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하연은 온몸의 통증에 깨어났다.그제야 그녀는 로맨스 소설에서 묘사된 남녀가 관계를 가진 후, 여주인공이 ‘차에 치인 것 같은 고통’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눈을 살짝 뜨니, 그녀는 상혁의 품에 안겨 있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상혁이 평온하게 자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평소의 차가운 표정이 사라지고, 온화함만이 남아 있었다.하연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렇게 만족스럽고 안락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마치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은 것 같았다.그녀는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상혁의 오뚝한 콧대를 톡톡 건드렸다. 그러나 그 순간, 상혁의 손이 빠르게 하연의 손을 잡아챘고, 눈을 뜨며 말했다.“몰래 날 훔쳐보고 있었어?”하연은 놀라며 물었다.“오빠, 벌써 깨어 있었군요.”상혁은 그녀를 더 꽉 끌어안으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가 조금만 움직여도 난 바로 깨어나.”“설날인데, 우리 할아버지께 일찍 세배하러 가야죠.”하연은 일깨워줬다. 상혁은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꼬집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넌 일어날 수 있겠어?”하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제의 상황은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상혁이 한없이 강렬했고, 그와의 밤은 새벽 네다섯 시까지 이어졌으며, 날이 밝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지금 하연은 몸이 쑤시지 않은 곳이 없었다.“오빠 진짜 너무해요!”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두 시간 더 자고 나서 일어나.”그는 하연의 볼에 입을 맞췄다.“왜요?”상혁은 대답 대신 행동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부상혁 씨! 지금 아침이라고요!”이불 속에서 서로에게 푹 빠진 연인은 쉽게 헤어날 수 없었다....한편, B시 시내의 100여 개의 클럽이 갑작스러운 단속을 맞이했다.단속 대상은 주류, 위생, 보안, 그리고 불법 거래 여부였다.하연과 상혁이 집으로 가는 길에 그들의 차가 ‘NIGHT’라는 B시 최대 클럽 앞을 지나쳤다. 그곳에는 네댓 대의 경찰차가 주차되어 있었다.나
하연이 집에 도착했을 때, 하경과 하성은 이미 집에 없었다. 최동신은 두 사람이 일찍 나갔다고 설명했다. 하성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지만, 하경처럼 집에만 있는 사람이 밖으로 나간 것은 의외였다.하연이 웃으며 말했다.“뭔가 이야깃거리가 생길 것 같네요.”하민은 상석에 앉아 직접 차를 우려냈다. 그의 긴 손가락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앞으로 자주 볼 것 같군.”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마셨다.“형님이 우려내는 차는 정말 특별하네요. 자주 와서 얻어 마셔야겠어요.”두 사람의 대화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것이었지만, 서로 무언가를 이미 말하고 있었다.그때, 가정부가 문을 두드렸다.“밖에 한 대의 차가 들어오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연 아가씨의 친구라고 합니다.”“제 친구요?” 하연은 별생각 없이 나가며 말했다.“들여보내 주세요.”하연은 친구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원으로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낯선 번호판이었다.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나운석이었다.며칠 사이 그는 한층 성숙해진 듯 보였고, 하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하연 씨.”“여긴 웬일이에요? 선유의 일은 다 해결됐어요?”“저는 방금 F국에서 돌아왔어요. 일도 잘 풀리고 있고요. 그런데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부상혁 대표님께서 여기 계신다고 해서 온 거예요.”운석의 말투는 가벼웠고,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그늘이 없었다.그는 아크로리버파크에 먼저 들렀다가, 상혁과 하연이 함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이곳에 온 것이다.“상혁 오빠는 왜 찾는 거예요?” 하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모르고 계셨어요? HL산업은행의 위기가 해결됐어요. 다 부상혁 대표님 덕분이에요.”하연이 놀라며 기뻐했다.“정말이에요? 그럼 이제 하 은행장님도 이씨 가문의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겠네요. 이병규와 확실히 대적할 수 있겠어요.”운석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들어가도 될까요?” “물론이죠.”하연은 상
나운석이 떠난 후, 상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자신 뒤에 하연이 다가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오빠가 나운석을 도왔다는 걸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상혁은 창문에 비친 다소 어색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별거 아니야.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하연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는 상혁이 한서준과의 관계에서 질투심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운석은 한서준의 친구였다. 상혁이 나운석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예상 밖이었다.“고마워요, 부상혁 씨.” 하연은 상혁이 자신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음을 깨달았다.상혁의 입에서 가벼운 한숨이 나왔고, 하연을 살짝 안으며 말했다. “너와 나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어. 우리의 인연은 그 이상이니까.”하연은 그의 목에 팔을 걸며 웃음을 지었다. “너무 좋아요. 그럼 부상혁 씨가 나한테 시집에 오는 게 어때요?”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그건 최 사장님이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에 달렸겠지.”하연은 그의 품에서 웃음을 터뜨리며 온몸을 떨었다. 바로 그때, 문가에서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렸고, 이 소리의 주인은 최하민이었다.하연은 깜짝 놀라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약간 어색하게 뒤로 물러섰다. “하민 오빠.”하민은 별다른 반응 없이 미소를 띠며 문가에 기대섰다. 그는 상혁을 향해 말했다. “방금 들은 소식인데, B시의 100여 개 클럽이 기습 단속을 받았고, 그중 35개에서 위반 사항이 적발됐대. 그중 가장 큰 클럽은 ‘NIGHT’이라고 하는데, 어제 그 남희 씨가 운영하는 곳이라더라.”상혁은 양손을 뒤로 모으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형님의 소식은 참 빠르군요. 반나절도 안 됐는데 벌써 다 아셨네요.”하민은 그 모든 것이 상혁의 계획임을 깨달았고, 특별히 반대하지는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나서면, 반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상
