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왜냐하면 임모연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30분 후, 서여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하연아, 임모연이 사라졌어.]이에 하연은 놀라며 물었다.[뭐라고?]그러자 여은이 설명했다.[내 사람들이 계속 따라다녔는데, 병원 입구에서 모연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검은색 자동차에 태워졌어.]하연은 이름 모를 무언의 분노를 느꼈다.[납치됐다고?][상대방은 훈련받은 사람들처럼 보였어. 내 사람들이 전혀 반응하지 못했고 그대로 홀연히 사라졌어.][알겠어.]하연은 전화를 끊고 깊은 생각에 빠졌고 수술실 문을 바라보았다. 민진현은 여전히 수술 중이었다. 모연이 병원에 나타난 것은 모연과 민씨 가문의 관계가 깊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누가 데려갔을까?’...밤이 깊자 병원은 조용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병실에서는 기계의 소리만 들렸다. 그때, 한 사람이 비상구에서 나타났는데 그 여자는 마스크를 쓰고, 온몸을 감싸고 있었으며, 눈만 드러나 있었다. 이윽고 그 여자는 VIP 병실로 들어갔다. 모연은 조용히 걸으며, 병상에 누워 있는 민진현에게 다가갔고 눈은 삽시에 붉어졌다.“할아버지, 저 왔어요.”모연은 민진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고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자기를 아껴주던 할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할아버지, 안심하세요. 제가 민씨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할아버지의 사업을 다시 일으킬 거예요. 그리고 할아버지를 상처 준 사람들에게 복수할 거예요.”“할아버지, 기다려 주세요! 할아버지가 나을 때까지 제가 지켜드릴게요.”모연은 말을 마치고 눈물을 닦으며 떠나려 한 그 순간, 병실의 불이 켜졌고 모연은 깜짝 놀랐다.“누구야?”모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가에 서 있는 한서준을 발견했다. 서준은 문틀에 기대어 모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빛은 깊고 의미심장했다.“당신이 여기 왜 있는 거죠?” 모연은 불쾌하게 말했고 들킨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할아버지는 아
만약 민씨 가문이 갑자기 파산하지 않고, 민혜경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고, 민혜주라는 사람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혜주야, 혜경의 일에 대해 정말 미안해.” 서준은 더 이상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한 마디 사과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하, 정말 드문 경험이네요! 당신에게서 이 사과를 들을 수 있다니. 하지만 난 당신의 사과가 필요 없어요.”“난 당신이 민씨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걸 도와주길 원해요. 함께 최하연을 상대해서 완전히 짓밟아버리고 싶어요.”“난 걔를 완전히 파괴하고, 본인의 가문이 무너지고 사람이 망가지는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어요.”혜주는 한 마디 한 마디를 확고하게 말하자 서준은 눈을 좁히며 단호하게 요구를 거절했다.“내가 있는 한, 최하연에게 손대지 마.”한 마디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히자 혜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업계에서 무적의 전략을 구사하는 서준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한서준, 당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나를 도와주든지, 아니면 내가 최하연을 확실하게 밟게 하든지.”“나는 상관없어요. 이 목숨은 별로 소중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최하연은 다르잖아요. 명색의 최씨 가문의 금지옥엽인데, 당신도 걔가 젊은 나이에 꽃다운 인생을 잃는 걸 원하지는 않잖아요?”결국 이 말을 듣자 서준의 얼굴이 확 변했다. 그리고는 혜주의 팔을 잡아채며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민혜주,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혜주는 서준의 반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서준의 반응이 클수록, 서준이 하연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에 혜주는 웃었다.“걱정 마요. 최하연의 목숨은 당분간 놔둘 테니까. 하지만 걔의 모든 것을 파괴해서, 끝까지 추락하는 고통을 맛보게 할 거예요.”말을 마친 혜주는 서준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그리고 서준은 헤주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점점 더 깊은 생각에 잠겨 벽을 세게 쳤다....다음
