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은 부남준과 거래하게 된 것을 알았지만, 찌푸리며 말했다. [난 그 사람을 몰라요.][곧 알게 될 거야.]선유를 집에 데려다주고, 하연은 곧장 DS그룹으로 향해 정태훈을 불러냈다. “한 사람을 조사해 줘. 이름은 서태진이야.”‘손 선생님이 말한 게 맞았어. 지금은 부남준을 자극해서는 안 돼. 부남준이 사진을 상혁 오빠에게 직접 보내면 분명 문제가 생길 거야. 난 스스로 시간을 벌어 부남준을 무너뜨릴 기회를 찾아야 해.’얼마 지나지 않아 태훈이 보고했다. “서태진은 WA그룹의 대표예요. 건축업에서 WA그룹은 전국 대부분 기업의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WA그룹은 건축업에서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건축업계에서 서태진의 영향력은 상당히 큽니다.” 하연은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며 의심스러웠다. ‘부남준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 역시 WA그룹과 관련이 있는데, 부남준이 왜 서태진의 약점을 잡으려 하는 거야? 또 어떻게 내가 서태진의 약점을 찾아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지?’“참, 이번 DS그룹 연말 송년회에 초청할 명단에 서태진의 이름이 있어요.”“왜 서태진을 초대하게 된 거지?”태훈이 웃으며 대답했다. “최 사장님께서 본인이 하신 말씀을 잊으셨어요? DS그룹과 동급에 있는 기업들의 대표를 모두 초대장을 보내라고 하셨잖아요.”하연은 거의 잊을 뻔했다. ‘그래서 부남준이 저렇게 자신만만했던 것이었구나. 이미 다 계획을 세워둔 것이 분명해!’태훈은 하연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그럼 초대장은 서태진에게 보낼까요?”“보내.”하연은 속으로 서태진이 참석을 거부하기를 바랐지만, 예상외로 WA그룹에서는 바로 참석을 수락했다.하연은 속이 시큰해졌다.태훈이 다시 물었다. “B시에 새로 온 이방규 대표도 있는데, 그분도 초대할까요?”“그 사람은 됐어.”하연은 이방규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고,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최근 하선유는 아버지 하민철에게 압박받아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자주 하
하연은 속이 답답해졌다. 이방규가 이런 직접적인 요청을 할 줄은 몰랐고, 그는 하연이 마지못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하연은 정말 거절할 수 없었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대표님 같은 분이야 뭐든 다 봤을 텐데, 우리 같은 작은 행사에도 흥미가 있으세요?”“최 사장님이 계시니까 흥미가 있죠.”이방규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하선유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절 초대하고 싶지 않으신가요?”“물론 아니에요.” 하연은 어쩔 수 없이 승낙하며 말했다. “나중에 제가 비서를 시켜 이 대표님께 초대장을 보내드릴게요.”이방규는 그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의 뒷모습은 여유롭고 멋있었지만,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선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방규의 웃음이 좀 무섭지 않아요? 뭔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걱정하지 마, 분명히 꿍꿍이가 있을 거야.”그렇지 않고서야 이방규가 한서영을 받아들이고 B시로 돌아올 리가 없었다.하연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마음속에는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한 감정이 있었다. 아무리 풀어보려 해도 풀리지 않았다....송년회 당일, DS그룹은 B시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이 통째로 빌렸다. 1층부터 꼭대기까지 모든 층은 DS그룹의 직원들로 가득 찼고, 층이 올라갈수록 연예인과 고위층 임원들이 자리를 잡았다.하연은 꼭대기 층의 개인 룸에 있었다. 오늘 하연은 화려한 롱드레스를 입고, 금실로 수놓은 색상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아래에 끝없이 늘어선 고급 차들을 내려다보았다.“며칠 후에 돌아올 거예요?” 하연이 가볍게 물었다.상혁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연말 되기 이틀 전에는 꼭 갈 거야. 어머니도 나랑 함께 가셔.]하연은 상혁이 이렇게 말하면 날짜가 확정된 것임을 알았다. 손이현이 말한 대로 상혁은 연말 전에 소울 칵테일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 손이현의 말은 정확했다.“좋아요, 오늘 행사가 끝나면
