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표진아, 평소에는 친근한 이미지 아니었나? 그런데 그게 다 연기였다고?”“매니저는 사람 아니라 이건가? 울 것 같은 표정이네... 불쌍하다...”“표진아, 정말 제대로 떴네. 다른 의미로...”“배우면 다야? 뭐가 대단하다고 갑질이야? 어이가 없다...”“도시락 멀쩡하기만 하구만... 사람 먹을 음식이 아니라고? 하, 고귀하신 배우님들은 평소 도대체 무슨 음식을 드시나 몰라...”“바닥에 떨어진 걸 먹으라고? 표진아, 이 정도면 매장돼야 하는 거 아니야?”역시나 대중들은 표진아의 갑질에 분노했고 해당 사실의 진위를 묻는 전화가 촬영팀 사무실로 쏟아졌다.비록 촬영팀은 현재 조사 중이라고 일관되게 대응했지만 워낙 확실한 증거에 조사할 필요도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대중들의 눈이 먼 건 아니니까.촬영팀의 입장 전달에 대중들은 더 분노했고 표진아의 SNS는 악플로 도배되었다.2시간 뒤, 표진아의 소속사가 내놓은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그날 표진아는 컨디션이 안 좋아 도시락을 엎었고 촬영에 들어가야 해서 매니저에게 치워달라 부탁한 것뿐이다. 영상에 나오는 목소리는 따로 녹음된 것이니 무분별한 악플을 자제해 달라.입 모양이 딱히 보이지 않는 영상이라 정말 후시 녹음을 딴 것인가 의심하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하지만 30분 뒤, 매니저의 인터뷰가 기사로 게재되었다.“표진아 씨가 갑질을 한 게 사실인가요?”기자의 질문에 매니저는 눈시울을 붉혔다.“괜찮아요. 이미 익숙해졌어요.”익숙해졌다라...표진아의 갑질을 완전히 사실로 만들어버린 한 마디였다.“그 음식들 정말 다 드셨나요?”매니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더 이상 묻지 말아주세요. 저희 어머니가 보시면... 속상해 하실 거예요...”새롭게 나온 인터뷰는 표진아 소속사의 주장을 보기 좋게 밟아주었다.공정하고 당당한 듯한 해명문이 오히려 우스운 농담처럼 느껴졌다.30분 뒤, 매니저는 슬그머니 공식 성명을 지웠고 촬영팀도 여주인공을 새로운 배우로
“뭘 믿고 나대는 거야? 설마 스폰이라도 받는 거야?”“양심 있으면 매니저한테 사과해라. 하, 연예인들 돈 좀 있다고 사람 무시하는 거 진짜 짜증 나.”“같은 직장인으로서 진짜 화난다. 매니저가 노예냐?”각양각색의 댓글들이 가리키는 바는 단 하나, 사과하고 연예계를 은퇴하라는 것이었다.그리고 오후 쯤, 촬영팀 스태프라고 주장하는 이가 사진 몇 장을 업로드했다.심플한 차림의 소은정이 김하늘과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열심히 도시락을 먹는 사진이었다.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빠르게 퍼져나갔다.“표진아, 저게 진짜 스타인 거야.”“소은정 대표의 몸값이 얼마더라? 하, 인간성도 완벽하네.”“저렇게 소탈한 모습까지... 은정 언니는 도대체 부족한 게 뭘까?”“도시락이 부러울 지경이다.”“소은정 대표도 먹는 밥을 표진아 네가 뭔데 못 먹어?”“소은정 대표가 이제 연기까지 하는 거야? 응원해요, 언니!”“은정 언니가 밥 먹는 모습을 보니까 사람이구나 싶다...”한편 SC그룹, 자신의 사진이 업로드될 거라곤 예상치 못한 소은정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표진아를 비난하는 댓글들을 보며 기뻐하며 나도 모르는 척 댓글 하나 남겨볼까 생각하던 그때 갑자기 그녀의 사진이 업로드되다니.무슨 상황인가 싶던 그때 김하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직감이 분명 인터넷에 뜬 그녀의 사진 때문일 거라 말해 주고 있었다.역시나 전화를 받자마자 김하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정아, 사진 봤어?”“설마 네가 올린 건 아니지?”소은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굳이 촬영장에 남아 밥차를 먹으라던 김하늘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잠깐 침묵하던 김하늘이 피식 웃었다.“뭐래. 나도 기발하다 싶었어. 현장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었더라고. 올려도 되냐고 묻길래 올리라고 한 거고. 표진아 그 여자... 막타는 내가 날리고 싶었으니까.”뭐, 김하늘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이용당했지만 기분이 나
