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그렇게 추잡한 얘기로 수다를 떠나? 배우들 출연료 많이 받아가는 거 내가 다 아는데 뒤에서 제작자 뒷담화나 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죠? 그렇게 싫으면 지금이라도 관둬요.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할 필요 있나요?”설령 저 여자들의 빈자리를 메꿀 다른 배우들을 찾는 게 어렵다 해도, 그것 때문에 영화가 적자가 난다고 해도 김하늘을 모욕한 저딴 배우들을 계속 쓸 순 없었다.그녀가 당장 꺼지라고 소리치려던 그때, 익숙한 치맛자락이 옷걸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김하늘이 그녀를 향해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은정아, 그만해...”갑작스러운 김하늘의 등장에 배우들의 표정이 더 복잡하게 일그러졌다.저 여자가 왜 여기에...옷걸이 뒤쪽에는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탈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몸을 숨겼나 보다.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건 소은정도 마찬가지였다.뒤에서 다... 듣고 있었던 거야? 아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처음부터... 다 듣고 잇었던 거냐고... 나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넌 어떻게 참았던 거야?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니, 난 이대로 못 넘어가. 이 바닥에 여배우가 저 사람들뿐인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계약 해지할 거야. 아니, 앞으로 당장 연예계에서 퇴출시킬 거야. 앞으로 그 누구도 널 비웃지 못하게 할 거라고!”소은정의 말에 표진아와 하신예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내가...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대로 무너질 순 없어.게다가 연예계에서 퇴출당하면 소속사 측에서 지금까지 그녀들을 띄워주는 데 들였던 돈까지 전부 내놓으라고 하는 건 물론이고 거액의 CF 위약금까지...이때 표진아가 한 발 앞으로 다가가더니 소은정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거칠게 뿌리쳤다.“대표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연예계 퇴출만은... 막아주세요!”“네. 김 대표님, 소 대표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하지만 소은정은 그녀들의 가식
소은정의 말에 김하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한참 뒤에야 김하늘은 다시 입을 열었다.“오빠한테는 비밀로 해줘. 오빠 지금은 일에 집중해야 할 때인 거 네가 더 잘 알잖아.”“그래서 네가 저런 얘기나 듣고 있는 거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 앞으로 이런 일 또 없으라는 보장 있어? 그때마다 참고 넘어갈 거야?”항상 차분하던 소은정이 평소답지 않게 씩씩거리기까지 했다.이때 그녀의 팔을 잡은 김하늘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 참기만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내가... 내 방식대로 하고 싶어서 그래.”이에 흠칫하던 소은정이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무슨 방법?”이상하리만치 차분한 표정이 왠지 마음에 걸렸었는데 다른 방법이 있었다고?오빠 핑계를 대긴 했지만 설령 오빠가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해도... 절대 가만히 있진 않았을 거야. 이 모욕... 난 못 견뎌.소은정의 질문에 김하늘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나도 나름 이 바닥에서 꽤 오래 뒹굴었어. 저런 여배우들한테 뒷담화나 듣고 다닐 수는 없지. 하지만 복수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 네 말대로 한방에 끝내주는 건... 너무 쉽잖아. 게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연예계에서 퇴출당하면 오히려 팬들의 악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왜 그런 모험을 해? 앞으로 평생 촬영장에서 감독이나 스태프들 눈치나 보면서 일하게 만들 수도 있고 약점을 잡아서 언제 기사가 터질까 평생 불안에 떨면서 살게 만들 수도 있어.”그제야 표정이 살짝 풀린 소은정이 괜시리 그녀를 흘겨보았다.“넌... 왜 그런 생각을 말을 안 하니. 괜히 나만 흥분했잖아. 난 네가 정말...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참아주는 거라고 생각했잖아.”불만 섞인 그녀의 목소리에 김하늘이 웃음을 터트렸다.“해명할 기회는 줬고? 다짜고짜 화부터 냈으면서? 너도 이럴 때 보면 은근 다혈질이라니까. 누가 소은해 동생 아니랄까 봐.”아니지. 자본가들에게는 그게 가장 쉽고 깔끔한 방법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패션업계에서 오랫 동안 일을 해온 김하늘