밤이 되어야 하연이도 비로소 모든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호텔은 반짝이는 불빛으로 가득 찼고, 중요한 인사들이 모두 도착했다. 하연은 드레스를 살짝 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무대 위로 걸어갔다. 그녀는 우아한 몸짓으로 자연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께서 바쁜 와중에 DS그룹 송년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힘을 합쳐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오늘 밤, 즐겁게 보내세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웨이터에게서 잔을 받아 사람들에게 건배를 제안했다.하연은 잔을 단숨에 비웠고,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그녀의 목에는 붉은 보석이 반짝였고, 아래에서는 환호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순간, 조명이 어두워지며 춤곡이 울려 퍼졌다.이번 주제가 무도회 송년회였기 때문에 모두 자유롭고 전위적인 복장을 하고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하연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저 멀리서 주현빈이 몸을 흔들며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최 사장님, 이번 송년회는 정말 신선한 느낌이네요. 덕분에 10년은 젊어진 기분입니다.”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 회장님도 전혀 늙어 보이지 않아요. 10년 더 젊어지시면 정말 큰 일이겠네요.”잠시 인사를 나눈 후, 하연은 미소를 거두고 복도로 걸어가며 진미화에게 물었다. “연예인 쪽은 어때요?”“새 아이돌 그룹이 이번 송년회에서 발표될 예정입니다. 모두 이 기회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성이 연애를 공식 발표한 이후, 아이돌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다소 약해졌다. 그 틈을 노리는 다른 경쟁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했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마침 이방규가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옆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한서영이 있었다.“최 사장님.” 이방규는 하연을 바로 불렀다.하연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이 대표님.”이방규는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하연이 다른 말을 하지 않자, 고개
문밖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서태진이 도착한 것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역시 이름난 인물들이 함께하고 있었다.하연은 그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서태진을 처음 보는 건데, 대체 그 사람의 어떤 약점을 잡으라는 거예요?”부남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은 겉으로는 순수했지만, 속에선 알 수 없는 불순함이 느껴졌다. “그걸 누가 알겠어? 최 사장의 실력에 달렸지.”남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갑자기 손바닥을 하연의 등 뒤에 얹고는 앞으로 밀었다. 하연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서, 서 대표님.”서태진은 뜻밖이라는 듯 하연을 쳐다보았다. 그는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옆에 있던 사람이 하연을 소개했다. “DS그룹의 최 사장님이십니다.”서태진은 그제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들었다. “아, 최 사장님이시군요.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하연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당연히 와야죠.” 서태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DS그룹의 최하연이 바로 부상혁의 연인이라는 것을. 그렇지 않았다면 서태진도 오늘 이 자리에 왔을 리가 없었다.서태진의 시선은 하연의 목에 있는 '진실한 사랑' 목걸이로 향했다. 며칠 전 자신이 봤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지금 보면, 부상혁이 정말 최하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해. 그러니 내가 최하연을 잘 대하는 것이 나쁠 리 없을 거야.’잔을 비운 후, 서태진은 주변에 있는 인사들을 소개했다. 그들 모두는 정치계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최 사장님, 앞으로 함께 일할 기회가 많을 겁니다.”하연은 그들의 배경을 분석하면서도 남준이 노리는 것이 이들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시간이 조금 지나자, 하연은 멀리서 서태진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때 갑자기 무도회의 음악이 바뀌며, 사람들이 그녀에게 장난스럽게 외치기 시작했다. “최 사장님! 최 사장님! 춤추세요! 춤추세요!”하연은 정신을 차렸고, 이미 주변 사람들의
