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말했다.“민씨 가문?”“민씨 가문!”최하연의 눈에는 놀라움이 스쳤다.“오빠, 우리 생각이 일치하네요.”“방금 임모연은 계속 2천억에 대해 언급했어요. 우리와 2천억 금전 문제를 가진 사람은 민씨 가문밖에 없어요.”그러자 부상혁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지난번 민진현과의 2천억 지불 문제는 이미 상류 사회에서 소문이 퍼져 민씨 가문의 명성을 추락시켰다. 이후 민혜경의 일로 민씨 가문은 B시 부동산의 선두주자에서 파산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하연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다.“더군다나, 난 이미 최하민 대표와 연락을 취했어. 최씨 집안의 어떤 적도 이 일에 관여한 흔적이 없었어요. 이로 보아, 이 가짜 임모연은 민씨 가문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어.”상혁의 추측은 하연의 생각과 일치했다.“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요. 저 여자는 민혜경이 아니에요. 이 가짜 임모연은 5년 전부터 사칭해 왔으니까.”“민혜경에게 자매가 있었나요?”하연의 이 질문은 핵심이었다. 이 가짜 임모연이 민씨 가문과 관련이 있다면, 하연에 대한 적대감은 확실히 민씨 가문 사람임을 의미했다. 그리고 혜경은 민씨 가문의 유일한 딸이 아닌 것 같았다.“지금 바로 민씨 가문의 최근 세대 중 25세 전후의 여성을 조사하게 할게.”이에 하연이 말했다.“오빠, 만약 저 여자가 민씨 가문의 사람이면, 굳이 조사할 필요 없어요. 제 생각에는 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고 있을 거니까.”그러자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민진현?”하연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오빠, 당신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네요. 정말 무엇도 숨길 수 없겠어요.”상혁의 눈에는 애정이 담긴 미소가 떠올랐다.“지금 바로 사람들을 보내서 알아볼게.”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상혁의 부하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민진현의 최근 상황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고 상혁은 첫 번째 정보를 하연에게 건넸다.“민씨 가문이 파산한 이후, 민진현은 세차장에서 일
이 순간 민진현의 피부는 늘어지고,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지며, 사람은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민진현은 일에 몰두하느라 뒤에 있는 최하연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연이 민진현의 앞에 서기까지 눈치채지 못했고 하연을 보고는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세차가 필요하신가요?”하지만 대답이 없어 고개를 들어 하연을 바라봤다. 하연임을 알아보자 원래 온화한 얼굴이 순식간에 분노로 물들었다.“너구나!”말을 마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양동이를 땅에 떨어뜨렸고,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연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민 회장님, 오랜만이에요!”민진현은 이를 악물고 하연을 노려보았다.“여기 왜 온 거야?”“민 회장님,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그러자 민진현은 냉소하며 말했다.“당신과 할 말이 없어. 여기 와서 나를 비웃으려는 거라면, 이제 봤으니 나를 방해하지 마.”민진현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고고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마치 세월이 민진현의 모든 모난 부분을 깎아내린 것 같았다. 하지만 하연은 이 모든 것이 겉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민진현이 여전히 자신의 현재 상황에 불만족스러워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민진현은 결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민 회장님,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만약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사장님과 이야기해도 좋고요.”민진현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며 말했다.“최하연,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나? 우리 민씨 가문을 몰살시키려는 거야?”“민혜경은 어디에 있는 거야? 걔는 우리 민씨 가문의 유일한 혈맥이야. 걔까지 망치려는 거야?”이에 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민혜경이 당신의 유일한 손녀인가요?”민진현은 가슴을 치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통 속에 빠져들었고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잠시 후, 민진현의 얼굴은 붉게 변하자 하연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급히
