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동하 때문에?”차가운 박수혁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장난기가 담겨있었다.“아직 모르나 봐? 전동하 이제 곧 파산할 텐데.”“뭐라고?”소은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그제야 피식 웃는 박수혁의 눈동자에는 전동하를 향한 경멸이 그대로 담겨있었다.“이미 미국에 소문 쫙 퍼졌어. 그런데 너한테는 아직도 숨기고 있었다라? 재밌네.”순간 소은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어제 통화할 때도 오늘 문자할 때도 그 어떤 이상한 점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파산이라니...게다가 박수혁의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불안한 예감에 소은정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주가 조작을 했다더라고. 몰래 숫자로 장난 좀 친 거지. 투자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어. 미국에서는 이미 조사 들어갔고 사실로 밝혀지만 아마... 20년 정도 징역형을 살게 될 거야. 소은정,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봐. 이게 네가 선택한 남자의 진짜 모습이야. 그 자식은 그냥... 사기꾼이라고! 제발 정신 좀 차려!”박수혁이 분노를 억누르며 마지막으로 소은정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녀의 귓가에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울릴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쿵쾅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이성의 줄을 잡으려 애쓰던 소은정이 겨우 대답했다.“어쨌든 말해 줘서 고마워. 내가 한 번 알아볼게.”그녀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누나, 왔어요? 왔으면 나한테 먼저 왔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원한빈의 등장으로 숨 막힐 듯한 어색한 정적이 깨질 수 있었다.봄날처럼 화사한 분위기의 원한빈이 그녀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장난스러운 그의 말투에 소은정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귀국했다고? 환영해!”마침 음악도 조금 더 부드러운 스타일로 바뀌고 원한빈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박 대표님, 오늘 파티는 제가 주인공이니까 은정이 누나랑 따로 얘기 좀 해도 되죠?”박수혁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소은정은 고개를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던 원한빈이 말을 이어갔다.“지금 문제는 전동하 대표가 투자한 주식이 주가 조작 혐의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 일부러 함정을 판 거겠죠.”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누군가 일부러 동하 씨를 위기에 빠트렸다는 거예요?”“그렇겠죠. 전동하 대표는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에요. 해도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 거예요.”소은정의 표정을 살피던 원한빈이 말을 이어갔다.“그런데 누나 진짜 많이 변했네요. 전에는 남의 일에 딱히 관심도 없더니. 전동하 대표가 파산하면 누나한테도 영향이 가는 거예요?”“동하 씨가 정말 파산한다면 협력사인 SC그룹에도 당연히 여파가 오겠죠.”“이유가 그게 다예요?”그의 질문에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내가 동하 씨 한 명 못 먹여살리는 수준은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딱히 상관없어요. 어차피 돈 보고 만나는 것도 아니니까.”그녀의 대답에 원한빈은 한참 침묵했다.음악이 더 부드럽게 바뀌었지만 원한빈의 마음은 왠지 더 착잡해졌다.조금 싹 튼 감정을 애써 무시한 채 한국을 떠났던 원한빈이었다. 어차피 시작된 지 얼마 안된 감정이고 눈에서 멀어지면 자연스레 잊혀질 거라 생각했으니까.이 아슬아슬한 선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친구도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뒤를 항상 지키고 있는 박수혁의 존재가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 포기했었다.그런데 누군가 그 산을 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솔직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여러모로 박수혁 대표에 비해 떨어지는 사람이라 들었다...그래서 소문이 진짜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비록 오늘 파티에서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소은정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이제 그에게는 일말의 기회도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였으니까.질투, 아쉬움...수많은 감정과 함께 음악이 끝났다.마침 잔뜩 흥분한 얼굴의 박우혁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드디어 왔네요. 누나, 연
