몸 잘 돌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소은정은 전화
이상준네 집은 서양식 양옥으로 된 단독주택으로 정원이 예쁘고 으리으리했다. 이상준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꿇어 앉아있었고 며칠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됐다.예전에 풍겼던 고귀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의 부모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 소파에 앉아있었고 이상준의 아버지가 별안간 욕설을 퍼부었다.“이런 머저리 같은 놈! 사돈집에 가서 겨우 설득했는데 또 이런 짓을 벌이다니! 왜 이렇게 뻔뻔해? 바깥사돈이 나한테 사진을 보여줄 때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알아? 몰래 여자 만난 건 그렇다 쳐! 화장실 앞에서 그딴 짓을 해? 설아 보는 앞에서? 이 애비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작정한 거냐? 이게 이혼하기 싫다는 사람 태도야?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이상준의 아버지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힘겨운 듯 가슴을 감싸고 안간힘을 썼다.그가 그 낯부끄러운 사진을 봤을 때는 혈압이 수직 상승할 정도였다.사진 속 여자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됐지만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은 뚜렷하게 보였다!변명하고 싶어도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상준의 어머니는 너무 화가 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상준은 눈을 질끈 감더니 무릎을 꿇었다.그는 몹시 어두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저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 여자가 나한테 일을 부탁했고 옷은 그 여자가 벗은 거라고요! 전 손도 안 댔어요!”이상준의 어머니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안 피하고 옷 벗는 걸 보고 있었단 말이냐?”이상준은 억울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 여자가 술을 많이 마셔서 내가 그대로 자리를 뜨면 그 여자가 쫓아 나올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러면 더 이상한 그림이 되니까요.”이상준의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귀신을 속여라 아주? 지어내도 말이 되게 지어야지. 내가 다 부끄럽다!”이상준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됐어. 그만 해. 어차피 이혼해야 할 판이야. 잘못한 쪽은 우리 쪽이야. 그쪽에서 네 약점을 얼
어젯밤 문상아는 이상준의 앞에서 추태를 부리며 옷을 벗는 치욕스러운 짓을 저질렀다.이상준은 여태까지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싫어해 본 적이 없었다.지금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제일 싫었다.문상아는 그의 마음속에서 얻을 수 없는 밝은 달빛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이런 신성한 느낌이 그의 눈을 멀게 했다.그가 그녀와의 관계를 철저하게 끊어내려고 결심한 순간, 그는 투자를 철회했다.그는 자신이 그녀를 도와주지 않으면 그녀가 출세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도움을 문설아가 오해할까 두려워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그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달갑지 않은 걸까?문상아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걸까?문상아가 한번, 또 한 번 그를 향해 도움을 청할 때 그는 거절할 마음조차 없었다.아니, 그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그런 그한테 오늘의 결과가 있는 게 당연했다.쌤통이다, 아주!한밤중.그는 또다시 차를 끌고 문설아 집 앞에 도착했다.문설아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그는 돈을 목숨처럼 좋아했던 문설아가 자신을 포기했을 때 이토록 단호할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그가 무슨 말을 하든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이미 이혼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새벽녘이 되어서야 문설아의 차를 볼 수 있었다.그녀는 술에 잔뜩 취해있었고 누군가 그녀를 데려다줬다.멀지 않은 곳에서 이상준이 차에서 내렸다.문설아는 이상준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귀찮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상준이 기회를 놓칠 리 만무했고 재빨리 그녀를 막아서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술 마셨어?”문설아는 이상준이 가까이 오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는 듯 그를 밀쳐내더니 소리쳤다.“뭔 상관인데요?”이상준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애써 담담한 척 말했다.“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으면 부모님 걱정하셔. 이렇게 많이 마시면 어떡해.”문설아는 차갑다 못해 등골이 오싹해지는 말투로
