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경을 본 배예린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이 아이가 정말 자기 아들 진지윤일까? 이 아이가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던 진지윤일까? 예린의 얼굴에는 믿기지 않는 표정이 떠올랐다. 곧이어 최하연을 향해 고마움의 눈빛을 보내자 하연은 지윤의 손을 잡고 말했다.“지윤아, 넌 정말 훌륭한 아이야!”지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응답하자 예린은 매우 흥분했다. 지윤은 어릴 때부터 한 번도 낯선 사람과 이런 상호작용을 한 적이 없었지만, 하연은 해냈다. 이로 인해 예린의 마음속에는 하연에 대한 감사함이 가득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지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우리도 지윤을 문제가 있는 아이로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이에 예린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알아요. 잘 알아요.”오늘 예린에게서 모연에 관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 방문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배예린 씨,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말을 마치고 하연과 부상혁은 뒤돌아 나섰고 두 사람이 서점 문 앞에 다다르자 예린이 급히 따라왔다.“잠깐만요!”이에 하연이 발걸음을 멈추자 예린이 달려와서 말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지금의 모연은 가짜예요!”이 말을 듣자 하연의 마음이 두근거렸고 이미 이 가능성을 예상했지만, 여전히 진실을 알고 싶었다. 예린은 주위를 둘러보고 작게 말했다.“나를 따라오세요.”하연은 상혁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고,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예린은 돌아서서 서점 문을 닫고 진지윤을 직원에게 맡겼다. 이후 지윤은 하연과 상혁을 데리고 나섰다.가는 길에 하연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배예린 씨, 어디로 데려가시려는 건가요?”그러자 예린은 대답했다.“가보면 알게 될 거예요.”하연은 더욱 호기심이 생겼고 기대감도 커졌다. 차는 천천히 이동하며 예린이 알려준 위치로 가자 차는 교외의 한 곳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자, 하연은
배예린은 잠시 멍해 있다가 고개를 젓고는 묘비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몰라요.”이 대답은 최하연에게 약간의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곧이어 예린이 말했다.“하지만 내가 증명할 수 있어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그러자 하연의 눈이 다시 빛났는데 마치 한 줄기 희망을 본 것 같았다. 예린은 숨기지 않고 묘비 앞의 돌을 천천히 옮기며 작은 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이것들은 당시 교통사고의 정보와 사망 증명서, 그리고 모연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디자인 스케치예요.”하연과 부상혁은 눈을 마주치고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이윽고 하연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서류를 펼쳤다.“당시 교통사고로 모연은 심하게 화상을 입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아 삶의 의지를 잃었어요.”“그리고 의사들이 전력을 다했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했죠.”이에 하연은 할 말을 잃었고 병원에서 발급된 여러 자료와 사망 증명서를 보며 마음이 요동쳤다.“그렇다면 지금의 임모연은 언제부터 대신하게 된 거죠?”하연은 의문을 품고 물었다. 가짜 임모연의 진짜 정체에 대한 추측이 더욱 깊어졌다. 예린은 휴대전화를 꺼내 빠르게 화면을 조작했다. 곧 휴대전화를 최하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가짜 임모연이 교통사고 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영상이에요. 날짜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5년 전 일이죠.”‘5년 전?’하연은 더욱 놀랐는데 5년 전의 일과 사람들을 기억하기는 힘들었다. 그 당시 하연은 콜롬비아에서 공부 중이었는데 어떻게 엮이게 된 걸까? 이때 상혁이 갑자기 말했다.“5년 전에 계획된 일이니, 참으로 신중하게 준비된 것 같군.”하지만 하연은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상혁 오빠! 이 사람의 목적이 뭘까요?”“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큰 계획을 세운 거라면, 단순한 이유는 아닐 거야. 하연아, 네가 혹시 예전에 누구와 원한이 있었는지, 아니면 최씨 집안과 경쟁 관계에 있었는지 생각해 봐.”상혁의 한마디에 하연은 머리를 한 대 맞은
