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호는 소매를 걷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성강희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띠며 그에게 다가갔다. "와, 수천억이 오가는 손으로 구운 고기는 무슨 맛일까요?"소은호는 그런 성강희를 째려보았다. 주위 사람들도 그들 쪽으로 웃으면서 다가왔다. 한시연은 잘 씻은 과일을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다들 행복해 보였다. 소은정과 김하늘은 모래사장에 나란히 누워 휴식을 즐겼다. 오랜만에 쉬러 나왔는데 낯선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소은정은 아예 치마를 걷어 올리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뛰었다. 모래사장은 낮의 열기로 아직 따뜻했다. 김하늘은 옆에서 한유라와 영상통화를 하였다. 아직 부산에 있던 한유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일과 대뇌 싸움으로 대머리가 될 지경이었다. "부럽다... 나도 돌아가면 미친 듯이 놀 거야!"소은정은 카메라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강열 씨가 너 찾으러 갔다던데 어떻게 됐어? 다음에 올 때는 손잡고 같이 돌아오는 거 아니야?"전화기 너머의 한유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냥 하루만 있다가 갔어, 그렇게 바쁜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쭉 있겠어..."하지만 심강열이 하루 있었던 동안 적지 않을 일이 발생했다.그날 밤의 일이 기억난 한유라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김하늘은 그녀의 발그스레 해진 얼굴을 바라보다 실수로 영상통화를 끊어버렸으나 굳이 다시 걸지는 않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렸다. 소은정은 바람을 따라 뛰었고 연핑크의 원피스가 바람에 춤을 추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금색펄을 두른 바다에 비쳐 유난히 예뻤다. 그 모습을 본 김하늘은 흥분된 손으로 부랴부랴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소은정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선 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고요했던 바다에 점점 큰 선박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배는 점점 가까워졌다. 김하늘이 의아한 듯 그녀에게 걸어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소은정이 입술을 깨
정체 모를 외국인들은 딱 봐도 평범한 사업가의 모습은 아니었다.‘그런데 박수혁이 왜 저런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거지?’하지만 곧이어 김하늘이 소은정의 손을 잡고 냅다 뛰기 시작한 덕에 소은정은 잠깐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떠났다 잔뜩 실망한 얼굴로 돌아온 김하늘, 소은정 두 사람을 발견한 소은호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의아했지만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아 대놓고 물을 수도 없었다.잠시 후, 눈치를 살피던 그가 어색한 기침으로 두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두 사람 나 좀 도와줄래?”흠칫하던 소은정과 김하늘이 가까이 다가오고...소은호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소은정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망설이자 소은호는 김하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하늘아, 말해 봐.”김하늘 역시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자기가 본 걸 그대로 얘기했고 소은호의 표정은 점점 더 차갑게 굳었다.“제대로 본 거 확실해?”김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한참을 고민하던 소은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오빠, 박 회장이 세상을 뜬 게 겨우 얼마 전이야. 박수혁이 왜 지금 귀국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그리고 동하 씨랑 이상준 대표도 하필 해외 출장 중이고. 이 모든 게 정말 우연일까?”별 생각없이 넘겼던 일들이 사실은 복선이 아닐까 의심이 드는 소은정이었다.‘미국 쪽에 하필 동하 씨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대영그룹은 동남아에서 수십 년간 석유 수입 사업을 해왔어.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힘들어졌다고? 그리고 박수혁도... 하필 박대한 회장이 살해당한 이 시점에 갑자기 귀국을 했다라... 이건 분명 우연이 아니야.’소은정의 말에 소은호도 들고 있던 파일을 천천히 내려놓았다.깊은 그의 눈동자 역시 의심으로 번뜩이고 있었다.“아직 우리 쪽에 들리는 소식은 없어. 며칠 더 기다려 보자. 뭐, 그전에 박수혁 본인이 못 견디고 먼저 우리 쪽에 연락을 해올지도 모르지.”소은호의 말에도 복잡한 소은정의 마음은 진
