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정 씨, 나 강서진이에요. 여기 잠깐 와줄 수 있어요? 형이 많이 취했어요. 근데 굳이 운전해서 은정 씨 만나러 가겠다고 난리라... 기사도 이미 퇴근했고 저희도 전부 술을 먹어서 운전을 못해요. 그러니까 은정 씨가 와주면 안 돼요?”강서진의 급박한 목소리에 방금 전까지 피곤하던 마음이 싹 가셨다.잔뜩 굳은 표정의 소은정이 한숨을 푹 내쉬었고 옆에서 통화 내용을 전부 듣고 있던 우연준도 그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지금 어디예요? 거시서 기다려요.”순간 강서진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아. 지금...”주소를 들은 소은정이 침착하게 통화를 마치자 우연준이 차키를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지금 가시려는 겁니까? 제가 운전하겠습니다.”“아니에요.”대답과 동시에 소은정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여보세요? 경찰이죠. 지금 음주운전을 시도하려는 현장을 목격해서요. 네, 지금 당장 와주세요. 여기 주소가...”이에 우연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세상에... 대표님 꽤 세게 나가시네.한편 통화를 마친 강서진은 꽤 취한 박수혁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형,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나머지는 형이 알아서 해. 차에 타. 은정 씨 오면 바로 시동 걸겠다고 협박을 하든 애원을 하든 하라고...”강서진의 말에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소은정이 온다는 소식에 기쁘면서도 왠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하지만 알코올 때문에 이미 이성이 마비된 그는 더 고민하지 않고 고분고분 강서진에 의해 차에 탑승했다.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던 강서진이 말했다.“너무 고마워하지 마. 여자들은 워낙 마음이 약하잖아? 게다가 형이 전동하 그 자식보다 못한 게 뭐야. 난 형 응원해.”20분 뒤, 혼자 운전석에 앉아있는 박수혁은 왠지 모르게 손바닥에 식은 땀이 났다.이때 저 멀리 도로 끝에서 차량 조명이 반짝이고 그제야 잔뜩 경직되어 있던 그의 몸에 힘이 풀렸다.그리고 혹시나 술 냄새가 덜 나지 않을까 싶어 미리 준비해 둔 술을 들어
잠시 후, 이한석이 도착하고 경찰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곧 상황이 종료되고 이한석이 다시 차쪽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까요?”눈을 꼭 감고 있던 박수혁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참 매정하다...”주어는 없었지만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천하의 박수혁에게 이렇게 허탈함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은 소은정뿐일 테니까.이한석이 정색하며 말했다.“대표님, 여긴 보는 눈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괜히 시끄러워질지도 모릅니다. 제가 모셔다 드리죠?”드디어 눈을 뜬 박수혁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이고 곧 아무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그러자 이한석이 부랴부랴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SC그룹.소은정과 우연준이 차례로 사무실을 나섰다.먼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모습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할 말 있으면 해요.”소은정의 솔직한 질문에 우연준이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이래도 정말 괜찮을까요? 박수혁 대표가 알기라도 하면...”“당연히 알게 되겠죠. 아니, 차라리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계획은 안 통한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차가운 미소를 짓는 소은정의 모습에 우연준이 다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한때 박수혁에게 그렇게나 일편단심이던 소은정이 이렇게 매정하게 변하다니... 시간이 나름 많이 흐르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차키를 누른 소은정이 우연준을 돌아보았다.“내가 직접 운전할 거니까 우 비서님은 어서 퇴근해요.”고개를 끄덕인 우연준은 그녀의 차량이 떠나는 걸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자신의 차에 탑승했다.오피스텔에 도착한 소은정은 바로 전동하의 전화를 받았다.시차에 따르면 전동하가 있는 곳은 아마 아침 9시일터.“아직 안 자고 있을 줄 알았어요.”소은정이 피식 웃었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요?”“새 프로젝트 들어간다고 했잖아요. 은정 씨라면 무조건 야근할 것 같아서요.”스쳐지나가듯 말한 건데 그걸 기억하다니.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그쪽은 어때요? 잘 돼가요?
