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란 소은정이 움찔했지만 전동하의 목소리는 아닌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한편, 스위트룸.전동하는 전기섭을 바닥에 제압한 채, 한손으로는 그의 멱살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의 얼굴을 세게 내리쳤다.몇 번의 강타가 이어지고 전기섭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로 되어 버렸다.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내리고 전기섭은 살려달라는 애원도, 네까짓 게 감히 날 때리냐는 욕설도 내뱉지 못했다.거침없이 내리치는 주먹에 전기섭이 거의 의식을 잃어갈 때쯤에야 전동하는 그의 멱살을 풀어주었다.바로 전기섭의 옆에 쭈그리고 앉은 전동하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내 아들 어디에 숨겼어?”지옥에서 도망친 듯한 악귀와도 같은 무시무시한 목소리였다.죽은 듯 꼼짝도 하지 않던 전기섭이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비록 겨우 숨만 붙어있는 지경이었지만 인질이 있는 이상 승산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미친 사람처럼 웃는 삼촌을 전기섭은 조용히 내려다 보았다.잔뜩 부은 눈을 천천히 뜬 전기섭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누가 보면 그 자식이 정말 네 아들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 설령 그 아이가 전씨 성을 따른다 해도 너처럼 영원히 우리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할 거야. 큭큭...”껄껄 웃는 전기섭의 피 섞인 침이 그대로 흘러내렸다.이때 확 다가선 전동하가 매서운 시선으로 다시 전기섭을 노려보았다.“그깟 가문 돌아오라고 애원해도 안 돌아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마이크를 데리고 집을 떠난 건 내 마지막 타협이었어. 다들 잘 살 수 있었잖아. 그런데 또 이렇게 약속을 어겨?”전동하의 눈동자에 핏빛 살기가 서렸다.“잘 살아?”전동하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운영하고 있는 ZH 투자의 규모가 우리 전인그룹을 넘어서고 있어. 다들 네가 떠난 게 아쉽다는 것처럼 말하더라? 내가 네 것이었던 자리를 빼앗은 것처럼? 너 따위가 감히...”죽일 듯 전동하를 노려보는 전기섭의 눈에는 질투로 가득했다.“마이크 그 잡종을 데리고 한국으로 와서 소은정에게 접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동하가 전광석화의 속도로 그의 오른쪽 얼굴을 강타했다.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전동하가 차가운 얼굴로 일어나더니 잔뜩 찡그린 얼굴로 손을 털어냈다.또 한 방 맞은 전기섭 역시 맥없이 축 늘어져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은정 씨에 대해 함부로 말해! 전기섭, 네가 어떤 인간인지는 내가 아주 잘 알아. 내 아들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그땐 정말 죽여버릴 거니까 알아서 해.”단호하게 돌아서 방문을 연 전동하가 소은정과 시선을 마주쳤다.하지만 전동하는 곧 고개를 돌려 경호원들에게 말했다.“끌고 나가.”마이크를 찾기 전까진...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괴롭혀 주겠어.고개를 끄덕인 경호원이 시신처럼 축 늘어진 전기섭을 끌고 나왔다.이미 완벽하게 제압당한 전기섭의 경호원들은 반항 한 번 못하고 주인이 끌려나가는 걸 멀뚱멀뚱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소은정의 곁으로 다가간 전동하가 드디어 익숙한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만 가죠?”소은정의 코트 밑자락 아래로 드레스가 살짝 보였다.식장에서 옷도 못 갈아입고 바로 나왔나 보네...하지만 다시 고개를 든 소은정의 얼굴은 차갑기만 했다.“동하 씨, 당신에 과거에 대한 일 나한테 평생 숨길 셈이었죠?”때가 되면? 그 때가 언제인데? 가능만 하다면 평생 비밀로 했을 거야.방금 전, 복도에서 잠깐씩 흘러나오는 목소리와 비명소리를 들으며 소은정은 왠지 모르게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소은정의 맑은 눈동자가 전동하의 얼굴 구석구석을 스쳤다.처음 만났을 때도 전동하는 이런 모습이었다. 단정하고 친절하고 항상 그녀만 바라볼 것만 같은 그런 사람.오늘 그의 어두운 면을 확인한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그녀가 지금까지 봐왔던 전동하가 진짜 그의 모습이 맞긴 한 걸까? 연기로 만들어낸 모습일까? 아마 평생 그의 어두운 과거와 비밀에 닿을 수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바닥끝까지 가라앉았다.“마이크를 찾는 건 저
