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차에 탄 소은정은 웃음을 참으며 방금 전 상황을 그대로 전동하에게 전했다.“두 사람 혼인신고부터 해서 다행이네요.”“왜요?”“그냥 약혼만 했으면 파혼을 해도 백 번은 더 했을 것 같은데요...”“최 팀장님, 조금만 더 빨리 가주실래요?”최성문을 독촉한 한유라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씰룩대는 소은정을 흘겨보았다.“어차피 매일 보는 사이인데 뭐가 그렇게 재밌어?”“동하 씨랑 얘기하는 것 자체가 재밌는데?”소은정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한유라는 구토하는 제스처를 취했다.“아, 아침에 내가 했던 말... 신경 쓰지 마, 알겠지?”이에 소은정이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걱정하지 마. 어차피 걘 나 못 찾아.”지금 그녀의 스케줄은 완전히 대외비인데다 항상 경호원이 그녀의 주위를 지키고 있으니 자신만만한 소은정이었다.잠시 후,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사운드 클럽 앞에 멈춰 섰다.“왜 여기로 왔어?”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한유라는 대답대신 소은정의 팔을 잡아당겼다.“넌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아. 내가 깜짝 선물 준비했지!”두 사람이 뛰다시피 클럽으로 들어가고 주차를 마친 최성문이 그 뒤를 바싹 따랐다.어두워지는 밤하늘과 달리 클럽의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사람들의 목소리, 빵빵한 음악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그곳에서 가장 은밀하지만 전망이 가장 좋은 룸, 이곳이 바로 오늘 그들의 모임 장소이다.테이블에는 술병이 쫙 깔려있고 성강희는 웬 상자 하나를 보물이라도 되는 듯 꼭 끌어안은 채 스테이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룸에 입장한 한유라가 바로 성강희를 덮치고 그는 기겁하며 상자를 위로 높이 들었다.“어허! 이거 우리 집 가보야. 손대지 마.”“하, 웃기시네. 그딴 돌덩이 난 관심도 없어. 그냥 네 멍청함을 좀 비웃고 싶은 거랄까?”“야! 그냥 돌덩이 아니거든! 이건 고려 때 일본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영국까지 갔던 국보라고! 내가 여기에 부은 돈이 얼만데. 우리
‘소은정 저 계집애, 지금 저딴 걸 위로라고.’성강희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소은정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골동품이라면 우리 아빠가 또 전문가시지. 잘 아는 감정가 소개해 줄 테니까 내일 가보지 그래?”“안 돼! 내일은 안 돼! 지금 당장 감정받아야겠어! 난 우리 애기가 가품이라는 누명 쓰는 꼴 절대 못 봐!”이런 허접한 사기에 당했을 리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아도 왠지 가시처럼 콕 박힌 가품이라는 단어에 성강희의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져만 갔다.“그냥 가게 둬. 안 그럼 쟤 오늘 잠도 제대로 못 잘 거니까.”김하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성강희는 전 재산을 잃은 사람처럼 공허한 표정과 함께 비틀비틀 룸을 나섰다.“쯧쯧, 멍청한 자식. 뭐야, 아직 파티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한 명 빠지면 어떡해!”“해외에 있는 친구들한테서 들었는데... 요즘 해외에서 뜨고 있는 사기수법이래. 부자들은 워낙 골동품을 좋아하기도 하고... 국보급 물건이 해외에 흘러갔다는 말을 들으면 없던 애국심까지 솟는다나 뭐라나... 그 심리를 이용해서 사기를 친다던데... 아무래도 강희가 당한 것 같아.”김하늘의 진지한 말에 방금 전까지 실실거리던 한유라, 소은정의 표정도 살짝 굳었다.‘헐, 정말 사기당한 거였어? 우리 강희 불쌍해서 어떡해...’분위기가 왠지 숙연해진 그때, 룸 밖에서 뜨거운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그 소리에 이끌린 세 사람이 역시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모두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트린 정체는 바로 크레이지 밴드!미리 예고 없이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게 취미인 크레이지 밴드를 이 자리에서 보게 되다니.소은정 일행은 물론이고 평범한 손님들에겐 거의 로또 1등에 버금가는 이벤트였으므로 흥분하는 게 당연했다.소은정 일행은 무대 아래의 수많은 팬들처럼 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들며 자신의 팬심을 과감없이 표현했다.여전한 비주얼과 실력, 무대매너, 모든 사람들의 영혼속에 깃든 록 스피릿을 끌어내는 무대에 모두가 열광
