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도 네티즌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팬들은 전부 돌아선데다 CF와 캐스팅 되었던 작품 또한 모두 물 건너가고 말았다.겨우 이어온 연예계 생활이 이렇게 갑자기 끝나는 건가 싶어 두려웠고 불안했다.“뭘 잘했다고 울어! 당장 꺼져! 앞으로 우리 둘이 아는 사이라는 거 절대 말하지 마! 다시 만나러 오지도 말고! 알겠어? 에라잇, 재수가 없으려니까...”화가 나 일어선 남자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평소에도 업무상 관계로 SC그룹의 눈치를 보던 그인데...행여나 표진아의 스폰이 그였다는 걸 소은정이 알게 되면...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마음 같아선 당장 표진아와의 관계를 깨끗이 끊어내고 앞으로 다시는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한편 남자의 매정한 태도에 표진아는 오열했다.“내 말 잘 들어. 어디 나가서 나랑 무슨 사이였다느니 함부로 입만 놀려봐. 정말 죽여버릴 거니까. 그리고 네 명의로 된 그 부동산, 앞으로 대출은 네가 알아서 갚아. 못 갚겠으면 길바닥에서 살든가 알아서 해!”말을 마친 남자가 단호하게 돌아서고 맨발로 그 뒤를 쫓던 표진아가 결국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남자의 말을 다시 떠올린 표진아는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다음 날 아침, 표진아의 소속사는 다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표진아와의 전속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이었다.표진아는 완벽하게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지금까지 논란이 있는 연예인은 많았지만 사건의 열기가 채 식기 전에 전속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한 일은 처음이라 사람들도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와, 진짜 매정하다...”“꼬리 자르기 하는 거네.”“표진아, 이제 완전 닭 쫓던 개 된 거네.”“벌 받은 거지 뭐. 잘됐네!”......3일 뒤, 표진아는 또 다른 사과문과 함께 정식으로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복수는 완벽하게 끝나고 소은정은 그녀의 사진에 관한 기사를 조용히 내렸다.김하늘의 복수를 위해 이용당하는 건 괜찮지만 이제 복수도 끝났겠다 더 이상 사
마지막 보고서까지 검토한 소은정은 회사 탈의실에서 베이지색 스웨터 롱드레스를 갈아입었다. 거기에 흰색 망토 코트까지 걸치니 심플하지만 통통 튀는 스타일의 코디가 완성되었다.박우혁이 보내준 곳은 은밀한 별장처럼 보이는 바였다. 화려하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곳, 그녀와 같은 재벌 2세들이 딱 좋아할만한 분위기였다.강희가 자주 온다던 곳이네...소은정은 바를 둘러보았다. 앞쪽은 조용한 바, 뒤쪽은 휴식 구역, 즉 사람들의 눈에 띠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참, 좋은 곳 골랐네.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귀청이 째질 것 같은 음악소리에 소은정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취했는지 박우혁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무대에서 춤까지 추고 있었고 무대 아래에 모인 사람들이 그를 위해 환호하고 있었다...파티에서 자주 보는 재벌 2세들, 그리고 낯이 익은 연예인들까지, 박우혁과 친한 사람들은 전부 다 부른 모양이었다.구석 자리에 앉은 소은정은 저 멀리 언뜻언뜻 보이는 사람 그림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하지만 화려한 조명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뭐, 안 보이면 말라지 뭐.시선을 돌린 소은정이 컵에 주스를 따랐다.잠시 후, 방금 전 그녀의 시선을 끌었던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눈앞이 살짝 어두워지자 고개를 든 소은정이 손목시계를 힐끗 훑어보았다.한정판 시계, 아시아에 유일하게 하나 들어온 제품, 바로 박수혁의 시계였다.다시 고개를 더 올려보니 역시나, 박수혁이었다.며칠 못 본 사이에 박수혁은 꽤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그래서인가?왠지 더 우울하고 차가워 보였다.고개를 숙여 소은정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말로 형언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으로 얼기설기 얽혀있었다.그와 시선을 마주친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소용돌이를 담은 듯한 눈동자를 보고 있다면 그녀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아서..