부남준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나는 다른 것도 매우 뛰어나지.”하연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항상 조금 모자랄 뿐이죠.”‘항상 우리 상혁 오빠보다 조금 모자라니까...’남준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는 비록 사생아였지만, 지금까지 권력을 쥐고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를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여자는 하연이 처음이었다. 하연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남준에게 맞섰다.그는 손에 힘을 주어 하연을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며, 갑자기 그녀의 목에 있는 목걸이를 만졌다. “‘진실한 사랑’, 우리 형이 최 사장에게 정말 아낌없이 주는구나. 그런데 우리 형은 최 사장을 이렇게 예쁘게 꾸며 놓고, 이 목걸이를 쓰고 나와 춤을 추는 걸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하연은 그의 손을 밀쳐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상혁 오빠는 반드시 날 믿을 거예요. 부 사장의 성격이 어떤지 우리 상혁 오빠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남준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렇게 확신해?”하연은 이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빨리 이 춤을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저 멀리 서태진에게로 향했고, 입을 열었다. “부 사장, 지금 서태진을 대신해서 WA그룹의 실권을 차지하려는 거죠? 교묘한 수를 써서 바꿔치기하려는 거 아니에요?”하연은 자신이 맞았다고 확신했다.남준은 그녀의 손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바꿔가며 말했다. “최 사장은 아직 서태진의 약점을 잡지 못했으니 나와 거래할 자격은 없지.”하연은 말문이 막혔다.잠시 후,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고한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손이현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에요.”“난 그 소울 칵테일 사장에게 관심 없어.”그때, 호텔 밖에서는 최하성이 신가흔과 함께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 하성의 옷자락이 휘날렸다. 가흔은 그의 옷을 붙잡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오빠. 아까 그 사람은 그냥 내 동료였어요. 화내지 마요.”하성은 뺨을 불룩하게 하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이 춤이 끝나자,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하연은 부남준의 옷깃을 꽉 잡으며 한 마디씩 뱉었다. “안타깝게도 난 부사장한테 전혀 관심 없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남준을 밀어내며 몸을 돌리려 했지만, 남준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너...”남준은 한쪽을 바라보며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우리 둘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 있잖아.”하연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순간, 하연의 시야 한구석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몸은 굳어졌고, 혈액이 역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상혁이 행사장 입구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모든 온화함이 사라졌고, 마지막 남은 따뜻함조차 싸늘하게 식어버렸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서늘했다.남준은 천천히 가면을 벗으며 하연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우리 형이 왔네. 가서 인사드릴까?”하연은 미칠 것 같았다.그녀는 남준을 세게 밀치고, 빠르게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가 상혁에게 다가갔고, 숨을 헐떡이며 상혁의 앞에 서서 말했다. “오빠, 내 말 좀 들어줘요.”상혁은 하연을 보지 않고, 대신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남준을 응시했다. 이때, 상혁의 눈에는 혐오, 증오, 그리고 불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잠시 후, 상혁의 시선이 하연에게로 돌아왔다.하연의 얼굴은 창백했고, 불안감과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그녀는 상혁의 옷깃을 꽉 붙잡고 간절하게 말했다. “오빠, 제발, 나한테 말할 기회를 줘요.”하지만 상혁은 너무나도 차분했다. 그에게서는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연은 차라리 그가 화를 내거나 미쳐버리기를 바랐다. 지금처럼 무관심한 태도는 너무나 잔인했다.상혁은 무표정으로 하연의 손을 떼어내고는 그대로 돌아섰다.하연은 그의 뒤를 빠르게 따라갔다. “오빠, 나는 정말 춤추고 싶지 않았어요. 부남준이 저를 계획적으로 무대 위에 올린 거예요. 거절하기 어려웠어요. 미안해요, 상혁 오빠. 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 부남준과 오빠의