이 점은 최하연이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뒤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다가왔다. 한서준은 부상혁 옆에 서 있는 하연을 보며 눈빛이 어두워졌고, 두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곁에 있던 구동후는 긴장한 기색을 느끼고 가볍게 기침하며 말했다.“최하연 씨!”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놀라 뒤를 돌아보았는데 서준이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서준의 시선은 닫힌 수술실 문을 향하고 있었다.“최하연, 민씨 가문은 이제 이렇게까지 됐는데도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나?”서준은 화난 어조로 말했고 마치 민씨 가문을 대변하는 듯 하연과 대립하자 하연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한 대표님, 지금 민씨 가문을 변호하러 온 거야?”“아니야!”서준은 단호하게 말했고 하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냥 여기서 멈추길 바란다.”이에 하연은 입가에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콜롬비아에서 내가 임모연을 조사하려던 것을 막았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오늘 여기서도 또 나타났는데, 이건 네가 현재 이 가짜 임모연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그러자 서준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알고 있어. 하지만 최하연, 부탁이야. 이번 한 번만이라도 믿어줘. 더 이상 조사하지 마. 이걸 조사한다고 네게 좋은 일은 없어. 가짜 임모연이 누구든지 간에, 난 그 여자가 널 해치게 놔두지 않을 거야.”이것이 서준이 한 약속이었지만 하연에게는 이 약속이 너무나도 우스웠다.“한서준, 이 말이 얼마나 우스운지 모르겠니?”서준은 몸을 돌려 더 이상 하연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쪽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최하연, 난 예전에 어떤 사람에게 민씨 가문을 돌보겠다고 약속했어. 이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 그래서 네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 간에, 민진현을 해치지 않길 바라.”“대표님!” 동후는 급히 서준을 불러 세우며 말을 끊으려 했다. 서준이 하연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은 하연에게 상처 입히고,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심장에 이미 문제가 있어서, 지금 긴급 심장 우회 수술이 필요합니다. 가족이라면 빨리 서명해 주세요.”의사는 수술 동의서를 한서준에게 건네자 서준은 잠시 망설인 후, 서명하면서 말했다.“어떤 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세요.”“보호자 분 안심하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의사가 다시 수술실로 돌아가자, 서준은 구동후에게 지시를 내렸다.“구 실장, 세계 최고의 심장 전문의를 즉시 B시로 부르도록 해.”“알겠습니다, 대표님.”동후는 전화를 걸기 위해 자리를 떠났고 서준은 하연을 향해 돌아서며 단호하게 말했다.“최하연, 여기 더 있을 필요 없어. 돌아가라.”하연은 말없이 내면으로 민진현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할 줄은 몰랐다. 그때, 부상혁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부 대표님, 찾았습니다.”이에 상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말하세요.”전화기 너머에서 무언가를 들은 후, 상혁의 눈에 어두운 빛이 스쳤다.“알겠어요.”전화를 끊자마자, 하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빠, 무슨 일이에요?”이에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예상대로야. 이 가짜 임모연은 민씨 가문과 깊은 연관이 있어.”이 말을 듣고, 하연은 순간적으로 긴장했다.“그 여자가 민씨 가문 사람인가요?”“민씨 가문의 장녀가 5년 전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더 흥미로운 점은 그 사고가 콜롬비아에서 발생했다는 거야.”옆에 있던 서준도 이 말을 듣고 어조가 차가워졌다.“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겠어?”이에 하연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는 없지. 유일한 가능성은 그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거야!”“한 대표님, 이 가짜 임모연이 원래 민씨 가문의 장녀 민혜주인 게 맞죠?”서준은 냉소를 지으며 반박하지 않자 하연은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짜 임모연이 처음부터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이유도, 그 여자의 모든 행동이 복수를 위한 것임도 이해되었다.“그