“최하연 씨, 우리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2천억 준비됐나요?” 그러자 하연은 냉정하게 웃으며 말했다.“임모연 씨, 왜 그렇게 서두르죠? 고작 2천억일뿐인데.”전화기 너머에서 모연은 크게 웃었다.“역시 최씨 집안의 큰딸은 대단하군요. 하지만 시간 내에 돈이 준비되지 않으면, 봐주지 않을 거예요.”하연은 손목 시계를 보며 말했다.“약속까지 15시간 남았어요. 모연 씨, 서두르지 마세요. 늦든 빠르든 올 것은 올 테니까요.”“좋아요. 그럼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어요.”말을 마치자,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하연은 휴대전화를 꼭 쥐었다.“상혁 오빠, 우리 B시로 돌아가요.”이제 이 가짜와의 게임을 제대로 즐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최하연 씨, 내가 아는 건 다 말했어요. 다른 일이 없으면 이만 가볼게요.”예린이 하연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 부상혁이 말했다.“배예린 씨, 걱정하지 마세요!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킬 거예요.”말을 마치고 상혁은 명함을 꺼내며 말했다.“이 번호로 소진환에게 연락하세요.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예요.”예린은 명함을 받고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예린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하연과 상혁도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하연과 상혁이 떠난 후, 멀지 않은 곳에서 예린이 모퉁이에서 다시 나왔는데 옆에는 마스크와 가면을 쓴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예린에게 수표를 건네며 말했다.“이 돈은 오늘 당신의 보수입니다. 평생을 편안하게 살기에 충분할 겁니다.”예린은 눈을 내리깔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표를 받지 않자 남자는 성급하게 말했다.“돈을 받아요. 그리고 당신 아이와 함께 이곳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세요.”예린은 입술을 꼭 다물고 결국 수표를 받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 멀리 떠날게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남자는 이 대답에 만족한 듯했고 하연과 상혁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사라졌다....사설 헬리콥터장,헬리콥터의 프로펠러
말을 마치며, 소진환은 둘에게 손을 흔들었고 최하연은 손을 내밀며 무기력하게 말했다.“오빠! 진환 씨가 내 친구를 좋아하는 건가요?”이에 부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잘 생각해 봐. 누굴까?”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랑은 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그 사람이 직접 겪어봐야 알겠죠. 그냥 두고 보죠.”상혁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이제 가자.”사설 비행기는 콜롬비아를 떠나 B시로 향했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비행기는 날아갔다. 밤이 깊어 B시에 도착했을 때, 정예나와 서여은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고 하연을 보자 예나가 먼저 뛰어와 하연을 꽉 껴안았다.“하연, 드디어 돌아왔구나.”하연은 예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괜찮아! 내가 돌아왔잖아? 게다가 이번에 큰 성과를 거뒀어.”예나는 하연을 놓으며 급히 물었다.“원본 디자인 도안을 찾은 거야?”이에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 뭉치를 꺼내 여은에게 건넸다.“여은, 이제 네 차례야.”여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정도쯤이야! 어떤 뉴스로 주목받고 싶은지 말해줘.”“임모연과 10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10시 30분에 기사로 올려줘.”그러자 여은은 OK 사인을 하며 말했다.“맡겨줘!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하연은 상혁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서로 시그널을 보냈고 아마 내일은 힘든 싸움이 될 것이었다.다음 날.모연이 약속한 장소는 B시의 파이브 빌딩이었다. 오전 10시, 하연과 상혁이 정시에 도착했다.“임모연은 어디 있죠?”하연이 묻자 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문을 열었고 하연과 상혁은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는 화려한 사무실이 펼쳐져 있었는데 장식은 매우 화려했다. 모연은 천천히 의자를 돌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정말 시간 맞춰 왔네요.”모연은 하연을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최하연 씨, 빈손으로 왔나요? 내가 원하는 돈은 어디 있죠?”그러자 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하연은 웃었다.“왜 그래요? 임모연 씨, 자기의 스케치북을 모른다고요?”그러자 모연의 눈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스쳤다.“이게 내 스케치북이라고요?”그러자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하게 말했다.“맞아요! 일부러 콜롬비아 대학, 우리의 모교에 가서 이 스케치북을 찾았어요. 어때요? 과거의 작품을 보고 싶지 않나요?”“당신이 콜롬비아 대학에 갔다고요?”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갔었어요. 