“혹시 누가 너한테 말해준 적이 있어? 네가 키스를 전혀 못 한다는 거.”하연은 금세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 말고 다른 사람과는 키스해 본 적 없잖아요.”이 말이 상혁을 상당히 만족시켰는지, 그의 마지막 한 조각의 분노도 사라졌고, 그는 다시 최상층의 버튼을 눌렀다, “부남준과는 멀리 떨어져.”하연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고, 내면의 진실을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상혁의 품에 기대며 눈길을 그가 건넨 도시락 통에 두었다, “내 거예요?”“개 주려고 가져온 거야.”하연은 활짝 웃으며 그를 한 번 더 껴안았다.“오빠도 말과 속이 다르네요.”그녀가 어지럽게 움직이다 무언가를 건드리자, 상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로 세웠다, “너 처음이잖아. 엘리베이터는 적절한 장소가 아니야.”하연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한참 후에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고, 자신이 무엇을 건드렸는지 알아차리자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고, 도저히 말을 잇지 못했다.다시 행사장에 돌아왔을 때까지도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붉었다.행사장은 여전히 시끌벅적했고, 부남준은 보이지 않았다. 하연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 통을 열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상혁은 하연의 옆에 앉아 그녀가 만족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화려한 불빛과 와인 속에서 상혁은 유독 눈에 띄는 기품을 자랑했다. 그저 앉아있을 뿐인데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현빈이 와서 인사를 나눴고, 이어 서태진이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제가 말했잖아요. 최 사장님의 연회에는 부 대표님이 꼭 시간을 내서 오실 거라고요. 봐요, 제가 맞췄잖아요.”상혁은 담담하게 그와 잔을 부딪쳤다, “공사는 잘 되고 있어요?”서태진은 그대로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공사는 원래 부 대표님께서 맡으신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결국 부남준 사장에게 넘어가더군요. 두 분 사이에서 엄청 애를 먹었어요. 부남준 사장은 진짜 까다롭네요. 저도 매일 고
이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 소리치고, 얼른 소란을 피웠다.“최 사장님께 남자 친구가 있다니! 게다가 이렇게 잘생긴 분이라니!”“예전부터 소문으로만 듣던 부 대표님이네요!”“실물이 전설 그대로네요, 고고하고 우아하세요!!”‘이게 다 무슨 말이지?’ 하연은 웃음이 터질 듯 말 듯 어이없었지만, 상혁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오늘 추첨 보너스로 최 사장님 몫에 50% 더 얹도록 하겠습니다.”사람들은 더 큰 환호를 지르며 외쳤다. “부 대표님, 역시 통이 크시네요!”분위기가 점점 뜨거워졌고, 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은 채 많은 표정을 짓지는 않았으나, 눈가에는 분명한 기쁨이 스쳐 지나갔다. 오히려 하연이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본능적으로 상혁을 데리고 사각지대로 이동했다. 그녀는 진미화를 불러 물었다.“언론사들도 다 초대했죠?”“당연하죠. 우리 키운 이 걸그룹의 모든 아이는 수년간 체계적인 훈련을 거쳤어요. 능력도 출중하고, 데뷔만 하면 차세대 아이돌 그룹으로 성공할 거예요. 그래서 미리 언론사를 불러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했죠.”미화는 매니저로서 마케팅과 아이돌 산업에 능했다.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사회자가 무대 위에서 선언했다.“이제 X-estar의 첫 무대를 만나보겠습니다. X-estar의 데뷔 무대이기도 합니다.”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기대에 찼다. 모두 DS그룹 소속 연예인들이라, 앞으로 이 그룹을 많이 챙겨줄 것이었다.최하성도 역시 무대를 지켜보고 있다가 하연과 상혁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저 걸그룹, 나도 연습실에서 봤는데, 정말 의욕이 넘쳐. 좋은 인재야.”“네가 인정할 정도면 확실히 괜찮은 그룹이겠네.”이때,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몇 초가 지나도 무대 위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하연은 미간을 찌푸렸고, 미화는 바로 무전기를 잡았다.“무슨 일이야? 사람들은 어디 있어?”[언니, 모르겠어요. 방금까지 분명히 있었는데, 갑자기 보이지 않아요.]미화의 얼굴은 급격
