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 안의 남자도 밖으로 나왔다. 남자는 최하연을 보자마자 눈이 반짝였다.“와우, 이건 어디서 나온 보물이지?”그들 중 한 사람이 하연을 알아보고 나운석과 함께 들어온 손님이라고 조용히 말했다.“대호 형님, 이 사람은 나씨 집안 운석 도련님이 데려온 손님입니다.”남자는 운석의 이름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고 이내 하연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방금 뭘 봤고, 뭘 들었죠?”하연은 대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눈에 두려움 없이 말했다. “당신들이 정당하게 영업하는 줄 알았더니, 이런 은밀한 거래도 하는군요. 안에 있는 여자아이들은 모두 유괴해 온 거죠?”씩 웃는 남자의 눈에 잔혹함이 서려 있었다. “보아하니, 오늘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네요. 뭐, 좋아요. 당신 같은 미인은 보기 드문 보물이니까요.”말을 마치고 대호는 부하들에게 손짓하여 하연을 잡으라고 명령했고 하연은 냉소했다.“날 잡으려면, 당신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 봐야겠죠.”말이 끝나자마자,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연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날렵하게 한 남자의 다리를 걷어차 후퇴하게 했다. 전혀 주저함이 없었고 하연은 단번에 상대를 몇 걸음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러자 대호는 흥미를 느끼며 말했다. “보아하니, 여기서 싸우려는 모양이네요!”대호는 직접 나서서 최하연을 잡으려고 했고 동작은 매우 거칠었다. 단 두 세 번의 공격에 하연은 열세에 처했지만, 하연은 남자의 약점을 발견하고 몸을 돌려 급소를 찼다.순간, 남자는 아래를 움켜쥐고 얼굴이 새빨개졌다.“잡아라! 당장 잡아!”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몰려오자, 하연은 알아차렸다. 자기 혼자서는 이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저 없이 틈을 타서 출구로 달렸다. 그러나 출구에 도착했을 때,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하하하, 도망가 봐요! 도망갈 수 있으면 도망가 보세요!”남자는 냉소하며 천천히 하연을 포위했고 하연은 그들이 주의를 돌리기 전에 손목의 긴급 버튼을 눌렀다.“여자와 아이들을 유괴하는 것
“어떡해요? 내일 아침이면 우리 모두 끌려갈 텐데, 다시는 가족을 볼 수 없겠죠.”“흑흑, 죽기 싫어! 누가 우리 좀 구해줘요!”말이 끝나자 흐느낌이 이어졌다. 최하연은 이 모습을 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어두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하연은 흐느낌이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곧 아주 침착한 눈빛과 마주쳤는데 이 눈빛은 슬픔이 가득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그 소녀는 열일곱에서 열 여덟 살 정도로 보였으나, 성인과 같은 침착함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표정으로 최하연을 바라보며, 마치 꿰뚫어 보려는 듯했다.둘 다 말을 하지 않았고 몇 분이 지난 후, 소녀가 입을 열었는데 불확실한 어조로 물었다. “정말 우리를 구해낼 수 있나요?”그러자 하연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믿어줘요, 꼭 구해 줄게요.”이 말은 구원의 빛처럼 소녀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소녀는 하연이 묶여 있는 모습을 보고 희망이 끊어졌다. 하연은 시선을 낮춰 자신을 묶고 있는 밧줄을 보았다. 그리고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묶다니, 너무 허술했다. 곧이어, 하연은 손을 움직여 빠르고 깔끔하게 밧줄을 풀었다. 하연의 동작은 유려하고 신속했으며, 모두가 놀랐다.“정말로 풀었어요!”“정말 대단해요.”하연은 손짓으로 조용히 하라고 했다. “말하지 마세요!”이에 사람들은 이해하고 희망의 빛을 띠며, 아까 흐느끼던 여자도 얼굴의 눈물자국을 닦아냈다. 하연은 아무 말없이 다가가서 하나씩 밧줄을 풀어주자 곧 모두가 자유로워졌다. 아까 침착했던 소녀는 이제 하연을 경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언니, 제 이름은 하선유예요. 나가게 되면 꼭 보답할 게요.”하연은 미소를 지으며 선유의 말을 마음에 담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선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선유야. 우린 반드시 나갈 수 있을 거야.”선유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하연은 모두를 모아 작은