박수혁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소은정이었고 박수혁과 세력적으로 기싸움이 가능한 그룹 역시 SC뿐이었기에 심강열이 그녀에게 SOS를 친 것이었다.심강열의 설명 덕분에 박수혁의 꿍꿍이를 대충 짐작하게 된 소은정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자금 세탁을 하려는 건가? 왜? 뭘 위해서? 태한그룹 정도 되는 기업이 왜 굳이 다시 자금 세탁에 손을 대려는 걸까?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통화를 마친 소은정은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오빠가 보낸 사람들도 아직 감감무소식이고.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더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다음 날. 휴가가 끝난 소은정이 회사에 출근하고.우연준은 평소와 같이 커피 한 잔을 내왔다.“대표님, 태한그룹 이한석 대표님이 접객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이한석이? 왜 여기까지 온 거래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실험실 프로젝트 건에 대해 상의할 사안이 있으시다는데요.”“그 프로젝트는 오빠가 담당하고 있으니까 그쪽으로 연락하라고 해요.”박수혁과 관련된 일은 조금이라도 손을 대고 싶지 않았기에 소은정은 깔끔하게 소은호에게 책임을 넘겨버렸다.하지만 우연준의 표정은 여전히 무거웠다.“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꼭 대표님께 드려야 하는 말씀이라는데요.”‘하... 이렇게 나오시겠다?’최근 박수혁의 움직임에 대해 떠올린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래요. 들어오라고 해요. 그리고 10분 뒤에 들어와서 회의 잡혀있다고 말 좀 해줘요. 쓸데없는 소리하면 바로 대화 끊어버리게.”이에 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이한석이 소은정의 사무실에 들어섰다.이한석, 박수혁의 비서로 일할 때 태한그룹에서 유일하게 소은정을 친절하게 대해 준 사람이었고 그쪽 세력 사람들 중에선 소은정이 유일하게 인간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뭐, 그마저도 이혼 뒤엔 서로 왕래하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오랜만에 보는 이한석의 얼굴은 댄디하고 깔끔한 스타일이던 그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한석의 얘기를 듣고 있던 소은정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태한그룹, SC그룹을 비롯해 대한민국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다 하는 기업들은 다들 세계 진출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SC그룹에게 있어 가장 부족한 부분은 바로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소은호가 거금을 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기업 소유의 실험실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었다. 천문학적인 자금, 기약없는 시간, 이 모든 걸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게 바로 실험실 프로젝트였다.그리고 이번 기회에 운 좋게 군수물자 프로젝트까지 따냈으니 더더욱 첨단 과학기술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임은 분명했다.소은정의 표정을 살피던 이한석이 입을 열었다.“박 대표님이 직접 와서 얘기 나눌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대화할 기회도 안 주실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이번 기회 놓치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이한석의 말을 듣고 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솔직히 자꾸만 태한그룹 쪽에서 함정을 파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듭니다. 그쪽들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약금을 무는 한이 있더라도 박수혁이 원하는대로 움직여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너무나도 단호한 소은정의 태도에 이한석은 눈을 질끈 감더니 소파에 털썩 등을 기댔다.“박수혁 대표님 때문에 저희와의 협력을 거절하시는 겁니까?”그녀의 질문에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저번에 박수혁이 귀국한 이유가 군수물자 프로젝트 때문이라고 했죠? 그런데 프로젝트가 우리 손에 들어왔네요? 솔직히 박수혁이 수를 쓴다면 충분히 저희에게서 프로젝트를 빼앗아갈 수도 있겠죠. 그런데 박수혁은 지금 전혀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요. 박수혁 성격에 그대로 넘어갈 리는 없고.”소은정의 말에 이한석이 미간을 찌푸렸다.‘소은정 대표님도 많이 바뀌셨네. 전보다 훨씬 더 날카로워졌어...’“그렇다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소린데. 제 생각이 맞나요?”분명 입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서늘한 날 선 분위기.두 사람은 약 3분 정도 아무 말도 하지