하연의 탐색하는 듯한 질문에, 하민은 펜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왜, 네 남자 친구를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하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도 확실히 상혁 오빠가 걱정되긴 해요. 부남준은 막 B시에 왔고, 또 WA 그룹의 사업을 손에 넣었어요. 게다가 지금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제일 큰 클럽의 사장과 거래했잖아요. 사실은 부남준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걸 생각하지 못했잖아요. 부남준의 진짜 실력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클지도 몰라요.” 하민은 이 질문에 쉽게 확답을 내리지 않았다.“지금 당장은 알 수 없지. 하지만 상혁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게 좋을 것 같아.”하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오빠, 사실 부남준이 절 찾아왔어요.”하민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그 사람이 왜 널 찾아왔지?”“부남준은 제가 WA 그룹 사업의 총책임자인 서태진 대표의 비리 증거를 찾아내길 원했어요.”“넌 뭐라고 대답했지?”“겉으로는 승낙했어요.”“상혁에게 말했니?”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아직은 말하지 않았어요. 부남준이 경계심을 갖게 될까 봐요. 당분간은 비밀로 하고 싶어요.”그 말을 듣자마자, 하민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네가 부남준과 협력하려고 하는구나.”하연이 급하게 대답했다.“상혁 오빠를 도와서 부남준을 무너뜨릴 기회를 잡으려고 해요.”하연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상혁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그가 겪은 많은 고통과 어려움에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정말로 상혁을 돕고 싶었다.하민은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조용히 대답했다.“난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반대야. 부씨 가문에 아직 시집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일찍 부씨 가문의 내분에 휘말리는 건 좋지 않은 일이야. 게다가 부남준이 직접 그런 요구를 했다는 건, 그가 확실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야. 만약 일이
태훈은 이미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잠시 주저했다. “제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 사장님. 부 대표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하연은 태훈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애가 돌아왔으니, 분명히 증거를 없애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사람을 붙여서 한서준이 눈치채지 못하게 해.”한서준의 이름이 언급되자, 정태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 “지금 한서준은 스스로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무슨 일이야?” 하연이 물었다.“어제 ‘NIGHT’에서 불법 거래가 적발됐는데, HT그룹도 한몫했답니다.”하연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한서준이 비록 방탕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HT그룹까지 그런 일에 연루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그가 적어도 가문의 기업을 걸고 도박할 사람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태훈은 덧붙였다. “막 부임한 검찰청 검사장님이 강력하게 수사하고 있으니, 금방 증거를 잡아낼 겁니다. 지금 한서준은 상당히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을 겁니다.”...같은 시각, 시립병원.간호사가 병실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재킷을 입은 채 병실로 들어와 바닥에 있던 짐을 들었다. “차는 준비됐습니다, 한 검사장님.”40대 중반의 남자는 아직도 숱이 많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웃지 않을 때는 매우 엄숙한 표정이었다. 이 남자는 지팡이에 의지하며 일어섰고,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이 그를 부축했다. “B시에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병원에서 나가면, 한 검사장님도 몸을 잘 챙기셔야 합니다.”이 말에는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한창명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자기 옆에 있는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부 대표님이 준 정보가 아주 정확했군요. 아무래도 스승님께서 제대로 본 모양이에요. 결국, 나도 부 대표님의 손에 놀아난 셈이니까요.” 상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한 검사장님은 이번 사건을 통해 B시에서 이름을 떨치셨