이 말에 여자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는데, 아마 대부분 채찍 맛을 본 적이 있는 듯했다. 그때, 권대호가 앞으로 나왔다. 대호는 최하연을 보며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 “꽤 능력 있네요. 십여 분 만에 도망쳐 나오다니요.”하연은 대호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를 풀어줘요. 그렇지 않으면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거예요.”그러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웃기는 소리! 우리를 풀어주라고? 꿈도 꾸지 마.”대호는 손짓하며 보디가드들을 앞으로 불렀다. 그때, 한 부하가 다급히 달려왔다. “형님, 큰일 났습니다! 우리 술집이 포위당했습니다.”대호는 얼굴이 굳어지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최씨 집안의 사람들이에요! 재벌 최씨 집안의 사람들이라고요!”이에 대호는 부하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최씨 집안? 우리가 그 집안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지? 왜 우리 영역에 와 있는 거야?”“저도 모릅니다, 형님! 그 집안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에요. 그들이 데려온 사람들은 모두 훈련된 전문가들이에요.”대호는 이를 갈며 말했다. “제길! 우리가 최씨 집안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우리 일을 방해하려는 거지?”대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선을 하연에게 멈췄다. 그리고 하연을 주의 깊게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혹시 그쪽이 최씨 집안 딸이예요?”그러자 하연은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밖에는 하민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F 국 경찰도 있으니까요.”“여성과 아동을 유괴하는 것은 중범죄예요. 지금 증거가 확보되었으니, 당신들은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거예요.”뒤에 있는 여성들은 최하연의 말을 듣고 기뻐했다.“경찰이 왔어요! 우리 나갈 수 있어요!”대호는 화가 치밀어 올라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나를 감옥에 보내려면, 당신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 봐야겠죠!”곧이어 대호는 하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내 손을 빠져나간 여자는 없었어요. 경찰 몇 명이 온다고 해서 당신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권대호 씨, 사람 풀어줘요.”“물론 그래야죠. 가세요.”하연의 말에 대호는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대호의 태도에 화가 난 하연은 목소리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지금 내 말 못 알아듣는 겁니까?”“최하연 씨, 무례하게 굴었던 건 어디까지나 제 잘못입니다. 하지만 저도 큰돈 들여 산 건데, 이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대호의 표정은 갑자기 사뭇 진지해졌다.하지만 하연은 대호에게 조금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손해? 끝까지 가보자는 겁니까?”대호가 하연을 당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많은 여자를 포기하자니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최하연 씨, 우리 서로 이익 충돌도 없는데 이러는 거 너무 선 넘는 거 아닙니까? 사과의 의미로 이들 중 한 명을 선택해 데려가세요. 제 성의 표시라고 해두죠.”“말했을 텐데요. 모두 풀어주라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하연의 태도에 대호가 뭐라 말하려 할 때, 부하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대호 형님, 그만합시다. 최씨 가문이 이번 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요. 밖에 특공대도 와 있어요. 얼른 피하지 않으면 콩밥 먹을 수 있다고요.”그 말을 들은 순간 대호는 더 이상 시간 끌 여유가 없어졌다.심지어 이젠 하연과 협상할 카드마저 사라진 셈이다.“최하연 씨, 이번에는 그쪽 체면 봐줄 거지만 이 빚 조만간 확실히 받을 겁니다.”이 말만 남긴 채, 대호는 여자들을 지킬 사람 몇 명을 남겨두고 부하들을 데리고 다급히 떠나버렸다.곧 현장에 도착한 하민과 태훈은 방을 한 칸 한 칸 다 뒤져본 뒤에야 겨우 하연을 찾았다.“하연아 괜찮아?”하민의 말투에는 걱정과 초조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오빠, 저쪽 두목이 도망쳤어요.”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하는 하연을 하민은 곧바로 달래주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이미 뒤쫓으라고 일러뒀어.”“오빠, 권대호는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온갖 나쁜 짓을 일삼았어요. 얼마나 많은 부녀와 아이들이 그놈 손에 당했는
