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솔로가수로 데뷔해도 될 것 같은 뛰어난 노래 실력에 한유라는 마치 자기 소속 가수를 지켜보는 사장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이에 질세라 다른 남자도 손을 번쩍 들었다.“한 대표님, 전 폴댄스 보여드리겠습니다!”“폴댄스?”한유라의 눈이 동그래졌다.남자가 폴댄스라... 한유라가 과거 회상에 빠졌다.남자가 폴댄스를 추는 건 결코 흔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한유라는 이번에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그녀에게 신대륙을 보여주었던 장소는 바로 김현숙과 함께 나갔던 접대장소였다.반반하게 생긴 남자들이 몸매가 전부 망가진 부잣집 사모님들의 눈에 어떻게든 들기 위해 있는 장기, 없는 장기 다 보여주던 그날의 모습이 여전히 눈앞에 선했다.그리고 그런 남자들을 사냥감 바라보 듯 탐욕스레 바라보는 사모님의 눈빛까지...그런 광경에 한유라가 눈살을 찌푸리자 김현숙은 사업하다 보면 이보다 훨씬 더 못 볼 꼴도 보게 될 테니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그래, 받아들이자.이렇게 생각하니 경멸이 자연스레 걷히고 그 자리에 묘한 쾌감이 자리잡았다.‘그래, 남자만 여자 끼고 놀라는 법 있어?’그때부터였을까? 한유라는 클럽에 갈 때마다 자연스레 낯선 남자들과 어울리게 되었다.그리고 다시 지금. 현실로 돌아온 한유라가 너무나 단정한 인상의 남자를 다시 훑어보았다.‘저 얼굴로 폴댄스라...’“그래요. 보여주세요.”남자가 무대쪽으로 걸어가고 다른 직원들은 눈치껏 한유라, 김하늘 옆에 앉아 술을 따르고 과일을 건네는 등 수발을 시작했다.룸 밖에서 울리는 터질 듯한 음악소리와 비교되는 청아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두 남자는 노래와 폴댄스를 시작했다.전혀 추잡하게 느껴지지 않고 정말 아트 그 자체인 몸놀림은 순식간에 클럽을 현대 무용 공연장으로 만들었다.‘사장님이 신경 많이 써주셨네...’하지만 다음 순간, 한유라는 자연스레 김하늘의 눈치를 살폈고 역시 고개를 돌린 김하늘과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죄책감에 도저
그녀의 웃음과 함께 룸 분위기는 다시 후끈 달아올랐다.김하늘도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술 기운에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어 그저 애써 눈을 뜰 뿐이었다.폴댄스를 보여줬던 남자는 말투도 자상하고 나긋나긋한 것이 도저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아, 누나. 나 너무 많이 마셨나 봐.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어.”어느새 친해진 남자가 말을 놓았다.“응, 얼른 갔다 와.”손을 저은 한유라가 소파에 기댔다.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은 마침 어둠속에서 혼자 빛을 내는 정령과도 같았다.한유라의 옆자리가 비자 방금 전 노래를 부르던 남자가 슬그머니 다가와 술잔을 들었다.“누나, 나랑도 한 잔 해야지?”한유라가 자연스레 잔을 부딪히려던 그때 남자는 생각지 못한 행동을 해왔다.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한유라의 입가로 가져다댔던 것이다.‘허, 뭐야? 지금 나 먹여주려는 거야?’여유로운 척하지만 술잔을 든 살짝 떨리는 두 손이 이런 경험이 처음임을 말해 주고 있었고 그래서 왠지 더 귀엽게 느껴졌다. ‘이런 짓도 처음인 것 같은데... 나름 데뷔 무대는 제대로 치르게 해줘야지.’그렇게 술잔에 담긴 술을 마신 한유라가 다시 고개를 든 순간, 그녀는 얼굴에 띤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그리고 술기운 탓일까?한유라는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야 말았다.벌떡 일어선 한유라는 바로 숨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어디에 숨지? 소파 밑? 테이블 밑? 안돼 공간이 너무 좁아.’방금 전까지 술을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사색이 되어선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하니 남자들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몇 초후, 룸 유리문에 잔뜩 굳은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당황한 한유라의 모습을 본 순간, 심강열은 방금 전까지 치밀던 분노의 불길이 그나마 조금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숨을 곳을 찾는다? 그래도 자기가 잘못한 건 아나 보지?’흥미롭다는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강열이
