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죠?”유진우는 멍한 상태에서 코끝으로 은은한 향기를 느꼈다.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이청성의 품에 안겨 있었다.이청성은 헐렁한 옷을 걸쳐 언뜻 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직접 닿고 보니 들어간 곳과 나온 곳이 분명한 몸이 숨겨져 있었다.“지금 뭐 해요?”이청성은 부끄럽고 화가 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갑자기 마차가 멈추니까 몸을 가누지 못해서 그만...” 유진우는 조금 당황했다.“충분히 만졌죠? 빨리 손 치워요!” 이청성이 새침하게 말했다.“미안해요.”유진우는 화들짝 놀라서 바로 손을 뗐다.역시 사람이 너무 피곤하면 반응이 평소보다 느려진다.“밖에 무슨 일이죠?” 이청성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마마, 누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마부가 대답했다.“한밤중에 길을 막다니, 자객인가요?”이청성이 마차의 커튼을 걷어 올리고 먼저 발을 내디뎠다.유진우는 얼굴을 툭툭 치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 뒤따라 마차에서 내렸다.이때 앞쪽 교차로에서 중무장한 호위병들이 나타났다.은빛 갑옷을 입은 호위대는 날카로운 눈빛과 강력한 아우라를 풍기는 게 엘리트 중의 엘리트임이 분명했다.“은갑병? 저 사람들이 왜 여기에...”이청성은 의아했다.“은갑병? 무슨 사람들이죠?”유진우가 호기심에 물었다.“제 둘째 오라버니인 이광우의 호위병이에요.”이청성이 설명했다.“둘째 오라버니는 어렸을 때부터 무예를 익혔고 용맹하고 사나워서 전장에서도 많은 공을 세웠죠. 그래서 자신의 밑으로 유명한 호위병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어요.”“이황자의 사람이라고요?”유진우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전 이황자와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왜 군사들을 보내 저를 잡으러 온 거죠?”“잡는 게 아니라 모시러 왔겠죠.”이청성이 빠르게 정신을 차렸고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눈앞에 은갑병 중 건장한 장군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장군은 유진우와 이청성에게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무사 윤조, 공주마마와 세자
“제가 돌아가야 한다면요?” 유진우의 얼굴이 차가워졌다.“저희는 명령을 따를 뿐이니 저희를 난처하게 만들지는 말아 주십시오.”윤조는 꼿꼿하게 선 채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의 뒤에는 수백 명의 은갑병이 비장하게 서 있었다.기세를 봐서 유진우가 제 발로 가지 않으면 강제로 끌고 갈 기세였다.“세자 전하,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만나보는 것도 괜찮죠. 친구 한 명 더 사귀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이청성이 유진우를 툭 건드리며 귀띔했다.지금은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기에 졸리고 피곤해도 참고 견뎌야 했다.대황자의 거처에 갔으면서 이황자에게 가지 않으면 그의 체면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었다.이황자의 강압적인 성격을 봐선 아무런 패악질을 부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그래요. 그럼 윤 장군이 길을 안내하세요.”유진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더 반기를 들지 않았다.통쾌하게 거절하는 건 한순간이지만 이후에 끊이지 않는 문제가 생길 거다.“감사합니다, 세자 전하! 가시죠.”윤조는 비켜서서 정중하게 유진우와 이청성을 차로 에스코트했다.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차는 웅장하고 화려한 저택 입구에 멈췄다.대황자 저택의 화려함에 비하면 이황자 저택은 훨씬 더 위엄이 있었다.전쟁의 신 동상, 무술 경기장, 무기가 전시된 무기고까지 있었다.유진우 일행은 차에서 내려 윤조를 따라 들어갔는데, 지나가는 곳마다 군사들이 끊임없이 늘어져 있어서 경비가 매우 삼엄했다.많은 장벽을 통과한 후 두 사람은 마침내 대청에 도착했다.그 시각 대청 안에서는 갑옷을 입은 여러 장군이 한 젊은 남자와 군사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에게서 왕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이황자 이광우였다!이광우는 유진우와 이청성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대화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어서 와요. 환영합니다. 우리 장혁 군과 청성이가 이렇게 와줘서 너무 기쁘네요.”“이황자님을 뵙습니다.”이청성이 허리를
유진우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이광우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장혁,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나는 무인이라 전장에서 상대를 죽일 순 있어도 권모술수에는 능하지 못해요. 특히 소식을 접하는 건 큰형님보다 훨씬 뒤떨어지죠. 그래서 많은 걸 다 알지는 못해요.”“그렇군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사실 폐하와 대황자님께서는 별다른 일 없이 그저 오랜만에 담소나 나누려고 저를 부른 겁니다.”이 말이 나오자 이광우는 다소 불쾌한 듯 눈꼬리가 씰룩거렸다.옆에 있던 수염 난 장군이 발끈하며 호통을 쳤다.“이봐! 그게 무슨 뜻이지? 한밤중에 담소를 나눠? 우리 전하를 바보로 아는 거야? 내가 네 목을 베어버리겠다!”