이때 누군가 갑자기 표진아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흥미로운 이름에 소은정이 귀를 쫑긋 세웠다.대충 인사만 하고 자리를 뜨려던 생각이 눈 녹 듯이 사라졌다.이래서 사람들이 뒷담화를 하는 건가? 재밌네...“레이싱 모델? 그래도 전에는 드라마 한 화당 출연료 1억씩 받던 사람이... 어쩌다...”누군가 바로 거들었다.“너무 심하게 망했잖아요. 그 동안 번 돈 위약금으로 다 날리고... 명의로 된 아파트도 다 처분했대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겠죠.”“스폰도 받고 있었다면서? 왜 안 도와준대요?”“아, 그 부동산 업체 대표? 와이프를 굉장히 무서워하는 사람이거든. 괜히 엮일까 봐 바로 꼬리 자르기 들어간 거죠. 그리고 어차피 진짜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대충 가지고 놀던 애인데 이용가치가 없어졌으니 바로 버려진 거죠. 뭐, 표진아 인성 터진 거야 이쪽 바닥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잖아요. 언젠가 사고 터질 줄 알았어요.”몰래 듣고만 있던 소은정이 주스를 홀짝 마셨다.그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었어? 그럼 좀 더 마음이 놓이네.이때 양예영이 슬그머니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고맙습니다.”갑자기 웬 감사인사인가 싶어서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살짝 긴장한 듯 술잔을 꽉 쥐던 양예영이 다시 나지막하게 말했다.“며칠 전에 딸 만나러 갔었어요.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정말 감사합니다.”그제야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별말씀을요.”“이번 드라마만 끝나면... 육아 예능에 나가려고요. 이제 팬들에게도 딸 존재를 알려야 할 것 같아요.”“숨기는 건 그만두려고요?”“네. 저번에 만나러 갔었는데... 철이 너무 많이 들었더라고요. 제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 끝까지 엄마라고 안 부르는데... 애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엄마가 되어서 나약하게 숨어있을 수만은 없겠더라고요.”쉽지 않을 결정이었을 텐데,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팬들도 당장은 당황스럽겠지만 곧 받아들일 거예
롱패딩으로 온몸을 감싼 추하나는 수척해 보이면서도 얼굴에 살짝 살이 올라 있었다.“오랜만이네요.”놀라긴 했지만 소은정은 별일 없다는 듯 다가갔다.추하나도 창백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 제가 노시는데 방해된 건 아니죠?”“그럴 리가요. 그런데 나 만나러 온 거 맞아요? 우혁이 보러 온 게 아니라?”고개를 젓는 추하나의 눈동자가 살짝 어두워졌다.그 모습에 소은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두 사람의 애정전선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으니까.이때 추하나가 가방에서 파일을 하나 꺼냈다.“회사로는... 찾아갈 엄두가 안 나서요. 오늘 대표님이 파티에 참석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이거 전해 드리려고 왔어요.”파일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소은정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떨려왔다.회사 해체 제안서였다.내용을 쭉 훑어보던 소은정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아니 이게 도대체... 하나 씨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회사잖아요.”소은정의 질문에 추하나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그렇죠. 심혈 맞죠. 그런데 앞으로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깊은 한숨을 내쉰 추하나의 눈동자가 눈물로 반짝였지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은지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덕분에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됐어요. 자본, 기회, 인맥... 제가 가진 모든 건 다 대표님 덕분이었어요. 그래서 이 결정을 내리게 됐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게 대표님이기도 하고요.”추하나가 목이 메는 듯 말을 멈추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나한테 말해 봐요. 내가 도와줄게요.”고개를 젓던 추하나가 한숨을 쉬었다.“저... 임신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로펌 운영은 힘들 것 같아요. 커리어 우먼도 누구나 다 하는 게 아닌가 봐요.”“임신이요?”소은정이 눈이 커다래졌다.소은정은 자연스럽게 박우혁을 돌아보았다.“우혁이 아이 아니에요.”추하나의 말에 소은정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강서진... 그 사람 아이에요.”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추하나가 입술을 깨물었