소찬식의 말에 흠칫하던 소은정이 눈을 반짝였다.“선생님이요? 귀국하셨다고요?”소은해도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방 선생님이요?”방지숙은 국내 톱 아티스트로 해외 공연이 끊이지 않는데다 업계에서는 거의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물론 소씨 일가 남매들에게 방지숙은 평범한 아티스트 그 이상이었다. 그녀는 소은정 어머니의 선생님이었으니까.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나서 방지숙은 자주 아이들을 보러 오는 등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 메꿔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그리고 소은해를 연예계로 데뷔시켜준 것도 방지숙이나 다름 없었고 방지숙의 인지도 덕분에 소은해는 신인 시절부터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적어도 선배 눈치를 살피면서 굽신거릴 필요는 없었으니까.뭐 다들 대학교로 입학하고 각자 일 때문에 바쁘게 지내면서 얼굴을 못 본 지 꽤 되었지만 말이다.벌써 7년 전이네... 선생님 얼굴 마지막으로 뵌 게...“너희들 다 방 선생님이랑 친해? 부럽다...”김하늘이 미간을 찌푸렸다.고개를 끄덕이던 소은정이 대답했다.“너도 방 선생님 팬이었지? 오늘 성덕 된 거네?”소은호와 한시연 역시 서로를 마주보다 싱긋 미소를 지었다.잔뜩 흥분한 표정의 소은해가 바로 주방으로 달려나갔다.“지금 어디까지 오셨는데요? 내가 직접 모시러 가야겠어요!”아들의 호들갑에 소찬식이 눈을 흘겼다.“지금 이미 오시는 중이야. 곧 도착하시니까 조용히 앉아있어!”잔뜩 신난 소은해는 소찬식에게 욕을 먹어도 좋기만 한지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그를 구박만 하는 소찬식과 달리 방지숙은 네 남매 중 소은해를 가장 아꼈다. 예술 재능이 뛰어나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높은 기대를 걸었으니까.20분 뒤, 방지숙이 도착했는지 조용하던 정원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가장 먼저 인기척을 들은 소은해가 버선발로 현관을 뛰쳐나갔다.역시나 방지숙이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50이 넘는 나이임에도 방지숙은 여전히 우아하고 꼿꼿했으며 기품이 흘러넘쳤다.그런 방지숙을
역시 선생님! 내 선물을 빼먹을 리가 없지!순간 소은해가 눈을 반짝였다.“역시, 선생님은 날 가장 아끼신다니까. 제 선물이 가장 좋은 거죠?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주시는 거 맞죠?”소은해는 어이 없다는 표정의 소은정을 애써 무시한 채 싱글벙글 웃으며 선물을 열어보았다.그리고 안에 든 물건을 확인한 순간, 표정이 어색하게 굳더니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선물 상자 안에 든 건 대본이었다.“돌려서 말하지 않으 마. 요즘 연예계에서 나름 잘 나간다는 얘기는 들었다. 뭐 세계적인 톱스타께서 연극 따위에 관심을 가져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내가 준비 중인 연극이 하나 있거든? 그 중에 서생 역할을 맡을 배우가 아직 캐스팅이 안 됐네. 오디션 한 번 봐봐. 물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오디션 기회를 주는 것까지야. 역할을 따낼 수 있을지 말지는 네 능력에 달렸겠지. 물론, 연극에 관심 없으면 그냥 못 들은 걸로 하고.”방지숙의 말에 소은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볼게요. 무조건 볼게요.”방지숙이 추천하는 배역이라면 얼마나 좋은 역할일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연예계에서 이미 톱을 찍은 그에게 더 이상 비싼 출연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인기란 거품과 같아서 언제든지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니까.그가 원하는 건 좋은 작품의 좋은 배역을 만나는 것이었다. 원하는 작품만 하기 위해 직접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그가 가장 원하는 무대, 진정한 예술의 전당이 그의 앞에 펼쳐졌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방지숙의 제안을 듣던 소찬식이 코웃음을 쳤다.“쟤는 이미 연예인 물을 너무 많이 먹었어요. 그 동안 돈을 너무 쉽게 번 거지. 연기하는 법은 진작 잊어버렸을 걸요? 차라리 다른 사람을 찾는 게...”“아빠, 저 누군지 아시잖아요.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소은해예요. 기회 한 번만 주시면 최선을 다해 연기할게요.”다급해진 소은해는 급기야 발까지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아빠, 오빠 겁 주