저녁 9시.그녀는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효과는 미미했고 악플들도 여전했다.CF 모델로 있던 곳에서도 전부 계약 해지를 요구해 왔다. 엉망이 된 이미지를 걱정하기도 전에 수십 억이 넘는 위약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화려한 별장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하고 있다.“대표님, 저 좀 도와주세요. 뭘 시키든 다 할게요. 일단 여론부터 눌러주세요. 이대로 내버려 두실 거예요? 저 정말 죽는 꼴 보고 싶으세요...? 앞으로 저 연기는 어떻게 하라고...”소파에 앉은 뱃살 두둑한 남자가 짜증스레 표진아를 노려보더니 다리가랑이를 붙잡는 그녀를 거칠게 떼어냈다.“연기? 앞으로 네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경고했지. 그 성질머리 좀 죽이라고! 그러다 언젠가 큰 사고 친다고! 아무리 말해도 듣는 척 마는 척하더니 잘하는 짓이다! 이거 함정이야, 누군가 일부러 널 노리고 짠 판이라고!”남자의 말에 표진아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누가요? 누가 절 노린다는 거예요?”“또 누가 있겠어? 네가 이제까지 괴롭힌 사람들이겠지. 넌 머릿속에 도대체 뭐가 들었니?”남자가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표진아를 노려보았다.“매니저 따위가 어떻게...”표진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하... 매니저? 그래, 영상 자체는 매니저가 찍은 거 맞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영향력이 컸다는 건 누군가 뒤에서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뜻이야. 내가 너 때문에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아? 언론사에 연락해서 기사 좀 내려달라고 해도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해!”말을 하면 할 수록 화가 치솟는지 남자는 한참을 씩씩거렸다.“도대체 네가 누굴 건드렸는지 잘 생각해 봐!”남자의 정체는 국내 유명 부동산 회사의 대표, 돈 꽤나 만지는 사람으로서 어리고 예쁜 배우들 몇 명 스폰해 주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그런데... 그 중의 한 명이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지금 네티즌들은 표진아가 혹시 스폰을 받는 게 아니냐며
시간이 흘러도 네티즌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팬들은 전부 돌아선데다 CF와 캐스팅 되었던 작품 또한 모두 물 건너가고 말았다.겨우 이어온 연예계 생활이 이렇게 갑자기 끝나는 건가 싶어 두려웠고 불안했다.“뭘 잘했다고 울어! 당장 꺼져! 앞으로 우리 둘이 아는 사이라는 거 절대 말하지 마! 다시 만나러 오지도 말고! 알겠어? 에라잇, 재수가 없으려니까...”화가 나 일어선 남자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평소에도 업무상 관계로 SC그룹의 눈치를 보던 그인데...행여나 표진아의 스폰이 그였다는 걸 소은정이 알게 되면...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마음 같아선 당장 표진아와의 관계를 깨끗이 끊어내고 앞으로 다시는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한편 남자의 매정한 태도에 표진아는 오열했다.“내 말 잘 들어. 어디 나가서 나랑 무슨 사이였다느니 함부로 입만 놀려봐. 정말 죽여버릴 거니까. 그리고 네 명의로 된 그 부동산, 앞으로 대출은 네가 알아서 갚아. 못 갚겠으면 길바닥에서 살든가 알아서 해!”말을 마친 남자가 단호하게 돌아서고 맨발로 그 뒤를 쫓던 표진아가 결국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남자의 말을 다시 떠올린 표진아는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다음 날 아침, 표진아의 소속사는 다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표진아와의 전속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이었다.표진아는 완벽하게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지금까지 논란이 있는 연예인은 많았지만 사건의 열기가 채 식기 전에 전속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한 일은 처음이라 사람들도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와, 진짜 매정하다...”“꼬리 자르기 하는 거네.”“표진아, 이제 완전 닭 쫓던 개 된 거네.”“벌 받은 거지 뭐. 잘됐네!”......3일 뒤, 표진아는 또 다른 사과문과 함께 정식으로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복수는 완벽하게 끝나고 소은정은 그녀의 사진에 관한 기사를 조용히 내렸다.김하늘의 복수를 위해 이용당하는 건 괜찮지만 이제 복수도 끝났겠다 더 이상 사