“모든 일에는 상응하는 대책이 있어.”단순한 말에 최하연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임모연이 무엇을 하든, 자신은 신중하게 대처할 것이라고.오전 9시.DS그룹에서 하연은 하이힐을 신고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하연이 나타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정태훈 비서가 다가왔다.“사장님, 돌아오셨군요.”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로 들어갔고 태훈은 옆에서 오늘의 일정을 보고하기 시작했다.“오전 10시에 화상 회의가 있고 11시에는 SS그룹 사장님과의 만남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장소는 22층 회의실입니다.”엘리베이터 천천히 올라가면서, 하연은 일정을 다 듣고 가볍게 대답했다.“알겠어요.”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하연은 밖으로 나갔는데 뜻밖에도 호현욱 이사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최 사장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드디어 회사에 오셨네요. 전에 사장님이 한 주 동안 보이지 않아서,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했습니다.”이에 하연은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말했다.“호 이사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개인적인 일로 처리할 일이 있었을 뿐이에요.”그러자 호현욱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사장님, 사적인 일이 잘 해결됐는지요?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말씀하세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호현욱은 마치 장년의 위치에서 하연을 챙기듯 행동했다.“아, 사장님. 정 비서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D시 프로젝트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며칠 전 광산이 붕괴되었는데,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손해가 컸고, 회사의 수익에 큰 타격을 줄 것 같습니다.”하연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어두워졌고 곧 태훈에게 물었다.“정 비서, 이게 사실인가요?”이 상황은 복잡했기에 태훈은 호현욱의 앞에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그저 짧게 말했다.“사장님, 이 일은 나중에 자세히 보고드리겠습니다.”그러자 옆에 있던 호현욱은 웃으며 말했다.“정 비서가 요즘 바빴던 것 같습니다. 보고를 잊은 것 같은데, 지금 말씀드려도 늦지 않았어요.”“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호 이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사이가 너무 험악해지지 않게 하는 게 좋겠죠.”하지만 곧바로 하연은 가방에서 USB를 꺼내 들었다.“호 이사님, 저도 대국적인 차원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몇 가지 일은 아직 밝히지 않았지만, 미리 알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호현욱은 최하연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연의 손에 있는 USB를 바라보며 물었다.“최 사장님, 이게 무슨 뜻이죠?”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USB를 호현욱에게 건네고는 조용히 속삭였다.“호 이사님, 당신과 조정순 님이 회사의 오랜 임원이시긴 하지만, 회사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특히 조정순 님이 수년간 재무부에서 한 일들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이 말에 호 이사의 얼굴색이 순간 변했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제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이 USB 안에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집에 가서 잘 연구해 보세요.”호현욱은 무심결에 USB를 꽉 쥐며 긴장한 채 물었다.“이 USB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거죠?”이에 하연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호 이사님, 이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입니다. 저는 회사의 입장을 고려해 지금까지 눈감아주었지만, 제가 가진 증거만으로도 조정순 님은 몇 년간 감옥에 가게 될 겁니다.”그러자 호현욱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하연이 젊고 경험이 부족한 줄 알았지만, 하연이 자기 아내에 대한 증거를 이렇게 많이 쥐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 증거들, 어디서 얻은 거죠?”호현욱은 애써 침착한 척하며 하연을 노려보았다.“호 이사님, 제가 어디서 증거를 얻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조정순 님이 DS그룹을 떠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증거를 경찰에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당신!”호현욱은 이를 악물고 화를 참으며 말했다.“알겠어요, 최 사장. 당신 말대로 하죠.”“잘됐네요.”하연은 잠시 멈추고 다시 말했다.“한 가지 더 말씀드리