능글맞은 미소로 대답하던 소찬식이 집사에게 좋은 술을 가지고 오라 분부했다.한편, 저택을 들어가려던 소은정은 여전히 정원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소은해와 김하늘을 바라보았다.반 년 이상 떨어져 지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쉽게 결정하기 힘들겠지...식사를 마친 방지숙은 호텔로 돌아갔다.집을 나서기 전 방지숙은 소은해에게 잘 고민해 보라며 다시 언질을 주었다.뭐, 고민을 위한 시간은 하룻밤뿐이었지만.내일 바로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더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가족들 중 누구도 소은해에게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김하늘, 소은해 두 사람이 결정해야 할 일이니까.“오빠, 난 기다릴 수 있어. 그러니까 선생님 따라서 가. 오빠가 바라던 기회잖아. 난 괜찮아, 진심이야.”오빠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야지. 나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건 죽는 것보다 더 싫어...그녀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소은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방지숙과 함께 출국하기 위해 소은해도 공항으로 향했다.공항으로 가는 내내 소은해는 김하늘을 잘 보살펴야 한다며 소은정에게 당부 또 당부했다.같은 말도 여러 번 들으려니 짜증이 치밀고 소은정이 오빠를 홱 노려보았다.“아, 알겠다고! 그만 좀 해! 내가 내 친구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잠시 후,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전신무장을 한 소은해와 김하늘, 소은정이 공항에 도착했다.아쉬움 가득한 눈빛의 소은해와 달리 김하늘은 무덤덤하게 잘 지내라는 말만 건넬 뿐이었다.너무나도 차분한 그녀의 모습에 소은해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할 수만 있다면... 떠나기 전에 너랑 혼인신고 하고 싶었는데.”그의 말에 흠칫하던 김하늘이 고개를 들었다.“오빠, 우린 아직 젊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너 혼자 두고 가려니까 마음이 안 놓여서 그렇지... 결혼이라는 명분으로라도 널 붙잡아두고 싶으니까.”진심이 담긴 소은해의 말에 김하늘이 두 눈을 깜박였다.“오빠, 우리가 1, 2년 안 사이도 아니고...
잠시 후,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소은해는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돌아오는 길.뒷좌석에 앉은 소은정이 김하늘을 힐끗 바라보았다.“오빠가 뭐라고 했는지 안 궁금해?”“아니.”“왜?”“어차피 오빠가 못 참고 나한테 다 말해 줄 걸? 오빠는 집착이 너무 심해. 뭐 싫은 건 아니지만... 오빠 사랑이 냄비처럼 확 끓었다가 식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돼. 그래서... 일부러 조금 차갑게 군 것도 있고... 내가 울상으로 있어 봐. 오빠가 발걸음이 떨어지겠어?”“풉...”난 또 걱정했네... 밀당이었어? 은해 오빠 마음 고생 좀 하겠네.“촬영장 갈 거지? 내가 데려다줄게.”“됐어. 너 회사 들어가봐야 하잖아.”소은정의 제안에 김하늘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나도 촬영장 구경 가보고 싶어.”“그래?”김하늘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이번 드라마는 내가 제작자라 조금 더 떨리네. 참, 이글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이 주연 배우기도 하니까... 너도 가보는 게 좋겠다.”이글 엔터 소속 연예인? 손호영인가? 요즘 꽤 잘 나가는 것 같던데... 내가 가서 힘 좀 더 실어줘야겠어. 곧 CF 촬영이기도 하고.잠시 후, 차량이 촬영장에 도착했다. 김하늘은 바로 감독에게로 가고 여기저기 둘러보던 소은정은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감사합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이때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그녀를 발견한 남자가 목소리를 더 높였다.“소은정 대표님...”유준열이었다.처음 봤을 때 앳됐던 얼굴과 달리 많이 성숙해진 모습이었다.가수 출신인 그는 얼마 전부터 배우로 전향하기 시작했는데 연기력도 나름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유준열... 딱히 악감정은 없었지만 그도 부잣집 사모님에게 스폰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뒤로 저 순진한 얼굴에 위화감을 느끼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상대가 먼저 인사를 건넸으니 소은정도 고개를 끄덕였다.“준열 씨도 이번 작품 참여하는 거예요?”“네. 카메오긴 한데요... 전부터 친하
