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대답했다.“폐하, 저는 황자들을 본적이 없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평가를 할 수 없으니 양해를 구하겠습니다.”“몰라서 괜찮아. 내가 자세하게 얘기해줄게.”이성민은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내 큰아들은 성격이 듬직해. 어렸을 때부터 나를 따라 공부를 했고 영토를 넓히는 일에는 부족할 수 있지만, 영토를 지키는 데는 충분해. 그런데 아쉽게도 몸이 약해서 앓는 일이 많아 군주가 되기는 적합하지 않아.”마지막 말을 하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자신의 큰아들은 성군이 될 수 있지만 그럴 운명을 타고나지 못했다.예전에 용한 점쟁이한테 본 점괘에서 얘기하길 큰아들은 서른여섯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만약 자리를 큰아들한테 넘겨준다면 힘들게 살다가 얼마를 못가 수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큰 황자 전하께서는 적합하지 않다면 둘째 황자 전하는요?”유진우가 되물었다.“둘째 아들은 건강하고 튼튼하지만, 너무 용맹해. 지나치게 용맹하면 누구도 눈에 들지 않게 되어 성군이라고 할 수 없어.”이성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째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배워 용맹하기는 했지만, 머리가 좋지 않았고 무척 충동적이었다. 장군이 되는 건 문제없지만 제왕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셋째 황자 전하께서는 문무를 겸비하셨다고 들었는데 적합하지 않겠습니까?”유진우가 또 물었다.“그래. 많은 사람이 다 그렇게 얘기를 하지.”이성민은 한숨을 내쉬었다.“셋째는 머리가 좋고 계략도 많아. 여러모로 봤을 때 제일 적합한 후계자야. 그러나 유일하게 나를 머리 아프게 하는 점은 셋째가 그릇이 작아. 이런 사람은 좋은 군주가 될 수 없어.”셋째 아들은 문무를 겸비했지만, 속이 좁아 질투가 많고 의심이 많았다.이런 사람들은 좋은 소리를 듣기 좋아하고 나쁜 소리는 듣기 싫어한다. 그렇게 되면 아부를 잘하는 사람을 쓰게 되고 진정한 인재는 용납하지 못하게 된다.오래도록 그렇게 나아가다가 용국은 쇠퇴하게 될 것이다.하
유진우는 곰곰이 생각해보았고 이성민의 마음을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호룡각이 무너지고 황실은 진정으로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호룡각의 영향으로 하여 황실의 뿌리가 단단하지 못해 황실을 대대적으로 지지하는 중간 기둥이 하나 필요했다.쉽게 보아낼 수 있다시피 이성민에게 서경왕부가 최고의 선택이었다.한편으로 서경왕부는 군대를 거느리고 조정과 지방에 모두 세력을 두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경왕부와 호룡각이 원수이므로 서경왕부와 황실의 협력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리고 서경왕부의 지지만 있다면 황실은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을 것이다.이게 바로 이성민이 그를 부른 원인이었다. 유진우에게 황권의 귀속을 결정하라는 것은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얘기지만 그만큼의 진심을 보이는 것이다.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진우야, 부담가질 필요 없어.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면 누구를 선택하면 돼.”이성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폐하, 이 사안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었다.“서두를 필요 없어. 아직 내가 더 버틸 수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봐. 돌아가서 너희 아버지와 상의해도 좋아. 결정하게 되면 다시 와서 나한테 알려도 늦지 않아.”이성민이 웃으며 말했다.“폐하...”유진우는 난처해졌다. 그는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성민의 기세를 보면 거절할 기회를 줄 생각이 아니었다.“맞다, 진우야, 너 아직 혼자지?”이성민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마침 내가 좋은 상대를 하나 봐뒀어. 재능이 있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다정해서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두 사람은 정말 하늘이 맺어준 한 쌍 같아.”“폐하, 좋은 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연이 중요한 일에서는 혼인을 맺어주거나 하는 건 필요 없을 듯싶은데요?”유진우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인연이라고 하면 두 사람은 진작에 친분이 있었어. 잘 지내는 것도 같아. 네가 마음에 들