원래는 내 결백을 증명할 증거를 찾으려 했는데, 더 흥미로운 것을 찾았죠.”모연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하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뭘 찾았다는 거죠?”그러자 하연은 손에 든 스케치북을 흔들며 무표정하게 말했다.“여기 다 있어요. 보고 싶지 않나요?”모연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하연이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다. 이윽고 모연은 손을 내밀어 하연의 스케치북을 잡아채듯 가서 스케치북을 펼쳤다.눈앞에 펼쳐진 것은 여러 장의 패션 디자인 그림이었다. 과거의 모연은 디자인에 매우 재능이 있었고 모든 그림에 임모연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모연은 이 디자인들이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연은 아무 망설임 없이 스케치북을 닫았다.“최하연 씨, 정말 애썼군요. 대학 시절의 디자인을 찾아내다니, 하지만 이게 뭘 증명하죠? 당신이 표절했다는 사실은 변함없어요. 이걸로 뭘 증명할 수 있나요?”그러자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야기가 좀 재미있어지네요. 하지만 모연 씨, 저는 한 가지가 궁금해요. 한 사람이 어떻게 두 가지 다른 디자인 스타일을 가질 수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나요?”이 말이 나오자, 모연은 손에 든 스케치북을 꽉 쥐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하연은 모연의 반응이 정말 예상한 대로였다.“그래요? 그러면 당신은 5년 전의 디자인을 제대로 보지 않았군요. 임모연 씨, 비록 당신이 여러 면에서 진짜 임모연을 닮으려 노력했다는 건 알겠어요.
모연은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웃음소리는 매우 날카롭고 불쾌해 듣는 사람은 저절로 이마를 찌푸렸다. 한참을 웃은 후에야 웃음을 멈추고는 최하연을 뿌리치며 냉정하게 말했다.“대낮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는 거죠? 내가 임모연이 아니라면, 난 누구란 말이죠?”“그것도 내가 알고 싶은 부분이죠.”하연은 차분하게 모연을 응시하며 말하자 모연은 비웃으며 말했다.“최하연 씨, 이게 당신이 찾은 증거인가요? 내 생각엔 이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해요.”“이게 당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아니에요! 당신이 표절한 것은 사실이니까, 더 이상 억지 부리지 말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말아요.”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신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가요?”그러자 모연은 정정당당하게 말했다.“뭘 인정하라는 건가요? 내 신분을 내가 증명해야 하나요? 당신이 내 몸에 화상 자국을 보지 못한 건 내가 피부 이식 수술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상처가 잘 가려졌죠.”“그리고 당신이 말한 혈액형! 아마 입학 등록 시 잘못 기재되었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말한 내 디자인 스타일의 차이, 이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각자 다른 시기에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어요. 예전엔 미숙했지만, 지금은 성숙해진 것이죠. 그게 이상한가요?”모연은 하나하나 반박하며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모연의 이런 태도에 하연은 강한 정신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손뼉을 쳤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울리자, 모연은 당황했다.“왜 손뼉을 치는 거죠?”이에 하연은 느긋하게 대답했다.“임모연 씨, 당신의 연기력은 정말 최고예요. 배우가 되지 않은 것이 아쉽네요. 지금이라도 연기를 시작하면 오스카상을 탈지도 몰라요!”“서로 비슷하네요. 최하연 씨, 우리 1:1 아닌가요?”그러자 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아쉽게도 당신의 말솜씨로는 진실을 덮을 수 없어요. 아무리 당신이 진짜 임모연을
임모연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하, 최하연 씨,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차를 마실 여유가 있으시네요. 반 시간도 안 되어 네가 완전히 무너지는 걸 보게 될 텐데, 그때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요?”이에 하연은 태연하게 대답했다.“그래요? 그럼 두고 보죠.”하연의 말이 마치고 손목시계를 보자 시곗바늘이 정확히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에 하연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꽤 재밌는 시간이 다가왔네요.”모연은 최하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몇 분 지나지 않아 모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큰일 났습니다, 모연 씨! 문제가 생겼습니다.”전화기 너머의 말을 듣고 모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럴 리가 없어. 이건 말도 안 돼.”모연은 전화를 끊고 하연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이 모든 게 너 때문이야. 