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말이 안 통하는구나.”하연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다시는 널 보고 싶지 않아.” 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서준은 손을 뻗어 하연을 붙잡으려 했지만, 결국 잡지 못했다. 살랑살랑 나풀거리는 치맛자락 아래로 하연의 발목에 붕대가 감겨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서준이 인상을 찌푸렸다.‘저런 방식으로 붕대를 감는 건 경찰학교를 나온 사람이나 아는 건데...’ 매년 새해, 명준은 한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애틋하게 여긴 강영숙은 항상 사람을 시켜 무언가를 보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준과 서준이 조우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해에는 폭우가 내렸고, 경찰학교는 외딴곳에 있었다. 한참 도로를 달리던 서준은 산사태를 만나 운전기사와 함께 매몰되었지만, 경찰학교 학생들이 두 사람을 구조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람이 명준이었다. 명준은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침착한 서준의 모습에 놀랐다.“한서준?” “한명준 형?”“네 발을 좀 봐. 돌에 맞아서 다쳤나 본데, 내가 붕대를 좀 감아줄게. 아마 며칠 푹 쉬면 괜찮아질 거야.”이 말을 마친 명준은 곧장 물병을 들고 물을 받으러 갔다. 서준과 거의 접촉이 없었던 명준은 그가 자신과 닮았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서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외쳤다.“새해는 다 같이 집에서 맞이하자.” 명준은 발걸음을 멈췄으나 뒤돌아보지 않았다.“난 안 갈 거야.” 기억에서 벗어난 서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붕대를 감는 방법이 형이랑 똑같아.’‘그새 또 최하연을 만난 거야?’ 테이블로 돌아온 하연은 고개를 숙이고 먹기만 했으며,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이 모습을 본 선유가 깜짝 놀라며 말렸다.“언니, 왜 그래요?” 하연은 배가 꽉 차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듯했다.“별거 아니야, 그냥 개한테 좀 물렸을 뿐이야.” 서준이 테이블로 돌아오자, 운석이 그를 동정스럽게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이방규의 곁에는 조용해 보이지만 명품으로 치장하여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를 원하는 여자가 있었다. 방규의 팔짱을 낀 그녀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선유 씨, 상상했던 것만큼 아름다우시네요.” 선유는 방규에게 물었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가로챈 셈이었다. 순간,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하자, 방규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팔을 빼며 말했다.“아닙니다.” 그 여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선유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쩐지... 제가 못 뵈는 동안 안목이 나빠지신 줄 알았어요.”젊고 아름다운 선유는 조명 아래에서 더욱이 빛나고 있었다. 방규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벌써 이렇게 자란 데다가 말도 조리 있게 잘하다니... 남자친구는 있어요?” 선유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 하민철에게 저지당했다.“선유는 아직 어려서 그런 일은 전혀 급하지 않아요.” “결혼할 나이는 된 것 같은데요, 뭘.” 선유는 소위 ‘이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라는 사람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는데, 다시 만나자마자 이토록 무례하게 말하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연은 곧장 나아가는 운석을 붙잡지 못했다.“이 대표님도 마흔을 넘겼는데, 아직 미혼이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20대 초반의 아가씨에게 결혼을 재촉하다니... 조금 무례하시네요.” 술잔을 든 운석은 다소 반항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다가갔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방규와 건배했다. 운석을 그윽이 바라보던 방규가 하민철을 바라보았다.“이분은...” 운석이 잔을 꽉 쥐었다. 그는 투자은행 업계의 고수일 뿐만 아니라, B시는 물론이며 M국의 투자 분야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그런 나를 모르는 척하면서 창피를 주려 해?’ 그가 하민철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투자은행의 부사장이자, 나씨 가문의 장남인 나운석입니다. 편한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방규의 눈동자에 흥미가 스쳤다. 그가 선유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아, 나씨 가문의 장남이 벌써 이렇게 자랐군요. 기억하실