“폐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유진우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폐하께서는 여러 여자를 곁에 두는 게 당연할지 몰라도 저는 일부일처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애정 없는 결혼은 죽음과 다름없는데 저를 포함한 누구도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이 말이 나오자 이청성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사뭇 달라진 눈빛으로 유진우를 바라보았다.연경 전체를 놓고 봐도 권력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곁에 여자를 많이 거느리고 있다.나머지 소수는 여자의 집안이 너무 대단해서 감히 대놓고 행동하지 못하거나 몸이 따라가지 못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였다.유장혁처럼 충분히 잘났으면서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남자는 매우 드물었다.“장혁, 청성이 싫은 거냐? 아니면 얘가 너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이성민이 떠보듯 물었다. 그의 딸 이청성은 외모나 재능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최고의 여자였다.당장 근처에만 해도 따라다니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얼마나 많은 잘난 청년들이 어떻게든 절세미인에게 다가가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지 모른다.유장혁 같은 정상적인 남자가 이렇듯 좋은 일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이청성 씨는 재능도 있고 아름다워서 그에 비해 오히려 제가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제 마음엔 이미 자리 잡은 이가 있으니 또 다른 사람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유진우는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자네가 이렇게까지 일편단심일 줄은 몰랐어. 그래, 억지로 강요해봤자 소용없지. 결혼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이성민은 강요하지 않았다.음식도 천천히 음미해야 깊은 맛을 내고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나.아마도 유장혁은 아직 자기 딸의 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해 거절하는 것이리라.시간이 지나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테니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감사합니다, 폐하.”유진우가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했다.“장혁, 시간이 늦었으니 가서 쉬면서 후계자 문제를 생각해 봐. 난 자네 대답을 기다리지.”
유진우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그럼 형제들 중에 누가 이 나라의 왕이 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요?”“저를 떠보는 건가요?”이청성은 부드럽게 웃었다.“이것은 아바마마께서 당신에게 준 문제이니 당연히 본인 스스로 답해야죠. 저는 도와줄 방법이 없고 도와줘서도 안 돼요.”“천제감 제자답지 못하네요.”유진우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저었다.황태자 자리는 나라의 흥망성쇠가 걸린 문제인데 그 부담이 자신에게 떨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무엇보다 그가 누구를 선택하든 놀라운 권력을 거머쥔 다른 여러 황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었다.그러면 성가신 문제들이 생긴다.“서두를 필요 없어요. 아바마마께서 생각할 시간을 주셨으니 어떤 황자가 더 잠재력이 있는지, 서경왕부의 뜻에 더 부합하는지 지켜볼 수 있지 않나요?”이청성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음... 골치 아프네요.” 유진우는 머리가 아팠다.“아, 한 가지 더 있어요.”그때 유진우가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물었다.“왜 하루 종일 베일을 쓰고 다녀요? 경국지색인데 남들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는 거라도 있나요?”“얼굴로 성가신 일이 많아서 가리는 게 좋아요. 물론 보고 싶으면 잠깐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쪽이 볼 용기가 있을지 모르겠네요.”이청성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허허...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그쪽 얼굴 한번 못 본다고요? 웃기는 소리!”유진우가 코웃음을 쳤다.“정말 보고 싶어요?” 이청성이 다시 물었다.“물론이죠! 설마 머리 세 개 달린 메두사라도 되겠어요?”유진우는 고개를 기울였다.“좋아요, 그러면 그쪽이 직접 베일을 벗겨서 진짜 얼굴을 봐요.”이청성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나는 이미 본인 손으로 베일을 들어 올리고 내 얼굴을 보는 사람이 누구든 그와 결혼하겠다고 맹세했어요.”“네?”그 말에 방금 내밀었던 유진우의 손이 놀란 듯 금세 움츠러들었다.“됐어요, 안 볼래요. 피곤해서 얼른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요.”“한심하네요.” 이청성은 웃음을