사무실에서, 조심스럽게 보고하는 비서가 말했다.“Jion, 현재 우리는 여러 협력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위약금 지급을 강제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Jion, 이미 납품한 상품을 반환하겠다는 요청도 들어왔습니다. 창고는 이미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고, 의류 공장은 가동이 중단되었습니다.”“Jion, 이번 사건의 영향이 너무 큽니다. 온라인 뉴스는 관리가 안 되고 있으며, 상대방은 우리가 제시한 금액을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모연은 이 말을 듣고 분노하여 책상 위의 서류를 거칠게 밀어내며 소리를 질렀다.“다 꺼져!”비서는 겁을 먹었지만, 계속해서 말했다.“Jion, 이렇게 계속 가다간 곧 폐업하게 될 거예요.”이에 모연은 크게 외쳤다.“그렇다면 폐업해도 좋아. 너희 같은 무능한 것들을 먹여 살릴 필요도 없어. 이런 작은 일도 해결 못하면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한 명 한 명 다 월급만 타가면서 일을 안 해. 여기 자선단체인 줄 알아?”“빨리 방법을 찾아서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전부 다 꺼져!”“무능한 것들, 전부 무능해.”모연은 분노를 폭발시키며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자 비서도 폭발했다. 그리고는 서류를 모연의 앞에 던지며 말했다.“이런 모욕, 진짜로 더 이상 못 참겠어. 누가 하든 말든, 난 더 이상 못 해. 진짜로 네가 사장이면 다냐?”“너는 왜 날 무능하다고 욕하는 거야! 네가 도대체 뭐라고? 나도 사람이야. 네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말을 마친 비서는 바로 나가버렸고 옆에 있던 직원들도 하나둘씩 일을 그만두고 떠났다. 이 광경에 모연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꺼져! 전부 꺼져! 너희가 없다고 세상이 안 돌아가는것도 아니거든!”모연의 욕설 속에서 사무실의 직원들은 하나둘씩 떠났고 곧 사무실은 거의 비게 되었다. 이에 모연은 큰 소리로 웃으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이 모든 것이 최하연 그년 때문이었다. 모연의 눈에는 짙은 증오가 불타오르고, 마치 세상을 무너뜨릴 듯
어떤 사람은 휴대폰으로 생방송을 시작했고, 시청자 수는 점점 늘어나 백만에 가까워졌다.“Jion, 우리 질문에 정면으로 답해주세요.”“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 최하연 씨의 디자인을 표절했으면서도 표절당했다고 고소하며 큰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렇게 행동할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진실이 절대 밝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요, 아니면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나요?”“Jion,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예전에 당신을 지지했던 팬들에게 사과할 건가요?”모연은 귀를 막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싶지 않아 계속해서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나는 표절하지 않았어, 이건 모두 누명이야, 모두 누명이라고! 너희들 모두 꺼져! 다 꺼져!”하지만 기자들은 모연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마이크와 카메라는 모연의 얼굴을 향해 있었고, 숨 쉴 틈조차 없었다.“Jion, 우리 질문에 답해주세요.”모연은 머리가 지끈거렸고, 머릿속이 울려서 터질 것 같았다. 이윽고 모연은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럽게 외쳤다.“아아!”모연은 머리를 감싸고 고통스럽게 외쳤다.“꺼져, 다 꺼져버려!”모연은 손을 휘두르며 기자들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기자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모연은 한 번도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굴욕감에 치를 떨며 세상을 망가뜨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최하연, 널 가만두지 않겠어.” 모연은 카메라를 향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모연의 눈앞이 깜깜해지며 쓰러졌다. 한편, 생방송을 보고 있던 정예나는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이 임모연, 결국 자신의 업보를 받은 거야. 이게 다 인과응보지.”옆에 있던 서여은도 냉소하며 말했다.“이런 사람은 원래부터 예의도 염치도 없는 자였어. 지금 이런 꼴이 된 건 자업자득일 뿐이야.”“다행히 이제 쇼핑몰의 명예가 회복되고 고객들도 돌아오고 있어. 벌써 몇 건의 맞춤 주문도 받았어.”예나는 기쁜 얼굴로 말했다.“우리도 이제 드디어 밝은 날을 맞이한 거지.”하지만 여은은 에나의 말을 듣고
하연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왜냐하면 임모연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30분 후, 서여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하연아, 임모연이 사라졌어.]이에 하연은 놀라며 물었다.[뭐라고?]그러자 여은이 설명했다.[내 사람들이 계속 따라다녔는데, 병원 입구에서 모연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검은색 자동차에 태워졌어.]하연은 이름 모를 무언의 분노를 느꼈다.[납치됐다고?][상대방은 훈련받은 사람들처럼 보였어. 내 사람들이 전혀 반응하지 못했고 그대로 홀연히 사라졌어.][알겠어.]하연은 전화를 끊고 깊은 생각에 빠졌고 수술실 문을 바라보았다. 민진현은 여전히 수술 중이었다. 모연이 병원에 나타난 것은 모연과 민씨 가문의 관계가 깊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누가 데려갔을까?’...밤이 깊자 병원은 조용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병실에서는 기계의 소리만 들렸다. 그때, 한 사람이 비상구에서 나타났는데 그 여자는 마스크를 쓰고, 온몸을 감싸고 있었으며, 눈만 드러나 있었다. 