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부드럽고 친절하던 전동하는 딴 사람으로 변한 듯 날카로운 분노를 번뜩였다.한 발 다가선 전동하가 차가운 시선으로 소찬식을 바라보았다.“누가 그런 말을 한 겁니까?”“사실이냐고 물었네!”소찬식 또한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 번 물었다.전동하가 고개를 숙였다. 온몸의 혈관들이 터질 듯 부풀어오를 정도로 몸에 잔뜩 힘을 주던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네,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버님께서도 말씀해 주세요. 누가 말한 겁니까.”질문을 하긴 했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전동하는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차오르는 분노가 쌓이고 쌓여 몸 전체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전동하의 대답에 소은정 역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저렇게까지 분노와 증오를 내뿜는 전동하의 모습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고 가족들과 관련된 일일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후폭풍이 두려웠다.전동하의 인정에 소찬식이 헛웃음을 지었다.“그래. 자네가 솔직하게 인정했으니 나도 말하지. 자네 삼촌 전기섭이 말해 준 거네. 나한테 그 말을 해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더군.”“전기섭”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이미 짐작을 했음에도 전동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가만히 안 둘 거야...단호하게 돌아선 전동하가 별장을 나서려던 그때, 소찬식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자네가 은정이를 구해 준 건 고맙게 생각하네. 우리 집안도 은인에게 박한 사람들이 아니니 자네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겠네. 하지만 우리 은정이와 사귀는 건 안 돼. 자네가 단 한 순간이라도 마이크의 아버지였다면 지금 내 마음 이해할 거라 믿네.”그래. 이렇게 하는 게 맞아.소찬식의 최후통첩에 전동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부드러운 옆라인이 지금만큼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곧 돌아와서 해명하죠.”마지막으로 깊은 눈으로 소은정을 바라본 전동하가 자리를 떴다.발걸음을 옮기는 전동하는 마치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걷는 듯한 수치심에 휩싸였다.어두웠던 시간
소은호와 한시연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AI 로봇은 실시간으로 식장에 들어온 사람들 중 하객이 아닌 낯선 이가 있는지 스캔이 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파이더맨 같은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 감쪽같이 출입했다는 건 거의 불가능. 게다가 소찬식 말고는 전기섭의 얼굴을 본 사람도 없다.아직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드레스도 벗지 못한 한시연의 정교한 얼굴 위에 초조함이 스쳤다.“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던 소은호가 고개를 저었다.“어차피 마이크가 사라진 지 3시간 정도밖에 안 됐어. 납치로 추정되는 협박 전화 같은 것도 없었고. 지금 이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멍하니 있던 소은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오빠, 일단 경찰에 신고는 하지 말아줘. 일단 마이크를 찾는 게 중요하니까 난 일단 동하 씨한테로 가볼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오빠가 나 대신 아빠한테 물어봐줘.”소은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여긴 나한테 맡기고 가.”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드레스 자락을 잡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떠나는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시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입을 벙긋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결국 말했다.“아버님 말만 들어보면 전동하 그 사람... 거의 사이코패스나 다름 없던데. 게다가 본인도 인정했잖아. 그런데 왜 아가씨는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 걸까?”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전동하는 누가 봐도 완벽한 남자였다. 특히 한시연은 타고난 듯한 부드러운 성격과 겸손함을 좋게 보았었다.하지만 이 세상에 정말 완벽한 사람이라는 게 존재할까?방금 전, 만약 소찬식이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전동하는 여전히 차분하게 대응했을 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전동하가 소름 끼치게 느껴지는 한시연이었다.아가씨, 저런 남자랑 만나는 거 정말 괜찮은 거 맞을까? 게다가 아버님이 저렇게까지 반대하시는데... 도대체 어쩌려고...한시