상혁은 풍등을 들고 하연과 함께 마당으로 나왔다. 타이밍 좋게 하인이 라이터를 건네주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부남준이 조용히 고개를 내밀었다. 몰래 지켜보던 그는,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풍등을 펼치는 모습을 바라봤다. 상혁이 직접 가운데 심지에 불을 붙였다. 뜨거운 열기가 천천히 풍등을 부풀게 만들었고, 풍등은 두 사람 앞에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연아, 빨리 소원 빌어!” 하연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상혁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또 다른 소원을 빌었다. ‘언제나 우리 둘이 해마다, 해마다, 서로를 마주할 수 있기를.' “다 됐어요.” 하연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 눈빛에는 반짝이는 빛이 서려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서히 손을 놓았다. 풍등은 하늘을 향해 천천히 날아올랐고, 점점 멀어지더니 마침내 한 점이 되어 사라졌다. “어떤 소원 빌었어?” 상혁이 손끝으로 하연의 귓불을 살짝 어루만지며 물었다. 하연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깜빡이며 말했다. “소원은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대요.” “그래? 그럼, 네 소원이 꼭 이루어지길 바랄게.” 두 사람은 다시 눈을 마주쳤다. 상혁의 숨소리가 깊어졌다. 그는 하연의 턱을 살며시 잡고,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을 맞췄다. 조심스러웠던 키스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하연은 숨이 가빠졌다. 상혁을 밀어보려 했지만, 오히려 더 깊이 끌어안겼다. 여자의 허리는 유연하게 휘어졌고, 상혁의 등은 팽팽한 활처럼 긴장됐다. 결국, 하연도 상혁의 목을 감싸 안고, 키스에 응답했다. 그러나 그 순간, 불청객 같은 전화벨 소리가 분위기를 깨뜨렸다. 하연은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상혁을 밀어냈다.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익은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전화 울리는데요?” 하연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져 있었다. 묘하게 사람을 간지럽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상혁은
다른 곳에서 있던 조봉규가 소란이 일자마자 급히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송혜선에게 다가가며 다급히 말했다. “설날인데, 뭐하러 이렇게 화를 내...” 조봉규가 입을 여는 순간, 남준의 온몸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남준의 시선이 날카롭게 쏘아붙었고, 조봉규는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애써 태연한 척하며 한 발 다가섰다. 송혜선의 팔을 조심스레 부축하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건강이 우선입니다.” ‘건강?’남준은 손에 쥔 염주를 힘껏 움켜쥐었다. 힘이 들어간 손등에는 핏대가 서고, 눈빛은 살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시선은 서로 닿아 있는 두 사람의 손목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입가에 엷은 조소가 떠올랐다. “조 선생님, 참으로 열정적인 분이시군요. 설날에도 근무 태세를 유지하시다니.” 조봉규는 눈치가 빠른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의 말 속에 담긴 조롱을 알아챘다. 그러나 겉으로는 한껏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머리를 숙였다. “별말씀을요. 환자의 곁을 지키는 게 제 본분입니다.” 남준은 가만히 조봉규를 노려보다가, 짧고 날 선 경고를 던졌다. “그렇다면 본분에만 충실하시죠. 여긴 부씨 가문의 본가이니까.”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남준아!” 송혜선이 다급히 나섰다. 남준을 나무라는 말투였지만, 그 속에는 조봉규를 감싸려는 의도가 분명히 깔려 있었다. 남준의 눈빛은 더욱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송혜선은 오히려 기세를 올려 쏟아내듯 말했다. “네가 좀 더 나서서 잘했더라면, 부상혁한테 밀릴 일도 없었어! 내가 왜 조진숙한테 설날마다 굽신거려야 하냐고?” “지금, 어머니는 나를 원망하시는 겁니까?”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남준의 손에서 염주의 한 알이 ‘탁' 하고 부서졌다. “남준아!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송혜선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염주는 영적인 기운이 깃든 물건이야. 함부로 부수면 불길한 일이 생길