이윽고 그 여자는 VIP 병실로 들어갔다. 모연은 조용히 걸으며, 병상에 누워 있는 민진현에게 다가갔고 눈은 삽시에 붉어졌다.“할아버지, 저 왔어요.”모연은 민진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고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자기를 아껴주던 할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할아버지, 안심하세요. 제가 민씨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할아버지의 사업을 다시 일으킬 거예요. 그리고 할아버지를 상처 준 사람들에게 복수할 거예요.”“할아버지, 기다려 주세요! 할아버지가 나을 때까지 제가 지켜드릴게요.”모연은 말을 마치고 눈물을 닦으며 떠나려 한 그 순간, 병실의 불이 켜졌고 모연은 깜짝 놀랐다.“누구야?”모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가에 서 있는 한서준을 발견했다. 서준은 문틀에 기대어 모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빛은 깊고 의미심장했다.“당신이 여기 왜 있는 거죠?” 모연은 불쾌하게 말했고 들킨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할아버지는 아
만약 민씨 가문이 갑자기 파산하지 않고, 민혜경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고, 민혜주라는 사람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혜주야, 혜경의 일에 대해 정말 미안해.” 서준은 더 이상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한 마디 사과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하, 정말 드문 경험이네요! 당신에게서 이 사과를 들을 수 있다니. 하지만 난 당신의 사과가 필요 없어요.”“난 당신이 민씨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걸 도와주길 원해요. 함께 최하연을 상대해서 완전히 짓밟아버리고 싶어요.”“난 걔를 완전히 파괴하고, 본인의 가문이 무너지고 사람이 망가지는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어요.”혜주는 한 마디 한 마디를 확고하게 말하자 서준은 눈을 좁히며 단호하게 요구를 거절했다.“내가 있는 한, 최하연에게 손대지 마.”한 마디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히자 혜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업계에서 무적의 전략을 구사하는 서준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한서준, 당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나를 도와주든지, 아니면 내가 최하연을 확실하게 밟게 하든지.”“나는 상관없어요. 이 목숨은 별로 소중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최하연은 다르잖아요. 명색의 최씨 가문의 금지옥엽인데, 당신도 걔가 젊은 나이에 꽃다운 인생을 잃는 걸 원하지는 않잖아요?”결국 이 말을 듣자 서준의 얼굴이 확 변했다. 그리고는 혜주의 팔을 잡아채며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민혜주,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혜주는 서준의 반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서준의 반응이 클수록, 서준이 하연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에 혜주는 웃었다.“걱정 마요. 최하연의 목숨은 당분간 놔둘 테니까. 하지만 걔의 모든 것을 파괴해서, 끝까지 추락하는 고통을 맛보게 할 거예요.”말을 마친 혜주는 서준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그리고 서준은 헤주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점점 더 깊은 생각에 잠겨 벽을 세게 쳤다....다음
하연이 눈을 떴을 때, 도시는 이미 밤의 장막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는 흐릿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몸이 묵직하게 아픈 것을 느꼈다.오랜만에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던 상혁은 특히나 격렬했다. 소파에서 시작해 주방, 다시 안방, 마지막으로 욕실까지, 온 집안의 모든 공간을 사용했다. 하연의 온몸은 마치 압사당한 듯 피곤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방 안에는 은은한 아로마 향이 퍼져 있었고, 어둑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공기 중에는 이미 사랑의 흔적이 사라졌고, 상혁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하연은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마치 천장이 아닌 신들의 조각상이 장엄하게 자리하고 있는 듯 보였다. 신들은 어두운 밤 속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하연의 마음은 쓸쓸했다. 어젯밤, 둘이 동시에 절정을 맞았을 때, 상혁이 그녀의 손을 잡고 신들을 가리켰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극도의 미친 감정이었다.하연은 다시 샤워할 필요는 없었다. 상혁이 욕실에서 이미 그녀를 씻겨주었기 때문이다.하연은 침대에서 내려왔으나,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겨 발코니 쪽으로 다가갔고, 그곳에서 외부로 통하는 또 다른 문을 발견했다. 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소리가 들려왔다.“네 아버지를 조사해보라고 했잖아. 했어?” 조진숙의 목소리였다.하연은 걸음을 멈췄다.조진숙이 갑자기 찾아왔고, 상혁은 서둘러 셔츠를 하나 걸치고 나갔다. 그와 하연이 얽히며 셔츠 목 부분이 구겨져 있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사했어요. 고나희의 사고는 단순 사고였고, 아버지와는 관련이 없어요.”“고경수가 비리로 돈을 챙긴 걸 얼마나 알아냈어? 난 그 명목상의 숫자만 믿을 수는 없어. 배를 채운 흔적이 있는지 다 밝혀냈어?” “DL그룹은 아버지 거예요. 아버지가 그런 실수를 하실 리 없죠.” 조진숙은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많은 시련을 겪어온 여성이기에,