“나리, 대황자님께선 이 늦은 밤에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지요?” 유진우는 모르는 척했다.“황자님께서는 세자 전하께서 연경으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담소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밤 달빛이 아름다워 술 한잔을 하기에 딱 좋다고 하시네요.” 전현진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나리, 다음에 뵙는 게 어떨까요?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냥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네요. 다음에 제가 꼭 찾아뵙겠습니다.” 유진우가 두 손을 맞댄 채 공손하게 말했다.거짓말이 아니었다.오늘 그는 몇 차례 큰 전투를 치렀고 심각한 부상은 회복되지 않았으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서 푹 쉬고 싶었다.그런데 이청성이 먼저 찾아오더니 곧이어 이성민이 그를 소환했고 이젠 대황자까지 사람을 보냈다.숨 돌릴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세자 전하, 주인님께서 이미 술과 음식을 준비해서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세자 전하께서 피곤하시면 주인님과 먼저 만나고 저택에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전현진은 시종일관 미소를 지었다.유진우는 힘없는 얼굴로 상대방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이청성에게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보냈다.“대황자께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술과 음식까지 다 준비했는데 얼굴은 비춰야죠. 타요. 내가 같이 가줄게요.”“감사합니다, 공주님, 세자 전하. 두 분 얼른 가시죠.”전현진은 곧바로 허리를 굽히며 안내했다.“그쪽 때문에 못 살겠네요.”유진우는 이청성을 노려보며 힘없이 마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지금 이 기세를 보니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거절하면 대황자의 심기를 건드려 불필요한 문제를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그도 성가신 게 제일 싫었다.“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어요? 오늘 밤 대황자를 만나고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이청성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그럴지도 모르죠.”유진우는 대꾸할 힘도 없어서 마차에 등을 기댄 채 흐릿한 정신으로 무거워지는 눈꺼풀과 싸우고 있었다.감히 정말로 잠들 엄
“오라버니...”그 순간 이청성과 유진우가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두 사람을 본 이문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청성아, 오랜만이야.”곧 그의 시선이 유진우에게로 향했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이쪽이 장혁인가? 10년 만에 보니 몰라보게 달라졌네. 못 알아볼 뻔했어.”“소인 대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유진우는 고개를 숙여 경례했다.“형제끼리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잖아.”이문재는 곧바로 손을 뻗어 유진우의 굽힌 상체를 들어 올렸다.“자자, 두 사람 다 앉아. 격식 차리지 말고 내 집이라고 생각해.”“감사합니다. 전하.”“고마워요. 오라버니.”유진우와 이청성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차례로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장혁, 늦은 밤에 초대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주길 바라.” 이문재가 먼저 나서서 상대를 배려하며 사과를 건넸다.“전하, 천만에요.”유진우가 싱긋 웃었다.“전하의 저택에 손님으로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이문재는 입을 벙긋하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옆에 있던 이청성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청성아, 최근에 내 저택에 귀한 보석이 새로 도착했으니 가서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가져가도록 해.”이청성은 유진우를 힐끗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 성의를 봐서 나도 마다하지 않을게요.”상대방이 일부러 자신을 내보낸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거절할 수 없었다.“전현진, 공주를 보물창고로 데려가게.” 이문재가 손짓했다.“공주마마, 따라오십시오.”전현진은 허리를 굽히며 이청성을 데리고 재빨리 대청 밖으로 나갔다.두 사람이 나간 뒤 이문재는 유진우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장혁, 사실 내가 늦은 밤에 자네를 부른 것은 내 마음속 의혹에 대해 자네가 대답해 주길 바라서야.”“전하, 말씀하세요.” 유진우가 태연하게 말했다.“듣기론 방금 아바마마를 뵈었다고? 아바마마께선 무슨 말씀 없으셨나?”이문재가 떠보듯 물었다.