이에 심강열이 피식 웃었다.“하, 너, 그리고 이미 취한 하늘 씨 말고 다른 사람 누가 더 있는데? 이게 파티야? 은정 씨는? 강희 씨는?”그 자리에 따라가지 못한 게 끝내 마음에 걸렸던 심강열은 일부러 친구들을 불러내 한유라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가질 생각이었다.그런데...이런 모습으로 놀고 있을 줄이야.자유분방한 여자인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결혼까지 했으니 나름 자중할 줄 알았는데 이런 광경이 펼쳐지니 앞으로 한유라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한편 한유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은정이랑 강희는 급하게 볼일이 생겨서 먼저 갔어.”솔직한 대답이었지만 심강열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이었다.“하필 두 사람 다 볼일이 생겼다고? 그래서? 이 남자들은 심심해서 부른 거야?”심강열이 매섭게 몰아붙이자 한유라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주위의 남자들도 귀가 달리고 눈이 달렸으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 그들은 한유라를 위해 모인 이들이라 그녀가 나가라고 하기 전까진 이 무거운 분위기를 그대로 감당하는 수밖에 없었다.어차피 할일도 없겠다. 남자들은 심강열의 얼굴을 힐끗 힐끗 훔쳐보았다.귀공자 같은 외모에 쫙 뻗은 몸매, 그리고 뼛속깊이 새겨진 고급스러운 분위기.옷차림부터 표정까지 그들과는 근본이 다른 남자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이때, 화장실을 갔었던 남자가 다시 돌아오고,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그가 입을 열었다.“어, 누나 취했어? 내가 방 잡아놨는데 거기서 잠깐 쉬다 갈래?”그의 말에 한유라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버렸다.“아, 아니야. 괜찮아...”‘제발 분위기 파악 좀 하라고...’한유라가 이를 악물었지만 남자는 질문을 이어갔다.“이 남자는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인가?”하지만 심강열의 잔뜩 굳은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남자는 저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아... 혹시 누나 친구야?”이 바닥에서 가장
통화를 마친 한유라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큰 다리를 휘적거리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심강열의 뒤를 하이힐까지 신고 쫓으려니 종아리가 욱신거렸다.다음 순간, 급한 마음에 계단을 헛디딘 한유라가 그대로 클럽에 대자로 넘어지고 만다.“으악!”피크 시간대라 다들 얼큰하게 취한 상태,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털썩 넘어지니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쏟아졌다.‘으아... 쪽팔려... 이건 거의 강서진급 쪽팔림인데...’무릎에서 느껴지는 고통, 창피함, 그리고 어떻게 심강열에게 해명을 해야 하나 싶은 막연함...오만가지 감정에 알코올의 힘까지 더해지며 한유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시야가 살짝 어두워지더니 누군가 재킷 하나를 던져주었다.그리고 재킷은 그녀의 치맛자락 사이로 보이는 하얀 허벅지를 완벽하게 가려주었다.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고개를 든 한유라가 불쌍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제발 내 말 좀 들어줘.”한편, 심강열 역시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그녀의 표정에 다시 마음이 약해졌다.사실 한유라가 다급하게 그의 뒤를 쫓는 순간부터 이미 분노의 절반은 가신 상태였지만 여전히 굳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조금이나마 이성을 되찾고 생각해 보니 애초에 그는 한유라를 의심하고 있었고 괜히 그녀에게 함정을 판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미안함까지 밀려들었다.한편, 코를 훌쩍이며 일어선 한유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화끈거리는 무릎을 만지작거렸다.하지만 지금은 무릎의 상처보다 더 급한 일이 있으니 바로 해명을 이어갔다.“맹세해. 나 절대 선 넘는 짓 안 했어. 그냥 클럽 사장님이 분위기 좀 띄우라고 넣어준 애들이야. 내가 워낙 단골이라...”말끝을 흐리던 한유라가 고개를 살짝 들었지만 심강열은 여전히 화가 덜 풀린 듯 굳은 표정이었다.‘그래, 이 정도로 화가 풀릴 리가 없지.’한유라가 심강열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정 못 믿겠으면 사장님한테 물어보든가. 난 진짜 거짓말 안 했다고...”심연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한유라를 바라보던