크레이지 밴드는 그저 에피타이저일 뿐, 진짜 본편은 이제 겨우 시작인데 소은정 혼자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하니 꽤 심통이 난 한유라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소지품을 핸드백에 넣던 소은정의 손이 멈칫했다.“아까 심 대표한테는 여자들이랑 놀지 말라면서. 넌 남자들이랑 술이나 마시겠다고? 아주 잘하는 짓이다.”이에 한유라가 어색하게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큼, 그냥 술 한잔 하면서 노는 거야. 누가 뭐 다른 거 한대? 너도 알겠지만 이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야. 사장님이 특별히 우릴 위해 준비해 주신 건데 성의는 받아야지.”한유라의 궤변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아직 자기가 유부녀라는 자각 자체가 없구만. 으이구, 됐다. 사람이 어디 한순간에 변하나... 게다가 결혼생활에 생각보다 꽤 만족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심 대표 실망시킬 짓은 안 하겠지.’한편 한유라는 김하늘의 목을 끌어안으며 설득을 이어갔다.“그리고 너랑 하늘이 있잖아. 내가 막 나가도 너희 두 사람이 브레이크 걸어줄 거잖아. 맞지?”“아, 됐고. 나 진짜 들어가봐야 해. 동하 씨 혼자 집에 있는 게 맘에 걸리네.”소은정이 어깨를 으쓱하고 한유라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내비쳤다.“야, 소은정. 너 진짜 많이 변했다. 지금 술자리를 마다하고 남친 병수발이나 들겠다고?”“동하 씨는 나 때문에 다친 거잖아. 그런 사람 버려두고 나 혼자 놀아제끼면 내 맘이 편하겠니?”이 말을 마지막으로 소은정이 단호하게 룸을 나서고 한유라, 김하늘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문쪽을 바라보았다.먼저 침묵을 깬 건 김하늘이었다.“야, 간 사람은 그냥 쿨하게 보내주고 남자들 들어오라고 해. 나도 궁금하단 말이야.”이에 한유라가 응큼한 미소와 함께 김하늘의 볼을 쿡 찔렀다.“김하늘, 너도 변했어. 그렇게 얌전하던 애가. 은해 오빠 하나로 부족하다 이거냐?”“누가 뭐 한대? 나도 그냥 보기만 한다고 보기만.”김하늘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오케이, 바로 올라오라고 할게. 우리끼리 놀지 뭐.”
당장 솔로가수로 데뷔해도 될 것 같은 뛰어난 노래 실력에 한유라는 마치 자기 소속 가수를 지켜보는 사장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이에 질세라 다른 남자도 손을 번쩍 들었다.“한 대표님, 전 폴댄스 보여드리겠습니다!”“폴댄스?”한유라의 눈이 동그래졌다.남자가 폴댄스라... 한유라가 과거 회상에 빠졌다.남자가 폴댄스를 추는 건 결코 흔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한유라는 이번에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그녀에게 신대륙을 보여주었던 장소는 바로 김현숙과 함께 나갔던 접대장소였다.반반하게 생긴 남자들이 몸매가 전부 망가진 부잣집 사모님들의 눈에 어떻게든 들기 위해 있는 장기, 없는 장기 다 보여주던 그날의 모습이 여전히 눈앞에 선했다.그리고 그런 남자들을 사냥감 바라보 듯 탐욕스레 바라보는 사모님의 눈빛까지...그런 광경에 한유라가 눈살을 찌푸리자 김현숙은 사업하다 보면 이보다 훨씬 더 못 볼 꼴도 보게 될 테니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그래, 받아들이자.이렇게 생각하니 경멸이 자연스레 걷히고 그 자리에 묘한 쾌감이 자리잡았다.‘그래, 남자만 여자 끼고 놀라는 법 있어?’그때부터였을까? 한유라는 클럽에 갈 때마다 자연스레 낯선 남자들과 어울리게 되었다.그리고 다시 지금. 현실로 돌아온 한유라가 너무나 단정한 인상의 남자를 다시 훑어보았다.‘저 얼굴로 폴댄스라...’“그래요. 보여주세요.”남자가 무대쪽으로 걸어가고 다른 직원들은 눈치껏 한유라, 김하늘 옆에 앉아 술을 따르고 과일을 건네는 등 수발을 시작했다.룸 밖에서 울리는 터질 듯한 음악소리와 비교되는 청아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두 남자는 노래와 폴댄스를 시작했다.전혀 추잡하게 느껴지지 않고 정말 아트 그 자체인 몸놀림은 순식간에 클럽을 현대 무용 공연장으로 만들었다.‘사장님이 신경 많이 써주셨네...’하지만 다음 순간, 한유라는 자연스레 김하늘의 눈치를 살폈고 역시 고개를 돌린 김하늘과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죄책감에 도저