황옥주는 무림의 3대 성물 중 하나로 천영 구슬과 함께 수많은 사람이 탐내는 가장 귀한 보물이었다.황옥주는 신비한 힘을 지녀 다양하게 쓰였다.모든 환상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한 포메이션도 부술 수 있다.예를 들어 실수로 환영에 들어갔거나 포메이션에 갇혔을 때 황옥주로 즉시 빈틈을 찾아낼 수 있다.그뿐만 아니라 황옥주는 상대와의 대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적의 약점이나 필살기 등 모든 공격 수단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심지어 보물을 찾고 감정하는 것에도 독특한 기능이 있었는데 보물이 맞는지, 그 가치는 얼마인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황옥주를 한눈에 알아본 유진우는 황태자 저택에 이런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역시 장혁이야. 눈썰미가 좋네.”이문재가 웃으며 말했다.“이건 황옥주가 맞아. 내가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오늘 자네와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되었으니 선물로 이걸 주지.”“절대 안 됩니다!”유진우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이렇게 귀한 물건은 제가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 부디 거두어 주세요.”“보물은 영웅에게 줘야 그 쓸모를 다하지. 내 손에 있으면 먼지만 쌓이고 전혀 쓸모가 없어. 너에게 줘야 진정한 힘을 발휘할 거야. 예의 차리지 말고 받아.”이문재가 보물 상자를 앞으로 밀었다.“전하,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보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유진우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내가 너보다 몇 살이나 더 먹었고 항상 너를 동생처럼 대했는데, 형이 동생에게 선물을 주는 게 뭐 어때서?”이문재는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직접 보물 상자를 유진우의 품에 밀어 넣고는 일부러 정색하며 말했다.“받아, 또 거절하면 화낼 거야.”“이건...” 유진우는 딜레마에 빠진 표정이었다.“장혁, 이 황옥주가 많은 도움을 줄 거야.”이문재가 문득 비밀스럽게 말했다.“용맥이 파괴되어 용원의 기가 다섯 갈래로 천지에 흩어져 있는데 그걸 다 찾는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병약해서 고생하며 돌아다니는 건 더더욱 견디지 못해. 게다가 나는 문인인데 수행에 필요한 용원의 기를 찾아서 뭐 하겠어. 망설이지 말고 받아. 너는 장차 서경왕이 되어 나라의 기둥이 될 몸이야. 네가 강해져야 나라도 번창하지. 내게 왕위를 물려받을 기회가 생긴다면 훗날 너와 함께 천하를 다스리며 영광을 누리겠다.”미소를 지으며 유진우의 어깨를 토닥이던 이문재의 마지막 한마디에 담긴 의미는 매우 분명했다.자기가 건넨 선물을 받았으니 왕좌에 오르는 걸 도우라는 거다.“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소인 감사히 받겠습니다.”이렇게까지 말하니 유진우도 더 거절할 수가 없었다.용원의 기를 찾는 데 황옥주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용원의 기로 내공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고 심지어 단번에 랜드 신선의 경지에 발을 들일 수도 있었다.무사에게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치명적인 유혹이었다.양심에 어긋나더라도 그는 이 선물을 받아들여야만 했다.두 사람은 대청 안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동맹을 맺은 거나 다름없었다.이청성이 보물을 다 고르고 다시 문 안으로 들어온 뒤에야 유진우는 자리를 떠났다.너무 졸려서 인사를 나눌 겨를이 없었고 지금 당장 집에 가서 푹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이문재의 저택을 나섰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은 새벽 1시였다.유진우는 너무 졸려서 눈도 뜨지 못하고 하품을 연발했다.차에 타자 이청성은 유진우의 품에 안긴 보물 상자를 흘깃 쳐다보며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보아하니 이미 오라버니와 거래를 달성했나 보네요?”“어쩔 수 없죠. 너무 큰 걸 줘서 뭐라고 거절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었다.“천재도 재물에 넘어갈 때가 있네요.”이청성의 말투는 다소 장난스러웠다.“큰 오라버니를 왕위에 올리기로 약속하면 다른 황자들이 당신을 눈엣가시로 여길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당연히 알죠. 그래서 비밀리에만 도우면서 대놓고 편드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면 너