호텔을 나서고 뒷좌석 문을 거칠게 연 전동하가 소은정을 안으로 밀어넣더니 바로 그녀의 옆에 앉았다.깜짝 놀란 소은정이 다급하게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갑작스러운 변화에 소은정이 당황하던 그때 전동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출발하죠.”차량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전동하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잠시 후, 두 사람 모두 감정을 추스르고 소은정이 살짝 손을 빼내려 했지만 전동하가 다시 힘을 꽉 주었다.고개를 돌린 전동하의 부드러운 눈동자에는 억울함과 초조함으로 가득했다.“은정 씨, 뭐가 궁금해요? 내가 다 알려줄게요. 네?”“아니요. 이젠 궁금하지 않아요.”어쩌면 전기섭이 이야기에 뼈와 살을 붙여 더 심각하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한다 해도 이 모든 사건에 전동하가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그녀를 만나기 전 20여 년의 시간에 대한 이해가 백지장인 상태에서 그녀를 향한 미소만 바라보고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고개를 푹 떨군 전동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헤어질 마음이 들었다 해도 변명할 기회 한 번쯤은 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전기섭 그 자식이 한 말 사실이 아니에요!”전동하가 먼저 전기섭에 대해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소은정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방금 전 충동적이긴 했지만 내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일단 마이크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해.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소은정이 안심하라는 듯 살짝 웃어 보였다.“그래요. 어쨌든 일단 마이크부터 찾아요. 그때 변명이든 해명이든 할 기회를 줄 테니까요.”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살짝 풀어주었다.빨갛게 손자국이 남은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던 전동하가 말했다.“은정 씨, 난 이렇게 끝낼 수 없어요. 내 과거에 대해 전부 듣고나서 은정 씨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땐 기꺼이 떠날게요.”입에 올리기조차 싶지 않을 정도로 엉망인 과거에 전동하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헉, 내가 언제 잠들었지?그녀를 향해 싱긋 미소 짓던 전동하가 차문을 닫고 운전석에 탔다.“집에 데려다줄게요. 마이크는... 아마 곧 찾을 수 있을 거예요.”소은정은 별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마이크가 걱정되긴 했지만 일단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잠시 후,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소은정은 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에 탔다.비몽사몽한 상태로 욕조에 몸을 담그니 조금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참, 어제 박수혁도 왔었지? 설마... 이 일에 박수혁도 연루되어 있는 걸까? 전화라도 해봐야겠어.소은정이 욕조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거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누구지?소은정이 잔뜩 경계하던 그때, 전동하의 목소리가 욕실로 흘러들었다.“은정 씨, 내 목소리 들려요?”어? 동하 씨? 아직도 안 갔나?아까는 너무 졸려 뒤에 사람이 들어오는지도 몰랐던 소은정이었다.“네.”소은정의 대답에 전동하가 말을 이어갔다.“살다 보니까 정말 잊고 싶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도 생기더라고요. 전기섭이 한국에 온 건... 아마 내가 영원히 고통속에서 살아가길 바랐기 때문이었겠죠. 그런 의미에서 전기섭은 완벽하게 성공했어요.”부드럽던 전동하의 목소리가 조금 쉬어있었다.밤샘으로 피곤함 때문인지 끔찍한 과거에 대한 회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이때 전동하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은정 씨한테 말하지 않은 건... 은정 씨가 겁 먹고 도망갈까 봐 무서웠어요. 언젠가 은정 씨가 정말 나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 말해 주려고 했어요. 그럼 적어도 바로 날 떠나진 않을 테니까.”전동하는 솔직하게 자신의 사심을 밝혔다.사랑으로 그녀를 묶어두는 게 전동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전동하가 거실 벽에 몸을 기댔다.굳이 이때 과거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단순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은정이 충격을 먹거나 그를 혐오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그 눈빛을 바라보는 건 아마...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 테니까.“엄마는 처음에 아버지가 유부남인 줄