‘하, 됐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심강열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실렸다.한편, 한유라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심강열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떡 벌어진 등판이, 든든한 뒷모습이 오늘만큼은 왠지 쓸슬하게 다가왔다.‘내가 잘못한 거잖아. 왜 네가 사과를 해...’한유라의 머릿속에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반강제로 한 결혼이었지만 생각 외로 잘 맞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육체적인 관계에서조차 왜 이제야 만났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이 사람이 내 영혼의 반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맞았었다.그렇게 조심스럽게 서로를 향해 다가가던 두 사람이었는데 오늘 그녀의 행동 때문에 다시 거리가 십만 리쯤은 다시 멀어진 기분이었다.‘화났겠지? 당연하겠지. 세상 어느 남자가 자기 와이프가 그렇게 노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겠어...’ 하지만 화난 와중에도 넘어진 그녀를 잡아주고 세게 나간 말 한마디에 그녀가 상처받을까 바로 사과하는 심강열의 마음이 고맙고 미안했다.‘이대로 보내면... 다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다시 마음을 다잡은 한유라가 다급하게 달려갔다.금방이라도 떠나려는 심강열의 차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한유라가 눈을 질끈 감고 그 앞을 막아섰다.“끼익!”귀청이 째질 듯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심강열의 목소리가 늦은 밤거리에 울려퍼졌다.“너 미쳤어?”차에 뛰어든 그녀보다 더 두렵고 놀란 것 같은 표정이었다.그 모습에 움찔하던 한유라가 또각또각 걸어가 자연스레 조수석에 탑승했다.떠나려는 차 앞을 막아서더니 이게 다짜고짜 무슨 짓인가 싶어 심강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출발해. 집에 가야지.”아무 일도 없었던 듯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에 기가 차오른 심강열은 한참 입을 벙긋거리다 결국 차에 시동을 걸었다.집으로 가는 내내, 흔한 음악 하나 틀지 않은 차안에서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잠시 후, 두 사람의 집 앞.목적지에 도착했음에도 그 누구도 먼저 내리지 않았다.‘백
평소 설령 잘못을 저질러도 당당하기만 하던 한유라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심강열도 이번 한번만은 넘어가리라 다짐했다.남녀관계란 밀당이 기본, 이번에는 한유라가 먼저 당겼으니 모름지기 넘어가는 모습도 보여줘야 관계가 지속될 것이다.‘적어도 이 일로 이혼할 건 아니니까.’정말 마음이 풀린 건지 심강열은 미소까지 보여주었다.“영광이네. 탕자였던 한유라 씨를 내가 돌려놓은 거나 마찬가지니까.”그토록 사랑했던 민하준에게도 이런 약속은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찌질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입꼬리는 자꾸만 들썩거렸다.방금 전까지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결혼생활에 아직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훨씬 누그러든 심강열의 목소리에 한유라는 더 환하게 웃으며 눈을 찡긋거렸다.“그럼 우리... 집에 올라가서 다시 얘기할까?”하지만 다음 순간, 심강열의 긴 팔이 쑥 들어오더니 그녀를 조수석에서 들어 무릎 위에 앉혔다.서로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거리, 한유라의 온몸에서 느껴지는 독하지만 달콤한 술향기가 심강열마저 취하게 만들었다.당황한 한유라를 보며 심강열이 싱긋 웃었다.“집에 올라갈 시간... 없을 것 같은데.”이 말을 마지막으로 심강열의 입술이 다시 내려앉았다.역시나 그의 생각대로 달콤한 맛이 혓속을 오랫동안 맴돌았다....한편 전동하의 전화를 받고 소은정은 약을 어디에 뒀었더라는 생각과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바로 그때, 시야에 강렬한 빛이 흘러들어오고 소은정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워낙 늦은 밤, 러시아워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넓은 거리는 왠지 스산하게 느껴졌지만 자극적인 브레이크 소리는 띄엄띄엄 보이는 행인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한편, 운전석에 앉은 소은정은 순간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아니야. 당황하지 마. 여긴 내 구역이야. 저번처럼 허무하게 당하는 일은 없어.’거리에서의 짧은 대치 끝에 검은 차에서 누군가 내렸다.그리고 다음 순간,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은색 SUV가 빠르게 달려오더