고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세 번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비록 똑같이 연기였지만 조군영보다는 훨씬 진실되어 보였다.“표기대장군 도착하셨습니다!”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울렸다.곧이어 금빛 갑옷을 입고 기상이 비범한 중년 남자가 급하게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이 바로 일품 표기대장군 유태범이었다!유태범은 표기대장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만수의 사촌 동생이기도 했다.유태범은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하고 천부적 재능이 있어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만약 유만수가 없었다면 분명 유씨 가문의 가장 빛나는 천재였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만수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유태범을 보자 조군영과 고원은 즉시 가식적인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그들 둘은 모두 유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진정한 측근 장수들이었다.마치 유만수와 석태혁의 관계처럼 영광도 함께 하고 손실도 함께했다.“형님!”유태범은 두 심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당에 들어서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떨리며 얼굴에는 비통함과 분노의 빛이 어려 있었다.“어찌 이럴 수가? 우리 형님이 어찌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한 짓입니까?!”유태범이 붉은 눈으로 연달아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호룡각의 잔당들입니다. 그들이 자객을 부내에 잠입시켜 어젯밤 어르신을 암살했습니다.” 이의진의 얼굴이 흐리멍덩했다.“호룡각?”유태범이 이를 갈며 분노에 차 있다가 즉시 고함쳤다. “누구 없느냐! 즉시 군대를 집결시켜 전 성을 수색하라.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잠깐만요!”이의진이 갑자기 나서서 제지했다.“태범 씨, 매우 비통한 것을 알지만 지금은 아직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습니다.”“형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무
이 말이 나오자 조군영과 고원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두 사람이 오늘 온 것은 본래 기세를 과시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이의진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입을 열자마자 반역이라는 죄명을 들이대다니.이런 죄가 뒤집어씌워진다면 그들은 아마 왕부의 대문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마마, 농담 마십시오. 반역은 사형감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런 일은 감히 못 하지요!” 고원이 연달아 해명했다.“맞습니다. 저희는 왕께 항상 충성을 다해왔는데 어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조군영도 따라서 부인했다.비록 두 사람 모두 그런 야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명백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반역할 생각이 없다면 어째서 갑옷을 입고 부내에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규칙도 모르십니까?” 이의진이 조금도 봐주지 않고 꾸짖었다.그저 이품 장군일 뿐인데 군권이 조금 있다고 감히 왕부 안에서 눈깔을 찌푸리고 있다니.유만수가 살아있을 때 이 둘은 감히 이러지 못했다.“아이고! 제 정신 좀 보세요, 왕부의 규칙을 잊었네요. 마마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군영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어서 갑옷을 벗고 차고 있던 칼을 내려 왕부의 경비에게 건넸다.“저희가 급히 오느라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으니 개의치마시지요.” 고원이 웃으며 말했고 즉시 갑옷과 칼을 벗었다.이 광경을 보고 이의진의 안색이 비로소 조금 누그러졌지만 어조는 여전히 차가웠다.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왕께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저희 둘이 특별히 문안드리러 왔습니다.”고원이 가식적으로 말했다.“소식통이 꽤나 빠르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늦었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두 사람이 의아한 척했다.이의진은 설명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몸을 돌려 영당으로 향했다.왕부 밖은 비록 동정이 없었지만 왕부 안에는 이미 흰 만장이 가득
“알겠습니다. 제가 경비병 신분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변장을 하셔야 합니다.” 손도운이 결국 타협했다.비록 위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정오 무렵, 서경 왕부 안.비록 유만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봉쇄되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관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어떤 이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조문을 왔고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목적을 품고 있었다.“보국대장군 도착!”“운미대장군 도착!”왕부 문 앞에서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곧이어 갑옷을 입은 체격이 우람한 중년 남자 둘이 각각 친병들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왔다.이 친병들은 모두 허리에 장도를 차고 있었고 보기에도 험상궂었다.온 이들은 바로 이품 관직인 보국대장군 조군영과 운미대장군 고원이었다.