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금방이라도 칼을 빼 들고 공격할 것 같은 기세를 보였다.“무엄하다!”이광우는 그를 노려보더니 화를 내며 꾸짖었다.“장혁은 서경 세자이고 더구나 우리 집의 귀한 손님이니 예의를 갖춰야지!”“전하! 이 자식이 전하를 우습게 보고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으니 한바탕 두들겨 맞아야 바른대로 고할 것 같습니다.”수염 난 장군이 목소리를 높였다.“닥쳐라!”이광우는 격분하여 그의 얼굴을 거칠게 때리면서 소리쳤다.“또다시 무모한 짓을 하면 군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흠!”수염 난 장군은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엔 잠자코 있었다.유진우를 노려보는 한 쌍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엔 악의가 넘쳐났다.“장혁,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부하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무례를 범했네요. 용서해 주세요.”이광우가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솔직하게 말을 뱉는 걸 보니 성품이 올곧은 분인가 봅니다. 이해하죠.”유진우가 무심하게 말했다.“장혁, 우리가 남도 아닌데 사실대로 얘기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이광우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버지와 형님이 밤늦게 차를 마시고 수다나 떨자고 부르지는 않았겠죠. 분명 중요하게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일 처리 하나는 분명하게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게
“이황자님...”이청성이 그 상황을 보고 도와주려고 입을 열려는데 유진우가 앞장서서 말했다.“전하의 호의를 받지 않는 것도 무례이니 이 보물은 제가 다 가져가겠습니다.”“엥?”이청성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입가에 차오른 말을 삼켰다.‘뭐지, 도대체 이놈은 무슨 꿍꿍이인 걸까?’처음에는 이성민의 부탁을 받아들여 은밀히 도와주겠다더니, 이제는 이광우의 보물을 마다하지 않는다.‘어엿한 서경 세자가 이렇듯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고?’“하하하... 좋아요! 아주 통쾌하네요!”유진우가 받아주자 이광우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여봐라, 얼른 이 보물들을 다 포장해서 장혁 군의 집으로 보내거라!”“선물 감사합니다, 전하!”유진우가 허리를 굽혔다.“이젠 형제인데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어요.”이광우는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말을 바꿨다.“그런데 오늘 밤 아버지가 밀담을 나눌 때 따로 특별히 하신 말씀은 없었나요?”이 말을 들은 유진우는 머뭇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광우는 금방 눈치를 채고 주변 사람들을 물러가게 했다.“다들 물러가. 나와 장혁 군이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네!”사람들이 대답하며 뿔뿔이 자리를 떠났다.“청성아, 잠시 가서 쉬어라.”이광우가 이청성을 돌아보았다.“네.” 이청성은 유진우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문을 나갔다.“장혁, 여기 더 이상 외부인이 없으니까 할 말 있으면 해 봐요.” 이광우의 말에 유진우는 대청 문을 닫고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며 비밀스럽게 말했다.“전하, 사실 폐하께서 저에게 몇 가지 비밀을 말씀해 주셨는데 나라에 관한 일이고 아주 중요한 사안이라 절대 누설하시면 안 됩니다.”“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비밀 지킬게요.”이광우는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약속했다.유진우가 아버지와 형과 비밀리에 대화를 나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알지 못했다.그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밀담이 매우 중요하고 앞으로의 상황을 결정할 관건이라는 것뿐
이광우는 유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얼굴에는 열정과 기대가 가득했다.원래 유진우는 단순히 유장혁의 입에서 중요한 정보를 끌어내려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관우가 예상외로 유장혁이 황제의 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다시 말해 황위를 계승할 가능성에 있어 유장혁이 절반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셈이었다.이 사실에 이광우는 속으로 미칠 듯한 기쁨을 느꼈다.“전하께서는 용맹하시고 여러 차례 공을 세우셨으니 당연히 가장 적합한 황태자 후보이십니다. 다만 최종 결정권은 결국 폐하에게 있으니 저는 그저 한 가지 조언을 드린 것에 불과합니다.”유진우가 차분히 말했다.“괜찮습니다. 도련님께서 전적으로 저를 지지해 주시면 그걸로 충분합니다!”이광우는 활기차게 대답하며 환히 웃었다.“전하께서 이렇게 넉넉하게 대하시고 또 저와 의기투합하셨으니 당연히 전하께서 황태자가 되시기를 지원하겠습니다.”유진우가 말했다.“좋습니다! 도련님의 말씀이면 저는 안심이 됩니다.”이광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장혁 도련님, 오늘부터 당신은 저의 친형제와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오세요!”“전하, 감사드립니다.”유진우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여기 술을 좀 가져오라!”이광우는 크게 외치며 시종들에게 술을 가져오게 했다. 이어 술잔을 들고 화끈하게 마시며 축하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전하,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오늘 하루 긴 여정으로 정말 피곤하여 혹시 먼저 돌아가 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석 잔의 술을 마신 유진우는 결단력 있게 말했다.“물론이죠. 당신도 하루 종일 수고하셨으니 푹 쉬셔야죠.”이광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에게 외쳤다.“세자 전하를 안전히 집으로 모셔다드리거라!”“전하, 이제 저는 물러가겠습니다.”유진우는 예를 다해 인사한 뒤 이청성과 함께 저택을 떠났다.오늘 밤 이 여정은 의심할 여지 없이 큰 성과를 거