대충 메이크업도 지우고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이 본가로 향했다.집으로 들어가 보니 소찬식은 여전히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게다가 소은정은 돌아오지 않는 걸 보고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집사가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은해 도련님께서는 하늘 씨한테 가셨습니다. 지금 회장님 기분이 많이 언짢으세요.”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소은호가 한시연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왜 너희들뿐이야?”“왜요? 싫으세요? 그럼 갈까요?”망설임없이 한시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는 아들의 모습에 소찬식은 코웃음을 치다 풀어진 눈빛으로 한시연을 바라보았다.“아가, 너한테 화내는 거 아니다. 오늘 밤,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이렇게 좋은 날 내가 많이 미안해.”“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님. 그냥 약혼식일 뿐이고 저도 이제 이 집안 가족이잖아요. 무슨 일 생기면 함께 이겨내는 게 맞죠.”한시연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래. 너희들 결혼 선물로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섬들 중 하나를 줄 테니 아무거나 골라...”소찬식의 덤덤한 말에 한시연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소씨 일가가 재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나 싶어 살짝 당황스러웠다.아가씨도 섬 모으는 걸 좋아한다더니 아버님한테서 배운 건가?멍하니 서 있는 한시연의 모습에 소은호가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얼른 아빠한테 고맙다고 해야지.”“감사합니다. 아버님.”앞으로도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야 하나...한시연이 소찬식의 재력에 감탄하고 있을 무렵, 소찬식은 소은호를 노려보았다.“은정이는 왜 안 왔어?”“전동하 대표 만나러 갔습니다.”아들의 덤덤하지만 솔직한 대답에 소찬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뭐? 그 살인자한테 가는 걸 그냥 두고 봤다고? 네가 그러고도 오빠야!”지금 당장이라도 소은정에게 달려갈 것 같은 기세에 소은호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아빠, 3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죠. 그때 억지로 은정이를 말렸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잊
3월 중순이었지만 아직 날씨는 쌀쌀했다.게다가 밤이 되니 한기가 얇디얇은 드레스 차림의 소은정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다행히 차에 예비용으로 보관해 둔 양털 재킷이라도 있어도 다행이었다.급한대로 걸친 옷이었지만 드레스와도 어울리고 그녀의 가녀린 몸매를 더 부각시켜주었다.잠시 후, 빠르게 달려 호텔 앞에 도착한 소은정은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전기섭이 묵고 있는 17층에 도착했다.하지만 17층 호텔 복도에 1m마다 보디가드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모습에 소은정은 단호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이때 그녀와 가장 가까이 서 있던 경호원이 다가와 팔을 뻗었다.“이층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전 대표님한테 전하세요. 소은정이 만나고 싶어 한다고.”무슨 말인가 싶어 소은정을 내쫓으려던 경호원었지만 옷도 화려하고 포스도 남다른 모습이 차라리 대표님께 보고드리는 게 낫겠다 싶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이 소은정은 호텔을 둘러보았다.상황을 보아하니 17층 전체를 렌트한 듯 싶었다.얼마나 적이 많으면 이렇게까지 한대...잠시 후, 경호원이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소은정 대표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드디어 전기섭의 방 앞에 도착했다.경호원이 노크하고 바로 누군가 문을 열었다.방금 전 샤워를 마쳤는지 전기섭은 가운 차림에 머리도 젖어있고 얼굴도 살짝 달아오른 모습이었다.곧 4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완벽한 피부와 헐렁한 가운 사이로 보이는 쭉 뻗은 쇄골과 완벽한 복근...다른 남자였다면 감탄했을지 모르지만 왠지 이 순간 소은정은 전기섭이 더 역겹게 느껴질 뿐이었다.경호원이 눈치껏 자리를 뜨고 전기섭이 미소를 지었다.“아, 죄송합니다. 샤워 중이라 차림이 변변치 않네요.”“아니에요. 제가 쉬시는 데 방해한 건데 제가 더 죄송하죠.”소은정은 억지 미소라도 짓기 위해 입꼬리를 올렸다.비록 호텔방으로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복도에 서 있는 경호원