“왔어요?” 상혁은 놀라움이 가득한 여자 목소라가 들렸다. 상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주방에서 서둘러 나오는 하연이 국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연이는 웃으며 물었다. “왜요?”국이 너무 뜨거웠던지, 그녀는 재빨리 그릇을 내려놓고 귀를 만지며 식히고 있었다. 상혁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목소리까지 차가웠다. “정말 안 가고 기다리고 있었어?” 하연은 의아해하며 답했다. “당신이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당신이 너무 안 와서, 심심해서 뭐 만들어 먹을 게 없나 하고 요리 만드는 법을 찾아보다가 뭘 좀 만들어 먹었어요. 다행히 냉장고도 가득 차 있었고 장비도 다 갖추어져 있어서 문제없었어요.” 그녀가 말할 때, 분명히 기쁜 마음과 행복한 표정이었다. 하연이 말을 마치자마자, 상혁은 두세 걸음에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는 손을 잡고 그대로 바로 하연이를 품 안에 가둬버렸다. 상혁의 힘은 상당히 강했고, 하연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 “음... 왜 그래요?” 하연은 상혁의 품에서 안정을 느꼈지만, 그의 강한 포옹에 약간 당황했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평온한 향기가 상혁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상혁은 눈을 감고, 목소리가 거칠고 낮았다. “난 네가 간 줄 알았어.” 하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의 옷깃을 살며시 잡았다. “기다린다고 말했잖아요. 그러니 안 갔죠.” 그녀는 상혁의 감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 상혁은 본가에서 싸움 끝에 기분이 상한 채로 돌아왔다. 부남준은 송혜선을 보호하며 소리쳤다.“형, 이 아이도 한 생명이에요! 아버지의 혈육이잖아요!”상혁은 바로 남준의 옷깃을 잡고 주먹을 날렸다. 집사가 나서서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남준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상혁의 목에 난 상처를 알아보고 하연은 황급히 그를 밀어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죠? 교통사고 처리하러 간
하연은 상혁의 집에서 밤을 지새웠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녘에 깨어나니 집안은 고요했고 상혁이 돌아온 흔적은 없었다. 그녀는 뒤척이며 잠을 청할 수 없어 핸드폰을 열었고 보니, 마침 서여은이 사진을 올려놓았다. 외부 취재 중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에는 ‘큰 뉴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두 시간 뒤, 여은이 다시 글을 남겼다. [뉴스가 없어졌어.]하연은 궁금해졌다. [어떤 뉴스?][DL그룹과 관련된 일이야. 전에 조사받았던 고경수 기억나지? 그 사람 딸이 죽었대. 원래 뉴스에 나올 예정이었는데, 누군가 큰돈을 써서 기사를 막아버린 모양이야.]하연은 짐작할 수 있었다. DL그룹과 관련된 일이라면 상혁이 처리했을 가능성이 컸다. 여은이 사건 현장의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사진 속 여성은 운전석에 앉아있었고, 절반가량의 얼굴이 드러났는데 표정은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처참했다. 하연은 사진을 확대했다. [이 여자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여은이 바로 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나희야, 고경수의 딸이잖아. 애지중지하게 키워졌는데 세상 물정은 잘 모르는 아이였지. 그런데 네가 정말 고나희를 본 적 있어?]“한 번 스쳐 지나가며 본 적 있어.” 하연은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고, 드디어 생각이 났다. 얼마 전 정다영을 만나러 호텔에 갔을 때, 고나희와 스쳐 지나갔었다. 그때 고나희가 하연과 부딪혔고, 부남준이 다정하게 하연을 붙잡아주며 고나희에게 아주 화를 내면서 잘 보고 다니라고 말했다.하연은 그때 남준이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반박하려다, 남준의 시선이 고나희를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고나희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고, 이후 하연과 남준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저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하연은 고나희를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그녀의 사망 소식으로.[참, 고나희의 뱃속에 아이도 있었다고 하더라.]하연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몇 개월이었는데?”[5,6개월쯤 되었을 거야.]하지만