“이런 계획을 하고 있었군요.”이청성은 잠시 멈칫하다가 곧 깨달음을 얻었다.그녀는 유진우의 행동을 대체로 이해하게 되었다.유진우가 말한 대로 두 황자가 밤중에 초대했을 때 직접 거절하면 분명히 사람들을 화나게 할 것이고 결국 얻을 것 없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었다.반대로 양쪽 모두 잘 다루어서 두 황자를 기쁘게 하면 혜택이 많을 뿐만 아니라 얼굴을 붉히는 일도 피할 수 있었다.표면적으로 보면 탐욕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유진우의 방식이 최선의 해결책이었다.어차피 공정하게 양쪽 모두를 다루면 어느 쪽도 원망하지 않게 된다.“어쩔 수 없잖아요. 나도 정말 방법이 없었어요.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이런 보물들을 받지 않을 거예요. 이건 다 쌍날검처럼 좋은 점도 있지만, 반대로 무거운 책임이기도 해요. 큰 그림을 위해선 난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어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입가에 미소를 좀 거두고 말해요.”이청성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유진우, 점점 더 뻔뻔해지네. 이득을 보고는 오히려 얌전한 척하다니.’“공주님, 저는 독식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상자 안의 보물들 마음대로 고르세요. 마음에 드는 걸 바로 가져가세요.”유진우는 아주 호탕하게 말했다.“흥! 그래야죠.”이청성은 만족스럽게 웃었다.‘하룻밤을 함께 보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고생비를 받아야지.’“공주님, 저는 차에서 잠깐 쉬겠습니다. 도착하면 불러주세요. 정말로 버틸 수가 없네요.”유진우는 더 이상 말을 할 힘도 없어서 한 마디 남기고 자리에 앉아 깊은 잠에 빠졌다.그런데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차가 갑자기 멈췄다.관성에 의해 유진우의 몸이 앞으로 쓰러질 뻔했지만, 이번에는 이청성이 재빠르게 반응하여 여린 손을 뻗어 유진우의 머리를 받쳐서 가까이 가지 않도록 했다.“무슨 일이에요? 벌써 집에 도착한 건가요?”유진우는 비몽사몽으로 눈을 떴다. 원래 쌍꺼풀은 세 겹으로 늘어나며 떨리고 있었다.그
“하아...돈 버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유진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온몸 구석구석에 피로가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잠 한 번 제대로 자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야?’“유장혁 씨, 정말 오랜만이군요!”둘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대규모 수행원을 이끌고 성큼성큼 다가왔다.그는 품격 있는 자태에 온화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미소를 짓는 모습은 따뜻한 봄바람처럼 느껴졌다.그는 바로 용국의 삼 황자 이군호였다.“유장혁 씨, 정말 오랜만입니다. 벌써 10년이나 지났네요. 갈수록 멋져지시는군요!”이군호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따뜻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어릴 적 함께 사냥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 활쏘기 실력은 유장혁님에 비할 바가 못 되었죠.”“전하, 오랜만에 뵙습니다.”유진우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인사했다.“오라버니, 평안하시옵니까.”이청성이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응? 공주도 있었군요. 잘됐습니다. 유장혁 님과 함께 저희 저택에서 쉬어 가시지요.”이군호는 다정한 미소를 띠며 초대했다.“전하, 소인은 집에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오늘은 사양하고자 합니다. 다음에 시간을 내어 찾아뵙겠습니다.”유진우는 공손히 거절하며 말했다.평소라면 돈을 마다할 리 없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잠이 절실했다.“유진우 님, 무슨 일이 그리 급하신가요? 혹시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도움이 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이군호는 미소를 유지하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제가 이 연경에서 비록 천하를 호령하지는 못하더라도 웬만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소인의 일을 어찌 감히 전하께 폐를 끼치겠습니까?”유진우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거절했다.“에이. 우리 사이에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어려운 일이 있다면 꼭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이