태훈은 표정이 심각해지며 말했다.“사장님, D시 광산 붕괴는 매우 수상합니다. 현장에는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프로젝트 진행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사고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의 소행인가요?”그러자 태훈은 입을 굳게 다물고 말했다.“사장님, 현장의 흔적을 보면, 사고가 아닌 것 같습니다.”이에 하연은 눈이 차갑게 빛나며 말했다.“누군가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군요.”이내 하연의 얼굴에는 깊은 생각이 스쳤다.“이 일과 관련된 사람이 있나요?”“사장님, 이 일은 아직 조사 중입니다. 결과가 나오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그러자 하연은 손을 흔들며 태훈에게 물러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창밖에 보이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 휴대전화 벨소리가 하연의 생각을 방해했다.“최하연 씨, 만나서 얘기하죠?”전화 너머로 임모연의 목소리가 들리자 하연의 눈빛이 깊어지며 말했다.“임모연 씨, 무슨 일인가요?”“만나면 알게 될 거예요. 아니면, 무서워서 못 오겠어요?”이에 하연은 얼굴이 굳어졌다.“협박은 통하지 않아요.”이에 모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최하연 씨, 우리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겠어요? 안 오면 후회할 거예요.”모연은 전화를 끊었고, 위치를 보내왔는데 DS그룹 맞은편 상업 건물이었다.30분 후.하연은 모연과 약속한 카페에 도착하자 모연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최하연 씨, 드디어 오셨네요.”하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모연, 아니, 제가 다른 호칭으로 불러야겠군요.”그러자 모연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최하연 씨, 우리 솔직해지죠. 내 정체를 이미 눈치챘겠죠? 나도 숨길 필요가 없네요. 맞아요, 나는 민혜경의 언니이자, 그동안 사라졌던 민씨 가문의 장녀, 민혜주예요.”이 말에 하연은 놀라지 않았다.“그래서, 민혜주 씨가 오늘 나를 왜 만나자고 한 거죠?”“말을 빙빙 돌지 않을게요. 혜경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요. 당신들 최씨 집안이 혜경이를 어디로 데려갔죠?”이에 하연은 차갑게
“믿거나 말거나, 그것은 당신의 문제예요.”“하, 최하연 씨, 당신 정말로 오만하네요. 당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할까 두렵지 않아요?”이에 하연은 살짝 웃으며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그럼 민혜주 씨가 그럴 능력이 있는지 한번 보죠.”그러자 혜주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최하연 씨, 이미 말한 것처럼, 오늘부터 제 임무는 당신과 DS그룹의 모든 프로젝트를 공격하는 거예요. 당신을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뜨리겠어요.”이에 하연은 고개를 들고 혜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저에게 선전포고하는 건가요?”이에 혜주는 무심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그렇다면 어쩔 건데요? 또 하나 알려주자면, 당신의 사업뿐만 아니라 당신의 남자도 빼앗을 수 있어요.”“당신은 왜 한서준이 예전에 그렇게 혜경이를 특별히 돌봐줬는지 알아요? 심지어 당신과 이혼까지 하면서 말이죠?”혜주는 자랑스럽게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그건 내가 그 사람에게 우리 가족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 조씨 집안을 위해 당신과 반목하게 됐죠. 최하연 씨, 당신은 한서준을 그렇게 사랑했으니, 그 당시 정말 고통스러웠겠죠?”하연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차분했다. 예전의 그 고통스러운 시간은 이제 하연에게 아무런 파장을 일으키지 않았고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곧 하연은 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 혜주의 도전은 흥미로웠고, 투지를 불태우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민혜주 씨, 한서준을 그렇게 좋아한다면 당신에게 드리죠.”“뭐라고?”혜주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하연의 눈빛에서는 서준에 대한 어떤 애정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마치 진심으로 그를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이해 못 했나요? 다시 말해드릴까요?”“하, 최하연 씨! 당신은 그렇게 한서준에게 열렬하게 매달렸었잖아요. 정말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나요?”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이미 마음의 평안을 찾은 듯했다. 비행기 사고에서 생명을 위협받던 순간부터, 그리고 서준의