너, 이 악마 같은 년, 이렇게 잔인하게 굴다니.”그러자 하연은 차분하게 말했다.“임모연 씨, 너무 과장하지 마세요. 저는 그저 받은 만큼 돌려준 것뿐이에요.”모연은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렸으나, 뒤에 있던 경호원이 겨우 붙잡아주었다.“임모연, 당신은 나를 표절로 몰아넣으려고 했고, 이제는 진실이 밝혀졌어요. 누가 진짜 표절자인지 모두가 알게 됐죠. 유명한 디자이너 Jion은 그저 표절자일 뿐이었어요.”모연은 손을 꽉 쥐며 고개를 들어 말했다.“네가 어떻게 이런 증거를 찾았지?”분명 누군가 자신을 도와 모든 증거를 없애줬고, 심지어 한서준의 손에 있던 증거도 없앴는데, 하연은 어떻게 증거를 손에 넣었을까?“임모연 씨, 내가 어떻게 이 증거들을 찾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당신이 누구인지예요.”하연은 단호하게 말하자 모연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연이 이 정도까지 조사했지만, 자신의 진짜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희망을 보게 했다.“걱정하지 마, 최하연. 너는 언젠가 알게 될 거야.”모연은 별다른 의미를 담아 말했다.“오늘 이 싸움은 내가 졌어. 2천억은 내가 손에 넣지 못했어. 하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말했다.“민씨 가문?”“민씨 가문!”최하연의 눈에는 놀라움이 스쳤다.“오빠, 우리 생각이 일치하네요.”“방금 임모연은 계속 2천억에 대해 언급했어요. 우리와 2천억 금전 문제를 가진 사람은 민씨 가문밖에 없어요.”그러자 부상혁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지난번 민진현과의 2천억 지불 문제는 이미 상류 사회에서 소문이 퍼져 민씨 가문의 명성을 추락시켰다. 이후 민혜경의 일로 민씨 가문은 B시 부동산의 선두주자에서 파산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하연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다.“더군다나, 난 이미 최하민 대표와 연락을 취했어. 최씨 집안의 어떤 적도 이 일에 관여한 흔적이 없었어요. 이로 보아, 이 가짜 임모연은 민씨 가문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어.”상혁의 추측은 하연의 생각과 일치했다.“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요. 저 여자는 민혜경이 아니에요. 이 가짜 임모연은 5년 전부터 사칭해 왔으니까.”“민혜경에게 자매가 있었나요?”하연의 이 질문은 핵심이었다. 이 가짜 임모연이 민씨 가문과 관련이 있다면, 하연에 대한 적대감은 확실히 민씨 가문 사람임을 의미했다. 그리고 혜경은 민씨 가문의 유일한 딸이 아닌 것 같았다.“지금 바로 민씨 가문의 최근 세대 중 25세 전후의 여성을 조사하게 할게.”이에 하연이 말했다.“오빠, 만약 저 여자가 민씨 가문의 사람이면, 굳이 조사할 필요 없어요. 제 생각에는 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고 있을 거니까.”그러자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민진현?”하연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오빠, 당신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네요. 정말 무엇도 숨길 수 없겠어요.”상혁의 눈에는 애정이 담긴 미소가 떠올랐다.“지금 바로 사람들을 보내서 알아볼게.”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상혁의 부하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민진현의 최근 상황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고 상혁은 첫 번째 정보를 하연에게 건넸다.“민씨 가문이 파산한 이후, 민진현은 세차장에서 일
하연이 눈을 떴을 때, 도시는 이미 밤의 장막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는 흐릿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몸이 묵직하게 아픈 것을 느꼈다.오랜만에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던 상혁은 특히나 격렬했다. 소파에서 시작해 주방, 다시 안방, 마지막으로 욕실까지, 온 집안의 모든 공간을 사용했다. 하연의 온몸은 마치 압사당한 듯 피곤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방 안에는 은은한 아로마 향이 퍼져 있었고, 어둑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공기 중에는 이미 사랑의 흔적이 사라졌고, 상혁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하연은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마치 천장이 아닌 신들의 조각상이 장엄하게 자리하고 있는 듯 보였다. 신들은 어두운 밤 속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하연의 마음은 쓸쓸했다. 어젯밤, 둘이 동시에 절정을 맞았을 때, 상혁이 그녀의 손을 잡고 신들을 가리켰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극도의 미친 감정이었다.하연은 다시 샤워할 필요는 없었다. 상혁이 욕실에서 이미 그녀를 씻겨주었기 때문이다.하연은 침대에서 내려왔으나,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겨 발코니 쪽으로 다가갔고, 그곳에서 외부로 통하는 또 다른 문을 발견했다. 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소리가 들려왔다.“네 아버지를 조사해보라고 했잖아. 했어?” 조진숙의 목소리였다.하연은 걸음을 멈췄다.조진숙이 갑자기 찾아왔고, 상혁은 서둘러 셔츠를 하나 걸치고 나갔다. 그와 하연이 얽히며 셔츠 목 부분이 구겨져 있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사했어요. 고나희의 사고는 단순 사고였고, 아버지와는 관련이 없어요.”“고경수가 비리로 돈을 챙긴 걸 얼마나 알아냈어? 난 그 명목상의 숫자만 믿을 수는 없어. 배를 채운 흔적이 있는지 다 밝혀냈어?” “DL그룹은 아버지 거예요. 아버지가 그런 실수를 하실 리 없죠.” 조진숙은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많은 시련을 겪어온 여성이기에,