“두 분, 왕부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반드시 갑옷과 무기를 해제하셔야 합니다.”한 왕부 친위가 조군영과 고원을 막아서며 동시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흥! 난 밖에 나올 때 갑옷을 벗지 않아. 꺼져!” 조군영이 노하여 꾸짖었다.“조 장군, 이건 왕부의 규칙입니다. 따라주시기 바랍니다.”왕부 친위가 말했다.“규칙? 나한테 감히 규칙을 운운한 건가?”조군영이 왕부 친위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규칙을 들먹이며 나를 압박하느냐? 죽고 싶나?”“조 장군, 소인도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뿐입니다.” 왕부 친위는 동요하지 않았다.“헛소리 작작 하고 비켜.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조군영이 갑자기 칼을 뽑아 왕부 친위의 목에 겨누었고 그의 모습은 매우 포악하고 극도로 횡포했다.“제 머리를 베신다 해도 규칙은 지켜야 합니다.” 왕부 친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 개자식! 관짝을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리겠구나!”조군영은 마침내 화를 내며 칼을 거세게 들어 왕부 친위의 팔을 향해 내리쳤다.“멈추세요!”이때 한 소리의 여성의 호통이 울렸다.삼베 흰옷을 입은 이의진이 석태혁 일행을 데
이 순간 유진우의 눈이 피를 뿜을 듯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살기가 솟구쳤다.비록 예전에 아버지와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그동안 품었던 그 작은 분노마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단지 호룡각의 일을 완전히 해결한 후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에 효도를 제대로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둘이 만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암살당해 돌아가셨다. 이 충격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창공!” 유진우가 갑자기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손을 뻗어 창공보검을 불러들이고는 밖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호룡각의 잔당들을 모조리 섬멸해야만 했다!“전하! 제발 진정하십시오!” 유진우가 이성을 잃을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손도운이 급히 그를 막아서며 침착하게 조언했다. “호룡각은 준비를 하고 온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이렇게 무모하게 뛰쳐나가신다면 복수는커녕 오히려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리실 수 있습니다!”“비키세요!” 유진우의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창공검의 칼날을 손도운의 목에 바로 겨누었다. 예리한 기운이 피부를 스치며 상처를 내자 피가 천천히 배어 나왔다.“전하! 저를 죽이시더라도 전 전하를 막아야만 합니다. 제가 어찌 전하께서 죽으러 가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전하께 더 이상의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손도운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유진우 앞을 가로막은 채 죽음도 불사하는 자세를 취했다.유진우는 이를 악물었고 그의 손에 든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몇 초간의 대치 끝에 그는 깊은 숨을 내쉬고 마침내 검을 내렸다.손도운의 말이 맞았다. 그는 지금 냉정해져야만 했다. 유만수가 죽었으니 왕부가 분명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고 이때
다른 처녀들도 모두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진심 어린 간청을 했다.이 광경을 본 유진우는 넋이 나갔다.노란 옷 처녀의 말은 그의 귀를 때리는 듯했다.지옥 같은 일을 겪고도 이 아이들이 자신이 아닌 천하의 모든 약자들을 생각하다니... 상상도 못 했다.이런 원대한 뜻과 깨달음은 그조차도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이청성이 말했듯, 이들은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빛을 향하는 처녀들이었다.귀하고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누가 여자가 남자만 못하다 했는가?진정한 대의 앞에서 이 여자들이야말로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었다.이런 의로운 용사들이 있는데 어찌 서경이 부흥하지 않을까? 어찌 천하가 평안하지 않을까?“오빠, 결정해요. 받아주지 않으면 저 애들은 살아갈 희망조차 잃을 거예요.” 이청성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어요?” 유진우가 엄숙하게 물었다.“절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모든 소녀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좋아요! 허락하죠!”유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부터 특별 훈련을 시작할 거예요. 견뎌낼 수 있다면 여러분들의 원대한 뜻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하지만 견디지 못한다면 편한 곳에서 평안히 살도록 해요.”