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유진우가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것과 달리 이군호와 이청성은 품위 있게 천천히 음미하며 음식을 즐겼다.한 시간이 지나 유진우는 마침내 배를 채웠다.평소 평평하던 복근이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만족스러움을 느꼈다.“꺽!”마지막으로 술 한 잔을 들이켠 후 유진우는 길게 트림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이제 잠을 푹 자면 완벽할 것이다.‘잠깐 왜 이렇게 갑자기 졸리지?’음식을 먹을수록 더 졸려지는 느낌이었다.“유진우님, 음식은 입맛에 맞으셨나요?”이군호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모두 귀한 진미여서 입이 호강했네요.”유진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배고프면 뭐든 맛있게 느껴지지만, 오늘은 진짜로 맛있었다.“다행입니다.”이군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유진우님, 한밤중에 쉬지도 않고 이렇게 돌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늘 밤엔 큰 사건들이 많아 자금성 안팎에 검문소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조금 전에 둘째 황자 전하의 저택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입니다.”유진우는 대수롭지 않게 솔직하게 대답했다.귀찮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는 게 우선이었다.“오호?”이군호는 일부러 놀라는 척하며 물었다.“한밤중에 둘째 황자 저택에 간 이유가 있습니까?”“폐하께서 황태자 문제를 고민 중이시라 둘째 황자께서 심야에 저를 불러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셨습니다.”유진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황태자 말입니까?”이군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며 급히 물었다.“혹시 아바마마께서 둘째 형을 태자로 세우시려는 건가요?”“그건 아닙니다.”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폐하께서는 세 분 황자님 각자의 장점을 인정하시며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 중이십니다. 그래서 저에게 의견을 묻고 싶어 하셨던 거죠.”“오호? 그렇다면 유진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 형제 중 누가 태자가 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시나요?”“제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
“에이! 장혁님, 너무 겸손하십니다. 당신은 한때 천하를 뒤흔들었던 천재 아닙니까? 몇 년간 칩거하셨다 해도 여전히 비범합니다. 저는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이군호는 유진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치 형님처럼 굴었다.유진우는 속으로 생각했다.‘이게 능력의 문제가 아니지. 문제는 돈이 부족하단 거야. 만약 당신이 형제들처럼 통 크게 나섰더라면 내가 이렇게 모호한 태도를 보이진 않았을 거다.’비록 속으로는 이군호를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하께서 과찬입니다. 제 미천한 명성이 전하와 어찌 비교되겠습니까? 비할 바가 못 됩니다.”“장혁님, 저와 협력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죠.”이군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황자 중에서도 제가 황위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유진우님께서 저를 지지해 주신다면 이는 마치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겁니다. 저를 지지하는 건 가장 현명한 선택이자 최고의 이익을 가져다줄 투자입니다.”“그건...”유진우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상대가 눈치를 챘을 테고 금품이나 보상을 제안하며 설득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군호는 전혀 그런 기색 없이 홀로 술잔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기다릴 뿐이었다.이군호의 눈에 유진우는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든 결국 신하일 뿐이었다.그는 신하라면 신하로서의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자신이 황자로서 유능한 사람에게 겸손히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의를 보였다고 믿는 듯했다.‘더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이청성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오라버니, 세자 전하의 지지를 얻으시려면 뭔가 보답할 만한 것을 내놓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성의가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이 말을 듣자 이군호는 마치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이마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아이고 보십시오! 제가 깜빡했군요. 중요하게 걸 잊어버릴 뻔했습니다.”그는 품에서 옥 펜
한참을 고생한 끝에 잠잘 시간이 다 지나버렸고 결국 얻은 건 그냥 평범한 옥 펜던트 하나였다. 정말 너무 초라했다.‘같은 황자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지?’그만큼 지쳤으니 이제 집에 가서 씻고 자는 게 낫겠다.“전하, 날도 늦었으니 저는 먼저 물러나겠습니다.”유진우가 먼저 말했다.“얼른 가세요.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다시 부를게요.”이군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유진우와 이청성은 곧장 자리를 떠났다.밖으로 나와 다시 차로 돌아가는 길에서 유진우는 손에 들고 있던 평범한 옥 펜던트를 보며 한참 동안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쉬었다.“공주님, 삼 황자께서 너무 인색한 거 아니에요? 옥 펜던트 하나만 줘놓고 어떻게 저를 설득하겠다는 거죠?”유진우가 불만을 표출했다.“오라버니께서는 성격이 신중하셔서 확실한 보장이 없으면 큰 투자는 하지 않으세요. 그래도 최고급 화전옥을 선물로 주셨으니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아요.”이청성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사실 방금 그녀가 말하지 않았다면 유진우는 아마 옥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이군호의 성격이라면 그저 말만 하고 말았을 것이다.“비교를 해보면 첫째 황자와 둘째 황자님이 주신 보물에 비하면 정말 볼품없죠.”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제 그만 말 좀 그만 하세요. 오늘 당신이 벌어들인 게 얼마나 많은데 이제 만족해야죠.”이청성은 유진우를 째려보면서 말했다.“공주님, 이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다 공주님 형제들이 저를 매수하려 한 거죠. 이 보물들은 안 가질 수 없었어요.”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본래 궁을 나와서는 바로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초대가 이어졌다.정신적으로는 피곤했지만, 얻은 이익이 꽤 많아서 헛걸음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유장혁 씨, 이렇게 많은 이득을 봤으면 좀 도움을 줄 때도 됐죠?”이청성이 갑자기 물었다.“도움이라니요? 저는 그저 전달자에 불과해요.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건 폐하와 제 아버지죠. 그 두 분이