한참을 고민하던 소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하나 씨, 무슨 선택을 하든 난 하나 씨 응원해요. 하나 씨가 진심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으니까.”한숨을 내쉬던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혹시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요.”추하나의 결정에 실망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안쓰러울 따름이었다.두 사람은 어쩌면 같은 입장이긴 했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소은정에게는 박수혁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자본이 있었지만 추하나는 달랐다.그녀가 노력해 쌓은 견고한 성이 강서진에게는 모래성 정도로 보일 테니까.그래서 어떻게든 도우려고 했던 건데...추하나가 먼저 결정을 내린 이상 이제 그녀가 무언가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아이를 가졌다는 건 관계를 가졌다는 말인데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네, 그럴 거예요. 전 대표님이 참 부러워요. 언제 어디서든 항상 당당하시잖아요. 저도... 앞으로 대표님이 행복하시길 빌게요.”말을 마친 추하나가 깊은 한숨과 함께 돌아서고 천천히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소은정이 탄식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다시 어색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건 분명 박우혁이었으니까.방금 전까지 잔뜩 신나 있던 박우혁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풀이 잔뜩 죽어있었다.제대로 서 있을 힘조차 없는지 벽에 기댄 모습에... 소은정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면 될까? 위로? 동정? 응원?또각또각 앞으로 걸어간 그녀가 물었다.“들었어?”붉어진 눈시울이 대답을 대신했다.무인도에서 생사를 넘나들 때도 이런 표정을 짓지 않던 사람인데...항상 속 없이 웃던 박우혁도 절망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싶었다.세상에 둘도 없는 보기 좋은 커플이었는데 이렇게 비참하게 관계가 끝날 줄이야.힘없이 웃던 박우혁이 돌아서려던 그때 소은정이 그 앞을 막아섰다.“너답지 않게 왜 그래? 사랑한다면서?
주차장.그녀가 차에 타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팔목을 덥썩 잡았다.언제부터 그녀를 기다렸는지 짐작 조차 가지 않는 박수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나랑 얘기 좀 해.”쫙 뻗은 그는 온몸은 우울한 분위기로 가득했다.“도대체 왜 이래? 아직도 모르겠어. 우리는 안 돼. 안 된다고!”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이 이를 악물었다.“서진이랑 그 전 와이프도 얼마나 안 좋게 끝났는지 알잖아? 그런데 그 두 사람도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 그런데 우리는 왜 안 되는데?”“하나 씨가 무슨 선택을 했든 비난하고 싶은 생각 없어. 하지만... 난 달라. 난 절대 그런 선택 안 해.”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난 절대 헤어진 남자랑 다시 시작하는 일 따위 안 해.”박수혁의 차가운 표정에도 그녀는 천천히 그의 손을 떨쳐냈다.그녀의 감정없는 눈동자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한 박수혁이 그녀를 거칠게 차로 밀었다.“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차오르는 감정을 누르는 듯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전동하 그 자식이...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데? 그 자식은 그쪽 집안 사람들한테 이미 버림받았어. 앞으로 걔가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넌 지금 가라앉는 배에 타려는 거나 마찬가지야...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소은정은 아무리 밀쳐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박수혁을 노려보았다.“설령 그렇다 해도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박수혁, 제발 나한테 신경 좀 꺼. 내가 누구랑 사귀든 너랑은 상관없는 거라고!”그녀의 말에 박수혁이 소은정의 턱을 거칠게 잡아채 키스를 시작했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온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지만 미약한 그녀의 힘 따위 우습다는 듯 박수혁의 몸은 태산처럼 그녀를 눌러왔다.그리고 발버둥치는 소은정의 입술을 더 거세게 탐했다.술을 많이 마셨는지 힘겹게 숨을 쉴 때마다 자극적인 알코올향이 그녀를 어지럽게 만들었다.어느 순간, 힘이 다 빠진 건지 소은정의 팔이 맥없이 떨어지고 드디어 기회를 잡은 박수혁이