당연히 유진우가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것과 달리 이군호와 이청성은 품위 있게 천천히 음미하며 음식을 즐겼다.한 시간이 지나 유진우는 마침내 배를 채웠다.평소 평평하던 복근이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만족스러움을 느꼈다.“꺽!”마지막으로 술 한 잔을 들이켠 후 유진우는 길게 트림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이제 잠을 푹 자면 완벽할 것이다.‘잠깐 왜 이렇게 갑자기 졸리지?’음식을 먹을수록 더 졸려지는 느낌이었다.“유진우님, 음식은 입맛에 맞으셨나요?”이군호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모두 귀한 진미여서 입이 호강했네요.”유진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배고프면 뭐든 맛있게 느껴지지만, 오늘은 진짜로 맛있었다.“다행입니다.”이군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유진우님, 한밤중에 쉬지도 않고 이렇게 돌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늘 밤엔 큰 사건들이 많아 자금성 안팎에 검문소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조금 전에 둘째 황자 전하의 저택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입니다.”유진우는 대수롭지 않게 솔직하게 대답했다.귀찮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는 게 우선이었다.“오호?”이군호는 일부러 놀라는 척하며 물었다.“한밤중에 둘째 황자 저택에 간 이유가 있습니까?”“폐하께서 황태자 문제를 고민 중이시라 둘째 황자께서 심야에 저를 불러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셨습니다.”유진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황태자 말입니까?”이군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며 급히 물었다.“혹시 아바마마께서 둘째 형을 태자로 세우시려는 건가요?”“그건 아닙니다.”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폐하께서는 세 분 황자님 각자의 장점을 인정하시며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 중이십니다. 그래서 저에게 의견을 묻고 싶어 하셨던 거죠.”“오호? 그렇다면 유진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 형제 중 누가 태자가 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시나요?”“제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
조이준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미지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로 땅에서 오령정을 줍고 있었다.이것들은 천금 같은 보물이어서 팔든 직접 사용하든 모두 좋은 선택이었다.“오령정? 이게 모두 오령정이라고?”“어서 와. 빨리 주워.”이 순간 많은 사람이 땅 위에 널려 있는 검은 결정체의 정체를 알고 하나둘씩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더라도 모두가 빼앗는 것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쟁탈 대열에 합류했다.“이 오령정은 내가 먼저 본 거야, 이리 내놔.”“헛소리 집어치워, 지금은 내 손에 있으니 바로 내 것이야. 인정하기 싫으면 한판 붙던가.”“제기랄, 누가 감히 나한테서 뺏어간다면 다 죽을 줄 알아.”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싸움이 따르기 마련이다.오령정의 가치를 알게 된 후 각 세력은 미친 듯이 경쟁하기 시작했으며 실력이 강한 사람은 몇 개를 더 얻을 수 있었고 실력이 약한 사람은 남은 찌꺼기만 조금 주워가며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유감없이 정교하게 보여주었다.만약 양측의 실력이 모두 강하고 아무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면 큰 싸움으로 승패를 나누었고 불과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롭던 곳에서 이미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했다.“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네.”사방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을 본 이청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겨우 몇 조각의 오령정으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다니, 만약 이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이 나온다면 또 어떤 장면일까?“이봐요,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을 내놔요. 아니면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그때 갑자기 두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청성이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에 시선을 고정하며 앞뒤로 그녀를 에워싸면서 말했다.“어디서 감히 아가씨를 협박해! 너희들 다 뒤지고 싶어?”상황을 목격한 이청성 주변에 있던 근위병들은 바로 칼을 빼 들며 말했다.그들은 모두 반은 종사급 고수들이니 무림인들의 세계 부하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