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우연준을 향해 소리쳤다.“맛있는 거 나 혼자만 먹는 건 반칙이죠. 촬영팀 스태프 모두에게 미슐랭 디저트 쏘겠습니다.”소은정의 말에 모두가 환호했다.워낙 열악한 촬영 환경에서 베이커리 빵이라도 감지덕지할 판에 미슐랭 디저트라니.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사람들의 환호성에 어깨를 으쓱하는 소은정의 모습을 바라보던 김하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하이고... 잔뜩 신났네.그 뒤로 촬영장을 나설 때까지도 김하늘의 뒷담화를 하던 여배우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일부러 그녀를 피하는 듯했지만 어느 쪽이든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하늘이가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믿고 맡길 수밖에.늦은 저녁, 소은정은 왠지 하루가 긴 것 같은 기분에 일단 욕조에 몸을 담구었다.샤워를 마친 그녀가 가운을 입고 나오던 순간, 전동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고개를 갸웃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지금 동하 씨 쪽은 새벽 2시 아니에요? 아직도 안 잤어요?”소리를 죽여 웃는 전동하의 목소리에서 숨기지 못할 피곤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이제 겨우 시간이 났네요. 오늘 하루 종일 은정 씨 목소리 못 들었잖아요. 이대로 자면 잠 설칠 것 같아서요.”전동하의 솔직함에 소은정이 얼굴을 붉혔다.소파 쪽으로 걸어가던 소은정이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동하 씨 진짜 많이 변한 거 알아요? 처음에 만났을 때는 안 이랬는데 말이야.”“이런 모습 싫어요? 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보여주는 건데. 적응할 수 있겠어요?”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동하 씨는 정말 내가 좋은가 보다.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묘했다.“그럼요. 적응해야죠.”솔직히 친절하지만 왠지 벽을 치는 듯한 과거의 전동하보다 지금의 전동하가 훨씬 더 친절하고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졌으니까.가슴이 간질거리는 기분에 소은정의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그쪽 일은 잘 풀리고 있어요?”
호텔 방에 서 있는 전동하는 창문 너머 먼 곳을 바라보았다.유럽의 밤은 왠지 더 차갑고 휑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몸에 땀이 주르륵 흘러나왔다.1초, 2초... 5초.한참을 망설이던 소은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좋아요. 동하 씨만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만나보죠.”순간 물에 빠진 사람이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은 듯한 기분이 들며 온몸에 힘이 쫙 풀렸다.어두운 밤, 그의 무거운 웃음소리가 더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그럼 약속한 거예요. 프로젝트만 끝내면 바로 만나뵙는 거예요. 절대 후회하면 안 돼요.”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그럼요. 일단 프로젝트나 다 끝내요.”지금 전동하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짧으면 3년 길만 5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는 것이었다.그 정도 시간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끝내거나 헤어지거나 뭐 상관없겠지.그녀와의 미래를 그리는 모습이 고마워 조금의 희망을 안겨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노력할게요.”미소를 짓던 전동하가 잠깐 생각하다 말을 이어갔다.“참, 전에 유럽 매장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몇십 억을 쓴 적 있었다면서요?”갑작스러운 과거 언급에 소은정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전에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왜 전동하의 입으로 들으니 그 행동들이 바보 같이 느껴지는 걸까?“그게 왜요?”지금까지도 가끔씩 또 쇼핑할 생각 없냐며 묻는 쇼호스트를 떠올리며 넌지시 물었다.“아니에요. 그냥... 혹시나 필요한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하라고요. 그런 심부름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전동하가 그녀의 심부름으로 명품 매장을 누비는 모습...생각만 해도 왠지 웃겼지만 전동하가 원한다니 기회를 줘볼까 싶기도 했다.“큼큼, 필요한 거 적어줄 테니까 부탁 좀 할게요. 잘못 사면 안 돼요!”각 브랜드에서 정기적으로 신제품을 보내고 그녀의 몸에 맞춘 드레스나 화장품까지 마련해 주곤 했지만 꼭 마음에 드는 몇 개를 제외하고 보통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곤 했다.쇼핑은 직접 하는 게 더 재밌으니