눈썹을 치켜세운 소은정은 침묵을 지켰다.당연하지. 아무 희생없이 어디서 먹튀를 하려고.전기섭, 당신한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잠시 후, 꼰 다리 위에 손을 포개 올려놓은 전기섭이 뜬금없이 물었다.“동하가 소은정 대표님을 좋아한다 들었는데. 그 마음 받아주셨습니까?”“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죠?”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냥 단순한 호기심이랄까요. 미국에 있었지만 소은정 대표님의 미모와 뛰어난 능력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동하도 평소에는 나름 번듯한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잖아요. 그 모습에 대표님이 속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서요.”흥미롭다는 전기섭의 표정에 고개를 살짝 숙인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대표님, 제가 연인이라 부르는 사람은 아주 많답니다. 그 중에 90%는 배우죠.”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과 스캔들이 났었던 그녀다.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와 전동하의 관계가 밝혀진다면 전기섭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일단은 숨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소은정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전기섭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얼굴도 몸매도 나쁘지 않고... 고고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사생활은 문란한 여자였나?전동하... 너도 여자 보는 눈은 꽝이구나.순간 전기섭의 미소가 더 환해졌다.“나름 그쪽으로는 고수셨군요. 동하한테 안 넘어가신 걸 보면.”“저도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오늘 식장에 온 하객들은 전부 저희 CCTV 영상 범위 안에서 움직였어요. 하지만 대표님과 전동하 대표의 아들인 마이크만은 CCTV는 물론이고 현장에 도착한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죠.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전기섭의 표정에서 뭔가라도 잡아내기 위해 소은정이 눈에 힘을 주었다.하지만 전기섭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네? 마이크도 갔었나요? 올 때도 갈 때도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마이크는 저도 못 본 것 같은데요.”순간 소은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거짓말... 눈은 재밌다는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 입은 놀라는 척하는 걸 보면 분명
소은정의 말에 전기섭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동하 아들한테 왜 그렇게까지 신경 쓰시는 겁니까?”“그건 내 맘입니다. 그 이유까지 설명해야 하나요?”소은정이 고고한 눈빛으로 전동하를 내려다보고 그 차가운 표정을 바라보던 전기섭이 피식 웃었다.재밌네... 귀하게 자란 부잣집 아가씨다워. 저렇게 당당한 걸 보니 전동하와는 아무 사이가 아닌 게 분명하고... 마이크 그 자식은 워낙 아양을 잘 떠니까 신경이 쓰일 수도... 그런데 그런 애송이한테 푹 빠질 정도면 듣던 것처럼 그렇게 똑똑한 건 아닌가 봐?전동하가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리자 가운이 살짝 풀리며 가슴 근육이 더 많이 드러났다.나름 매혹적인 눈빛으로 소은정을 훑어보던 전기섭이 말했다.“제가 괜한 소리를 했네요. 도움이 필요하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아니요.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윽, 느끼해.소은정이 단호하게 고개를 돌렸다.“잠깐만요. 제 방에 들어온 이상 마음대로 나가실 수 없을 겁니다.”“그게 무슨 소리죠?”“제게 더 좋은 제안이 있습니다. 더 큰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제안이요.”전기섭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뭔데요?”벌떡 일어난 전기섭이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저와 결혼하신다면 전인그룹 전체가 은정씨께 되는 겁니다. 이 작은 대한민국을 벗어나 미국에서도 마음껏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뭐야? 농담하는 건 같지 않고 무슨 꿍꿍이지.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자 전기섭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아시겠지만 전 저희 가문 후계자입니다. 이제 곧 전인그룹 전체가 제 게 된다는 뜻이죠. 미국 재계는 물론이고 정계까지 진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죠.”“지금 뭐 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전 그쪽한테 관심없는데요?”