“왜? 전동하 때문에?”차가운 박수혁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장난기가 담겨있었다.“아직 모르나 봐? 전동하 이제 곧 파산할 텐데.”“뭐라고?”소은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그제야 피식 웃는 박수혁의 눈동자에는 전동하를 향한 경멸이 그대로 담겨있었다.“이미 미국에 소문 쫙 퍼졌어. 그런데 너한테는 아직도 숨기고 있었다라? 재밌네.”순간 소은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어제 통화할 때도 오늘 문자할 때도 그 어떤 이상한 점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파산이라니...게다가 박수혁의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불안한 예감에 소은정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주가 조작을 했다더라고. 몰래 숫자로 장난 좀 친 거지. 투자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어. 미국에서는 이미 조사 들어갔고 사실로 밝혀지만 아마... 20년 정도 징역형을 살게 될 거야. 소은정,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봐. 이게 네가 선택한 남자의 진짜 모습이야. 그 자식은 그냥... 사기꾼이라고! 제발 정신 좀 차려!”박수혁이 분노를 억누르며 마지막으로 소은정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녀의 귓가에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울릴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쿵쾅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이성의 줄을 잡으려 애쓰던 소은정이 겨우 대답했다.“어쨌든 말해 줘서 고마워. 내가 한 번 알아볼게.”그녀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누나, 왔어요? 왔으면 나한테 먼저 왔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원한빈의 등장으로 숨 막힐 듯한 어색한 정적이 깨질 수 있었다.봄날처럼 화사한 분위기의 원한빈이 그녀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장난스러운 그의 말투에 소은정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귀국했다고? 환영해!”마침 음악도 조금 더 부드러운 스타일로 바뀌고 원한빈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박 대표님, 오늘 파티는 제가 주인공이니까 은정이 누나랑 따로 얘기 좀 해도 되죠?”박수혁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소은정은 고개를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던 원한빈이 말을 이어갔다.“지금 문제는 전동하 대표가 투자한 주식이 주가 조작 혐의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 일부러 함정을 판 거겠죠.”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누군가 일부러 동하 씨를 위기에 빠트렸다는 거예요?”“그렇겠죠. 전동하 대표는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에요. 해도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 거예요.”소은정의 표정을 살피던 원한빈이 말을 이어갔다.“그런데 누나 진짜 많이 변했네요. 전에는 남의 일에 딱히 관심도 없더니. 전동하 대표가 파산하면 누나한테도 영향이 가는 거예요?”“동하 씨가 정말 파산한다면 협력사인 SC그룹에도 당연히 여파가 오겠죠.”“이유가 그게 다예요?”그의 질문에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내가 동하 씨 한 명 못 먹여살리는 수준은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딱히 상관없어요. 어차피 돈 보고 만나는 것도 아니니까.”그녀의 대답에 원한빈은 한참 침묵했다.음악이 더 부드럽게 바뀌었지만 원한빈의 마음은 왠지 더 착잡해졌다.조금 싹 튼 감정을 애써 무시한 채 한국을 떠났던 원한빈이었다. 어차피 시작된 지 얼마 안된 감정이고 눈에서 멀어지면 자연스레 잊혀질 거라 생각했으니까.이 아슬아슬한 선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친구도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뒤를 항상 지키고 있는 박수혁의 존재가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 포기했었다.그런데 누군가 그 산을 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솔직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여러모로 박수혁 대표에 비해 떨어지는 사람이라 들었다...그래서 소문이 진짜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비록 오늘 파티에서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소은정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이제 그에게는 일말의 기회도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였으니까.질투, 아쉬움...수많은 감정과 함께 음악이 끝났다.마침 잔뜩 흥분한 얼굴의 박우혁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드디어 왔네요. 누나, 연