“형님 얼굴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네요.” 상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만, 아침부터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해. 어서 앉아라.” 부동건이 꾸짖었다. “어젯밤에 술 마셨어요?” 남준은 대수롭지 않게 앉으며 말했다. “접대하는 자리여서 어쩔 수 없었다.” “남자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상혁이 처럼 남준이 너도 당연히 그런 자리는 해야 해.” 송혜선은 웃으며 중재했고, 말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었다. 상혁은 집사가 가져온 우유 외에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다. 반면 부남준은 여유롭게 식사를 이어갔다. “형, 들었어요. 고경수의 딸이 사고를 당했다면서요.” “소식 한번 빠르군.” “검사 보고서도 확인했어요. 그 여자아이, 임신까지 하고 있었다면서요. 그런데 아버지가 누군지는 밝혀졌나요?” 이 질문은 부동건의 주의를 끌었다. “아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상혁아, 왜 나한테는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은 거냐?” “떳떳한 사이가 아닌 것 같아서 말씀들이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잘못된 남자를 믿는 일은 흔합니다.” 상혁은 남준을 힐끗 보고 말했다. “본인이 굳이 알리지 않았다는 건, 아버지가 누군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고경수의 집안은 이미 파란 속에 휩싸여 있으니, 괜한 일을 벌이기보다는 조용히 지나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준은 아침을 먹으며 웃었다. “고경수가 DL그룹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을 누군가 알았고, 그걸 감추기 위해서 자기 딸을 이용해 DL그룹 고위 간부에게 연결하게 해줘서 둘 사이에 아이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냥 떠본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부동건은 남준의 말의 조금씩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계속해 봐라.” “제 말은, 고경수가 자기 딸을 이용해 누구에게든 신세를 졌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상혁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상혁의 하얀 손가락 관절이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무심한 어조로
“지금 정규인은 어디에 있나?” “제가 확인한 바로는, 아직 동남아에 있습니다.” 상혁은 외투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현장에 가보자.” 나가기 전에 상혁은 다시 침실로 발길을 돌렸다. 하연은 그네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뒤에서 하연의 긴 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DL그룹 내부에 문제가 생겨서 처리해야 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기다려줄래?” 하연은 상혁의 눈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욕망을 알아차렸다. “기다릴게.”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나갔다. 상혁이 탄 검은 차가 빠르게 출발했고,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던 차가 상혁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뒷좌석에 있던 남자는 긴장을 풀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잘했어.” 옆에 있던 여자는 몸을 떨며 좌석에서 미끄러져 반쯤 무릎을 꿇은 자세로 말했다. “상무님, 정규인의 아내가 진작부터 자기 남편과 고경수의 딸에 대한 불륜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경찰이 정규인의 아내를 의심하지 않을까요?” 부남준은 그녀를 흘끗 보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정규인의 아내는 오늘 밤 밖에서 돈 쓰느라 많이 돌아다녔어. 인증과 물증이 다 있지. 이번 사고는 단순한 사고일 뿐이지, 인위적인 것이 아니야.” “황연지.” 남준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연지의 턱을 들어 올렸다. “부상혁에게도 그렇게 말해.” 연지는 약간의 공포를 담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재무 보고서를 받았어요. 아마 저를 의심할지도 몰라요.” “네가 부상혁에게 충성을 다 바치는데, 왜 너를 의심하겠어?” 남준은 흥미로운 듯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날 최하연을 다치게 한 건 정말 잘했어.” 그날 그 일은 바로 남준이 직접 지시한 것이었다. 연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사람... 이미 저를 의심하고 있어요. 평소라면 제가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는 걸 알 거예요. 게다가, 그 사건은 그 사람과 하연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잖아요?