무사한 하연을 보자 걱정했던 운석도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그제야 하연의 옆에 있는 여자애를 발견하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넌 누구야?”그 물음에 선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운석을 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운석은 그제야 여자애를 열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귀엽고도 예쁘장한 여자애를 보자 운석은 손을 뻗어 선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괜찮아. 이제 곧 가족 만날 거야.”하지만 선유는 몸을 피하며 운석의 손길을 피했다.“만지지 마요!”도도하고 차가운 여자애의 태도에 운석은 실소했다.“꼬마야, 너 아직 미성년자지?”그 말에 선유는 버럭 화를 냈다.“누가 미성년자라는 거예요? 저 20살이거든요.”‘20살?’‘아무리 봐도 발육이 채 안 된 것 같은데?’운석은 의심이 들었지만 반박하지 않고 오히려 타일렀다.“앞으로 혼자 밖에 나다니지 마. 지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오늘 우리 여신님 만난 거 운 좋은 줄 알아. 인신매매범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너를 데려다 장기 빼낼 수도 있다고.”선유는 잔뜩 긴장한 채 뭔가를 참는 듯했다.그걸 보고 이상함을 느낀 운석이 이내 물었다.“왜 그래? 안색이 안 좋은데?”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선유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바로 쓰러졌다. 다행히 눈치 빠른 운석이 얼른 잡아주어 넘어지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야, 정신 차려봐. 괜찮아?”운석은 높은 소리로 선유를 불렀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반응에 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선유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검사 결과 선유의 몸 곳곳에 채찍 흔이 발견되었고, 특히 등 쪽 상처는 이미 곪아 옷에 붙어있었다.게다가 치료하는 내내 선유는 아프다는 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이 모든 걸 알게 된 운석은 인신매매범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이렇게 어린애도 때리다니. 개자식들 사람이야?”하연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기에 분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인신매매범은 원래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은 총살해야 해
“혹시 HL 산업은행 하민철 은행장님이세요?”“네.”하민철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그때 옆에 있던 운석이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그러면 혹시 하선유 친척이신가요?”“선유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그 말에 하연은 어리둥절했다. 그도 그럴 게, 선유가 HL 산업은행 은행장 딸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하 은행장님, 안녕하세요.”하지만 이내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태도로 하민철에게 인사했다. 마치 여장부 같은 기품 넘치는 하연의 모습에 하민철인 찬사의 미소를 보냈다.“예의 차릴 것 없어요.”“하 은행장님, 선유가 외상을 입어 상처가 감염되었습니다. 치료를 받아 생명의 위험은 없지만 아직 깨어나지 않았습니다.”하민철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선유 상태는 전에 알아봤어요. 이번에 우리 선유 구해줘서 고마워요.”“별말씀을요.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럼 선유는 은행장님께 맡기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잠깐만요.”하민철이 눈빛을 보내자 집사가 얼른 백지수표를 꺼내 하연에게 건넸다.“최하연 씨, 이건 우리 은행장님의 작은 성의이니 받아 주세요.”하연은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아닙니다. 필요 없으니 가져가세요.”그 모습에 하민철도 자기가 너무 당돌했다는 걸 느꼈다. 그도 그럴 게, 천하의 최씨 가문 아가씨가 이런 적은 돈에 혹할 리 없으니까.“미안합니다. 습관이 되어 버렸어요.”“괜찮습니다.”하민철은 이내 집사더러 수표를 회수하라고 지시했다.“받지 않겠다고 하니 오늘 일은 내가 신세 진 거로 하고, 앞으로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HL 산업은행 은행장을 빚지게 만드는 게 백지 수표보다는 훨씬 값어치 있었다.특히 사업가에게 은행의 지지가 있다면 앞으로 일하는 데도 훨씬 편해질 터였다.“필요하다면 절대 사양하지 않고 도움 청하겠습니다.”하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솔직함은 하민철에게 아주 잘 먹혔다. 하연 같은 젊은이는 하민철도 오랜만에 보는 거였으니.“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하연의 인사에 하민