“왔어요?” 상혁은 놀라움이 가득한 여자 목소라가 들렸다. 상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주방에서 서둘러 나오는 하연이 국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연이는 웃으며 물었다. “왜요?”국이 너무 뜨거웠던지, 그녀는 재빨리 그릇을 내려놓고 귀를 만지며 식히고 있었다. 상혁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목소리까지 차가웠다. “정말 안 가고 기다리고 있었어?” 하연은 의아해하며 답했다. “당신이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당신이 너무 안 와서, 심심해서 뭐 만들어 먹을 게 없나 하고 요리 만드는 법을 찾아보다가 뭘 좀 만들어 먹었어요. 다행히 냉장고도 가득 차 있었고 장비도 다 갖추어져 있어서 문제없었어요.” 그녀가 말할 때, 분명히 기쁜 마음과 행복한 표정이었다. 하연이 말을 마치자마자, 상혁은 두세 걸음에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는 손을 잡고 그대로 바로 하연이를 품 안에 가둬버렸다. 상혁의 힘은 상당히 강했고, 하연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 “음... 왜 그래요?” 하연은 상혁의 품에서 안정을 느꼈지만, 그의 강한 포옹에 약간 당황했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평온한 향기가 상혁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상혁은 눈을 감고, 목소리가 거칠고 낮았다. “난 네가 간 줄 알았어.” 하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의 옷깃을 살며시 잡았다. “기다린다고 말했잖아요. 그러니 안 갔죠.” 그녀는 상혁의 감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 상혁은 본가에서 싸움 끝에 기분이 상한 채로 돌아왔다. 부남준은 송혜선을 보호하며 소리쳤다.“형, 이 아이도 한 생명이에요! 아버지의 혈육이잖아요!”상혁은 바로 남준의 옷깃을 잡고 주먹을 날렸다. 집사가 나서서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남준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상혁의 목에 난 상처를 알아보고 하연은 황급히 그를 밀어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죠? 교통사고 처리하러 간
하연은 상혁의 집에서 밤을 지새웠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녘에 깨어나니 집안은 고요했고 상혁이 돌아온 흔적은 없었다. 그녀는 뒤척이며 잠을 청할 수 없어 핸드폰을 열었고 보니, 마침 서여은이 사진을 올려놓았다. 외부 취재 중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에는 ‘큰 뉴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두 시간 뒤, 여은이 다시 글을 남겼다. [뉴스가 없어졌어.]하연은 궁금해졌다. [어떤 뉴스?][DL그룹과 관련된 일이야. 전에 조사받았던 고경수 기억나지? 그 사람 딸이 죽었대. 원래 뉴스에 나올 예정이었는데, 누군가 큰돈을 써서 기사를 막아버린 모양이야.]하연은 짐작할 수 있었다. DL그룹과 관련된 일이라면 상혁이 처리했을 가능성이 컸다. 여은이 사건 현장의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사진 속 여성은 운전석에 앉아있었고, 절반가량의 얼굴이 드러났는데 표정은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처참했다. 하연은 사진을 확대했다. [이 여자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여은이 바로 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나희야, 고경수의 딸이잖아. 애지중지하게 키워졌는데 세상 물정은 잘 모르는 아이였지. 그런데 네가 정말 고나희를 본 적 있어?]“한 번 스쳐 지나가며 본 적 있어.” 하연은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고, 드디어 생각이 났다. 얼마 전 정다영을 만나러 호텔에 갔을 때, 고나희와 스쳐 지나갔었다. 그때 고나희가 하연과 부딪혔고, 부남준이 다정하게 하연을 붙잡아주며 고나희에게 아주 화를 내면서 잘 보고 다니라고 말했다.하연은 그때 남준이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반박하려다, 남준의 시선이 고나희를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고나희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고, 이후 하연과 남준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저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하연은 고나희를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그녀의 사망 소식으로.[참, 고나희의 뱃속에 아이도 있었다고 하더라.]하연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몇 개월이었는데?”[5,6개월쯤 되었을 거야.]하지만