알고 보니 하연이가 졸업하던 그 해부터 상혁은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오늘까지 ‘여주인’의 도착을 기다렸던 것이다. 상혁은 하연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마셔, 그리고 자. 진정 효과가 있는 와인이야.” 오늘 상형이가 고른 와인은 안정을 돕는 효능이 있는 와인이었다. 하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도 내 수면 패턴을 기억하고 있다니, 놀랍네요. 나는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주슬기는 당신을 위해 꿀물까지 챙겨주더군요.” 상혁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 안 마셨잖아.” 이 대답에 만족한 하연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위 안 좋은 거 알면서도 그렇게 술을 마셨어요? 나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죠?” “맞아.” 상혁이 솔직히 인정했다. “널 화나게 하려고 했어. 넌 신경도 안 쓰잖아.” “누가 신경 안 쓴다고 그래? 나 이렇게 와 있잖아...”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상혁은 하연을 품에 안아버렸다. “손이현이 바로 한명준이라는 걸 너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네가 한명준과 함께 떠날까 봐 두려웠어.”그 짧은 한마디가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하연은 그의 품에 단단히 안겨 있으며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나를 믿지 못했어요?”“아니, 나 자신을 믿지 못한 거야.”하연은 잠시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내가 봐도 상혁 오빠는 거의 완벽한 사람인데, 오히려 자신을 믿지 못했다니...’상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네 앞에 서면, 난 자신감이 없어.”그 말을 듣고 하연은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 했지만, 상혁은 오히려 더 단단히 그녀를 끌어안았다.“하지만 요즘 난 다시 우리 하연이 앞에서 자신감을 되찾았어.”하연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이번에 자신이 상혁에게 먼저 다가갔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으며, 상혁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까지 모두 보여주었으니까.“하지만 그럴수록 더 두려워졌어
상혁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하연의 눈물 어린 고백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하연의 모든 억울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당신이나 한명준이나 다 똑같아요!! 나를 이토록 오랫동안 속였어요!! 보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의도는 내가 다 알고 있었어요.” 하연이 한 걸음 더 다가가자, 상혁의 몸에서 진한 술향이 풍겼다. “하지만, 모든 게 밝혀진 후에도,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나를 위해 그랬다는 걸 알아요. 당신이 날 사랑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당신이 나를 떠나는 거죠?” 하연은 울기 시작했다. 그 눈빛은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최근의 갈등은 하연의 모든 안정감을 무너뜨렸다. 한때 하연은 상혁이 영원히 자신 곁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확신이 무너졌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누구도 한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하연도 상혁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며 문제는 자신에게 있었을 거라고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경계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다른 남자에게도 마음 한구석에 남겨진 미련이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상혁은 그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다시는 내 앞에서 울지 마.” 하연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남자에게 있어서, 사랑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여자의 눈물이었는데, 이제는 내 눈물조차도 통하지 않는 건가...?’ “오늘 저녁은 우연이었어. 주슬기가 나와 할 일이 있어서 만난 거지, 약속한 게 아니었어.” 상혁은 먼저 해명했다. 하연의 마음은 다시 조금 안도했다. “하지만 주슬기과 당신은...” “그럼 너랑 한명준은 또 무슨 사이인데?” 상혁은 하연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눈물을 많이 흘린 탓에 하연의 얼굴은 한층 더 차가워져 있었다.“양 국장님께서 같이 식사하자고 하셔서 간 것뿐이에요. 데이트는