손을 뻗은 방규가 서영을 품에 안았다.“모른다는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서준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완전히 변해버린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는 아무리 화가 나도 이곳에서 소란을 피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HL산업은행의 연회는 소란을 피울만한 곳이 아니었으며, 곳곳에 고위 간부들과 정치인이 있었기 때문에 HL산업은행을 난처하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이방규의 세력은 HT그룹보다 더 강력했기 때문에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연은 서준이 간신히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상석으로 돌아가자, 운석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선유의 손을 잡은 하연은 그녀에게 귓속말했고, 선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하연은 더 이상 오래 머물지 않고 곧장 HL산업은행의 연회를 떠났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태훈이 말했다.“이방규 대표님께서 투자한 영화사는 요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회사입니다. 우리 DS그룹의 영화사와는 경쟁상대인 셈이죠.” “그 사람이 최근에 계약한 연예인들을 좀 알아봐 줘.”하연이 깊은숨을 들이마셨다.‘원래 조사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꼭 조사할 수밖에 없겠어.’ [한서영?]수화기 너머에서 의심을 품은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정말 많이 변했더라고요.”“참, 이방규가 F국 출신이라던데, F국은 오빠가 잘 알잖아요. 혹시... 뒷조사를 좀 해줄 수 있을까요?”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잡음이 들렸다. 상혁은 문을 열고서야 입을 열었다.[알겠어.]하연은 그의 기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이내 상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접질린 데는 좀 어때?] 하연이 고개를 숙이고 발목을 바라보았다.‘이제 별로 아프지 않아.’그녀가 이현이 감아준 붕대를 풀며 말했다.“괜찮아요.” “저기... 이방규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를
이튿날, DS그룹으로 달려온 선유는 어젯밤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이방규의 옆에 있던 사람이요... 공개적으로 사귄 지 3,4개월이나 된 여자 친구래요. 그런데 신분이 불분명해서 이씨 가문에서는 인정하지 않나 봐요. 아무래도 진지한 관계는 아닌 것 같아요.” 하연은 한창 서류를 뒤져보고 있었다.“한씨 가문에 HT그룹까지 합쳐도 이씨 가문의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거야. 그리고 한서준이 아프리카로 보냈다던 한서영은 어떻게 돌아온 걸까?” “아무도 몰라요.”선유가 고개를 저었다.“이방규가 한서영의 과거를 모두 지웠다고 하더라고요.” “재밌네, 한서영한테 이런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거든.” 하연이 손에 든 펜을 돌리기 시작했다.“어젯밤은 어땠어?” “운석 오빠가 몇 번이나 이방규한테 말을 걸어보려고 했는데, 절대 대답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운석 오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나운석이 그런 일을 당하는 날이 오는구나.’이렇게 생각한 하연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서영은 카드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한서영의 배경에 두려움을 느낀 재벌가 아가씨들이 카드를 내밀기도 했어요. 아마 꽤 많은 돈을 벌었을 텐데도 건방진 태도를 유지하면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서영의 얼굴을 떠올린 선유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예전에는 그 여자가 눈앞에 서 있어도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몰라보게 달라져서 돌아왔다고요!” 하연이 못 말린다는 듯 그녀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한서영은 이방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HL산업은행의 큰 아가씨인 네가 화를 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선유는 단번에 맥이 풀렸다.“하지만 저도 HL산업은행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사실 그 여자랑 별로 다를 것도 없어요.” 하연은 어리둥절했다. “언니, 우리 아빠는 아직도 제가 아빠의 곁에 있길 바라세요.” “왜? 나씨 가문은 세계적으로도 부족함이 없고, HL 산업은행에 딱 어울리는 상대잖아.”하연은 선유와 운석이 이미 서로에게 감정이 있다