문설아가 이렇게까지 이상준을 혐오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그녀를 배신해서가 아니었다.만약 단순하게 바람을 피운 거라면 그녀는 이혼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포인트는 그 상대가 문상아라는 것이었다.문설아는 남편보다 여동생이 훨씬 중요했다.그는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과 함께 그녀를 배신했고 그녀를 이리저리 갖고 놀았다.어떤 변명으로도 그 둘의 죄를 씻어낼 수는 없었다.문설아는 단 한마디도 믿고 싶지 않았고 가로등도 켜져 있지 않은, 칠흑같이 어두워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거리를 멍하니 바라봤다.“한 번만 말할게요. 내일 우린 이혼해요. 끝까지 협조하지 않으면 불륜으로 이혼소송 할 거예요. 당신이 자초한 일이니까 똑바로 행동해요.”문설아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아무튼 지금 갑은 문설아인데 만약 그녀가 이 좋은 패를 놓친다면 그야말로 바보짓이었다.이 남자에게 미련이 손톱만큼도 남아있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결혼하고 나서 싸워본 적이 없었고 말다툼이 있어도 늘 이상준이 져줬다.그들이 함께했던 모든 순간은 평범하고도 따스했다.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그렇게까지 깊은 감정이 없을 뿐이었다.그저 문설아가 빠져들어 갈 경지가 아니었을 뿐이었다.문설아는 그의 손을 뿌리쳤고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녀는 그깟 감정을 위해 자존심을 포기하는 그런 일을 할 리 없었다.사업에서 거듭 실패하는 건 견딜 수 있어도 이런 남자를 계속 옆에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이상준은 녹초가 되어 문설아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봤고 따라 들어갈 용기조차 없었다.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약점을 콕콕 쑤셨기 때문이었다.그까짓 하찮은 사랑의 감정도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그제야 그는 후회라는 두 글자의 쓴맛을 보게 되었다.돌아가는 길에 그는 걸어 다니는 시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눈에 띄게 줄어든 차들 속을 지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문상아였다.그는 김빠진 콜라처럼 핸들에 파묻혀 있었고
보통의 친구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서로의 선을 넘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한 그녀였다. 이상준이 짧은 한숨을 쉬었다. 이상준도 이제는 지친 듯 해 보였다. "됐어, 끊어."전에는 문상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조금 불쌍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날의 일이 떠올라 그녀를 똑바로 직시하기 어려워졌다. 그녀에게 많은 가면이 씌워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상준에게 보여준 것은 아직 두 개뿐이었다. 이상준과 문설아의 이혼 소식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기에는 이미 끝난 사이로 보였다. 현실은 이상준이 온갖 핑계를 대면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실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점점 적어졌다. ......이 일을 안 소은정이 문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준 씨 어디로 출장 갔는지 알아?"문설아가 차가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뭐 중동 쪽 간다고 하던데... 누가 알아?" 소은정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석유 사업이 괜찮다고 들었는데... 맞아?"문설아는 귀찮다는 어투로 답했다."그렇겠지... 나도 잘은 몰라. 이상준도 망하지 않은 게 다 석유덕이잖아. 아니면 그 정도 실력으로 이렇게 플렉스할 재력이 생기겠어?"이상준이 일 년간 쓰는 돈만 해도 일반 회사들이 몇 년간 노력해야 벌어들이는 정도의 돈이었다. 소은정은 앞에 있는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였다. 그녀가 웃더니 사무실 안의 휴식 공간에서 편안한 신발을 가져오면서 얘기했다."능력도 없는데 좀스러우면 더 정떨어져.""그나저나 동하 씨는 언제 와? 새 프로젝트 몇 개 봐놓은 게 있는데 동하 씨랑 물어보려구..."문설아는 이 상황에도 투자 얘기가 나오면 기뻐 보였다. 소은정이 웃으면서 말했다."아직 해외에서 바쁜걸, 돌아오면 같이 밥이나 먹자.""그래! 내가 살게."문설아는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은정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아, 상준 씨는 언제 돌아오는지 알아?"문설아의 톤이 확 낮아지더니 말했다.