이한석이 이를 악물었다.“안진... 기억하시죠?”안진이라는 이름이 귓구멍에 꽂히는 순간, 도혁을 비롯해 동남아에서 겪었던 악몽이 다시 떠오르며 머리가 지끈거렸다.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닌 듯 이한석은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갔다.“안진은 동남아로 돌아간 뒤로 아버지의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현재 동남아의 가장 큰 군수물자 브로커는 바로 안진이죠. 그 오빠란 사람은... 해외에서 전문적으로 돈 세탁을 담당하고 있는데. 여동생과 오빠의 복수를 하겠다며 박 대표님을 타깃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 사업적으로 엮이게 된 게 바로 함정의 첫 단계였죠.”상황을 설명하는 이한석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태한그룹 한국지사 지사장으로 취임하고 이한석은 당연하게도 비서로 일할 때보다 많은 일을 도맡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은밀한 비밀 역시 많이 알게 되었다.그리고 이 바닥의 추잡한 실상에 대해 알면 알아갈 수록 박수혁이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지금 잠시나마 그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얼음장 위를 걷는 듯 불안한데... 그동안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지 예상도 가지 않았다.그리고 다시 고개를 든 이한석의 시야에 단호한 소은정의 얼굴이 들어왔다.눈앞의 이 여자는 박수혁 대표와 징한 악연으로 얽힌 사람이다. 사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라고.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고, 아니. 어쩌면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박수혁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혐오로 가득찬 눈동자가 꾹 닫힌 소은정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해 괜히 마음이 답답해졌다.차가운 적막을 깬 건 소은정의 목소리였다.“다른 사람한테 그 정도로 휘둘리는 박수혁이라니. 상상이 잘 안 가는데요.”“그쪽에서 사모님과 예리 아가씨를 납치했습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지만 예리 아가씨가 안진의 오빠라는 사람에게 반해 버려서... 대표님의 구조 계획을 전부 유출해 버렸죠. 그래서 회장님이
이한석 역시 소은정의 고민을 눈치챈 듯 말을 이어갔다.“대표님, 군수물자 프로젝트를 손에 넣은 이상 설령 저쪽에서 방해를 한다한들 군에서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이 프로젝트를 빼앗기시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너무나 절박한 표정의 이한석과 달리 소은정은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저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애초에 프로젝트 담당자도 오빠니까 오빠한테 이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도록 하죠. 전 전적으로 오빠 결정에 따를 겁니다.”애매한 대답에 다급해진 이한석이 또 한 마디 덧붙이려던 그때, 우연준이 약속한 시간에 맞춰 회의실로 들어왔다.이한석을 힐끗 바라보던 그가 정중하게 말했다.“대표님, 급하게 회의가 잡혀서 어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오케이, 나이스 타이밍, 우 비서님.’우연준의 말에 소은정이 자연스레 따라 일어섰다.“보시다시피 제가 좀 많이 바빠서요.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회의가 잡혀있다는데 좀 더 얘기를 들어달라 생떼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 이한석은 아쉬움 역력한 얼굴로 일어섰다.“오늘 실례 많았습니다. 그럼 이만.”이한석이 사무실을 나서고 소은정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연준이 눈치껏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오며 물었다.“대화하시는 동안 전 대표님한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동하 씨가?’흠칫하던 소은정이 자세를 고쳐앉았다.“알겠어요.”본인이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서일까? 전동하는 누구보다 가정적인 남자였다.결혼 전에도 소은정과 떨어지기 싫다며 미룰 수 있는 출장은 전부 미뤄버리더니 결혼 뒤에는 일에 대한 열정이 훨씬 더 식은 모습이었다.와이프인 소은정이 재벌인데다 그 본인 역시 지금 가진 자산만으로도 네 식구 평생 원하는 대로 펑펑 쓰며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돌아간 뒤로는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미국에서도 하루에 전화를 5, 6번 해오는 건 물론, 새봄이 얼굴을 보기 위해 소찬식에게도 줄기차게 영상