비록 스폰을 받았다는 사실이 실망스럽긴 했지만 굳이 유준열의 앞길을 막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도준호 대표도 이런 흑역사 하나 때문에 황금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리가 없고 말이다.유준열의 하얀 얼굴에 막연함이 스쳤다.“하지만... 회사 분위기도 묘하게 달라진 것 같아요. 다들 호영 선배만 신경 쓰고 전... 매니저도 바뀐데다 행사 스케줄도 몇 개나 취소됐다고요...”그제야 소은정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그럴 리가요?”이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하지만 초조한 유준열의 표정을 보아 하니 거짓말을 아닌 듯했다.깊은 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도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시고?”옆에 서 있는 유준열을 힐끗 바라보던 그녀가 스피커폰을 켰다.“도 대표님, 지금 뭐 하세요?”“뭐 하긴요. 손호영 씨 관련 미팅 중이에요. 이번 드라마 반응 나쁘지 않더라고요. 곧 대박 날 것 같은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그런데 유준열 씨 쪽은 어떻게 된 거예요?”손호영의 언급에 유준열의 표정이 점점 더 굳자 그녀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요즘 스케줄도 적어지고 매니저도 바뀌었다던데.”그녀의 질문에 유준열이 잔뜩 긴장한 듯 귀를 쫑긋 세웠다.“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대요. 준열이는 서바이벌 오디션 출신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나이도 있고 언제까지 격한 댄스음악만 할 순 없으니까 배우로 전향 중이고요. 실력파 배우로 이미지를 바꿀 생각인데... 너무 갑자기 바뀌면 대중들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일단 잠깐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좋은 감독님들 영화 있으면 특별 출연이나 카메오로 얼굴은 조금씩 비추고요. 연기 연습도 할겸.”도준호의 합리적인 설명에 소은정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매니저는 왜 바꾼 거예요?”“아, 그 매니저? 물어오는 건 싸구려 CF뿐인데다 갑질은 어찌나 심한지... 소문이 안 좋은 사람이었거든요. 새롭게 이미지를 바꾸기로 했으면 싹 다 바꾸는 게 낫죠.
“그러니까. 내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어우, 난 집 밖에도 못 나올 것 같은데. 그런데 저 여자는 뭐가 저렇게 당당한 걸까? 수치심 같은 것도 못 느끼나?”“뭐 합성이라는 소문도 있던데...”“그 말을 믿어? 이 바닥에 그 사진이 김하늘 본인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전에 파티에서 남자들이 그 사진 보면서 쑥덕대는 걸 내가 직접 들었다고. 나름 삭제한 것 같지만 이미 저장한 사진이야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몸매가 예술이네. 꼴리네 어쩌네 하면서 떠드는데... 어휴.”“그래도 김하늘 그 여자 운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소은정 대표가 절친에 은해 선배랑 연애까지... 선배가 아주 김하늘이라면 껌벅 죽는다잖아. 싸구려 여자 뭐가 좋다고...”“그러니까. 이 드라마 김하늘이 제작자인 거 알았면서 출연도 안 했을 거야. 괜히 나까지 더러워지는 거 같잖아.”......한편, 대화를 듣고 있던 소은정의 얼굴이 무겁게 일그러졌다. 아직도... 그 사진으로 쑥덕대는 사람들이 있다니...사건이 터진 뒤 절망에 잠겼었던 김하늘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아니지. 아까... 하늘이 옷자락을 본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건가?뭐 어찌 되었든 저 여자들이 추잡한 말을 계속 입에 담도록 내버려 둘 순 없었다.고개를 돌린 소은정의 시야에 새 향수 한 병이 들어왔다.한정판 향수? 주제에 비싼 건 알아가지고.소은정은 망설임없이 팔을 휘둘렀고 쨍그랑 소리와 함께 향수병이 산산조각 났다.짙은 향수 냄새가 순식간에 공기 중에 퍼지고 그 소리에 여자들도 대화를 멈추더니 그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이 향수가 얼마 짜리인 거 알아? 눈을 도대체 어디에 달고 다니는 거야!”일어섬과 동시에 고개를 돌린 그녀가 차갑게 굳은 표정의 소은정을 발견하고 흠칫 뒤로 물러섰다.다른 배우들도 다가오더니 역시나 소은정을 발견하고 몸을 움찔거렸다.“소... 소 대표님? 여긴 어떻게...”소은정은 여자들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이번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