갑작스러운 폭발에 모두가 깜짝 놀랐고 에너지파가 휩쓸면서 적지 않은 무사들이 사방으로 날려 아수라장이 되었다.다행히 서지석과 제자들이 빨리 달린 탓에 피해를 면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했더라면 그들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모든 먼지가 다 떨어질 때쯤 다들 시선을 집중하고 보니 마을 이장의 집은 이미 평지로 변해 있었고 사방의 무너진 담벼락에 의해 온 땅이 어질러져 있었다.허공에 매달렸던 바람은 나무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곤룡띠만 덩그러니 땅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 외에도 땅에는 정체 모를 검은 결정체들이 마치 조약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유진우는 분명히 바람의 몸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물건이라고 확신했다.결정체에서 나오는 피비린내는 아마도 혈액에 의해 녹아서 나는 냄새일 것이고 정상인의 피는 액체 상태이지만 바람이 죽기 전의 피는 고체 상태로 결정체가 되어버렸으니 확실히 이상한 점들이 있어 보였다.유진우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식견이 넓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바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의 인식을 뛰어넘었다.처음에는 이유 없이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그 뒤로 신체 소질이 갑자기 배로 강해져 고통과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마리의 미친 짐승과도 같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의 몸에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날카로운 이빨, 칼날 같은 손톱, 갑자기 몸에 생겨난 검은 비늘은 칼로도 베기 힘들 정도였고 총적으로 바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였으며 현재 땅에 널려진 검은색 고체 상태의 결정체들만으로도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도대체 무엇이 바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도 바람은 모든 면에서 정상이었는데 왜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인지.혹시 그가 뭐라도 빠뜨린 것이라도 있었는지.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하였고 비록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바람이 짐승처럼 변한 것은 분명 그 괴상한 오아시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안타깝게도 바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자부심이 강하고 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의 조이준은 몇 번이고 거절당한 유진우한테 다소 불만이 있었지만 생사를 가를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더는 조르지도 않았다.“당신들은 여기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얼른 가서 서지석 씨를 도와줘요.”유진우는 머리를 돌려 가만히 서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을 보고 말했다.그때 서지석은 한창 미쳐 발광하는 바람과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다만 기력이 소모됨에 따라 서지석은 속도와 힘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고 반면, 바람은 여전히 힘이 넘쳤고 지칠 줄을 몰랐다.이대로라면 서지석은 얼마 못 버티고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빨리 대선배를 도우러 가요.”금도문의 몇 명 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곧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돌진하려 했다.“잠깐만요, 이걸 가지고 가요.”그때 이청성은 갑자기 금빛 밧줄을 꺼내며 금도문 제자에게 던져주었다.이 금색 밧줄은 매우 단단했고 표면에 은은한 빛이 돌고 있어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뭐죠?”금색 밧줄을 본 조이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며 물었다.“이것은 말로만 듣던 곤룡띠가 아니에요?”“조 선배님 눈썰미가 참 대단하시네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뭐라고요? 곤룡띠라고요?”곤룡띠에 대해 들은 적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은 그 가치를 알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곤룡띠는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유명한 보물로 매우 보기 드문 물건이었고 어떠한 칼로도 상처를 내기 힘들고 물과 불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매우 단단하고 질긴 것으로 설령 무도 종사를 묶어 두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다만 곤룡띠는 너무 희귀해서 무림인들의 세계에서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게다가 가진 자는 모두 최고의 대문 파인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여인이 이런 보물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그만 쳐다보고 빨리 서지석 씨를 도우러 가요.”이청성은 재촉하며 말했다.“네, 그래야죠.”금도문 제자들은 잠깐 꿈에서 깨어난 듯 그제야 정신을