“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노란 옷의 소녀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소녀들도 따라 외쳤다.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청성을 바라보았다. “당분간 네가 돌봐. 내일 저애들의 거처를 정하도록 해.”“알겠어요.”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으며 소녀들을 데리고 떠났다.일행이 막 나가자 손도운이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그의 표정이 매우 당황스러워 보였고 큰일이라도 난 듯했다.“전하! 큰일 났습니다!”유진우를 보자마자 손도운은 ‘쿵’하고 무릎을 꿇고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왕부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왕께서 자객의 암살로 돌아가셨습니다!”“뭐라고요?”이 말을 듣자 유진우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잠시 후 정신을 차린 유
“오빠, 급한 건 알지만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아가씨들은 지금 오빠만 믿고 있고 목숨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어요. 받아들이면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예를 들어, 오빠가 외로울 때...”“농담하지 말고 요점이나 말해요!” 유진우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솔직히 말할게요.”이청성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장혁 씨, 사실 이 처녀들은 보기 드문 인재예요. 제가 이미 선별했는데 모두 영리하고 의지가 강해요. 조금만 가르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예요.”“무슨 뜻이에요?” 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밀사의 중요성은 잘 아실 거예요. 특히 여자 밀사는 어떤 면에서 타고난 장점이 있죠. 이 처녀들을 밀사로 키우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청성이 말했다.“말은 쉽지, 밀사 하나 키우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전 지금 제 몸 하나도 챙기기 힘든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요?” 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그는 이 처녀들이 평온하게 살기를 바랐지, 이용당하거나 장기말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밀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충성심인데 그들은 이미 그걸 가지고 있어요. 장혁 씨가 그들을 구해줬고 장혁 씨의 빛이 그들의 어두운 세상을 비춰줬죠. 저애들은 장혁 씨를 신처럼 여기고 있어요.”“시간과 노력은 걱정하지 마요. 장혁 씨가 직접 가르칠 필요 없이 좋은 스승만 찾아주면 돼요. 장혁 씨 곁의 손도운이라면 아주 적합할 것 같은데요.” 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었다.“그건 청성 씨 생각이고 저 애들한테는 물어봤어요?” 유진우가 물었다.“당연히 물어봤죠. 모두 하겠대요. 필요하다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요.” 이청성이 말했다.“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럴 필요까지야...” 유진우가 눈썹을 찌푸렸다.“장혁 씨, 어둠 속에 있어도 빛을 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요?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세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발 저희를
“마마의 뜻은 내통자를 찾으라는 것입니까?”석태혁이 물었다.“아니요, 내통자와 범인 수사는 이미 홍 장군에게 맡겼습니다. 석 장군께선 더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이의진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경은 최근 몇 년간 불안정했어요. 전에는 어르신이 계셔서 소인배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했지만 이제 어르신께서 돌아가셨으니 서경이 혼란에 빠질 것이고 우리 왕부가 가장 먼저 모든 이의 표적이 될 겁니다.”“제가 유만군을 소집한 것은 왕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누구든 왕부를 해하려 한다면 즉시 처단하세요. 자비를 베풀 필요 없습니다!”“알겠습니다!” 석태혁이 대답했다.비상시기에는 비상조치가 필요했다. 왕이 돌아갔으니 왕부가 곧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할 것이다. 상황을 진압하지 못한다면 왕부가 위험할 뿐 아니라 서경이 사분오열되어 제후들이 각자의 영토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천하가 대란에 빠질 것이다!“석 장군, 장군께선 어르신의 심복이자 우리 왕부의 기둥입니다. 앞으로의 일은 모두 장군께 달렸습니다.” 이의진이 깊은 뜻을 담아 말했다.“소신, 충성을 다해 왕부를 지키겠습니다!” 석태혁의 표정이 결연했다.왕이 암살당한 것은 친위대장인 자신의 책임이었다. 왕부가 지금 사람이 필요한 때가 아니었다면 자결로 죄를 갚았을 것이다.“석 장군, 전 이미 소식을 봉쇄했습니다. 어르신의 서거를 아는 이가 많지 않아요. 조금 후 조문 오는 자들을 잘 살피세요. 대부분이 불순한 의도를 품고 올 테니 누구든 방자히 굴면 즉시 체포하세요!” 이의진이 다시 명령했다.“알겠습니다!” 석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왕의 죽음은 모두에게 숨길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흉심을 품은 자들은 이미 왕부에 첩자를 심어두었을 거고 왕의 서거를 알면 반드시 방문을 빌미로 허실을 탐색하거나 심지어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오늘부로 왕부는 평온할 수 없을 것같았다....서쪽에 있는 고풍스러운 저택에서.유진우가 막 기상하여 문을 열자 밖에 십여 명의 꽃다운 처녀들이