소은정이 헛웃음을 터트렸다.“물론 그러시겠죠. 하지만 이건 정략결혼 아닙니까? 결혼이라는 법적 관계로 이어진 또 다른 형태의 비즈니스죠. 결혼 뒤에는 서로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수많은 여자들이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무시당한 건 처음이라 전기섭은 오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이를 꽉 깨문 전기섭이 이를 악물더니 차갑게 웃었다.“그래요? 조심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어디 한 번 볼까요...”전기섭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소은정이 차갑게 그 손을 쳐냈다.매서운 눈초리로 전기섭을 노려보던 소은정이 그의 따귀를 날리려던 그때...나름 호신술 같은 걸 배웠는지 전기섭 역시 그녀의 손을 쳐내더니 바로 그녀의 왼쪽 어깨를 제압하려 했다.하지만 소은정이 살짝 몸을 비틀면서 허탕을 친 전기섭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바로 다시 그녀에게로 덮쳐들었다.하지만 소은정의 손목이 잡히려던 순간, 그녀가 또다시 민첩하게 몸을 피하고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전기섭의 정강이를 거세게 걷어찼다.몰아치는 고통에 전기섭이 테이블 위로 넘어지고 화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소은정은 전기섭이 넘어진 틈을 타 업어치기라도 하기 위해 앞으로 다가갔지만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뭐야? 경호원들이 소리를 듣고 쳐들어 오려는 건가?테이블 모서리에 가슴을 부딪히고 화병 조각에 머리까지 긁힌 전기섭은 비명 소리를 지를 기운마저 나지 않았다.“소은정 씨, 내가 당신을 과소평가 했나 보군요. 두고 봐요...”하지만 그가 말을 마치기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빠르게 전기섭 쪽으로 살짝 몸을 비틀었다.경호원들이 들어온 거라면 전기섭을 인질로 잡아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하지만 안으로 들어온건 경호원이 아니라 전동하였다.눈도 벌겋게 충혈되고 얼굴이 일그러진 전동하의 깔끔하던 셔츠가 거칠게 흐트러져 있었다.방안에 펼쳐진 광경에 전동하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저 자식이... 무슨 짓이라도 한 겁니까?”“아니요. 지금 해결 중이에요.”소은정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전동하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 조금이나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전동하의 등장에 전기섭 또한 당황하기 시작했다.“하, 잡종 새
깜짝 놀란 소은정이 움찔했지만 전동하의 목소리는 아닌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한편, 스위트룸.전동하는 전기섭을 바닥에 제압한 채, 한손으로는 그의 멱살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의 얼굴을 세게 내리쳤다.몇 번의 강타가 이어지고 전기섭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로 되어 버렸다.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내리고 전기섭은 살려달라는 애원도, 네까짓 게 감히 날 때리냐는 욕설도 내뱉지 못했다.거침없이 내리치는 주먹에 전기섭이 거의 의식을 잃어갈 때쯤에야 전동하는 그의 멱살을 풀어주었다.바로 전기섭의 옆에 쭈그리고 앉은 전동하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내 아들 어디에 숨겼어?”지옥에서 도망친 듯한 악귀와도 같은 무시무시한 목소리였다.죽은 듯 꼼짝도 하지 않던 전기섭이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비록 겨우 숨만 붙어있는 지경이었지만 인질이 있는 이상 승산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미친 사람처럼 웃는 삼촌을 전기섭은 조용히 내려다 보았다.잔뜩 부은 눈을 천천히 뜬 전기섭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누가 보면 그 자식이 정말 네 아들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 설령 그 아이가 전씨 성을 따른다 해도 너처럼 영원히 우리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할 거야. 큭큭...”껄껄 웃는 전기섭의 피 섞인 침이 그대로 흘러내렸다.이때 확 다가선 전동하가 매서운 시선으로 다시 전기섭을 노려보았다.“그깟 가문 돌아오라고 애원해도 안 돌아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마이크를 데리고 집을 떠난 건 내 마지막 타협이었어. 다들 잘 살 수 있었잖아. 그런데 또 이렇게 약속을 어겨?”전동하의 눈동자에 핏빛 살기가 서렸다.“잘 살아?”전동하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운영하고 있는 ZH 투자의 규모가 우리 전인그룹을 넘어서고 있어. 다들 네가 떠난 게 아쉽다는 것처럼 말하더라? 내가 네 것이었던 자리를 빼앗은 것처럼? 너 따위가 감히...”죽일 듯 전동하를 노려보는 전기섭의 눈에는 질투로 가득했다.“마이크 그 잡종을 데리고 한국으로 와서 소은정에게 접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