툭!손이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마치 공처럼 몇 바퀴 굴러다니더니 마침 몇몇 금도문 제자들의 발밑에서 멈추었다.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손이현은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미쳐 날뛰는 바람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던 유진우에게 목이 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손이현은 도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총잡이 원호를 사부로 모시고 있었으며 배경이 좋아 앞길도 창창하였고 죽음의 사막으로 온 이유는 보물을 찾아 내공을 높여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이었다.자신은 분명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고 여태까지 운수가 좋았으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보물을 찾아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고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끊어질 줄이야.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어!손이현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그의 휘황찬란한 인생은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고 또 뜻밖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사부님 원호의 말대로라면 그의 무도 재능은 미래의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온 천하가 존경하는 최고의 강자로 되였을 것이다.그렇게 아름다운 꿈이었고 그리워했던 일이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렸다.‘알고 보니 나는 주역이 아니었고 천명이 아니었으며 결국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후회의 외침 속에서 손이현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이게 뭐야?”땅에 떨어진 손이현의 머리를 마주한 몇몇 금도문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로 전에 그들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구해낸 손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분리된 상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떻게 된 거지?몇몇 사람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의 손에 든
“너... 이놈!”손이현이 막 맞서려고 할 때 앞에서 갑자기 짐승 같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눈여겨보니 바람은 이미 사납게 덮쳐오고 있었고 손발을 함께 사용하여 빠르게 달리며 매번 땅을 디딜 때마다 손톱이 땅에 맞닿으며 몇 줄의 깊은 흔적까지 남겼고 그 날카로운 정도가 강철 칼날에 불과했다.“거기 누구 없어? 빨리 날 구해줘! 이 괴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손이현은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야, 이 제기랄.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손이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흉악한 얼굴로 유진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유진우는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진우 씨,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손이현이 죽으면 안 돼요.”옆에 있던 서지석이 급해하며 말했다.“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우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됐어요. 보아하니 제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유진우가 너무 고집을 부리자 서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을 뽑아 들고 직접 손이현을 구하러 나섰다.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막강한 손이현도 바람을 굴복시킬 힘이 없는데 자신이 대신하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팍!바람은 피비린내에 이끌려 다시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손이현은 너무 놀라 바짓가랑이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버젓한 도명창마저 놀라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망할 놈, 그렇게 날뛰더니!”손이현이 갈기갈기 찢겨 부스러기가 될 뻔할 때 서지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주며 바람과 혈투를 시작했다.바람의 신체가 더 크게 강화되어 그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서지석은 더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바람은 이미 공격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이성을 잃었고 진기도 사용할 줄 몰랐기에 서지석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서지석은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손에 쥔 보검으로 바람을 간신히 견제했다.그