“어르신!”“깨어나세요! 제발 깨어나세요!”이의진은 숨이 끊어진 유만수를 보며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모든 일이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그가 자신의 품에서 이렇게 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소식을 듣고 모여든 왕부의 사람들도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쏟아냈다. 유만수는 왕부의 하늘이자 서경의 하늘이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하늘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었다.시간이 흘러 날이 밝았다.서경 왕부 전체가 비통한 분위기에 잠겼고 전에 정무를 보던 대청은 이제 영당이 되어 사방에 흰 만장이 걸렸다. 정교하게 조각된 검은 관이 중앙에 놓였고, 그 안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유만수가 평온한 얼굴로 누워있었다.영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 꿇고 있었는데 대부분 왕부의 신임 장수들과 유씨 가문의 자제들로, 모두 상복을 입고 슬픔에 잠겨있었다. 이의진은 맨 앞에서 유만수의 영정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홍복홍이 들어와 영정 앞에 절을 올리고 이의진 앞으로 와서 깊이 절했다.“왕비마마, 왕의 장례는 분부대로 처리했습니다. 소식을 봉쇄하고 조용히 진행하여 민심이 동요치 않게 했습니다.”“범인은 잡았습니까?” 이의진이 눈물을 닦으며 살기를 뿜었다.남편이 눈앞에서 피살당했으니 그녀는 범인을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범인의 무공이 너무 높아 추적에 실패했습니다.”“호룡각 잔당의 소행이에요. 즉시 수사하세요. 범인을 반드시 잡아오되, 필요하다면 흑용군을 동원해도 좋습니다!”“네.” 홍복홍은 물러갔다.“천우는 언제 오나?” 이의진이 고개를 돌려 여자 호위병에게 물었다.“도련님께서 변방 훈련 중이라 전갈을 보냈으니 오후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여자 호위병이 대답했다.“왕부 경계를 엄중히 하고 아무도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게 해.”이의진이 또 명령을 내렸다.“네!” 호위병이 공손히 인사하고 물러났다.“어르신, 제가 반드시 원수를 갚겠습니다!” 이의진은 유만수의 영정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뒤 영당을 나와 곧장 후원으로 향했다.후원에
“물러가겠습니다.”이의진이 예를 갖추고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대청의 지붕이 무너져 내렸고 까만 인영 하나가 하늘에서 내리꽂혔다.검은 복면의 자객이었다.“조심하세요!”이의진이 순간 얼어붙었다가 외쳤다.“유만수! 죽어!”흑의인이 분노에 찬 고함과 함께 검을 내지르자 섬광이 스치더니 검은 유만수의 가슴을 관통했다.한 줄기 빛처럼 빠른 검세에 누구도 반응할 틈이 없었다.유만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가슴을 꿰뚫은 검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문간에 있었던 이의진도 충격에 빠져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왕부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어떻게 자객이 들어왔단 말인가?하필 홍복홍과 석태혁이 공무로 나간 때를 노린 것이, 마치 미리 계획된 듯했다.“유만수! 이것이 호룡각에 맞선 대가다!”흑의인이 거칠게 검을 뽑자 유만수의 가슴에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그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 바닥에 주저앉았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사람 살려! 자객이야! 자객이 들었어!” 이의진이 소리쳤다.순식간에 서경 왕부 전체가 발칵 뒤집혔고 호위병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흑의인은 형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즉시 지붕으로 도약해 달아났고 왕부의 고수들은 연이어 공중으로 날아올라 최대한 빠르게 추격했다.“어르신! 어르신!”이의진이 급히 유만수 앞으로 달려갔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유만수는 가슴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고 말을 하려다 격렬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어르신! 말씀하지 마세요! 괜찮으실 거예요! 꼭 괜찮으실 거예요!”이의진은 한 손으로 유만수의 상처를 누르며 다른 손으로 문 밖을 향해 외쳤다. “의원! 의원은요? 어서 와서 어르신을 살려주세요!”“의진아...” 유만수가 떨리는 손으로 이의진의 팔을 붙잡고 힘없이 말했다. “의진아... 나는 이제 끝에 다다랐어. 잘 들어... 내가 죽으면 서경이 크게 혼란스러워질 거야. 네가 왕비로서 사태를 안정시켜야 해. 내 신임하는 장수들이 널 도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