”하, 표진아, 평소에는 친근한 이미지 아니었나? 그런데 그게 다 연기였다고?”“매니저는 사람 아니라 이건가? 울 것 같은 표정이네... 불쌍하다...”“표진아, 정말 제대로 떴네. 다른 의미로...”“배우면 다야? 뭐가 대단하다고 갑질이야? 어이가 없다...”“도시락 멀쩡하기만 하구만... 사람 먹을 음식이 아니라고? 하, 고귀하신 배우님들은 평소 도대체 무슨 음식을 드시나 몰라...”“바닥에 떨어진 걸 먹으라고? 표진아, 이 정도면 매장돼야 하는 거 아니야?”역시나 대중들은 표진아의 갑질에 분노했고 해당 사실의 진위를 묻는 전화가 촬영팀 사무실로 쏟아졌다.비록 촬영팀은 현재 조사 중이라고 일관되게 대응했지만 워낙 확실한 증거에 조사할 필요도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대중들의 눈이 먼 건 아니니까.촬영팀의 입장 전달에 대중들은 더 분노했고 표진아의 SNS는 악플로 도배되었다.2시간 뒤, 표진아의 소속사가 내놓은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그날 표진아는 컨디션이 안 좋아 도시락을 엎었고 촬영에 들어가야 해서 매니저에게 치워달라 부탁한 것뿐이다. 영상에 나오는 목소리는 따로 녹음된 것이니 무분별한 악플을 자제해 달라.입 모양이 딱히 보이지 않는 영상이라 정말 후시 녹음을 딴 것인가 의심하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하지만 30분 뒤, 매니저의 인터뷰가 기사로 게재되었다.“표진아 씨가 갑질을 한 게 사실인가요?”기자의 질문에 매니저는 눈시울을 붉혔다.“괜찮아요. 이미 익숙해졌어요.”익숙해졌다라...표진아의 갑질을 완전히 사실로 만들어버린 한 마디였다.“그 음식들 정말 다 드셨나요?”매니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더 이상 묻지 말아주세요. 저희 어머니가 보시면... 속상해 하실 거예요...”새롭게 나온 인터뷰는 표진아 소속사의 주장을 보기 좋게 밟아주었다.공정하고 당당한 듯한 해명문이 오히려 우스운 농담처럼 느껴졌다.30분 뒤, 매니저는 슬그머니 공식 성명을 지웠고 촬영팀도 여주인공을 새로운 배우로
“뭘 믿고 나대는 거야? 설마 스폰이라도 받는 거야?”“양심 있으면 매니저한테 사과해라. 하, 연예인들 돈 좀 있다고 사람 무시하는 거 진짜 짜증 나.”“같은 직장인으로서 진짜 화난다. 매니저가 노예냐?”각양각색의 댓글들이 가리키는 바는 단 하나, 사과하고 연예계를 은퇴하라는 것이었다.그리고 오후 쯤, 촬영팀 스태프라고 주장하는 이가 사진 몇 장을 업로드했다.심플한 차림의 소은정이 김하늘과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열심히 도시락을 먹는 사진이었다.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빠르게 퍼져나갔다.“표진아, 저게 진짜 스타인 거야.”“소은정 대표의 몸값이 얼마더라? 하, 인간성도 완벽하네.”“저렇게 소탈한 모습까지... 은정 언니는 도대체 부족한 게 뭘까?”“도시락이 부러울 지경이다.”“소은정 대표도 먹는 밥을 표진아 네가 뭔데 못 먹어?”“소은정 대표가 이제 연기까지 하는 거야? 응원해요, 언니!”“은정 언니가 밥 먹는 모습을 보니까 사람이구나 싶다...”한편 SC그룹, 자신의 사진이 업로드될 거라곤 예상치 못한 소은정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표진아를 비난하는 댓글들을 보며 기뻐하며 나도 모르는 척 댓글 하나 남겨볼까 생각하던 그때 갑자기 그녀의 사진이 업로드되다니.무슨 상황인가 싶던 그때 김하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직감이 분명 인터넷에 뜬 그녀의 사진 때문일 거라 말해 주고 있었다.역시나 전화를 받자마자 김하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정아, 사진 봤어?”“설마 네가 올린 건 아니지?”소은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굳이 촬영장에 남아 밥차를 먹으라던 김하늘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잠깐 침묵하던 김하늘이 피식 웃었다.“뭐래. 나도 기발하다 싶었어. 현장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었더라고. 올려도 되냐고 묻길래 올리라고 한 거고. 표진아 그 여자... 막타는 내가 날리고 싶었으니까.”뭐, 김하늘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이용당했지만 기분이 나