“형님 얼굴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네요.” 상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만, 아침부터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해. 어서 앉아라.” 부동건이 꾸짖었다. “어젯밤에 술 마셨어요?” 남준은 대수롭지 않게 앉으며 말했다. “접대하는 자리여서 어쩔 수 없었다.” “남자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상혁이 처럼 남준이 너도 당연히 그런 자리는 해야 해.” 송혜선은 웃으며 중재했고, 말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었다. 상혁은 집사가 가져온 우유 외에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다. 반면 부남준은 여유롭게 식사를 이어갔다. “형, 들었어요. 고경수의 딸이 사고를 당했다면서요.” “소식 한번 빠르군.” “검사 보고서도 확인했어요. 그 여자아이, 임신까지 하고 있었다면서요. 그런데 아버지가 누군지는 밝혀졌나요?” 이 질문은 부동건의 주의를 끌었다. “아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상혁아, 왜 나한테는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은 거냐?” “떳떳한 사이가 아닌 것 같아서 말씀들이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잘못된 남자를 믿는 일은 흔합니다.” 상혁은 남준을 힐끗 보고 말했다. “본인이 굳이 알리지 않았다는 건, 아버지가 누군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고경수의 집안은 이미 파란 속에 휩싸여 있으니, 괜한 일을 벌이기보다는 조용히 지나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준은 아침을 먹으며 웃었다. “고경수가 DL그룹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을 누군가 알았고, 그걸 감추기 위해서 자기 딸을 이용해 DL그룹 고위 간부에게 연결하게 해줘서 둘 사이에 아이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냥 떠본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부동건은 남준의 말의 조금씩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계속해 봐라.” “제 말은, 고경수가 자기 딸을 이용해 누구에게든 신세를 졌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상혁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상혁의 하얀 손가락 관절이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무심한 어조로
“지금 정규인은 어디에 있나?” “제가 확인한 바로는, 아직 동남아에 있습니다.” 상혁은 외투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현장에 가보자.” 나가기 전에 상혁은 다시 침실로 발길을 돌렸다. 하연은 그네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뒤에서 하연의 긴 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DL그룹 내부에 문제가 생겨서 처리해야 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기다려줄래?” 하연은 상혁의 눈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욕망을 알아차렸다. “기다릴게.”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나갔다. 상혁이 탄 검은 차가 빠르게 출발했고,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던 차가 상혁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뒷좌석에 있던 남자는 긴장을 풀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잘했어.” 옆에 있던 여자는 몸을 떨며 좌석에서 미끄러져 반쯤 무릎을 꿇은 자세로 말했다. “상무님, 정규인의 아내가 진작부터 자기 남편과 고경수의 딸에 대한 불륜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경찰이 정규인의 아내를 의심하지 않을까요?” 부남준은 그녀를 흘끗 보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정규인의 아내는 오늘 밤 밖에서 돈 쓰느라 많이 돌아다녔어. 인증과 물증이 다 있지. 이번 사고는 단순한 사고일 뿐이지, 인위적인 것이 아니야.” “황연지.” 남준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연지의 턱을 들어 올렸다. “부상혁에게도 그렇게 말해.” 연지는 약간의 공포를 담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재무 보고서를 받았어요. 아마 저를 의심할지도 몰라요.” “네가 부상혁에게 충성을 다 바치는데, 왜 너를 의심하겠어?” 남준은 흥미로운 듯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날 최하연을 다치게 한 건 정말 잘했어.” 그날 그 일은 바로 남준이 직접 지시한 것이었다. 연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사람... 이미 저를 의심하고 있어요. 평소라면 제가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는 걸 알 거예요. 게다가, 그 사건은 그 사람과 하연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잖아요?