전동하가 이처럼 담담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소은정이 언급한 내용 대부분 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비록 결국 소은정과 결혼한 건 전동하 본인이었지만 일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박수혁은 절대 무시하지 못할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박수혁의 동태는 항상 지켜보고 있었다.당연히 박수혁이 나름 위기에 처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저 굳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아니, 오히려 박수혁과 관련된 프로젝트들 역시 전부 정리했다.애초에 안진과의 악연 역시 박수혁이 자초한 것, 이 정도 시련쯤은 인과응보 정도로 느껴졌다.‘은정 씨는 당신 때문에 죽을 뻔했어. 그러고도 당신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어?’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소은정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은정 씨가 알면 날 쪼잔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아무리 결혼한 사이라지만 이미지 관리는 해줘야지.’진심으로 그를 걱정해 주는 소은정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자금 세탁에 대한 소문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어요. 다행히 진형 씨가 먼저 낌새를 발견했고요. SF그룹 임원진한테도 접촉하긴 한 것 같던데...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지 하는 일 없이 지분만 차지하고 있는 주주들하고만 접촉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기회를 빌어 그 이사들은 전부 해임할 생각이에요.”‘아, 진작 알고 있었구나. 대비책도 제대로 세워둔 것 같고...’그제야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래도 너무 방심하진 말아요. 그리고 박수혁 그 인간... 안됐긴 하지만 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에요. 우리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그 사람을 도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이래야 우리 와이프답죠. 은정 씨는 똑 부러지는 사람이니까?”“난 사업가예요.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죠. 한 마디로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안 할 거라 이 말이죠.”피곤한 듯 목을 돌리며 스트
이상준 대표 사건으로 충격을 많이 받았을 줄 알았는데 문설아는 생각보다 훨씬 안색이 좋아 보였다.성강희가 친구들을 불렀다고 했으니 문설아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별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언제 문설아와 저렇게까지 친해졌나 싶어 의아하기도 했다.“너야말로 며칠 잠수 타다가 불쑥 나타나는 버릇 좀 고쳐. 저것도 은근히 연예인병이라니까.”베이지색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은 소은정이 핸드백을 내려놓으며 바로 쏘아붙였다.“나 이번에 남극 여행 갔었잖아. 오로라도 봤다? 영감이 빨리 들어오라고 난리만 안 쳤어도 아직까지 거기 있었을걸?”성강희의 넉살에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룸에는 성강희가 부른 친구들이 이미 잔뜩 모여있었고 대부분은 이미 술이 거나하게 들어간 모습이었다.이때 김하늘이 문설아와 소은정을 번갈아보며 물었다.“이 가게 어때?”갑자기 이상한 걸 묻는다 싶었지만 소은정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좋네. 위치도 좋으니까 손님들도 많이 모일 테고... 사업하는 사람들 접대하기도 딱 좋은 위치인 것 같아.”소은정의 긍정적인 평가에 문설아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여기 사장님이 바로 우리 문설아 씨라는 거 아니야. 내가 전에 너한테 넌지시 물었잖아. 여기에 고급 펍 같은 거 생기면 분명 대박날 것 같지 않냐고 했더니 그럴 거 같다면서.”김하늘의 말에 멈칫하던 소은정은 며칠 전 스쳐지나 듯 건네던 김하늘의 말을 떠올렸다.‘그냥 아무 의미 없이 하는 말인 줄 알았더니 설아를 위한 시장 조사 같은 거였어?’이때 문설아가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고마워, 은정아. 네 말 덕분에 자신감 얻고 이 가게를 열 수 있었어. 너도 알잖아. 나 손 대는 것마다 다 말아먹는 거...”무심코 한 대답이 이렇게 큰 나비효과를 일으켰으리라곤 생각지 못한 소은정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런 거였으면 네가 직접 묻지 왜 하늘이한테 시켰어?”“그냥... 혹시나 네 입에서 부정적인 대답이 나오면 진짜 실망할 것 같아서. 하늘이한테 부탁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