저녁 9시.그녀는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효과는 미미했고 악플들도 여전했다.CF 모델로 있던 곳에서도 전부 계약 해지를 요구해 왔다. 엉망이 된 이미지를 걱정하기도 전에 수십 억이 넘는 위약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화려한 별장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하고 있다.“대표님, 저 좀 도와주세요. 뭘 시키든 다 할게요. 일단 여론부터 눌러주세요. 이대로 내버려 두실 거예요? 저 정말 죽는 꼴 보고 싶으세요...? 앞으로 저 연기는 어떻게 하라고...”소파에 앉은 뱃살 두둑한 남자가 짜증스레 표진아를 노려보더니 다리가랑이를 붙잡는 그녀를 거칠게 떼어냈다.“연기? 앞으로 네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경고했지. 그 성질머리 좀 죽이라고! 그러다 언젠가 큰 사고 친다고! 아무리 말해도 듣는 척 마는 척하더니 잘하는 짓이다! 이거 함정이야, 누군가 일부러 널 노리고 짠 판이라고!”남자의 말에 표진아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누가요? 누가 절 노린다는 거예요?”“또 누가 있겠어? 네가 이제까지 괴롭힌 사람들이겠지. 넌 머릿속에 도대체 뭐가 들었니?”남자가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표진아를 노려보았다.“매니저 따위가 어떻게...”표진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하... 매니저? 그래, 영상 자체는 매니저가 찍은 거 맞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영향력이 컸다는 건 누군가 뒤에서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뜻이야. 내가 너 때문에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아? 언론사에 연락해서 기사 좀 내려달라고 해도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해!”말을 하면 할 수록 화가 치솟는지 남자는 한참을 씩씩거렸다.“도대체 네가 누굴 건드렸는지 잘 생각해 봐!”남자의 정체는 국내 유명 부동산 회사의 대표, 돈 꽤나 만지는 사람으로서 어리고 예쁜 배우들 몇 명 스폰해 주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그런데... 그 중의 한 명이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지금 네티즌들은 표진아가 혹시 스폰을 받는 게 아니냐며
시간이 흘러도 네티즌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팬들은 전부 돌아선데다 CF와 캐스팅 되었던 작품 또한 모두 물 건너가고 말았다.겨우 이어온 연예계 생활이 이렇게 갑자기 끝나는 건가 싶어 두려웠고 불안했다.“뭘 잘했다고 울어! 당장 꺼져! 앞으로 우리 둘이 아는 사이라는 거 절대 말하지 마! 다시 만나러 오지도 말고! 알겠어? 에라잇, 재수가 없으려니까...”화가 나 일어선 남자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평소에도 업무상 관계로 SC그룹의 눈치를 보던 그인데...행여나 표진아의 스폰이 그였다는 걸 소은정이 알게 되면...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마음 같아선 당장 표진아와의 관계를 깨끗이 끊어내고 앞으로 다시는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한편 남자의 매정한 태도에 표진아는 오열했다.“내 말 잘 들어. 어디 나가서 나랑 무슨 사이였다느니 함부로 입만 놀려봐. 정말 죽여버릴 거니까. 그리고 네 명의로 된 그 부동산, 앞으로 대출은 네가 알아서 갚아. 못 갚겠으면 길바닥에서 살든가 알아서 해!”말을 마친 남자가 단호하게 돌아서고 맨발로 그 뒤를 쫓던 표진아가 결국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남자의 말을 다시 떠올린 표진아는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다음 날 아침, 표진아의 소속사는 다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표진아와의 전속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이었다.표진아는 완벽하게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지금까지 논란이 있는 연예인은 많았지만 사건의 열기가 채 식기 전에 전속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한 일은 처음이라 사람들도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와, 진짜 매정하다...”“꼬리 자르기 하는 거네.”“표진아, 이제 완전 닭 쫓던 개 된 거네.”“벌 받은 거지 뭐. 잘됐네!”......3일 뒤, 표진아는 또 다른 사과문과 함께 정식으로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복수는 완벽하게 끝나고 소은정은 그녀의 사진에 관한 기사를 조용히 내렸다.김하늘의 복수를 위해 이용당하는 건 괜찮지만 이제 복수도 끝났겠다 더 이상 사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