알고 보니 하연이가 졸업하던 그 해부터 상혁은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오늘까지 ‘여주인’의 도착을 기다렸던 것이다. 상혁은 하연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마셔, 그리고 자. 진정 효과가 있는 와인이야.” 오늘 상형이가 고른 와인은 안정을 돕는 효능이 있는 와인이었다. 하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도 내 수면 패턴을 기억하고 있다니, 놀랍네요. 나는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주슬기는 당신을 위해 꿀물까지 챙겨주더군요.” 상혁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 안 마셨잖아.” 이 대답에 만족한 하연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위 안 좋은 거 알면서도 그렇게 술을 마셨어요? 나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죠?” “맞아.” 상혁이 솔직히 인정했다. “널 화나게 하려고 했어. 넌 신경도 안 쓰잖아.” “누가 신경 안 쓴다고 그래? 나 이렇게 와 있잖아...”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상혁은 하연을 품에 안아버렸다. “손이현이 바로 한명준이라는 걸 너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네가 한명준과 함께 떠날까 봐 두려웠어.”그 짧은 한마디가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하연은 그의 품에 단단히 안겨 있으며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나를 믿지 못했어요?”“아니, 나 자신을 믿지 못한 거야.”하연은 잠시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내가 봐도 상혁 오빠는 거의 완벽한 사람인데, 오히려 자신을 믿지 못했다니...’상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네 앞에 서면, 난 자신감이 없어.”그 말을 듣고 하연은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 했지만, 상혁은 오히려 더 단단히 그녀를 끌어안았다.“하지만 요즘 난 다시 우리 하연이 앞에서 자신감을 되찾았어.”하연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이번에 자신이 상혁에게 먼저 다가갔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으며, 상혁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까지 모두 보여주었으니까.“하지만 그럴수록 더 두려워졌어
상혁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하연의 눈물 어린 고백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하연의 모든 억울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당신이나 한명준이나 다 똑같아요!! 나를 이토록 오랫동안 속였어요!! 보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의도는 내가 다 알고 있었어요.” 하연이 한 걸음 더 다가가자, 상혁의 몸에서 진한 술향이 풍겼다. “하지만, 모든 게 밝혀진 후에도,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나를 위해 그랬다는 걸 알아요. 당신이 날 사랑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당신이 나를 떠나는 거죠?” 하연은 울기 시작했다. 그 눈빛은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최근의 갈등은 하연의 모든 안정감을 무너뜨렸다. 한때 하연은 상혁이 영원히 자신 곁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확신이 무너졌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누구도 한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하연도 상혁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며 문제는 자신에게 있었을 거라고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경계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다른 남자에게도 마음 한구석에 남겨진 미련이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상혁은 그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다시는 내 앞에서 울지 마.” 하연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남자에게 있어서, 사랑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여자의 눈물이었는데, 이제는 내 눈물조차도 통하지 않는 건가...?’ “오늘 저녁은 우연이었어. 주슬기가 나와 할 일이 있어서 만난 거지, 약속한 게 아니었어.” 상혁은 먼저 해명했다. 하연의 마음은 다시 조금 안도했다. “하지만 주슬기과 당신은...” “그럼 너랑 한명준은 또 무슨 사이인데?” 상혁은 하연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눈물을 많이 흘린 탓에 하연의 얼굴은 한층 더 차가워져 있었다.“양 국장님께서 같이 식사하자고 하셔서 간 것뿐이에요. 데이트는