조용한 주차장.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대로 들릴 것만 같을 정도로 고요한 주차장, 소은정은 분노로 가득찬 시선으로 박수혁을 노려보고 있었다.그녀의 분노,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박수혁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행여라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던 거라면 내 맘 잘 들어. 만약 임신하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아이 지울 거야. 그러니까 꿈도 꾸지 마. 내가 원하지 않는 아이, 품을 생각도 나을 생각도 없어. 선 지켜. 안 그럼 진짜 너 죽고 나 죽고니까.”말을 마친 소은정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거칠게 차문을 연 뒤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벗어나갔다.우두커니 혼자 남은 박수혁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비틀거렸다.벨소리가 울리고 강서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어떻게 됐어?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은정 씨는? 술에 약 좀 타. 그럼 좀 수월할 거니까. 이미 엎지른 물이 되면 어쩔 수 없이 형 말에 따르게 될 거야. 나 좀 봐...”두 눈을 질끈 감은 박수혁이 말없이 전화를 끊었고 자신의 차문에 거세게 발길질을 함으로써 화풀이를 대신했다.아니, 난 못해... 난 은정이의 눈물을 보고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어... 은정이의 증오에 의연할 자신이 없어...그래, 내가 날 너무 과대평가했네. 내가 날 너무 쓰레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진 않을 거야. 절대...깊은 밤이라 그런지 도로에는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소은정은 엑셀을 거세게 밟으며 텅 빈 거리를 빠르게 달렸다.아직도 쿵쾅대는 심장이 방금 전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하, 어디서 그런 더러운 수작을 배워와서는... 난 추하나처럼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거야. 내 머리털 하나라도 건드리면 평생 숨도 못 쉬게 고통스럽게 만들어줄 거야.이때 곁에 내팽개치 듯 던지던 휴대폰이 울렸다.차량 모니터에 전동하의 이름이 뜨고 방금 전까지 마음을 가득 채우던 분노가 억울함으로 바뀌며 코끝이 시큰해졌다.그래도 그녀는 별
집사 아저씨도 소은정의 차를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 곧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아가씨, 식사 하셨어요? 그런데 술 드셨어요? 일단 꿀물이라도 드릴까요?”“아니에요. 술 먹고 운전을 어떻게 해요. 그냥 냄새가 묻었나봐요. 꿀물은 괜찮으니까 일찍 쉬세요, 아저씨.”소은정의 미소에 집사 아저씨도 자상한 미소로 화답했다.집으로 들어간 소은정은 소은호가 거실에 앉아 메일을 확인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소은호 역시 여동생의 갑작스러운 귀가가 의아한 듯 물었다.“오늘은 왜 여기로 왔어?”대충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 그녀가 물었다.“아빠는?”“주무셔.”이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 방으로 들어간다?”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소은호가 여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감정 변화에 무딘 그마저도 소은정의 모습이 왠지 이상하게 느껴졌으니까.방으로 들어온 소은정은 바로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었다.어디서 나타난 건지 소호랑이 소파에 폴짝 뛰어올랐다.“엄마, 나 이번에 또 선물 많이 샀어요. 엄마한테 주려고요.”소호랑의 새 취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그녀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그래, 고마워.”비록 역시 그녀의 카드로 긁은 거겠지만 그녀를 위해 준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호랑아, 나 물 한잔만 줄래?”소은정의 말에 소호랑은 방안의 스마트 시스템을 이용해 정수기를 가동시켰다.물 한 잔을 한꺼번에 넘겨버린 소은정이 깊은 한숨과 함께 침대에 오르려던 그때.“똑똑똑.”노크 소리에 소은정이 고개를 돌렸다.“은정아, 나야.”오빠가 왜 이 시간에...?소은호의 목소리에 소은정은 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응, 오빠...”문 밖에 서 있는 소은호가 선물 상자를 건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시연이한테 주려고 했는데 다시 보니까 너한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 에르메스 신상이야. 음... 여자들은 백이 만병통치약이라며.”무뚝뚝한 오빠의 선물에 눈시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