전동하의 입가에 슬픈 미소가 걸렸다.끼익.문이 열리는 소리에 전동하가 고개를 들었다.머리가 잔뜩 젖은 채 목욕 가운을 걸치고 있는 소은정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조용히 그를 바라보는 소은정의 눈동자에는 안쓰러움으로 가득했다.왜 굳이 과거를 알고 싶다고 말했을까...소은정은 뒤늦게 죄책감이 밀려왔다.나 때문에... 그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사뿐사뿐 전동하의 앞까지 걸어간 소은정이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만지작거렸다.“미안해요. 정말 잊고 싶은 기억이었을 텐데... 나 때문에 괜히.”진실은 본디 잔인한 법이야. 하지만 이렇게 불행했을 것이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어.붉은 눈시울로 소은정을 바라보던 전동하가 그녀를 와락 품에 끌어안았다.규칙적으로 들리는 심장소리마저 슬프게 느껴지고 소은정의 눈물이 뺨을 적셨다.“어떻게 이렇게 잘 자랐어요?”물질적으로 유복한 집안에서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사생아가 엇나가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 주위에는 아이가 타락하길 바라는 못된 어른들로 가득할 테니까.하지만 전동하는 탈선하지도 가문의 권세에 의지하지도 않았다.힘들지만 자기 힘으로 모든 걸 이뤄냈고 마이크에게도 누구보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있다.얼마나 강하면 이렇게 자랄 수 있을까?소은정의 어깨에 머리를 묻은 전동하가 소은정의 말을 되새겼다.그러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더라 기억도 나지 않네...“어쩌면 당신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 동안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모르겠어요.”소은정의 존재는 그의 모든 인내와 노력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이 세상의 더러운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이었으니까.벌레들이 밝은 빛에 꼬이 듯 전동하도 그런 고결한 빛에 이끌려 소은정에게 다가갔을지도 모른다.살짝 훌쩍이던 소은정이 전동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럼 이렇게 내 옆에 있어요. 영원히.”아마 전동하가 지금까지 보여준 친절함은 전부 가식이었다고 말했어도 소은정은 기꺼이 용서했을 것이다.그 정도 가면 하나
소은정의 말에 헤어에센스를 발라주던 전동하의 손이 멈칫했다.그녀의 하얀 목선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고 있는 윤기가 흐르는 까만 머리카락의 향기에 마음이 한 번 떨렸고 봄바람처럼 다가와 샘물처럼 그의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그녀의 목소리에 두 번 가슴이 설레었다.“네 잘못이 아니야.”이렇게 말해 준 건 소은정이 처음이었다.분명 엄마가 실수로 떨어진 걸 봤으면서 직원은 전동하가 밀어버렸다고 증언했고 아버지도 분명 자기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넘어진 거였으면서 전동하가 밀었다는 전기섭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그렇게 전동하는 존재 자체가 잘못인, 영원히 용서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어쩌면 갑작스러운 비극에 다들 미워할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사고라는 건 모두의 잘못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차라리 모든 걸 전동하에게 떠넘긴다면 알량한 죄책감을 줄일 수 있을 테니까.소은정의 말에 전동하는 과거의 끔찍했던 일들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다.뒤에서 소은정을 끌어안은 전동하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은정 씨, 내가 정말 많이 좋아해요...”돌아앉은 소은정 역시 그를 안아주었다.“네. 나도 알아요.”잠시 후, 대충 감정을 추스르고 나니 소은정은 바로 허기가 느껴졌다.주방에서 식빵을 두 장 꺼낸 소은정이 그 중 하나를 전동하에게 건넸다.“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을 거 아니에요.”싱긋 웃던 전동하가 일어서더니 빵을 빼앗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내가 요리해 줄게요.”소은정이 흠칫하는 사이에 전동하는 이미 소매를 걷고 주방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식탁 의자에 앉아 분주히 움직이는 전동하를 바라보던 소은정의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가 걸렸다.“요리하는 남자는 참 멋있단 말이야. 나도 요리 잘했으면 좋겠다.”고개를 돌려 그녀를 향해 웃던 전동하가 물었다.“뭐 더 궁금한 건 없어요?”소은정의 응원을 받으니 이제야 과거를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생긴 전동하였다.잠깐 망설이던 그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