최성문이 소은정의 차 곁으로 다가가려는 안진의 앞을 막아섰다.이에 안진이 고개를 돌려 소은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이 세상에 남은 미련 하나 없어 보이는 절망적인 눈빛.그 눈빛에 흔들린 걸까? 소은정은 망설이다 결국 차에서 내렸다.비록 그녀의 납치사건에 안진은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납치 사건 자체를 그녀가 계획한 것이 아닌 거라는만큼은 확실했다.만약 그녀를 처리하고 싶었다면 A시에 있는 동안 백번은 넘게 시도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니까.찬 바람이 소은정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고 그 바람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왜? 나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어?”“오늘 밤 비행기로 떠날 거야. 우리 오빠는 죽었고 오빠 밑에 부하들 중에 아직 남은 사람들은 내가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마 한국은... 다시 오지 못하겠지.”바람에 흩어지지 않을까 낮은 목소리였지만 소은정의 귀에는 이상하리만치 뚜렷하게 들렸다.“그래, 잘가.”‘뭐 이 상황에 배웅이라도 해달라고 온 건 아닐 테고... 왜 여기까지 온 걸까?’한참을 망설이던 안진이 어렵게 다시 입을 열었다.“마지막으로 네 얼굴 보고 사과하고 싶었어. 우리 오빠가 심했어. 미안해.”사과?마지막으로 깽판이라도 치고 갈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사과에 소은정은 당황스러웠다.하지만 안진의 입가에 걸린 씁쓸한 미소가 그녀의 사과가 진심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나 때문에... 납치당한 거니까... 하지만 내가 시킨 건 아니야. 그래도 내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 어쨌든 나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잖아. 미안해, 진심이야.”하지만 소은정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겨우 그 말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난 뭐 한바탕 엎고 가려는 줄 알았네?”“그래, 겨우 사과하려고 온 거야. 나라고 이러고 싶었겠어? 그런데... 수혁이한테서 연락이 왔어. 우리 오빠가 저지른 일들... 그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너한테 진심으로 사과하라더라.”‘그럼 그렇지...’소은정이 미간을 찌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초췌한 모습에 소은정은 왠지 기분이 착잡해졌다.군수 밀수기업 회장의 딸로 태어난 안진, 아마 자라는 내내 피가 튀기는 전쟁 같은 삶을 지내왔을 것이다.그래서 자연스레 차갑고 타인을 해침에 있어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그런데... 그런 그녀의 마음을 녹인 사람이 더 차가운 박수혁이라니.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안진을 바라본 소은정이 다시 차에 올라탔다.최성문 역시 잡고 있던 남자의 목덜미를 놓아주었다.다른 경호원들에게 SUV에 타라고 분부한 최성문이 자연스레 소은정의 차에 몸을 실었다.별 소란없이 끝나긴 했지만 소은정이 안전하게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였다.소은정의 차는 코너를 돌아 순식간에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착잡한 그녀의 마음을 말해 주듯 돌아가는 거리에는 차 한 대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한참 뒤에야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안진 쪽에 사람 좀 붙여주세요. 정말 떠난 게 맞는지 확인해야겠으니까요.”“알겠습니다.”고개를 끄덕인 최성문이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안진이 떠남으로서 모두를 들썩이게 만든 납치사건이 무사히 막을 내린 듯했지만 소은정은 여전히 어딘가 찝찝했다.‘왜... 왜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그리고 동시에 씁쓸한 미소와 함께 배를 어루만지던 안진의 행동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아니야. 괜한 생각하지 마. 그냥 앞으로 안진이 정말 나한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을 건지... 그걸 확인하는 게 중요한 거야.’잠시 후, 오피스텔에 도착한 소은정은 엘리베이터에 탔다.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전동하의 환한 미소가 그녀를 맞이했다.“은정 씨 데리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어떻게 지금 와요? 텔레파시가 통했나?”동시에 전동하가 그녀를 향해 팔을 벌렸다.그 아늑한 품에 안긴 소은정은 익숙한 상쾌한 향기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셨다.곧 그녀의 허리를 어루만지던 전동하의 손길이 에로틱하게 변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