“공주님, 오늘 밤은 아무도 더 이상 저를 방해하지 않겠죠?”유진우는 자리에서 기대며 갑자기 물었다.계속된 번잡함에 신경이 이미 지쳐버렸다. 매번 집에 가서 자려고 할 때마다 누군가가 나타나 방해하니 활시위에 놀란 새처럼 민감한 상태였다.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와도 자는 게 두려워서 눈을 감을 수 없다.그냥 눈을 감았다가 누군가 깨우는 게 가장 괴로운 일이었다.마치 밥을 먹는 도중에 갑자기 끊어지는 기분 그 감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뭐예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이청성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돈 버는 건 중요하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죠. 정말 너무 피곤해서 이제는 그냥 자고 싶어요.”유진우는 졸린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을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오늘 밤에는 그 세 명뿐이에요. 나머지 사람들은 다 조금 부족해서 이 자리에 끼지 못할 거예요.”이청성이 말했다.“그러면 다행이에요.”유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오늘 밤은 정말 편안하게 잘 수 있겠어요.”“너무 기뻐하지 마요. 오늘 밤은 아마 잠을 잘 수 없을 거예요.”이청성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무슨 말이에요? 방금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요?”유진우는 갑자기 몸을 곧게 펴며 약간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그렇게 긴장하지 마요. 내가 말한 건 오늘 밤 자는 게 아니라 이미 날이 밝아 오고 있다는 거죠. 밖을 한번 봐봐요.”이청성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유진우는 그쪽을 바라보며 하늘의 어두운 끝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이건 아침이 밝아 오고 있다는 징조였다.핸드폰을 꺼내 본 유진우는 이미 새벽 5시가 넘었음을 알았다. 해가 뜨기까지는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아...이렇게 밤새도록 시달리다니 정말 불쌍하네!”유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저녁부터 너무 피곤해 잠시라도 자고 싶었지만, 이청성이 찾아온 이후로 모든 일이 마치 저주에 걸린 듯 끝없이 이어졌고 한시도 쉴 틈이
“이제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세요. 부드러운 파도에 몸을 맡기고 미풍이 지나며 머리카락을 살며시 흔드는 소리가 들리죠.”“...”이청성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마치 마법 같은 평온함을 선사했다.몇 마디 지나지 않아 유진우는 깊은 잠에 빠졌고 리드미컬한 코 고는 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정말 빨리 잠드네.”이청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옮겨 유진우 옆에 앉고 그의 고개가 천천히 기울어질 때 어깨로 받쳐주었다.또한 유진우의 턱을 한 손으로 받쳐 주어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깨지 않도록 했다.차는 부드럽게 달렸지만, 유진우의 별장으로 가지 않고 낯선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유진우는 꿈을 꾸었다. 아주 길고도 생생한 꿈이었다.꿈속에서 유진우는 혼자 전쟁터에 서 있었다.발밑에는 시체들이 산처럼 쌓였고 땅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넓게 펼쳐진 시야 속에는 생명이 느껴지지 않았고 참혹한 풍경만이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유진우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느꼈다.가족도 친구도 적도 모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유진우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왜 이런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그는 그저 너무 두렵고 외롭다는 것만 느꼈다.‘이게...바로 전쟁인가?’서로를 향한 증오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결국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유장혁 씨...유장혁 씨...”희미하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음 순간 유진우는 악몽에서 깨어나며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이청성?”유진우는 천천히 눈을 뜨며 눈앞에 서 있는 하얀 옷을 입고 베일을 쓴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이청성이었다.“혹시 악몽을 꾼 거예요? 방금 계속 싸우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꿈속에서 몸부림치더라고요.”이청성이 부드럽게 물었다.“네. 이상한 꿈을 꿨던 것 같아요.”유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나를 죽이려고요?”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혹시 호룡각 사람들이었나요?”호룡각과 적대 관계에 놓인 지금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아직 확실하진 않아요.”이청성은 살짝 고개를 흔들며 조용히 답했다.“그날 밤 우리가 길을 가던 중 매복을 당했어요. 다행히 대비가 되어 있었고 당신을 무사히 옮겨 큰 사고 없이 넘길 수 있었습니다.”“아마 호룡각의 잔당이 틀림없을 거예요.”유진우는 몸을 풀며 스트레칭 했다. 그의 온몸에서 두두둑 소리가 났다.“다행히 공주님이 현명하셔서 제가 목숨을 부지했네요.”“당신을 궁으로 초대한 이상 안전을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죠.”이청성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게다가 유장혁 씨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중요한 존재예요. 