HL산업은행의 위기는 설 연휴가 끝난 8일에야 해소되었고, 같은 날 하선유의 퇴원이 이루어졌다. 경찰서에서 사건 처리를 할 때, 하연은 선유와 동행했다.이 사건을 담당하는 사람은 나호중이었는데, 이 사건은 두 명문가 집안이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호중이 직접 처리해야 했다.“현재 증거만으로는 이방규 씨가 성폭행 미수라는 걸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선유 씨가 이방규 씨를 다치게 한 것이 과잉 방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하선유 씨, 중요한 증거를 더 찾을 수 있나요?”선유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꽉 쥐었다.“그 사람이 저를 만졌어요. 제 옷을 찢으려고 했고, 그래서 전 맥주병을 잡았을 뿐이에요. 그 사람이 그렇게 심각하게 다칠 줄은 몰랐어요.”선유의 목소리가 떨리자, 하연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나 서장님, 이방규의 상해진단서를 제출했는데, 이방규의 상처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증거만으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나요?”나호중은 양쪽의 요구가 엇갈리고 있음을 설명했다.“하선유 씨는 강간미수로 이방규를 기소하고 싶어 하고, 반대로 이방규 씨는 하선유 씨를 상해죄로 고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 법정에서 판가름 나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사무실을 나오면서 하연은 선유를 위로했다.“그래도 HL산업은행의 위기가 해소되었으니, 시간이 생겼잖아. 이방규가 소송을 하겠다면, 우리도 맞서 싸우면 돼.”선유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하연의 말에 살짝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네, 다행히도 운석 오빠가 있으니까요.”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아버지가 나운석에 대한 생각이 바꾸셨나 보네?”선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저를 위해 그렇게 큰 위험을 감수하다니, 아버지가 운석 오빠를 칭찬하셨어요. 좋은 인재라고 말씀하시면서요.”경찰서를 떠난 하연은 DS그룹으로 향했다. 오늘은 회사의 첫 업무일이어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레스토랑은 사전에 정성 들여 예약된 곳으로, 바다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 흐릿하게 보이는 지평선을 감상할 수 있었다.“오빠 설날도 내내 바빠서 나랑 제대로 보지도 못했잖아요. 이제야 나를 찾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네요.” 하연은 상혁이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약간 비꼬는 어투로 말했다.상혁은 눈을 들어 그녀를 힐끗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맞아, 할 말이 있어. 왕진의 딸을 찾았어.”“지금 어디에 있어요?” 하연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왕진 어머니의 고향에 있어. 내 사람들이 이미 찾으러 갔고, 아무 문제 없으면 내일이나 모레쯤 B시로 데려올 거야.”“정말 잘됐네요! 이제 왕진을 압박해서 진실을 털어놓게 할 수 있겠어요.” 하연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웃었고, 조금 전까지의 불만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상혁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렇게 좋아?”그는 두툼하게 썬 스테이크를 하연의 앞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물론이죠. 이렇게 되면 한씨 가문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고, 돌아가신 분에게도 정의를 세울 수 있을 거예요.” 하연은 활기차게 음식을 먹었고, 상혁은 그런 그녀를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참, 부남준 쪽은 어떻게 됐어요?” 하연은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남희는 아직 구치소에 있고, 설날을 고생하면서 보냈지. 죽진 않겠지만,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을 거야.” 상혁이 창가로 걸어가면서 덧붙였다. “부남준은 클럽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이 없었어. 그래서 아직은 그의 죄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야.” “그럼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거예요?” “남희는 부남준을 위해 일했고, 지금 조사받고 있는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절반은 부남준의 사람들이야. 이 손실은 부남준이 감옥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이 될 거야. 지금 부남준에게는 새로운 세력이 절실히 필요해.”한창명의 신속한 수사 덕분에 며칠 만에 여러 사건이 해결되었고, 몇몇 고위 정치인들도 조사받는다는
딱 3시간 전의 일이었다.아크로리버파크의 서재에서 부동건은 설날 이후 가장 큰 분노를 터트렸다. 그는 부남준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응답이 없었다. 결국 화가 난 부동건은 핸드폰을 바닥에 내던졌다.“이 망할 놈!”한편에 서 있던 상혁은 몸을 숙여 부서진 핸드폰 조각을 주워들었다. “남준이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절대로 부패한 정치인들과 어울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다시 한번 조사해 보는 게 어떨까요?”부동건은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놈들이 얼마나 교활한데! 나를 신경 쓰는 척하면서도, 소문이 돌기 시작하니까 곧바로 여러 사람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오더군. 그 이메일만 해도 열 몇 통이야! 하지만 전부 다 부남준을 보호해달라는 내용이지. 이런 썩어빠진 의도가 뭔지는 안 봐도 뻔하다고!”상혁은 핸드폰 조각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어쩌면 그 여자가 뒷말했을지도 모르죠.”“잡힐 만한 꼬리가 없었으면, 그 여자가 말했겠니?”상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부동건이 갑자기 상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 이 일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상혁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알게 되자마자 바로 보고드리는 겁니다.”부동건은 상혁을 몇 초간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네가 남준이를 이런 상황으로 몰아넣을 리는 없을 테니.”“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부동건은 서재를 이리저리 거닐며 생각에 잠겼고,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남준이는 일을 맡은 후로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었어.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혜선이의 건강도 좋지 않으니 남준이에게 기회를 줘야지.”상혁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상혁아, 너는 형이니까 남준이를 도와야 해.” 부동건은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겁게 말했다.상혁의 눈에는 약간의 분노가 스쳤지만, 여전히 차분하게 말했다. “나중에 제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남준이도 저에게 이런 관용을 베풀어 줄지 궁금하네요.”부동건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