이때 누군가 갑자기 표진아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흥미로운 이름에 소은정이 귀를 쫑긋 세웠다.대충 인사만 하고 자리를 뜨려던 생각이 눈 녹 듯이 사라졌다.이래서 사람들이 뒷담화를 하는 건가? 재밌네...“레이싱 모델? 그래도 전에는 드라마 한 화당 출연료 1억씩 받던 사람이... 어쩌다...”누군가 바로 거들었다.“너무 심하게 망했잖아요. 그 동안 번 돈 위약금으로 다 날리고... 명의로 된 아파트도 다 처분했대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겠죠.”“스폰도 받고 있었다면서? 왜 안 도와준대요?”“아, 그 부동산 업체 대표? 와이프를 굉장히 무서워하는 사람이거든. 괜히 엮일까 봐 바로 꼬리 자르기 들어간 거죠. 그리고 어차피 진짜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대충 가지고 놀던 애인데 이용가치가 없어졌으니 바로 버려진 거죠. 뭐, 표진아 인성 터진 거야 이쪽 바닥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잖아요. 언젠가 사고 터질 줄 알았어요.”몰래 듣고만 있던 소은정이 주스를 홀짝 마셨다.그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었어? 그럼 좀 더 마음이 놓이네.이때 양예영이 슬그머니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고맙습니다.”갑자기 웬 감사인사인가 싶어서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살짝 긴장한 듯 술잔을 꽉 쥐던 양예영이 다시 나지막하게 말했다.“며칠 전에 딸 만나러 갔었어요.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정말 감사합니다.”그제야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별말씀을요.”“이번 드라마만 끝나면... 육아 예능에 나가려고요. 이제 팬들에게도 딸 존재를 알려야 할 것 같아요.”“숨기는 건 그만두려고요?”“네. 저번에 만나러 갔었는데... 철이 너무 많이 들었더라고요. 제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 끝까지 엄마라고 안 부르는데... 애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엄마가 되어서 나약하게 숨어있을 수만은 없겠더라고요.”쉽지 않을 결정이었을 텐데,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팬들도 당장은 당황스럽겠지만 곧 받아들일 거예
롱패딩으로 온몸을 감싼 추하나는 수척해 보이면서도 얼굴에 살짝 살이 올라 있었다.“오랜만이네요.”놀라긴 했지만 소은정은 별일 없다는 듯 다가갔다.추하나도 창백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 제가 노시는데 방해된 건 아니죠?”“그럴 리가요. 그런데 나 만나러 온 거 맞아요? 우혁이 보러 온 게 아니라?”고개를 젓는 추하나의 눈동자가 살짝 어두워졌다.그 모습에 소은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두 사람의 애정전선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으니까.이때 추하나가 가방에서 파일을 하나 꺼냈다.“회사로는... 찾아갈 엄두가 안 나서요. 오늘 대표님이 파티에 참석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이거 전해 드리려고 왔어요.”파일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소은정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떨려왔다.회사 해체 제안서였다.내용을 쭉 훑어보던 소은정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아니 이게 도대체... 하나 씨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회사잖아요.”소은정의 질문에 추하나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그렇죠. 심혈 맞죠. 그런데 앞으로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깊은 한숨을 내쉰 추하나의 눈동자가 눈물로 반짝였지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은지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덕분에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됐어요. 자본, 기회, 인맥... 제가 가진 모든 건 다 대표님 덕분이었어요. 그래서 이 결정을 내리게 됐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게 대표님이기도 하고요.”추하나가 목이 메는 듯 말을 멈추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나한테 말해 봐요. 내가 도와줄게요.”고개를 젓던 추하나가 한숨을 쉬었다.“저... 임신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로펌 운영은 힘들 것 같아요. 커리어 우먼도 누구나 다 하는 게 아닌가 봐요.”“임신이요?”소은정이 눈이 커다래졌다.소은정은 자연스럽게 박우혁을 돌아보았다.“우혁이 아이 아니에요.”추하나의 말에 소은정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강서진... 그 사람 아이에요.”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추하나가 입술을 깨물었