마지막 보고서까지 검토한 소은정은 회사 탈의실에서 베이지색 스웨터 롱드레스를 갈아입었다. 거기에 흰색 망토 코트까지 걸치니 심플하지만 통통 튀는 스타일의 코디가 완성되었다.박우혁이 보내준 곳은 은밀한 별장처럼 보이는 바였다. 화려하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곳, 그녀와 같은 재벌 2세들이 딱 좋아할만한 분위기였다.강희가 자주 온다던 곳이네...소은정은 바를 둘러보았다. 앞쪽은 조용한 바, 뒤쪽은 휴식 구역, 즉 사람들의 눈에 띠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참, 좋은 곳 골랐네.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귀청이 째질 것 같은 음악소리에 소은정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취했는지 박우혁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무대에서 춤까지 추고 있었고 무대 아래에 모인 사람들이 그를 위해 환호하고 있었다...파티에서 자주 보는 재벌 2세들, 그리고 낯이 익은 연예인들까지, 박우혁과 친한 사람들은 전부 다 부른 모양이었다.구석 자리에 앉은 소은정은 저 멀리 언뜻언뜻 보이는 사람 그림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하지만 화려한 조명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뭐, 안 보이면 말라지 뭐.시선을 돌린 소은정이 컵에 주스를 따랐다.잠시 후, 방금 전 그녀의 시선을 끌었던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눈앞이 살짝 어두워지자 고개를 든 소은정이 손목시계를 힐끗 훑어보았다.한정판 시계, 아시아에 유일하게 하나 들어온 제품, 바로 박수혁의 시계였다.다시 고개를 더 올려보니 역시나, 박수혁이었다.며칠 못 본 사이에 박수혁은 꽤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그래서인가?왠지 더 우울하고 차가워 보였다.고개를 숙여 소은정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말로 형언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으로 얼기설기 얽혀있었다.그와 시선을 마주친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소용돌이를 담은 듯한 눈동자를 보고 있다면 그녀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아서..
“왜? 전동하 때문에?”차가운 박수혁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장난기가 담겨있었다.“아직 모르나 봐? 전동하 이제 곧 파산할 텐데.”“뭐라고?”소은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그제야 피식 웃는 박수혁의 눈동자에는 전동하를 향한 경멸이 그대로 담겨있었다.“이미 미국에 소문 쫙 퍼졌어. 그런데 너한테는 아직도 숨기고 있었다라? 재밌네.”순간 소은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어제 통화할 때도 오늘 문자할 때도 그 어떤 이상한 점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파산이라니...게다가 박수혁의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불안한 예감에 소은정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주가 조작을 했다더라고. 몰래 숫자로 장난 좀 친 거지. 투자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어. 미국에서는 이미 조사 들어갔고 사실로 밝혀지만 아마... 20년 정도 징역형을 살게 될 거야. 소은정,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봐. 이게 네가 선택한 남자의 진짜 모습이야. 그 자식은 그냥... 사기꾼이라고! 제발 정신 좀 차려!”박수혁이 분노를 억누르며 마지막으로 소은정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녀의 귓가에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울릴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쿵쾅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이성의 줄을 잡으려 애쓰던 소은정이 겨우 대답했다.“어쨌든 말해 줘서 고마워. 내가 한 번 알아볼게.”그녀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누나, 왔어요? 왔으면 나한테 먼저 왔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원한빈의 등장으로 숨 막힐 듯한 어색한 정적이 깨질 수 있었다.봄날처럼 화사한 분위기의 원한빈이 그녀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장난스러운 그의 말투에 소은정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귀국했다고? 환영해!”마침 음악도 조금 더 부드러운 스타일로 바뀌고 원한빈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박 대표님, 오늘 파티는 제가 주인공이니까 은정이 누나랑 따로 얘기 좀 해도 되죠?”박수혁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소은정은 고개를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던 원한빈이 말을 이어갔다.“지금 문제는 전동하 대표가 투자한 주식이 주가 조작 혐의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 일부러 함정을 판 거겠죠.”