부동건의 말은 송혜선을 전적인 신뢰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면, 과연 부동건은 스스로를 어떻게 납득할까?’ ‘결국 속아서 살아온 날이 우스운 바보일 뿐...’ 조진숙은 아무 말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애틋한 사랑인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서류들, 가져가.” “나 다른 뜻은 없어.” 부동건은 조진숙의 단호한 태도에 살짝 주춤했지만, 곧장 다시 설득을 시도했다. “네가 아직 날 원망하고 있다는 거 알아. 그동안... 혹시 네가...” “착각하지 마.” 조진숙은 부동건의 말을 끊었다. 더 이상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부동건은 한 발 더 다가섰다. “하지만 네가 이걸 받지 않는다면, 결국 날 아직도 원망하고 있다는 뜻 아니야?” 조진숙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가슴 깊숙이 가라앉은 감정이 불쑥 떠오르는 듯했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정리한 뒤,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부동건은 말없이 서류를 정리하더니, 숙련된 손놀림으로 만년필을 열어 조진숙 앞에 내밀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대답이었다. “후회할 거였으면,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어.” 이번엔 조진숙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펜을 들어, 서류 맨 아래에 단호한 필체로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부디 이 선택을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길 바라.” 부동건은 서류를 덮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마음속에 짓눌려 있던 무언가가 비로소 내려앉는 듯했다. 그는 문득 나직이 말했다. “이제야... 후회한들, 이제 돌아갈 길도 없어.” 조진숙은 그 말에 가슴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끝내 시선을 돌렸다. 담담한 표정 속에 모든 감정을 삼키며, 단 한마디만 남겼다. “이건... 다 정해진 운명이야.” ‘운명의 장난...’ ‘어쩔 수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 뜻대로 하게 해주십시오.” 부동건의 태도가 단호했다. 이를 지켜보던 부해철이 더 이상의 말은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미 네가 마음을 정했다면, 내가 더 이상 뭐라 할 수도 없지. 다만, 앞으로 그 여자를 내 앞에 데려오지는 마라. 네가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부동건이 무슨 말을 더 하려 했지만, 부해철은 손을 휘저으며 등을 돌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뒷모습만이 남았다. ‘그렇게까지 반대할 줄은 몰랐네...’ 부동건은 묘한 기분으로 그 자리에 멈춰섰다. ...설날 온 나라가 한 해의 끝을 보내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 예전에는 늘 조진숙과 상혁 모자가 함께 보내던 명절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의 본가가 가까운 데다, 명절이 지나면 하연과 상혁의 약혼식이 있을 예정이었다.그래서 조진숙이 제안했고, 양가 가족들이 함께 부씨 가문에서 설날 저녁을 보내기로 했다. 그 덕분에 조진숙은 하루 종일 분주하게 준비에 매진했다. 그러나 제사가 끝나자마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진숙아, 새해 복 많이 받아.” 부동건이 어색한 미소를 띠며 낮은 자세로 인사를 건넸다. 평소 같았으면 송혜선과 함께 명절을 보낼 사람이, 오늘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조진숙에게는 뜻밖이었다.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여긴 웬일이죠?” “잠깐 들렀어, 당신한테 할 말도 있고 해서.” 조진숙은 그의 시선을 따라 문득 집안 분위기를 둘러보았다. 송혜선이 이곳에 들어온 이후, 부씨 가문 본가는 한 지붕 아래에서도 철저하게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있었다.그 경계는 뚜렷했고, 불필요한 마주침은 없었다. 부동건이 송혜선과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후, 둘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만약 이번 일이 없었다면, 조진숙 역시 이미 오래전에 이 집을 떠났을 터였다. “들어와.