서준은 표정을 굳히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민혜주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여자로서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건, 최하연은 당신에게 전혀 감정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만 이쯤에서 포기해요.”혜주의 말이 서준에게 자극이 된 듯했고 바로 혜주의 말을 끊었다.“그만해, 혜주야.”“왜요? 이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요?”이에 서준은 말없이 혜주를 쳐다보았다. “악행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벌을 받게 될 거야. 만약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 내 형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그 사람 얘기하지 마요!”혜주는 크게 소리치며 감정이 불안정해졌다.“내 앞에서 그 사람 얘기하지 말라고요.”혜주는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고 다시 한서준을 돌아보며 거의 폭발할 듯한 분노로 말했다.“만약 나를 도와주고 싶다면, 내 회사에 2천억의 유동 자금을 투자해요. 그렇지 않으면 최하연과 함께 무너뜨릴 거니까.”돈 얘기가 나오자 서준은 주저하지 않았고 바로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서명하고 혜주에게 건넸다.“이게 마지막이야.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하연을 건드리지 마.”말을 마치고 서준은 수표를 헤주의 손에 쥐어주고 돌아섰다. 혜주는 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에 증오의 불꽃이 일었고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자 빳빳했던 수표는 곧바로 구겨졌다....카페에서 나와 하연은 잠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고 처음으로 피곤함을 느꼈다. 마치 지친 새가 쉴 곳을 찾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자 곧, 한 사람이 하연의 시야에 들어왔는데 하연은 순간 자기 눈을 의심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자, 부상혁이 이미 자신의 앞에 와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하연을 바라보고 있었고 눈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여기서 뭐 하고 있어?”이에 하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오빠, 여기 왜 있어요? 저 착각한 줄 알았어요.”상혁은 손을 내밀어 하연의 손을 잡았다.“정 실장이 말하길, 네가 회사에서 급히 나갔다고 하더라. 네가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와봤어.”
“저녁에 비즈니스 파티가 있어. DS그룹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접촉할 때가 되었으니, 가볼래?”최하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로 대답했다.“좋아요. 하반기 실적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기회를 이용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발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저녁 7시.B시에서 가장 화려한 지역에 위치한 헬튼칠성호텔은 지금 불빛이 찬란했고, 오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 비즈니스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B 시에서 손꼽히는 유명 기업들이다.다시 말해, 이 파티의 입장권을 얻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산을 증명하는 셈이었고 당연히, HT그룹도 초대 명단에 있었다.구동후는 한서준의 양복 넥타이를 정리해 주며 매우 공손하게 말했다. “대표님, 오늘 밤 비즈니스 파티는 FL 그룹이 주최하는데, 하연 씨도 참석할 것 같습니다.”이에 서준의 손이 멈칫하더니, 깊은 눈으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 담담하게 말했다. “기사에게 출발 준비를 하라고 해.”이에 동후의 눈에 놀람의 빛이 스쳤다. 서준이 하연의 소식에 이토록 담담하게 반응하다니? 동후는 의아해했지만, 얼굴에 전혀 내색하지 않고 그저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대표님!”서준이 방에서 나오자, 가득 꾸민 듯한 이수애와 맞닥뜨렸고 서준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엄마, 어디 가시려고요?”이에 이수애는 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민씨 집안 아가씨가 나를 파티에 초대했어. 그래서 나도 나가서 사교 좀 하려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손해 볼 건 없으니까.”“민씨 집안 아가씨? 누굴 얘기하시는 거예요?”이에 이수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서준아,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아가씨 내가 네게 소개해 주려던 상대잖아? 국제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야.”이수애의 듣고서 서준은 바로 깨달았고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 “엄마, 최근에 인터넷 안 하세요? 아니면 뉴스를 안 보세요? 그 국제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는 그저 표절자일 뿐이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