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누군가 일부러 동하 씨를 위기에 빠트렸다는 거예요?”“그렇겠죠. 전동하 대표는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에요. 해도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 거예요.”소은정의 표정을 살피던 원한빈이 말을 이어갔다.“그런데 누나 진짜 많이 변했네요. 전에는 남의 일에 딱히 관심도 없더니. 전동하 대표가 파산하면 누나한테도 영향이 가는 거예요?”“동하 씨가 정말 파산한다면 협력사인 SC그룹에도 당연히 여파가 오겠죠.”“이유가 그게 다예요?”그의 질문에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내가 동하 씨 한 명 못 먹여살리는 수준은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딱히 상관없어요. 어차피 돈 보고 만나는 것도 아니니까.”그녀의 대답에 원한빈은 한참 침묵했다.음악이 더 부드럽게 바뀌었지만 원한빈의 마음은 왠지 더 착잡해졌다.조금 싹 튼 감정을 애써 무시한 채 한국을 떠났던 원한빈이었다. 어차피 시작된 지 얼마 안된 감정이고 눈에서 멀어지면 자연스레 잊혀질 거라 생각했으니까.이 아슬아슬한 선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친구도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뒤를 항상 지키고 있는 박수혁의 존재가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 포기했었다.그런데 누군가 그 산을 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솔직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여러모로 박수혁 대표에 비해 떨어지는 사람이라 들었다...그래서 소문이 진짜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비록 오늘 파티에서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소은정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이제 그에게는 일말의 기회도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였으니까.질투, 아쉬움...수많은 감정과 함께 음악이 끝났다.마침 잔뜩 흥분한 얼굴의 박우혁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드디어 왔네요. 누나, 연
이때 누군가 갑자기 표진아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흥미로운 이름에 소은정이 귀를 쫑긋 세웠다.대충 인사만 하고 자리를 뜨려던 생각이 눈 녹 듯이 사라졌다.이래서 사람들이 뒷담화를 하는 건가? 재밌네...“레이싱 모델? 그래도 전에는 드라마 한 화당 출연료 1억씩 받던 사람이... 어쩌다...”누군가 바로 거들었다.“너무 심하게 망했잖아요. 그 동안 번 돈 위약금으로 다 날리고... 명의로 된 아파트도 다 처분했대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겠죠.”“스폰도 받고 있었다면서? 왜 안 도와준대요?”“아, 그 부동산 업체 대표? 와이프를 굉장히 무서워하는 사람이거든. 괜히 엮일까 봐 바로 꼬리 자르기 들어간 거죠. 그리고 어차피 진짜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대충 가지고 놀던 애인데 이용가치가 없어졌으니 바로 버려진 거죠. 뭐, 표진아 인성 터진 거야 이쪽 바닥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잖아요. 언젠가 사고 터질 줄 알았어요.”몰래 듣고만 있던 소은정이 주스를 홀짝 마셨다.그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었어? 그럼 좀 더 마음이 놓이네.이때 양예영이 슬그머니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고맙습니다.”갑자기 웬 감사인사인가 싶어서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살짝 긴장한 듯 술잔을 꽉 쥐던 양예영이 다시 나지막하게 말했다.“며칠 전에 딸 만나러 갔었어요.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정말 감사합니다.”그제야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별말씀을요.”“이번 드라마만 끝나면... 육아 예능에 나가려고요. 이제 팬들에게도 딸 존재를 알려야 할 것 같아요.”“숨기는 건 그만두려고요?”“네. 저번에 만나러 갔었는데... 철이 너무 많이 들었더라고요. 제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 끝까지 엄마라고 안 부르는데... 애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엄마가 되어서 나약하게 숨어있을 수만은 없겠더라고요.”쉽지 않을 결정이었을 텐데,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팬들도 당장은 당황스럽겠지만 곧 받아들일 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