한참을 고민하던 소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하나 씨, 무슨 선택을 하든 난 하나 씨 응원해요. 하나 씨가 진심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으니까.”한숨을 내쉬던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혹시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요.”추하나의 결정에 실망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안쓰러울 따름이었다.두 사람은 어쩌면 같은 입장이긴 했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소은정에게는 박수혁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자본이 있었지만 추하나는 달랐다.그녀가 노력해 쌓은 견고한 성이 강서진에게는 모래성 정도로 보일 테니까.그래서 어떻게든 도우려고 했던 건데...추하나가 먼저 결정을 내린 이상 이제 그녀가 무언가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아이를 가졌다는 건 관계를 가졌다는 말인데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네, 그럴 거예요. 전 대표님이 참 부러워요. 언제 어디서든 항상 당당하시잖아요. 저도... 앞으로 대표님이 행복하시길 빌게요.”말을 마친 추하나가 깊은 한숨과 함께 돌아서고 천천히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소은정이 탄식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다시 어색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건 분명 박우혁이었으니까.방금 전까지 잔뜩 신나 있던 박우혁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풀이 잔뜩 죽어있었다.제대로 서 있을 힘조차 없는지 벽에 기댄 모습에... 소은정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면 될까? 위로? 동정? 응원?또각또각 앞으로 걸어간 그녀가 물었다.“들었어?”붉어진 눈시울이 대답을 대신했다.무인도에서 생사를 넘나들 때도 이런 표정을 짓지 않던 사람인데...항상 속 없이 웃던 박우혁도 절망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싶었다.세상에 둘도 없는 보기 좋은 커플이었는데 이렇게 비참하게 관계가 끝날 줄이야.힘없이 웃던 박우혁이 돌아서려던 그때 소은정이 그 앞을 막아섰다.“너답지 않게 왜 그래? 사랑한다면서?
주차장.그녀가 차에 타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팔목을 덥썩 잡았다.언제부터 그녀를 기다렸는지 짐작 조차 가지 않는 박수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나랑 얘기 좀 해.”쫙 뻗은 그는 온몸은 우울한 분위기로 가득했다.“도대체 왜 이래? 아직도 모르겠어. 우리는 안 돼. 안 된다고!”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이 이를 악물었다.“서진이랑 그 전 와이프도 얼마나 안 좋게 끝났는지 알잖아? 그런데 그 두 사람도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 그런데 우리는 왜 안 되는데?”“하나 씨가 무슨 선택을 했든 비난하고 싶은 생각 없어. 하지만... 난 달라. 난 절대 그런 선택 안 해.”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난 절대 헤어진 남자랑 다시 시작하는 일 따위 안 해.”박수혁의 차가운 표정에도 그녀는 천천히 그의 손을 떨쳐냈다.그녀의 감정없는 눈동자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한 박수혁이 그녀를 거칠게 차로 밀었다.“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차오르는 감정을 누르는 듯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전동하 그 자식이...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데? 그 자식은 그쪽 집안 사람들한테 이미 버림받았어. 앞으로 걔가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넌 지금 가라앉는 배에 타려는 거나 마찬가지야...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소은정은 아무리 밀쳐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박수혁을 노려보았다.“설령 그렇다 해도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박수혁, 제발 나한테 신경 좀 꺼. 내가 누구랑 사귀든 너랑은 상관없는 거라고!”그녀의 말에 박수혁이 소은정의 턱을 거칠게 잡아채 키스를 시작했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온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지만 미약한 그녀의 힘 따위 우습다는 듯 박수혁의 몸은 태산처럼 그녀를 눌러왔다.그리고 발버둥치는 소은정의 입술을 더 거세게 탐했다.술을 많이 마셨는지 힘겹게 숨을 쉴 때마다 자극적인 알코올향이 그녀를 어지럽게 만들었다.어느 순간, 힘이 다 빠진 건지 소은정의 팔이 맥없이 떨어지고 드디어 기회를 잡은 박수혁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