소은호는 소매를 걷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성강희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띠며 그에게 다가갔다. "와, 수천억이 오가는 손으로 구운 고기는 무슨 맛일까요?"소은호는 그런 성강희를 째려보았다. 주위 사람들도 그들 쪽으로 웃으면서 다가왔다. 한시연은 잘 씻은 과일을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다들 행복해 보였다. 소은정과 김하늘은 모래사장에 나란히 누워 휴식을 즐겼다. 오랜만에 쉬러 나왔는데 낯선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소은정은 아예 치마를 걷어 올리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뛰었다. 모래사장은 낮의 열기로 아직 따뜻했다. 김하늘은 옆에서 한유라와 영상통화를 하였다. 아직 부산에 있던 한유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일과 대뇌 싸움으로 대머리가 될 지경이었다. "부럽다... 나도 돌아가면 미친 듯이 놀 거야!"소은정은 카메라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강열 씨가 너 찾으러 갔다던데 어떻게 됐어? 다음에 올 때는 손잡고 같이 돌아오는 거 아니야?"전화기 너머의 한유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냥 하루만 있다가 갔어, 그렇게 바쁜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쭉 있겠어..."하지만 심강열이 하루 있었던 동안 적지 않을 일이 발생했다.그날 밤의 일이 기억난 한유라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김하늘은 그녀의 발그스레 해진 얼굴을 바라보다 실수로 영상통화를 끊어버렸으나 굳이 다시 걸지는 않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렸다. 소은정은 바람을 따라 뛰었고 연핑크의 원피스가 바람에 춤을 추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금색펄을 두른 바다에 비쳐 유난히 예뻤다. 그 모습을 본 김하늘은 흥분된 손으로 부랴부랴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소은정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선 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고요했던 바다에 점점 큰 선박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배는 점점 가까워졌다. 김하늘이 의아한 듯 그녀에게 걸어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소은정이 입술을 깨
정체 모를 외국인들은 딱 봐도 평범한 사업가의 모습은 아니었다.‘그런데 박수혁이 왜 저런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거지?’하지만 곧이어 김하늘이 소은정의 손을 잡고 냅다 뛰기 시작한 덕에 소은정은 잠깐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떠났다 잔뜩 실망한 얼굴로 돌아온 김하늘, 소은정 두 사람을 발견한 소은호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의아했지만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아 대놓고 물을 수도 없었다.잠시 후, 눈치를 살피던 그가 어색한 기침으로 두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두 사람 나 좀 도와줄래?”흠칫하던 소은정과 김하늘이 가까이 다가오고...소은호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소은정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망설이자 소은호는 김하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하늘아, 말해 봐.”김하늘 역시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자기가 본 걸 그대로 얘기했고 소은호의 표정은 점점 더 차갑게 굳었다.“제대로 본 거 확실해?”김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한참을 고민하던 소은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오빠, 박 회장이 세상을 뜬 게 겨우 얼마 전이야. 박수혁이 왜 지금 귀국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그리고 동하 씨랑 이상준 대표도 하필 해외 출장 중이고. 이 모든 게 정말 우연일까?”별 생각없이 넘겼던 일들이 사실은 복선이 아닐까 의심이 드는 소은정이었다.‘미국 쪽에 하필 동하 씨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대영그룹은 동남아에서 수십 년간 석유 수입 사업을 해왔어.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힘들어졌다고? 그리고 박수혁도... 하필 박대한 회장이 살해당한 이 시점에 갑자기 귀국을 했다라... 이건 분명 우연이 아니야.’소은정의 말에 소은호도 들고 있던 파일을 천천히 내려놓았다.깊은 그의 눈동자 역시 의심으로 번뜩이고 있었다.“아직 우리 쪽에 들리는 소식은 없어. 며칠 더 기다려 보자. 뭐, 그전에 박수혁 본인이 못 견디고 먼저 우리 쪽에 연락을 해올지도 모르지.”소은호의 말에도 복잡한 소은정의 마음은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