당신이 다친다면 용국은 정말 혼란에 빠질 겁니다.”“공주님, 저한테 그렇게 부담을 주지 마세요. 저는 그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을 뿐 큰 뜻 같은 건 없어요. 그러니 너무 기대하지 말아 주세요.”유진우는 하품하며 말했다.이틀 밤낮을 푹 잤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여전히 충분히 쉰 것 같지 않았다. 뭔가 조금 부족한 기분이었다.“유장혁 씨는 이미 천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해도 결국 문제에 휘말리게 될 겁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준비하고 당신이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하는 게 더 나을 거예요.”이청성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녀는 유장혁을 여러 차례 점쳤다. 결과를 완전히 예측할 순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신했다.용국의 미래에 다가올 대사건들은 모두 유장혁과 깊게 얽혀 있다는 사실이었다.심지어 유진우의 사소한 결정 하나가 천하의 운명을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제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하라고요?”유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문득 자신이 꾼 꿈이 떠올랐다.만약 선택이 가능하다면 그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그중에는 유진우의 소중한 이들
“뭐라고요?”이청성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늦게 반응했다.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사실 저는 공주님께서 황제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폐하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만약 그런 생각이 있으시다면 서경왕부를 대표해서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요.”유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장혁 씨! 농담하지 마세요. 하나도 안 웃겨요!”“저는 그냥 여자일 뿐이고 그런 자격이 없어요. 황궁 내에서도 저를 받아들일 수 없을 거예요.”“여자라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죠?”유진우는 진지하게 말했다.“누가 여자면 황제가 될 수 없다고 했어요? 신종여왕도 여성이었지만 황제 자리에 올랐잖아요. 지금 공주님은 신종여왕보다 조금 젊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노력만 한다면 분명히 해낼 수 있어요.”“유장혁 씨가 믿어줘서 고맙지만, 저는 그런 생각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려줘요.”이청성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지금까지 단 한 명의 여황제가 있었고 그 여황제는 좋은 기운과 기회가 따랐기에 작은 희망이란 가능성이 있었다.이청성은 그런 전설적인 인물과 자신을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게다가 만약 자신이 권력을 쥐고자 한다면 세상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그때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런 상황은 이청성이 가장 원하지 않는 그림이었다.“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됐어요. 저는 그냥 한 번 제안했을 뿐이에요. 물론 공주님께서 마음을 바꾸시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유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성민이 말했듯이 이청성은 왕족 중에서 황제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이청성은 여성이다.이 길을 걷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그뿐만 아니라 세 명의 황자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궁 안의 신하들 또한 이청성이 황제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청성 자신이다.이청성이 그런 마음가짐을 가졌다면 유진우는 언
식사를 마친 유진우는 이만 자리를 뜨기로 했다.이틀 밤낮을 잠만 자다 보니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얼른 돌아가야 했다.차에 오르기 전 이청성은 유진우를 불러 세웠다.“유진우 씨, 내가 어젯밤에 점쳐봤는데 아직 당신의 위기가 완전히 해소된 거 아니에요. 앞으로 한동안은 반드시 조심해야 해요.”“명심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넨 후 곧 차에 올라탔다.차에 탄 유진우는 먼저 조선미한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한 다음 조무진과 조홍연 두 사람한테 연락해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설명했다.그리고 왕위 계승 전이 시작되면 반드시 조정 전체에 재앙이 닥치게 될 것이고 왕족인 조씨 가문 역시 벗어날 수 없으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명확히 알렸다.한 시간 후 유진우는 별장에 도착했다.같은 시각 별장에서 윤아는 요리하고 사철수와 유공권은 서예를 연구했으며 왕현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누구야?”유진우가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왕현이었다.“저예요.”유진우는 즉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진우 형님, 드디어 돌아왔네요.”왕현이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이틀 동안 어디에 있었어요? 왜 아무 연락이 없었어요?”유진우는 웃으면서 대답했다.“급한 일이 생겨서 처리하느라 이틀이나 걸렸어요.”유진우는 차마 자신이 이틀 동안 잠을 잤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진우 형님, 전에 주신 서신은 서경으로 돌려보냈어요.”왕현이 말했다.“그래요.”유진우는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며 말을 돌렸다.“아참, 아저씨랑 유명의는 어때요?”“그들은 괜찮아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요 며칠 동안 경계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어요.”왕현이 말했다.“다행이네요. 왕현 씨 수고가 많아요.”“전하 돌아오셨어요?”이때 사철수와 유공권이 서재에서 나왔다.두 사람은 줄곧 집에만 있다 보니 지난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고 그다지 걱정될 것도 없었다.“아저씨, 안색이 점점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