한서영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머, 진짜 매니저님이 오셨네요.”하연은 여유롭게 서영의 손에 있던 가방을 빼앗아 핸드폰으로 스캔했다. “공식 사이트에서 인증한 진짜 가방이에요. 뭐 할 말 있어요?”장예나는 하연이 오자마자 팔을 잡았다. “지금 저 여자가 일부러 시비 걸려고 온 거야. 나도 방금 스캔했어.”서영은 두 팔을 교차하며 오만하게 말했다. “그건 당신들이 보관을 제대로 못 해서 흠집이 생긴 거겠죠. 난 이 가방을 받지 않을 거예요. 당신들이 전액 배상해야 하니까요.”“정말 비겁하시네요!” 예나는 화가 나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연을 넘어서려 했으나 하연에게 저지당했다.“한서영 씨, 당신이 이 가방을 받지 않겠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전액 배상도 가능하고요. 그런데 제가 공식적으로 한마디만 하죠. 앞으로 당신을 위해 맞춤 제작은 하지 않겠다고요, 어때요?”다시 말해서 서영은 이제부터 이 브랜드의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는 것이었다.서영의 얼굴이 순간 변했다. 이 브랜드의 가방은 신분의 상징인데, 더 이상 들 수 없다면 큰 망신이었다.“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죠. 그냥 오랜만에 최하연 씨를 봐서 농담 좀 한 거예요.”서영은 돌아서서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최하연 씨를 알지? DS그룹의 최 사장님, 정말 대단하지 않아? 나랑 예전부터 알던 사이야.”그 친구들은 서영이 이방규의 여자 친구라는 걸 알고 매우 공손하게 말했다. “아, 친구셨군요.”“친구는 아니야. 사실 난 최하연 씨의 전 올케였어, 몰랐지? 예전에 우리 집 모든 집안일은 최하연 씨가 다 했어. 빨래하고, 청소하고, 요리까지... 그때 최하연 씨가 해준 음식이 좀 그립네. 올케, 아니, 전 올케, 나한테 다시 요리해 줄 수 있어요?”서영의 눈꼬리가 올라가며 도전적인 표정을 지었다.하연은 눈을 굴리며 속으로 후회했다.‘예전의 나는 얼마나 멍청했길래 한서준 집안에서 그렇게 많은 흑역사를 남긴 거지?! 그래서 한서영도 지금 날 이렇게까
“그만해요.” 서영이 음침한 얼굴로 말을 끊었다. 그녀는 예전에 하연에게 당한 적이 있었고, 하연이 실제로 이런 인맥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많은 사람 앞에서 감히 내기할 수 없었다.하연은 재미있다는 듯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서영은 그녀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무 자만하지 마. 곧 너도 고통을 맛보게 될 거야.”하연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멀리 보이는 실루엣을 응시했다. “기다리고 있을게.”서영은 분노에 찬 채로 몸을 돌려 사람들과 함께 매장을 나섰다.순식간에 매장 안은 조용해졌다.하연은 표정을 거두었고, 하선유는 급히 물었다. “언니, 이방규한테 정말 첫사랑인 여자가 있어요?”“아니, 다 내가 지어낸 거야.”예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한서영은 언니한테 속을 수밖에 없어요. 그건 한서영이 이방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뭐 그렇게 대단한 척을 하는 건지...” 그때 부남준이 동행한 여자와 함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가방 찾으러 왔어요.”선유도 급히 말했다. “저도요.”예나는 바로 자세를 고쳐 잡고 번호를 확인하며 물었다. “따라오세요.”두 사람은 예나를 따라 다른 쪽으로 갔다. 남준은 몸을 돌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다시 만나네요. 최 사장님은 여전히 말솜씨가 좋고 담대하네요.”하연은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 사장님도 여전하네요. B시에 와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여자가 끊이질 않으니 말이에요.”“최 사장님도 만만치 않죠. F국에서 한 명, B시에서 또 한 명을 낚았으니, 우리 형이 알면 뭐라고 할까요?”남준은 낮게 말하며 손에 든 맞춤형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라이터 끝에는 그의 영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하연은 남준을 응시하며 미간을 찌푸렸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루머를 퍼뜨리는 건 부끄러운 일잖아요, 부 사장님.”이 순간, 하연은 남준이 한서준에 대해 뭔가 알아내고