하연은 더 지체하지 않고 얼른 최동신에게 달려갔다.“할아버지, 저 왔어요.”최동신은 제 팔짱을 끼는 하연을 흘긋거리더니 화가 난 듯 말했다.“오늘 밤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 여자애가 거기에 왜 끼어들어? 인신매매범들은 돈이라면 목숨도 내놓을 놈들이야.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랬어?”“할아버지, 저 괜찮잖아요. 걱정시켜 드려 미안해요.”하연이 다급히 달랬지만 최동신은 콧방귀를 뀌었다.“다음은 없어. 앞으로 경호원 더 붙여줄 거다. 절대 이런 일 다시 있으면 안 되니까.”하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할아버지.”한참 얘기하고 있던 그때, 최동신이 갑자기 눈을 들어 멀리 있는 하민을 바라봤다.“말해. 그놈들은 어떻게 됐어?”“경찰에서 공범 몇 명 잡았대요. 하지만 주범인 권대호는 도망쳐서 아직 소식 없어요.”그 말에 최동신은 버럭 화를 냈다.“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게냐? 어떻게 그런 놈들을 놓쳐? 이번에 그놈들이 이렇게 큰 타격을 입었으니 보복하지 보복할 게 틀림없어...”최동신은 말을 채 잇지 않고 하민과 눈빛을 교환했다.그러자 하민은 이내 알아들었다는 듯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지하 세력도 지금 그놈들 쫓고 있어요. 발견하는 즉시 경찰로 보낼 거고요.”그제야 최동신의 표정은 조금 풀어지더니 하연의 어깨를 툭툭 쳤다.“너는 요즘 안전에 꼭 주의해. 절대 빈틈 보이지 말고.”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할아버지.”그러자 최동신 이내 화제를 돌렸다.“아까 나씨 가문 아들놈이 너 데려다줬던데?”하연은 그 한마디에 최동신의 생각을 파악하고 먼저 싹을 잘랐다.“할아버지, 저 운석 씨랑 그냥 친구예요. 보통 친구.”하지만 최동신은 그걸 믿지 않았다.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인데, 남녀 간에 순수한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최동신도 알고 있다.하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따져 묻지도 않았다. 어찌 됐든 남녀 간의 감정은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제삼자가 끼어들 수 있는 것도
“그러게 말이야. 봄이 와야 할 텐데. 나도 증손주 봐야 여한이 없지.”그 말에 하연은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할아버지, 저 그럼 앞으로 할아버지 귀여움 못 받는 거 아니에요?”“너도 참. 넌 하늘이 두 쪽 나도 우리 최씨 가문 보배야. 누구도 그 자리 못 넘봐.”하연은 얼른 최동신의 팔짱을 끼며 애교 부렸다.“역시 우리 할아버지가 나 제일 예뻐할 줄 알았다니까.”다음 날 아침.온라인으로 회의를 열어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끝나자 하연은 기지개를 켜며 서재에서 나왔다.그러다 마침 집으로 돌아온 하민과 마주쳤는데, 하민은 어제 입고 나갔던 슈트 차림이었고 심지어 양복이 조금 구겨져 있었다.그 순간 어제 최동신한테서 들은 말이 생각 난 하연은 얼른 관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오빠, 어제 어디 갔었어요?”하민은 그 질문에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자연스러운 표정을 장착하고 여유롭게 대꾸했다.“왜? 이제야 깨난 거야?”“아니요. 아까는 그냥 회의했어요. 오빠 어젯밤...”“그럼 잘됐네, 나도 마침 이따가 회의 때문에 회사 나가봐야 하는데.”하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민은 말을 자르더니 곧장 침실로 들어가 문밖에는 하연이 덩그러니 놓인 채 눈을 깜빡였다.‘오빠 진짜 변했네.’‘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역시 연애하면 사람이 변한다더니.’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곧장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 김애령이 금색 초대장을 하연에게 건네주었다.“아가씨, 이건 아침에 배달된 겁니다.”초대장을 받아보니 위에는 커다랗게 ‘하’라고 적혀 있었다. 그걸 보자 하연은 이내 초대장 주인을 짐작했다.아니나 다를까, 초대장을 열어보니 하씨 가문에서 3일 뒤 가족 모임에 하연을 초대한 거였다.하연은 눈썹을 추켜 올리며 초대장을 챙겼다.‘초대를 받았으니 선물을 준비해야겠네.’“이모님, 기사님더러 차 대기시키라고 해줘요. 이따 나갈 테니까.”“네, 아가씨.”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백을 챙긴 하연은 방을 나서자마자 외출 중이던 하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