“우리는 이제 가야 해요.” 하연은 이현에게 말했다. 그는 취기가 오른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하연아, 네가 춤추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어. 그해에 너 혼자 춤출 때, 나는 현장에 있었어. 그때 너를 알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쉈어.” 하연은 그가 말하는 순간을 기억해 냈다. 학교 축제 때, 하연은 독무를 했고, 무대 위에서 춤을 췄던 그 장면이었다. 이때, 하연의 등 뒤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하연은 몸을 숙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야 해요.” 이현의 손이 하연의 손가락을 잡았다. “우리 같이 가자.” 하연은 머리가 더욱더 아파지며 갑자기 테이블 위에 있던 꿀물을 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래요.” 더 이상 얽히지 않기 위해, 양국성은 안도한 듯 하연과 함께 이현을 부축하여 방을 나섰다. 문을 나서는 그 순간, 안에서 유리잔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쨍그랑’하고 잔이 깨지는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양국성은 하연과 이현이 같은 차를 타지 않았고, 하연은 이현을 부축해 차에 태운 후, 몸을 숙여 그의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며 말했다. “조심해서 집에 돌아가요.” “하연 씨.” 이현은 하연의 손이 다시 잡혔다. 하연은 눈을 들어 보았는데, 이현의 눈은 맑았다. “당신이 취하지 않았군요.” “마지막에 부상혁이 저에게 질문을 하나 했어요.” 하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현을 응시했다. “부상혁이 저에게 물어본 것, 바로 예전에 제가 하연 씨를 지키지 못했는데, 이제는 할 수 있겠냐고...” 하연의 손이 순간 떨렸다. 자기 손을 당겨 빼내고 돌아서려 했지만, 다시 이현의 손에 잡혔다. “저는 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저는 이제 능력이 있어요!! 예전처럼 우물쭈물하는 한명준이 아니에요!!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하연 씨와 함께하고 싶어요!!” 이런 말을 하는 이현을 바라보는 하연의 마음도 무척 복잡했다. “부상혁 씨는 뭐라고 했어요?”
하연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국내든 해외든, 저도 차를 좋아하지 않아요. 너무 쓰잖아요.” 상혁은 시선을 이현에게 옮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는 제가 주인이라, 한 상무님께 차를 대접하는 건 좀 그렇죠.”그는 슬기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제가 먼저 한 상무님께 한 잔 올립니다.”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만, 상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하연은 손에 힘을 주어 옷자락을 꽉 쥐었고, 마음속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그렇다면 저도 주인 중 한 사람인 셈이니, 비록 처음 만난 건 아니지만, 한 상무님과 최 사장님이 함께 있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니까 저도 한잔 해야겠군요.” 슬기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가 상혁 옆에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랜 부부처럼 자연스러웠다. 이현은 슬기의 말을 듣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며 또 잔을 받아들이고, 결국 두 잔을 기꺼이 마셨다. 그러나 슬기는 계속해서 말했다. “최 사장님은 차도 술도 안 마시나요?” “하연이는 안 마십니다.” 이현은 하연을 보호하듯 그녀를 뒤로 숨기며 말했다. “제가 대신 마시죠.” 결국 그는 총 네 잔을 마셨다. 하연은 분명 보았다. 상혁이 무심히 탁자에 올려놓은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부풀어 올랐고, 그건 상혁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것은 그가 곧 자신의 감정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할 전조였다. “훌륭한 주량이군요. 이렇게 된 이상, 한 상무님과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취하도록 달려보겠네요.” 상혁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술병을 집어 들고 병뚜껑을 따며 말했다. “몇 년 전에는 한 상무님과 직접 대면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기회를 잡았으니, 이것도 인연이겠죠.” 이현은 상혁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것은 오랜 세월 쌓인 불만과 질투였다. 단순히 이현의 신분이 아닌, 하연의 마음을 흔들었던 ‘한명준’의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하연을 어릴 때부터 지켜온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