“우리는 이제 가야 해요.” 하연은 이현에게 말했다. 그는 취기가 오른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하연아, 네가 춤추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어. 그해에 너 혼자 춤출 때, 나는 현장에 있었어. 그때 너를 알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쉈어.” 하연은 그가 말하는 순간을 기억해 냈다. 학교 축제 때, 하연은 독무를 했고, 무대 위에서 춤을 췄던 그 장면이었다. 이때, 하연의 등 뒤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하연은 몸을 숙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야 해요.” 이현의 손이 하연의 손가락을 잡았다. “우리 같이 가자.” 하연은 머리가 더욱더 아파지며 갑자기 테이블 위에 있던 꿀물을 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래요.” 더 이상 얽히지 않기 위해, 양국성은 안도한 듯 하연과 함께 이현을 부축하여 방을 나섰다. 문을 나서는 그 순간, 안에서 유리잔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쨍그랑’하고 잔이 깨지는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양국성은 하연과 이현이 같은 차를 타지 않았고, 하연은 이현을 부축해 차에 태운 후, 몸을 숙여 그의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며 말했다. “조심해서 집에 돌아가요.” “하연 씨.” 이현은 하연의 손이 다시 잡혔다. 하연은 눈을 들어 보았는데, 이현의 눈은 맑았다. “당신이 취하지 않았군요.” “마지막에 부상혁이 저에게 질문을 하나 했어요.” 하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현을 응시했다. “부상혁이 저에게 물어본 것, 바로 예전에 제가 하연 씨를 지키지 못했는데, 이제는 할 수 있겠냐고...” 하연의 손이 순간 떨렸다. 자기 손을 당겨 빼내고 돌아서려 했지만, 다시 이현의 손에 잡혔다. “저는 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저는 이제 능력이 있어요!! 예전처럼 우물쭈물하는 한명준이 아니에요!!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하연 씨와 함께하고 싶어요!!” 이런 말을 하는 이현을 바라보는 하연의 마음도 무척 복잡했다. “부상혁 씨는 뭐라고 했어요?”
하연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국내든 해외든, 저도 차를 좋아하지 않아요. 너무 쓰잖아요.” 상혁은 시선을 이현에게 옮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는 제가 주인이라, 한 상무님께 차를 대접하는 건 좀 그렇죠.”그는 슬기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제가 먼저 한 상무님께 한 잔 올립니다.”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만, 상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하연은 손에 힘을 주어 옷자락을 꽉 쥐었고, 마음속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그렇다면 저도 주인 중 한 사람인 셈이니, 비록 처음 만난 건 아니지만, 한 상무님과 최 사장님이 함께 있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니까 저도 한잔 해야겠군요.” 슬기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가 상혁 옆에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랜 부부처럼 자연스러웠다. 이현은 슬기의 말을 듣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며 또 잔을 받아들이고, 결국 두 잔을 기꺼이 마셨다. 그러나 슬기는 계속해서 말했다. “최 사장님은 차도 술도 안 마시나요?” “하연이는 안 마십니다.” 이현은 하연을 보호하듯 그녀를 뒤로 숨기며 말했다. “제가 대신 마시죠.” 결국 그는 총 네 잔을 마셨다. 하연은 분명 보았다. 상혁이 무심히 탁자에 올려놓은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부풀어 올랐고, 그건 상혁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것은 그가 곧 자신의 감정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할 전조였다. “훌륭한 주량이군요. 이렇게 된 이상, 한 상무님과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취하도록 달려보겠네요.” 상혁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술병을 집어 들고 병뚜껑을 따며 말했다. “몇 년 전에는 한 상무님과 직접 대면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기회를 잡았으니, 이것도 인연이겠죠.” 이현은 상혁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것은 오랜 세월 쌓인 불만과 질투였다. 단순히 이현의 신분이 아닌, 하연의 마음을 흔들었던 ‘한명준’의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하연을 어릴 때부터 지켜온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