송혜선은 급히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했다. “아무래도 남준이가 좀 늦나 봐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는 게 어떨까요?” 부동건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얼굴을 굳혔다. “말 같지도 안은 소리를 하고 있어! 오늘 같은 날에, 시간 개념도 없이 늑장을 부려.” 송혜선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남준이 오면 꼭 제가 주의를 줄게요.” “교육 똑바로 시켜. 좀 상혁이 하는 것에 반만큼이라도 신중했으면, 나도 그 녀석한테 좀더 잘해 줬을 거야.” ‘또 시작이군.’ 송혜선은 속이 쓰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오면 오는 거고, 못 오면 어쩔 수 없지.” 부동건은 한 치의 여지도 주지 않고 단호하게 내뱉곤,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어서 남준이를 찾아와! 오늘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를 어머니라고 부를 생각은 하지도 마.” 송혜선의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렸다. 이 모든 노력들이 사소한 실수 하나로 무너질 순 없었다. ...부씨 가문은 제사에 있어서 철저한 예법을 중시했다. 다행히도 상혁은 부동건과 수년간 제사를 지내며 익숙해져 있었고, 모든 절차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했다. 부씨 가문의 어른들 역시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건아, 상혁이가 있어서 네 대가 끊길 걱정은 없겠구나.” “앞으로 부씨 가문의 대업을 상혁이가 이어간다면, 우리 늙은이들도 한시름 덜겠어.” 부동건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야 물론이죠. 상혁이는 부씨 가문의 기둥이 될 인재입니다.” 상혁은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앞으로도 많이 지도해 주십시오.” “어디 우리가 너희 젊은이들에게 배우는 게 더 많지!” “...”제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부남준이 느지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동건은 남준을 보자마자 눈빛이 차갑게 식었지만, 일단 감정을 누르고 말했다.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어서 와서 절부터 올려라.” 남준은 살짝 눈썹을
최씨 가문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부씨 가문의 본가는 싸늘하고 조용했다.예년과 다름없이, 설날이 되면 부동건은 집안의 남자들과 함께 조상들에게 제사를 올려야 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른 아침부터 송혜선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 부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연결음만 울릴 뿐, 남준은 끝내 받지 않았다. ‘이 녀석은 정말이지, 사람 속을 태우는 재주가 있다니까.’ 송혜선의 얼굴에 점점 초조한 기색이 드러났다. 옆에서 지켜보던 조봉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때? 아직도 전화를 안 받아?” 송혜선은 짙어진 눈매로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 녀석, 정말 사람을 신경 쓰게 만드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조봉규는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를 달랬다. “혹시 무슨 사정이 있어서 늦는 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남준이가 철없는 아이도 아니고.” ‘철없는 아이가 아닌데 이러겠어?’ 송혜선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최대한 감정을 눌렀다. “부씨 가문의 어른들이 원래부터 남준이를 못마땅해했는데. 이런 중요한 제사까지 빠지면, 분명 뒷말이 나올 거야.” 그녀의 말투에는 이미 불안과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그러는 사이, 두 사람이 작은 응접실에서 나와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그때, 정면에서 다가오던 부동건과 마주쳤다. 부동건은 갓 외투를 정리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송혜선과 조봉규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자, 손동작이 살짝 느려지며 묘한 시선을 던졌다. “조 선생, 올해도 그렇게 혜선이 옆에 딱 붙어서 열심히 잘 보살펴 주세요.” 그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조봉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회장님,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부동건은 묘한 눈빛을 유지한 채, 덤덤히 말했다. “혜선이가 아이를 무사히 낳으면, 그에 대한 보상도 충분히 해줄 테니
두 집안이 한데 모여 북적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런 귀한 순간을 마음껏 즐기며 보내다 보니, 어느덧 설날 전날이 되었다. 모두 함께 전용기를 타고 F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설날이 밝았다. 올해는 오랜만에 최씨 가문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인 데다, 기쁜 소식까지 겹친 한 해였다. 그 덕분인지 최동신은 평소보다 더욱 설 준비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최씨 가문의 본가는 분주했다. 집사와 고용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저택 곳곳을 장식했다. 새빨간 복주머니와 길상 문양이 새겨진 장식들이 하나둘 자리 잡았고, 정원에는 화려한 등불이 걸리며 설 분위기가 한층 더 짙어졌다.하연이 계단을 내려오자, 기다렸다는 듯 최하성이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하연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그러면서 두툼한 세뱃돈 봉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연은 두 눈을 반짝이며 얼른 봉투를 받았다. “와! 이렇게 두꺼워요? 하성 오빠 최고!” 그때, 계단 위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있다.” 최하경이었다. 그 역시 두툼한 세뱃돈 봉투를 들고 내려왔다. “작년, 재작년 다 해외에 있어서 못 챙겨줬잖아. 그래서 올해 한꺼번에 더 두둑이 넣었다.” “와! 이건 더 두껍잖아요! 이러다 손목 나가겠어요!” 하연은 연달아 두 개의 두툼한 봉투를 받아 들고, 각각 한쪽 팔을 오빠들에게 걸었다. “오빠들 있어서 진짜 좋아요!” 최하성, 최하경 둘 다 서로를 바라보며 우애가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그리고 최하민과 예아름이 나란히 들어왔다. 추운 바깥 공기를 뚫고 들어오자마자, 하민은 아름의 목에서 목도리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그는 안쪽에서 떠들썩하게 웃고 있는 세 남매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집이 이렇게 활기찬 게 얼마 만이에요!” 아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앞으로 더 행복한 일만 가득할 거예요.” 하민은 아내의 허리를 가볍