“으르렁!”바람은 깊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왜곡된 얼굴, 송곳니로 가득한 입, 그리고 사나운 표정은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그와 눈이 마주친 손이현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움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야! 저기 누구! 어딜 가는 거야! 제발 나 좀 구해줘!”유진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모습에 손이현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바람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손이현은 싸움의 의지를 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바람의 존재는 이제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콧대가 높으시잖아요? 내가 못된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럼 저도 이제는 신경 끌 게요.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손이현이 죽든 말든 그것은 유진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멈춰! 당장 멈춰! 내가 명령한다! 이 미친놈을 빨리 쫓아내!”손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유진우는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도명창 손이현이야! 내 사부님은 서남 지방 5대 강자 중 하나인 원호야! 오늘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사부님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이현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협박이라도 할 셈이었다.서남 지방에서 원호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이기 마련이었다.“뭐? 원호? 그 사람은 서남 지방에서 실력이 상위 3위 안에 드는 존재잖아!”“손이현의 스승이 원호라니! 그가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이제 알겠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겠지.”“원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다고 들었어. 만약 손이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속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원호의 명성은 사막의 교룡보다도 더 위세를
“응?”손이현이 뒤를 돌아보자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고 그와 함께 피의 비린내가 짙게 맴돌았다.공격을 가한 자는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나무에 박혀 몸을 움찔거리던 바람은 결국 두 손으로 창대를 붙잡고 비틀어 간신히 반 미터 정도 앞으로 몸을 끌어당겼다.그는 손이현에게 다가가며 그 날카로운 손톱을 펼쳐 내리치려 했다.그의 손톱은 마치 날 선 강철처럼 그 자체로도 무지하게 치명적이었다.“고작 이런 기술로 나를 공격하겠다고?”손이현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공격에 콧방귀를 끼며 팔을 휘둘렀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렸다.손이현의 진기가 바람의 손톱에 의해 가볍게 찢어졌다. 손목마저 그대로 잘려 나가서 뜨거운 피가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현장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아악!”손이현은 떨어진 손목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가 곧이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람의 손톱이 이렇게 날카롭고 강력할 줄을 말이다.한순간에 자신의 진기를 뚫고 손목을 자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 손! 내 손!”손이현은 잘린 손을 붙잡고 고통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그는 바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바람은 그의 손목을 마치 두부를 베어내듯 손쉽게 잘라버렸다.갑작스레 다가온 공격에 손이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으르렁!”바람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톱을 휘둘러 창대를 부러뜨리고 속박에서 벗어났다.그리고 다시 포효하며 손이현을 향해 달려들었다.“안 돼... 가까이 오지 마!”손이현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바람의 손톱에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듯했다.잘린 손목은 아픈 데다 창은 나무에 고정되어 있어 바람을 제대로 막아낼 수도 없었다.그는 그저 극심한 통증 속에서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바람을 죽여버려야 했다.바람은 폭주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너무 공포 그 자체였다.