하연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모든 사진은 그날 밤 손이현과 함께 있던 장면들이었다. 이현이 하연의 발을 주무르고, 대화를 나누고, 그녀를 부축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사진 속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사진을 찍은 각도도 의도적이었고, 두 사람은 마치 연인처럼 보였다.하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시 한번 남준의 비열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이건 진실이 아니에요.”“진실이든 아니든, 우리 형이 보면 그게 진실이 되는 거죠.”남준은 마지막 사진으로 넘겼다. 사진 속 이현은 외롭게 마당에 서 있었다. “이 사진 좀 봐요. 마치 남녀 간의 즐거운 일이 다 끝난 후에 마음 편하게 담배를 태우는 것 같지 않아요?” 하연은 고개를 들고 남준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그의 얼굴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매장 안에 뺨을 때리는 소리가 아주 크게 울렸다.다행히 그때는 매장에 아무도 없었다.남준은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혀로 입가를 핥았는데, 그는 피 맛을 느꼈다.“방금 감히 날 때렸어?”“너는 참 비열하고 추악해. 네가 날 협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뭘 시키겠다고 말도 안 했는데, 벌써 그렇게 초조해할 필요는 없지 않나?”하연의 손바닥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남준이 자신의 약점을 쥐고 있으며, 틀림없이 자신에게 어떤 불가능한 요구를 할 것임을 느꼈다.“최하연, 너 지금 털을 세운 작은 고양이처럼 보여.” 남준은 미소를 지으며 하연에게 다가와 느긋하게 그녀의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 “걱정하지 마. 당장은 부상혁에게 말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한다면, 그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한다면? 내가 어떤 일을 해야 부남준 이놈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야? 그건 아무도 모르지!!’ 하연은 주먹을 꽉 쥐고 다시 남준을 밀어냈다. “내가 직접 상혁 오빠한테 말하면 돼. 절대로 네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곧장 매장 안쪽의 휴게실로 들어갔다.
하연의 목소리엔 약간의 곤란함이 배어 있었다.마침 그때, 강성훈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자료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이현이 통화를 끝내길 기다렸다. 이현은 손을 들어 성훈에게 먼저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자신은 창가로 걸어갔다.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데요?]하연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매우 중요해요.”[협박은 얼마나 심각해요?]하연은 이 문제가 이현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감히 말하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목숨이 걸린 건 아니지만, 그냥... 사업 경쟁 정도?”이현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했다. [제가 하연 씨라면, 잠시 참을 거예요. 시간을 두고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정말 중요한 관계라면, 한 번 깨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거든요.]이상하게도, 이현이 이 말을 할 때 하연은 그의 말 속에서 묘한 쓸쓸함을 느꼈다.“손 선생님, 혹시 제가 선생님의 마음속에 아픈 곳을 건드린 거예요?”[아니에요, 다 지나간 일이에요.]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현이 물었다.[혹시 제 도움이 필요해요?]하연은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정한 듯, 급히 감사를 표했다. “제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요.”성훈은 시계를 한 번 보고, 통화가 5분 동안 계속된 것을 확인했다. 이현은 전화를 끊은 후에도 5분 동안 창가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성훈은 보고할 일이 좀 급했지만, 이현을 방해할 수 없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사장님, 찾으라고 하신 자료 가져왔습니다.”이현은 그제야 돌아서서 자료를 받았다. “순조로웠어? 그쪽에서 널 괴롭히진 않았고?”“아니요, 손이현 사장님의 일이라고 하니 아주 협조적이었습니다. 예전의 ‘한 팀장님’ 덕분에 저쪽 사람들이 아직도 사장님을 존경하고 있더라고요.” 성훈은 웃으며 말하려다가 잠시 멈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오늘은 왜 마스크를 안 쓰셨어요...”성훈은 이현이 얼굴을 다친 후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얼굴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