그녀의 웃음과 함께 룸 분위기는 다시 후끈 달아올랐다.김하늘도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술 기운에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어 그저 애써 눈을 뜰 뿐이었다.폴댄스를 보여줬던 남자는 말투도 자상하고 나긋나긋한 것이 도저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아, 누나. 나 너무 많이 마셨나 봐.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어.”어느새 친해진 남자가 말을 놓았다.“응, 얼른 갔다 와.”손을 저은 한유라가 소파에 기댔다.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은 마침 어둠속에서 혼자 빛을 내는 정령과도 같았다.한유라의 옆자리가 비자 방금 전 노래를 부르던 남자가 슬그머니 다가와 술잔을 들었다.“누나, 나랑도 한 잔 해야지?”한유라가 자연스레 잔을 부딪히려던 그때 남자는 생각지 못한 행동을 해왔다.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한유라의 입가로 가져다댔던 것이다.‘허, 뭐야? 지금 나 먹여주려는 거야?’여유로운 척하지만 술잔을 든 살짝 떨리는 두 손이 이런 경험이 처음임을 말해 주고 있었고 그래서 왠지 더 귀엽게 느껴졌다. ‘이런 짓도 처음인 것 같은데... 나름 데뷔 무대는 제대로 치르게 해줘야지.’그렇게 술잔에 담긴 술을 마신 한유라가 다시 고개를 든 순간, 그녀는 얼굴에 띤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그리고 술기운 탓일까?한유라는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야 말았다.벌떡 일어선 한유라는 바로 숨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어디에 숨지? 소파 밑? 테이블 밑? 안돼 공간이 너무 좁아.’방금 전까지 술을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사색이 되어선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하니 남자들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몇 초후, 룸 유리문에 잔뜩 굳은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당황한 한유라의 모습을 본 순간, 심강열은 방금 전까지 치밀던 분노의 불길이 그나마 조금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숨을 곳을 찾는다? 그래도 자기가 잘못한 건 아나 보지?’흥미롭다는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강열이
이에 심강열이 피식 웃었다.“하, 너, 그리고 이미 취한 하늘 씨 말고 다른 사람 누가 더 있는데? 이게 파티야? 은정 씨는? 강희 씨는?”그 자리에 따라가지 못한 게 끝내 마음에 걸렸던 심강열은 일부러 친구들을 불러내 한유라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가질 생각이었다.그런데...이런 모습으로 놀고 있을 줄이야.자유분방한 여자인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결혼까지 했으니 나름 자중할 줄 알았는데 이런 광경이 펼쳐지니 앞으로 한유라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한편 한유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은정이랑 강희는 급하게 볼일이 생겨서 먼저 갔어.”솔직한 대답이었지만 심강열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이었다.“하필 두 사람 다 볼일이 생겼다고? 그래서? 이 남자들은 심심해서 부른 거야?”심강열이 매섭게 몰아붙이자 한유라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주위의 남자들도 귀가 달리고 눈이 달렸으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 그들은 한유라를 위해 모인 이들이라 그녀가 나가라고 하기 전까진 이 무거운 분위기를 그대로 감당하는 수밖에 없었다.어차피 할일도 없겠다. 남자들은 심강열의 얼굴을 힐끗 힐끗 훔쳐보았다.귀공자 같은 외모에 쫙 뻗은 몸매, 그리고 뼛속깊이 새겨진 고급스러운 분위기.옷차림부터 표정까지 그들과는 근본이 다른 남자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이때, 화장실을 갔었던 남자가 다시 돌아오고,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그가 입을 열었다.“어, 누나 취했어? 내가 방 잡아놨는데 거기서 잠깐 쉬다 갈래?”그의 말에 한유라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버렸다.“아, 아니야. 괜찮아...”‘제발 분위기 파악 좀 하라고...’한유라가 이를 악물었지만 남자는 질문을 이어갔다.“이 남자는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인가?”하지만 심강열의 잔뜩 굳은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남자는 저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아... 혹시 누나 친구야?”이 바닥에서 가장