”그 집안에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태어날 때부터 집안의 자랑이자 초점이었던 전기섭보다 명분없는 전동하가 한 거라고 다들 믿고 싶었을 것이다.말문이 막힌 소은정이 이를 악물었다.전기섭, 절대 가만히 안 놔둘 거야.“그렇게 난 회사에서도 쫓겨났고 아버지도 절 견제하기 시작했어요. 회사, 집안의 결정권은 아버지 동생이었던 전기섭에게 넘어갔죠. 그때 마이크의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고 마지막 순간 아내와 아들을 부탁한다는 말만 남긴 채 죽어버렸어요. 그러다 이 사고 또한 전기섭의 계획이었다는 걸 듣고 바로 제수씨와 결혼했었죠. 집안에서 아무 발언권도 없는 나와 결혼한다면 적어도 목숨은 건질 수 있을 테니까.”잠깐 멈칫하던 전동하가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았다.전동하는 평생 다른 사람의 질타와 혐오속에서 살아왔다.그 덕분에 이유 없는 증오에 이미 익숙해졌지만 소은정만큼은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행히 소은정은 딱히 개의치 않는 눈치라 안심이었지만.“재벌가에서는 가장 중요하는 게 체면이죠. 마이크에게 전씨 성을 물려주는 걸 조건으로 난 가족들과 가문을 떠나기로 했어요. 그 추잡한 스캔들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을 테니 가문 입장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는 거래였죠. 그리고... 아이 엄마가 죽던 날, 마이크는 은정 씨를 만난 거예요...”소은정은 마이크의 생명을 구했고 전동하의 인생을 구원했다.운명처럼 두 부자의 인생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며 소은정의 기분도 묘해졌다.그날이 아니었다면 전동하와 협력할 기회도 없었을 테고 전동하와 만나지도 못했겠지...“그런데 왜 굳이 마이크한테 전씨 성을 물려주려고 했던 거예요? 집에서 나온 이상 그런 건 별로 안 중요한 거 아닌가요?”“아니요. 성이라도 물려받아야 그 집안 사람들에게 마이크도 이 집안 아이라고, 함부로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전동하의 설명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게다가 마이크는 내 동생의 유일한 아이예
살짝 입을 삐죽거리던 소은정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동하 씨 말이 맞아요.”가스레인지 불을 켜던 전동하가 말을 이어갔다.“며칠 전에 왔을 때 냉장고가 너무 비어있길래 좀 사서 채워넣었어요. 그런데 은정 씨도 참 대단하네요. 그 동안 냉장고 한 번도 안 열어봤어요?”“워낙 바쁘니까... 딱히 냉장고에서 뭐 꺼내 먹을 일도 없고요.”소은정이 코를 만지며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게다가 소은정은 요리 실력도 별로니 돈에 시간까지 쓰고 맛없는 걸 먹느니 차라리 밖에서 맛있는 걸 먹고 오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외식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30분도 채 되지 않아 식탁 위에 된장찌개, 계란말이 등 정갈한 집밥이 차려졌다.음식 냄새에 소은정의 배가 꼬르륵 소리를 냈다.손가락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생겨서는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한식을 뚝딱 차려내다니.보면 볼 수록 의외인 면이 많은 남자다 싶었다.수저를 건넨 전동하가 말했다.“먹어요. 일단 먹고 푹 자요.”“동하 씨는요? 잠깐 눈 좀 붙여야 하지 않아요?”그러고 보니까 난 잠깐 차에서 졸기라도 했지. 동하 씨는 한숨도 못 잤잖아...“지금 같이 자자는 뜻이에요?”전동하가 눈빛을 반짝이자 소은정은 그를 흘겨보고는 바로 식사에 집중했다.따뜻한 된장찌개가 허한 속을 따뜻하게 적셔주었다.맛있다... 뭔가 따뜻한 맛이야...맛있게 먹어주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난 조금 있다가 자려고요. 이제 곧 마이크 소식도 들려올 거예요. 내가 직접 가야죠.”마이크가 어디 있는지 곧 알아낼 수 있다고 거의 확신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마이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거예요?”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가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곧 알게 될 거예요.”전기섭 그 자식이 머리를 써봤자지... 입 꾹 닫고 있는다고 내가 못 찾을 줄 안다면 오산이야...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 소은정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얼른 찾아야 할 텐데. 그 어린 게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