바람은 그로 인해 계속 후퇴하며 포효했다.그는 이미 폭주한 상태였고 진기라는 보호막조차 거두어낸 채 오직 육체만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그리하여 손이현의 날카로운 창끝이 바람을 찔러대며 그의 온몸을 갈기갈기 베어가자 그의 피는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모두가 바람이 이번엔 쓰러질 거라 생각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바람은 고통을 모르는 듯 자신에게 난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또다시 미친 듯이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가장 두려운 점은 그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회복력은 그 자체로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놀라웠다.“흥! 죽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군! 한 방에 너를 끝장내겠다!”바람이 다시 달려들었으나 손이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긴 창을 한 손에 쥐고 떨자 은색 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주위를 밝게 밝혔다.“이 창이 세상을 놀라게 하리!”손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창을 뒤로 당기곤 그것을 무자비하게 앞으로 내질렀다.윙!웅장한 소리가 들렸다.그 순간, 창끝에서 은빛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지며 마치 하늘을 가르는 용처럼 바람을 향해 돌진했다.그의 일격은 너무나 빠르고 강력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와, 정말 멋진 창법이야! 기세가 정말 무서워!”“이게 바로 도명창의 실력인가? 역시 대단해!”“이 창 한 방이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바람은 이제 끝장났다고 봐야지!”사람들은 손이현이 내뿜은 은빛용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경외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들은 손이현의 이름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이번에야 비로소 도명창 손이현의 위력을 깊이 체감하게 된 것이다.“으르렁!”손정의 공격을 마주한 바람은 여전히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돌진했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손이현의 은빛 창이 바람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창끝이 그의 배를 관통하고 몸을 뚫고 지나가며 온몸을 꿰뚫었다.하지만 기이하게도 창끝에 묻은 피는
“큰일이에요! 금실망이 곧 터질 거 같아요!”그때, 누군가가 외쳤다.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실망에 갇힌 바람은 거대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그의 온몸은 검은 문양에 휩싸이게 되었다.그의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치솟았고 손톱은 뾰족하게 변했다. 그의 눈은 붉은빛에서 칠흑처럼 깊고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입에서는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그르렁! 으르렁! 크아악!”바람의 포효는 점점 더 커져갔고 그 표정 또한 야수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의 등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으며 팽팽하게 펴진 금실망을 한 줄, 한 줄씩 찢어 나갔다.“으르렁!”바람은 또 한 번 포효했다.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금실망을 움켜잡고 힘껏 찢었다.“쾅!”튼튼한 금실망이 그대로 두 동강 나며,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금실망을 잡고 있던 청년들은 그 힘에 순간적으로 밀려나며 바닥에 쓰러졌다.“큰일 났다! 이 미친놈이 나왔어!”“빨리! 빨리 그를 막을 방법을 찾아!”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급한 대로 줄을 꺼내 바람을 다시 묶으려 했다.“으르렁!”바람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그의 근육질 몸체를 한 번 더 흔들어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그러자 거대한 밧줄들이 순식간에 부러지며 바람을 막을 힘이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막을 수 없어! 모두 도망쳐!”마을의 청년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빠진 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바람이 방금 전 마을 사람들을 처참히 무찌르던 그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다시 그에게 다가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이 괴물 같은 존재를 상대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쓸모없는 놈들! 내가 나서마!”그때 갑자기 청색 의복을 입은 한 남자가 군중 속에서 솟구쳐 나와 바람 앞을 가로막았다.긴 창을 든 그 남자는 바람 앞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뿜는 기세는 마치 고요한 폭풍처럼 강렬했다.“봐! 손이현이야!”“손이현? 서남 지역에서 명성을 떨친 도명창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