그리곤 진심을 담은 남자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하지만 하연의 눈가에는 이미 촉촉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글귀,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상혁이 진심을 담아 전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건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상혁이 하연에게 건네는 가장 솔직하고 깊은 속마음이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온 부드러운 목소리. “하연아.” 하연은 본능적으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숨이 멎었다. 아까까지의 편안한 차림은 온데간데없이, 눈앞의 상혁은 새하얀 수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반듯하게 맨 보타이,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 그리고 손에 들린 한 다발의 꽃. ‘동화 속에서 막 나온 왕자님 같아.’ 하연은 멍하니 서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상혁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하연의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다. 남자의 시선, 남자의 걸음, 그가 다가오는 순간의 모든 것이 하연의 가슴속 깊이 새겨졌다. 마침내, 상혁은 하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은 마주 섰고, 서로의 눈동자에 상대방의 모습이 담겼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떨림이 전해지는 듯했다.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상혁이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꽃을 건넸다. 남자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하연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말이 끝나자, 그는 왼발을 살짝 앞으로 내디디더니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벨벳 상자를 꺼냈다. 이어서 뚜껑을 열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혁의 눈빛에는 단 하나의 감정만이 가득 차 있었다. 바로 사랑이었다. “한때 나는 사랑이란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널 만나고, 그게 아니란 걸 알았어.” “사랑은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서로를 아껴주고, 이해하고, 감싸주는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너와 함께, 그런 사랑을 하
둥근 형태의 테라스는 새하얀 난간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위로 푸릇푸릇한 덩굴식물이 감싸고 있었다. 연둣빛 야자수 잎 사이로 작고 앙증맞은 꽃들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고, 은은한 향기가 바람에 실려왔다. 테라스 중앙에는 우아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이미 차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연아, 우리 저기에 앉자.” 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고 테이블로 이끌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직접 꽃차를 따라주었다. 하연은 손으로 찻잔을 감싸고 조심스레 한 모금 머금었다. 부드러운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거 무슨 차예요? 향이 너무 좋아요.” “목련차야. 테라스 뒤쪽에 한가득 피어 있는데, 한번 가볼래?” ‘목련꽃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피어 있다니.’ 순백의 꽃잎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모습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연은 찻잔을 내려놓고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가보자!” 둘은 테라스를 나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얀 원형 아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눈부신 꽃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우와...’ 하연은 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백의 목련이 바람에 살랑이고, 보랏빛 라벤더가 넘실댔으며, 튤립이 형형색색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각종 귀한 품종의 꽃들이 경쟁하듯 피어나고 있었고, 이 모든 아름다움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꿈 속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상혁은 걸음을 멈추고 어디선가 꽃으로 엮은 화관을 꺼내더니, 조심스레 하연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하연아, 여기는 너만을 위한 꽃밭이야.” 놀란 듯 하연이 눈을 깜빡이며 상혁을 올려다보았다. ‘설마...?’ 여자의 가슴이 터질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고, 꽃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길을 따라 걷자 길이 점점 넓어졌고, 상혁과 함께 그 길을 따라 가자 점점 하연의 시야가 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