통화를 마친 한유라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큰 다리를 휘적거리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심강열의 뒤를 하이힐까지 신고 쫓으려니 종아리가 욱신거렸다.다음 순간, 급한 마음에 계단을 헛디딘 한유라가 그대로 클럽에 대자로 넘어지고 만다.“으악!”피크 시간대라 다들 얼큰하게 취한 상태,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털썩 넘어지니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쏟아졌다.‘으아... 쪽팔려... 이건 거의 강서진급 쪽팔림인데...’무릎에서 느껴지는 고통, 창피함, 그리고 어떻게 심강열에게 해명을 해야 하나 싶은 막연함...오만가지 감정에 알코올의 힘까지 더해지며 한유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시야가 살짝 어두워지더니 누군가 재킷 하나를 던져주었다.그리고 재킷은 그녀의 치맛자락 사이로 보이는 하얀 허벅지를 완벽하게 가려주었다.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고개를 든 한유라가 불쌍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제발 내 말 좀 들어줘.”한편, 심강열 역시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그녀의 표정에 다시 마음이 약해졌다.사실 한유라가 다급하게 그의 뒤를 쫓는 순간부터 이미 분노의 절반은 가신 상태였지만 여전히 굳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조금이나마 이성을 되찾고 생각해 보니 애초에 그는 한유라를 의심하고 있었고 괜히 그녀에게 함정을 판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미안함까지 밀려들었다.한편, 코를 훌쩍이며 일어선 한유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화끈거리는 무릎을 만지작거렸다.하지만 지금은 무릎의 상처보다 더 급한 일이 있으니 바로 해명을 이어갔다.“맹세해. 나 절대 선 넘는 짓 안 했어. 그냥 클럽 사장님이 분위기 좀 띄우라고 넣어준 애들이야. 내가 워낙 단골이라...”말끝을 흐리던 한유라가 고개를 살짝 들었지만 심강열은 여전히 화가 덜 풀린 듯 굳은 표정이었다.‘그래, 이 정도로 화가 풀릴 리가 없지.’한유라가 심강열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정 못 믿겠으면 사장님한테 물어보든가. 난 진짜 거짓말 안 했다고...”심연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한유라를 바라보던
‘하, 됐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심강열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실렸다.한편, 한유라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심강열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떡 벌어진 등판이, 든든한 뒷모습이 오늘만큼은 왠지 쓸슬하게 다가왔다.‘내가 잘못한 거잖아. 왜 네가 사과를 해...’한유라의 머릿속에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반강제로 한 결혼이었지만 생각 외로 잘 맞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육체적인 관계에서조차 왜 이제야 만났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이 사람이 내 영혼의 반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맞았었다.그렇게 조심스럽게 서로를 향해 다가가던 두 사람이었는데 오늘 그녀의 행동 때문에 다시 거리가 십만 리쯤은 다시 멀어진 기분이었다.‘화났겠지? 당연하겠지. 세상 어느 남자가 자기 와이프가 그렇게 노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겠어...’ 하지만 화난 와중에도 넘어진 그녀를 잡아주고 세게 나간 말 한마디에 그녀가 상처받을까 바로 사과하는 심강열의 마음이 고맙고 미안했다.‘이대로 보내면... 다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다시 마음을 다잡은 한유라가 다급하게 달려갔다.금방이라도 떠나려는 심강열의 차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한유라가 눈을 질끈 감고 그 앞을 막아섰다.“끼익!”귀청이 째질 듯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심강열의 목소리가 늦은 밤거리에 울려퍼졌다.“너 미쳤어?”차에 뛰어든 그녀보다 더 두렵고 놀란 것 같은 표정이었다.그 모습에 움찔하던 한유라가 또각또각 걸어가 자연스레 조수석에 탑승했다.떠나려는 차 앞을 막아서더니 이게 다짜고짜 무슨 짓인가 싶어 심강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출발해. 집에 가야지.”아무 일도 없었던 듯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에 기가 차오른 심강열은 한참 입을 벙긋거리다 결국 차에 시동을 걸었다.집으로 가는 내내, 흔한 음악 하나 틀지 않은 차안에서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잠시 후, 두 사람의 집 앞.목적지에 도착했음에도 그 누구도 먼저 내리지 않았다.‘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